아빠가 음료수를 사러간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러나 아빠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매점을 못 찾았거나 길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까 봤을때 매점(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레스토랑과 비슷했지만.)은 수영장 바로 옆에 있어서 못 찾거나 길을 잃을 것도 없어 보이는데...
[헤이~. 아가씨 이쁜데? 혼자 온거야?]
그때 의자에 앉아서 두리번 거리고 있는 유리에게 남자 세명이 다가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웃통은 벗어제끼고 있었는데 아마 자신들의 검게 탄 근육질 몸을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그러고 있는것 같았다.
[누구..세요?]
그들의 우락부락한 근육질에 겁을 먹은것일까. 유리는 펴고있던 다리를 자신도 모르게 움츠리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세남자중 가운데 있는 남자가 나머지 두남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우린 섹시한 양만 잡아먹는 늑대들이지. 흐흐~.]
그의 말에 나머지 두남자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유리는 이렇게 수작을 걸어오는 남자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를 몰라 애탄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아빠가 어서 돌아오지 않나 마음을 졸였다.
[이봐. 섹시한 양. 혼자왔으면 우리랑 놀지 않을래~? 오빠들이 재미있게 해줄게.]
[호..혼자오지 않았어요!]
급히 대답하는 유리의 모습에 다시한번 남자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웃으세요.]
유리가 잔뜩 움츠러든 목소리로 이해가 안 간다는듯이 그렇게 물었고, 웃고있던 중간에 서있는 남자가 대꾸했다.
[웃기잖아. 우리가 무슨 인신매매범도 아니고. 그렇게 기겁을 하면서 대답하니까.]
[하..하지만 정말 혼자 오지 않은걸요.]
[그래? 하지만 지금은 혼자네. 일행이 올때까지 오빠들이 같이 놀아줄게~. 우리 섹시한 양도 좋지~?]
남자는 그러며 천천히 유리의 옆으로 다가왔고 유리는 어찌할바를 모르며 몸을 반대쪽으로 기울였다. 하지만 그쪽으로도 다른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몰라 울상을 짓는 유리에게, 그때 어떤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햐아~. 자기야 미안 미안~. 내가 너무 늦었지~?]
유리는 갑자기 다가온 새로운 또한명의 남자를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는 나이를 알 수 없게 생겼는데 액면으로만 보자면 대충 스물대여섯 정도 될것 같았다. 먼저 와있던 세명의 남자들은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다가온 수려한 용모의 사내를 쳐다보았고. 그 사내는 세명의 남자들을 마주 바라보며 말했다.
[자~. 이제 애인 왔으니까 그쪽들은 그만 가주시죠?]
[당신이 이 여자 애인이야?]
[그런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아닌것 같은데? 이봐. 괜히 멋있는척 하지말고 그만 꺼져주시지?]
사내는 피식 웃으며 유리를 잡아 이끌어 자신의 뒤에 숨겼다. 유리는 얼떨결에 그의 뒤에 서게되었고, 사내와 얘기하던 남자는 바닥에 침을 탁 뱉으면서 말했다.
[당장 원위치 시켜. 그리고 넌 가던길이나 마저 가라고.]
[싫다면?]
사내는 남자의 협박어린 목소리에 호기롭게 대꾸했고 남자는 잠시동안 험악한 인상으로 사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사내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한결같은 여유로 그 남자를 마주보았고, 곧 그 남자는 욕지꺼리를 내뱉으며 친구들을 데리곤 가버렸다. 의외로 싱겁게 끝나버린 상황에 사내는 피식 웃으며 유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괜찮으세요?]
[예? 아..예. 정말...감사합니다.]
남자들이 가버리자 그제야 졸였던 마음을 풀고있던 유리는 사내의 물음에 얼른 감사의 인사를 꾸벅 했다.
[하하.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일을 했을 뿐인걸요. 그쪽같은 미인은 이런데 오면 참 귀찮은 일들을 많이 당하시죠. 참. 저는 윤현준이라고 합니다.]
윤현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그러며 유리에게 손을 내밀었고 유리는 생긋 미소지으며 그의 손을 마주잡아 악수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유리라고 해요. 도와주신 것에 대해서 다시한번 감사드려요.]
[하하. 저는 그럼 다시한번 당연히 해야 할일을 했을 뿐입니다~.]
현준의 농담에 유리는 웃음지었고, 현준은 그런 유리를 빙긋 웃는 얼굴로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정유리라...정말 이름도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우시네요.]
현준은 그러면서 싱긋 웃었고, 유리는 그런 현준의 살인미소에 생긋 미소지었다.
[감사합니다.]
[하하..저..그런데. 정말 일행과 함께 오신건가요?]
자신의 살인미소가 통하지 않았음에 잠시 당황한걸까. 현준은 얼른 말머리를 돌렸고 유리는 여전한 미소를 얼굴에 띄운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잠깐 음료수를 사러갔는데 아직 안 오네요.]
[예...그렇군요. 흠. 뭐. 그럼~. 일행이 있다고 하시니 저는 이만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현준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가버렸고 유리는 그런 그에게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음 의자로 돌아가 풀썩 주저 앉았다.
[씨이. 아빠는 왜 이렇게 안 오는거야?]
방금전의 그 화사한 미소는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유리는 얼굴 가득히 잔뜩 약오른 표정을 떠올린채 다시 아빠를 찾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저는 그럼 이만..유리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예~. 그럼 또 나중에 뵈요~.]
[예-.]
태현은 채지현에게 인사를 꾸벅 하고는 발걸음을 재촉해 유리가 있는곳으로 향했다. 사실 태현은 그녀와 매점 앞에서 마주쳤을때 정말 놀랐었다. 그녀는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의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휴가차 이 배에 탄것이라 했다. 태현은 알던 얼굴을 이런 바다 한가운데서 만나 반갑긴 반가웠으나 유리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지현은 계속해서 태현에게 말을 걸었고 태현은 어쩔 수 없이 억지 웃음을 띈채 지현을 끝까지 상대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태현은 서둘러서 유리에게로 갔다. 유리는 태현이 시야에 잡힌 순간부터 주욱 태현을 노려보고 있었고 태현은 얼른 유리 옆으로 다가와 얼음팩 안에 있던 차가운 음료수 캔을 유리에게 내밀었다.
[아빠가 많이 늦었지~?]
[응.]
유리는 아빠가 내미는 음료수 캔은 받아들지 않고 아빠를 올려다 노려보며 대꾸했다. 태현은 미안한 얼굴로 유리 옆에 앉아선 캔을 따서 다시 유리에게 내밀었다.
[화났어? 아빠 늦어서 너무 미안해..]
유리는 아빠의 손에서 홱 가로채듯이 음료수 캔을 받아들고는 단숨에 그걸 다 마셔버렸다.
[천천히 마셔. 채할라.]
태현은 걱정스런 얼굴로 유리를 바라보았고 유리는 음료수를 벌컥 벌컥 다 마셔버린후 태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하~그러셔? 내가 채할까는 걱정이나 되는가보지?]
방금전 유리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가는 전혀 모르고 있는 태현은 유리가 왜 이렇게나 잔뜩 삐져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자신은 그저 조금 늦게 온것일 뿐인데. 거기다 시간이 그렇게나 많이 걸린것도 아니다.
[유리야. 아빠는...]
[왜 이렇게 늦은거야?]
태현이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유리가 아빠의 말을 끊으며 물어왔다. 태현은 유리의 물음에 뭐라고 대답할까 하다가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것 같아서 일단 헛기침을 몇번하고는 입을 열었다.
[누구 아는 사람을 만났어.]
[누구?]
[응...저...텔런트 채지현씨.]
[......]
유리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고 태현은 그런 유리의 표정에 움찔 놀랐다.
[흐,흠. 저...유리야..?]
[...그래서. 여태까지 그 여자랑 얘기하고 온거야?]
[으,응? 아,아니. 그..얘기라기 보다는...]
말끝을 얼버무리는 아빠를 보며 유리는 아무말 없이 그렇게 아빠를 가만히 노려만 보다가 곧 벌떡 일어나서 입고온 반팔티를 들고는 방으로 가버렸다. 태현은 깜짝놀라며 얼른 들고온 것들을 챙겨서는 유리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후, 씩씩거리며 방으로 돌아온 유리는 뒤따라 들어온 아빠에게 들고온 반팔티를 집어 던지며 바락 고함질렀다.
[그 여자랑 얘기한다고 나 못 구해준거야?!]
유리의 고함소리에 태현은 얼른 문을 닫고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못..구해주다니?]
[다른 남자들이 나한테 집적거렸단 말야!]
[뭐? 정말?]
유리의 말에 태현의 깜짝 놀랐다. 유리는 서러운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남자 세명이나 날 둘러쌌단 말야. 난 아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근데 이상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와서 날 구해줬어. 하지만 난 아빠가 날 구해주길 원했단 말이야...! 아빠가 나 구해주고...그리고 나한테 무서웠지..하면서 나 끌어안아주고 나 달래주길 원했단 말이야...그런데...]
태현은 서러운듯이 하소연 하는 유리를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유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빠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아빠는 그 시간에 다른 여자랑 즐겁게 얘기나 하고 있었던 거야...?]
유리의 말에 태현은 가슴이 미어질듯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태현은 천천히 유리에게 다가가 그녀를 이끌어 침대에 앉혔다. 그리곤 유리를 꼬옥 감싸 안아주었다.
[유리야...미안해...유리가 무서워 할때 아빠가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많이 무서웠지...?]
너무나도 따뜻한 아빠의 음성에 유리는 그만 눈물이 왈칵 치밀어 오르는걸 느끼며 아빠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리곤 흐느끼는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나 혼자 내버려 두지마...? 절대로......알았지...?]
[응...이제 절대로 유리 혼자 있게 하지 않을게...]
태현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렇게 속삭여 주었고 유리는 천천히 포옹을 풀고는 애틋한 눈길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태현은 부드럽게 미소지어주며 유리에게 키스를 해주었고 유리는 아빠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아빠와 깊디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
...쪼옥...쪼..옥...츄우우...쪼오옥...
두개의 혀가 서로를 탐하는 소리와 함께 서로가 서로의 입술을 빨아들이는 농밀한 키스소리가 곧 방안을 가득히 메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동안 키스를 나누던 두 사람은 동시에 입술을 천천히 떼어냈고, 태현은 유리의 애타는 눈길을 바라보곤 곧 그녀를 침대에 똑바로 눕혔다.
[...사랑한다고 해줘...]
유리가 아빠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태현은 천천히 유리의 옆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사랑해.]
유리의 입가에 살며시 행복한 미소가 어렸다. 태현은 천천히 눈을 감는 유리에게 부드러운 키스를 해주며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져주기 시작했다.
[...흐응...아...흐..응...흐윽...하아....]
곧 유리의 입술에선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태현은 이제 천천히 손을 내려갔다. 유리의 날씬한 배와 허리를 지나서...그의 손길은 서서히 유리의 비키니 수영복 안으로 침범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흐윽...하아...아빠...]
유리가 태현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 깊이 끌어안아 버린다. 하지만 태현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손은 이미 촉촉해져 있는 유리의 부끄러운 곳 위를 감싸 덮은채 살며시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흐응...하아앙....아...흐윽...]
그녀의 분홍빛 살결이 점차 거칠게 희롱당해감에 따라 유리의 숨소리도 더욱 가빠졌다. 태현은 유리의 클리토리스를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애무하면서 유리가 쾌감을 더욱 잘 느낄 수 있게 해주었고, 때로는 유리의 토톰한 보지 사이에 손가락을 끼워넣곤 비벼주기도 했다. 그런데 태현은 그렇게 하다가 어느순간 그만 실수로 유리의 보지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버리고 말았다.
[흐윽! 하아앙...!]
태현이 당황해 있는 사이, 유리가 허리를 휘면서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태현은 안 그래도 실수로 유리의 몸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당황해 있는데 유리가 그때 절정을 느껴버리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더군다나 마치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버릴듯이 조여오는 유리의 보지는 태현을 더욱 당혹스럽게 했다. 잠시후. 유리는 침대위로 몸을 힘없이 떨어뜨리며 가쁜 숨을 고르고는 곧 가느다란 목소리로 속삭여왔다.
[...키스...해줘...]
유리의 말에 태현은 잠시 당황을 접어두고는 유리의 보지 속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빼어냈다. 유리가 그때 다시 한차례 몸을 떨어서 태현을 놀라게 했지만 그래도 태현은 다시 마음을 가라 앉히며 유리에게 부드럽게 키스를 해주었다. 유리는 아빠의 머리를 꼬옥 감싸쥐며 조금더 깊이 아빠를 느끼고 싶은지 혀를 아빠의 입속으로 깊이 깊이 내밀어왔고 태현은 그런 유리의 혀를 부드럽게 애무해 주었다.
[...아빠...]
얼마후..천천히 입술을 아빠에게서 떼어낸 유리가 애타는 음성으로 아빠를 불렀다. 태현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유리를 바라보았고 유리는 그런 아빠의 얼굴을 꼬옥 감싸며 말을 이었다.
[...아빠가 내 곁에 없으면...난 숨을 쉴 수가 없어...]
[......]
[...죽어버릴지도 몰라...]
태현은 아무말 없이 유리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러니까...]
유리의 가느다란 음성이 이어졌다.
[...절대로 내 곁을 떠나지마...영원히...]
아무런 대답 없는 태현은 단지 조용히 유리의 머리만 부드럽게 쓸어주고 있었다.
[이런 원 제기랄. 오라지게 높게 있네 그..뭐시기냐. 잠룡산가 깰룡산가.]
길수의 투덜거림에 우철은 피식 웃으며 이마에 맺힌 송골땀을 훔쳤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겠지.]
우철의 말에 길수는 저멀리 나무숲 사이로 기왓지붕을 내밀고 있는 잠룡사를 쳐다보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린 지금 몇십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것 같아.]
[무슨 소리야.]
[제기랄. 아까전에 본 모습 그대로잖아 저 절이.]
길수는 그러며 땅에 침을 탁 뱉으려고 했지만 침은 시원스레 뱉어지지 않고 끈적하게 늘어져 입술에서 대롱거렸다. 우철은 욕지꺼리는 뱉어내는 길수를 보며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잠룡사에 도착한것은 그때로부터 30여분이나 더 흐른후였다.
[젠장...헉...헉..담배를 끊던가..휴우..해야지 원...]
길수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던 돌계단을 다 오른뒤 풀썩 주저 앉으며 그렇게 내뱉었다. 길수보다는 그래도 체력이 더 좋은 우철은 길수처럼 쓰러지진 않고 옆쪽에 있는 약수대에 가서 물을 들이켰다.
[야..마초! 나도..!]
우철은 물 한바가지를 떠서는 길수에게 가져다 주었다.
[어떻게 오셨는지요.]
길수가 물을 벌컥 벌컥 들이키고 있을때 한 체구 좋은 스님이 다가와 합장을 하며 말을 걸어왔다. 우철은 얼른 공손히 마주 합장을 하며 그 스님에게 인사를 하곤 말했다.
[금강이라는 분을 찾아 왔습니다.]
우철은 그러며 아직까지 바닥에 주저 앉은채 자신들을 올려다 보고 있는 길수를 걷어 차버렸고 길수는 궁시렁 거리며 일어나 스님에게 대충 합장 비슷한걸 했다. 스님은 길수의 합장에 공손히 마주 합장을 하고는 우철에게 말했다.
[금강에게는 무슨 용무로...?]
[예. 제 지인께서 그분을 찾아가 보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흐음...죄송하지만 금강은 만나실 수 없을것 같습니다.]
[뭐야?]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우철이 흠짓 놀라며 길수를 돌아다 보았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길수는 스님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스님의 멱살을 움켜잡으며 말했다.
[이봐. 중. 우린 방금 존나게 힘들여 여기까지 올라왔단 말이야. 근데 네가 뭔데 그 금강인가 은강인가 하는 작자를 못 만나게 한다는거야?]
[야. 길수야.]
거칠게 나오는 길수를 우철이 제지 했지만 길수는 자신의 어깨를 붙잡는 우철의 손을 뿌리치며 스님의 멱살을 더욱 끌어다 잡았다. 하지만 스님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길수에게 말했다.
[소승의 말에 오해가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소승이 그렇게 말한 연유는 금강이 수년전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뭐? 죽어??]
길수가 깜짝 놀라며 스님을 바라보았다. 뒤에 있던 우철도 놀라긴 마찬가지 였지만 그는 일단 길수가 스님의 멱살을 부여잡고 있던걸 풀며 스님에게 사과했다.
[제 친구가 본의 아니게 무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하하..아닙니다. 오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것이니까요.]
[야. 쌍칼. 스님께 사과해.]
우철은 길수를 툭 치며 말했고 길수는 힘빠진 얼굴로 스님에게 고개를 한번 꾸벅 하고는 계단으로 걸어가 거기에 걸터앉아 담배를 한개피 피워물었다.
[모처럼 힘든 발걸음 하셨는데 이렇게 실망감을 안겨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자신도 힘이 빠지는건 사실이기에 한숨을 푸욱 내쉬며 길수를 바라보고 있던 우철은 스님의 그런 말에 얼른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것이 어떻게 스님께서 사과하실 일입니까. 뭐...그냥 비싼물 한번 얻어먹은셈 치지요. 하핫. 그럼...]
우철은 한번 호탕하게 웃고는 스님에게 공손히 합장을 하곤 몸을 돌렸다. 스님도 우철에게 마주 합장했고, 우철은 한숨을 푸욱 내쉬며 길수에게로 걸어갔다.
[에휴...태현 형님이 알려주신 그 사람마저 없으면 이제 어떻해야 하나...]
[...태현...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때, 우철의 중얼거림을 들은 스님이 놀란 음성으로 우철에게 물었다. 우철은 스님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예. 태현 형님이라고...아. 제가 방금 말한 제 지인이라는 분이 그 태현 형님이란 분입니다. 혹시 그분을 아십니까?]
우철의 물음에 스님은 빙그레 웃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주께서 말씀하시는 그분이 정태현이라는 암흑가의 보스가 맞다면 제가 아는 사람과 일치합니다.]
스님의 말에 우철은 반가운 얼굴로 스님에게 도로 다가가며 말했다.
[하하. 이런 산중에 태현 형님을 아시는분과 만나다니 참 반갑네요. 형님과는 무슨 사이십니까?]
[특별히 어떠한 사이라기 보다는...오래전에 우연히 한번 스치듯이 만난 사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꽤 잘 통했었죠.]
스님은 빙긋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고 우철은 겨우 한번 만났을 뿐이라는 스님의 말에 자신이 괜한 물음을 던졌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고는 다시 스님에게 합장을 하며 말했다.
[하하..그러시군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스님은 온화한 미소를 얼굴에 띄운채 우철에게 마주 합장했다. 그때,
쉬익-!!
어디선가 날아온 단검이 우철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가 스님에게로 날아갔다. 하지만 스님은 가볍게 머리를 옆으로 트는것으로 그 단검을 피해버렸다.
[역시 그랬군.]
[뭐? 이 자식아! 역시는 무슨 역시야!]
우철은 길수에게 버럭 고함질렀다. 길수는 피식 웃으며 다가와 우철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왜. 쫄았냐?]
[그게 아니라! 왜 스님한테 칼질을 하고 난리...야...? 어라...? 스님. 방금 이 자식 칼을 피한겁니까?]
우철은 말을 하다가 뭔가가 이상한듯이 스님을 돌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적어도 우철의 기억으로는, 길수의 칼을 피한것은 이제껏 태현 형님 단 한명밖에 없었다.
[둔탱이 새끼. 아직도 못 알아챘냐? 이 스님이 그 금강이란 사람이잖아.]
[뭐...?]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길수는 답답하다는듯이 말했다.
[저분 목 옆을 잘봐.]
길수의 말에 우철은 스님의 목 옆쪽을 힐끗 보았다. 거기엔 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우철은 그제야 뭔가가 생각이 난다는듯한 얼굴로 길수를 바라보았다. 길수가 말했다.
[10년전쯤. 형님이 거의 반죽음이 되서 돌아오신 날이 있었지. 그때 형님은 우리들보고 목에 NKSF라는 문신을 새긴 사람을 조심하라고 하셨어.]
[...아..! 나도 생각난다...! 그때 불곰 형님이 그자식 찾아서 죽이고 오겠다고 난리 쳤었어...근데 태현 형님은 괜찮다면서 웃기만 하셨는데...!]
우철은 놀란 얼굴로 스님을 돌아보았다. 스님은 한결같은 평온한 얼굴로 두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길수가 천천히 스님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사죄했다.
[진작에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길수의 사죄에 우철은 얼떨결에 자신도 허리를 굽혔고 스님은 이런 사내들을 보며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그들을 일으켰다.
[허헛. 시주들께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이 미련한 소승의 속임수가 약았을 뿐이지요.]
[그런데...왜 스스로를 죽었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길수의 물음에 스님. 아니, 금강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속세에 물들었던 금강이란 저 자신은 7년전에 저 영월암 소나무 옆에 묻었기 때문입니다.]
길수와 우철은 절 저 뒤쪽으로 보이는 바위굴과 커다란 소나무를 보았다. 그옆에는 정말 무덤 비슷한것이 있었다. 금강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하여 이미 속세와는 인연을 끊은 신세라 부득이하게 시주들께 저를 숨기게 되었습니다. 용서하시길...]
금강은 다시 공손히 합장을 했고 길수와 우철도 얼른 마주 합장을 했다.
[헌데...태현 시주가 왜 저를 찾아가 보라고 했는지요...?]
[예. 저희들이 요즘 어떤 어려움에 처했는데, 형님께서 스님을 찾아가 보면 도움을 주실거라고 하셔서 이렇게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금강의 물음에 우철이 얼른 대답했고, 금강은 의아한 얼굴로 우철에게 되물었다.
[태현 시주가 있는데...특별히 제 도움이 무슨 소용이 있을런지요.]
[형님은...이미 8년전에 은퇴하셨습니다.]
길수의 씁쓸한 대답이 들려왔다. 금강은 길수의 그런 대답에 놀란 얼굴로 길수를 바라보았다.
[허헛! 그것이 정말입니까?]
[예. 사실 자초지종을 설명드리자면...]
길수는 그때부터 차근차근 금강에게 태현이 은퇴하게된 이유와 왜 자신들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오게 되었는지 그 사실 경유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부디...도와주십시오.]
두 사내가 동시에 허리를 깊숙히 숙이며 간청했다.
[흐음...]
길수로부터 모든 설명을 전해들은 금강은 침음성을 흘리며 가만히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했다. 길수와 우철은 허리를 깊이 숙인 그자세 그대로 조용히 금강의 대답을 기다렸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금강의 눈이 서서히 떠지며 그의 목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콜.]
[난 죽겠소.]
한 사내가 자신의 카드를 툭 던져 놓으며 말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방금전 콜을 부른 청년과 한 중년인이다. 그리고 그 두사람 앞에 딜러가 각각 마지막 히든카드를 나눠주었다. 중년인은 천천히 그 히든카드를 들어 무슨 카드인지 확인했다. 스페이드 9...
중년인의 입가에 살며시 웃음이 번졌다.
[베팅 하시겠습니까?]
딜러의 물음에 중년인이 빙긋 웃으며 칩 한무더기를 테이블 중앙으로 밀어 놓았다.
[난 4만 더 거네.]
중년인의 말에 청년은 시익 웃으며 자신도 칩 한무더기를 테이블 중앙으로 밀어 놓았다.
[나도.]
[꽤 자신감이 넘치는군. 하지만 나같으면 그 마지막 카드를 확인해보고 결정을 하겠는데.]
중년인은 턱짓으로 청년이 아직까지 확인해보고 있지 않은 테이블 위의 히든카드를 가리키며 말했고 청년은 그저 어깨만 으쓱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제스쳐를 단지 젊은이의 객기쯤으로 치부해버린 중년인은 여유로운 얼굴로 자신의 카드들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스페이드 9, 스페이드 8, 스페이드 7, 스페이드 6, 스페이드 5. 중년인의 카드를 본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놀람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첫판부터 스트레이트 플러쉬라니! 중년인은 느긋한 얼굴로 이제 청년이 자기 카드를 펼치길 기다렸다. 상당히 당황할거라는 중년인의 예상과는 달리 청년은 중년인의 카드패에도 전혀 동요되지 않으며 하나 둘 자신의 카드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가 첫번째로 내려 놓은것은 다이아 9 였다. 그리고 그가 차례 차례 내려 놓은 카드는 하나같이 붉은 다이아 모양을 가지고 있었고, 그 숫자도 차례대로 1씩 내려가서 그가 마지막으로 내려 놓은 카드는 다이아 6 이었다. 이제 남은 카드는 청년이 아직 펼쳐보지 않은 마지막 히든카드 한장. 그리고, 그제서야 중년인의 얼굴에서 긴장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만약 저 히든카드가 다이아 5 라고 해도 자신의 카드는 스페이드 스티플(스트레이트 플러쉬)이므로 자신이 승리한다. 하지만 만약 저 히든카드가 다이아 10 이라면...
청년은 천천히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히든카드를 뒤집었다.
..우와...!!
주위에서 놀람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정확히 다이아 10. 청년은 어깨를 으쓱하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안 됐군. 당신도 스티플이었는데 말이야.]
[블루잭님의 탑넘버가 10이므로 블루잭님의 승리입니다.]
딜러가 테이블 중앙의 칩들을 청년쪽으로 옮기며 말했다. 중년인은 청년을 잡아 먹을듯이 노려보며 옆에 놓여있던 와인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우와~. 아빠~. 여기 카지노도 있어~?]
유리는 신기한듯이 주위를 둘러보며 카지노 안으로 들어섰다. 아니, 안으로 들어섰다기 보다는 단지 계단 몇칸 올라간것에 불과 하지만. 태현은 저녁 식사후 유리와 배 안 여기 저기를 구경하다가 이곳까지 오게되었다. 그런데 홀Hall 이름이 파티장이라길래 들어와 봤는데 태현은 카지노가 바로 옆에 붙어 있는걸 보곤 적잖이 놀랐다. 그는 아직 미성년인 유리가 이런델 들어와도 되나 잠시 망설였지만 유리의 너무나도 반짝거리는 눈동자에 그만 마음이 약해져 설마 무슨일이야 있으랴 유리가 끌고 가는데로 따라가줬다.
[와~! 룰렛 게임이다~.]
유리가 깡총 뛰어가 커다란 룰렛 게임석 옆으로 가서 섰다. 마침 누가 대박을 터트렸는지 사람들의 박수 속에서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유리는 누군가 하고 그 껄껄거리는 사람을 쳐다봤다. 그 사람은 한 풍채좋게 생긴 할아버지였는데 그 할아버지는 두눈을 깜빡거리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유리를 발견하고는 그녀에게 칩 하나를 던져 주었다.
[허허헛. 이봐 이쁜 아가씨. 아가씨도 한번 그걸로 걸어보지 그래.]
[와~감사합니다~.]
유리는 생글거리며 할아버지가 준 칩을 빨간색 7번에 걸었다. 다시 룰렛이 돌아가고, 룰렛판 위에서 데굴 데굴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쇠구슬은 서서히 룰렛판이 멈추자 어디론가 굴러 들어갔다. 빨간색 7번?! 하지만 아직 룰렛에 회전력이 약간 남아 있던 탓에 빨간색 7번으로 굴러들어갔던 구슬은 달칵--. 하며 바로 옆의 검은색 11번으로 들어가버렸다. 구경하던 사람들의 아쉬운 탄성이 터져나왔다. 어느새 구경 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 예쁜 아가씨에게서 뭔가 볼거리를 기대하게 되었을런지도 몰랐다.
[허헛. 아깝군 그래. 내가 하나 더 줄까?]
아까운 얼굴을 하고 있는 유리에게 할아버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유리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빠를 보고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꾸벅하며 말했다.
[헤헤. 아니에요. 감사했습니다~.]
유리는 그러며 아빠에게로 돌아갔고 할아버지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헛. 그 아가씨 거참. 누구 딸인진 몰라도 손녀 삼고 싶어지는구만 그래.]
여하튼 룰렛 게임을 뒤로하고 유리와 태현은 카지노의 여기 저기를 같이 돌아다녔다. 사실 같이라기 보다는 유리가 뭔가를 발견하고 거기로 뛰어가면 태현이 얼른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식이었지만. 하지만 태현은 유리가 이렇게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면서도 자기도 직접 해보고 싶다고 졸라대지 않는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도박이라는건 원래 잃으면 잃을수록 더욱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니까.
[어? 아빠. 저 사람~!]
그때 슬롯머신을 구경하고 나오던 유리가 또 뭔가를 발견했는지 포커 게임장쪽을 가리켰다.
[응? 누구?]
[저기 저 사람. 아까 나 구해준 사람이야.]
[정말? 어디?]
태현은 유리가 가리키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대략 스물다섯? 여섯?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상당히 수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태현은 아까 딸을 구해준것에 대해서 감사의 인사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유리를 포커 게임장으로 이끌었다.
[유리야. 우리 저쪽으로 가보자.]
[응? 왜에--...싫어.]
[어,왜?]
태현은 당연히 포커 게임을 구경하러 갈 줄 알았던 유리가 의외로 거부하자 의아한 얼굴로 유리에게 물었다. 유리는 아빠에게 아까 자신을 구해줬다고 소개한 남자를 꺼리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 사람이 아까 날 구해준것도 뻔히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수작이었는데 뭐.]
[응...? 그게 무슨말이야?]
[그러니까 저 사람이 날 구해준 게 순수한 의도는 아니었다구.]
유리의 말에 태현은 빙긋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저 사람이 유리에게 먼저 집적거렸던 남자들처럼 그렇게 노골적이었어?]
[그건 아니지만...치! 그래도 재수없어. 난 저런 사람처럼 얼굴만 믿고 세상 여자들이 다 자기한테 넘어올거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제일 싫어.]
유리는 잔뜩 삐진 얼굴로 그렇게 말했고 태현은 왠지 유리의 그런 말이 너무 마음에 들고 또 유리가 너무 이뻐 보여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렇게 아빠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유리는 금방 기분이 좋아진듯이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아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빠. 우리 방으로 갈래?]
[응? 갑자기 방에는 왜?]
의아한 아빠의 물음에 유리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아빠의 귀에대고 속삭였다.
[나 지금 아빠랑 너무 키스하고 싶어.]
[와아~. 안녕하세요~.]
그때 두 사람에게 누군가의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리와 태현은 동시에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또 만나네요~~.]
채지현이었다. 그녀는 화사한 미소를 띄운채 두 부녀에게 다가왔다.
[하하. 안녕하세..]
[꺄아~. 언니~~.]
태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려고 할때, 갑자기 유리가 활짝 웃으며 채지현에게 달려가 안겼다.
[유리야 오랜만~~. 아하하~. 너무 그렇게 세게 끌어안지마아~. 숨막혀~~.]
태현은 채지현과 환한 미소를 지은채 인사를 나누는 유리를 보며 정말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유리는 누구에게나. 그 사람이 마음에 들면 마음에 드는데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데로 당사자가 있든 없든 일관된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해왔는데. 유독 채지현 앞에서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자신 앞에서는 채지현을 마치 원수 대하듯이 하면서 정작 본인 앞에서는 지금 저렇게 보이듯 친자매 이상으로 그녀를 반갑게 대하는 것이다.
한편, 채지현은 평소에 밖을 돌아다닐때와는 달리 지금은 썬글라스나 챙넓은 모자로 자신을 숨기고 있지 않았는데, 아마도 이런 곳에서는 와글 와글 몰려들어 싸인을 요청할 열성적인 팬은 없을 뿐더러 여기선 발에 걸리는 것이 유명인이었기에 저렇게 편한 복장으로 다니는듯 했다.
[참. 너 저기 저 사람 포커 치는거 봤니?]
[예? 저..사람요?]
[응~. 저 사람 아까부터 계속 이기고 있어~.]
[우와~. 정말요?]
[응~. 우리 구경 갈래?]
[좋아요~. 아빠~. 우리 포커 구경하러가자~.]
태현은 깜찍한 얼굴로 자신에게 손짓을 하는 유리를 보며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가식적인 모습의 유리라니. ...아니, 저것이 정말 그녀의 가식적인 모습일까? 분명히 앞뒤 상황으로 봤을땐 유리가 지금 채지현에게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가식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알고 있는 태현 자신조차도 지금 저렇게 너무나 맑고 순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유리를 보며 저것이 과연 본심-내지는 본모습-을 숨기고 있는 모습인건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과연 유리는 자신 앞에서만 채지현을 그렇게 원수같이 대하는 것일까, 아니면 채지현 앞에서만 그녀를 저렇듯 친언니처럼 대하는 것일까. 태현은 아무튼 고개를 흔들어 혼란스러워지려는 머리를 정리하고는 먼저간 두 여자를 따라갔다.
[뭐? 안 죽는다고? 제기랄! 7만 받고 3만 더!]
[이봐. 나도 오늘 그러다가 이 작자에게 50만 달러나 잃었어. 자네도 조심하라구.]
마치 사업가처럼 보이는 30 후반의 금테안경 사내에게 그 옆에 서서 구경하던 중년인이 넌지시 조언했다. 하지만 금테안경 사내는 중년인의 그런 조언을 무시하며 딜러에게 다음 카드를 재촉했다.
[빨리 카드 깔아!]
태현이 막 포커판으로 다가왔을땐 딜러가 금테안경과 유리를 구해줬다는 청년에게 각각 마지막 히든카드를 나눠주고 있을때였다. 채지현과 유리는 청년쪽으로 가서 구경하고 있었고 태현은 포커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 뒤쪽에는 사람이 설 수 없게 되어있기 때문에 금테안경의 옆쪽으로 가서 그가 마지막 카드로 무엇을 받았나 훔쳐보았다. 하지만 금테안경은 조심스레 카드를 들어 자신만 확인했다. 태현은 단지 카드를 보고난 금테안경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것으로 보아 아마도 패가 좋게 나왔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난 7만 걸지.]
금테안경과 청년과 함께 게임을 하고 있던 노년의 신사가 자신 앞의 칩 한무더기를 테이블 중앙으로 밀어 놓으며 말했다. 그러자 청년이 시익 웃으며 자신도 칩 한무더길 테이블 중앙으로 밀어 놓으며 말했다.
[7만 받고 3만 더.]
청년의 말에 금테안경은 마치 죽일듯한 눈초리로 청년을 노려보며 말했다.
[또 마지막 카드는 확인 안 하나?]
[글쎄. 카드를 언제 확인하는가는 내 마음 아닌가?]
청년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고 금테안경은 그런 청년을 노려보며 자신 앞의 칩 한무더길 테이블 중앙으로 밀어 놓았다.
[10만 받고 10만 더.]
금테안경의 말에 주위에서 놀람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금테안경과 청년은 노년의 신사를 쳐다보았고 노신사는 헛기침을 몇번하며 잠시 고민하더니 곧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같은숫자 3이 네개다.
[난 죽었네.]
노신사의 말에 청년은 빙긋 웃으며 금테안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 둘만 남았군.]
[잔말 말고, 어쩔거야?]
금테안경의 가시돋친 말에 청년은 여유로운 얼굴로 자신의 앞에 수북히 쌓여있는 칩의 1/3을 뚝 떼어서 테이블 중앙으로 밀어 놓았다.
[20만 받고 10만 더.]
다시한번 사람들의 탄성이 흘러 나왔고, 금테안경은 청년이 확인하고 있지 않는 마지막 카드가 자꾸 신경이 쓰이는지 그쪽으로 시선을 두며 잠시 고민하다가 곧 청년이 내건 칩보다 더 많은 양의 칩을 테이블 중앙으로 밀어 놓으며 말했다.
[30만 받고 10만 더.]
[40만 받고 10만 더.]
금테안경의 말에 청년은 기다렸다는듯이 곧바로 수북한 칩들을 테이블 중앙으로 밀어 놓았고, 금테안경은 너무나도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을 이를 악 물며 노려보았다.
[너 끝까지 그 히든카드는 확인 안 할거야?]
[하하. 버릇이 돼 놔서.]
청년은 빙긋 웃으며 담배를 피워 물었고, 금테안경은 핏발선 눈으로 자신의 카드와 느긋한 얼굴의 청년을 번갈아보며 한참을 고심했다.
[날 새겠다.]
청년이 손까지 바르르 떨며 고심을 하고있는 금테안경을 바라보며 하품을 쩌억 하곤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청년을 본 금테안경은 도저히 이길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카드를 툭 던지며 말했다.
[제기랄. 죽었다. 그래. 이제 네 잘난 카드나 보자.]
[호오~. 그래도 그렇게까지 끈질기게 버틸 만은 하군? 클로버 잭 스티플이니 말이야.]
청년은 제법이라는 얼굴로 금테안경이 던져놓은 클로버 J 부터 차례대로 한숫자씩 아래로 내려가는 다섯장의 클로버 카드를 보며 그렇게 말하곤 빙긋 웃는 얼굴로 이제 자신의 카드를 한장 한장 테이블 위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첫번째로, 스페이드 A. 사람들이 설마하는 눈초리로 온 관심을 집중시켜 청년이 내려놓는 카드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청년이 두번째로 내려놓은 카드는 스페이드 K 였다. 포커를 구경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물론 금테안경까지도 설마하는 얼굴로 숨을 죽인채 청년이 내려놓는 카드를 바라보았다. 청년이 세번째로 내려놓은 것은 스페이드 Q.
...설마....?
포커판 주위의 모든사람이 그렇게 눈빛으로 말하는듯 했다. 그리고, 청년이 네번째로 내려놓은 것은 스페이드 J. 이제 침묵에 휩싸여 있던 포커판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청년은 빙긋 웃으며 금테안경을 바라보았고 금테안경은 마치 탄식을 터트리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로얄...스트레이트 플러쉬였던 거냐...]
[글쎄.]
금테안경의 모든걸 포기하는듯한 괴로운 목소리에 청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마지막 히든카드를 뒤집었다.
[어라?]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히든카드가 공개된 그 순간. 포커판은 경악으로 휩싸였다.
[아니네?]
능청스런 얼굴의 청년. 그가 뒤집은 마지막 카드는 엉뚱하게도 하트 7 이었다.
[너...너 이새끼...!!]
너무나 기가 막힌 금테안경은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단지 푸들 푸들 떨리는 손길로 청년을 손가락질했고, 청년은 여전히 능청스런 얼굴로 자신의 카드를 이리저리 조합해 보더니 곧 카드 두장을 들어보였다.
[와~. 그래도 원페어네~.]
그러며 싱긋 웃는 청년. 금테안경은 그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이 개새끼! 죽여버리겠어!]
금테안경이 포커판을 넘어와 청년에게 덤비는 통에 테이블 위에 쌓여있던 칩들이 여기 저기로 날라갔고, 포커판 주위의 어떤 사람들은 또다시 신나는 볼거리(싸움)가 생긴것에 흥미로운 얼굴로 금테안경과 청년을 구경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주위로 날라간 칩들을 줍기에 여념이 없었다. 태현은 금테안경이 청년에게로 달려들자 그쪽에 있는 유리가 혹시라도 싸움에 다치는 일이라도 생길까봐 걱정되어 급히 포커판을 돌아 금테안경이 청년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는곳으로 달려갔다.
[이봐. 난 정정당당히 한거라구. 이렇게 된건 다 자기패에 자신을 갖지 못한 당신 잘못인거지.]
[뭐야? 이 새끼야! 넌 지난 세판동안 계속 마지막 카드로 속임수를 썼잖아! 내가 모를줄 알고? 도대체 어떻게 항상 그 마지막 카드가 네게 필요한 카드가 되냔 말이다!]
금테안경은 포커판 위에서 청년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었는데 청년은 별다른 반항도 없이 그냥 금테안경에게 멱살을 잡힌채로 한결같은 여유로 금테안경을 상대하고 있었다. 태현은 놀란 얼굴로 두 사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유리와 채지현 옆에 가서 섰다. 이러고 있으면 불시의 상황에서라도 이들을 지켜줄 수 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은데. 이번판은 그냥 하트 7 이었잖아.]
[지랄하지마! 사실 그 마지막 카드는 스페이드 10 이었지?! 근데 네놈 새끼가 나한테 일부러 물먹일려고 하트 7 로 바꾼거 아냐?!]
청년의 능청스런 말에 금테안경은 더욱 청년의 멱살을 끌어당기며 소리쳤다.
[그만하십시오!]
그런데 그때 카지노 가드들이 달려와 이러고 있는 금테안경과 청년을 제지했다. 금테안경은 자신을 붙잡는 가드들에게 왜 이러냐고 고함질렀지만, 폭력 사태를 일으킨 사람은 즉시 그 자리에서 카지노로부터 추방이기 때문에 가드들은 금테안경을 끌고 가버렸고, 청년은 피식 웃으며 구겨진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주위의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싸움이 의외로 싱겁게 끝나버리자 왠지 아쉬운 눈초리로 수선거리며 다른곳으로 흩어졌고 잠시 소란이 일어난 이쪽으로 시선이 모였던 다른곳의 사람들도 금세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어라? 유리씨 아니십니까~.]
그런데 그때, 유리를 발견한 청년이 반가운 얼굴로 태현들에게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