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아침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마치 잊어버린듯이 언제나와 똑같이 자신을 대했다. 태현은 그런 유리가 너무 고마웠고, 자신도 평소처럼 유리를 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자신이 딸을 범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태현의 가슴을 하루종일 무겁게 했다.
날도 이제 서서히 저물고, 좀있으면 다가올 분주한 저녁 프라임 타임 준비를 하고 있을때쯤. 네잎클로버엔 때이른 손님 한명이 찾아왔다.
[어서오세요~~.]
바닥 청소를 하고있던 유리의 활기찬 음성이 입구쪽에서 들려왔다. 태현은 좀있으면 유리가 주문을 받아오겠거니 생각하며 아까부터 하고있던 그릇 닦기를 계속 했다. 그런데 잠시후 유리가 약간 화난듯한 표정으로 태현에게 다가왔다.
[아빠.]
[응? 뭐 주문하신데?]
[아빠 찾아온 여자야.]
유리의 음성엔 가시가 돋쳐 있었다. 태현은 누구길래 유리가 이러나 싶어 닦던 그릇을 제자리에 놓곤 바깥쪽으로 나갔다.
[어머~. 안녕하세요-. 정말 여기 일하고 계셨네요~.]
거기엔 텔런트 채지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태현은 유리가 왜 화가났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왠지 뒤에서 유리가 쏘아보고 있는것 같아 태현은 뒤통수가 간질거렸지만 그는 그런걸 내색하지 않으며 채지현을 테이블로 안내했다.
[어서 오세요~. 하핫. 정말 찾아주셨군요.]
[그럼요~. 싸게 해주신다는데~. 그런걸 놓칠 수야 없죠. 후훗.]
태현은 뒤에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유리에게 애써 웃으며 말했다.
[유리야~. 여기 카푸치노 한잔 가지구와~.]
[어머. 전 아직 주문 안 했는데--.]
[하핫. 이건 제가 사는 겁니다.]
[정말요~? 감사해요--.]
태현은 유리의 따가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채지현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제는 잘 들어가셨어요?]
[예. 덕분에요. 다시 드리는 말씀이지만...어젠 정말 감사했어요.]
[하핫. 뭘요~. 서로 돕고 사는 세상 아닙니까~. 하핫.]
[호호..그래요. 참. 어제 제 싸인 유리양한테 주셨어요?]
[예,예? 아...예. 정말 좋아하던데요. 하하..]
태현은 지현의 물음에 순간 움찔 했지만 재빨리 거짓말을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는가. 당신 싸인 보니까 화내면서 구겨버리던데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커피 나왔습니다.]
그때 유리가 커피 한잔을 가지고 와서 지현 앞에 내려놓았다. 태현은 유리가 어떻게 이렇게 커피를 빨리 타왔는지는 몰랐지만 일단 유리의 손을 잡아끌어 자기 옆에 앉혔다.
[여기. 인사 하세요. 제 딸 유리에요.]
[어머~. 이분이 유리양이었군요~? 반가워요. 채지현이라고 해요~.]
지현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유리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신청했다. 유리는 그녀가 손을 내밀자 처음엔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활짝 미소지으며 지현과 악수하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정유리에요. 저 정말 언니 팬이었는데~~. 참! 그리구 어제 싸인 정말 감사해요~~.]
[호호. 기뻐하셨다니 저도 좋네요~. 그런데 유리양 정말 예쁘시다~? 혹시 연예계쪽으로 관심 없어요?]
[에이~. 제가 무슨 재주가 있어서 그런데 관심을 갖겠어요~?]
지현과 유리는 그러며 의기투합해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마치 오랜 친구처럼 그렇게나 즐겁게 대화할 수가 없었다. 태현은 어제 유리가 그녀의 싸인을 구겨버린것과 아까 그녀가 왔을때 그런 표정을 한것을 떠올리며, 처음엔 유리의 능청스러움에 혀를 내둘렀지만 점점 두사람이 정말로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자 곧, 유리가 아마 채지현과 얘기를 나누다 그녀가 마음에 들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튼 두 여자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고 떠들면서 얘길 나누었고 태현은 왠지 뻘쭘해져서 두 여자의 얘기에 헛웃음으로 맞장구만 쳐주었다. 그런데 그러다 두 여자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남녀의 관계쪽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언니. 언니는 애인 있어요?]
[아~니. 난 싱글이야.]
[우와. 정말요? 왠지 있을것 같은데~~.]
[호호, 아냐. 정말 없어~. 그러면. 유리는?]
[헤헤~. 얼마전까진 홀몸이신 우리 아빠 때문에 독수공방했지만~. 어제 연인이 생겼어요~.]
[어머~. 정말~? 축하해~~. 어떤 남자야?]
[음~~. 일단 무지 멋지구요~~.]
태현은 유리가 살며시 팔짱을 껴오자 속으로 흠짓 놀랐다.
[나한테 정말 상냥하구~~. 세상에서 절 제일 사랑한데요~~.]
[후훗~. 부럽네~~.]
지현은 마치 꿈을 꾸는듯이 허공을 올려다보며 연인을 떠올리는 유리가 귀엽다는듯이 미소 지었고, 유리는 생글거리며 아빠의 볼에 입을 쪽 맞춰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아빠 난 이만 하던일 마저 하러 갈께~. 언니~. 담에 또 봐요~~.]
[응~~.]
태현과 지현은 깜찍하게 손을 흔들며 저쪽으로 걸어가는 유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후훗. 딸이 예뻐서 좋으시겠어요.]
[예? 아. 하핫. 그래도 나이 좀 더 들면 다른 녀석이 데려갈텐데요 뭐.]
[에~. 혹시 유리한테 남자친구 생겼다고 벌써 질투하고 계시는거 아니에요?]
태현은 지현의 말에 속으로 움찔 했지만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그럴리가요.]
[후훗~. 아닌것 같은데~~. 참...그런데..아내분은...? 유리가 홀몸이시라는데...]
[아. 아내는 8년전에 죽었습니다. 녀석이 그때 많이 울었죠.]
[아...죄송해요. 제가 묻지 말아야 할것을...]
[하핫. 아닙니다. 괜찮아요.]
[네...그런데 많이 힘드시겠어요. 혼자서 딸 키우시는거...]
[하하. 뭐. 유리가 잘커주니까 걱정은 안 됩니다.]
태현은 빙긋 웃으며 지현에게 대답해주며 슬슬 손님이 올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어제의 인연을 별로 유지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오늘 그녀가 찾아왔길래 시간을 내준것 뿐이다.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죄송한데...다음 촬영을 가야되거든요..?]
그때, 때마침 채지현이 시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현은 빙긋 웃으며 자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지현의 배웅을 나가주었다.
[하하. 그러세요.]
[네..죄송해요. 그리고 오늘 커피, 감사해요~. 다음엔 제가 살께요-.]
[하핫. 네. 그럼 살펴 가시길..]
[네~~. 참. 유리한테도 오늘 즐거웠다고 전해주세요~.]
[예-.]
채지현은 마지막으로 태현에게 화사한 미소를 보여주며 레스토랑을 나갔고, 태현은 한숨을 휴우-. 내쉬며 다시 손님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본의 아니게 시간을 많이 뺏겨버렸다. 그리고..태현이 다시 그릇 닦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그는 잔뜩 약이 오른 표정의 유리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유리는 태현 앞으로 다가와 성난 음성으로 말했다.
[어제도 그렇게 웃으면서 저 여자랑 얘기 나눴어?]
태현은 조금전까지만 해도 채지현과 즐겁게 얘길 나누던 유리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자 당황해버렸다. 언니 언니거리며 마치 친자매처럼 대화를 나눌땐 언제고 이젠 저 여자라니...
[으,응? 아니. 그런게 아니고...]
[그럼 뭐야. 오늘은 저 여자랑 얘기 나눌때 왜 그렇게 싱글벙글인건데?]
[하,하지만..너도 지현씨랑 즐겁게 얘길 나눴잖아..]
태현의 말에 유리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뭐어? 지현씨?? 저 여자가 언제부터 지현씨가 된거야?!]
유리의 말에 태현은 황당함을 느꼈다. 아니. 지현씨를 지현씨라고 부르는거지 그럼 뭐라고 불러? ~씨라고 부르는건 특별한 사이가 아닌 제 3자를 지칭할때 쓰는 일반적인 표현이지 않는가? 태현은 왠지 억울한 심정이 되어 말했다.
[지현씨가 뭐 어때서...]
[뭐...뭐라고??]
하지만 태현의 이번말도 유리에게는 곡해되어 들리고 말았다. 태현은 단순히 지현씨라는 지칭이 뭐가 어때서..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지만 유리는 그 말을 지현씨라는 여자가 어때서(예쁘기만 하구만..)...라는 정도의 의미로 들어버리고 만것이다. 태현은 눈꼬리를 파르르 떨며 화가나 어쩔줄 몰라하는 유리를 보며 도대체 유리가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유리..야...?]
[그래! 채지현! 이쁘지! 연기 잘하지! 몸매 좋지! 스타일 좋지! 돈 많이 벌지! 인기 많지! 나같은거 하곤 비교가 안 될꺼야!!]
태현은 유리가 바락 바락 고함을 지르자 일단 현석이 빠트린 음식 재료를 사러나간 사실에 다행스러워했다. 그리고, 태현은 유리가 지금 뭔가 자신의 말을 오해했음을 깨달았고 재빨리 유리 옆으로 가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어진건 당연히 유리가 화가 났을때 하는 똑같은 레파토리..
[이 손치워! 나 만지지 마!!]
하지만 태현은 그런 유리를 더욱 꼬옥 감싸 안으며 말했다.
[유리야. 유리야. 진정하고 아빠말 들어봐. 아빤 그 여자한테 아무런 감정 없어. 정말이야. 사실 어제 그 여자가 불량배들한테 나쁜짓을 당할뻔해서 내가 구해준것 뿐이야. 그리고 오늘은 그냥 그 여자가 찾아와서 시간 내준것 뿐이고. 정말이야. 아빠는 유리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걸...?]
[...정말...?]
유리는 아빠가 채지현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말때문인지, 채지현을 지현씨가 아닌 그 여자라고 지칭해서 그런건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말때문인지. 아무튼 화가 풀린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정말 날 제일 사랑해...?]
...그런 말은 안 했는데...? 하지만 태현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빤 이 세상에서 유리를 제일 사랑해.]
아빠의 말에 유리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가에 미소를 달며 아빠의 목을 감쌌다.
[헤헤--. 정말...? 여자로서도?]
만약. 여기서 <아니. 딸로서.>라고 대답한다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하지만 태현은 그런 모험은 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여자로서도 제일 사랑하는 여자는 유리이니까. 태현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자로서도.]
[정말~? 헤헤~~.]
아빠의 말에 유리는 기분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태현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리곤 아빠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두 아빠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아빠로서도...남자로서도...]
[응...고마워...]
태현은 유리를 감싸안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그때 문득 유리에게 듣지 못한 대답이 생각났다.
[참. 그런데 너 지현...아니. 그 여자랑 얘기할때 정말 즐거워 했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화를 낸거야..?]
아빠의 물음에 유리는 포옹을 풀곤 생글거리는 미소로 아빠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부러 적을 만들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좋아했던 연예인이고. 그래서 그냥 재미있는척 했을 뿐이야. 평소에 그렇게 유명 연예인이랑 얘기 해보는게 소원이었거든~. 헤헤. 음...그리고 화를 낸건. 역시 아빠를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으니까~~.]
태현은 유리의 말에 그녀가 왠지 무섭게 느껴졌다. (이젠)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데 단지 평소에 그런 부류의 사람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는 이유 하나로 그렇게나 즐겁게 얘길 나눌 수 있다니.
<어쩌면 유리는 연기에 엄청난 소질이 있는것일지도...>
...라기 보단. 역시 유리가 아무리 자신의 딸이라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아이라고 태현은 생각했다.
[그럼 난 하던일 마저 하러 갈게~~.]
태현은 자신에게 뽀뽀를 쪽 날리며 활기찬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유리를 보며, 확실히 유리가 연예계 쪽으로 나가면 성공할거라 생각했다. 일단 뛰어난 연기력. 거기다 저렇게 예쁜 외모라니...
<아무리 내 딸이라지만 너무 예쁘단 말이야...>
태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유리를 바라보고 있다가 곧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내가 무슨 엉뚱한 생각을..? 유리는 연예계쪽으론 관심도 없다고 했는데...]
태현은 다시 손님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그날 밤. 태현은 샤워후의 개운함을 느끼며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쇼프로그램을 재방송하고 있었는데 그다지 재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시간 죽이기로는 볼만했다. 태현이 그러고 있는데 샤워를 끝마친 유리가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닦으며 아빠에게로 걸어왔다.
[아빠~. 뭐보구 있어?]
태현은 긴 타올 한장만으로 몸을 감싼채 걸어오는 유리의 모습에 순간 흠짓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척하며 말했다.
[응. 그냥 쇼프로야.]
[재미있어?]
[그냥 볼만해.]
태현은 유리가 바로 옆까지 다가오자 유리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자리를 옆으로 당겨 앉았다. 하지만 왠걸. 유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태현의 무릎위에 걸터 앉아버렸다.
[저, 유..유리야?]
태현은 지금 트렁크 팬티에 런닝셔츠 차림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맨살은 바로 맞부대끼게 되었고, 태현은 생생하게 느껴져오는 유리의 맨살의 감촉과 그녀의 아찔할만큼 깨끗하고 하얀 피부를 보며 당황한 음성으로 유리를 불렀다. 하지만 유리는 아빠의 이런 당황한 음성과는 상반된 모습으로 밝고 순진한 웃음을 지으며 아빠의 부름에 대꾸했다.
[응? 왜에?]
[아...아니야.]
유리의 표정이 너무 맑았기 때문일까. 태현은 자신의 이 어색한 느낌이 왠지 부끄러워졌고, 그 자신도 모르게 그냥 딸의 되물음에 얼버무림으로 응답했다. 아빠가 이렇게 나오자 유리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곧 개의치 않는 얼굴로 아빠의 목을 감싸안고는 TV를 보기 시작했다.
[우와. 그 여자 나온다.]
태현이 TV를 보니 유리의 말대로 과연 채지현이 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코너가 다음 순서로 바뀐듯 했다. 태현은 자신의 목에 팔을 두른채 열심히 TV를 보고 있는 유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유리는 뭔가 TV에서 웃긴 장면이 나오는지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 그렇게 웃다가도 어느새 TV의 내용에 집중을 했다. 유리를 바라보던 태현은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역시...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저렇게 해맑은 미소를 짓는 소녀가 자신의 딸이란 사실이 태현의 가슴을 새삼스레 뿌듯하게 했다. 태현은 천천히 손을 가져가 유리의 물기에 젖어있는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긴 생머리의 촉감이 너무나 보드라웠다. 머리카락을 만져주자 유리가 입가에 예쁜 미소를 지으며 더욱 꼬옥 몸을 붙여왔다. 너무...사랑스럽다. 태현은 불현듯 꼬옥 끌어안으면 한품에 쏙 들어오는 그 기분좋은 느낌이 그리워져 자신도 모르게 유리를 가슴 깊숙이 끌어안고 말았다.
한편, 유리는 TV는 보고 있었지만 자꾸 아빠가 신경쓰였다. 마침 TV에 자신이 좋아하는 토크쇼가 나와서 재미있게 보려고 했지만...그래도 마음이 자꾸 아빠쪽에 가려하는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그렇게 TV에 한번 아빠에 한번 마음의 시선을 돌리고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자신을 끌어안아왔다. 유리는 깜짝 놀라버렸다. 이렇게 아빠가 먼저 안아준건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기쁨의 물결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유리의 모든 신경은 아빠에게로 집중되었다. 아빠의 따스한 품안 구석 구석. 그 따뜻함의 단 한조각도 놓치지 않으려는 유리의 마음은 점차 그녀의 온몸을 녹여버렸고, 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아빠의 머리를 꼭 감싸안아버렸다.
[아빠...]
[응...?]
[키스해줘...]
태현은 얼굴을 점차 홍조를 물들이는 딸을 보며 빙그레 웃음지었다. 유리는 뜨거운 눈길로 그런 아빠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술을 옮겨 아빠에게로 가져갔다. 태현은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다가온 그녀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부드럽게 맞아주었다. 유리는 따뜻하고 말랑 말랑한 아빠의 입술을 느끼자 곧바로 그 부드러운 감촉에 빠져들어 버렸고, 조금이라도 더 깊게 그 입술의 달콤함을 느끼려 아빠와 마주보게끔 자세를 천천히 바꾸었다. 그런데 그러는 와중에 그만 유리의 몸을 가리고 있던 수건이 벗겨져 내려 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눈을 감고있던 태현은 그것을 보지 못했고, 두 사람의 키스는 한층 더 그 감미로움을 더해갔다.
태현은 더 깊고, 더 진하게 입술을 부대껴오는 유리가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딸에게 연인이 되어주기로 약속했는데 여기서 키스를 멈춘다면 유리가 또 삐질것 같아서 조심 조심 키스의 수위를 조절하며 유리에게 키스를 해주었다. 사실 이러고 있으면 태현도 야릇한 기분이 드는걸 어쩔 수 없었지만 매순간마다 지금 상대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태현을 자제시켜주고 있었다.
...흐응...음...쪼...옥...쪼오옥....흐으응...
그런데 그렇게 얼마동안 키스를 하고 있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태현의 귀에 유리의 비음섞인 신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유리가 완전히 황홀경에 빠져버린듯 했다. 태현은 여기서 더이상 하다간 큰일나겠다 싶어서 입술을 떼어낼 요량으로 유리의 등을 쓸어주며 고개를 뒤로 빼려했다. 그런데...유리의 매끈한 등이 다른 아무런 여과도 없이 그대로 만져지는게 아닌가? 태현은 깜짝 놀라버렸다. 언제 타올이 벗겨진거지..? 하지만 태현은 다음순간 더욱 놀라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입술 안으로 부드러럽고 촉촉한 뭔가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태현은 기겁을 하며 고개를 급히 뒤로 물렸다.
[유,유리야-!]
태현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유리를 바라보았고 유리는 그런 아빠를 애타는 시선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아빠...이제 우리 연인사이잖아...그러니까...]
태현은 유리의 말에 갈등에 휩싸였다. 애초에 유리에게 연인사이가 되어준다고 약속했을때부터 이정도를 예상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막상 이렇게 프렌치 키스를 하자니 망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유리는 아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태현은 유리가 다시 입술을 붙여오자 순간 움찔 놀랐지만 결국엔 어쩔 수 없이 입술을 열어주고 말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이 촉촉한 유리의 혀가 태현의 입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고, 그 혀는 태현의 입안에서 애타게 자신의 짝을 찾아 헤매었다. 태현은 잠시동안 유리에게 자신의 혀를 내어주지 않다가 너무나 애탄 유리의 혀놀림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결국 유리에게 혀를 내어주고 말았다. 곧바로 휘감켜 오는 유리의 촉촉한 혀...
[흐응...하아...음....흐응...]
유리는 아빠의 혀를 정신없이 자신의 혀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토록이나 염원했던 아빠와의 딥키스... 그 첫느낌은 자신이 상상했던 그 이상의 부드러움과, 황홀감이었다. 게다가 처음엔 단지 혀만 내어주던 아빠도 점차 혀를 움직여주기 시작했고, 유리는 그 너무나 감미로운 느낌에 정신이 아찔해오는것을 느꼈다. 그리고 유리를 더욱 행복하게 해준건, 아빠의 혀놀림에서 아빠의 사랑이 느껴져 왔다는 사실이다. 거칠지 않고 상냥하고 부드러운 그 움직임에서는 자신을 향한 배려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유리는 더욱 더 아빠와의 키스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츄우우....쪼옥...쪼오옥...츄우웁...쪼..오옥...
농밀한 키스 소리가 거실 안을 가득히 울리고, 유리는 그렇게 한참동안 아빠와의 키스를 즐기다 입술을 떼어냈다. 태현은 몽롱한 눈빛의 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초점이 사라져 있었다. 태현은 이제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지 앞이 막막해 옴을 느꼈다. 그리고 유리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그녀의 첫 어른의 키스의 기억을 좋게 만들어주려 태현이 고심하고 있을때, 갑자기 유리가 태현의 목을 핥아오기 시작했다. 태현은 깜짝 놀라버렸다. 하지만 태현이 놀란것과는 관계없이 유리의 애무는 계속 되었다. 중독되었다는 표현이 맞을까? 유리는 마치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그런것 처럼 온몸에 힘을 축 뺀채 아빠에게 몸을 내맡기고 그를 핥는데 정신이 없었다. 마치 아빠에게 중독된 것처럼... 태현은 너무나 의외의 이런 유리의 행동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며 답답한 심정으로 유리의 등만 어루만져줄 뿐이었고, 유리는 이제 점차 혀를 윗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유...유리야...?]
아빠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왔지만 그 목소리는 자신을 일깨우기 보다는 더욱 아빠에게 빠져들게만 만들뿐이다. 유리는 아빠의 얼굴을 감싸 잡고는 핥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빠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이렇게 핥아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던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유리는 마치 찜을 해놓는듯이 아빠의 온 얼굴을 핥으며 마음대로 애무를 했고, 곧 태현의 얼굴은 유리의 침으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한편, 태현은 이제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다. 자신의 눈에 입술을 붙이고 마치 구슬을 굴리듯이 혀로 애무해온다거나(물론 그때 눈은 감고있었다.) 볼을 깨물기도 하고, 귓뿌리를 쪽쪽 빨아당기는데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태현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한창 아빠의 얼굴을 먹어버릴듯이 침범벅으로 만들던 유리가 천천히 입술을 아빠에게서 때어내더니, 못참겠다는 어조로 아빠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가지고 싶어...가지고 싶어 미칠것 같애...]
유리의 중얼거림은 태현도 들었다. 그는 딸의 말에 오한이 스미는것을 느꼈다. 엄청난 집착감이 느껴져 오는 목소리... 한편, 유리의 중얼거림은 계속 되었다.
[...하아...가지고 싶어...가지고 싶어...내껄로 만들고 싶어...내 소유로 만들고 싶어...]
태현은 거칠은 숨결이 자신에게로 토해지는것을 느끼며 눈위에 묻어있던 유리의 침을 훔쳐내고는 유리를 바라보았다. 유리는 지금 자신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는듯이 오싹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태현은 유리의 너무나도 강렬한 집착어린 눈빛에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것을 느꼈다. 그런 태현에게 계속된 유리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미치겠어...가지고 싶어 미치겠어...하아...너무 가지고 싶어...]
아빠에 대한 너무나도 강렬한 사랑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집착으로 변해버린것일까. 유리는 마치 가질 수 없는 장난감을 바라보는 어린아이같이 안달이 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경계심이 무너져 버렸다. 아빠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리기 전까지만 해도 유리는 항상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해 왔었다. 하지만 어제 아빠와 연인이 되기로 한것이 유리의 그런 통제력을 앗아가 버린것이다.
[유리야. 아빠 봐.]
한편 태현은 더이상 유리를 가만히 놔뒀다가는 여기서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유리의 얼굴을 감싸 잡고는 자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게 했다.
[유리야. 아빠 봐. 착하지? 자. 어서 아빠 봐.]
태현은 초점없이 몽롱한 유리의 눈동자를 계속해서 주시하며 유리가 잃어버린 이성을 찾도록 하기위해 애썼다. 하지만 유리는 아빠의 얼굴을 계속 만지작 거리며 가지고 싶다는 말만 되뇌일 뿐이었다. 태현은 유리가 자신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그리고 이렇게나 아빠를 사랑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힘들어 했을지가 새삼스레 생각나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유리를 가슴 깊이 끌어안았다. 그런데 태현의 이런 행동이 의외로 유리의 정신을 돌아오게 만들었다. 언제나 따뜻하고 편안한 아빠의 품안을 느끼자 유리가 그 행복감에 이성을 찾은것이다. 유리는 겁먹은 얼굴로 아빠의 품에서 벗어나며 수건을 들어올려 아빠의 얼굴 전체에 묻어있는 자신의 침을 급히 닦았다.
[아..아빠...미안해..]
[유리야. 괜찮아?]
태현은 유리가 정신이 돌아온것에 다행스러워하며 자신의 얼굴을 닦는 유리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쥐며 물었고 유리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빠 미안..너무 미안해..내가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나봐..미안...]
유리는 행여나 아빠가 화를 낼까 겁먹은 얼굴로 울먹이며 말했고 태현은 빙그레 웃으며 다시 순진하고 착한 딸로 돌아온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아빠 화 안낼꺼지...? 나 안 미워 할꺼지...?]
하지만 유리는 아빠의 말에도 여전히 겁을 먹은 얼굴이었고 태현은 그런 딸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응. 아빠 화 안내고 유리 안 미워할께. 걱정마..]
유리는 아빠의 말에 그제야 어느정도 진정이 되는지 아빠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빠 나 다시는 이런짓 안 할께...그러니까 나 절대로 버리지마...? 나 아빠 없이는 못산단 말이야...그러니까 절대로...절대로 나 버리면 안 돼...?]
[유리야...아빠가 유리를 왜 버려...? 절대로 안 버려.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마..]
태현은 유리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고 유리는 아빠의 말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더욱 꼬옥 아빠를 끌어안았다.
태현은 아내의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아내는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로 자신을 바라봐 주었고, 자신은 그 아내를 온갖 정성을 다해 사랑해 주었다. 이렇게 아내의 꿈을, 그것도 아내와 사랑을 나누는 꿈을 꾼것은 몇년만인것 같았다. 태현은 너무나도 생생했던 그 꿈을 떠올리며 조금더 꿈속의 시간을 지속시키고 싶었지만 얄미운 햇살은 눈앞을 빨갛게 만들며 태현을 수마에서 건져 올려버렸다. 태현은 천천히 눈을 떳다. 아직도 아내의 그 부드러운 살결의 감촉이 손에서 느껴지는것 같았다.
[아앙...]
너무나 꿈이 생생했던 탓일까, 태현은 아내의 귀여운 신음소리까지 귓가에서 아른거리는걸 느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긴...여자를 안아본지도 벌써 8년이나 되었으니 여체가 그리울만도 하다. 옛날에 죽은 아내까지 끄집어 내어 섹스하는 꿈을 꾸다니.
[...흐으응...]
아직까지 아내의 신음소리가 들려오는걸까. 벌써 잠은 깨었는데...
<...잠깐.>
태현은 문득 정신을 차리며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로 있나를 확인했다.
[......!!!]
[...흐응...아빠...]
아직 자신이 잠에서 깨어난걸 모르는걸까. 유리가 귀엽게 콧소리를 내며 자신의 손을 꼬옥 붙잡고 있었다. 태현은 너무나 놀라서 정신이 확 드는걸 느꼈다. 지금 자신은 저편으로 돌아누운 유리를 뒤에 꼭 붙어 끌어안은채 그녀의 가슴과 보지를 어루만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제길...어쩐지...>
...손의 감촉이 너무 생생하다 했다. 태현은 언제부터 유리의 머릿결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는진 몰라도 아무튼 코를 휘감아 도는 향긋한 샴푸내음을 맡으며 다시 꿈의 내용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걸 느꼈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꿈을 꾼것도 어쩌면 이렇게 유리의 샴푸냄새를 맡게 되어서 일지도 몰랐다. 하긴 유리는 샴푸부터 향수에 비누까지 엄마와 똑같은걸 ㎱릿歐? 태현은 한손에는 보드라운 유리의 가슴과 다른 한손에는 촉촉히 젖어있는 유리의 분홍빛 속살의 촉감 때문에 이렇게 누워있는것이 너무나 불편해 옴을 느꼈다. 비록 그 느낌이 마치 손이 녹아버릴듯한 부드러운 감촉이었으나 그것이 유리의 몸이라고 생각하니 굉장히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아앙...기분...좋아...]
유리는 아빠의 손을 꼬옥 붙잡은채 조심스럽게 자신의 가슴과 보지에 아빠의 손을 밀착시키고 있었다. 태현은 여기서 자신이 깨어난것을 유리가 알게된다면 유리가 너무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 어쩔까 하다가 곧 아직 잠든채 하며 옆으로 돌아누워 있던 몸을 똑바로 눕혔다.
[으음...]
아빠가 잠결에 똑바로 누워버리자 유리는 어쩔 수 없이 아빠의 손을 놓아줘 버리고 말았고, 아빠는 그러자 반대편으로 돌아누워 버렸다. 유리는 왠지 아빠가 자신을 거부하는것 같아서 입술을 깨물며 잠시 아빠의 넓찍한 등을 노려보다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침대에서 내려와 아빠가 돌아누운 쪽으로 가서 아빠와 마주보고 누웠다. 비록 공간이 좀 좁았지만 그래도 옆으로 돌아누우니 그런데로 누워있을만 했다. 유리는 조심스럽게 아빠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는 다시 아빠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가슴위에 올려놓았다. 아까전엔 잠에서 깨어나 보니 아빠가 가슴과 그곳을 만지고 있어서 그냥 그대로 그 느낌을 즐겼지만 지금은 자신이 직접 아빠의 손을 자신의 그곳으로 가져가자니 좀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냥 아빠의 손을 가슴에만 이끌어 온것이지만, 유리는 이렇게 아빠의 손이 자신의 가슴에만 닿는것으로도 너무나 흥분이 되는걸 느꼈다.
[흐응...앙...]
태현은 유리가 반대편으로까지 돌아와서 계속 이렇게 하자 내심 놀랐지만 그래도 유리가 자신의 손을 그녀의 보지로 가져가지 않는건 다행스러웠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가슴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불편한건 마찬가지. 태현은 그냥 눈을 떠버릴까 아니면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누울까 망설이며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는 와중에 점점 유리의 가슴의 촉감에 자신이 빠져들고 있다는것을 알지 못했다. 유리의 가슴은 한손에 꼬옥 들어오는 크기였는데, 풍만하단 느낌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크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유리가 두손으로 자신의 손을 감싸쥐고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는 덕분에 고스란히 그 감촉이 느껴져 왔는데, 유리의 가슴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꼭 쥐면 눈처럼 녹아버릴듯하게 부드러웠는데, 반대로 그와 동시에 탱탱한 탄력도 느껴져 왔다.
[...아빠...]
그때 태현의 귀에 유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현은 설마 유리가 자신이 깨어난것을 알아챘는가 싶어 깜짝 놀라버렸다. 그리고 한편으론 딸의 가슴의 감촉에 빠져있던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지금...아빠가 깨어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깨어서...내 가슴을 만져준다면...날 만져준다면...]
다행히도 유리는 아직 자신이 깨어난것을 모르는듯 했다. 태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한편 다시 들려오는 유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를 만져준 것처럼...엄마를 사랑해준 것처럼...나도...사랑해주면...나도 여자로서 사랑해주면...얼마나 좋을까...?]
[......]
[...난 아빠한테라면 뭐든지 줄 수 있는데...내 모든것을 줄 수 있는데...아빠가 바라기만 한다면...]
태현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유리의 손에 힘이 점점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유리의 손에 힘이 들어간 것만큼 유리의 목소리는 약간 격앙되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왜...바라지 않는거야...? 왜 날 바라지 않는거야...?]
[......]
[...똑같잖아...똑같이 했잖아...샴푸도 엄마랑 똑같은거 쓰고...비누도 엄마랑 똑같은거 쓰고...엄마처럼 머리도 길게 길렀고...]
[......!]
[...똑같이 했는데...엄마랑 다 똑같이 했는데 왜 나는 엄마처럼 사랑해주지 않는거야...? 왜 엄마를 원했던 것처럼 날 원해주지 않는거야...?]
태현은 유리의 목소리에 너무나 큰 슬픔이 묻어있는 것을 느꼈다. 일부러 그랬던 것이라니... 일부러 엄마와 똑같이 했던 것이라니... 태현은 그런 것도 몰라준 자신이 유리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리고...그런 것을 알고난 이후에도 유리를 아내와 같이 사랑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그리고 변할 수 없는 사실이..현실이 자신과 유리 사이에 놓여있지 않은가. ...유리의 목소리가 다시 태현의 귓가에 들려왔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불행한 사실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태현은 가만히 유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아빠 딸이란 거야.]
[......]
유리의 자그만한 목소리는, 너무나도 커다란 원망과 서러움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그 말이 태현의 가슴을 ?어지게 했다. ...왜 하필 나란 말이냐...왜 하필 아빠를 사랑하느냔 말이다 유리야... 태현은 너무나 가슴이 아파왔다. 그때 유리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
[...나는 죽을때까지 아빠만 사랑할테니까.]
태현은 뜨거운 키스를 해오는 유리의 입술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키스를 해오는 유리에게 자신도 키스를 해줄 수 없는 상황이 마치 그녀에게 그녀가 원하는 사랑을 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대변해주는것 같아 너무 가슴아팠다. 그래서...지금은 단지 가만히 유리의 키스를 받아주는 것. 그리고, 사랑을 줄 수는 없지만.. 사랑을 받아줄 수는 있다. 아니, 받아주어야만 했다. 그것이 아빠로서 유리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니까...
어두운 지하실. 그곳은 마치 지하 벙커라도 되는마냥 길목 중간 중간이 철문으로 막혀 있었고, 그 문을 보초들이 교대로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철통같이 지켜지는 지하실의 가장 핵심부에는 지금 열대여섯명의 사나이가 원탁에 둘러 앉은채 착찹한 얼굴로 뭔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흐음...역시 협상으로는 해결못하는 것인가...?]
[당연하잖소. 삼합회 녀석들이랑 야쿠자 쪽바리놈들이 작당을 하고 덤벼드는건데 그놈들이 어찌 협상을 받아들이겠소?]
날카로운 인상의 30대 남자의 말에 마치 반발이라도 하듯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있던 작은 체구의 날렵한 인상의 사내가 덩치의 말에 동조했다.
[니기미. 그러니깐 형필이 너 이새끼 니가 태현 형님이 정해주신 네놈 구역에 짱박혀 있지않고 다른 놈들 구역을 존나게 쳐삼키니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좆도 못쓰는거 아냐?]
[어허. 길수 자네 왜이러나. 오늘 우리가 모인건 서로 싸움을 하려는게 아니라,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삼합회와 야쿠자를 막아보자는 취지에서가 아닌가.]
길수라 불린 날렵한 인상의 사내의 성난 음성에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너그러운 인상의 중년인이 조용히 그를 타일렀다. 그러자 길수가 언짢은 표정으로 그 중년인에게 말했다.
[윤수 형님은 화도 안 나쇼? 그래도 형님은 명색이 우리 형님의 의형 아니요?]
길수의 말에 윤수 형님이라 불리운 중년인은 헛기침을 험험 하며 길수를 외면했고 길수는 그런 중년인을 인상을 쓰며 바라보다가 곧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빨리 어서들 의견 좀 내보쇼.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만 죽이고 있을거요?]
하지만 길수의 말에도 사람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 무거운 침묵을 깨며 중년인 옆에 앉아있던 20대 중반정도의 매우 젊어보이는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저어...괜찮으시다면 제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넌 누구야? 신분부터 밝혀.]
길수의 말에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좌중에 꾸벅 꾸벅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더니 당당한 어조로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 라이더 연합 Driver's High의 장을 맡고있는 윤진태라고 합니다.]
[뭐? 라이더? 그럼 폭주족이란 말 아냐? 아니, 너같은 폭주족 새끼가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길수는 기가 차다는 음성으로 말했고, 모여있던 다른 사람들도 역시 술렁거리며 윤진태라 자기소개를 한 사내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방금전 길수와 신경전을 벌이던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말했다.
[내가 부른겁니다.]
그의 말에 일순간 좌중이 조용해 졌다. 역시 현재 전국 최고의 세력을 자랑하는 조직의 두목답게 그의 말에는 엄청난 힘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길수는 이런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어투로 그에게 말했다.
[왜 폭주족 같은걸 이런데 부르고 지랄이야?]
[그가 참석할 자격이 없다면 너도 이자리에 있지 못할것인데.]
[뭐야 이새끼야?!]
길수가 벌떡 일어나며 성난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길수의 옆에 앉아있던 덩치가 그를 잡아서 도로 앉히며 말했다.
[길수야. 일단 저녀석이 하는 말부터 들어보자.]
[쳇...]
친구의 조용한 타이름 때문일까 아니면 불편한 표정의 다른 사람들 때문일까. 아무튼 길수는 분을 삭히며 시선을 진태에게로 돌렸다. 진태는 좌중이 다시 조용해지며 자신을 바라보자 좀 부담이 되는지 헛기침을 몇번하고는 입을 열었다.
[에..제가 한가지 말씀드리고자 하는건 다름이 아니라. 은퇴하신 정태현 형님께 도움을 청하면 어떻는가 하는것입니다. 듣기로는 태현 형님께서 은퇴하신 후에 그분께 충성을 바치던 거물급 주먹들 태반이 이 세계에서 손을 씻었다고 들었거든요. 만약 태현 형님이 발벗고 나서 주신다면 그때 떠나갔던 사람들의 도움까지 이끌어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진태의 말에 일순간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길수와 그의 친구 덩치, 우철도 상당히 놀란 얼굴로 진태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것은 진태를 여기로 불러온 형필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누군가가 말도 안된다는듯한 어조로 말했다.
[정태현은 이미 40을 바라보고 있을 나인데, 그럼 한창때 실력도 이미 다 사라져버렸을것 아닌가? 그런 사람을 데려와서 n에 쓰려구? 그런자가 돌아온다고 해봐야 예전같은 충성을 이끌어 낼 수 있을것 같은가?]
[하하. 아닙니다.]
진태는 자신에게 말한 남자를 빙긋 웃는 얼굴로 바라보며 대꾸했다.
[얼마전에 우리 애들이 잘못을 해서 태현 형님께 꾸짖음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 서른 한명이 태현 형님 한분을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허허. 말을 해도 좀 신빙성 있게 말을 해야지. 사람 하나가 어찌 서른 한명을 당해낸단 말인가?]
진태의 말에 먼저 말을 꺼냈던 남자는 어이없다는듯이 대꾸했고, 몇몇 사람이 그에 맞장구치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런자들은 거의 모두가 지방에서 올라온 건달들 뿐이었다.
[아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그런데 그때 이런 그들의 웃음을 끊으며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그는 웃고있던 자들의 얼굴을 돌아보며 계속 말했다.
[자네들은 지방에서 올라와서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정태현 그자는 단신으로 흑살파를 몰살시킨 사람이야.]
[뭐라구? 정태현이 군림하던 시절에도 유일하게 그의 세력에 맞섰던 흑살파인데. 그걸 그 혼자서 박살냈단 말이야? 허허. 자네는 저 젊은 친구보다 뻥이 더 심하군.]
쾅-!
그때, 갑자기 우철이 원탁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모두는 그가 내려친 자리의 나무에 금이 쩍 가있는것을 보며 놀란 눈으로 우철을 바라보았고, 우철은 방금전에 어이없다는듯이 말한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더이상 우리 형님을 깍아내리는 말을 하지마라. 내 인내심에도 한계라는 것이 있다.]
살기가 묻어있는 우철의 말에 남자는 헛기침을 하며 눈을 내려깔았다.
[흐,흠. 미..미안허네.]
남자의 사과에 우철은 다시 의자에 앉았고, 길수가 그런 우철에게 잘했다는듯이 그의 목을 잡고 몇번 주물러 주었다. 아무튼 그들이 그러는동안, 소외된채로 뻘쭘하게 서있던 진태가 좌중이 조용해지자 다시 입을 열었다.
[에...그러니까. 흠. 흠. 아무튼 제말은 그런겁니다. 태현 형님께 도움을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진태는 다시 자리에 앉았고 주위가 다시 조용해지자 형필이 입을 열었다.
[전국에서 올라오신 건달 여러분. 일단 새로운 의견이 하나 나왔습니다. 제 생각에도 태현 형님이 도와주신다면, 단지 태현 형님의 이름 석자만 듣고도 전국의 유명 싸움꾼부터 새파란 양아치들까지 발벗고 나서서 조국을 지키는데 힘을 보탤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난 찬성이요.]
[나도 찬성이요.]
[우리 광주도 찬성인지라.]
[태현 형님만 나서 준다면 우리 목포야 당연하고롬 찬성이고 말고야.]
형필의 말에 금세 원탁에 둘러앉은 모든이가 찬성이라고 맞장구 쳤고, 형필은 만족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우철과 길수를 돌아보았다.
[모두가 찬성해주어서 다행이군. 어떤가. 내생각엔 자네들이 태현 형님께 도움을 요청하러 가는것이 제일 좋을듯 한데.]
[...난 반대요.]
형필의 얼굴이 굳어졌다. 우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형필에게 말했다.
[형님은 이쪽 세상과 연을 끊으신지 벌써 8년이 다되어 가오. 듣기로는 현재 굉장히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사시고 계신다고 했소. 그런 형님인데 동생된 내가 어찌 그분을 이런 피비린내 나는 곳으로 다시 끌어들일 수 있겠소?]
우철의 말에 형필은 시선을 돌려 길수에게 너는 어떻냐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길수는 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말했다.
[제엔장. 따지고 보면 형필이 니놈 새끼가 다 자초한일 아냐? 태현 형님이 정해준 구역에서 먹고 살다가 유사시에는 형님 말씀대로 구역 단위별로 연합해서 대비하면 되는건데 니놈 새끼가 여기 저기를 마구 쳐먹어 데니까 세력 균형도 안 맞아지고 빨리 빨리 대처도 못하게 되니까 이 지경이 된거잖아. 그런데. 니놈 새끼가 이 지경을 만들어 놓고는 이제와서 형님에게 도움을 청하자고? 제기랄 놈의 새끼. 염치가 있어라 새끼야.]
길수는 금방이라도 싸울 태세로 눈에서 살기를 뿜어내며 형필을 노려보았고, 우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은 이들의 갈등에 눈치를 보며 숨죽이고 있었다. 그때, 차분한 눈빛으로 길수의 살기어린 눈을 마주보고 있던 형필이 천천히 일어나더니 좌중을 둘러보며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강남 연합의 유길수 말에 동감하며, 제 책임을 통감합니다. 이 모든 일이 제 책임이라는걸 인정하겠습니다.]
형필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말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전국 최대 조직의 보스인 형필의 사과에 모두는 불편한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고, 형필의 허리가 펴지지 않는만큼 모두의 불편한 얼굴은 더욱더 무거워졌다. 그때 윤수가 입을 열었다.
[흐흠. 흠. 허허헛. 이보게 형필 아우님. 그것이 어찌 다 자네 탓이라 하겠는가. 여기에 모인 모두의 탓이지. 허허헛. 그러니 그렇게 있지말고 어서 자리에 앉게.]
윤수의 말에 다른 이들은 기다렸다는듯이 윤수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형필은 그제서야 허리를 펴며 자리에 앉았고, 그는 길수를 보며 말했다.
[이럴때 일수록 서로 싸우기 보다는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자네도 더이상 노여워 하지 말게.]
길수는 설마 그 콧대높던 형필이 허리를 숙일줄은 몰랐기에 어쩔 수 없이 다만 언짢은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 물고는 형필을 외면해버렸다.
[그리고 우철이. 형님을 존경하는 자네의 마음은 내 잘 알지만. 그래도 시국이 시국 아닌가. 그러니 자네가 힘좀 써주게.]
형필은 곱게 타이르는 어조로 우철에게 말했고 우철은 난감한 얼굴이 되어 담배를 두개나 입에 피워 물었다. 형필은 우철이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모습을 참을성 있게 지켜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꽁초가 되어버린 담배를 재털이에 구겨 넣은 우철은 한숨을 푸욱 내쉬며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우철의 말에 모두는 마치 벌써 모든게 해결된마냥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아직 당사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도 않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