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방으로 돌아온 유리는 문을 닫자마자 그대로 주저 앉았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마지막에 아빠와 뽀뽀를 할때에도 자신의 보지는 음액을 왈칵 토해내었다.
얼마나 흥분했으면... 유리는 이런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아빠를 유혹하려고 이렇게 입고 나간것인데 정작 자신이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빠의 포옹에...아빠의 목소리에, 아빠의 입술에, 아빠의 체온에 아빠의 눈빛에 아빠의...아빠의...
유리는 천천히 자신의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자신의 팬티속은 마치 홍수라도 난듯이 애액으로 흥건했다. 유리는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리는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며 천천히 자신의 보지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하...아...아...아빠...아..."
그저 아빠를 떠올리는것만으로도 전신에 참을 수 없는 흥분이 휘몰아쳤다.
'유리야--.'
아빠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유리의 손길이 조금더 빨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아빠의 모습 하나 하나를 떠올리며 유리의 애탄 손길은 점차 격렬해졌고 곧 그녀의 허리가 꺾어지며 그녀의 입술에서 조그만 탄성이 터져나왔다.
"흐윽...하아...아...아빠...아빠..."
온몸에 힘이 빠져버린 유리는 흐느적 거리며 기어가 책상위에 올려져있는 아빠의 사진을 들곤 애타는 눈길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난...난 지금 아빠 생각때문에 미칠것만 같은데...아빠는...아빠는 누굴 생각해...?"
사진속의 태현은 아무말없이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
"유리야?"
"얘, 유리야-!"
"으,응?"
윤지의 부름에 유리가 흠짓 놀라며 친구를 돌아봤다.
"왜?"
"너 요즘 부쩍 멍해있는때가 많다? 혹시... 그 사람 때문이니?"
윤지의 물음에 유리는 힘없이 고개를 주억였다.
"응...그런것 같아."
"어휴~~. 도대체 누가 그 활기차던 널 이렇게 만들었는지 얼굴이라도 보고싶네. 아직 잘 안돼? 섹시함으로 밀어붙여 봤어?"
"응...그런데 그게 잘 안됐어..."
"거참...너 정도면 어떤 남자라도 안넘어 올리가 없는데..."
유리의 말에 윤지는 이상하다는듯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곧 활짝 웃으며 유리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야 야! 기운내 기운내~~! 네가 그럴줄 알고 이 언니가 오늘 미팅 약속 잡아놨으니까~~! 오늘 가서 신나게 놀자~~."
"...뭐? 미팅? 싫어...그런거 안나가."
윤지의 말에 유리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윤지는 유리의 볼을 잡아 흔들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언니가 특별히 마련한 자린데~~. 그냥 스트레스 푼다고 생각하고 나가자~~응? 어차피 아직 그 사람이랑 사귀는것도 아닌데 찔릴것도 없잖아~~."
"하지만...그래두 싫어. 나 원래 미팅같은거 안나가잖아. 저번에 네가 사정 사정해서 한번 나간거 말고는."
"에이~~. 그러지 말구~~~. 응~~?"
하지만 유리의 시큰둥한 반응엔 아랑곳하지 않고 윤지는 계속 졸랐고 유리는 뭔가를 눈치챈듯이 윤지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 혹시 다른 꿍꿍이 있는거 아냐?"
유리의 말에 윤지는 움찔하더니 곧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원래는 너랑 애들 몇명 모아서 놀 생각으루 그랬는데...그게 그만 일이 커져버려서... 너 옆에 남(南)고에 서현우라고 들어봤지?"
"...응. 그 학교 짱에다가 애들말로는 그렇게 잘생겼다던데."
"그렇지---. 그런데 그애가 너한테 관심이 있다는거야. 그래서 그만 미팅을 성사시키고 말았..."
윤지는 가만히 자신을 노려보는 유리의 눈빛에 움찔하며 살며시 말꼬리를 내렸다. 유리는 삐진 표정으로 윤지를 외면해버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리야 미안..."
"몰라."
"그게...남고에 내 남자친구 있잖아...걔가 오늘 너 안나오면 서현우한테 죽는데..."
윤지는 짐짓 울먹이는 목소리로 유리에게 말했고 유리는 커다란 두 눈망울에 놀람을 가득 담아 친구에게 되물었다.
"진짜?"
"응...너두 잘 알잖아...내가 우리 영민이(윤지 남자친구) 얼마나 좋아하는지...그런데 어쩌면 좋아..."
윤지는 훌쩍이기까지하며 말했고 유리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만약 윤지의 말이 사실이라면 안 나가줄 수 없다. 사귄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남자친구 얘기를 할때면 두 눈이 초롱 초롱 빛나는 친구였으니까...
"너...그말 진짜야?"
"응..."
"...휴우...그러면 어쩔 수 없지...그 영민인지 영만인지가 죽어나간다는데..."
"정말~~?"
유리의 말에 윤지가 활짝 웃으며 되물었고 유리는 얄밉다는듯이 친구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래 요것아."
"꺄아~~~. 사랑해 유리야~~."
윤지는 유리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리고 반안에 있던 남자애들은 전부다 눈빛에 하나같이 '나도 여자로 태어날껄'하는 부러운 눈빛으로 유리를 끌어안고있는 윤지를 바라봤다. 사실 윤지도 눈에 띌만큼 예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유리 옆에있으니 그 빛이 바래는건 어쩔 수 없었다.
"근데 어디서 모이는거야?"
"응~. 학교마치고 바로 공원 옆에 스타벅스에서~~. 참! 너 아르바이트-!"
"괜찮아~. 아빠한테 좀 늦을거라고 연락해두면 되."
"오케이~~."
윤지는 신난 얼굴로 급히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자기야 난데~~."
윤지는 남자친구에게 유리가 미팅에 참석한다는 말을 전해주었고 유리는 그사이에 살며시 품속에서 조그만 사진 한장을 꺼내서 바라봤다.
'아빠...지금 뭐해...? 난 지금 아빠 너무 보고싶은데...'
유리는 마음 속으로 그렇게 태현에게 속삭이며 애탄 손길로 사진속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같은시간.
태현은 분주했던 점심 타임을 막 끝마치고 이제야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태현이 사장으로 있는-그렇다고 해도 현석과 공동소유나 마찬가지였다. 월급은 태현이 현석에게 줬지만 태현은 항상 현석과 이윤을 5:5로 나눴으니까.- 레스토랑 네잎클로버는 맛있는 요리로 인기가 높았다.
처음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살길이 막막했던 태현이었지만 형님이 죽으면 자신도 죽고 형님이 살면 자신도 살겠다며 따라나온 현석이 진작부터 취미로 가지고 있던 요리 솜씨 덕분에 레스토랑을 하나 차릴 수 있었다. 현석의 요리 솜씨는 그의 싸움 실력 만큼이나 뛰어난것이었고 8년이 지난 지금에와서는 태현도 현석의 영향을 받아 상당한 요리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레스토랑에서는 거의 웨이터로 일하는 태현이었지만.
"후우~~."
태현은 담배 연기를 한모금 깊이 빨아들이며 현석이 건네준 커피잔을 홀짝였다. 그때 접시를 닦고 있던 현석이 태현을 바라보고 있다가 넌지시 물었다.
"형님 요새 그쪽 소식 아십니까?"
"몰라. 관심없어."
현석의 물음에 태현은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현석은 이젠 컵을 닦기 시작하며 말을 이었다.
"형님이 떠나신 이후 춘추전국시대였던 판도도 이제 거의 정리되어 가는것 같습니다."
현석의 말에 태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까지 그쪽이랑 연락하고 지내나."
싸늘한 목소리였다. 현석은 그런 현태의 목소리에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왜일까, 현석은 아직까지 단지 목소리 한마디만으로 자신의 가슴을 얼어붙게 만들 수 있는 태현의 모습에 왠지모를 기쁨을 느꼈다.
"아,아닙니다. 전혀요. 그냥 우연히 들었을뿐입니다."
현석은 급히 손사래를치며 대답했고 태현은 그제야 얼어붙었던 공기를 바꾸며 빙긋 웃었다.
"용우가 몇살이더라?"
"이제 다섯 살입니다. 하하. 녀석도 이제 잘 뛰어다니죠."
"제수씨는."
"마누라도 그냥 잘있죠 뭐~~."
현석은 은퇴하고 일년후 결혼식을 올렸다. 태현이 알고지내던 지인의 중매로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때 현석은 가정이 생기면 형님을 잘모실 수 없다며 자신의 결혼을 극구 반대했었다.
하지만 태현은 억지로 현석을 결혼시키고 말았다. 자신은 이제 맛볼 수 없게된 행복이지만 현석은 꼭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석은 그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만큼이나 아름다운 미녀와 결혼을 했고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었다. 매일같이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 그의 얼굴만 봐도 그가 얼마나 행복한지는 잘알것 같았기에 그래서 태현은 매일이 기뻤다.
"행복하게 해줘라. 제수씨도. 용우도."
"...예."
빙긋 웃으며 말하는 태현의 말에 현석은 왠지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져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지?"
"예,예?! 그,그럴리가요!!"
넌지시 묻는 태현의 물음에 현석이 화들짝 놀라며 부정했다. 태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날 불쌍하게 여길 이유는 없어. 난 지금도 굉장히 행복하니까. 저녁무렵이 되면 매일같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가 나한테 안겨오는데 행복하지 않을리가 있나."
태현은 그러며 피식 웃었고 현석도 함박 웃음을 지었다.
딸랑-. 딸랑-.
그때 손님이 들어왔고 태현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며 손님에게로 걸어갔다.
"어서오세요~~."
조금만 있으면 달려올 딸을 생각하며 태현의 얼굴엔 즐거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야. 꼭 나가야 되냐?"
"크아악~! 이 개쉑아! 간신히 힘들게 겨우겨우 이런 자리를 마련해줬더니만 무슨 소리야?! 인간아. 상대는 예화고 프린세스란 말이다~. 응? 너도 사진 봐서 걔가 얼마나 이쁘게 생겼는지 봤을거 아냐?"
"그래도...거참. 난 이런덴 가기 싫은데..."
땡볕이 내려쬐는 오후. 다섯명의 고딩들이 정장을 쫙 빼입고 발맞추어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중에서도 지금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명이 가장 인물이 좋았는데, 그들은 다름아닌 윤지의 남자친구인 박영민과 남(南)고 짱인 서현우였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몇시간전에 했던 윤지의 말과는 달리 전혀 누군가가 다른 한명을 일방적으로 협박할만한 그런 관계같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두 사람 중에선 영민의 말빨이 더 세어보였다.
그리고 사실, 영민은 짱에게는 누구라도 한명쯤은 있는 그런 허물없는 친구였다. 허물이 너무 없어 누가 남고의 짱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이쯤이면 눈치 챘겠지만 아까전의 윤지의 말은 한마디로 뻥이었다. 사실은 평소에 각자의 제일 친한 친구가 애인없이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데 연민을 느낀 영민과 윤지가 서로 짜고 현우와 유리를 맺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세명의 남자애들은 그냥 얼굴 레벨만 대충 맞춘 들러리라 할 수 있었다.
"뭐야 이 자식아~! 형님이 모처럼 다리좀 놔줄려고 그러는데 진짜 계속 징징거릴래?"
"징징거리긴 누가 징징거려?"
"너 말고 누가 있냐?"
"휴우...내가 말을 말지.."
현우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라? 뭐야? 자리가 하나도 없네? 남자 애들은 아직도 안온거야? 으이구...정말..."
"어쩔 수 없지 뭐...딴데가 윤지야."
유리는 투덜거리는 윤지를 타이르며 같이온 애들과 함께 커피숍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 시간에 자리가 하나도 없다는게 말이나 되니?"
"뭐, 우연히 다른 사람들이랑 시간이 겹친거겠지."
"그건 그렇고 남자애들 왜 이렇게 안오는거...? 어, 왔다!"
"헉! 쟤네들 벌써 와있잖아? 야! 뛰어!"
"바로 코 앞인데 뭘뛰어."
"그래도 이자식아! 이럴땐 예의상으로라도 뛰는거야!"
현우는 영민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뛰었다.
"야아~~. 미안 미안~. 우리가 늦었지?"
"그래-. 남자 애들이 매너없게."
"미안~~. 그대신 오늘 우리가 재미있게 해줄께~."
윤지는 영민의 말에 삐진 얼굴을 풀며 말했다.
"근데 우리들 다른곳으로 가야 될거 같애. 자리가 다찼네."
"뭐? 진짜? 크아~~. 시작부터 이런일이--. 어디로 가지?"
영민의 말에 윤지가 잠시 생각하더니 곧 손가락을 튕기며 유리에게 말했다.
"유리야~. 너희 레스토랑에 가면 안되? 네잎클로버는 커피숍도 겸해서 하잖아."
"응...? 우리 레스토랑...?"
윤지의 물음에 유리는 움찔 놀랐다. 아빠에겐 그냥 친구들이랑 만난다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미팅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미안했다. 마치 애인 몰래 미팅에 나온 기분이랄까. 하지만 유리는 한편으론 자신이 이렇게 미팅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아빠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혹시라도 질투하진 않을까...?
유리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어렸다. 갑자기 아빠가 질투하는 모습이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자신이 다른 남자를 만나는걸 보며 아빠가 질투한다면 정말로 기분이 좋을것 같았다.
"응--. 좋아. 우리 레스토랑으로 가."
"유리야 땡큐~~. 자 자. 어서들 가자구~~."
윤지가 바람을 잡으며 애들을 모두 유리네 레스토랑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한편, 현우는 상황이 돌아가는 소리가 하나도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첫눈에 반한다는게 이런 느낌일까...? 생전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두근거림이 귓가로 울려왔고, 눈동자에는 오직 그녀 한사람만이 들어왔다. 이름이 정유리...라고 했던가...?
오늘 아침에 벌써 그녀의 사진을 한번 봤고 속으로 정말 예쁘게 생겼다라곤 생각하긴 했지만 실물로 보니 정말 사진속으로 봤던 모습, 그 이상이었다.
현우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게 생길 수 있는것일까...? 167cm정도 되어보이는 키에...찰랑거리는 긴 생머리. 그 아름다운 머릿결은 어깨를 내려덮어 등까지 흘러내려 있고 조그만 얼굴에 황금 비율을 이루고 있는 이마 밑으론 가늘고 짙은 눈썹이 시원하게 뻗어있다. 그리고 그 밑으론 커다랗고 그윽한 눈망울이 자리 잡고 있고... 오똑한 코와 붉은 입술은 마치 그림속에서나 보아왔던 미인도의 그것을 빼닮았다.
"야."
현우는 넋을 잃은채 유리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다.
"야."
가슴이 미칠듯이 두근거린다.
"야. 서현우-! 이자식 이거 완전히 맛이 가버렸군. 야!"
"...으,응? 응? 왜?"
"뭘그리 멍하게 있냐? 정신차려 임마. 오늘 내가 다리 확실하게 놔줄테니까 정신 바짝 차리라고. 미인이 거저 날 잡수셔요~. 하고 오는줄 아냐?"
영민의 핀찬에 현우는 시익 웃음지었다.
"영민아."
"...?! 어, 이,이자식이 뭘 잘못먹었나? 갑자기 왜이래?"
현우는 천천히 다가가는 자신을 흠짓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영민을 힘껏 끌어안았다.
"고맙다! 고맙다 이자식아!"
"뭐...뭘? 그리고 좀 놔이거! 징그러워-!"
영민이는 현우를 떼어내며 말했고 현우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다리 진짜 확실하게 놔 줄꺼지?"
현우의 말에 영민이는 피식 웃었다.
"실물을 보더니 이게 드디어 정신을 차렸군. 알았어 임마~. 넌 그냥 떠먹여주는거 잘 받아먹기나 해~~."
"오케바리~~."
현우와 영민은 주먹을 한번 살짝 부딪히곤 먼저 저만치 걸어가 있는 일행을 뒤쫓아갔다.
한가한 오후. 평소라면 그 평화로운 한때를 즐기며 담배라도 한개피 피워물고 있을 태현이었지만 오늘은 그의 얼굴에 그늘이 잔뜩져 있었다.
"그래서."
"...형필파 녀석들이 강북만으론 만족 못하겠는지...이젠 서서히 밑으로 내려 오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답니다. 길수나 우철이가 아직까진 잘 막고 있지만...점점 상황이 힘들어질것 같답니다."
"부산쪽 애들은...?"
"부산쪽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형필파와 손잡은 대식파가 부산은 거의 완전히 잡았다고 합니다. 그나마 형님이 예전에 의형제를 맺으신 윤수 형님쪽만 겨우 겨우 해운대만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목포는."
"거긴...아직 상황을 잘 전해듣지 못했습니다..."
태현은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한개피 피워물었다.
"현석아."
"예. 형님."
"...솔직히 너 아직도 그쪽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
태현의 물음에 현석이 빙긋이 웃음지으며 말했다.
"전 그냥 형님을 이렇게 가까이서 모시는것 만으로 만족합니다."
현석의 충심어린 말에 태현의 입가에 웃음이 살며시 번졌다.
"어차피...내가 있을때도 그 세계는 혼란스럽기 마찬가지였다. 자고 일어나면 누군가가 죽어있고...누군가가 어디를 차지했고. 애초부터 그 세계를 평정하겠다는 생각을 한것 자체가 무리였어..."
"......"
현석은 아무말없이 태현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형필파 녀석들도 그걸 곧 깨닫겠지. 어차피..."
딸랑-. 딸랑-.
"...영원한 제국은 없으니까..."
"아빠~~!"
태현은 활짝 웃으며 달려오는 유리를 보며 급히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 끄고는 달려온 그녀를 끌어안아줬다.
"오늘 친구들이랑 논다고 좀 늦는다며~?"
태현이 예기치 못한 손님에게 환한 얼굴로 물었고 유리는 생글거리며 말했다.
"응~. 그냥 오늘 여기서 만나기로 했거든~. 여기라면 음료수 값은 아낄테니까~. 에헤헤~~."
태현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귀엽게 웃는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건 그렇고."
"응?"
태현은 갑자기 정색을 하는 유리를 보며 순간 뜨끔했다.
"또 담배폈어?"
"아...그...오늘 방금 딱 그거 하나만 폈어."
태현은 주춤거리며 유리의 질책에 대꾸했고 뒷편에서 현석이 빙긋 웃으며 한마디를 던지곤 주방으로 들어갔다.
"방금 그게 오늘 아침에 뜯은 담배 한갑에 마지막으로 들어있던 거란다~."
태현은 현석의 목소리에 흠짓 놀랐고.
"뭐어? 한갑-?!"
유리는 도끼눈을 하곤 태현을 노려봤다.
'아불싸. 이걸 어쩌나.'
태현은 어찌할바를 모르며 유리의 눈빛을 피하기 바빳고, 그때. 다행히도 태현을 그 험악한 분위기에서 탈출 시켜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으,응~~. 윤지구나~. 어서오렴--."
태현은 재빨리 유리를 비켜세우며 윤지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와! 이분이 진짜 유리 아버님이야?"
"그럼~~. 멋지지? 나이도 이제 겨우 서른여덟이시래~~."
"이야...반가워요 유리 아버님~~. 전 윤지 남자친구 박. 영민입니다-."
태현은 씩씩하게 인사해오는 영민에게 악수를 해주곤 곧이어 한꺼번에 들려오는 다른애들의 인사를 웃음지으며 받아주었다.
"그런데...이렇게 다들 우리 레스토랑에 몰려와서 뭘 하려고?"
"헤헤~~. 오늘 우리들 여기서 미팅 할려구요~. 괜찮죠?"
태현의 물음에 윤지가 넉살좋게 대답했고 유리는 순간 태현의 얼굴 표정에 주목했다. 하지만 태현은 전혀 별다른 표정 변화없이 웃음짓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럼~. 괜찮고 말고. 재미있는 시간되렴-."
"예~~. 얘들아~~. 가자--."
윤지가 애들을 데리고 좋은 자리로 이끌고 갔고 태현은 유리의 엉덩이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유리야--. 이번 기회에 좋은 녀석으로 골라~~."
"으...응. 걱정마."
태현의 말에 유리가 왠지 어두워진 얼굴로 대답하곤 아이들을 뒤따라 갔다.
'뭐야. 전혀 기분 안나쁜거야?'
유리는 아빠가 미팅을 한다는 소리에 전혀 표정 변화가 없었다는것과 오히려 좋은 녀석으로 고르라는 말을 한것에 기분이 나빠졌다. 그리고 유리의 언짢은 기분은 미팅이 한창 무르익어 갈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아빠는 전혀 이쪽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일부러 다른 남자애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해도 아빠의 얼굴엔 여유로운 웃음만이 띄워져 있을뿐이었다.
유리는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은 아빠가 단지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것-그것이 점장과 손님의 대화중인 상황일지라도-만으로도 무척이나 기분이 나빠지는데 아빠는 전혀 그렇지 않은것 같았다.
"어. 콜라 다떨어졌다."
그때 윤지의 음성이 유리의 귓가에 들려왔고 유리는 재빨리 윤지에게 말했다.
"내가 가지고 올께."
"그래줄래~? 고마워~~. 그리구 유리씨 올때 내꺼 에스프레소 한잔 더~~."
"응--."
레스토랑에선 커피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음료들도 팔고 있었다. 물론 이들에겐 공짜였지만. 유리는 커다란 콜라컵을 들곤 태현이 있는 바(bar)로 걸어갔다.
"미팅 재미있니?"
태현이 빙긋 웃으며 유리에게 물었고 유리는 일부러 환하게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응~~. 무지 엄청 재미있어~~. 게임도 하구~~."
"하하. 봤어~~. 그런데 내가 보니까 윤지하고 영민인가...? 아무튼 윤지 남자친구가 너랑 저기 창가에 앉은 애랑 연결시켜 주려고 무진 애를 쓰던데~?"
태현의 말에 유리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하긴 오늘 나온것도 윤지 남자친구 영민이가 그 남고 짱에게 맞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나온것이니. 하지만 유리는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윤지가 그렇게 말한것은 다 자신이 미팅에 나오게 하려는 그녀의 잔꾀라는것을. 남고 짱과 영민이의 관계를 봐도 그렇게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때리고 그러는 관계가 아닌것 같았고. 아무튼 윤지와 영민이는 오늘 자신과 남고 짱을 연결시켜주려고 노력할것이지만 유리는 오늘 전혀 그런 느낌은 받질 못했다. 아마도 아빠쪽에 신경을 쓰다보니 그런것 같았다.
아무튼간에 그건 어찌됐든 상관없고. 유리는 음료수 리필장치에서 콜라를 받으며 아빠에게 넌지시 말했다.
"아빤 질투안나~? 딸이 다른 남자랑 그렇게 즐겁게 얘길 나누는데~~."
"하하~~."
유리을 말에 태현은 웃음을 터트렸다. 유리는 의아한 얼굴로 태현을 바라보았고 태현은 빙글거리며 말했다.
"내가 왜 질투를 해~~. 우리딸이 어쩌면 좀있다 멋진 남자하나 데려와서 사귀게 해달라고 말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아빠도 마음 든든하고 얼마나 좋겠냐~?"
뚝-.
리필장치에서 흘러나오던 콜라 줄기가 갑자기 멈췄다. 하지만 아직 콜라컵엔 콜라가 채 반도 채워져있지 않았다.
"좋겠...다구...?"
"...응?"
태현은 갑자기 돌변한 유리의 얼굴 표정에 당황했고 유리는 그런 태현을 한번 노려봐주고는 아이들이 있는곳으로 가버렸다.
"내가 뭘 잘못말했나...?"
태현은 당황한 얼굴 그대로 자신이 뭘 잘못 말했는지 되새겨 보았다. 하지만 유리가 기분 나빠할만한 말은 분명히 하지 않은것 같았다.
한편, 유리의 얼굴엔 못마땅한 표정이 잔뜩 어려있었다.
'...좋겠다구? 내가 다른 남자 데려와 사귀게 해달라는데도 좋겠다구? 뭐야. 그딴말... 내가 다른 남자랑 사귀게 되어도 좋다는거야? 나는 아빠가 다른 여자랑 말 한마디만 나눠도 싫은데. 아빤 내가 다른 남자랑 사겨도 상관없다는거야?'
"유...리야?"
윤지가 다시 자리로 돌아온 유리를 보며 그녀의 바뀐 표정에 걱정어린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유리에겐 윤지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난...상관없지 않단 말이야...아빠가 다른 여자랑 말하는거...다른 여자랑 웃는거...다른 여자랑 즐거워 하는거...상관없지 않단 말이야...상관없지 않단 말이야...!!'
유리는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기분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