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29)

"형님이 은퇴하신지도 벌써 8년째군요."

"훗...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버렸나...?"

아직도 해가 넘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초여름, 6월의 오후. 약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레스토랑의 오후는 한가한 두 사나이의 대화로 평화로운 오후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녁 프라임 타임이기에 그래서 두 사나이는 지금의 이 한가함을 더 즐기고 싶은지 모른다. 두 사나이의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이었는데, 다른 한명의 사나이를 형님이라 부른 사나이는 거의 2m는 될법한 키에 엄청난 덩치를 지니고 있는. 하지만 후덕한 인상의 사나이였고. 형님이라 불리운 사나이는 182cm정도의 키에 상당히 수려한 용모를 지닌 사나이였다.

"그래도 형님은 유리 때문에 시간 가는줄 모르시죠?"

덩치는 유리컵을 닦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고, 형님이라 불린 사내는 한숨을 푹 내쉬며 피식 웃었다.

"녀석이 어릴때는 참 귀엽고 이뻣는데. 그게 참... 녀석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상대하기가 껄끄럽더라고. 어느날 갑자기 피묻은 팬티를 나한테 보여주면서 죽을병 걸렸다고 엉엉 울때는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덩치는 시익 웃으며 계속해서 사내의 목소리가 이어지길 기다렸다.

"...솔직히 나도 그때 뭐가 뭔지 몰랐거든. 119에 전화할뻔 했다니까..."

덩치는 사내의 말에 키득거리며 계속해서 유리컵을 닦았다. 사내는 입꼬리를 올리며 담배를 하나 꺼내물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딸 생각만 하면 웃음을 짓게되는 그였다. 

"형님 그런데 그거 아세요?"

"응?"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던 사내가 다시 덩치를 바라보며 대꾸했고 덩치는 빙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제가 처음 형님을 알게 되었을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지금 형님의 말수가 많아 졌다는거..."

"훗...그런가...?"

사내는 피식 웃으며 담배를 깊게 한모금 빨아들였다.

"...유리의 영향이라면...영향일 수도 있겠지."

사내는 제 엄마와는 정반대로 활발한 성격의 딸을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참. 그나저나 지금 형님이 담배 피시는거 유리가 보면 난리 날텐데요."

"괜찮아. 아직 유리 올려면 시간 남았어."

사내는 느긋한 음성으로 말했고 덩치는 어깨를 으쓱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전 저녁 준비나 하겠습니다--."

"음. 나도 이거만 피우고 갈게."

사내는 그러며 창가 자리로가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공원에 인접해있는 레스토랑이었기에, 지금 밖에 가족단위로 오후의 한가한 한때를 즐기러나온 사람들이 사내의 눈에 들어왔다. 정말 평화롭고 보기좋은 풍경이었다. 그러고보면 그녀 살아 생전엔 저렇게 셋이서 함께 나와본 기억이 없었다. 같이 놀러나가자고 칭얼거리는 유리를 달래며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아내... 참...사랑했었는데. 사내는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지는것을 느꼈다. 그때 그렇게 그녀를 보내고 나서야 비로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사내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담배 꽁초를 재털이에 눌러 껏다.

딸랑-. 딸랑-.

그때 레스토랑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리고 자연스레 문으로 시선이 옮겨져간 사내의 얼굴엔 금세 환한 미소가 물들었다. 그녀는 레스토랑 여기저기를 휘둘러 보더니 금방 사내를 찾으며 잽싸게 뛰어왔다.

"아빠~~."

"하하. 잘 다녀왔니?"

사내는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답싹 안기는 유리를 끌어안아주었다. 

"웅~~. 다녀왔습니다~~."

유리는 생글거리며 사내의 무릎위에 걸터앉아 냉큼 인사를 하고는 사내의 입술에 뽀뽀를 쪽 했다. 사내는 빙긋 웃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유리는 마치 주인에게 귀염받는 강아지처럼 귀여운 얼굴로 사내의 부드러운 손길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는 잘있었어~?"

"응~. 잘있었지. 유리는 오늘 하루 어땠어?"

"응--.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왔지~. 아참! 그런데 말야. 오늘 학교에 어떤 학생이 한명 전학왔는데 말이야~? 글쎄..."

유리는 여전히 아빠의 무릎에 걸터 앉은채 오늘 하루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사내는 그런 딸의 수다를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밀려 올라간 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유리의 매끈한 다리와 이제 어른이나 다름없이 풍만해진 그녀의 가슴이 신경쓰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역시 남자로서 가지는 부담감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딸이 그만큼 성장했다는데서- 가지는 흐뭇함일것이다. 

"어? 유리왔네~?"

그때 한창 재미있게 이야길 하고있던 그들에게 덩치가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주방에서 걸어나오며 말했다. 

"와~. 현석 아저씨도 있었네~?"

"...저기. 나도 여기서 일하거든."

"아하하~. 알어~. 농담이야~~."

유리는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한편 사내는 그래도 둘이서는 이러고 있어도 상관없었지만 20년을 알고지내온 부하 앞에서 딸과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게 왠지 부끄러워서 유리를 무릎에서 내려놓았다.

"응? 왜?"

그러자 유리가 아쉬운듯한 음성으로 물었고 사내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헝클여뜨리며 말했다.

"이제 손님올 시간 다됐어. 아빠도 이제 저녁 준비해야지. 너도 빨리 옷갈아입고 나와."

"피이~~. 시간 보니까 아직 손님들 올려면 멀었구만 뭐..."

유리는 사내가 헝클어뜨려놓은 머리를 정리하며 삐진 목소리로 말했고 사내는 빙긋 웃으며 주방으로 걸어갔다.

"유비무환~~. 손님이 시간 정해놓고 오는게 아니란다~~."

"흥~! 메에에롱---."

유리는 콧방귀를 끼며 아빠의 뒷모습에 대고 혀를 낼롬 내밀었다. 그런데 그때 유리에게 뭔가 상당히 거슬리는 냄새가 맡아져 왔다. 방금전까진 아빠랑 얘기한다고 전혀 못느꼇었는데...

"아빠~! 또 담배?지--!!"

유리의 앙칼진 목소리에 사내는 움찔하더니 뒤도 돌아보지않고 주방으로 달려가버렸다. 유리는 잔뜩 약오른 얼굴로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그의 뒷모습이 주방 속으로 사라지자마자 유리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져버렸다.

"...몸에 안 좋다구...나 아빠가 아파지는건 싫단말야..."

유리는 잠시 그렇게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다시 금세 활기찬 얼굴로 표정을 되돌리며 활짝 웃었다.

"좋아~! 오늘도 열심히~~!"

유리는 손뼉을 짝 치며 탈의실로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녀는 저녁땐 아빠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녁때가 레스토랑의 프라임 타임이다보니 일손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내는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보단 딸의 도움을 빌렸다. 하지만 그녀가 오고 나서도 일손이 모자라는건 마찬가지였다. 유리의 미모에 혹한 사람들이 꾸역 꾸역 몰려왔기 때문에... 한편.

"오늘은 아빠의 약점도 하나 잡았고...헤헷."

유리는 탈의실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생긋 웃어보이며 중얼거렸다. 

정태현 채지현 정유리

비록 이젠 두 사람밖에 살지 않는 집이지만 문패에는 세 가족 모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사내...그러니까 태현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하루를 회상하며 입가에 미소를 걸친채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유리가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부쩍 는 손님 덕분에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딸의 활기찬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그리고 간간히 재미있는 모습도 볼 수 있고...일주일에 한번꼴로 유리 친위대(?)라는 녀석들이 몰려와 시끌벅적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또 가끔 유리의 친구들이-유리의 활발한 성격 덕분인지 그녀는 친구가 매우 많은것 같았다-몰려와 가게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태현은 역시 시끌벅적한것 보다는 조용한것이 좋았지만 그럴때(학교애들이 몰려올때)라면 유리도 덩달아 더욱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기 때문에...자신은 상관 없었다. 이제는...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웃음만이 가득하길 원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고 또 지금까지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잃고나서야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지현아..."

태현은 침대 옆, 조그만 탁자위에 올려져 있던 아내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녀의 이름을 속삭였다. 열아홉.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녀를 본 순간 태현은 운명적인 사랑의 피해자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꽃을 사랑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너무나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리고 11년... 후회와 아픔만이 남는 사랑을 남겨두고 그녀는 떠나갔다. ...영원히. 그때부터 태현에게는 오직 유리밖에 없었다. 그녀가 남겨준 그녀의 반쪽. 유리를 잘키우는것이 아픔만 있었던 사랑을 하고 떠나간 그녀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유리만이 이 세상에 그녀가 살다갔다는 유일한 증거이기에...태현은 그 증거를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겼다. 유리는 자신의 기대보다 더 잘 커주었다. 학교 생활도 즐겁게 하고 있는것 같았고 공부도 학교 톱을 달렸다. 그리고 커갈수록 점점 더 너무나 아름다워졌다. 나이가 좀 더 들면 아내보다도 더 예뻐질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한건 유리의 취향이 아내와 거의 똑같다는 것이었다. 샴푸부터 향수까지... 그래서 태현은 가끔가다 유리의 모습에서 아내를 느껴서 깜짝 깜짝 놀랄때도 있었다. 

똑-. 똑-.

"응? 유리니?"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고 태현은 어두웠던 표정을 밝히며 말했다.

"응~. 들어가도되~?"

"그럼--. 들어와~."

태현의 허락에 살며시 문이 열리며 유리가 들어왔다. 잠옷으로 파자마를 입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태현은 빙긋 웃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일루와--."

"헤에~~."

태현의 말에 유리가 냉큼 달려와 그의 옆에 앉았다.

"아빠 뭐하고 있었어?"

"응? 그냥 이런저런 생각..."

"무슨 생각?"

"그냥...옛날 생각도 하고..."

"흐응...그랬구나..."

유리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더니 곧, 짐짓 눈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근데 왜 오늘 담배?어?"

"으,응? 담배?"

그러고보니 깜빡 잊고 있었다. 태현은 오늘따라 유리가 그냥 별말없이 넘어갔기에 잊고 있었는데 역시 자신이 담배를 피면 기겁을 하는 유리가 오늘이라고 그냥 넘어갈리가 없었다.

"그...그냥 무심코 한대 핀것 뿐이야."

"거짓말! 나 없을땐 담배를 입에 달고 살지?!"

"아~아니야~."

유리의 쏘아붙이는 말에 태현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고 유리는 가만히 아빠를 쏘아보며 말했다.

"정말?"

"그럼~. 정말이지~."

...담배를 입에 달고 살진 않는다고. 태현은 왠지 좀 찔리긴 했지만 애써 유리의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역시 태현 자신도 서서히 담배를 좀 줄여야 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좋아. 믿어줄게. 그대신..."

"응...?"

그때 유리가 삐진 목소리로 말했고 태현은 그녀가 무슨말을 할지 가만히 기다렸다.

"나 오늘 여기서 잘래."

"...뭐?"

유리의 말에 태현은 금세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유리는 녀석이 중학교에 들어갈때부터 다른방을 써왔다. 맨처음엔 혼자 자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였지만 그래도 태현은 굳게 마음먹고 유리를 다른방에서 자게 했다. 역시 커가면 커갈수록 혼자 자는것도 연습해야되고 언제까지 아빠랑 같이 자게 할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도 남자인지라 이제 더이상 아이가 아닌 유리와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좀 부담스러웠다. 

"안돼?"

망설이는 태현에게 유리가 눈꼬릴 치며뜨며 물었고 그녀의 그런 눈빛에 태현은 홀로 흑살파 50명 앞에 섰을때도 태연했던 자신이 한없이 약해지는것을 느꼇다. 

"그...안된다기 보다는..."

"보다는?"

"유리야. 그래도 아빠가 잠은 따로 자자고 말했잖아."

태현의 말에 유리는 눈시울마저 붉히며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싫어? 그렇게 나랑 붙어 있는게 싫어?"

"아,아니야 유리야. 아빠 말은..."

태현은 깜짝 놀라며 유리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뭔가 변명을 하려했고 유리는 여전히 눈시울을 붉히며 그런 아빠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태현은 결국 그런 유리의 눈빛에 질 수밖에 없었다.

"휴우...알았어. 같이자자. 대신 오늘만이다?"

"야호~~~~!!"

태현의 허락에 유리는 언제 눈시울을 붉혓냐는듯이 활짝 웃으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태현은 그런 유리를 보며 피식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딸이 이렇게 아빠를 좋아해주는데 싫을 아빠가 어디 있겠는가. 태현은 빙그레 웃으며 유리에게 말했다.

"가서 베개 가져와."

"응~~!"

유리는 그러며 잽싸게 방문 밖에 놔뒀던 베개를 가지고 왔다. 벌써 그녀는 준비를 다 해놨던 것이다. 유리는 태현의 옆에 꼭 붙어 누우며 몸을 돌려 아빠를 꼬옥 끌어안았다. 태현은 불을 끄곤 유리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빙긋 웃었다.

"아빠랑 자는게 그렇게 좋아?"

"응...너무좋아...나...매일 이렇게 아빠랑 같이 자고싶어..."

"...하지만 유리야..."

"나도 알아. 오늘만인거...그래서..."

태현은 유리의 다음말이 이어지길 기다렸지만 유리는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태현은 유리가 오늘도 힘든 하루여서 금세 잠들었나보다 생각하며 자신도 잠을 청했다. 하지만 유리는 마음속으로 못다한 말을 되뇌이고 있었다.

'...그래서 더 소중해...'

한밤중. 유리는 살며시 눈을 떳다. 아빠는 아까 자기전에 있었던 자세 그대로 자신에게 팔베개를 해준채 가만히 잠들어 있었다.

'팔...아플텐데...'

유리는 조심스레 태현의 팔을 옮겨 똑바로 해주었다. 그리곤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색색거리는 숨소리조차 없이 죽은듯이 잠들어있는 그의 모습... 비록 어두움에 뭍혀 그의 얼굴이 확실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창문으로 비춰들어오는 거리의 가로등 불빛 덕분에 그의 얼굴 생김새 정도는 어느정도 볼 수 있었다. 아빠는 모르고 보면 20대로 보일정도로 젊게 생겼다. 거기다가 왠만한 여자라면 누구라도 혹할만큼 잘생겼기도...그래서 레스토랑에서 아빠에게 꼬리를 치는 여자들도 있었고 유리는 그런걸 볼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래도 언제나 아빠는 그런 여자들을 정중히 거절해 왔기때문에 유리는 그럴때마다 오히려 흐뭇해지곤 했다. 유리는 살며시 태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약간 거친 피부... 그가 젊었을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을것 같았다. 유리는 왠지 가슴 한켠이 아련해지는걸 느끼며 태현의 입술에 살며시 키스를 했다. 뽀뽀가 아닌...키스를. 부드럽게 입술로 그의 입술을 더듬었다. 부드럽고 말랑 말랑한 아빠의 입술의 감촉에 유리는 아찔해질것만 같았다. 

"아빠..."

유리는 태현을 가느다란 목소리로 되뇌이며 그의 입술을 용기내어 살며시 핥았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유리의 눈빛은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벌써 아빠의 입술이라면 이렇게 몰래 몇번이나 핥아봤지만 그래도 이럴때마다 유리는 참을 수 없을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아빠를 덮쳐버린다면 오늘같은 매일의 행복한 나날이 산산히 부서질것만 같아 유리는 차마 그럴순 없었다. 지금은...단지 이렇게 몰래 그의 입술을 핥아 보는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만의..."

유리는 곤히 잠들어 있는 태현을 꼬옥 끌어안았다.

다음날 아침. 태현은 뭔가에 눌린듯한 압박감을 느끼며 눈을 떳다. 커다란 두 눈망울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리야. 잘잤어?"

태현은 빙그레 웃으며 유리에게 인사하면서도 한편 속으론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느새 누군가가 몸위로 올라타 있는것도 감지하지 못할정도로 몸이 무디어져 버렸다니...

"웅~~. 우리 아빠도 잘잤어~~?"

유리는 애교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벌써 교복을 입고 있었다.

"지금 몇시야?"

"벌써 여덟시네요~~. 잠꾸러기 아저씨~."

"하하...아빠는 아무리 늦잠자도 괜찮은 사람이네요~."

"네네~. 그보다. 얼른 아침 뽀뽀 해줘~."

유리는 그러며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태현은 빙그레 웃으며 유리의 얼굴을 끌어당겨 그녀의 볼에 키스를 해주었다. 

"아앗~! 뭐야아--. 거기말구~~."

유리는 칭얼거리며 다시 입술을 태현에게 쭈욱 내밀었다. 너무나 귀엽고 예쁜 모습이다. 태현은 다 커버린 딸아이의 입술에 뽀뽀를 해주는게 좀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오히려 아빠인 자신이 이런걸 피한다면 더 이상해보일까봐 빙그레 웃으며 유리의 입술에 뽀뽀를 쪽 해주었다.

"헤헤~~."

그제서야 유리는 생긋 웃었고 태현은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자자~. 뽀뽀도 해드렸으니 어서 비켜나세요 공주님~."

"싫어~~. 조금만 더 이러고 있을래~."

유리는 그러며 태현의 몸에 찰싹 붙어 엎드렸고 태현은 빙긋 웃으며 넌지시 말했다.

"유리야~. 학교 안가~?"

태현의 말에 유리가 흠짓 놀라며 시계를 봤다.

"앗~! 늦겠다-! 나 주번인데...!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응~. 하핫."

유리는 급히 일어서며 방을 나갔다.

"아침 차려놨으니까 맛있게 드세요~~!"

"그래~~."

유리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고 곧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태현은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쭈욱 ?다. 

"으찻찻찻찻찻...차---."

태현은 그리곤 아내의 사진에 살며시 키스를 했다.

"오늘도...함께 해줘..."

태현의 눈빛속엔 아직까지도 변함없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하아~~."

"유리야 왜~? 뭐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어?"

점심시간. 유리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고 옆에 앉아있던 그녀의 단짝 친구 윤지가 의아한 음성으로 물었다. 유리는 잠시 어쩔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제일 친한 친구인 윤지라면 괜찮을것 같아서 살며시 낮은 목소리로 윤지에게 말했다.

"있잖아...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뭐어~~~?!"

"쉬잇~~!"

자신의 말에 깜짝 놀라는 윤지에게 유리는 급히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주었다. 윤지는 잠시 당황한 얼굴이더니 곧 정신을 차리며 급히 낮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언제부터? 누군데?"

"그게...좋아 한지는 꽤 오래됐어. 누군지 말하긴 좀...그렇구..."

유리의 말에 윤지는 왠지 허탈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휴우~. 그러니까 그동안 너 좋아한다고 죽고 못살던 남자애들은 전부다 헛물만 킨거구나. 어쩜...너 너무하네~. 어떻게 나한테까지 그런걸 여태껏 숨길 수 있는거야~?"

"미안...그래두 좀 너무 비밀스러운 일이어서..."

유리의 기운없는 목소리에 윤지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으이구. 그런데 그 비밀스럽게 좋아하던 사람에 관해서 뭔가 걱정거리가 생긴거구나? 속뻔히 다보여 요것아~~."

"헤헤..."

유리는 쑥스러운듯이 웃었고 윤지는 유리의 어깨에 팔을 턱 걸치며 말했다.

"좋아. 다 물어봐. 이 언니가 뭐든지 가르쳐줄게."

"응...고마워. 사실...좋아한지 좀 오래 되긴 했는데...더이상 어떻게 관계를 발전시킬 방법이 보이질 않아서..."

유리의 말에 윤지가 자신있는 목소리로 해결책을 마련해 주었다.

"후훗. 그럴땐 스킨쉽이 최고지. 무조건 몸 갖다 붙여~."

하지만 윤지의 말에 유리는 난처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그게...나도 스킨쉽은 굉장히 많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그 사람이 전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질 않아."

"흐음~."

윤지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혹시 그 남자가 너보다 연상아냐?"

"응. 어,어떻게 알았어?"

화들짝 놀라는 유리를 보며 윤지는 유리의 볼을 살며시 잡곤 흔들었다.

"뭘 그렇게 놀래~? 그보다. 내생각엔 그쪽에선 널 아직 연하의 동생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것 같아. 그러니까--. 그럴땐 역시 섹시함으로 밀어붙여~~!"

"세,섹시--?"

"그러~엄. 네가 이제 더이상 소녀가 아니라 여자라고 어필을 하는거야~. 그러면 그 사람도 널 다르게 볼껄~? 그리고 야. 너정도면 그냥 치맛자락만 살짝 올려줘도 남자들 눈이 뒤집어 지겠다."

"그...그럴까?"

"물론이지~."

유리는 윤지의 말에 왠지 자신감이 드는걸 느끼며 굳게 마음을 먹었다.

언제부터일까...

유리는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탱크톱에 핫팬츠...자신이 봐도 낯뜨거운 모습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빠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빠가 보이지 않을땐 오직 아빠 생각만 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러면 안되는거라고 스스로를 질책했지만...어느새 열여덟살...몇년이나 흘렀는지 몰라도 지금에 와서는 그냥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 지기로 했다.

어차피 아빠도 혼자이고...많이 외로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단지 그런 아빠를 위로해 주고 싶은것 뿐이다. ...라고 유리는 스스로를 합리화 시켰다. 하지만 사실은 그녀가 이렇게 아빠를 바라보는것만으론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매일, 그리고 이렇게나 가까이서 숨쉬고 있는데 단지 바라만 보는것은...

너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유리는 거울을 바라보며 한번 활짝 웃어보았다. 하지만 역시 긴장 때문일까, 평소의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유리는 손으로 입을 좌우로 주욱 벌리며 화사하게 웃음 지으며 노력했다. 아빠 앞에 긴장한채 이런 모습으로 나가면 아빠가 금세 자신이 유혹하고 있다는걸 눈치챌 것이다. 하지만 유리는 아직까진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와 같은 웃음이 필요했다.

유리는 양볼을 쭈욱 늘리며 얼굴 근육을 풀곤 다시 한번 활짝 웃어보였다.

누구라도 지금의 그녀의 미소를 보았다면 넋을 잃을만큼...유리의 미소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됐어."

유리는 자신의 미소에 합격점을 주고는 천천히 방을 나섰다.

태현은 거실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특별히 보고싶은 프로그램이 있는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잠이 오질 않았었다. 그때 2층 계단이 삐걱 거리며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2층에서 내려올 사람이라곤 유리밖에 없었기에 태현은 입가에 웃음을 달며 말했다.

"유리니~?"

"응~~."

태현의 목소리에 유리가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는 않은채 대답했다. 태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벌써 1시야~. 아직 안잤어?"

"응--."

하지만 유리는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내 보이질 않았고 태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계단쪽을 바라보았다. 사실 한밤중에 쓸쓸하게 혼자 있다가 딸이 내려오니 굉장히 반가웠다.

"뭐해~? 내려왔으면 일루와--. 우리딸 한번 안아보게~."

"응~~."

태현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유리가 모습을 드러내며 태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유리의 모습을 본 태현은 움찔 놀랐다. 딸이 탱크톱에 겨우 핫팬츠 하나만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가 중학교에 올라간 이후로 그녀가 저렇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모습을 본적이 없었던 태현은 깜짝 놀라고 있었다. 유리가 매일 자신에게 안겨올때마다 예상은 했지만 딸아이는 모델을 해도 될만큼 멋진 몸매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풍만한 가슴에 잘록한 허리. 그리고 탄력있어 보이는 엉덩이에, 그 아래로는 환상적인 각선미. 너무나 매혹적인 모습이었지만 태현은 한편으론 어느새 저렇게나 성장해준 유리가 기특했다.

아무튼 태현은 놀란 표정을 곧바로 수습하며 깜찍한 표정으로 자신의 무릎위에 걸터 앉아오는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방이 많이 더웠어?"

"응?"

태현의 말에 유리는 흠짓 놀랐지만 금세 귀여운 표정으로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 딸이 우리 아빠 유혹 한번 해볼려구~~."

"뭐~어? 하하. 요 꼬맹이가~~."

유리의 깜찍한 말에 태현은 피식 웃으며 유리의 머리에 살짝 꿀밤을 먹였다.

물론 유리의 말은 진심이었지만 유리도 자신의 말이 지금 아빠에게 진심이라고 들리지 않으리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걸 알기에 그렇게 말한것이고.

"아빠 뭐하고 있었어? TV봤어?"

유리는 그러며 고개를 돌려 TV를 봤다. TV에서는 그냥 시사 다큐멘터리같은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한편 태현은 아릿하게 느껴져 오는 유리의 향기에 아찔해질뻔 했다. 그것이 아내와 같은 향기인 이유도 있었지만, 아무리 딸이라도 이렇게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자의 향기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18살짜리 여고생의 맨살이란 벌써 8년째 홀로 살며 여자한번 건드리지 않았던 태현에게 있어선 견디기 힘든 유혹이었다. 하지만 태현은 은근히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는 자신을 속으로 질책하며 서서히 피어오르는 흥분을 억눌렀다.

이 아이는 자신의 딸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눈을 땔 수 없는 몸매를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이 아이는 딸이다. 그리고 아버지인 자신은 이 아이에게서 불순한 느낌을 느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태현은 유리의 육체가 가져다주는 부드러운 촉감은 애써 무시하며 태연한 표정으로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유리는--. 아직까지 안자고 뭐했어?"

'...아빠 생각.'

"고등학교 2학년짜리가 지금까지 다른 할게 뭐있겠어~? 그냥 공부했지~~."

"하하. 어이구~~. 우리딸--. 그래. 공부한다고 고생이 많지~?"

'...공부같은건 힘들지 않아. 단지 지금...이렇게 미칠만큼 사랑하는 아빠에게 딸로서만 보여진다는게 힘든거야...'

"그럼--. 정~말 고생 많지. 어디 반에서 1등자리 지키는게 쉬운줄 아나?"

"하하~~."

태현은 유리의 볼에 입을 쪽 맞춰주며 그녀를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아빤--. 너무 기뻐... 우리 유리가 이렇게 멋지게 커주니까 말이야---."

태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유리의 귓가를 울렸다. 한편 유리는 자신의 볼에 키스하며 끌어안아주는 아빠 때문에 지금 미칠것만 같았다. 마음같아서는 그냥 이대로 아빠를 끌어안고 마구 키스를 퍼붓고 싶었다.

하지만...하지만 아직 그럴순 없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유리는 지금 미칠것만 같았다. 이렇게 더이상 아빠에게 몸을 붙이고 있었다간 유리는 자신이 어떻게 되어버릴까봐...자신의 감정을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게 되어버릴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유리는 아빠의 위에서 비켜나 그의 옆에 앉았다.

"왜--. 불편해?"

딸이 비켜나자 태현은 왠지 섭섭하단 얼굴로 말했고 유리는 활짝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냐 아냐~~. 그냥 좀 더워서~~."

그러며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유리, 태현은 그런 딸을 바라보며 그녀가 사랑스러워 견딜수가 없을것 같았다. 더이상 유리에게 뭔가 다른 불순한 느낌같은건 없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던것도 한순간이고. 단지 지금은 딸이 딸로서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태현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유리를 꽈악 끌어안았다.

"우리딸~~. 왜이렇게 이쁜거야---."

"......!!"

유리는 흠짓 놀랐고 이런 유리의 속내는 꿈에도 모르는 태현은 단지 딸을 끌어안고 그녀의 볼에 뽀뽀를 계속 해주었다.

"웅~~. 쪽 쪽 쪽 쪽---."

유리는 미칠것만 같았다. 아빠의 따뜻한 숨결이 바로 귓가에서 느껴지는 느낌이란...유리는 어느새 자신의 팬티가 촉촉히 젖어 있다는걸 깨달았다.

"...해."

"응~? 뭐라구?"

"...만해...그만...해."

유리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더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이대로 계속 아빠가 안고있는다면 자신이 아빠를 덮쳐버릴것 같았다. 

태현은 유리의 목소리에 무안해져서 포옹을 풀었다. 평소엔 이렇게 뽀뽀해주면 그렇게나 좋아했었는데, 역시 여자란 변덕이 심한 생물인것 같았다. 아내를 떠올려봐도 아무리 똑같은 행동이라도 좋아할때가 있고 싫어할때가 있었다.

태현은 머쓱한 표정으로 유리에게 말했다.

"좀...덥지 오늘? 에어컨이라도 틀까...?"

유리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직 그렇게 더운건 아니잖아."

어느새 유리의 표정은 평상시로 돌아와 있었고 태현은 유리가 좀전의 자신의 행동을 그리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넌지시 물었다.

"기분 나빴어...?"

"응?"

"방금전에 아빠가 안아준거..."

"아-. 아냐~. 아냐~~."

태현의 말에 유리는 손사래를 치며 방긋 웃었다.

"그냥 너무 행복해서 그랬어~."

너무 행복했는데 그만하라고...? 왠지 앞뒤가 좀 안 맞는것 같았지만 어쨋든 태현은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이제 너무 늦었어. 가서 자야지~? 내일 학교도 가야 되는데."

"응---."

태현의 말에 유리가 방긋 웃으며 그의 입술에 살며시 뽀뽀했다.

"쪽~. 안녕히 주무세요~~."

"응~~. 유리도 잘자--."

태현은 씩씩하게 2층 자기방으로 올라가는 유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지현아...어느새 우리딸이 저렇게나 컷어...예쁘지...?"

태현은 조용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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