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에서 전자현미경으로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을 극미한 존재인 강표의
갈등과는 관계없이 무심한 낮과 밤은 어김없이 교차하더니 어느듯 새파란
하늘이 까마득히 높아진 가을로 접어 들었다.
" 여보! 이번에도 당신은 못가요? "
" 응!.. 알잖어.. 가을이 건축성수기라는 걸.. 가거던 처남에게 말이나 잘
전해줘.. "
" 너희들은 이번엔 다 가자.. 오늘이 마침 토요일아니니.. 니들은 작년에도
못갔고.. "
" 엄마! 외할머니생일이지? 내일 아침? "
" 어른에게는 생일이라 하지말고 생신이라 부르는거야.. 그래.. 유라 넌 갈
거지? "
" 알았어.. 하지만, 준호오빠나 언니가 가면 나도 갈게.. 혼자는 넘 심심하
단 말이야.. "
" 엄마! 난 안될 것 같은데... 내일 두시에 회사에서 프리젠테이션 미팅이
있어.. 속초까지 갔 다 오기엔 좀 그렇잖아? "
" 그래.. 안 그래도 아빠 식사가 걱정도 되었는데.. 그럼 지혜가 남고, 준
호랑 유라는 엄마랑 같이 갔다 오자... 됐지? "
" 어휴휴.. 내일 친구들이랑 등산가려했는데.. 유라 저게 꼭 물고 늘어진단
말이야.... 알았어.. 몇시에 갈거야? "
" 점심먹고 3시쯤 가자.. 그리고 당신.. 지혜랑 열쇠갖구 출근해요.. 집이
비었으니 일찍 들 어 오시구요.. "
아이들의 새엄마인 연주는 서강표와 재혼한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도, 지
혜의 친 외할머니 생신을 꼭꼭 챙기며 속초까지 갔다오는 착한 아내였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강표는 그 날 하루종일 공사장에서 얼굴을 찡그리
고 있었다.
오전에는 아파트 신축공사장에서 파일박기 작업도중 도르레가 풀리면서 작
업인부 하나가 다리를 다쳐 병원에 실려간 사고가 발생하더니, 오후에는 진
입로설계변경을 위한 측량을 하다 싯가 1,500만원짜리 토탈스테이션을 땅에
떨어뜨려 작업이 중단되는 사고도 일어 났던 것이다. 힘든 하루를 마감하고
도저히 그냥은 집으로 돌아갈 기분이 안된 강표는 팀장들과 어울려 소주 몇
병을 비운 뒤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약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현관에 선 강표는 열쇠로 문을 따고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거실에 불이 켜져있지 않은 걸로 봐서 지혜는 아마 아직 오지 않은 듯 하다
.
( 이눔 봐라... 지금 8시가 다 돼 가는데... 아빠 저녁 걱정도 안 돼나..
쩝! )
전기스위치를 찾아 벽을 더듬거리는데... 순간,
! 번쩍 ! 불이 켜지면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머리위로 쏟아져 내려왔다.
" 짝짝짝! "
" 어서오세요.. 우리 아빠! "
" 뭐.. 뭐야?.. 읍! "
미처 숨돌릴 새도 없이 지혜가 목에 매달려 오는데, 향수같기도 하고 고급
샴푸같기도 한 향긋한 내음이 지혜의 머리칼에서 풍겨온다.
" 아니... 가만.. 이넘아.. 정신 좀 차리자.. 오늘 무슨 날이니? "
" 그럼요.. 무슨 날인지 맞춰 보세요.. 그럼 제가 선물 드리죠.. 호호.. "
" 내 생일은 아직 멀었고.. 지혜 너도 아니고.. 모르겠는데... "
" 됐어요.. 아빤 잘 모를거에요.. 가요.. 저녁 밥상 다 봐 놨어요.. 찌개만
올리면 돼요.. "
작업복을 벗고 샤워를 마친 강표가 닥아가보니 아닌게 아니라 식탁에 한 상
차려져 있는데.. 없는 게 없다.. 국산 양주까지 한병 얹혀져 있다. 술기운
이 확 달아난 강표는 앞에 마주앉은 지혜를 보며 다시한번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 아이참! 아빤! 전에 언젠가 아빠랑 데이트할 때 약속했잖아요? 한번 더
아빠애인 하기 루요.. 오늘 딱 좋잖아요.. 집에 아무도 없고... 아마 제 시
집가기전에 이런 기회는 없을거 같아 오늘 아빠에게 지혜가 봉사하는 날로
정했단 말예요.. 아무 말 마시고 제가 하라는 대로만 하심 돼요.. 알았죠
?.. "
" 아!..그거.. 너.. 그 말이 진담이었구나?.. "
" 그럼요.. 호호.. "
그제야 상황이 대충 정리되어진 강표.. 그리고보니 앞에 앉은 지혜의 옷차
림도 묘하다. 가슴을 감싼 브라자가 은은히 비치는 반투명으로 죽은 아내가
아끼던 낯익은 분홍색 슬립가운이다.
" 지혜 너.. 그 옷은?... "
" 그래요.. 엄마 걸 꺼내 입었어요.. 오늘은 내가 아빠 애인이잖아요.. 호
홋.. "
오래전에 없어진 유품중 일부를 아직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강표도
어쩔 수 없이 분위기에 휩쓸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지혜의 행동을 나무라
기엔 이미 전과가 있고, 무엇보다 지혜의 행동이 물이 흐르듯 너무 자연스
러워 제동을 걸 타이밍이 없었던 것이다.
지혜의 정성이 담긴 저녁과 반주로 양주1병까지 거의 비우고는 상을 물리고
쇼파에 앉아 쉬는데, 설거지를 마친 지혜가 거실의 커튼을 모두 닫고는 비
디오를 틀더니 강표의 옆에 다정하게 붙어 앉는다.
양주 서너잔을 스트레이트로 마신 탓인지 볼이 보기 좋을 만큼 익어 있다.
" 아빠도 비디오 좋아하죠? "
" 내용이 괜찮은건 가끔 보지.. 근데 요즘은 별로 볼만한 게 없더군.. 이
건 제목이 뭐니? "
" 응.. 그 뭐라더라.. 모넬라라던가.. 영화로 나왔던 거야.. 안 봤죠? "
" 그래.. 안 본거 같군.. "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주인공인 듯 싶은 예쁘고 발랄한 처녀애가
가느다란 팬티줄만 남긴 엉덩이를 다 내 놓은채 자전거를 타고 광장을 빙빙
도는 장면이 나온다. 황당해진 강표가 옆눈으로 흘낏 보니 지혜는 아무렇지
도 않은 표정이다.
" 여..영화가 조금 야해 보이는구나.. "
" 아빠안.. 이 정도는 야한 것도 아니에요.. 본 친구들이 그러는데.. 내용
은 괜찮대요.. "
포르노수준은 아니었지만, 아슬아슬한 장면이 연속되는 영화를 계속 보면서
강표가 헛기침을 해 대자, 옆눈으로 흘낏 쳐다본 지혜가 일어서더니, 비디
오를 끄고 이번엔 오디오를 켠다. 미리 준비를 해 놓았는지 바로 은은한 부
루스 경음악이 흐르는데 곡명까지 신경을 썼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대전발
0시50분'이다.
심금을 울리는 낮은 드럼소리를 깔고 낯익은 곡조의 색소폰멜로디가 흐느끼
듯이 울려오자 강표의 가슴도 약간은 센치해져 왔다.
" 아빠! 춤은 남자가 권하는 게 에티켙 아니에요? "
강표의 앞에 닥아온 지혜가 무릎을 약간 굽히며 생글거린다.
" 허어참! 이 녀석이 여러 가지로 준비를 해 뒀구나.. 그래.. 자! 아가씨
한곡 추실까요? "
강표도 정중한 자세로 팔을 내미는 흉내를 내며 지혜를 잡고는 '슬로우, 퀵
' 워킹을 내 디뎠다. 오늘도 지혜는 바로 찰싹 안겨 왔다. 기분좋을만치 오
르는 술기운에다 센치한 음악속에 몸을 실은 강표도 오랫만에 달콤한 무드
속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 아빠! "
" 음.. "
" 나.. 너무 기분좋은 거 있지.. 아빠랑 이렇게 춤을 추다니.. 꿈만 같애..
"
" 그래.. 아빠도 좋아.. 오랜만에 젊었을 적 기분이 살아 나는 걸.. "
그러나, 신경이 쓰이는 건 역시 젊고 싱싱한 육체와의 마찰이다. 오늘은 더
구나 지난번 보다 더 얇은 슬리핑가운이다 보니 지혜의 매끄러운 피부의 감
촉이 손에 잡힐 듯이 전해 온다.
더구나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두 번째 곡인 '명동부루스'의 전주곡이 나
오자 지혜가 대담하게도 강표의 오른 손을 잡아 당겨 자신의 엉덩이 위에
놓는다. 비단결같은 가운 아래로 바로 지혜의 보드라운 엉덩이살의 감촉이
느껴지자 놀란 강표가 얼른 손을 빼 버렸다. 그리고는 엉겁결에 몸을 떼며
안방을 향해 돌아서는데...
" 아빠! "
" 음.. "
" 그 날 한말 또 잊으셨어요?.. 제발 그러지 마요.. 솔직하게.. 자연스럽게
느껴요.. "
" 그래도.. 이 건 아니야.. 지금 집에는 너와 나밖에 없어.. 넌 내 딸이고
.. 내가 어떻게 감정 에 휩싸일지 모르잖니.. 아빠는 지금까지 그렇게 함부
로 살아오진 않았다.. "
" 그럼.. 좋아요.. 가세요.. 아빠! 하지만, 나중에 오늘 절 뿌리치신 걸 절
대 후회 안한다는 자신이 있으시다면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강표의 몸이 굳어진다.
' 그래.. 과연 지금 자신이 보이고 있는 행동은 솔직한 것인가.. 위선은 아
닌가... 지난날.. 지혜를 여자로 느낀적이 한번도 없었던가.. '
(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건 안돼... )
눈을 질끈 감은 강표가 다시 두어걸음 떼는데..
" 흐윽! "
지혜가 울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다시 발이 붙어 버렸다.
" 아빠!... 아빠는 온갖 부끄러운 기록이 다 적힌 제 일기도 보셨잖아요? "
순간, 뒷골이 써늘해지는 강표...
" 그걸.. 네가.. 어..어떻게.. "
" 그 일기는 제 비밀중의 비밀인데.. 어떻게 함부로 할 수 있었겠어요.. 일
기장 맨 앞에 조그 만 셀룰로이드 종이를 넣어 뒀었어요.. 그게 빠지고 없
더라구요.. 누굴까 생각했죠... 가족 중의 한사람은 틀림없는데.. "
" 그런데, 어떻게 나라고 생각했니? "
" 제 방은 숙녀방이에요.. 그날 저녁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연한 담배내음
이 나더라구요.. 우리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아빠와 준호인데 그 날
준호는 나보다 늦게 집에 들어 왔다구요.. "
" ........ "
" 그리고.. 또.. 그 다음날부터 이상하게 아빠가 절 보는 눈이 전과 다르더
란 말예요.. 식탁에서 한번 일부러 노브라를 하고 앉아 봤더니.. 아빠의 눈
이 계속 저의 가슴쪽으로 향하는 걸 느꼈어요... "
" ........ "
" 아빠는 이미 나의 벌거벗은 몸을 다 본거나 마찬가지에요.. "
" ........ "
" 아빠! 전 언젠가 그 날을 잊지 못해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인가 때...
심한 일본뇌염을 앓 아 누운 적이 있잖아요? "
" ....!!.... "
" 그 때.. 밤을 새우면서 병실에서 제 머리에 얼음찜질을 해 주시던 아빠의
모습... "
" 그건 이 세상의 아빠라면 누구나 그렇게 하는 거다.. "
" 아네요.. 전 알아요.. 얼음찜질을 해주면서 간간이 우시던 모습.. 새벽까
지 움푹 패인 충혈 된 눈으로 제 곁을 지켜주시던 모습은 여늬 아빠와는 다
르셨어요.. 전.. 그 때 아빠가 아 니었으면 아마 죽었거나.. 살아도 병신이
되었을지도 몰라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살아야겠다고 모질게 마음
을 먹었었거던요.. 전.. 다시 태어난 거에요.. 아빠 덕분에.... "
" ........ '
" 그리구... 아빠!.. '
" ........ "
" 내가 엄마를 많이 닮았다면서요?... 아빤 저한테서 친엄마를 느끼고 계신
건 아니에요? 엄 마를 정말 사랑했었죠?.. 그렇죠? "
" 지혜야! "
엎어지듯이 돌아선 강표는 지혜를 와락 안았다.
" 아빠아! "
기다렸다는 듯 지혜도 강표의 품속을 파고 들었다.
잠시 쇼파에 기댄채로 지혜을 안고 있던 강표가 이윽고 얼굴을 들었다.
" 지혜야.. "
" 네.. 아빠.. "
" 내..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
" 말씀드렸잖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해요... 오늘 밤만.. 딱 오늘 하루밤
만.. 내가 아빠에게 돌아가신 엄마 대신이 되어줄게요.. "
" 그.. 그렇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니... 넌 엄연한 내 친딸이고.. 내일
도 모레도 또 마주 대 해야 하는 가족인데... 하룻밤이라고 네가 어떻게 엄
마가 될 수 있니?.. 안돼.. "
" 아빠!... 전에 책을 읽었는데.. 앞으로 2~3십년 후면, 남자여자가 하는
섹스도 기계가 대신 하게 된대요... "
" 기계가 대신? "
" 네에... 두 사람이 동시에 머리에 전극이 꽂힌 헬멧 비슷한 걸 쓰고 있으
면 컴퓨터프로그 래밍으로 똑 같은 꿈을 꾼대요.. 같이 섹스하는.. '
" 그래서..? "
" 아빠와 나도 그런 꿈을 한번 꿨다고 생각해요.. 꼭 같은 꿈을요.. 나중에
꿈꾼 걸 시비할 사람은 없잖아요... 안 그래요? "
" 설사 꿈이래도 널 엄마 대신으로 삼을 순 없다.. "
" 꼭 그러시다면.. 아빠.. 한마디만 해줘요.. 날 여자로 생각해 보신 적이
한번도 없으세요? "
" 그... 그건... "
" 그렇죠? 그럼.. 지혜 소원 들어줘요.. 네? 지혜는요... 딱 한번은 아빠한
테 여자가 되어주 기로 했거든요.. 그 대신, 마지막 선만 넘지 않키루요..
어때요? 그것두 안되겠어요?,,, "
" .... !! .... "
" 네에?... 아빠아? "
" 그래.. 나도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 어쨌던 네가 말한 한 가지는 맞
는지 몰라.. "
" 뭐를요? "
" 아빠도 가끔은 지혜 네가 딸이 아닌 여자로 보일 때가 있다는 거... 그리
고 지혜 네가 너 무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