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준과 기수 어머니 6
그로부터 6년, 1983년 5월 1일
수술 메스를 든 과장은 조심스레 자궁에 열기 시작했다. 붉은 피가 갈라진 자궁으로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과장은 튀는 혈액을 밀어 내며 절개 부위를 깊히 했다. 자궁이 뚫리고 또 양막이 터지자 맑은 양수가 터져 나
오며 태아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과장은 양손의 검지 손가락을 자궁에 열린 틈으로 밀어 넣어 양측으로 자궁
을 찢듯이 벌렸다. 이것은 병준이 좋아하는 수술 방법이 아니었다. 가위로 자궁 근육 층을 자르는 것이 후에
봉합하기에도 편했는 데 과장의 급한 성격으로는 그럴 수 가 없는 모양이었다. 김 선생이 산모 배에 올라타듯
이 산모의 배를 누르자 태아가 찡그린 얼굴을 세상에 내어 밀었다. 병준은 스포이드로 코와 입에 들어 있는
양수 등의 분비물을 뽑아 냈다. 과장은 태아 머리를 잡아 몸 전체를 산모의 몸에서부터 잡아 꺼냈다. 태아의
가슴을 쥐어 짜듯 훑어 자극을 주자 이윽고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탯줄을 김선생이 기구로 두군데를 잡자 과
장이 그 사이를 가위로 잘랐다.
병준이 태아를 들어 기다리고 있는 신생아실 간호원에 전해 주었다. 누가 태어나는 것이 아름답고 신비한 순
간이라고 미화했는지 궁금했다. 그는 아기 낳는 과정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라고 병준은 생각하
고 있었다. 병준은 다시 과장 옆에서 시야를 가리는 피를 닦았다. 과장의 거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궁
근육 층을 두 겹으로 꿰매고 난 후에야 큰 출혈은 없어졌다.
이것으로 숨가쁜 시간은 다 지난 것이다. 이제부터는 과장의 재미없는 농담에 웃어 주거나 낯뜨거운 농담에
맞장구치는 김 선생의 재주를 관람해야할 시간이었다.
"과장님처럼 수술을 빨리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김 선생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한 아부는 당
당한 신념 같아 보인다. 병준은 당당하게 아부할 수 있는 김 선생이 신기했다.
"나머지는 김 선생이 닫아 줘."
과장이 니들홀더를 김 선생에게 주며 기분 좋게 물러섰다. 맹수가 먹다 남긴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김
선생은 기뻐했다. 그러나 병준으로서는 또다시 김 선생의 잔소리를 들어야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김 선생 복
막부터 닫기 시작했다. 그는 솜씨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도리어 훌륭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병준이 그를 싫
어하는 것은 그가 옳지 못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의 판단이 옳았다. 그런데 자신이 옳다는 것을
그 자신이 지나치게 내세우는 점이 병준으로서는 싫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미움이었다.
그를 싫어하는 것은 병준뿐이 아니었다. 다른 동료 수련의 뿐 아니라 심지어는 수술실 간호원과 마취과 간
호원들도 그를 미워하는 것 같았다.
"지금 분만실에 산모 몇 있지?"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다.
"다 잘 될 것 같아?" 이것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다.
그는 수술실에 들어오기 전에 분만실 산모를 점검한 것이 틀림없다.
"별 문제 없으면 인턴하고 해결하고 끝나면 연락해. 끝나야 오늘 회식 나간다.."
피부 봉합이 끝나자 김 선생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술실을 나갔다. 혼자 환자를 회복실까지 나르는 것은 무척
힘든다.
"좀 같이 날라주면 안돼나." 여지껏 아무 말없던 간호원이 불평했다. 병준과 간호원이 환자를 들어 이동 침대
에 옮길 때 마취과 의사가 환자 머리를 들어주었다.
병준은 회복실에서 수술지를 썼다. 이 병원은 수술도 많아 조금만 늑장 피우면 일이 한없이 밀려 버린다.
"파견 나오셨어요."
커피를 들고 간호원이 병준에게 물었다. 병준을 위해 커피를 탄 모양이었다. 눈동자가 까만 간호원이었다. 같
이 수술했던 간호원인지 알아 차렸다. 마스크를 벗은 그녀는 예쁘장하게 생겼다.
"예, 어제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병준이 커피를 받으며 인사했다.
"오늘 회식 있죠?"
"예. 같이 나가시는 것 아닌가요?"
산부인과는 보통 수술실과 마취과 간호원들과 같이 회식에 나갔다.
"갈까 말까 해요." 그녀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병준이 마신 커피 잔을 받아 들고 수술 준비실로 돌아갔다.
병준은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귀여운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회식은 병준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과 김선생의 파견 근무가 그 명목이었으며 과장님 이하 이
병원 산부인과의 전 스태프가 참석하는 자리인지라 자리를 빠질 수 없었다. 8시가 넘어서야 병준은 회식 장소
에 도착했다.
붙어 있는 큰 건물 둘이 모두 같은 집으로 손님이 가득차 있었다. 먼저 와 있는 동료를 찾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느티나무 집은 영동에 생긴지 십 년이 넘는 유명한 고기 집이며, 병원 특히 산부인과 단골집이라고
했다.
음식점은 연기에 가득 차 있었다. 회식의 분위기는 이미 파장이었다. 모두들 거나해져 뒤로 기대어 제각기 떠
들고 있었다. 병준이 방에 들어서자 과장님의 술잔을 받은 그를 김 선생이 불러 자신의 옆에 앉혔다.
술을 한잔 받고 병준은 일어서 자신을 소개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 중에서 눈이 까만 간호원도 있었
다. 짧은 시간에 병준은 많은 술을 마셨다. 일차 배를 채운 그들이 이차로 가는 곳은 항상 일정했던 것 같았
다.
과장님이 직접 계산하러 간 사이에 김선생이 이차로 갈 곳을 일행에게 가르쳐 주었다. 물론 과장님은 여기서
부터는 빠지실 것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박 선생, 자네 이 집 주인과 잘 아는 사이인가?"
처음에 병준은 과장님이 자신에게 묻는 것이라고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처음 오는 집이였기 때문이었다.
"자네를 봐서 계산을 안하겠 데내, 자네가 한번 가 보게."
자신을 뒤쫒는 김선생의 시선을 의식하며 병준은 카운터에 갔다. 무언가 착오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병준을
봐서 계산을 음식점 주인이 하지 않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집 주인이 병준을 알 리가 없었다. 여기 오기 직전까지 병준은 이런 음식점이 있는 지도 몰랐었다. 카운터
의 아가씨는 사장님은 이층 사무실에 계신다고 했다. 병준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에도 큰 홀이 있었다. 엄
청난 규모의 음식점이란 생각을 다시 하며 종업원에게 물어 사장을 찾자 사무실을 가르쳐 주었다.
병준은 망설이다가 노크를 했다.
안에서 '들어 오세요'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병준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 책상에 앉아 있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병준을 향해 두 손을 들어올리며 크게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누군지를 파악하는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아--아. 병준은 놀라 제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
기수,
기수의...
그녀는 바로 기수의 어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