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준과 기수 어머니 3
: 1971년 2월
이번에는 학준이가 결국 퇴학을 당했다. 할머니가 그렇게 학교를 쫒아다니시며 담임 선생님에게 부탁을
드렸는데도, 본인이 계속 학교에 나타나지 않아 학교에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눈물만
흘리시는 할머니를 보다 못해 병준이 그를 찾아 나섰다.
그가 있는 곳을 병준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그를 찾지않은 것은 학준이 이미 병준의 말을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준이는 동생 학준이가 가여웠다.
그리고 또 그가 두려웠다.
한 살 아래인 동생은 병준보다 훨씬 컸다. 그러나 그의 큰 몸이 병준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병준은
열흘만에 집에 들어 온 동생에게 손을 댄 적이 있었다.
갑자기 날아드는 병준의 주먹에 그의 입술이 터졌다. 그러나 그는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흘러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느릿느릿 병준에게 말했다.
"나도.... 형이.... 싫어.... 지금.... 나가라면.... 다시.... 나가겠어....,그렇지만 나한테 다신.... 손.... 대지마."
그리고 그가 계속해서 한 말이 '죽어 버리겠어'였는지 '죽여 버리겠어'인지는 확실히 듣지 못했다. 그것이
무엇이었던간에 그가 한 말은 사실일 것 같았다. 허풍떠는 것이 아니란 것을 그의 눈빛에서 알 수 있었다.
병준이 두려워하는 것은 동생 학준의 눈빛이었다. 실제 그후로 병준이 동생에게 손을 댄 적은 없었다.
병준이 찾아 간 곳에는 학준이는 없었다.
화장이 지워져 눈썹이 없는 여자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병준을 아래위로 훑어 보면서도 말하기도 귀찮은 듯
고개만 저었다. 웨이터인 듯한 남자는 병문의 물음에 대답도 않고 주간지만을 뒤적였다. 병준은 지하실에서
나와 건물에 붙은 간판을 쳐다 보았다.
무교동 뒷골목에는 비슷한 술집이 너무 많았다. 병준이 무교동까지 찾아 간 것은 동생 학준이가 그곳에서
술집에 손님을 끌어가는 삐끼 일을 한다는 소리를 들어서였다. 병준에게 학준이의 있는 곳을 가르켜준 학준이
친구 녀석은 술집 이름까지 가르켜 주었으나, 그 집에서 학준이를 모른다는 데에는 더 이상 그를 찾을 길이
없었다. 병준은 다시 확인하러 학준이 친구를 찾아 아현동 시장 바닥을 누볐으나 이젠 그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점차 어두워지는 길을 따라 병준은 집으로 향했다. 다시 무교동에 나가 학준을 찾을까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그를 찾았다하더라도 그가 병준을 좇아 집에 돌아올 리 없었다. 아현동 고개 길을 따라 수많은 작부집을 지나
설치 다방의 간판이 보였다.
병준은 기수는 어찌되었는가 궁금했다. 밖이 어두워서인지 다방 안이 들여다 보였다. 병준은 계단을 따라
이층 살림집 초인종을 눌렀다. 역시 아무 대답이 없었다.
병준은 다시 계단을 내려와 다방 안을 기웃거렸다. 아무도 없어 보였다. 병준은 다방 문을 조금 열고 안을
살펴보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습관처럼 어서 오세요라며 카운터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소리쳤으나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병준을 확인하고는 얼굴 표정이 금방 바뀌었다. 병준은 몸을 반만 안으로 디밀고 기수
어머니를 찾았다. 기수 어머니도 그제서야 병준을 보았다.
그녀는 안쪽 테이블에 손님과 같이 앉아 있었다. 기수 어머니가 병준을 반갑게 맞이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등돌리고 앉아 있던 손님이 뒤를 돌아 병준을 바라보았다.
병준은 그 손님이 우원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흠칫 놀라고 말았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왠지 금은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다방을 나서려는데 기수 어머니가
달려나오며 병준의 손을 잡고 다방 안으로 이끌었다.
병준은 그녀에 끌려 우원장 는 곳과 떨어진 테이블에 기수 어머니와 마주 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그녀는 큰 소리로 카운터에 앉아 있던 아가씨에게 쌍화차를 갖다 달라고 하였다. 병준의 생각에 아마 화차가
그곳에서 가장 좋은 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준이 묻기도 전에 기수 어머니가 기수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기수는 횡성의 할머니 집에 있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에서는 그래도 그에게 졸업장을 주었다고 했다.
기수는 그곳에서 0할머니를 도와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었다.
대학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병준의 물음에 기수 어머니의 얼굴이 다소 어두워졌다. 대학은 가까운 원주의
전문대학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병준도 애써 밝은 얼굴로 다방에서 나섰지만 마음은 우울했다.
병준이 혜숙의 집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가 넘어서였다. 병준은 그녀의 집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혜숙이 부모가 그를 집으로 부른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병준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들도 그것이 쉬운
결정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병준은 갑자기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