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글,231연결)병준과 이모3
기숙사에서 짐을 싸갖고 집에 돌아 온 날 병준은 이모의 전화를 받았다. 이모는 집에 전화를 자
주 했었던 모양이다. 집안 사정에 대해 그리고 병준에 대해서 이모는 잘 알고 있었다. 병준이 집
에 돌아 오는 날 까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병준이 이모의 전화를 직접 받은 것은 상당히 오랜만
이었다. 이모는 시험도 끝났으니 제주에 놀러오라고 당부했다. 좋은 일을 많이 만들어 주겠다고
도 했다.
이모의 전화를 받은 병준은 불현듯 이모가 그리워졌다. 이모가 병준에게 보여주었던 따뜻한 사랑
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병준은 입대하기 전에 이모를 안나기로 마음 먹었다.
제주까지 김포 공항에서 한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행 가방을 찾아 출구를 나서며 이모가 어떻게 변했는 지 궁금했다. 사년 전 이모가 서울을 떠
날 때만 해도 이모는 참 예뻤다. 큰 키에 옷차림도 세련되어 병준 또래의 여학생보다 훨씬 낳았
다. 이젠 아주머니가 되지는 않았는지...
"병준아. 여기야. 여기." 이모가 병준을 먼저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크게 소리
치는 이모를 쳐다 보았다. 이모는 더욱 예쁘고 세련되어 보였다. 바지와 반코트를 입은 평범한
차림이었으나 어쩐지 유복한 여자인 것 같아 보였다.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 않고 이모는 병준을
끌어안 듯 반가워 했다.
"이모는 훨씬 멋 있어졌네." 병준이 칭찬햇다.
"나야 항상 멋 있었지." 둘은 같이 웃었다. 둘 사이의 사년이란 시간은 단 하루 이틀 정도의 비
중 밖에 차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모는 병준의 팔장을 끼고 공항 주차장으로 병준을 데려 갔다. 병준은 이모가 차를 운전하는 줄
은 몰랐다.
아직 초보라고 말하는 이모는 운전에 능숙한 것 같았다.
"돈 많이 벌었나 봐?' 병준이 물었다.
"이모부네 집이 원래 부자잖아." 이모가 웃으며 말했다.
이모의 집은 공항에서 멀지 않은 단독 주택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이모의
집은 서을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특별히 설계해 지은 집이었다. 지하 차고의 문이 리모컨으로 작
동되어 저절로 열렸다.병준은 다시 한번 놀랐다. 병준은 이모가 여유있는 집안에 시집갔다는 소
리를 들은 적은 있는 것 같았으나 이 정도로 사는 지는 모르고 있었다.
병준의 눈에 거실도 호사스러웠다. 큰 일제 TV도 그렇고 오디오 세트도 훌륭했다. 병준은 가죽
소파에 앉았다. 푹신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이모가 차를 끓여 내왔다.
"이젠 너도 아저씨 티가 난다."
"이모는 아줌마 티가 나고?" 병준이 대들었다.
"그럼 큰일이게, 애 안난 여자는 처녀야. 그래서 나도 당연히 미스지."
이모는 아직 애가 없었다. 결혼 초에는 결혼 자체가 불안정하여 피임했으나 지금은 애가 생기지
않아 걱정인 듯했다. 모두 할머니를 통해 들은 이야기였다. 이모는 궁금한 게 많았다. 할머니는
어떻신지, 학준이는 좀 착실해 졌는지 등등... 할머니가 요즘 몸이 좋지 않으셔 매알 병원에 다
니신다는 말엔 눈물을 글썽였다.
이모는 얘기하다말고 전화기를 들었다.
할머니가 바로 받으셨다.
병준이 잘 도착했으며 몸이 어떻시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으니 병준이가 가서 네가 힘들겠다' 할머니가 도리어 이모를 걱정했다. '남편을 잘 위
해야, 남자가 바람 피지 않는다'는 말도 또 덧붙였다.
"할머니는 여전 하시구나." 병준을 보고 이모가 웃었다.
이모부는 일본에 출장가서 일요일에나 돌아온다고 했다.
출장이 많은 것 같았다.
혼자 큰 집에서 무섭지 않냐는 물음에 친구가 와서 같이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혼자 사는
고등학교 친구가 자주 온다고 했다.
둘이 지난 얘기로 웃고 떠드는 중에 도어 벨이 울렸다.
이모가 일어서며 말했다. "지금 말한 그 친굴꺼야. 내가 오라고 했어."
문을 열어주려 나가며 불필요한 말을 덧붙였다. "예쁘게 생겼다." 그리고 눈까지 찡긋 사인을 보
냈다.
병준은 이모가 전화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 말이 이모의 친구와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모는 큰 웃음 소리를 내며 친구를 맞았다.
이모의 말대로 그녀는 예쁘장했다. 이모처럼 화사한 느낌은 없었으나 보통 혼자 사는 여자가 갖
기 쉬운 어두운 구석은 없어 보였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병준이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나 그녀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병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병준은 엉거주춤 악수를 받
았다. 그녀가 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숙희가 말한대로네요. 정말 숙희하고 많이 닮았다!." 감
탄하듯 그녀가 말했다.
"이모 친구, 정순이야. 이정순. 내 말대로 예쁘게 생겼지? 이모 친구니까, 앞으로는 정순이 아줌
마라고 불러." 이모가 친구를 놀렸다.
"어머... 아줌마가 뭐니? 저.... 저를 그냥 정순씨..... 아니면 미스 리.... 이렇게 불러 주세
요." 그녀는 이모의 어깨를 밀어 내며 병준에게 부탁했다.
"얘가 나보고도 아줌마래." 이모가 친구에게 병준을 비난했다.
"넌 진짜 이모 아줌마잖아." 이번엔 친구가 이모를 놀렸다. 사실 엄마의 사촌 동생이니 이모가
친 이모는 아니었다. 이모는 친구에게 눈을 흘겼다. 병준은 이모와 이모 친구 모두의 명랑한 성
격이 정말 좋았다.
셋은 저녁을 바닷가에 나가 생선회를 먹기로 하였다.
술을 마시게 될 것이 분명하여 차를 두고 택시를 타고 가기로 하였다. 시내는 겨울 등산객과 관
광객으로 흥청대고 있었다. 제주에서도 택시를 잡기 어려운 것은 서울과 마찬가지였다.
셋은 차라리 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버스 역시 만원이라 남자들도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이모는 정순씨보다 안쪽에 자리잡아 좌석의
손잡이를 잡을 수 있어 상대적으로 편한 위치를 잡고 있었으나, 버스 천장의 손잡이를 잡은 병준
이와 이모와의 사이에 끼인 정순은 어느 것도 잡을 것이 없어 공중에 떠있는 상태였다. 병준이는
무의식중에 정순을 주위의 압박으로부터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다. 자연히 병준이의 몸은 정순과
밀착됐다
문이 닫히고 버스가 출발하자 여기저기서 등산객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서울 보다 더 하잖아."
``놀러 왔으니까 다 좋게 생각해." 그런 대화들이 들려왔다.
병준으로서는 정순씨의 바로 뒤에 서면 더 편할 것 같았으나 그렇다고 그녀의 등과 자신의 배를
밀착하고 설 수가 없어 약간 몸을 빗겨 섰다. 그러다보니 병준이 정순씨의 팔을 안고 선 꼴이 되
었다. 차안은 혼잡했기 때문에 몸을 쉽게 빼낼 수도 없었다.
병준이의 오른손은 천장의 손잡이를 잡기 위해 올린 채였으며, 왼쪽 손은 정순의 어깨 위에 올려
져 있었으나 실은 손을 내릴 만한 공간도 없었으므로 그런 자세를 계속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불편하시죠 ? "
``아니 괜찮습니다. '
몇 마디 말을 주고 받는 사이에 정순의 머리는 병준이의 턱 바로 밑에까지 와 있었다. 검은 머
리카락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정순이 들고 있는 핸드백이 병준이의 허벅지에 닿아 딱딱하게 느껴졌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병
준이의 허벅지에 정순의 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허벅지 윗 부분을 압박했
다. 버스가 거세게 흔들릴 때마다 정순의 손은 더욱 세게 느껴졌다.
당연히 정순의 손등은 병준이의 몸에 닿기도 했다.
버스의 흔들림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병준이는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흥분을 느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손등이 무엇을 압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걸까? '
정순의 힘들어하는 얼굴 표정으로 봐서는 그런 것을 의식할 만한 여유가 없는 듯했다. 만약 의식
했다면 손을 딴 곳으로 가져갔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버스는 서행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멈춰 버렸다.
``무슨 일이지 ?"
이모가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말했다. 하긴 뒤를 돌아다 볼 공간도 없었다.
``앞이 정체돼서 신호를 기다리는 거겠죠."
``나야 괜찮지만, 병준씨는 시장하겠네요." 정순씨가 병준을 걱정해 주었다.
``아니, 뭐 별로 배 고프지는 않습니다."
버스가 멈췄을 때 승객들의 흔들림으로 정순의 손등이 병준이의 허벅지 가운데로 옮겨졌다. 정
면으로 그곳을 눌렀다. 정순의 손등을 느끼고 있는 그곳은 전에 이모의 손이 닿았던 곳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선명했다.
그러나 이모가 제주로 떠난 이후로 그런 일은 두번 다시 없었으며, 병준이와 이모는 아무 일 없
었던 듯이 지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모 역시 그 일을 잊었을 리는 없었다. 이모가 동정심으로 어루만졌던 그것에 지금은 간
접적이긴 하기만 그의 친구인 정순의 손이 와 닿아있다,
"잠자코 곱게 그대로 있어 주라' 병준이가 마음속으로 이렇게 타이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
은 충혈되기 시작했다.
급속히 뜨거워 졌다.
오히려 정순의 손등을 누르기 시작했으니, 손등을 느끼자 더욱 더 발기하여 맥박까지 뛰는 것이
느껴졌다. 병준이 억지로 몸을 뒤로 뺐으나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손이 좁
은 공간에 밀려 자연스레 따라 왔기 때문이었다. .
차내는 초만원을 이루고 있는데다가 멈춰 서 있었어도 버스의 히터는 계속 작동하여 후덥지근한
공기 차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순의 이마에는 땀방울까지 맺히는 것 같았다.
`나의 이것을 의식할 만한 여유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 .
병준이는 정순의 어깨를 안은 손을 내리고는 ``땀이 많이 나는군요. 힘드시죠 ?"라고 말하며 이
모를 바라보았다.
이모는 아직도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빼 창 밖을 살피고 있었다.
``괜찮아요.'
작은 소리로 정순이 말했다. 그때, 갑자기 버스가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바람에 그 반동으로 승
객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의외의 사태가 발생했다.
기우뚱하면서 병준이가 정순을 안아 버린 것이다.
그것은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와 동시에 정순가 넘어지지 않으
려 하다가 병준이의 그것을 잡은 것이었다.
부딪힌 것이 아니고 분명히 손으로 그것을 잡았던 것이다.
병준이는 그녀가 그의 상태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느꼈다.
차의 움직임을 이용해 병준의 상태를 보다 확실히 확인한 것이 분명하다.
곧바로 그 손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정순의 머리가 병준이의 어깨에 살짝 부딪쳤다.
`미안해요,"
그녀는 소리내지 않았으나 입모양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앗다.
"아닙니다."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답한 병준이는 정순의 말에 들어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자기가 무엇을 만졌는지 정순씨는 분명히 느꼈던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잡은 건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잡고 나서는 그것을 의식했다는 표현이었다.
병준이는,``오히려 제가 ,,,.'정순씨처럼 낮은 목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이제 다시 아까처럼 병준이의 그것은 다시 정순의 손등을 누르는 형상이 되었다. 한 땐 잡혔던
감각 때문에 병준이의 그곳은 이제 완전히 흥분된 상태였다. 그것이 정순의 손등을 압박했다. 사
방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에 병준이는 허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순의 작은 손은 그
곳을 빠져 나갈 수 있을텐데도 움직이지 않고 병준이의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병준이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정순은 얼굴을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정순은 지금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왜 잡았던 걸까 ? 넘어지려고 할 때 반사적으로 뭔가를 붙잡으려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장 손쉽
게 잡을 수 있는 곳이 하필이면 왜 그곳이었을까 ? 아까부터 의식하고 있으면서, 확인해 보고 싶
은 충동으로 차가 흔들리는 순간,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일까 ? '
그렇게 생각하는 병준이의 마음에는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정순씨가 정숙한 독신녀라기 보다는 끓
는 욕망을 감추고 있는 여자라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 일 수도 있었다.
버스는 다시 서행하기 시작하더니 또 다시 정차했다. 병준이는 정순의 흰 목덜미에 땀방울이 맺
혀 있는 것을 봤다. 이번에는 이상한 감정으로 정순의 손등을 누르고 있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
각하고 있는지 확인할 겸, 분위기를 바꾸어 곤란한 상황도 벗어나 볼 겸하여 말을 꺼냈다.
``여기서 먼가요? " 바닷가가 얼마나 먼지 물어봤다.
"아뇨. 멀지 않아요."
``차를 갖고나올 걸 그랬나 보다." 이모가 억지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병준은 괜히 당황하여
정순씨와의 거리를 넓히려 하였다. 그런 걸 본 이모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정순의 눈치를 살피
는 것 같았다.
"기왕 탔는데 조금 더 기다리지 뭐." 정순의 목소리는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모에게 눈치채이는 것도 곤란하지만 나중에라도 이모에게 이런 상황을 이야기한다면 병준이로
서는 여간 난처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한다는 것은 병준
이의 상태를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되어 병준은 다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서울보다 더 복잡하죠? 지금이 한창 겨울 등반 씨즌인데다 오늘이 토요일이라서 더해요. 그래
도 잘 나왔어요."
별다른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겠지만 병준이의 가슴은 다시 두근거렸다.
병준이에게는 은밀한 고백처럼 들리기도 했던 것이다.
이모 역시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다시 돌아 보고 병준이를 향해 웃는 것 같았다. 약간 짖꿋은
표정으로.
돌아서 있는 정순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뒤에 선 병준이도 느낄 수 있었다.
정차한 상태에서 그러한 말이 오고간 뒤, 정순의 손이 뭔가 병준이에게 신호를 보내는 듯한 움직
임을 병준이는 느낄 수 있었다. 극히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민감한 부분인만큼 확실히 느꼈다. 주
위의 동요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고 의식적인 움직임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치워 달라는 무언의 항의일까 ? ,정순씨는 사려 깊은 사람이니 나에게 눈치를 주지 않으려고 그
렇게 은밀한 움직임을 보인 걸까 ?
병준이의 그곳이 쉽게 평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한번 그렇게 돼 버리면 좀체 평
정을 되찾기가 힘들었다, 특히 지금은 더 그랬다. 이모가 앞에 있다는 사실 때문일까. 병준은 좀
더 모험을 시도하였다.
병준이는 정순의 어깨에 얹어 놓았던 손에 약간의 힘을 넣으며 고개를 돌려 귀에다 입을 갖다댔
다.
``저어 , ,,,. 죄송합니다."
이모가 들어도 눈치챌 수 없는 말이었다. 더구나 주위는 사람들이 얘기를 주고받느라고 산만했
다. 그러므로 병준이의 목소리는 정순에게 밖에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정순씨는 고개를 끄덕
였다. 그리고 손등이 움직임이 다시 한번 강하게 병준이에게 느껴졌다. 그것은 화가 나지 않았으
니 안심해요'라는 움직임인 것 같았다.
병준이는 그 움직임을 확인하고 다시 은밀히 속삭였다.
``자연 현상입니다."
정순씨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너무 많이 지껄이면 주위에서 눈치챌 염려가 있었다. 이모는 그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고 다시 창 밖을 내다 보며 혼자 말했다.
"어휴... 갑갑해."
순간 병준은 무언가 어색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이모가 눈치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치챘으나 모르는 척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난처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상황을 더욱 진행시켜 보라는 허락의 뜻인 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떤 경우이던 간에 병준은 이모
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꼈다.
이윽고 창 밖으로 목을 내밀고. 있던 맞은 편의 남자가 "자 이제 가자" 라고 외치자 그것이 출발
신호라도 된 듯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지되어 있던 차가 움직이자 승객들이 한 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qahen 몸의 중심을 찾았을 때,
다시 정순의 손바닥이 방향을 바꿔 병준이의 몸을 꽉 잡았다.
숨이 막히는 긴장이 rkj``앗" 병준이가 낮게 외치자 정순의 손은 곧 풀리면서 제자리로 갔다. 엄
지와 검지의 힘이 아직 거기에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크기까지 확인되었다." 그럴리는 없었겠지만 병준이의 크기에 대해 이모가 정순에게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항상 이런가요 ?"
설마 크기가 작다는 뜻으로 물은 것은 아니겠지. 대답하기 곤란한 병준은 돌아서 있는 이모의 긴
머리에 꽂힌 헤어핀을 바라다 보았다. 버스는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제주의 겨울 밤은 바다의 끈끈한 냄새를 갖고 있었다.
이모는 술을 제법 마실 줄 알았다. 정순도 처음엔 마다했으나 이모와 병준의 권에 못이겨 몇잔을
마시고는 발개진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병준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자 이모와 정순씨는 갑자기 둘이서 하던 말을 멈추고 밖을 내다 보
는 척하였다.
이모는 분명 웃음을 참고 있었고 정순의 얼굴은 더욱 달아져 있었다. 병준은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내 흉 봤죠?"
"아니다. 흉 안봤다. 자연 현상인데 뭘." 정순씨는 펄쩍 뛰며 이모를 말렸으나 이모가 결국 웃음
을 터뜨리고 말았다. 병준은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정순을 보았다.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정
순의 눈은 끈끈한 빛을 띠고 있었다.
"너 이제 큰일 났다. 젊은 과부 바람들여 놔서." 짖꿎은 이모였다.
"군에는 며칠 날 들어 가세요?" 정순씨는 화제를 돌렸다.
"2월 3일, 대구로 갑니다."
"한창 추울 때네요. 대구는 춥대던데."
"혜숙이는 지금 안 만나니? 그애 혜숙이 맞지. 머리 길게 기르고, 집에 가끔 놀러오던 애." 이모
는 기억력도 좋았다. 이모가 벌컥 문을 열어 당황했던 때가 생각났다. 혜숙이가 위에 올라가 병
준을 안고 있었다. 병준은 별로 당황해 하지 않던 혜숙을 보고 더욱 놀랬었다. 그때 혜숙은 이
모가 문 닫고 나간 후에도 끝까지 절정을 느끼고야 병준에게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뭐 어때.
우리가 죄지은 건가 뭐."하며 부엌으로 나가 물을 떠왔다. 부엌에서 당황해 한 것은 도리혀 이
모였다. "오셨어요. 이모에게 인사하는 혜숙의 목소리도 낭낭하였다.
"애인인가 보죠?" 정순이 끼어 들었다.
"안 만난지 오래되요. 그때 헤어지고는 안만났어요." 그때란 사고로 병준이 누워 있었 때를 말했
다.
"얘는, 반말해도 돼. 내 조카고 나이도 네 동생뻘이다." 이모가 정순에게 말했다.
"그래도 어떻게 말을 놓니? 이렇게 큰 사람에게"
병준은 밤바다를 내다 보았다.
유쾌한 기분으로 저녁을 먹고 술도 한잔한 일행은 집에 돌아 오기 전에 셋이 모두 팔짱을 끼고
바닷가를 한번 돌았다. 오른 팔에 닿는 이모의 가슴은 부드러웠고 왼 팔에 닿는 정순씨의 가슴
은 탄탄하였다. 이모는 브래지어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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