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장에 어서오세요. 에필로그 1화
에필로그 마이
그리고 토라노스케는 바빠졌다.
병문안이라고 칭한 알현 희망자들이 대거 그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찔린 부상은 심각했지만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기 때문에 토라노스케로서는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대충 예상과는 달리 그의 신상을 걱정하는 문안이나 심려증같은 것들이 잔뜩 밀려왔다.
문병이라지만 입장은 제각각이다.
어느 기업의 사장도 있었고, 시장이나 현의회 등 정치가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토라노스케는 안면도 업무상의 관계도 없기 때문에 만나봤자 별로 의미도 없었고, 애초에 그쪽에서도 타무라 가문에 대한 의리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지 당주 자체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부상을 이유로 면회를 거절당했다면 말과 위문품, 약간의 돈만 두고 돌아갔다.
담백한 것이다.
혹은 아츠코에게 인사하는 것이 그들의 진정한 목적이겠지.
문제는 여자다.
즉 타무라의 인간. ──타무라의 친척 연지의 인간이다.
이거에 대해선 과연 아츠코들도 무턱대고 쫒아낼 수 없는 노릇이고 토라노스케도 당주로서 “나름대로” 그녀들을 상대하게 되었다. (원래 토라노스케의 당주로서의 역할은 “여자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므로 이것은 본래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토라노스케는 침대 위에서 그녀들의 교태와 친애 및 열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이와 다른 하렘 멤버들로부터 따가운 질투의 시선을 받는 신세가 됐다.
◇ ◇ ◇
「그러니까, 백랑오니는 쌍총아니면 해머가 안정적이라니까. 너, 왜 고집스럽게 건액스를 쓰냐고.」
「왜냐면 다른 건 갖고 있지 않아.」
「그러니까 신무기 만들라는 거잖아. 왜 모은 소재, 전부 건액스에 때려박냐.」
「“남자라면 미학을 가져라”라고, 아키히코씨가 말했으니……」
「거짓말이야, 거짓말! 저 녀석 진짜 효율충이라고!」
화창한 오후.
토라노스케는 병실의 침대에서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입원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몸 상태도 많이 회복됐고 무리한 움직임만 없다면 비디오 게임을 하며 놀 정도까진 회복할 수 있었다.
토라노스케와 마주보고 놀고 있는 사람은 금발의 청년──.
토라노스케보다 조금 나이 많은 그의 이름은 카자미야 히로토(風宮?人)라고 했다.
여섯 분가 중 카자미야가의 차기 당주다.
히로토가 아키히코와 함께 병문안을 온 것은, 토라노스케가 입원하고 이틀만의 일이었다.
──뭐랄까, 그 미안했다.
하야세 아키히코(速?明彦)와 함께 온 그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숙였다.
당연히 토라노스케는 깜짝 놀랐다.
히로토와는 접점이 없었다.
토라노스케로서는 사죄를 받을 이유 따위는 짚이지 않는 것이다.
──아니 뭐, 왠지 모르게, 말이지.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 히로토와 함께 있던 아키히코가.
──최근와서 그가 너의 성장 과정을 들은거야.
라고 설명했지만 그러한 설명을 들어도 토라노스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인생의 어디가 마음이 끌리는 부분이 있었는가. 「괴로웠겠지.」하고 신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려 봐도, 애매한 대답 밖에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카자미야 히로토라는 청년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상냥한 곳이 있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가끔 문병을 오는 두 사람과 토라노스케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히로토는 폐절 직전인 카자미야의 후계자인 입장에서. 또 아키히코는 같은 일족의 연장자로서, 여자의 사정으로 조종당하는 토라노스케에 대해 동정을 느끼고 있는 듯 싶었다.
◇ ◇ ◇
「좀 물어봐도 될까?」
라고, 노는 것을 멈추고 토라노스케가 묻자, 히로토는 수중에 있는 게임에서 얼굴을 들며,
「앙?」
「히로토는 쿠데타라고 생각해 본 적 있어?」
「쿠데타?」
「응, 쿠데타.」
「쿠데타란 일본 정부 상대를 말하는거야?」
「아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그런 뜻으로 말한건 아냐, 뭐랄까. 비유.」
「아아?」
「저기 그러니까, 타무라의 남자들이 여성진들로부터 권력을 빼앗는다든가.」
순간, 히로토는 눈을 흘기며 힐끗 토라노스케를 노려봤다.
좁은 병실 안에 희미한 긴장이 흘렀다.
「너 뭘 꾸미고 있냐? 그런 걸 물어봐서 어쩌게?」
「아, 아니 뭐 딱히 ……하지만.」
히로토는 게임기를 침대 옆 탁자에 내던지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싸구려 파이프 의자가 삐걱 소리를 냈다.
「바보같은 생각은 관둬, 네 처지는 동정하고 도와주고 싶긴 하지만.」
무리다.
라며 히로토는 손 안의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나는 자살을 도와줄 수 없어.」
「자, 자살?」
생각치 못한 말에 토라노스케는 숨을 삼켰다.
히로토는 고개를 끄덕이곤.
「상대가 나쁜거다. 완전 말이지. 넌 모르겠지만 난 어릴 적부터 봐왔어. 놈들도 알아. 나쁜 말은 하지 않겠다. 이상한 생각은 버려.」
「으, 응? 아니, 난 쿠데타 같은 건 안 할 거야.」
「아아, 그렇게 해. 그놈들에게 대들어 봐야 손해만 볼테니까. 그런 무리들이다. 괴롭겠지만 참을 수 밖에 없을 거다. 유라같은 애송이와 쿠레하같은 할멈 따위와 자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고통이겠지만.」
「에, 그러니까 저기.」
「윤리감이라는 것이 없으니까, 녀석들은, 애당초 이길리가 없어.」
「…………」
「어쨌든 참아라, 토라노스케. 기죽지 마. 조만간 내가 좋은 여자를 소개시켜줄테니까. 한 달에 한두번 뒤탈없이 놀 수 있는 여자를 말야. 타무라 패거리처럼 도가 지나치는 것이 아닌 보통의 여자들이다. 넌 그중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골라서 잘 해두면 좋은거야. 뭣하면 애인으로 해도 좋다. 그런 조건도 넣어서 찾아주마, 나와 아키히코가 말이지. 아니, 그렇게 비관할 필요도 없어. 너는 외모가 별로지만 다른 사람에게 주는 인상은 나쁘지 않으니까. 가엾은 처지의 후계자라고도 말하면, 분명 인기만점으로──」
거기까지 말한 히로토는 움찔 흘러 들어오는 바람에 허리를 띄웠다.
……보니 입구 쪽에 몇 명인가 서 있었다.
기모노차림의 여자── 연보라색의 맹주에 진한 파란색 오비를 달고, 흰 버선발과 짚신을 신은 산뜻한 그녀는, 카노 쿠레하(狩野紅葉)였다. 그 옆에는 흰 원피스 차림의 마이도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뒤에는, 검은 슈트를 입은 장신의 여성. ──토라노스케에겐 낯선 여자가 서있었다.
쿠레하는 싱긋 미소지었다.
마이는 미간을 찌푸린 채 금방이라도 사살할 듯한 시선으로 히로토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야, 웬 일이니, 히로토. 계속해 줘. 즐겁게 얘기하고 있었잖니? 도련님이 인기가 많아져서 어떻게 된다고?」
「쿠, 쿠레핫── ……씨. 도, 도대체 언제부터.」
「언제부터? 그렇네에, 쿠레하 할멈이랑 자는 것은 최악──으로, 그 근처였을까? 으응, 물론, 확실하게 들렸지만 그게 무슨 일이라도? 아아, 그보다 먼저 담배부터 끄렴. 여긴 병원이잖니.」
말문이 막힌 히로토의 얼굴이 보기에도 땀에 젖기 시작했다.
세 명의 여성 손님은 천천히 침대를 둘러싸듯이 들어왔다.
히로토는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크, 크흠」 헛기침을 하며 담배를 휴대용 재떨이에 쑤셔 넣었다.
「자, 잠깐 급한 일이 생각났다. 미, 미안한데 토라노스케. 오늘은 이만 돌아갈게. 나중에 메일 보내줘.」
「자, 잠깐 히로토──」
「미안해, 나머진 혼자서 어떻게든 해 줘 ……내겐 무리라고.」
말하고 허둥지둥 병실을 나갔다.
이제 남은 건 토라노스케와 세 여자뿐이었다.
쿠레하는 웃는 얼굴로, 불온한 것을 잔뜩 불태우듯 마이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키 큰 여자는 혼자, 그립다는 듯이 토라노스케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그래서, 그 바보랑 무슨 의논을 한거야?」
라고.
마이는 토라노스케 옆에 자리를 잡더니 먼저 그런 말을 하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벼, 별로 아무것도 아냐.」
「거짓말하고 있네. 어차피 쓸데없는 것으로 정해져 있어.」
「그렇지 않아.」
「글쎄. 그럼 왜 바람이라는 둥 애인이라는 둥 하는 얘길했어?」
「그런 거창한 얘기는 아니야. 히, 히로토가 말야, 이번에 소개팅한다고 해서.」
「소개팅? 안 돼, 그런건 용서못해.」
「그, 그렇지.」
「애당초 이만큼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 아직도 다른 여자하고 어떻게 뭔가 하고 싶은 거야? 아무래도 너무 무절조한거 아냐?」
「여자들하고, 어떻게 한다니 생각도 안해.」
「정말루?」
「정말, 진짜.」
노려보는 마이에게 토라노스케는 가장된 웃음을 돌려주었다.
본심이다.
히로토의 마음은 고맙지만, 더 이상 교제할 상대를 늘리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영양제를 먹고 있다곤 해도 역시 한계라는 것이 있다.
더 이상 색에 빠지는 것은 목숨을 깎아낸다는 것과 진배없다.
「도련님, 저런 사람과는 너무 가까이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쿠레하씨.」
「저건 타무라에서도, 특히 질이 나쁜 장난꾸러기니까요. 22살이나 되선 일정한 직업도 없이 어슬렁어슬렁 놀기만 하는 구박받아야 마땅할 사람(鼻つまみ)입니다.」
난처한 일이다, 라며 쿠레하는 뺨에 손을 대고 말했다.
「그 아이의 부모님도 무척 속상해하고 계시는거에요.」
「하, 하, 하……. 그럼 나랑 똑같네요. 저도 일하지 않으니까.」
「당치도 않습니다! 그런 식충이와 도련님과 함께라니요…….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됩니다. 도련님과 저것은 완전히 처지가 다르니까요.」
「다른가요」
「아니고 말고요. 도련님은 당주로서 의무를 훌륭히 다하고 계십니다. 서핑이다, 스쿠버다, 록이다, 다트다……. 다음부터 그 다음까지 손에 대는 것에 비해 무엇하나 파고들려고 하질 않고 또 만족스럽게 결과도 낼 수 없는 사람이라 도저히……. 아니오.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재능이 없어도 그 나름대로 무엇인가에 열심히 몰두하고 돌을 붙들어서라도 해나간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가짐이 있으면 아무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지요. 문제는 그 가벼움입니다. 저 허리의 가벼움. 저 자는, 대강의 일을 실수없이 해내는 반면, 약간 장애가 생기면 금방 내던져 버리는 성미입니다.
앞이 보였다, 라고 본인은 말하고 있지만 어설프게 눈치가 좋은만큼 단념도 빠른 것입니다. 제가 말하면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구요.
재능이란 깊이 그 세계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데가 있어서 완전히 범재로 생각되던 사람이 실은 굉장한 재능을 지니고 있거나 옥이라고 생각했던 재능이 실제론 단순한 돌덩이라는 등 다양합니다. 그걸 히로토는 알질 못해요.
알고 있지 않으니까, 자신보다 능숙하게 해나가는 사람을 보면 쉽게 포기해버립니다. 포기해버리고 자신은 재능이 없다고 포기하지 않고 몰두하면 거기서 또 다른 시야도 열린다고 생각하는 일이지만서도.
――아아, 이건 제가 경험해본 일입니다만, 사람은 완전히 포기한 때에 그러나 거기에서 도망치지 않고 부여받은 자리에서 그저 전력을 다하는 것이라고 그러한 각오로 있으면 또한 자신의 깊은 곳에서 이상하게도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힘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한 경지도 모르고 할 수 있는 재주가 있다, 없다라고 사물의 겉모습만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자가 지금까지 무엇하나 진지하게 몰두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거에요──」
──라고 평생의 불만을 토해내는 것처럼 구구절절 말하기 시작한 쿠레하였지만 그러나 곧 토라노스케의 일을 떠올리며,
「쓸데없는 말씀을 드렸네요. 이건 도련님에게 들려줄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오호호, 웃으며 얼버무려 버렸다.
「다른 얘기를 할까요. 오늘은 도련님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도 있으니.」
「소개요?」
「예에, 새로 도련님의 경호인을 설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경호인……」
토라노스케는 쿠레하의 뒤에 선 슈트 차림의 여성을 보았다.
장신이고 약간 곱슬머리인 머리카락을 뒤로 늘어놓았다.
얼굴에 살짝 걸린 앞머리 밑은 넓은 안대가 오른쪽 눈과 이마를 가리듯 덮여 있었다.
실제 나이는 쿠레하와 비슷할까.
무엇보다 다른 타무라의 여자처럼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풍부한 체질인 것 같았다. 외견으론 판단하기 어렵다. 화장도 거의 없지만 얼핏 보기엔 서른 정도로 보였다.
「외, 눈?」
「쿠루스 마키에(?栖蒔?). 쿠루스 가문의 현 당주입니다.」
「현 당주라고 하는 것은──」
「예에, 나치와 사치의 어머니입니다.」
그렇게 쿠레하가 말하자, 뒤쪽의 여성. ──쿠루스 마키에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오랜만이네, 토라노스케쨩.」
토라노스케를 보고 미소지었다.
토라노스케는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라는 말을 들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어디선가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어렴풋이나마 목소리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쿠루스 남매의 어머니 마키에는 역시 두 사람을 닮은 “강하다.”라는 느낌이었다.
거친 일을 생업으로 하는 인간, 아수라장을 빠져나간 인간이 가진 독특한 공기. ──피와 위험의 냄새를 풍겼다.
그것도 쭉 진한 순도로.
마키에는 토라노스케와 같은 일반인이 알아채는 수준, 행인이 스쳐가는 순간, 문득 한기를 느낄 정도로 위험인물이었다.
그건 마치 짐승이다.
대형 육식동물이다.
고요함 속에 한 자루의 칼을 품고 있는 듯한 쿠루스 남매와는 정반대라는 인상을 줬다.
「역시 기억하고 있지 않나. 십년 전에 만났을 뿐이니.」
말하면서 마키에는 마이의 머리에 탁 손을 얹었다.
검은 가죽 장갑.
손을 얹힌 마이가 진심 싫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광경을 보고 토라노스케는 문득 떠올렸다.
「당신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푸른 작업복을 입은 장신의 여자.
흰 장갑.
의식을 잃은 소녀.
소녀를 안은 그의 얼굴에는 검은 폭이 넓은 안대.
여자는 이런이런하고 한숨을 내쉬며──
「때, 때렸던 사람, 그 때……! 누나를 흠씬 때리던──」
토라노스케는 말을 더듬었다.
거기에, 일찍이 어린 남매를 벌벌 떨게 했던 폭력의 화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