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 쿠도 토라노스케의 경우 그 12
눈을 뜨니 모르는 방이었다.
형광등이 켜진 하얀 천장에 토라노스케는 아직 자신이 살아 이 세상에 있음을 깨달았다.
몸은 몹시 고단했다.
산소 마스크를 쓴 채 침대에 누워서 마취가 됐는지 의식도 흐릿하고 생각도 나지 않았다.
(여긴 어디지?)
생각해봤다.
중환자실이라고나 할까. 병실과는 또 다른, 유리로 칸막이가 쳐진 방에 토라노스케는 잠들어 있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커튼 너머로 여러 명이 침대에 눕혀져 있는 것이 보였다.
(목이, 괴로워.)
가래가 목에 걸려 있었다. 토라노스케는 기침을 했다. 그러자 등이 욱신욱신 아팠다.
「────」
얼굴을 찡그리고 있자니 방의 입구인 듯한 자동문이 열리고 몇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여자였다.
간호사와 그리고 젊은 여성이 둘.
간호사가 선도하는 형태로 토라노스케가 자는 침대까지 왔다.
간호사가 뒤의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아직 정신이 돌아온지 얼마 안 돼 멍한거 같아요. 몸도 피곤하기 때문에 너무 긴 시간의 대화는 삼가도록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함께 숙박하시는 분은 나중에 꼭 이 쪽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불도 빌려주고 있으니까요.」
「알았다. 고마워 사쿠라이군. 아키타 선생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해줘.」
「아니에요, 저도 달링도~ 시마즈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영차영차 힘낼테니까요.」
말하며 간호사는 떠났다.
뒤에는 여자가 둘, 토라노스케 곁에 남겨졌다.
그 중 한 명, 안경 낀 여성이 말했다. 「야아, 안녕. 좋은 아침. 토라노스케군. 기분은 어때?」
「료, 코, 씨.」
토라노스케는 입술을 웅얼대며 대답했다.
여자는 토라노스케가 잘 아는 인물이었다.
시마즈 료코와 히무로 레이코. 둘 다 타이트한 정장 차림이었다.
「응, 무슨 일이야?」
「목, 이.」
「가래야? 알았어. ──좋아, 좋아, 내줘.」
휴지를 사용해서 토라노스케의 입 안을 닦아내자, 료코는 둥근 의자를 꺼내 침대 옆에 앉았다.
「흐음. 어떻게든 잘된 것 같네. 이거 곰탱이한테 감사해야겠군. 얘길 들었을 땐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토, 토, 토 토라노스케구운!!!」
말하는 료코의 곁에서, 레이코가 몸을 내밀어 온다.
레이코는 료코에게서 빼앗듯이 토라노스케에게 매달렸다.
「어, 어이 이봐.」
「토라노스케, 괜찮아?살아있어?안 아파?힘들지 않아?」
「야, 조용히 좀 해. ICU에서 떠들지 마. 그리고 내 자리 잡지 마.」
「그, 그치만 료콧, 찔렸어!? 조금만 더 하면 죽을지도 몰랐다고. 토라노스케군이──」
「알아, 안다고. 조용히 해. 아니면 쫒겨난다. ……아니면 마이처럼 꺅꺅대다가 기절하고 싶은거야? 그 쿠루스 패거리들, 가차없어.」
료코가 이렇게 말하자, 레이코는 눈물과 콧물로 얼굴을 엉망으로 하며 마지못해 료코의 옆에 앉았다. 「괴, 괴롭지 않아?」 라고 묻는다.
토라노스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토막토막 끊어지는 목소리로 물어봤다.
「지, 지금은──」
「에?」
「지, 지금은 몇 년입니까?」
두 사람은 잠깐 얼굴을 마주보며.
「2012년인데?」
「십이……」
「무슨 일이야, 토라노스케군? 뭔가 궁금한 거라도 있어?」
「아뇨……. 그렇습니까? 2012년──그럼, 찔린 것은.」
「오늘 낮이야. 지금은 밤 10시가 됐어. 시간의 감각이 없는건가?」
끄덕, 토라노스케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료코도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무리도 아냐.」
「저는, 어째서…… 차에 치였는데.」
의문을 말했다.
그 순간, 토라노스케는 확실히 치였다고 생각했다.
남자에게 찔린 후, 길거리에서 트럭에게.
「넌 치이지 않았어. 나치군이 도와줬다.」
「나치씨가?」
「아아, 경호 인원을 늘린 건 역시 정답이었네. 치일 뻔한 너를 나치군이 순식간에 안아서 피하게 했어.」
「과연, 그랬군요.」
「너는 곧바로 쿠즈가하라 병원으로 이송됐다. 운도 좋았어. 우리 응급실에 명의가 있으니까 말야.」
「명의?」
「응, 아키타라고 해.」
「아키타 선생── 결혼했다고──」
「음? 잘 알고 있네. 하긴 그는 이제 막 결혼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너에게 그런 말을 했었나?」
「료코 선생님의 결혼 상대──」
머리를 굴려 말한다.
그 말에, 료코는 「하?」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왜? 그럴 리가 있나. 그 곰탱이가 결혼한 여자는 사쿠라이 미치── 아까 간호사야. 신혼에다 무작정 꽁냥대고만 있으니까 거추장스러워서. 」
「엣……」
「뭐야? 꿈이라도 꾼거야? 용서해 달라구, 내가 무슨 업보로 저런 곰탱이랑 결혼해야 해. 애초에 내 남편은 너잖아, 너.」
「꿈, 인가, 나는──」
그제서야 토라노스케는 모든 것을 이해하며, 크게, 지친 듯이 가슴을 틀썩였다.
「――나는,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어.」
◇ ◇ ◇
「? 돌아왔다고?」
료코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레이코 역시 마찬가지였다.
토라노스케는 손을 움직여 보았다. 느릿느릿하지만 손은 확실히 움직였다.
그 손을 두 사람이 잡는다.
두 사람의 손은 따뜻했다.
「와, 손 차가워.」
「보통이러면 우리들 쪽이 체온이 더 낮을텐데.」
두 사람이 말했다.
토라노스케는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두 사람 다.」
「쿠도, 토라노스케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들은 두 사람은, 어리둥절하여 얼굴을 서로 마주 보았다.
「자, 잠깐, 료코. 정말 괜찮은거야. 토라노스케군. 뭔가 이상한 말을 하고 있잖아……!」
「검사에서는 머리에 상처는 없었을 것이다. 뭐, 혼란스럽겠지.」
「하지만 뭔가 이렇게 미묘하게 다르지 않아? 하왓 하고 있고. 귀여움도 향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음,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러네. 조금 쇼타(ショタ)도가 올라갔나.」
「들리고 있다구요, 두 사람 다.」
쓴 웃음을 짓는다.
그 순간 등이 욱신욱신 쑤셔서 토라노스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료코가 걱정스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아픈가? 마취가 풀렸겠지. 국소 마취는 했을 텐데…… 아아, 잠깐 어깨의 삽관이 빠졌구나. 지금 고쳐주지.」
「죄송해요.」
「신경쓰지마.」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요?」
「아아, 다른 사람들이라면 잘 있어. 모두들 너를 보고 싶어 했지만, 해야 할 일도 있어서 말야. 다행히 목숨을 건져서 마취로 너도 잠들었으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우선 나와 레이코만으로 좋겠지, 라는 것으로 됐다.」
라며 마취를 고치면서 말했다.
레이코는 뒤를 이어 계속 말했다.
「아츠코씨와 아케미씨는 대기실에서 경찰의 사정청취를 받고 있어. 사치씨와 나치군은 병실 앞에서 경호를 맡고 있고. 마이쨩은 좀 냉정할 수가 없어서── 울며 범인을 죽일 뻔해서, 사치씨가 억지로 기절시켰다고 해. 지금은 준이 친가로 데려가서 돌보고 있어.」
「히나쨩은요?」
「괜찮아. 너 덕분에. 이쪽도 준군이 돌보고 있어. 준군이 있는 곳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계시니까 아마 괜찮을거야.」
「그렇군요……」
「너의 친가에도 연락해뒀어. 아마 내일 올거라 생각해. 호겐(鳳玄)님이나 쿠레하(紅葉)씨가 매우 당황해선, 일족 총 출동할 수도 있는 기세였으니까──」
「우와, 뭐야 그거 무서워.」
「쿠도의 집은 ──연락은 해봤는데 오진 않을 것 같아. 이제 상관없다고 해선.」
「응.」
「아아, 그래도 외숙부(伯父)는 왔었어.」
「외숙부?」
「으응, 너의 어머니의 오빠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이?」
「으응, 자신은 의절된 사람이라서 토라노스케군은 모를거라고 했어. 너의 수술이 성공한 것을 확인하곤 돌아갔어.」
「그 사람의 이름은요?」
「아~, 이름이, 그──」
라고 말하며 레이코는 료코에게 시선을 돌렸다.
료코가 고개를 저었다.
「마, 맞아. 이름은 밝히지 않았어.」
「그렇, 습니까.」
여러가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서 이해를 못할 지경이다.
토라노스케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마취를 고친 료코가 몸을 되돌리며 말했다.
「찌른 남자는 아케미씨의 헤어진 전 남편이었다. 재결합을 거절당한 것이 이유였고 너를 원망했던 것 같아.」
「…………」
「정말 성가신 얘기지. 자기가 바람으로 파탄 낸 주제에 정작 재결합하자고 졸라대다가 거꾸로 원한을 품어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알 것 같기도 해요.」
토라노스케는 조용히 말했다.
여자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감싸는거야? 너를 찌른 상대라구.」
「그런건 아니지만, 그래도 남자니까 그런 감정은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요. 좋아하는 여자를 빼앗기면 역시 분하잖아요.」
「흥. 넌 이해같은 건 하지 않아도 돼. 너는 그런 놈들과 근본적으로 달라.」
팔짱을 끼고 료코는 꾸짖듯이 말했다.
토라노스케도 굳이 반론은 하지 않았다.
◇ ◇ ◇
토라노스케가 무사히 있는걸 확인하고 두 사람은 ICU를 빠져나갔다.
오늘 밤은 병원에 묵는다고 했기에 그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과 교대로 또 두 명의 여성이 들어왔다.
아츠코와 아케미였다.
아츠코는 드물게 여유가 없는 험악한 표정으로.
아케미 또한 평소의 밝은 모습과는 별개로 몹시 낙담한 상태였다.
토라노스케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은 의미를 몰랐던 것 같지만, 그는 개의치않고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다녀왔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아츠코는 건강해 보이는 토라노스케를 보고 안심했는지 그리곤 어디론가 전화하겠다고 말하고 나갔다.
……아케미는 아직 기죽어 있었다.
토라노스케는 아케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케미씨.」
「왜……?」
「좌절하고 계신가요?」
아케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 안심하고 있었어요.」
토라노스케는 말했다.
「안심?」
「네. 결국 저쪽에서는. 항상 마지막에 못 만났으니까요.」
「무슨 말을……?」
「기뻤던 것은, 이쪽에서도 아케미씨는 소설가잖아요. 저는 당신의 팬이고── 그런 당신이 내 곁에 이렇게 있어 주고 있어요.」
「으, 으응? 나, 나는 소설가고, 너의 곁에 있지만──」
「그렇다면 그걸로, 고민할건 없잖아요.」
「엣……?」
「이번의 일은 아케미씨의 탓이 아녜요. 물론 제 탓도 아니고요.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에요. 그렇게 잊어버립시다. 나는 아케미씨가 슬퍼하는 것이 싫고, 아케미씨가 죄책감에 괴로워하는건 더 싫어요.」
「토, 토라노스케군.」
「잊어버립시다. 그리고, 계속 제 곁에 있어 주세요. 저와 결혼해 주세요.」
「――――읏」
아케미의 얼굴이 홍조를 띈다. 두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토라노스케는 한 번 웃고 나서 장난치듯 계속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저, 아케미씨를 정말 좋아합니다. 그리고 아케미씨의 가슴도, 그러니까 아케미씨가 건강하지 않으면 곤란해요. 왜냐면 퇴원한 뒤 젖을 마실 수 없잖아요.」
「그건――」
「엣찌하는 것도 좋아해요. 아케미씨의 몸도, 얼굴도, 그 상냥하고 강한 마음도. 처음 야한 짓 했을 때부터 계속 사로잡혀 있었어요. 처음 여자를 알게 된 것은 아케미씨였고. 그때부터 제 마음에는 늘 아케미씨가 떨어지지 않고 남아있었어요.」
「후, 후 후.」
눈물이, 주르륵 아케미의 두 눈에서 흘러넘쳤다.
아케미는 울면서 웃고 미소지으며 토라노스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겨, 겨드랑이 털과 아랫배의 쳐짐도?」
「물론이죠.」
「그럼 빨리 퇴원해야겠네.」
「네, 노력할게요. 퇴원하면 자궁이 뒤집힐 정도로 겁탈할 생각이니까 각오해주세요.」
「아핫. 알았어. 약속이야, 약속──」
말하자 마자, 아케미는 토라노스케의 산소 마스크를 벗겼다.
토라노스케는 조금 당황했다. 「미안해요. 키스는 지금 좀 무리예요. 입에 가래가──」 라고 말했으나 상관하지 않고 아케미는 몸을 밀어붙이며 토라노스케의 입을 빨아들였다.
「상관없어, 빨아내줄게.」
아케미의 하얀 목이 두근, 소리를 울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