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장에 어서오세요. 3장 17화
무직, 쿠도 토라노스케의 경우 그 11
둘이서 길을 걸었다.
느긋하고 편안한 기분으로.
아아, 이런 기분은 얼마만일까.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았다.
요 몇 년 동안 나는 무언가에 항상 겁을 먹고 있었고, 이인증(해리성 자아장애)같은 증상에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오누나는 그런 나라도 상관없다, 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내게 아이도 품어주었고.
그건 솔직히 말해서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마운 구원의 손길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이름은 뭘로 할까, 라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뭐든지 좋다고 대답했다.
제대로 생각해봐. 그럼 둘의 이름을 따야지. 서로 그렇게 말하면서.
바람이 따뜻했다.
강변의 벚꽃도 만발했다.
강 너머에는 철로가 있고 길 끝에는 공원이 있었다. 공원에는 부모와 아이를 동반한 사람들이며, 연인들이 웃는 얼굴로 산책을 즐기고 있다.
그립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곳은 어딘가 고향의 산 같았다.
동백나무가 많이 핀 “그 사람들”의 산과.
그녀와 헤어졌던 산과.
……그녀?
무엇인가가 걸렸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누굴 말하는걸까?
아니, 바로 부정했다. 이게 나의 나쁜 버릇이라고 생각했다.
이오누나가 손을 잡고 있다.
지금은 그것만이 중요한 일이었다. 소중하다. 무엇보다 소중한 그걸 놓지 마라. 라고 생각했다.
길을 걸어갔다.
스쳐지나가는 사람의 행복해하는 미소가 보였다.
아이를 안은 여자가 있었다.
안경이 이지적인 여자가 있었다.
중성적인 분위기의 미소년, 자못 유능해보이는 커리어 우먼도 있었다.
마치 가면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가는 여자도.
그런 사람들과 엇갈리면서 나는 벚꽃이 떨어지는 거리를 걸었다.
아아, 여기는 좋아.
너무나 너무나도 조용한 세계다.
깊이 호흡했다.
신록의 상쾌한 향기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강한 바람이 불었다.
꽃잎이 날아올라 걷는 사람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오누나가 돌아본다.
「무슨 일이야, 토라군.」
「음, 지금……」
「지금?」
「기모노를 입은 사람과 엇갈렸나?」
「기모노?」
「옷차림이라고 해야하나. 기모노의 남자를.」
「글쎄, 난 몰랐는데.」
「그런가……」
「괜찮은거지?」
「응……」
「또 머리가 아파?」
「아니, 괜찮아. 오늘은 몸이 무척 좋으니까.」
「그래? 무리하진 말고.」
이오누나가 말했다.
나는 다시 한번 주위를 돌아봤다.
강가의 벚꽃 가로수 공원이 보였다.
걷고 있던 사람들은 벌써 어디론가 갔는지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보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어린 소녀가 단 한 명.
저쪽은 분명 교회가 있는 쪽인가.
그렇게 홀로, 나는 소녀를 보았다.
바람을 타고. 꽃잎이 몇 개 강을 건너간다.
소녀는 길 앞에 멈춰 서서 이쪽을 힐끗 바라보고 있었다.
인형같은 소녀. 단정한 머리에 꽃잎이 붙어있다.
「왜 그래?」
이오 누나가 물었다. 「저 아이.」 라고 대답했다.
「저 아이?」
이오누나가 소녀를 본다.
「응…… 못 보던 아이네. 이 근처에서 사는 아이일까?」
「본 적 없어?」
「응?. 뭐, 나도 이 근처에 사는 사람, 다 아는 건 아니니까.」
「그런가……」
「어쩐지, 이렇게, 무거울 것 같은 느낌의 아이네. 토라군을 보고 있어.」
「응.」
「첫 눈에 반했나봐, 이건.」
「설마.」
웃으며 나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이오누나는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었다.
다가가도 소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뚫어지게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소녀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 아이와 얼굴을 맞댔다.
「왜 그래, 아가씨. 엄마랑 떨어졌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어봤다.
다정한 목소리가 나왔다. 아아,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가, 나는. 내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 쭉 이런 목소리는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토라.」
라고 소녀가 대답했다. 「응?」 나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토라.」
「토라라면 나를 말하는거야?」
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
소녀는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약간 멈칫하며 소녀를 관찰했다.
「난 분명 토라노스케지만, 어라, 어떻게 아저씨를 알고 있어? 아저씨랑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었니?」
물어봤다.
소녀는 나를 응시한 채 쓸쓸한 듯 말했다.
「믿고 있어.」
「믿어?」
「꼭 데리러 온다고 토라는 그렇게 말했으니까.」
나는 숨을 삼켰다.
소녀의 두 눈에 부글부글, 뜨거운 것이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소녀는 강한 시선으로 이쪽을 응시하곤 뒤를 돌아 달려갔다. 달려간 곳은 언덕이 있는 주택가였고, 나는 그 윗쪽을 바라봤다. 검은 지붕과 십자가가 주택가의 늘어선 집 끝에 보였다.
「저 아이 왜 저러는거야?」
뒤에서 이오누나가 말을 걸어왔다.
「음…」 나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등에서 뜨거운 땀이 솟구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녀의 모습이 언젠가 본 아름다운 여성의 환영과 겹쳤다. 담쟁이 덩굴처럼 얽혀 있던 깊은 기억과 환상의 현실이 머릿속에서 희미하지만 풀려갔다.
「이오누나.」
「응?」
「이오누나는 역시 대단하네.」
「하? 뭐, 왜 그래 갑자기?」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이 이오누나가 말했다.
나는 되돌아 보며, 그녀에게 다가가서 껴안았다.
「고마워, 이오누나.」
「자, 잠깐? 토라군?」
「그동안 고마웠어. 이렇게 나를 혼자 두지 않아줘서.」
「가, 감사라니.」
이오누나는 곤란한 듯 말을 얼버무렸다.
「감사하고 있어. 그것만은 전하고 싶었으니까.」
말하며 그녀를 놓아줬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토, 토라군.」
「잠깐, 일이 생각났어. 가야 해.」
「보, 볼일이라니, 어디로?」
「응, 바로 거기야. 금방 돌아올테니까 이오누나는 먼저 돌아가줘.」
비탈을 오른다.
이오누나는 어딘가 불안한 듯 매달리는 어투로 말했다.
「토, 토라군!?」
「응?」
「저, 저기, 점심 식사 전이니까.」
「응.」
「곧 돌아올거지?」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걱정하지마. 밥 먹기 전까지는 돌아올테니까. ……곧 금방 만날 수 있을거야.」
◆ ◆ ◆
비탈을 오른다.
한 걸음, 한 걸음. 주택가 언덕길을.
그곳은 낯익은 길.
정든 집의 길이었다.
언덕을 오르자 길의 전방에 교회가 보였다. 성우르자교회.
그리고 그 옆에 그 아파트도.
나는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여어」
하며 그는 허무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젊었다, 기모노를 입은 청년이었다.
나이는 24~5, 감색 기모노에 병아대를 감고 있다.
목에는 귀 뒤에서부터 빨갛게 찢긴듯한 흉터가 있다.
「이제 된건가?」
라고 물어온다.
나는 조용하게,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고. 슬슬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그렇군.」
「얼마나 내가 이러고 있었어?」
「밖의 시간으론, 5년 정도 걸렸나.」
「그게 내 선택이었어?」
청년은 수긍했다.
「나는 자고 있었나.」
「너에게는 그게 현실이었다. 삶의 고통. 그것이 내 인생이라고.」
「좋은 꿈도 있었다고.」
「그렇구만. 하지만 그것도 끝이야.」
「끝?」
「네 창고는 이미 다 토해내버렸다. 잠재의식에 쌓인 아쉬움도, 혈맥에 쌓인 업도 모두 써버렸지. 내가 이쪽에서 전부 내보냈다. 그러니까 넌 이제 텅 빈거야. 꿈도 꿀 수 없다. 저쪽 현실은──.」
청년은 말하며 꺼낸 담배를 입에 물었다.
「저쪽에서 다시 보충해라. 이제 “섞임”은 없다. 자기 자신만의 빛을 쓰며 살아라.」
씨익 웃었다.
나는 조용히 청년을 바라봤다. 청년의 모습은 어딘가 존재감을 잃고 있었다. 연묵을 그은 듯, 배경에 녹아내려 가라앉아갔다.
「이제 볼 수 없는거야?」
「아니,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정말로?」
「힘들면 나를 불러라. 그럼 만날 수 있어.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난 네 옆에 있을거다. ……뭐어, 말하는건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지만 말야.」
「류노스케.」
「그런 얼굴하지 말라고. 너 이제 스무살을 넘겼잖아? 이번엔 나오지 않으려고 했었어. 힘들다고, 이렇게 조건 무시하고 모습을 보이는건.」
「아, 아버지.」
「────」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이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시야가 눈물로 단숨에 일그러졌다.
청년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더니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헷, 아버지인가. 오랜만에 들었구만.」
「나, 진짜 열심히, 열심히 하고 왔어――」
「아아, 알고 있어.」
「하, 하지만, 잘 할 수가 없어서, 항상 실패만 하고.」
「실패같은건 안했어. 넌 착한 사람이야, 그건 틀리지 않았다고.」
「정말로?」
「아아, 말했잖아. 너는 나의 자랑이라고.」
「아, 아빠.」
「자아, 가라 토라노스케. 장소는 역전이다. 이번에야말로 가라,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이 있는 곳에, 저 녀석들의 곁에──」
◆ ◆ ◆
눈치채니 류노스케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나는 잠시 성당에서 기분을 진정시켰고 다시 다른 장소를 목표로 했다.
역전.
류노스케가 말한 장소로 향했다.
시각은 정오에 가깝다.
이오누나는 집에서 밥을 만들고 있을 때인가? 집이 어딘지 난 짐작도 가지 않았다.
편대장인지, 카미모리시인지, 그 하얀 방인지.
알고 있다는 것은 여기가 잘못됐다는 것 뿐이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나는 돌아가야 한단 말이다.
그러니 향한다.
쿠도 토라노스케라는 남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역앞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로터리 앞을 걸어갔다.
화창한 봄볕.
조용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걷고 있었나?」
누구랑? 자신에게 물어보며 걸었다.
상가에는 다양한 가게가 있었다. 약국, 야끼토리점, 선술집, 편의점, 정육점, 치과, 소바가게…….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건널목을 건넜다.
시민 체육관과 아이스 아레나가 있다.
아이스 아레나 너머엔 고층 아파트와 대학 운동장이 보였다.
아레나 옆에서 잠깐 쉬었다.
자판기에서 주스를 사서 벤치로.
아이들이 즐거운 듯 웃으며 달려간다.
「아이는 좋지.」
문득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뇌리에 뭔가 번뜩임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
맞아, 아이였어.
나는 아이와 있었던 것이다. 갓난아이를 안고. 그 때, 확실히.
아기. 그 아이는 누구의 아기였지? 내 아이? 아니, 그게 아니야. 그럴린 없어.
저쪽에서 난 아직 아무도 잉태시키지 않았어. 아이는 없을거야.
그러니까, 그래.
그 아이는 나의 아이가 아니라.
그 아이는, 그녀의──.
「히나타──」
일어서서 중얼거렸다.
그 순간 쿵, 하고 등에 뭔가가 부딪쳤다──.
◆ ◆ ◆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열이었다.
뒤이어 극심한 통증과 오한.
그것이 허리에서부터 뇌수까지 꿰뚫고 나와 나도 모르게 의식을 잃을 뻔했다.
무릎이 흔들렸다.
헛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넘어지기 직전에, 어떻게든 버티는 것에 성공했다.
쓰러질 수는 없다.
팔 안에 소중한 사람이 있었으니까.
히우라 히나타(火浦陽向)──.
그녀의 소중한 외동딸이.
「힛, 히, 히.」
내 등에 매달린 남자는 희비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내 허리에 뾰족한 뭔가를 꽂은 채.
「너, 너 때문이야. 네가 있기 때문에, 나의, 나의──.」
악을 쓰던 남자의 눈은 휘둥그레졌고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돌려줘. 나의 가족을 돌려줘. 아케미를, 히나타를 돌려달라고……!」
말하면서 천천히 나이프를 밀어넣는다.
나는 그 남자의 손을 잡고 멈췄다. 쑤셔지고 돌려지는 나이프. 격통으로 시야에 안개까 낀다. 금방이라도 실신할 것 같았다.
「이, 이, 바보……!」
미지근한 선혈이, 청바지와 아스팔트 바닥을 적셨다.
누군가의 비명이 터졌다. 아무래도 통행인이 눈치챈 것 같았다.
나는 남자를 밀어내려고 팔에 힘을 줬다.
남자는 내게 매달리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도망갈 마음도 없는 것이다.
나는 분노를 담아 말했다. 「했, 했겠다.」
「히나쨩을 범죄자의 아이로 만들었겠다……!」
「……으읏!?」
「웃, 웃기지 말라고, 아이는 말이지, 펴, 평생 그걸 짊어지며 가야한단 말이야……!」
억지로 당겨 뺐다. 나는 남자를 걷어찼다.
상대는 생각보다 힘없이 쓰러졌다.
주위의 소란이 다시 커졌다.
나는 남자의 흉기로부터 달아났지만, 그 이상은 꼼짝 못하고 그대로 힘없는 몸으로 휘청휘청 뒤로 물러섰다.
「도련님!」
목소리가 들렸다.
또 비명소리.
차량 경적이 울린다.
큰일이다. 아무래도 휘청거려서 도로까지 나와버린 것 같다.
시야 끝에 트럭이 보였다.
동시에, 한 여성이 보도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도.
나는 그 여자를 향해 팔에 있는 아기를 던졌다.
「사치씨, 부탁해──」
순간, 충격이 몸을 에워쌌다.
변태장에 어서오세요.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