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장에 어서오세요. 3장 16화
무직, 쿠도 토라노스케의 경우 그 10
누군가, 소리친 것 같았다.
쾅쾅, 쾅쾅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 주위를 확인했다.
……거기는 눈에 익은 방이었다.
살풍경한 방.
좁은 방의 싸구려 아파트였다.
나는 그 다다미 6장짜리 방에 앉아 벽을 등에 기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잠들어 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상한 모습으로 자서 그런지 목과 어깨의 주변이 이상하게 아팠다.
「두통도다.」
방에 온기는 없었다.
차가운 영하의 공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창문은 눈으로 덮여 있고 새시 안쪽은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부엌에서는 수도꼭지 끝도 싱크대에 떨어진 물도 수분이란 수분이 몽땅 투명하게 굳어 있었다.
쿵 소리가 났다.
나는 깜짝 놀라 문 쪽을 보았다.
방문객이 저편의 상태 나쁜 문을, 누군가가 두드리고 있었다.
「쿠도씨, 없는건가.」
문을 계속 두들겼다.
목소리는 들은 기억이 있었다.
덮은 담요를 털고 문으로 향했다.
◆ ◆ ◆
「밀린 집세지만. 지난달과 지지난달치.」
이쪽을 보자마자 초로의 남성의 말에 바늘을 급소에 처넣는 듯한 날카로움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우선 머리를 숙이고 그 다음 비굴한 눈을 하며 얼굴을 붉히곤 그 초로의 주인을 보았다.
「모친이 이렇게 되서, 너도 여러가지로 힘들 것이라곤 생각하지만……」
집주인은 끈적하다고 말하며 부엌에 걸터앉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숙이고 정좌했다.
「이쪽도 형편이란게 있으니까 이 이상은 봐줄 수 없다고.」
「죄송해요. 알바비가 모레 들어오니까 그때까지 정리해서.」
「정말인가? 뭐어, 이쪽은 받기만 하면 그걸로 됐지만 말야.」
말하며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덜컹덜컹 현관문이 바람에 울렸다.
「너도, 언제까지나 시시한 일이나 하고 있지 말고 제대로 일하는 것이 어떠냐? 아니면 돌아가신 네 어머니도 걱정되서 침착하지 못할거라고.」
「…………」
「세상에선 일이 없다곤 징징대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런건 일을 가리고 있을 뿐이지. 나때는 말이야,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녔단 말이야.」
「네.」
「너도 말이야…. 이제 일할 수 있는 나이일텐데 그걸 이렇게까지 하는건 꼴불견이란 말이지. 돈 몇 푼 때문에 남에게 피해는 끼치지 말자 이거야. ――너, 대학은 갔냐?」
「아뇨……」
「흐음……. 고졸?」
「중퇴입니다.」
관자놀이를 누르며 나는 대답했다.
두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잖아.」
집주인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집주인은 재차 「월세만 낼 수 있다면 좋지만.」 라고 되뇌더니 입가의 담배를 흔들었다.
「장례식에도 부의금을 받지 않더니. 넌 아무래도 이상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죄송합니다.」
「안색이 나쁜거 아닌가?」
「에?」
「얼굴빛 말이야. 안색이 나쁘다고.」
두통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저었다, 빨리 돌아가라, 마음속으로 외쳤다.
몇 분 후 집주인은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집세를 낼 것을 당부하며.
나는 일어나서 안방으로 갔다.
위패와 골호가 놓여져 있는 탁자, 그 옆 선반에 손을 뻗었다. 약봉지는 금세 발견됐다. 나는 봉지에서 캡슐과 알약을 꺼내 그것을 몇 개 정리하며 목구멍에 쑤셔넣었다. 담요를 걷어 올리고 머리부터 엎어썼다. 뒹굴며, 다다미의 차가운 감촉이 뺨에 닿았다.
약도 줄어들고 있다. 다시 병원에 가야겠어.
멍하니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삐리리, 테이블의 휴대폰이 울렸다.
◆ ◆ ◆
수많은 사람.
약의 냄새.
분주하게 일하는 간호사.
의연한 모습으로 복도를 걸어가는 의사.
대기실에서 보는 대학병원은 여전히 분주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러한 풍경을 바라보며 역시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소대로 접수를 마치고, 2층 정신과 앞으로 가서 그리고 늘 앉던 긴 의자의 평소와 같은 자리에 진을 쳤다.
벽에 뒤통수를 대고 주위를 관찰했다.
귀에 어디선가 환자인가 간호사인가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어? 그럼 너, 지금 시마즈 선생님과 사귀고 있는거야?」
「헤에~~, 그 철인, 시마즈 선생님과.」
「집은 자산가고, 게다가 국립대생이지? 아니, 엘리트잖아. 타무라군. 시마즈 선생님 부럽다~」
「시마즈 선생님도 꽤 부자(オカネモチ)라고 이야기하니까. 게다가 미인이고 하늘은 불공평해. 두개나 세개나 휙 줘버리는 걸. 심지어 이렇게 잘생긴 연인까지. 키잇──, 속상해!」
간호사가 소문을 내고 있다.
무심코 그쪽으로 눈을 돌려보니,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남자와 한순간 눈이 마주쳤다. 핸섬하고 명량한, 상쾌한 풍모의 청년이었다. 간호사들에게 둘러싸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나를 1, 2초 정도 보자마자 흥미를 잃은 듯 간호사와의 대화로 돌아갔다.
조금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저런 지긋지긋한 미남이 분명 세상에서 인기가 있는거겠지 ……나와는 다르다.
「쿠도씨. 쿠도 토라노스케씨.」
이름이 불렸다.
돌아보니, 간호사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안에 들어오세요.」 라고 말했다.
재촉을 받으며 진찰실로 갔다.
방 중앙에는 서른 중반의 젊은 의사가 보였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익숙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쿠도씨.」
나는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권유받은 원형 의자에 앉았다.
의사는 이쪽 태도에도 싫은 기색 하나 보이지 않으며 손에 든 클리어 파일에서 종이를 몇 장 꺼내어 시선을 돌렸다.
「에 그러니까, 석 달, 말입니까……. 지난달과 지지난들은 무슨 사정이 있었나요?」
무심코 말문이 막혔다.
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알바가 바빠서요.」
「과연, 아르바이트가.」
「그래도 약이 떨어져서 아무래도 힘들어져서요.」
나직하게 의사의 시선을 피해 대답했다.
그는 나를 바라보자 부드러운 눈을 하며 말했다.
「음, 약은 처방하겠습니다. 그래도 좀 더 정기적으로 와주면 좋을 것 같네요. 너무 약에 의지하는 것도 좋진 않으니까요. 행동요법은 계속 하고 있나요?」
「…………」
「기록 쪽은 붙여져 있고, 말이죠. 음, 틱 습관도 상당히 줄어들고 있구요. 산책과 명상은 잘 하고 있나요? 의식은 어때요? 아직도 괴롭나요?」
척척 화살같은 질문을 퍼붓는다.
나는 이 시간이 싫었다. 의사의, 이, 안쪽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질문이. 모르모트를 해부할 때와 같은 연민이 보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움켜잡았다.
의사는 참을성있게 하나하나 이쪽으로 말을 건다.
나는 그것에 작은 소리로 대답해 간다.
부검 시간이 시작됐다.
◆ ◆ ◆
「과연, 그렇군요. ──그럼 그 사람과 사귀기로 했군요? 그 쭉 사이가 좋았던 누나와.」
연인이 생겼다. 그렇게 보고하자 의사는 손을 떼며 나를 축복했다.
「야아, 그건 좋군요. 다행이지 않습니까. 뿔뿔이 흩어졌던 것들이 드디어 만난거니까요.」
「하지만, 저는.」
「역시 신경쓰입니까? 그녀의 과거, 외도가.」
「……그건, 별로.」
고개를 저었다.
의사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가를 억누르며, 수중에 종이로 펜을 놀렸다.
「섹스는 하시나요?」
「에?」
「섹스입니다. 그 이오리씨와. 재회하고 나서요.」
「어어음.」
「대답하기 어렵다면 억지로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 하고 있어요.」
「그렇습니까, 빈도는 어느 정도죠?」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3, 4일――. 그 때마다 뭔가 싫은 기분이 들거나 하진 않습니까?」
「싫은?」
「예를 들어, 구역질이 나거나 가슴이 아프거나 하는 것 같은 것입니다.」
「없……어요. 머리가 아픈건 자주 있었고.」
「과거의 영상이 떠오르거나 하는 것은요?」
「영상?」
「플래시 백―― 즉, 그녀와의 불쾌한 추억 같은 것이.」
「없어요, 하지만.」
「없지만?」 이쪽을 들여다보듯이 물었다. 「또 궁금한 것이 있습니까?」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나서 천천히 대답했다.
「꿈, 이요.」
「꿈, 입니까?」
의사는 놀리던 펜을 멈추더니 손가락으로 안경테를 바로 잡았다.
「꿈을 요즘 많이 꾸고 있어요.」
「무슨 꿈인가요?」
「으으음.」
「설명이 어려운가요?」
「뭐랄까, 너무 좀 바보같다고 할까, 꿈에서.」
그렇게 서두하고 나서 나는 꿈의 내용을 말했다.
의사는 내가 말하는 것을 종이에 적어놓았다.
「과연 많은 여성의 사랑을 받으며 지내는 꿈인가요? 게다가 기모노을 입은 젊은 남자와, 아름다운 모녀…… 마지막은, 장면은 다르지만 반드시 죽는다고. 일어난 뒤에는 초조와 죄책감…… 흠.」
내가 말을 마치자 그 젊은 의사는 턱을 만지면서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죽 의자에 바짝 체중을 맡기며 끙끙대거나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고, 이런 이야기를 한걸까.
이런 일로 내 어긋난 뇌수가 좋아지기라도 하는건가. 그런 의문도 없진 않았다.
잠시 후 의사는 천장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하기 시작했다.
「이야기 자체는 전형적인 귀종유리담(貴種流離譚)이군요. 일부다처도, 거액의 자산도, 알기 쉬운 열등감의 반증으로 보이고, 그런 점에선 별 일은 없습니다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기모노를 입은 남성이군요. 예언적인 발언을 하는 융의 논문과 비슷한 경우를 봤죠.」
라고 말하며 의사는 이쪽으로 돌아서더니 펜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남자를 본 기억은?」
흔들흔들 고개를 저으며 나는 부정했다.
「그럼 그 모녀에게 짐작가는 것은? 그러고보니 예전에 친척이 계신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 친척은 있지만 못 본 지 오래 됐어요. 그런 모녀도 모릅니다.」
「아버지가 자살한 것에 대해서는요?」
「자살?」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자살이라니요?」
「……이전에, 아버지가 자살하셨다고.」
「누가 그런 말을?」
뭔 말을 하는거야, 이 새끼는. 머리가 위험한 녀석들을 상대하고 있는 사이에, 나 자신도 결국 멍청해져 버렸나?
나는 그를 유심히 보았다.
그는 이쪽을 잠시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말을 바꿨다.
「멀티버스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멀티버스? 아니요, 그런건.」
「간단히 말하면, 이 세계에는 복수의 우주가 있지 않을까 라는, 그러한 가설입니다만.」
「복수의 우주?」
「예에, 즉 다중 세계(多世界)의.」
「다중 세계……」
「물론 가설에 의해 문맥은 다양합니다만── 왜 SF같은 것에서 자주 있겠죠, 페러렐 월드.」
「SF는 그다지 잘 읽지 않아서요.」
「그렇군, 쿠도군은 전적으로 추리 소설이나 하드보일드였죠.」
의사는 약간 친근한 호칭으로 바꾸며,
「저도 좋아합니다, 나츠메 요타로. 특히, 뭐라고 했더라, 최근 상을 탈뻔한.」
「원뢰의 카니발.」
「그래요. 그거 괜찮았지요. 상을 안 주지 않은 전형위원들이 그렇게 좋게 보이진 않더라구요.」
「그라면 머지않아 탈거에요.」
「쿠도군은 팬이잖아요.」
「네.」
「과연. 그러고보니, 이건 최근에 안 사실입니다만――」
라고, 그는 이쪽의 반응을 살피는 듯 혹은 놀리는 듯한 태도로 몸을 새우등처럼 웅크렸다.
「알고 있었습니까, 나츠메 요타로는 사실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는걸.」
「여성이란 말인가요?」
「음. 아무래도 필명같죠? 여기 의사 선생님 중에 그녀와 친구인 여자가 있거든요. 그 사람에게 들었는데요.」
「헤에.」
「당신의 꿈에도 나오고 있어요, 소설가의 여성.」
「…………」
「이름은 기억나십니까?」
고개를 저었다.
꿈에 나오는 인물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에 없었다.
「그래, 꿈이잖아요. 세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어쩔 수 없죠.」
「누구 하나, 이름까지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리고, 그 일에 대해 죄책감이 든다.」
「……예에, 뭐어.」
「섹스할 때 그걸 강하게 느끼고요.」
「망상인걸요.」
「음…… 그러나 행위 자체는 할 수 있는 것 같고,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말하며 의사는 파일을 정리했다.
「일단 그것에 대해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이쯤 할까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한 달 뒤에 다시 오세요.」
이렇게 고했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겨우 돌아갈 수 있다. 그러면서 진찰실 문을 열었다. 막 나가려는 순간 문득 머리에 의문이 생겼다. 「저기…」 뒤를 돌아봤다. 진료기록카드에서 얼굴을 들고 의사가 이쪽을 보았다.
「? 뭔가요?」
「저기요. 아까 한 얘기 좀 신경쓰이는 게 하나 있는데요.」
「흐음, 어떤 부분인가요?」
「아니, 제 얘기가 아니라 선생님이 말씀하신거요.」
「아아, 멀티버스.」
「결국 선생님은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살짝 멋쩍게 웃더니 「뭐…」 라고 말하며 뺨을 긁적였다.
「옛날에 잠깐 생각해 봤어요. 사람의 마음은 우주와 같다고요.」
「우주?」
「예에. 각각, 각각의 시점에서 관측하고 있는 우주입니다. 선인들이 말하는 인류적인 무의식이 있다면, 실은 그것이 근원적인 우주에 원천이 아닐까. 뭐, 이데아론에 가깝습니다만── 그런 것을요. 조금 당신의 이야기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의 세계에 같은 세계라고 하는 것은 실은 없었고, 모두 각각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들이 겹쳐져 외관상 전체적으로 관측 가능한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그 기모노의 청년이 말한 세계라고 하는 것이, 당신의, 당신의 세계였다면── 즉 당신이 관측하고 있는 진실은, 이 세계는 과연 얼마나 진실할 수 있는 것인가. 진실에는 틀림없지만. 세상 밖에는 또 다른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말씀이 잘……」
「헛소리에요, 헛소리.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걸 생각해 봤을 뿐이에요. 저와 당신이 보이는 것이 다르듯 당신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도 제가 관여할 바가 아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의 등을 밀어주는 것 뿐이니까요.」
「…………」
「다만 한가지 말할 수 있는건 사람은 변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저는, 많은 환자를 봐 왔어요. 하지만 아무리 심각한 환자라도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좋든 나쁘든 사람은 변해요. 그것이 성장이냐, 타락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거죠. 그렇다면 우리의 방향은 인간의 “본성” 그 자체에 걸려 있는거다, 라고 말해도 좋겠죠. 그리고 다른 사람 깊은 곳에 있는 “본성”이 혹은 더럽혀지지 않고 사실은 광명이었다고 한다면 언젠가 당신도 구원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분명, 그렇기를. 저는 바라고 있습니다.」
◆ ◆ ◆
「아, 토라군, 이쪽.」
병원을 나오자 마침 거리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 약국에서 이오누나가 이쪽을 눈치채며 손을 들었다.
병원 앞 가로수길에는 벚꽃이 만발해 있었다.
나는 신호가 파랑인 것을 확인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꽃잎이 흩날리는 길을, 이오누나가 달려온다. 그녀는 내 곁에까지 오더니 싱긋 미소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어서 와, 토라군.」
「이오누나, 응, 다녀왔어.」
「어땠어?」
「응, 뭐어, 평소와 다름없었어.」
「약은 받아갈거지?」
「응.」
대답하고 약국으로 들어갔다.
약 수첩, 보험증, 처방전── 그것들을 약사에게 건네주고 의자에 앉았다.
이오누나도 내 옆에 앉았다. 기분이 좋은지 톡톡 산만하게 다리를 흔들었다.
「그쪽은 어땠어?」
믈어봤다.
이오누나는 힐끗 이쪽을 보며 기쁜듯한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밖을 바라봤다.
「이오누나?」
「생겼어.」
내 질문에 그녀는 숨을 죽이며,
「이, 2개월이었어.」
「임신?」
「으응!」
흥분한 모습으로 이쪽을 껴안아 왔다.
나는 약간 밀리면서도 그녀를 안아주었다.
「아이야, 우리의 아이라구!」
「아아……그래. 그렇구나. 생길 수 있었어, 아이.」
중얼거렸다. 이오누나의 말은 나에게 특별한 감회를 가져오진 않았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그녀는 그런 내 태도가 못마땅했던지 입을 비죽거리며 말했다.
「토라군은 기쁘지 않아?」
「아니, 그렇지 않은데.」
「전혀 기쁘지 않은 것 같아.」
「실감이 안 나서 그래. 내가 아버지가 되다니. 오히려 괜찮다고 생각해.」
「괘, 괜찮――아, 라니 그거 무슨 의미야? 서, 설마, 버리라고 하는거야?」
「아아, 아니야.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지만, 미안.」
「미안하다고 말해도 몰라.」
이오누나가 노려봤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왜냐면, 나 따위가, 말이야.」
그건 분명한 사실. 일도, 공부도, 무엇 하나 만족스럽게 할 수 없는 사내다.
그런 내가 아버지되는 일을 맡다니, 완수할 수 있을리가 없다.
무서웠다.
「태어날 아이에게 미안할 것 같아서.」
「…………」
「아, 미안해. 사실은 이오누나가 불안하지. ……아─, 미안해. 진짜 안되겠다 나는.」
자조하며 웃었다.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오누나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조금 생각하다 말했다.
「엄마도 말야, 생겼대.」
「에? 생겼다고, 아줌마가? 아이를?」
「응. 웃기지. 지난번에 다시 살기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이제 말이지. 두 사람 모두 나이를 얼마나 먹었다고 생각하는지.」
「아하하, 그래서 두 분은?」
「두 사람 모두 반색했지. 엄마는 정말 보기 흉할 정도로 떠들어대서 말야. 넘동생과 여동생 어느쪽이 좋아? 라니. ……정말, 10년 전 이혼은 뭐였나 싶은 느낌이었어.」
「아하하, 다행이잖아.」
「그렇게 생각해?」
「응.」
난 대답했다.
그건 진심어린 심정이었다.
생명은 따뜻하다. 기쁘고, 다정한 것이겠지. 이오누나의 부모님에게, 괴로웠던 두 사람의 사랑에, 드디어 신의 축복이 내려진 것이다.
「잘됐어.」
다시 한번, 나는 말했다.
이오누나는 그런 내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진지한 시선으로 말했다.
「그러면, 너도 좀 더 기뻐해줘. 아버지로서의 걱정 따위는 아무래도 좋잖아. 장래의 일도, 이 아이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 기꺼이.」
「이오누나.」
「그게 분명 이 아이가 토라군에게 바라는 가장 좋은 일일테니까.」
응? 하고 나를 안아줬다.
나는 살포시 그녀의 등에 손을 얹었다.
「응…… 그렇네.」
그녀의 허리를 어루만졌다.
그녀는 나에게 키스를 했다.
큼, 하고 카운터 저편 약제사가 헛기침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