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장에 어서오세요. 3장 15화
무직, 쿠도 토라노스케의 경우 그 9
소리가 울렸다.
강렬한 충격이 손을 저리게 했다.
테이블이 확 꺾였다.
나무토막이 하늘을 날았다.
나는 몸째로 앞으로 쑤셔넣었다. 내던지듯, 목과 얼굴을 앞으로.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그저 강하게 진동했을 뿐이다.
예상대로.
그리고.
부서져 튀었을 목편은, 이것 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 나의 목과 얼굴을 찔렀다.
「그악」
시야가 막혔다.
무사했던 쪽의 눈이 격렬한 통증과 열을 띈다. 아마 나무조각이 박혔을 것이다. 실명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테이블 째 유리에 부딪치고 나서 쓰러졌다. 산산조각난 나무 조각 위에 엎드려. 바짝 엎드려 목을 누르자 입에서 대량의 피가 쏟아진다.
뭔가 망가진 것을 깨달았다.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는 벽이다. 내 안에 있던 그것이 지금 확실하게 깨졌다.
거기서 냉기가 들어온다. 하얀 방의 차가운 겨울 공기가.
나는 핏덩어리를 토해내고 심호흡을 했다.
「――――」
상처난 목은 「휴우우…」하고 마치 서툰 피리처럼 울렸다.
융단에 퍼진 피가, 마루에 얼룩을 만들어간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윽고 호흡은, 쿵쿵 소리를 낮춰간다.
잘됐다. 그렇게 생각했다.
자살은 확실히 성공했다.
「뭐, 뭐야, 지금은――!?」
예상 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의 목소리였다. 그 쪽에도 이변이 전해진 것 같았다. 섹스를 그만둘 기미가 보였다. 「……옆에서 들렸어요.」 고모도 말했다.
「새끼가――」 히로토가 어딘가에 연락을 취했다. 「어떻게 된거야?」
조바심이 섞인 목소리로 두세 마디 전화를 주고받은 뒤 히로토는 강한 어조로 꾸짖었다.
「바보자식아, 빨리 치료해! 의사다. 그 녀석이 죽으면 곤란하다고옷」
수화기를 내려친다.
이 대화가 나로 하여금 하나의 확신을 갖게 했다. 즉 나의 생각이 올바르다는 것을.
역시 이쪽 방은 감시당하고 있었다.
어딘가에 카메라가 있었던 것이다.
행동은 모니터링 되고 있었어.
문에 세게 부딪쳤던 일도.
떨면서 뒹굴던 것도.
그리고 지금 목구멍에 나무토막을 박고 죽어가는 것도 전부.
「자살이라고? 젠장! 부자가 똑같이 귀찮게 굴곤!」
「히로토? 자살이라니 무슨 소리야.」
「닥쳐엇, 마이. 잠자코 있어.」
「가르쳐 주세요, 히로토. 듣고 싶은거에요. 옆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에요?」
「닥치고 있으라고!」
히로토가 고함쳤다.
동시에 방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문을 열쇠로 푸는 소리, 이어서 문이 달칵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여러 명이 이쪽으로 우르르 들이닥쳤다.
「어이, 괜찮은가! 어이!」
「위험해, 의식이 없어, 기도 확보!」
「들것을 가져와!」
웅성거림과 노호. 그 속에서 누군가 나를 안아 똑바로 눕혔다. 나는 안기면서 눈치채지 못하도록 살짝 눈의 붕대를 풀었다. 주홍빛 시야. 주위는 모두 남자였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짙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한 명 있다. 복도 쪽에도 한 사람 누군가가 있는 듯 했다.
목구멍에 낀 나무조각을 버렸다. 나는 조용히 침착한 태도로 몸을 일으켰다.
「뭣……!?」
멍하니. 얼빠진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다.
그건 그렇겠지, 피투성이가 된 중증인 줄 알았던 남자가 벌떡 일어난 것이다.
필시 혼란스러울 것이 틀림없다.
나는 손에 숨겨놓은 금속 플레이트(테이블의 받침대다.)로, 바로 옆에 있던 남자를 가격했다.
상대는 공중제비를 돌며 쓰러졌다. 역시 빈틈 투성이였다. 일어서서 한층 턱을 계속해서 후려쳤다.
직후 뒤에서 누군가가 달려왔다. 복도에 있던 또 다른 남자였다.
우리들은 서로 치고받고, 서로 누르고, 융단 위를 굴렀다. 남자의 긴장된 등이, 어깨가 떨려온다.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팔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힘은 상대가 강했다. 올라타서 압도하려고 한다. 나는 배에 힘을 주고 목표를 정한 후 입안에 고인 피를 상대에 안면에 뿜었다. 대량의 피. 피의 안개가 남자의 시력을 빼앗는다. 피에 젖은 붉은 살점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끄악」
신음하며 남자는 나를 놓쳤다.
그걸 놓치지 않고 플레이트로 후려쳤다. 넘어진 놈을 계속해서 발로 걷어찼다. 차고, 걷어찼다. 이윽고 남자는 기절해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의 허리를 더듬었다. 원하는 물건은 비교적 금방 발견됐다.
컨실드 캐리. 오토매틱 권총.
교회에서 습격당했을 때, 상대의 옷이 부풀어 있는 것을 눈치챘었다.
나는 그 권총을 집어들고 이빨로 노리개를 물었다.
먼저 때린 남자가 일어나서 달려온다.
그 녀석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 녀석은 이쪽의 총을 보자 흠칫 놀라 움직임을 멈췄지만 곧 강경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침착해. 다친다고, 아마추어가 그런 것을 휘두르면――」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가 흔들리며 총은 마른 소리를 울렸다.
작렬음이 공기를 가르고 남자의 허벅지에 피보라가 튀어 올랐다. 융단 위를 뒹굴며 남자의 비명이 터졌다.
「미안.」 나는 깊은 기침을 하며 말했다.
나츠메 요타로 덕분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책의 지식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 총의 취급에 대해선, 그녀의 두 번째 『피의 봉인 : 블러드 씰』이 자세하게 설명해줬었다. 두 페이지 통째로 총기 해설에 할애했던 그녀의 편집증이 지금은 너무 고마웠다.
뒤를 돌아봤다. 또 기침이 났다. 피가 넘치는 탓에 제대로 말할 수도 없다. 목에 피가 들어왔다.
뒤에선 의사와 간호사가 멍한 표정으로 바닥의 살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혀, 혀를 깨물었는가, 스스로.」
대답하려다가 그러나 그것도 귀찮아서 그만뒀다.
그 말대로였다.
혀를 물어뜯고 출혈을 목 부상으로 가장한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닦고 나서 쓰러진 상대의 주머니를 뒤졌다.
「뭐, 뭘 하려는 생각이야.」
라이터를 꺼내들자 의사가 당황한 듯 말했다.
나는 부러진 오른팔에 파자마 상의를 감고, 그 위에 라이터를 쥐었다. 라이터를 켜자 금세 옷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뭐, 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의사는 날 막으려 했다.
난 상관하지 않고 그 불탄 팔을 머리 위에 올렸다.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살갗이 타오른다. 불의 넘실거리는 혀가 천장 근처를 핥았다. 열을 감지했는지 화재 경보벨이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하고 물이 머리 위로 뿌려지기 시작했다.
……불이 붙은 상의를 버렸다.
감금실을 나서자 그곳은 고급 호텔처럼 보였다. 긴 통로에 여러 개의 문이 늘어서 있다.
나는 복도를 나아가며 첫 번째 모퉁이를 돌았다.
방 구조상 옆방이 눈에 띄었다.
벨은 아직 시끄럽게 울리고 있어서 당분간은 울림이 그칠 것 같진 않았다.
「고모, 누나――」
원하는 방을 찾았고.
그 문을 두드렸다. 「화재입니다. 도망가세요. 들리십니까?」 라고 두드리며 반복했다.
잠시 있자 문이 열렸다.
연 사람은 가운 차림의 히로토였다. 지체없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설마, 내가 오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히로토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물러서.」 나는 그런 그에게 총을 들이대며 방 안까지 들어가게 했다.
안쪽에는 세 사람.
누나와 고모와 중년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세 사람 모두 벌거벗은 채, 그리고 깜짝 놀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어째서――」
「닥쳐.」
말하려던 히로토를 제압하고 총을 겨눈다. 출혈 탓인지 시야가 반짝반짝 희미해져갔다. 당장이라도 이 녀석들을 죽이고 싶다. 그런 강한 감정이 현기증처럼 엄습해왔다.
중년 남자── 데메킨이 몸을 당황한 듯이 굴렸다.
「야, 그쪽의 너. 움직이지 마. 죽고 싶냐?」
「아, 아니야, 나는. 아니라고.」
「아가리 싸물어, 뒤지기 싫으면.」
「아니라고, 나는.」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나는 퉷, 피의 침을 뱉으며 말했다.
「까불지 말고 있어. 저기 날려지고 싶지 않으면.」
「으, 으으.」
데메킨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침대로 돌아갔다.
그 옆에서 누나가 달려들었다. 「토라!」 그녀가 말했다.
「토라, 정말 너지? 정말로 정말? 아아 하느님, 세상에. 눈을 떴어어.」
「데리러 왔어, 누나.」
이런 말을 한 직후, 갑자기 다른 여자에게 등 뒤를 안겼다. 부드러운 가슴이 등에 눌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모……」
「토라노스케―― 토라쨩.」
들려온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건 처음으로 듣는, 고모의 나약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토라쨩, 당신, 정말로 무사히 잘 와줬구나.」
「응. 미안해, 고모.」
「……으응. 그래. 아니야. 무사한건 아니구나, 심한 상처. 분명 무리를 했구나.」
「괜찮아요, 저는. 그보다 고모랑 누나는 괜찮아요? 다치신데는?」
나는 두 사람을 관찰하며 물어봤다.
이들에게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다.
그저 몸이 젖어 있었다. 땀으로 온 몸이 젖어 있었고 게다가 사타구니가 하얀 즙으로 끈적거렸다.
두 사람은 난처한 듯이 내 시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같이 자신들의 모습과 번갈아 비교했다.
「저기. 토라쨩, 그, 이것은――」
무언가 말하려 했다.
나는 머리를 흔들고 고모의 눈을 보았다. 부러진 팔로 끌어안고 입술을 빼앗았다. 고모는 깜짝 놀란듯 눈을 떴다. 혀를 놀리자 그녀는 수줍어하며 볼을 붉혔다.
「상관없어. 너는, 내 여자다.」
「네, 네에.」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았다.
상처난 입으로 입을 맞추는 바람에 고모의 입도 새빨갛게 되어 있었다.
통증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자 히로토가 불쑥 말했다.
「연극을 했나.」
나는 히로토를 보았다 목소리에 힘을 담아 확실히 말했다.
「둘은 돌려받겠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지만 그건 머지않아 다 끝나고 나서다. ……뭐어, 그건 내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 어쨌든 지금은 돌아가겠어. 너희들은 그냥 가만히 있어라. 쫒아오지도 말고.」
「어쩔 셈이냐.」
히로토는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분한 듯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글쎄다.」 나는 입을 비쭉거렸다. 통증 때문인지 얼굴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웃음이 나타나고 있었을까.
「나는 타무라의 대해선 잘 몰라. 집안의 일도. 그러니까 그녀들에게 맡겨야지. 네 놈에 대해서도. 너, 존나 잘 알고 있잖아. 그러니 대충 예상은 할 수 있지 않나?」
「이제와서 그들이 뭘 할 수 있지?」
「모르겠어, 그건. 그녀의 힘은 네가 더 잘 알거라 생각한다. 나는 두 사람을 지킬 뿐이야.」
모녀의, 나를 안는 힘이 강해진다.
데메킨이 비명에 젖은 목소리로 신음했다.
「가자구. 둘 다 가운을 입고. 누나, 안내 좀 부탁할 수 있을까?」
「알았어, 맡겨둬.」
「부탁할게, 여길 나가자.」
등을 돌리고 방을 나갔다.
나는 천천히 히로토의 움직임에 주의하며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선 화재경보기가 아직도 요란스럽게 울리고 있었다. 몇몇 호텔 종업원인 듯한 사람이 방 몇 군데를 돌고 있었다.
「이것도 토라가?」
「응.」
「불 질렀어?」
「이미 꺼졌어.」
「그 화상은?」
「그 때, 잠깐 좀.」
「눈은? 그쪽 눈, 잘 보이는거야?」
「…………」
「입, 피가 흐르고 있어.」
누나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녀는 약간 화난 듯이 말했다.
「돌아가면 나도 해줄테니까 말야.」
「뭘?」
「키스야. 어머니만, 치사해.」
두 사람을 재촉해 길을 걷게 했다. 추격자가 오는 기색은 없었다. 조금 지나자 엘리베이터가 있는 넓은 홀로 나왔다.
「이 플로어는 대절되어 있어. 현관까지 가면 이제 안전할거야.」
「엘리베이터 탈 수 있을까?」
「무리야. 아마 멈춰 있을거야. 계단으로 가자.」
「응.」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말했다.
「슬슬 끝이 얼마 남지 않았네.」
「끝?」
「예감이 들어.」
말하면서 계단으로 향했다. 신기한 듯 누나가 이쪽을 쳐다봤다.
「무슨 뜻이야?」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녀를 응시했다. 「꿈이――」
꿈이 끝난다. 여기까지 길었던 꿈이. 저 하얀 방이 보였을 때부터 예감은 있었다. 류노스케가 말한 세계의 끝. 이오누나가 고한 나의 죽음이다. 그정체가 왠지 보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나.」 나는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뭐야, 어째서 그런 눈을 하는거야.」
누나가 불안한 듯이 말했다. 고모도 이쪽을 보았다.
「두 사람 모두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제멋대로인 이야기와 어울리게 해줘서. 사랑해줘서 기뻤어요.」
모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계단으로의 문을 연다.
두 사람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뭔가 말하려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소리를 내며 도착을 알렸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가세요, 두 사람 다.」
「가라고? 토라도 같이 가야지.」
「아아, 나도 갈거야――」
대답한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복도 모퉁이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피투성이의 다리를 절며 달리고 있다. 손에는 권총이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모녀를 끌어안고 옆으로 밀었다. 시끄러운 벨소리를 틈타 탕, 마른 파열음이 났다.
「그악――」
도망칠 여유는 없었다.
강한 충격을 느끼며 나는 밀리듯 쓰러졌다. 뒤쪽엔 비상 계단이 있었다. 그대로 등에서부터 떨어져 나갔다. 몸이 단차에 부딪쳤다. 소리가 났다. 아픔은 느끼지 않았다. 단지 목만이 이상하게 뜨겁게 느껴졌다.
1초인가, 2초인가. 꽤 오랜 시간 후에 내 몸은 구르는 것을 그만뒀다.
……비명이 터졌다.
모녀의 목소리였다.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층계참에 오자 두 사람은 열심히 나를 안아 일으키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짧은 발성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을 침착하게 하려고 생각했다.
무슨 농담을 해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구수한 농담은 생각나질 않았다. 나 스스로도 머리가 안 좋은 사람이라 느끼며 기가 막혔다. 쓴웃음을 짓기 위해 얼굴 표정을 찡그리려고 시도했지만, 이 역시 잘 되지 않았다.
목이 자못 뜨거웠다. 만져보니 목부터 가슴까지 온통 붉게 젖어 있었다.
「토라.」
누나의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고모는 떨고 있었다. 얕은 호흡을 반복하면서 뭔가에 매달리듯,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듯이 시선을 주위에 방황하고 있었다.
나는 숨이 막힐 듯이 웃었다. 모녀는 다치지 않았다. 그것이 퍽 즐거웠다. 팔에 안긴 채 두 사람에게 손을 뻗었다. 뺨을 어루만지자 새빨간 피가 두 사람의 뺨을 적셨다.
「가운, 피, 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누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어, 싫――엇, 죽지마.」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평소에 시원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절망에 짓눌릴 것 같은 한 소녀의 기색이었다. 도저히 누나답지 않아. 경황없는 표정. 과거에 한 번 이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 어릴 적 그 동백나무에 활짝 핀 산에서 누나와 헤어질 때.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몸은 부쩍 차갑고 무거워져갔다. 과연 이건 살아날 수 없을 것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내 감각이 아니라 나의 두 사람의 태도가 그렇게 내게 알려주었다. 마침내 마지막이다. 이 세상에서. 나는 두 사람에게서 떠난다.
「괘, 괜찮아. 토라쨩. 곧바로 의사가 오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지.」
고모가 말했다 새파란 얼굴로 나의 상처를 눌렀다.
됐어요, 이제──. 나는 그렇게 입술을 움직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니! 포기하면 안돼. 이런 상처 대단치 않단다. 의식을――」
말의 후반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단지 그녀가 화내고 있는 것만은 알겠다. 냉엄한 눈초리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처음 보는 분노의 표정도 역시 아름다웠다. 역시 고모는 아름답다. 어디까지나.
하지만 점차 시야도 어두워진다.
고모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찬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왔다. 겨울의 냉기가. 쌩쌩.
나는 눈을 감았다.
이윽고 아픔도 사라지고, 그리고, 아무 것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