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2/141)

변태장에 어서오세요. 3장 13화

무직, 쿠도 토라노스케의 경우 그 7

아스파트 지면에서, 가루눈이 날아오른다.

팔랑팔랑하고, 달빛 아래서.

그 광경에 나는 잊고 있던 기억을 환기시켰다.

그리운 경치를.

사방에 핀 동백나무의 꽃잎. 빨강과 흰색의, 마치 융단처럼 떨어져 깔린 동백꽃. 아름다운 꽃길.

그 길에 소녀가 서 있었다.

아직 10세 안팎의 어린 여자아이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얼굴로 이쪽을 노려보며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있었다. 아니,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스스로 견디고 있었다.

뭔가 생각에 잠긴 비장한 얼굴로.

그녀 옆에는 딱딱한 표정의 어른들이 서 있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는 동백꽃의 길을 걸어간다.

뒤에 소녀와 어른들을 남겨두고.

저 울고 있는 소녀는 누나였을까?

어쩐지 찜찜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는 그렇게 절망을 내비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새끼돼지처럼 구히구히 소리를 내며, 그렇게 꼴사나운 얼굴을 할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언제나 자신만만했다. 나약하긴 해도 저렇게 울진 않았다.

아니면, 혹은.

내가 알고 있던 얼굴이야말로, 착각에 지나지 않았거나.

 ◆ ◆ ◆

갑자기, 배후에서 차량의 끼익 소리가 울렸다.

갑작스러운 일에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보니 차량이 두 대── 검은색의 세단과 봉고 차량이, 맹스피드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주택가의 길을 말이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다. 눈부심에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뭔가 이상했다. 위기감만큼이나 불안한 긴장이 온몸을 감싸고 있다.

「우우, 이, 이것은?」

옆을 본다. 하지만 그땐 이미 일본식 복장을 한 청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청년이 서 있던 자리, 그 너머로 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엣? 이, 이오누나, 야!?」

엉겁결에 쳐다본다.

먼 곳의 여성은, 아는 사람과 많이 닮았다. 누나이자 연인이었던 사람이. 그녀는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손을 흔들며 무엇인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그쪽으로 나는 내딛으려 했다.

그 여성에게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려고.

하지만 거기에 세단이 찾아왔다. 봉고 차량도.

두 대의 검은 차량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서더니 내 앞뒤를 막듯 길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가로등 아래 빛나는 검은색의 문이 열렸다.

사람이 내려왔다. 나온 것은 양복을 입은 보기에도 강해보이는 남자들이었다.

봉고차에서도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여러명 라이트를 등에 업고 내려왔다.

이 녀석들은 뭐지, 대체? 눈썹을 치켜세우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남자들은 나를 보자마자 무엇인가를 확인하려는 듯이 서로 눈짓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침을 삼키며 물었다.

「뭐야, 너희들? 내게 볼일있냐?」

남자들은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무식한 태도로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 수는 확인할 수 있는 것만해도 5명은 되었다.

험상굳고 딱딱할 정도의 무표정이었다.

순간적으로 몸을 돌렸다.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인 것이다. 아직 막히지 않은 교회를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그러자 남자들도 이쪽의 도주를 보며 일제히 움직였다.

「도망쳤다고옷」

「쫒아!」

「둘러싸는거야, 가랏」

각자에게 고함치며 뒤쫒아 온다.

그 움직임은 결코 농담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쏘아낸 권총탄처럼 육박해 온다.

(뭔데, 저 녀석들!)

뇌리에 여러가지 의문이 스쳤다.

그들은 누구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나를 노리는걸까. 나를 어찌할 셈이지. 붙잡을 셈인가, 폭력으로 굴복시킬 셈인가. 그렇지 않으면 설마, 정말로 설마지만, 나를 죽이는 것도, 가능성으로 있을 수 있는걸까……? 그러한 의문이 차례차례로.

(죽인다고? 나를?)

공포가 심장을 내리친다.

등골을 찌르는 불쾌한 기름같은 땀이 솟구쳤다.

그러나 동시에 뭐라 말할 수 없는 이상함도 가슴 속에서 웅성였다.

죽음.

죽음.

이제와서 그게 어쨌단 말인가. 이제 모든 것이 아무래도 좋다고 방금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삶에 집착할 필요가 어디에 의미가 있는지, 솔직하게 잡혀서 죽어버리면 좋지 않을까(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진 모른다.). 지금의 나에게 도망치는 의미란 없다(살아가는 의의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아냐, 라고 생각했다.

아직 의미라면 있을지도 몰라.

왜냐면 아직 나는 두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두 사람, 누나와 고모에게.

류노스케는 카미모리로 가서 두 사람을 만나라고 했었다.

난 그녀들을 찾아야 한다. 그러니 지금은, 적어도 지금은 도망가야 한다.

그리고 혼란스럽다고 생각했다. 정말 미쳤다. 그래서 이렇게 입이 비뚤어지는거다. 알 수 없는 위기에 웃음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봐라, 이 모습을.

광기에 찬 얼굴을.

이것이 나다.

쿠도 토라노스케다. 이름은 그 자체의 본성을 나타내듯이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린다. 아득히 먼 옛날로부터 훨씬 먼 곳의 미래까지.

「우오오?!」

외치면서 예배당에 들어갔다.

상처가 눈에 띄는 금속 손잡이는 생각보다 매끈하게 움직여 주었다. 아무래도 잠기진 않은 것 같았다. 성당 안은 지독한 먼지와 곰팡이 냄새로 진동했다. 달빛이 흐린 천장을 통해 성녀상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뒤를 돌아보며 막 지나간 문을 찼다. 관음(?音)으로 울리는 문을.

차를 세운 끝에 작업복의 남자가 있었다. 문은 힘차게 튀어나갈듯 닫혀 사내에게 부딪쳤다. 두세 걸음 남자가 비틀거렸다. 재빠르게 손에 든 담요를 던져 상대의 시야를 가리도록 덮었다. 비틀거리는 발밑에 몸을 부딪쳤다. 남자는 쓰러지지 않았다. 사지를 버텨 참으려고 했다. 나는 상대의 발뒤꿈치에 팔을 감아 억지로 지면에 끌어 넘어뜨렸다.

지렛대 원리로 발목을 비틀어 구부렸다. 그래도 남자는 전의를 잃지 않았다. 강한 기세로 아래에서 걷어차온다. 한층 더 발목을 비틀었다. 워크 부츠 끝을 잡고, 힘껏, 강하게! 강하게!

「끄르――륵」

남자의 입에서 혼탁한 신음이 새어나왔다.

침이, 쉰 숨소리와 함께 공중에 뿌려진다.

뿌직 뿌지직, 하는 기묘한 소리가 발목 쪽에서 울려오자 신음은 성대한 비명으로 바뀌었다.

나는 붙들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그리고 남자의 안면을 걷어찼다. 온 힘을 다해 축구공을 차듯이 맨발에 퍽 살점이 뭉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자시익.」

바로 앞에서 다른 남자가 다가온다.

흑색 양복으로 무장한 남자였다. 손에는 40cm 정도 되는 금속 막대가 빛나고 있다. 아마 신축식 경찰봉일 것이다. 그 녀석 뒤에는 또 다른 남자도 있었다.

쓰러트리고 빠지는 것은 무리.

그렇게 판단한 나는 다시 도주로 전환했다.

성당 내를 달렸다.

남자들은 이 안쪽까지 쫒아왔다. 긴 의자를 뛰어넘어 널빤지 바닥을 구르며.

제단 안쪽의 도어로 나는 다시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은 빛이 닿지 않아 캄캄했다.

그런데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눈은 어둠에 익숙했을 뿐더러 성당의 구조도 대충은 기억하고 있어서 똑바로 나아갔다. 고해실 옆을 지나 종루로 이어지는 계단 옆으로 곧장.

뒷문은 금세 발견됐다. 문에 붙은 창문으로 희미한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빠지면 뒷골목이다. 뒤는 어떻게든 될 것이다. 공원까지 돌아가 수풀에 숨어도 좋고, 반대 번화가로 도망치는 것도 좋다. 하여튼 5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뒷문을 나섰다.

  ◆ ◆ ◆

뒷편에는 자갈이 깔려 있었다.

내디딘 발에 조약돌이 통증을 동반하며 파고들었다.

「참아……」

아픔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자신에게 타일렀다.

맨발과 자갈까지는 계산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쉬면 따라잡히고 만다. 지금은 아픔을 참고 나아가자. 이 측에서 모퉁이를 바로 돌면 뒷골목으로 이어지는 철망이 있다. 거기만 넘어가면 이제 안전할 것이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나아가 성당에서 목사관으로 이어지는 모퉁이를 돌았다.

「――――」

그 직후, 옆에서 후려치는 듯한 일격을 받았다.

그건 무시무시한 머리를 향한 일격이었다.

모퉁이를 돈 순간, 옆에 온 누군가에게 머리를 세게 타격당한 것이다.

사고가 날아가 감각이 흐트러졌다.

무릎이 말을 듣지 않게 되어선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 자리에 비틀거리며 무너졌다.

시야에 몇 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쏘아낸 발차기가 이쪽 명치에 꽂혔다.

위액을 흐릴며 나는 자갈이 깔린 땅바닥을 굴 러다녔다.

「씹새끼가, 귀찮게 만들고 있어.」

걷어찬 남자가 퉷, 침을 뱉으며 말했다.

자갈 위를 발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걷어찬 상대를 바라보았다. 중년의 남자. 육중한 체구에 검고, 성급해 보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눈썹이 옅은데다 눈이 극단적으로 가늘어 거의 흰자위에 가까운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본다. 

혹은 폭력을 생업으로 하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의 각진 얼굴에는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함이 있었다. 남을 해온 사람이 갖는 특유의 냄새── 

모종의 자포자기로 자신의 운명에 대한 어두운 체념이 역력했다.

「멋부리는 척하다가, 뒈지시려구요, 어이?」

매도하면서 집요하게 짓밟아 온다.

나는 몸을 납작 엎드린 채 웃으며 입가에 묻은 위액을 닦아냈다.

「너, 너희들, 야쿠자잖아?」

「미친 새끼가, 때려죽일까. 감히 누구에게 물어보냐아, 다른 군의 인간인지 무너지는 모르겠지만, 너 따위, 그냥 쓰레기 새끼가.」

「그, 그래, 너랑 똑같아. 우후, 우후후……」

차이면서 웃었다.

남자는 이성을 잃었는지 더욱 격렬하게 발차기의 기세를 높여 온다.

나는 고양이처럼 등을 구부리고 이 발차기를 계속 받았다.

옆구리, 등, 머리, 어깨, 허벅지. 남자는 몇 번이고 밟았다. 분명 폭력에 취해 있는 것이다. 발차기 하나가 얼굴에 들어가, 신발 끝이 눈에 박혔다. 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시야의 절반이 검붉게 물들었다.

「커억, 끅……으으」

신음했다.

나자빠진 지금, 눈에 하늘이 선명하게 비쳤다.

하늘. 주홍빛으로 물든 밤은 은쟁반을 닮은 달을 띄우며 이쪽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두라고, 죽겠어. 죽일 작정인가.」

누군가 다른 녀석이 말했다.

「히로히토님으로부터 살려서 데려오라는 명령이다. 」

「우리는 너네들의 하수인이 아니야!」

「무시할 셈인가? 그것이 어떤 결과가 될지 알곤 있는 건가? 공짜로는 안 끝날지, 너도, 너의 조도, 손가락 날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 후, 걷어 차던 남자는 혀를 차며 간신히 나에게서 떨어졌다.

그러자 또 다른 남자가 그들 뒤에서 나타났다.

이 역시 양복이었다. 가느다란, 인텔리풍의 남자로, 손에 가늘고 긴 통 모양의 무엇인가를 쥐고 있었다. 그 녀석은 옆에 쭈구리고 앉더니 움직일 수 없게 된 내 목덜미에 그 가는 통── 펜 모양의 무엇인가를 갖다 댔다.

희미한, 한 점의 아픔.

나는 주사를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물. 무엇인가가 목덜미에서 체내에 주사된 것이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남자들의 목소리도 멀어지고 이윽고 의식도 캄캄한 구멍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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