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9/141)

변태장에 어서오세요. 3장 10화

무직, 쿠도 토라노스케의 경우 그 4.

어디를 어떻게 달렸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신 쿠즈하라(葛原) 역 앞에 나는 있었다. 시의 정중앙에 있는 거리, 가장 큰 번화가다.

크리스마스의 번잡함으로, 거기는 매우 소란스러웠다.

말소리, 발소리, 차량의 배기음, 횡단보도의 신호등. 요란한 그것들과 섞여서 징글벨과 유행하는 음악들이 들려온다. 거리를 장식하는 일루미네이션은 눈부셨고, 눈의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터벅터벅, 나는 역전을 걸어갔다.

이 추운 날씨에 파자마에 가디건 차림은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로부터 기이한 시선을 받고 있었다. 몸은 눈에 범벅이 됐고 발에는 병원 슬리퍼가 함박눈에 젖어 차갑게 되어 있었다. 파고 들어간 눈 때문에, 발끝의 감각조차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

자신에게 말해봤다.

생각은 없었다. 단지 한때의 감정에 져서, 도망쳐왔을 뿐이다.

그 일이 정말 한심해서. 한심해서 죽고 싶어졌다.

료코씨에게 했던 말. 배신자라고. 그건 내가 말해서 좋을 말이 아니었다. 제멋대로 여자를 안아 온 남자가. 정말 뭐라도 되는거냐. 그녀는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을 부정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을 것이다. 언제 눈을 뜰지도 모르는 남자를 기다려 달라는 등 그런 어린애의 방자함에 불과하다.

「실패했어.」

머리를 흔들고 거리를 따라 나아갔다.

역사와 백화점, 그리고 로터리를 잇는 보도. 그곳에서 공중광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른다.

광장에는 많은 모습들이 보였다. 퇴근길 샐러리맨과 OL, 부모와 자식, 젊은 커플들이, 터미널이나 역, 레스토랑이 즐비한 세입자촌 등 생각나는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광장은 역 건물의 2층 부분부터 북쪽을 둘러싸듯 이어졌고, 사방에 있는 패션 빌딩(양장점이나 음식점 그밖의 여러가지 전문점이 함께 들어 있는 빌딩.)과 아래의 대로를 건너가는 육교에 연결되어 있었다.

광장 중앙에는 전광에 물들여진 트리가, 고리 모양으로 놓인 벤치가 가두시계 너머에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홀로 거리를 바라본다.

광장 끝에는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임립한 빌딩 너머 무리지어 있는 단지의 불빛과 붉은 전파탑의 불빛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후타마루 뉴스(20ニュ?ス), 오늘의 토픽――」 사교 빌딩에서, 가두 텔레비전이 말한다. 보면 벽면의 대형 스크린에 원고를 읽어주는 젊은 아나운서가 보였다.

「……오늘, 인기 락 가수 JUN씨가 도내에서 결혼회견을 열었습니다. 회견에 의하면, 입적 신고를 한 것은 어제, 상대는 일반 남성으로, 결혼식은 내년 1월에 하와이에서 거행된다고 합니다. JUN씨라고 하면 젊은이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자랑하는 밴드 『clepsydra』의 보컬이기도 하죠. 그 중성적인 외모 떄문에 여성에게도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는, 그녀의 결혼에 대해 거리에서는 비탄하는 소리도 많이 들려올 것 같습니다――.」

아나운서가 말한다.

나는 광장의 가장자리에서 금속 울타리에 기대어, 주의깊게 텔레비전을 관찰했다.

뉴스에는 최근 결혼했다는 젊은 뮤지션의 사진이 나왔다.

화사하고 머리가 짧은 보이시한 여성. 다른 소리를 차단하려는듯, 휴대 플레이어의 이어폰을 달고 있다. 그리고, 그 선글라스를 벗은 그녀── 붙임성의 조각조차 없는 듯한 그녀는, 실은 내가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

숨을 토한다.

난간에서 벗어나 머리의 눈을 털었다.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옷깃에서 눈 덩어리가 옷에 몇개이고 스며든다.

무거운 다리를 절고 차가운 눈을 밟으며 나가자 시야에 가두 시계가 들어왔다. 시곗바늘은 8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아래에는 몇 명의 젊은 남녀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후우.」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몹시 피곤한 기분이었다.

몸이 나른하고 무거웠다.

현실감없는 미열과 오한이 온몸을 감싸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어쩔 수 없다. 바람은 차가워 도저히 몸에 좋을 것 같지도 않았다. 혼란한 머리로도 그 정돈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몸은 이미 차가워져 있었다. 쏟아지는 눈은 몸 구석구석까지 열을 요구하고 있었다.

「돌아갈까.」

중얼거림이 샜다.

돌아가? 어디로?

자신에게 물었다. 대답은 물론 알고 있다.

(편대장……)

그래, 편대장.

편대장이었다. 편대장. 그 집. 그 아늑한 아파트.

「그래, 돌아가자.」

무심코 결정해보니 의외로 자연스럽게 생각됐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은 거기고. 나는 그 아파트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어느새 하게 되었다. 눈에 덮인 쓸쓸한 방이 아니라. 그곳이야말로 진정 원하던 곳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족이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비로소 안심하는 기분이 드는 곳.

「그러나, 넌 도망가려고 했지.」

누군가가 말했다.

나는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보며 찾았다.

누가 말했는지 알 수 없었다.

행인들은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 눈 내리는 밤을 그저 즐겁게, 혹은 쓸쓸하게,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우……」

두통이 한층 심해졌다.

관자놀이를 누르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시야가 흐트러져, 「지…」라는 거슬리는 노이즈가 엄습했다.

「시끄러워.」

나는 도망친건가.

달라. 아니야, 그래. 도망치려고 했다. 분명히 편대장에서부터, 고모의 손 안에서.

무섭다고. 그 상냥한 사람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질까봐 두려워서, 그 전에 스스로 사라져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자신의,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아아, 원했던 결과는 이거다. 이걸로 난 만족할 수 있는건가. 그럴리 없다. 그런데도, 늘 선택해버리는 것이다. 몇번이나 반복해 버리는 것이다. 몇번이나. 도대체 몇번이나 이런 쓸쓸한 경험을 해야, 나는――. 기다려. 몇번? 몇번이라고?

「시끄러워……!」

고함치며, 일어섰다. 광장을 나아간다. 무릎이 부들부들 떨리고 몸이 굳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걸어갔다.

두통이 심했다.

머리 속에서 귀울림이 들린다.

걸으면서 파자마 주머니를 뒤졌다.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지갑도, 전화도, 돈도, 집 열쇠도, 무엇 하나.

전철도 탈 수 없다.

불안한 걸음으로 역 건물로 들어가지만 개찰구 앞에서 다리가 멈췄다.

「큭, 큭.」

웃는 목소리는, 흐느낌처럼 들렸다.

내가 낸 소리에 깜짝 놀라 당황하여 입을 다물었다. 입을 막은 손은 떨리고 있었다.

「뭐야.」

양손을 잡아봐도, 떨림은 진정되지 않았다. 술렁술렁 무엇인가를 호소하는 듯이 흔들린다. 조금씩, 술렁술렁대며. 「뭐야, 제엔장, 멈춰.」

두 손을 모으고 이빨로 주먹을 깨물었다.

날카로운 통증이 스쳐갔다. 손등이 터지고 피가 흘러나온다.

그 때, 갑자기 배후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뒤돌아보니 청년 한 명이 서있었다.

나이는 스물 네댓살 되보이고 감색 기모노에, 한 폭으로 된 허리띠를 아무렇게나 감은 약간 낡은 느낌의 청년이었다. 나막신을 신고, 속옷은 입지 않았고, 가슴에는 흰 살갗이 들여다 보였다. 귀 밑에서 목 부위까지 뭔가 찢어진 듯한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여어.」

청년은 개구쟁이같은 눈빛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여어, 라고.」

무언으로 있는 나에게, 반복해 온다. 나는 몸을 구부려, 청년의 시선에서 고개를 숙이고 외면했다.

청년이 말했다.

「기운이 없네.」

「기운……」

「춥지 않냐, 그렇게 입고.」

「……그쪽이야말로.」

「음, 춥네. 정말 추워. 오늘은 쌀쌀하구만.」

나는 시선을 역 밖으로 돌렸다.

물기가 많았던 눈은 어느새, 작은 가루눈으로 변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기온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휘몰아치는 눈을 바라보았다. 「눈이다.」

「아아, 눈이네.」

「뭔가, 볼일있어?」

「음?」

「볼일이 있어서 말을 걸었잖아.」

「피가 나오고 있어.」

「피?」

「곤란할거라 생각해서 말야.」

그는 고민하듯이 말했다. 한 손을 소매에 넣고 다른 한 손으로 수염이 들뜬 턱을 문지른다. 「망설이는거 아닌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눈을 부릅뜨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누구야, 당신.」

「그렇게 경계하는 소린 하지마. 이래뵈도 네 편이니까. 병원에서도 말했잖아.」

「병원이라고?」

「그래 병원이다, 난 널 인도하러 온거야.」

그 말을 듣고,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기 전, 병원에서 들은, 이상한 목소리가 발소리가 떠올랐다.

「당신, 그 때의――」

「생각났나. 또 잊어버렸다면,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했다. 설명하는 것도 고생이니까.」

「…………」

「그렇게 사람을 노려보지 마. 눈이 충혈됐어, 새빨갛다고.」

「어째서, 거기에 있었어. 당신 누구야.」

「왜 그럴까. 이름도.」

「말 돌리지 마.」

「돌리는게 아니다. 이건 사실이다. 사실이라고, 꼬마야. 지금의 나는 단순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외관의 모습, 대뇌피질이 꾸며낸 날조야. 모양은 이렇게 되어 있지만, 그런건……. 아니, 그런건 됐나.」

「무슨 말을, 무슨 말을 하는거야.」

「뭐 기다려 봐. 조급하게 굴지 말고. 질문에는 대답해 줄테니까. 치명상을 피하고 있는 사이에…… 시간이라면 아직 있으니까. 그것보다 표를 사고 싶은거지? 자, 그럼 이걸 써. 충분할거다.」

라고 말하며, 청년은 한 장의 지폐를 내밀었다. 그것은 구겨진 10000엔이었다.

「이것은?」

「줄게. 아까 거기서 주웠어. 뭐, 사양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버릴 물건이다.」

「받을 이유는 없어.」

「괜찮아. 내가, 너에게 주고 싶어.」

나는 잠자코 있었다.

청년은 억지로, 이쪽에 지폐를 쥐게 하곤 개찰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마음에 안들면 나중에 돌려주면 된다.」

이 말에 나는 잠깐 생각했고, 그리고 결국 돈을 받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서 돈은 필요했고, 또 그 기모노의 청년이 가진 인상도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 예상이 틀릴 가능성은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그렇게까지 질이 나쁜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미안. 그럼 사용할게. 고마워.」

「감사는 됐다. 자, 우선은 돌아가자. 표를 사는거다. 여긴 추우니까. 계속 얘기할거면 전차에서 하자고.」

「그렇군.」

「뭔데?」

「나를 따라오는거야? 어째서?」

「말했잖아, 수호령이라고. 난 네 곁에 있는게 일이다.」

청년은 나막신 소리를 울리며, 자동 개찰구로 걸어갔다.

그 등에 나는 말을 걸었다.

「표는 필요 없는건가.」

「괜찮아, 나는 예외다.」

팔랑팔랑 청년은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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