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장에 어서오세요. 3장 9화 (약간의 NTR 주의!!)
무직, 쿠토 토라노스케의 경우 그 3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며칠.
신체의 회복은 생각보다 빨랐고, 나는 그럭저럭 내 힘으로 걸을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되어 있었다.
물론 그 발걸음은 불안했고, 마른 몸도 여기저기 아팠지만, 그래도 2년 동안 누워만 지낸 것 치고는 꽤 괜찮다고 의사가 내 회복력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팔에는 아직 링거를 맞고 있다.
기관 절개했던 목은 통증이 있어 목소리를 확실히 낼 수가 없었다.
입에 튜브를 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연히 제대로 식사도 할 수 없었다.
의사는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유연성이나 보행 훈련이라고 하는 재활에 힘쓴 것은, 그것이 확실히 편했기 때문이다. 녹슨 근육을 길들이기 위해 조금이라도 빨리──, 그런 이유보다 단지, 움직이고 있으면 불필요한 것을 생각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 역시 생각해버린다.
지난 2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내가 잠든 동안의 편대장의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왜 아무도 병문안을 오지 않는가.
누나와 고모는 어디로 가버린걸까.
그런걸 생각하면 밤잠을 설쳐버린다.
절실히, 자신이 자립성이 부족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사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돌봐주는 간호사의 미치씨도, 「사고가 있었어요.」라고 밖에 말하지 않았다. 그 이상을 물어보자 어색한 듯 말끝을 얼버무리고 도망쳤다.
나 자신도 혼수상태의 원인이 되었던 사건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왠지 강한 빛과 충격, 타이어의 고무가 갈리는 소리같은 것이 기억에 있을 뿐이었다.
료코씨는 없다.
전화를 해보긴 했지만, 편대장도, 시골의 타무라 저택도, 어느 쪽도 연결되지 않았다. 전부 걸어보아도, 회선 그 자체가 연결되지 않았다.
다른 외우고 있는 번호는 없었다.
연인들의 연락처도, 카즈히코의 휴대전화도, 우르자 교회의 시미씨도 모두 조그마한 핸드폰에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요한 휴대폰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레이코씨의 회사나 교회 정도라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무료의 전화 안내로 조사했지만, 이것도 성과는 좋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내게 가능한 일이라곤 재활 정도밖에 없었다.
다행히 세 끼 식사는 나왔고(아직 미음과, 강판에 간 과일 뿐이었지만.) 의료비나 입원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하진 않았다. 속옷이나 몸 주위의 자질구레한 물건은, 모두 미치씨가 준비해 줬으므로, 특별히 눈에 띈 불편도 없었다.
불안만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나는 의사에게 수면제를 받고, 잠을 잤다.
◆ ◆ ◆
12월 24일은, 아침부터 펑펑 눈이 내렸다.
밖은 흐린 하늘로 회색의 무거운 구름이, 느릿느릿, 물기를 듬뿍 머금은 눈을 떨어뜨려 갔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가로수 아래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거리는 눈에 파묻혔다. 상공에 차갑게 내리꽂히는 한파는 관동 지방에 몇년만의 폭설을 가져오고 있었다.
오전 CT로 뇌 검사를 한 후 나는 오랜만에 목욕을 했다.
목욕이라고 해도, 샤워를 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몸을 닦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나은 편이라서. 나는 오랜만에 상당히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오래 잤다곤 하지만, 일단 일어나면 역시 몸은 문화적인 생활을 원한다. 밥은 먹고 싶고, 땀도 흘리고, 덥수룩한 수염도 머리도 우중충하다. 샤워하는 김에 면도를 하고, 그리고 나서 이를 닦았다.
신경이 쓰이던 페니스도 만져봤다. 제대로 반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침 발기가 있어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확인은 나를 조금 안도하게 했다. 몇 번인가 페니스를 훑어내어, 쿠퍼액이 나와 귀두가 미끈미끈해진 시점에서, 나는 만지는 것을 그만두었다. 사정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샤워로 씻어내고 그대로 욕실을 나왔다.
오후 5시.
조마조마하여, 침착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문병객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치씨의 말에 의하면 누군가가 올 것이었다. 카즈히코와 그리고 아마 시미도 올 것이다.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금 상황도 보일 것이다.
침대에 누워, 그들을 기다렸다.
창문 밖을 바라본다.
눈은 변함없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마치 우에모리의 겨울과 같았다.
짙게 흰 눈이 거리를 뒤덮는다. 환상적인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연인들은 성야를 축하할 것이다.
집이나 호텔, 혹은 레스토랑. 또는 침대 위에서.
「아직인가. 너무 늦으면 면회시간이, 끝나버린다고.」
기다리다 못해 나는 병실을 나갔다.
링거 스탠드를 지탱하며 외과병동에서 접수처가 있는 병원 로비로 향했다. 리놀륨이 깔린 복도를 따라가다 수상한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잠에서 깬 것, 카즈히코들은 모르겠구나.」
연락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병원이 연락하는 것은, 신원 인수인인 가족뿐. 일부러 친구나 지인에게 연락하는 일은 없겠지. ……어쩌면, 편대장 사람들도 모를지도 모른다.
「알 수 있다면, 일단 고모들 뿐이고.」
그렇게 생각해보니, 그동안 병문안이 오지 않았던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앞뒤로 엇갈린 일이 생겨서 타무라 사람들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의식불명이면, 병문안 따위 언제라도 가능한 일이다. 여하튼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형편이다. 그런 환자에게, 손님이 일부러 형편을 맞출 필요는 없었다.
장기 입원일 경우, 면회도 융통성이 있다. 고모들이 조용한 시간을 가늠해서 올 가능성도 있었다.
「그게, 있을 법해.」
7시가 지날 무렵, 고모나 누나, 료코씨들이 집결한다.
그러한 가능성을 상상해 나는 볼을 느슨하게 했다.
요리나 와인을 들고 레이코씨와 아케미씨가 말하며 걸어온다. 그 옆을 이어폰을 낀 준군이 재미없다는 듯이 걸어온다. 누나와, 고모는 뭔가 말을 하고 있고, 뒤에는 사치씨가 변함없는 무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 료코씨는 하이힐인 주제에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꾸욱 나에게 헤드록을 걸어온다──.
상상에 잠기면서, 나는 현관 로비에 내려왔다.
저녁 로비는 살풍경으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소 공기가 차가웠다.
공기 조절은 잘 되어 있지만, 가끔 자동문으로 들어오는 바깥바람이 로비 전체의 온도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밖은 어두웠다.
해가 진 하늘에 눈이 내려 어둑어둑한 가운데, 차량들이 라이트를 켜고 달리고 있다.
거리 곳곳에 있는 네온은 흰 눈보라에 반사되어 연무가 낀 대기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다.
병원 현관은 순백으로 물들어 있다.
나는 어딘가 앉으려고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잘 보이는 위치가 좋겠지.」
링거 스탠드를 굴려, 계단 근처의 긴 의자로 갔다. 그곳에서는 바깥 경치도 아주 잘 보였다. 현관 유리도 행인들도 차량의 흐름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라면 좋겠지. 나는 느릿느릿 무거운 움직임으로 쿠션이 있는 의자에 앉았다.
「하아.」
한숨을 쉰다. 어쩐지 몸이 나른했다. 열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혹은 미열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팔을 끌어안듯이 의자 뒤에 콘크리트 벽으로 몸을 기댔다. 벽은 차가웠다. 아무래도 에어컨이 닿기 어려운 장소인 것 같다.
멍하니 현관을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 한 대의 차량이 병원 영내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택시─, 인가?)
초록색 세단. 넘버는 초록색이었다. 차체의 지붕은, 흰 회사명등에 떠올라 검은 문자가 있다. 기무라 교통. 글씨는 그리 적혀있었다. 차량은 현관 앞에 멈춰 뒷좌석에서 승객을 내려줬다.
손님은 한 쌍의 남녀였다.
젊은 여자와 중년 남자의 조합으로 두 사람은 운전사에게 지불을 마친 뒤, 급한 걸음으로 병원으로 들어왔다. 정문 현관을 통해서 ─ 특히 여자가 몹시 다급하게 달려 들어왔다.
앗, 하고 숨을 삼켰다.
여성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마침 지나가던 간호사가 깜짝 놀란 모습으로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시마즈 선생님? 들어오셨습니까? 아직 일주일 이상 남아있었잖아요.」
여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인 채로, 로비의 중앙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두번, 세 번 누른다. 초조하게 엘리베이터 램프를 보고 있었다.
그 올려다 본 옆 얼굴로 비로소 나도 그 여자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확인했다.
「료코씨――」
료코씨였다.
내가 아는 평소와는 달리, 낯선 원피스 차림이었지만 그 수려한 외모는 틀림없이 내가 잘 아는 그녀였다. 평소처럼 뾰족한 느낌은 없고, 자못 여성스러운, 부드러운 모습으로, 목이나 귀에 장신구 액세서리를 달고 있었다. 긴 머리를 한쪽으로 묶어 한쪽 눈을 가리게 하여 앞쪽으로 들어 올렸다. 가냘픈 팔을 팔꿈치로 꼬아 손가락을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료코, 씨……잇.」
그녀를 불렀다.
목이 쉰 목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상처를 입은 목에 붙인 거즈가 떨렸다.
「읏――――!?」
그런 목소리로도, 그녀는 금방 깨달았다.
휙 뒤돌아보며,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본다.
그리웠던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뻐하고 있는 듯한, 씁쓸한듯한, 어려운 표정이었다. 슬픔과 애석함과 후회가 녹아들어 뒤섞인듯한 그런 감정의 표출로 보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부터, 다양한 것이 치밀어 오를 것 같아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그건 그녀도 비슷했던 것인지, 말을 찾듯 몇 번 입술을 떨며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어서와, 토라노스케군――」
촉촉한 눈동자와 희미한 미소.
나는 긴장을 풀었다. 그 한마디만으로도 가슴속에 있던 불안감이 일시에 풀려갔다.
료코씨를 만난 감정. 그것은 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자애로 가득 찬 것으로.
나는 그것으로 그녀를 느꼈다.
예전과 다름없는 그녀의 진심을. 자신과의 관계에 있었던 것을. 그것들을 무엇 하나 잃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렇다.
분명 나는 2년 동안이나 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불행한 엇갈림으로 그들을 슬프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다 지나간 일이다. 자신과 그녀의 관계성을 변화시킬 요인은 아니었다.
「료코씨……!」
의자에서 일어났다.
엉킨 다리를 움직이며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웃었다. 스스로 자각하는, 오래간만의 웃음을 띄웠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료코씨도 기쁜듯이 이쪽으로 걸어오려고 했다.
「료코.」
갑자기, 쉰 목소리가 들렸다.
낮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료코씨는 깜짝 놀라 나에게 다가오려는 걸음을 멈췄다.
「뭔 일이야, 엘리베이터 와 있다고.」
뒤에서 남자가 다가온다. 료코씨와 함께 택시에서 내린 남자였다.
꿈에서 본 마치 곰같은 남자를 닮았다.
두 사람은 나를 번갈아 보았다.
료코씨는 남자 쪽을 돌아봤고, 남자는 그런 그녀를 보고 싱글싱글 웃었다.
이쪽으로 걸어오면서 료코씨를 향해 손을, 뻗었다.
「타케오씨.」
료코씨가 말했다.
남자는 그녀의 옆에 서더니 그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한 번 끄덕이며, 그리고 료코씨의 시선을 쫒아, 이쪽을 본다. 「오오.」 남자는 깜짝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쿠도군인가……! 정말 눈을 떴구나. 이야, 나를 알 수 있을까? 나는, 이전의 자네의 담당의를 했던 사람이다. 아키타라고 하는데.」
「주치의?」
「그래. 뭐어, 담당의라고 해도, 처음 수술하고, 그 후는 잠깐 본 정도지만.」
나는 애매하게 남자── 아키타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히죽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으음, 정말이군. 정말로 회복된 것 같아. 말도 제대로 하고 있고,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다. 다행이야.」
맹렬히 기뻐하고 있다.
나는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그 자리에서 우뚝 섰다.
아키타는 손짓을 섞으며 즐거운 듯이 계속했다.
「여행지에서 들었다. 유럽에서 말이지. 자네의 의식이 회복되었다고. 그래서 급하게 돌아온거야. 료코가――아내가, 어떻게 해도 돌아가고 싶다고 해서.」
「에……?」
멍청하게, 입을 떡 벌렸다. 「아내?」
「이야, 이거 실례로군.」
아키타는 유쾌한 듯 웃으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료코씨를 끌어안으며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에게 두 사람의 손을 보란듯이 보여주듯――
「먼저 이 말을 했어야 했지. 우리들의 결혼에 대해서 말야.」
「겨, 결혼? 결혼이라구요.」
「그래. 그녀와 나 말이야. 자네의 일은 잘 듣고 있었어. 소중한 친구라고. 료코――이 사람은 더 이상, 시마즈 료코가 아니다. 시마즈 료코에서 아키타 료코가 된거야.」
「아키타, 료코.」
「사실 자네도 식에 나가 주었으면 했었다. 료코가 귀여워하고 있던, 마치 동생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고로 다쳐있던 자네는 계속 잠들어 있었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나 스스로의 무력감을, 아플 정도로 통감했어.」
「타케오씨……!」
료코씨는 어딘가 탓하려는 듯 아키타의 이야기를 말리려 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 서로 맞잡은 두 사람의 손에는 세트로 된 반지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료코씨?」
영문을 모르고, 묻는다.
료코씨는 나의 눈에서 도망치듯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만둬 줘, 타케오씨.」
아키타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료코씨를 보고는 다시 나를 향했다.
「하하하, 이거 신기하군. 료코가 부끄러워할 줄이야…… 어쩐 일이야, 쿠도군. 안색이 좋지 않은걸? 아주 창백해. 괜찮은가?」
말하면서, 아키타는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멍하니 있던 나에게 손을 뻗어, 나의 이마를 만졌다.
「……허, 이건 안되겠군. 열이 좀 있어. 병실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어. 여긴 추워. 자네도 방금 일어나서, 상태가 영 아니잖아.」
나의 등을 떠밀며 병실로 돌아가게 하려 한다.
「아, 아니.」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물었다. 「그, 그것보다 선생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응? 뭐지?」
「료코씨와 결혼을?」
「아아, 그래.」
「언제?」
「지난달에 말이야.」
「결혼식을요?」
「아아.」
한 번 심호흡하며 숨을 고르고. 나는 무서워서 료코씨에게 얼굴을 돌렸다.
「료코씨.」
「…………」
「결혼, 했습니까.」
그녀의 흔들리는 눈을 본다.
어조는 냉정하다. 감정은 심한 상태지만 몸은 컨트롤하고 있다.
그래.
역시 나는, 어디까지나 이런 새끼다. 이런 일에는 익숙해져 있다. 이 손의 이야기들을, 포기할 것을, 이런 날이 올 것을 각오하곤 있었다. 그래서 놀라진 않았다. 이것을 극복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부터다. 여기서부터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한다. 사람은 그래야 한다. 결국 용기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적인 용기다. 실패나 사고, 비극. 누구라도 불행의, 예기치 않고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것이니까. 하물며 실연. 자주 있는 이야기다. 떠들만한 일이 아니다. 우연히 2년 쯤 자고 있어서, 눈을 떴더니 그렇게 되어 있었다는 것 뿐인 이야기다. 그래, 떠들 일이 아니야. 결코.
료코씨는 망설임 끝에 작은 목소리로 인정했다.
「그래…」
「축하합니다. 다행이네요, 료코씨의 신부 모습, 보고 싶었는데.」
평정을 가장하며 말했다.
돌아온 대답에 절망하면서도 굳어지는 입가를 누르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료코씨는 자못 괴로운 듯 그런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결혼은, 어디에서?」
「저기 토라노스케군. 이런 말을 하면, 너는 이제와서 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화났을지도 몰라. 하지만 말이야, 토라노스케군. 난 거짓말한 적은 없어. 나도, 그 편대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이런 일? 이런 일이란게 뭡니까? 결혼은, 기쁜 일이잖습니까.」
즉석에서 잘라 버렸다.
변명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무엇 하나도…….
제대로 말해야 한다. 라고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이대론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가 잠든 경위, 편대장의 모든 사람의 일을 들어야 한다고. 괴롭더라도, 괴로워도, 그러나 끝까지 이야기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동시에 역시 듣기 싫다는 생각도 든다. 얼굴도 보기 싫었다.
결혼?
내가 잠든 사이에 결혼을 했어? 이런 새끼랑?
농담이겠지. 뭔가 잘못됐겠지. 웃기지 마. 웃기지 마라.
그러한 사고가 뇌리를 맴돈다. 그리고 그러한 의문에, 그녀의 애처로운 표정이, 조금씩 해답을 주고 있었다.
알고 싶지 않았던 무자비한 진실을 내게 들이댄다.
대답은 이렇다.
시마즈 료코는 쿠도 토라노스케를 버렸다.
나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이 사실에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다.
1초라도 빨리, 이 장소에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아아, 이것이 내 버릇이다. 나의 본연의 방식이다. 긍정적? 뭔 말이야. 그런건 내겐 무리다. 긍정적으로 살고 싶어하면서 늘 현실도피하는 사람이 나라는 남자다.
「비아냥은 그만둬줘, 토라노스케군. 얘기 좀 들어봐. 우선 이야기를. 어울리는 태도 따위는 그만두고, 내 이야기 좀 들어줘. 우리들의 마음에 거짓은 없었음을. 너를 향한 마음의 무엇 하나, 아직 변하지 않았어. 나도, 지금도 너를 좋아해. 레이코도, 너만 있으면 저런 남자하고――」
「듣고 싶지 않아요.」
「토라노스케구운.」
「침착해주세요, 료코씨. 이거 보세요, 아키타 선생님이 곤란해 하세요.」
「침착해야 할 사람은 너야, 네 쪽이라구, 토라노스케군. 목소리도 떨리고 있어. 목도 입술도 손가락끝까지 떨려. 흥분했다는 증거다.」
잘 보고 있네, 역시 료코씨다.
나는 한 손을 내밀어 저지했다.
「하지 맙시다. 이런 곳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에요. 어려운 이야깁니다. 병실로 갑시다. 계속할거면 거기서 얘기합시다.」
료코씨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먼저 가세요. 제 병실은.」
「알아. 외과 병동 501호실이지.」
「그렇구나. 알고 계시는군요.」
「너는 어떡할거야?」
「커피 한 잔 사올게요. 거기 자판기에서. 조금 기분을 침착하게 해야해서. 두 분은 먼저 가있으세요.」
「나도 같이 갈게, 자판기까지.」
「좋습니다. 당신은 아키타 선생님과 기다리고 있어요.」
말하고, 두사람으로부터 떨어졌다.
「잠깐, 너는 아직 아픈 상태니까.」
료코씨는 나를 따라오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를 향해 이야기를 따라올 수 없는 아키타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녀는 그것으로 걸음을 멈췄다. 번거롭다는 듯, 아키타를 향해 돌아섰다.
나는 그녀를 두고 혼자 걸었다.
현관 쪽으로 가면서 팔에 꽂힌 링거 바늘을 잡아 뜯었다. 자동 유리문이 열렸다.
「어이, 기다렷! 어디로 가는거야……!」
눈치챈 료코씨가 황급히 달려온다.
나는 현관을 빠져 나가며, 단차 옆의 완만한 슬로프를 내려가, 그 도중에 링거액 봉투가 내려간 스탠드를 내던져 버렸다. 스탠드가 높낮이 차로 넘어지고 쨍, 하며 화려한 금속성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로비에 있던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이 깜짝 놀란 듯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이쪽으로 달려오는 료코씨를 향해 잠긴 목소리로 외쳤다.
「오지마, 배신잣.」
움찔, 하고 료코씨는 쇼크를 받은 듯 멈춰 섰다.
나는 호흡을 한 번 내쉬고, 그러고 나서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계속했다.
「행복해지세요, 료코씨. 행복하세요. 그걸로, 그것만을 저는 바라고 있으니까.」
「뭐……엇.」
료코씨의 말이 막혔다.
나는 돌아서서 두세걸음 걷고 뒤돌아보곤 도로로 달리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는 거리.
갈 곳은 없다.
하지만, 여기에 있을 수는 없다. 그것만은 알고 있었다. 추한 감정── 사랑하는 사람에게 향하지 말아야할 마음이, 내 마음에 분명히 존재했다.
료코씨가 뒤쫒아 온다. 방해되는 장애물(스탠드)을 뛰어넘어온다. 그래도 펌프스 때문에 그렇게 빨리 뛰지는 못한다.
주차장에서 차량 행렬이 흐르는 도로로 나왔다.
누군가의 비명소리, 경적이 울렸다.
차량을 무시하고, 도로를 건넌다. 체력이 떨어졌을 몸은 그래도 흥분 때문인지 생각보다 원활하게 움직여줬다.
……거리는, 드디어 밤에 가라앉기 시작하고 있다.
눈은 전혀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