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7/141)

변태장에 어서오세요. 3장 8화 (약간의 NTR 주의!!!)

무직, 쿠도 토라노스케의 경우 그 2

누가 들어왔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그것은 내 곁에까지 오더니 멎었다. 머리맡이 밝아진다. 눈꺼풀 너머로 빛을 느꼈다. 이마에 따뜻한 손가락 끝이 닿았다.

「안녕하세요, 쿠도군. 오늘 컨디션은 어떨까?」

여자의 목소리. 모르는 목소리였다. 이상하게 맥빠진, 어린아이라도 달랠 듯한 목소리였다.

「으?음, 나쁘지 않네. 혈압, 체온 모두 동그라미고, 잠?깐, 맥박이 조금 빠르네. 무서운 꿈이라도 꾸고 있는걸까?. 괜?찮아요?. 내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맥박이 빨라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확실히 겁에 질려 있다.

자신의 움직이지 않는 신체, 나오지 않는 목소리, 열리지 않는 눈꺼풀. 그 모든 것에.

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려 자신의 부조리한 처지를 이 낯선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었다.

「괜찮?아, 괜찮아?요♪」

여자는 말했다.

이쪽의 이마를 쓰다듬어 왔다.

그 따뜻한 감촉은 한순간이지만 나를 안심시켰다.

서서히 진정되어간다. 사람이 곁에 있다. 겨우 이 정도의 일이 나의 불안을 완화시키고 있었다.

「오늘 날씨는 추웠어요. 바람이 몸에 꽂힐 것 같더라구요. 휘이?휘?하고. 추웠는데. 이러다, 다음 주에는 눈이 올까 봐.」

그러면서 여자는 내 이마에서 손을 뗐다.

기척으로 의자에 앉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삐걱삐걱 파이프 의자가 울렸다.

나는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눈이라는 말이 신기했다.

눈. 벌써 그런 계절이 됐을까.

「밖은 이미, 크리스마스 분위기 일색이에요~. 거리를 걸어가도~, 잘 알 수 있어. 병원 안에서도, 들뜬 느낌이 전해져 오는거야.」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잠자코(그것밖에 못하니 당연히.) 그녀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쓸쓸해서. 동시에 어딘가 친구를 향하는 듯한 편안함이 있었다.

「올해도 혼자야, 나.」

갑자기 여자가 이쪽으로 기대왔다. 엎드려, 침대에 누워있는 나의――아마도, 이지만――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쿠도군과 함께. 올해도 또 외톨이야?」

약간 놀라고 있었지만, 그녀의 푸념에 납득도 했다.

즉 그녀는 연인이 없는 것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도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외로움은 알고 있다. 올해는 다행히 연인이 있지만, 예전에는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너무 재미없게 느껴졌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먹는 햄버거가 그렇게 밋밋한 날도 그리 없다.

「료코 선생님은 결혼해버렸으니까?」

귀에 익은 인물의 이름이 나왔다.

쿵하고. 한 번, 심장이 한 번 뛰었다. 료코?

「아키타 녀석, 정말 너무하지. 상심과 약점을 파고들어서. 저 곰탱이, 병원에서 안고 있어. 료코 선생님을 말이야, 그 거칠고, 털 투성이의 몸으로 말이야. 야근하는 날에느은, 수면실에서 해대고 있는거야. 침대가 부서질 정도로, 힘차게…… 지난번에느은, 샤워실에서 오줌까지 먹였다니까. 나 봐 버렸어. 정말로 용서할 수 없어, 저 고릴라.」

결혼.

안는다.

료코.

……료코.

아니, 그건 아냐. 아마 동명의 다른 사람일거야.

뇌리에 떠오른 여자를 지우고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료코라는 이름은 별로 드물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땀이 등을 적셨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있다.

목에 가래가 낀다.

입안이 바짝바짝 탔다.

여자가, 얼굴을 든다.

「PVS(천연성 의식장애)인가. 2년 이상, 누워만 있고. 깨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료코 선생님도 괜찮았던걸까, 이걸로.」

여자는.

뭔가, 무엇인가 정말로, 불온한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위험한.

나의 존재의의에 관계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집중해서 그녀가 말한 내용을 생각했다.

2년.

2년.

뭐가 2년이란 말인가. 잠자는 것쯤은 즉, 움직일 수 없는 지금의 내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설마.

「벌써 크리스마스네에. 쿠도군. 네가 이곳에 옮겨진 후 세 번째 크리스마스야. 올해는 제대로 파티해줄테니까요. 작년은 아, 거의 밤샘같은 느낌이었고, 불쌍하다고 생각했었어. 그러니까, 올해는 내가 어떻게든 해줄게. 친구니까 말이야.」

라고, 거기서 여자는 일단 말을 끊고, 잠시 생각에 잠기듯 침묵했다.

「올 수 있는 사람은……좀 적을 것 같지만 말야. 나와 시미씨…… 후는 이올린(イオリン)과 이나바(?葉)군 정도일까. 료코 선생님은…… 신혼여행으로 해외에 가있고. JUN은 역시 무리인 것 같네에……. 연말, 연초에 라이브와 TV출연으로 많이 바쁘니까. 그래도 너는 대단하네, 그 JUN과 친구인걸. 나, 요전에 싸인 받아버렸어♪」

……기쁜 듯이 말해온다.

나의 의식은 얼어붙어 있었다.

도대체 이 여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걸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건가.

준군이 텔레비전에 나온다, 라고 했다.

료코씨가 결혼했다고 했다.

무엇을. 도대체 그녀는 뭘?

알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미친걸까? 아버지처럼 끝내 미쳐버린 것일까.

심장이 웅성인다.

가슴이 미어졌다.

마음이, 부서졌다.

약.

약이다. 약을 먹어야 해.

SSRI. 벤조디아제핀. 리스페리돈. 아무거나 좋아. 어쨌든 마시지 않으면 위험하다. 기분을 가라앉히지 않으면 위험하다. 뇌가. 이 빌어먹을 뇌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불안이. 뇌 속 세로토닌이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그 돌팔이 정신과 의사도 말했다. “약은 꼬박꼬박 챙겨드세요.”라고.

아아, 그렇지만,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의 보호자의 사람들은 없어……. 역시, 이거 없는 것 같아…… 미안해. 나도 선생님한테 물어봤는데, 요즘은 오로지 병원비만 내고, 연락이 없대. ……야박하지, 이래서 부자라는건 싫어. 하기사, 나라도, 남에게 가슴을 펼만한 삶의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족이나, 연인들이, 그런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진 않아. 그런건 최악이라구.」

닥쳐.

닥쳐, 아가리 닥쳐.

이것은 꿈이다. 꿈이 틀림없을거다.

그러니까 이 여자의 이야기도 거짓말이 틀림없다. 모두 환각, 나의 망상의 표출이다.

그 빌어먹을 꿈. 하얗게 얼어붙은 방과 동일한 것이다.

나는 번민했다.

몸부림치면서 포효하려고 했다. 비명을 지르며 날뛰려고 온몸에 힘을 주었다. 통증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온몸을 파고드는 격통.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그녀의 말이 듣기 싫었다. 후려갈겨 닥치게 만들고 싶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포기하고 있는거겠지.」

슬픈듯이 말하며 여자는 일어섰다. 「슬슬 시간이네, 가지 않으면.」

일어선 순간 삐걱하고 다시 파이프 의자가 울렸다.

여자는 내 몸에 덮여 있던 이불을 고치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 맡의 라이트를 껐다. 다시 어둠이 돌아왔다.

「그럼, 내일 보자. 잘 자렴.」

여자가 떠나려 했다.

드르륵, 슬라이드식 문이 울렸다.

나는 호흡을 멈췄다. 아랫배에 의식을 집중해, 필사적으로 힘을 계속 주었다.

고통이 떨려온다.

등이, 가슴이, 손발이 끼긱끼긱 내부에서 소리를 낸다.

근육이 찢어져 간다.

「우――」

약간 목소리가 나왔다.

눈꺼풀이 떨린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는 정신없이 떠나는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낯선 누군가. 그 그림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겹쳐 보였다.

료코씨, 레이코씨, 준군, 아케미씨, 사치씨. 그리고――

「저기, 요…」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는 변변치 못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힘없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엣?」

여자가 뒤돌아 보았다.

「거짓말――」

아연히 중얼거린다.

이쪽의 의식이 든 것은 거기까지였다.

내 몸은 공중에 손을 던진 채,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낙하 방지용 스토퍼를 넘어 침대 옆으로 떨어진다. 링거용 바늘, 튜브, 거즈가 주먹과 팔에서 벗어났다. 목구멍에서도 뭔가 꼬르륵, 빠져 나가는 느낌이 늘어났다. 어깨에 충격이 있었고, 무릎이 받침대 같은 것에 부딪쳤다. 리놀륨일까, 뺨이 차가운 바닥에 스쳤다. 뭔가 금속이 쓰러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꺄악, 쿠, 쿠도구운!?」

비명이 울린다. 여자가 분주히 달려왔다.

나는 멍하니 그 정세를 들었다. 격통과 탈력감이, 의식에 침침함을 더해 간다.

「으――」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몹시 피곤했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 태산같았지만, 그것을 듣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기도하기로 했다.

눈을 떴을 때, 이 악몽이 끝나듯 오직 그것만을 하늘에 빌며 나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갔다.

  ◆ ◆ ◆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그것은 훌쩍훌쩍, 우는 듯한, 코를 훌쩍거리는 듯한 목소리. 누군가가 울고 있다.

어딘가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여러 여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자고 있다.

말하고 있는 여자는 그런 나를 에워싸듯이 보고 있다. 소근소근하며, 작은 소리로. 감정을 억누르듯이 지껄이고 있었다.

여러가지 말이 들렸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의 단편이었다.

의식 불명. 거짓말. 미사토 쇼타. 칼에 찔렸다. 길거리에서 쓰러져서 차가. 타무라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회복될 가망은 없다. 미야노씨가 토호쿠로 갔다. 살아 돌아갈 수 있는지 모르겠어. 마이쨩이 결혼하는 것 같다. 연락이 닿지 않는다. 비용은 어떻게든 된다. 그때까지, 모두들, 힘내세요. 이제 일어나지 않을거야. 포기하는 편이. 새로운 인생. 그도 바라고 있다. 울고 있는 우리들을, 그는 기뻐하지 않는다. 내디뎌야 한다는 말인가. 잊을 수가 없다. 사랑해.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를. 식물인간 상태. 식물인간.

나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또 하나의 나 자신이 되어 자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다.

보이는 인영은 모두 여자였다.

그로기 그 그림자는, 자고 있는 나의 주위를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장시간을 찍는 카메라의 미세 속도 촬영처럼, 내려다본 거리에 흐르는 수많은 후미등, 혹은 밤하늘을 도는 밤하늘의 궤적처럼. 그런 움직임이 부감하는 시야로 보이고 있었다. 인영은 작은 방에 나오거나 들어가거나 해서, 그들끼리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윽고, 방에는 사람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들락날락함녀서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어, 또 몇인가, 돌아오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녀들은 확실히 그 수를 줄여 갔다. 그에 따라 회화도 끊어지기 십상이었다. 공간을 채우는 정적도 늘어났다.

그리고 곧 ,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두운 공간에 홀로 잠드는 나만이 남겨졌다.

아아, 하고 거기서 깨달았다.

이것은 이미, 나의 기억인거다.

내가 무의식 중에 처리하던 기억의 연결인 것이다.

기능의 대부분을 정지시키고 있던 뇌가 얼마 안되는 그린 램프 영역에서 수집한 정보. 그것이 지금 꿈으로 나타나고 있다. 2년만에 뇌가 디스크 체크를 하고, 기억이 영상으로서 올바르게 재생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울었다.

잘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자기 자신을 보고, 통곡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에도 끝이 다가온다.

계절이 바뀌고 세번째 가을이 다가온다.

창밖으로 보인 감나무, 그 잎이 시들고 붉은 열매가 얼음 비를 맞고 있을 때.

한 여자가 아무도 없는 병실로 찾아왔다.

자그마한 하얀 방, 영혼이 사라진 육체가 그저 물건으로 놓여진 방에.

여자는 흰옷을 입은 날씬한 여자였고. 그녀는 “나였던 것”에 매달리며 부드럽게 그 떨리는 손을 내 목에 걸었다.

일어낫!

하고, 그녀는 고함을 질렀다.

너는 나의 것이다. 나의 남자다. 오래 전에 그렇게 약속했어. 그 날개옷을 매며 나를 아내로 삼은 것은 너였다. 왜 일어나지 않아? 왜 대답하지 않는거야. 너무 심한 계약 위반 아니야, 이건. 대답해, 대답햇, 쿠도 토라노스케. 젠장, 일어낫. 날 울리지 말아줘.

료코씨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처음으로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부스스한 머리. 피부가 비치는 반투명한 캐미솔. 안경 속의 졸린 눈.

그리고 그런 모습이면서도 의심할 여지없는 아름다움.

나는 그 때 그녀를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늠름하고 멋진 여자, 쿨하고, 터프하고, 반대로 변태에다 목욕을 싫어하는 여자.

그런 그녀가 나를 껴안고 울고 있었다.

눈물을 떨어뜨리고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지독한 죄악감. 미안함이, 마음속 깊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지금까지 얼마나 나를 위해 울어 주었을까. 얼마나 나를 생각해 주었는지.

잠시 후 또 한 사람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남자였다.

중년에 턱수염이 짙은 큰 체격의 남자였다. 언뜻 보면, 그 견고한 몸매, 털복숭이라는 것이 엿보이는 남자. 마치 곰이 백의를 입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러한 외모의 남자였다.

남자는 동정하듯 료코씨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한 마디, 두 마디 중얼거리더니 료코씨의 등을 어루만지며 다시 어깨에 손을 얹었다.

료코씨는 거역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우울한 모습 그대로 남자에게 이끌려 병실을 나갔다.

기억은 나아간다.

계절은 지나가고 겨울이 온다.

내 방에 오는 것은 간호사뿐이고, 그 밖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12월.

나는 겨우 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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