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6/141)

변태장에 어서오세요. 3장 7화

무직, 쿠도 토라노스케의 경우 그 1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그것을 꿈이라 인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늘 나오던 녀석이라 생각했다.

평소의 악몽. 또, 그 하얗고 추운 방에 온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꿈은 평소와 모습이 달랐다.

꿈 속에서, 나는 아이였다.

그 저택에서 살던, 어리석고, 아무 것도 못하던 아이였다.

꿈은 그 날의 기억이었다.

겨울이 다가오던 그 날, 내리치는 비가, 몹시 심하게 몸을 떨었던 그 날의 일이었다.

소년이 있었다.

소년 옆에는 소녀가 있었다.

누나와 남동생. 소년은 누나의 손에 이끌려 쏟아지는 빗속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래, 나와 누나는 달리고 있었다.

◆ ◆ ◆

무엇이 계기였을까, 지금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사소한 일이었을 것이다. 기억이, 멀고,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정도는.

어쨌든 그들은 집을 나선 것이다.

집안 사람들에게 눈치채지 못하게. 둘이 갈라지지 않도록. 엄마나 할아버지의 눈을 피해.

미친 사내가 사는 별채 옆으로 달려, 낡은 우물 끝에서 뒷문을 빠져나와, 이른 봄이면 동백꽃이 활짝 피는 아름다운 산숲을 자그마한 손전등 하나 들고.

기억하는 것은 밤의 어둠이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먼 우레다.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밤이 깊어질수록 차가움의 기운을 더해 갔다.

우산은 없었다.

누나가 가지고 나온 우산은 접이식 하나 뿐. 그것은 산길에서 숲으로, 차의 라이트를 피했을 때 망가져 있었다. 나무들의 가지가 얇은 비닐 부분을 뚫고 있었다.

──어쩔 수 없네.

이렇게 말하고 누나는,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나에게 입혀 주었다. 그녀는 블라우스에 얇은 스웨터라는 차림이 되어 비에 젖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와 누나는, 비에 맞으면서 산을 내려갔다.

무섭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밤의 어둠도, 출렁이는 나무들의 나뭇가지 끝도, 멀리서 울리는 천둥 소리도, 때때로 일어나는 새의 날갯짓도, 전부. 나는 무섭게 느껴졌다. 잠자코 집을 나선 것. 어머니랑 떨어져서 불안했다. 저택에 사는 어른들의 소꿉친구에게 들은 괴테의 『마왕』의 시를 떠올렸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거야?

나는 몇 번이나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는 「멀어.」라고만 말하고, 나의 손을 끌었다. 그런 누나에 나는 말을 잃었다. 언제나 누나를 따라다니던 소년에게 그녀의 말은 절대적이었으니까. 그녀를 따라가면 틀림 없을거야. 어린 마음에 그렇게 믿고 있었으니까. 나는 자그마한 보폭으로 그녀의 등을 따라갔다. 잡은 손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 그것만을 믿고 어둠 속을 열심히 걸었다.

 아이의 발걸음으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다.

저택 쪽에서도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나는 평소에 좀 머리가 좋았다. 비록 섣부른, 어린 감정의 행위일지라도 그녀가 하는 일에는 항상 몇 가지 대비가 있었다.

누나는 나를 데리고 먼저 골짜기으로 향했다.

산 한 가운데를 흐르는 계곡. 그것은 우리가 자주 놀이터로 삼던 저습지였다.

맑은 물이 흐르는 저습지에서, 하류로 가면 그 부근 일대의 봉우리로부터의 용수, 혹은 또 다른 강, 상류에서 댐의 흐름과 연결되어 카미모리 시를 통과하는 한 줄기 굵은 강이 된다. 더 멀리 하구 부근으로 나아가면 바다 옆 기수호가 있고 그곳은 예로부터 바지락 산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예전에 우리는 가족끼리 그 기수호에 갔었다. 거기서 엄마랑 고모와 함께 바지락을 먹었다. 통통하게 살이 찐 전갱이, 충분히 우려낸 국물, 바지락을 끓인 국물이 잘 우러난 시오야키소바. 그것들을 누나와 고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먹었다.

그래서 생각났을지도 몰라.

또 그 호수에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거기엔 보트가 있었다.

작은 고무 보트. 누나가 미리 숨겨놓은 거였어.

누나는 끌어낸 보트를 저습지로 흘린다.

내가 자주 썼던 노란, 작은 모자도 넣어서.

보트는 비로 물이 불어난 흐름을 돌며 떨어졌다. 바위틈에 생긴 급물살을 지나 어두운 어둠으로 사라져 갔다.

당시, 나는, 그런 누나의 행동을 알 수 없었다. 일련의 행동에 의미를 찾질 못했다.

도시로 갈거라면, 보트를 사용하면 된다. 그런 식으로 소박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나라면 안다.

그건 시간벌기였다.

보트는 도중에 전복됐다. 작은 저습지이긴 했지만, 흐름은 격했고, 곳곳에 돌출된 바위와 단차가 있었다. 군데군데 바닥이 깊은 곳도 있다. 경험이 없는 어린아이가 하강으로 도시까지 도달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계류였다.

먼저, 보트는 별다른 거리도 가지 못한 채 물가로 떠내려 갔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벌 수 있다.

저습지에 보트를 떨어뜨림으로써.

어른들의 주의를 돌리게 할 것이라고 소녀는, 누나는 생각한 것이다.

설령 집주인이 가출한 것을 알아챘다고 해도. 계곡에서 보트가 발견됐으면 우선 우선 물 사고를 의심할 것이다. 남매가 강에 떠내려갔을 가능성을 생각한다. 적어도 소년의 몸은 걱정할 것이다. 헤엄을 칠 수 없는 소년. 타무라 가문에서 가장 소중히 여겨지고, 가장 무능했던 소년을.

결과적으로, 강을 중심으로 대규모 수색이 이루어졌다. 인근 마을 사람들도 동원해 남매의 행방을 찾았다.

그것이야말로 누나의 노림수였다.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했던 누나에게 가장 좋은 기회였다.

보트를 띄운 뒤 누나는 덤불 속에서 또 다른 것을 끌어냈다.

그것은 자전거였다.

어린이용이 아닌 일반용의, 조금 지름이 작은 자전거.

──사실 오토바이가 좋았지만, 신장이 충분하지 않아서 말야.

라며 누나는 뒤에 달린 허브 스텝으로 나를 태웠다. 꼭 붙잡아야 한다. 이렇게 든든한 태도와 함께 고했다.

나는 그녀의 등에 매달렸다.

그녀는 자전거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는 페달에 겨우 닿아서, 만족스럽게 지면에도 닿지 않는, 그런 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자전거가 밤의 산길을 내려간다. 가로등도 달빛도 없는 깜깜한 어둠을 나아간다.

나는 저 멀리 산기슭에 보이는 거리의 등불을 누나의 등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누나에게 매달린 채 꼼짝 않고 밤의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눈이 떠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의식만이 신체에 앞서 각성해 있었다.

증거로, 내 눈꺼풀은 전혀 뜨이지 않았다. 몸은 꿈쩍도 않고 의식만 어두운 어둠 속에 있었다.

나는 자고 있는걸까?

콧구멍에는 콕 찌르는 듯한 냄새가 났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소독약 냄새다. 기계인지 뭔가가 전동음이 들려왔다. 탁한 호흡 소리. 펌프와 비슷한, 무언가를 움직이는 소리. 일정한 간격으로 나는 전자음도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지금 있는 장소에서 들려왔다. 나는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다가 몸을 뒤척이려고. 하지만 몸을 비틀려고 하는 순간, 전신에 둔탁한 통증이 훅 스쳐갔다.

(통증이――)

뭐지.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거야.

나는 어둠 속에서 몸부림쳤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눈꺼풀 역시 뜨질 못했다.

뭔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 것은 그때였다.

「여어, 일어났나?」

어느새 나타났는가. 그 녀석은 떨떠름한 느낌으로 내 머리맡에 섰다.

「아아, 심하네. 많이 아팠겠군.」

동정을 불러 일으키듯이 말했다.

젊은 목소리였다. 조금 쉰 데가 있는, 아마도 청년의 목소리. 매력있는 목소리였다.

「매력이 있는걸, 까. 그런 식으로 말한건 처음이다. 아아, 그러고 보니, 너는 고운 목소리를 좋아하는 성격이었구나. 씩씩한 목소리의 여자에게 반하는 거였어.」

청년은 다시 그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군. 아니, 너는 아무 말도 하면 안돼. 내가, 너의 마음에 멋대로 대답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런 것도 가능하다고.」

마음에 답해? 무슨 말을 하는거야, 도대체? 나는 생각했다.

청년은 웃었다. 아마 손일 것이다. 따뜻한 감촉이 자고 있는 나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이런이런. 이걸 대답하는게 도대체 몇 번째일까. 넌 항상 잊고 있어. 가끔 기억한다고 생각하면, 이상한 말을 해서 주위를 불안하게 하고. ……뭐 괜찮다. 나는 너를 위한 존재다. 몇 번이라도 대답해 주지. 아니, 나는 네 곁에 있다. 네 곁에서 항상 너를 지키는 존재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수호령”이라는 것을 이미지 해주면 된다. 너에게 주어진 방향성에, 인간적인 성격, 의미성을 부여받은거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너라고 하는 단말기에 연결되는 “길”이 나다. 모든 것과 하나(사람)를 잇는 것이 나다.」

수호령? 수호령이라고?

「혼란해하고 있구나. 무리도 아니지. 육체의 파장은 처음과 가장 먼 것이다. 이해를 못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뭐, 이 일에 대해선 언젠가 또 다른 기회에 이야기하자고. 애초에 말로 전하기는 어렵고, 무엇보다, 너 자신의 체감(퀄리아)으로 알아야 할 일이니까 말이야.」

청년은 말하며 내 목덜미에 손을 댔다.

나는 말을 꺼내려고 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뺨이 떨리고 혀가 살짝 움직였을 뿐이었다.

「무리하지 않아도 돼. 아직 눈뜰 시간은 아니다. 네가 일어나는 것은 조금 더 앞, 지금부터 25분 40초 후의 일이다. 그 시간이 되면 싫어도 깨어나게 되니까. 2014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토라노스케. 잠깐 괴롭겠지만 참아라. 뭐 걱정할 필요는 없다. 틀림없이, 익숙해질 때까지 참아야한다고, 꼬마야」

늘 하는 말.

난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말투가 마치 미래를 내다본 느낌인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오히려 그 일보다 그가 내가 아는 누군가와 아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무척 들었다. 하지만, 그 닮은 상대는 과연 누구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올리지 못한 채 나는 뭔가 석연치 않는 기분으로, 그 기시감(데자뷰)과 비슷한 감각을 두 번 세 번 다시 되새겼다.

청년은 내 머리를 울적하게 어루만지더니, 머리맡에서 멀어져 갔다. 발자국 소리는 없고, 단지 기척만이 홀연히 사라져 갔다.

……또 한 명의 세계가 돌아왔다.

소독약 냄새가 풍겼다. 기계는 변하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전자음은 일정한 리듬을 새기고 있다. ……호흡이 유난히 시끄러웠다. 가래가 목에 걸렸다. 그게 괜히 신경에 거슬렸다. 움직일 수 없는 것도 괴로웠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도대체, 이 답답함이란건 어떤가!

초조해 하면서, 나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고 시도했다. 그때마다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렸다. 나는 망설였다. 불안과 공포가 서서히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아아, 누군가. 누구 좀 와줘. 내 곁에 와서 이야기를 해줘. 나를 달래줘.

가슴 속으로 말했다.

고모와 누나, 그리운 연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윽고, 어디선가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탈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희미한 불빛이 실내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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