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4)

“뭐... 할 말 있는 거야? 말해봐.”

 “아냐. 그냥 산 올랐던 생각하고, 잡생각 좀 했어. 나 먼저 잘게.”

아내는 부엌에 컵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왜 그러는 걸까? 나도 TV를 끄고 안방의 침대에 누웠다. 아내는 말은 없었지만, 한참을 그렇게 뒤척였다.

또 다시 지긋지긋한 평일이 시작되었고, 늘 그렇듯이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아파트 내에 있는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계단을 올라서려는 그 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저기 지혜씨 남편분..”

뒤를 돌아보니, 동대표, 배불뚝이가 나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울상을 짓는 있는 표정 같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허... 지금 늦은 시간인데... 이런데 다 계시고... 예. 무슨 일이 시죠?”

 “아. 다름이 아니라. 긴히 말씀 드릴 것이 있는데...”

그는 그 나이가 대서도 두 손가락을 베베꼬며 나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었다.

“뭐, 긴 얘기 입니까? 그러면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 하죠. 지금은 조금 피곤해서요.”

나는 그놈의 말동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에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헤헤... 그러면 좀 더 성가실 수도 있으실 것 같은데... 않 되겠습니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뭘 말하고 싶은데 이리 시간을 끄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역시 이놈과 상종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괜찮으시면 다음에 하죠. 평일 날은 제가 다 늦게 끝나서 어려울 것 같고요. 주말... 아 토요일은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헤.. 그럼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겠습니다. 주말에 점심쯤에 관리사무소에서 뵙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헤헤...”

그는 뭔가 모아둔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살은 뒤룩뒤룩 쪄서 생긴 것은 두꺼비 같고 뒤뚱뒤뚱 걷는 것이 돼지 같은 놈 주제에.....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놈이었다. 나는 그가 표표히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혀를 차며 바라보다가 계단을 올랐다.  소라넷 소설방의 라스카라스님 소설 펌입니다

 동대표의 알 수 없는 소리를 듣고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저 인간이 나랑 단둘이 할 말이 왜 있는지 의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골똘히 생각해보았으나, 별다른 해답이 나오진 않았다. 집으로 들어가자 아내는 거실에 TV를 보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 왔네.”

아내는 얕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그러나 안색은 조금 좋지 않았다.

“으. 월요일부터 피곤하네. 근데 등산 다녀온 뒤로 조금 어두워 보이네. 않 하던 등산을 해서 그런가?”

 “어... 그런가봐.”

아내는 과일이나 먹으라며 부엌에서 사과를 가져왔다. 아내가 사과를 깎는 동안, 걱정되서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도 집에만 있었어?”

 “아니... 오늘은 노래방 잠깐 다녀왔어.”

음. 이번 주부터 다시 다니기 시작하는 걸까? 사실 아까부터 궁금했지만, 그 동대표랑 같을 때 별 문제는 없었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냥 그만뒀다. 뭐. 별일은 없었겠지. 어쨌든 주말에 그 인간을 정말 찾아가야할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그 스스로 나의 퇴근시간까지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린 이유가 뭘까? 침대에 누워서도 그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벌써 그 놈과 약속한 토요일이 되었다. 마침 비도 내려서 날씨가 매우 꿀꿀했기에 그냥 가지말까 하다가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일지 알고 싶은 궁금증이 너무 머리 속을 맴돌아서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 내의 중앙에 위치한 관리사무소는 가뜩이나 별로 이 곳에 볼일이 있는 사람도 없겠지만... 비도 내려서 방문객은 나를 제외하고 없는 것 같았다.

1층에 있는 관리사무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는 그 동대표 혼자 있었다.

“오.. 오셨네요. 헤헤... 저 자리에 앉으시죠.. 헤... 뭐라도 마실거 드릴까요?”

그는 나를 안내하더니, 인사차 음료수를 준다곤 말하고 입구로 향해서 문을 걸어 잠갔다. 순간 저 인간이 나를 해코지할 생각인가 하고 노려보았지만, 나를 향해 다가오면서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단순히 단 둘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 더 간절한 것처럼 보였다.

문을 잠근 뒤에 그는 자신이 앉았던 곳으로 가서, 책상 서랍 안에서 USB를 한 개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듯 가슴에 꼭 품고 내 쪽으로 와서 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저... 남편 분께 이걸 먼저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그는 수줍다는 듯이 USB를 나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죠?”

나는 황당하다는 듯이 이 USB를 집어 들며 그를 바라봤다. 

“그... 일단 보시면 압니다. 꼭 혼자 보셨으면 좋겠네요. 헤헤... 그리고 다 보시고 어떻게 할 것인지는 남편 분께 달렸죠... 헤... 별 문제없이 다음에 절 찾아오시면 더 좋구요. 제 용무는 이제 끝났구요. 헤헤... 전 가볼때가 있어서... 이만 가볼께요.”

그는 자신이 잠가 두었던 문을 열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대체 저 놈이 뭐하는 짓을 하는 것인지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안에 뭐가 들었을까? 이리 저리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잠시 USB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동안, 아파트 경비가 들어왔다. 이런 곳에 있어봤자 해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니 나는 관리사무소를 빠져나왔다.

일단, 집으로 와서, 서재에 앉아서 USB를 바라보았다. 그 놈은 분명 혼자 보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 것보다도 왜 이런걸 나한테 주지? 사진인가? 아내랑 관련 있는 것일까? 궁금증만 늘어가는 와중에 아내가 서재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 잠깐 노래방 좀 다녀올게.”

 “어. 아줌마랑 얘기하러 가는 거야?”

 “응... 잠깐 있다가 올 거야.”

그렇게 나갈 준비를 하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나는 문뜩 뭐가 두려운지 모르겠지만, 이것을 집에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잠깐 생각한 결과, 어차피 오늘 회사에 아무도 없을 텐데, 그곳에 가서 볼 생각을 했다. 

“그럼, 나 회사 잠깐 들려야 하거든? 비도 오는데 노래방까지 데려다 줄게.”

아내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주면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차에 아내를 태워 노래방이 있는 곳으로 운전했다. 노래방 앞에서 도착해서 건물을 올려다보니, 불빛은 꺼져있었고, 영업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늘 영업하는 거 맞아? 그 아줌마 있을지 모르겠네.”

 “아니, 오늘 있다고 했어... 잘 다녀와. 대려다줘서 고마워.”

아내는 차에서 내려 건물로 올라갔다. 우산을 쓰고 계단을 올라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 나는 요즘 따라 저기압인 아내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회사로 향했다.

사무실 안에는 역시 아무도 없었다. 구름도 많이 낀 상태에서 비가 내려서 사무실 안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내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그 USB를 컴퓨터에 연결하였다. 컴퓨터가 파일을 읽는 소리가 나고 나는 내 컴퓨터로 들어가서 USB 드라이브를 클릭하여 안에 있는 폴더를 열었다.

폴더 안에는 동영상 파일이 세 개 있었는데, 동영상 제목들은 ‘xx터미널 혜진씨1‘, “xx터미널 혜진씨2”, ‘여관 혜진씨3‘이었다. xx터미널? 진주터미널에서 내려서 그곳에서 숙소를 잡은 것 아니었나? 그 것보다 제목이 왜 이러지? 나는 긴장 반, 기대 반인 심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면서 그 동영상 파일을 실행시켰다.

동영상의 시작은 등산출발 날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 동대표란 놈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가방에서 찍히고 있었다. 그는 아파트 근처 지하철 역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카메라 시야로 역 앞에 아내가 보였다. 그는 그대로 아내에게 향했다.

“헤헤... 혜진씨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헤... 제가 표 숫자를 잘못 계산해서...”

 “아뇨. 괜찮아요. 늦었으니까 빨리 가죠.”

아내는 쌀쌀맞게 대응한 뒤 뒤돌아보지 않고 바로 역으로 올라갔다. 그는 잠깐 혀를 차더니 아내의 뒤를 따라 역 안으로 들어갔다. 둘은 지하철을 타고 터미널과 가까운 역에 도착하였다. 그가 표를 구매한 뒤, 아내와 그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그는 바로 아내 옆 좌석에 앉았는데,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려서, 카메라의 시야는 주위를 한번 빙 둘러보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짐 몇 개를 윗 짐칸에 올려두었다. 그러는 동안 내가 카메라 시야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늦은 저녁시간에 진주까지 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여기저기 빈자리가 드문드문 보였다.

그는 카메라가 들어있는 그 가방을 소중한 물건 품듯이 자신의 옆구리에 끼고 아내 쪽 방향으로 시야를 고정시켰다. 카메라 속의 아내는 창문 쪽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창밖의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한 시간 넘게 침묵이 지속되었다. 카메라 시야에 보이는 장면에서 배불뚝이는 두 손을 계속 해서 비비꼬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 심호흡을 하더니 그는 아내에게 말을 건내었다.

“그... 노래방에서 제가 실수했던건... 헤헤... 제가 죄송하게 생각하구요... 너무 취해서... 헤헤...그게 지혜씨가 너무 아름다우시다 보니...”

저건 무슨 말이지? 그러고 보니 그때 노래방에서 잠깐 화장실 다녀왔을 때, 두 사람이 5호실에서 갑자기 나왔었지... 개자식! 아내한테 무슨 짓을 했던 것이다. 갑자기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아셨으면 됐어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다음부턴 술 먹고 그런 짓거리는 다시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아내는 화난 듯이 쌀쌀맞게 말하였다. 아내가 그 때 나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래도 그나마 안면이 있던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우였던 것일까? 이 배불뚝이는 무안한 듯, 고개를 슬쩍 내리깔았지만, 시선은 아내를 힐끔힐끔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그 웃는지, 우는지 모를 미묘한 표정도 함께 하면서...

얼마 뒤, 버스는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였다. 아내는 피곤한지, 눈을 감고 잠이 든 모양이다. 그러나 이 놈은 휴게소에서 내려서 화장실에 잠깐 들르고 매점에 들어가 음료수를 두 개를 구매했다. 그리고 첫 번째 동영상은 끝이 났다. 나는 곧바로 두 번째 파일을 실행시켰다.

두 번째 파일은 음료수를 산 직후였는데, 그는 카메라에 한 이상한 약통을 보여주더니 자신이 구매한 음료수 하나를 따서 슬그머니 뭔 액체를 몇 방울 넣었다. 그리고 그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고속버스를 향해 걸어갔다.

“저... 목도 마르실텐데, 이것 좀 드세요...”

그는 버스에 올라타서 그 액채를 탄 음료수를 아내에게 건내었다. 아내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그를 잠시 바라봤으나,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이윽고 음료수를 그로부터 건내 받았다. 그리고 한 모금씩 음료수를 마시기 시작했다.

얼마 뒤에, 고속버스는 출발했고, 잠시 동안 버스가 운행되는 소리를 제외한 모든 소리는 잦아들었다. 원래부터 버스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것도 같지만, 어쨌든 적막함을 감돌게 하는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카메라에 담기는 풍경은 그가 버스에 올라탔을 때부터 계속된 것처럼 아내를 옆에서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아내가 눈을 감고 창문 쪽에 기대어 있는 화면만 오랫동안 계속되어서, 건너뛰기 버튼을 계속 눌렀는데, 그 동영상 파일로 십 분정도 건너 뛴 시점부터 아내에게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아내는 자리가 불편한 듯 연신 뒤척이기 시작하였다. 더워서 그런지, 목이 마른지 연신 아까 그 배불뚝이가 준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셨는데, 그래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지, 얼굴이 벌써 붉게 달아 올라있었다.

“저... 지혜씨 괜찮으세요?”

그 놈이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아내는 대답함이 없이 한 손을 들어 괜찮다는 표시를 보였다. 옆에서 그 것을 보고 있는 그 놈은 매우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그 광경을 보는 것 같았다. 아내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몸을 뒤척이는 것은 그 후로도 한 동한 계속 되었다.

버스가 xx터미널에 정차하자, 그는 여기서 진주시청 근처까지는 택시를 타고 가면 된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진주터미널에서 내리면 될 것인데, 그는 일찍 내리자고 한 것이었다. 아내는 몸이 불편한 듯 보였지만, 어쨌든 그의 뒤를 따라 오는 듯하였다. 그러나 출발시간이 너무 늦었고, 시간이 너무 늦은 상태로 그쪽에 도착했다. xx리는 별다른 번화가가 없는 동네인데다가, 택시도, 버스도 늦은 시간 때에는 다니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둘은 한동안 거리를 조금 해매이다가 동대표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저... 차가 않다는 것 같아서, 헤헤... 오늘은 그쪽으로 갈수가 없겠네요. 예. 저희는 여기서 따로 묵었다가 아침 일찍 그쪽으로 갈께요. 헤헤... 저 여기 여관이라도 가서 하루 묵어야 겠네요. 지혜씨.”

그 둘은 한동안 거리를 헤매는 것 같았다. 찜질방에서 묵을 생각을 했던건지 처음에 한 사우나를 들어갔다가 주인으로부터 이쪽에는 24시간 영업하는 찜질방은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여관이라면 이 근방에 xx장이라는 곳이 하나 있는데 그곳으로 가라고 알려주었다.

그 둘은 그 후로 4~5분 동안 계속해서 이동해서 아까 사우나 주인이 알려준 그 여관에 도착하였다.

“방은 1개로 드릴까요?”

 “아니요. 두 개 주세요. 따로 묵을꺼에요.”

주인의 물음에 아내가 거친 목소리로 빠르게 대답했다. 카메라에 보이는 아내의 표정은 여전히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아까 음료수에 그놈이 이상한 것을 탄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 둘은 키를 각자 받아서 2층으로 올라갔다. 아내는 이 놈에게 한 마디 말없이 바로 자신의 방의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 버렸다. 

그는 카메라로 잠시 방으로 들어가는 아내의 모습을 비췄다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잠시 카메라가 든 가방을 방안 한쪽에 두고 몸을 씻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기 시작했는데, 옷으로 감췄어도 보기 흉한 그의 몸을 맨몸으로 보니, 털도 많고 매우 역겨웠다.

그는 화장실로 이동해 씻고 나온 뒤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몸에 이상한 향수같은 것을 뿌렸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정성스럽게 자신을 치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카메라로 다가와 카메라를 끄면서 그 두 번째 동영상이 끝이 났다. 

나는 더 무엇이 진행될 것일지 궁금해 하면서 세 번째 파일을 바로 열었다. 이 세 번째 파일은 그가 방 안에서 카메라를 끄고 난 뒤 바로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는 카메라를 보고 잠시 미묘한 표정을 한번 짓더니, 가방을 들고 자신의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아내가 들어간 방의 방향이었다. 잠시 후, 카메라는 아내가 들어간 방문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가 크게 심호흡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는 문을 살며시 두들기기 시작했다. 

“지혜씨... 지혜씨... 나와보세요...”

그는 거의 5분 가까이 문을 두들겼다. 그 후로도 한참 뒤에서야 카메라 앞에 있던 문이 열리고 아내가 피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모습이 나왔다.

“왜 그러시죠?”

 “헤헤.. 저 지혜씨 멀미라도 하신 것 같아서, 이거 제가 가져온 활명수랑 아스피린, 또... 소화제같은 거 챙겨왔는데, 드시라고요...”

 “괜찮아요. 자고나면 괜찮아질꺼에요.”

아내는 그 말을 하고 문을 닫으려 했다.

“헤헤... 아니요. 아니요. 빨리 드세요. 헤헤... 드시는거 보고 제 방으로 갈게요.. 헤헤..”

그는 그렇게 방문을 한 손으로 막고 막무가내로 말하더니, 아내를 재치고 아내가 있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리고 자기가 메고 있던 그 카메라가 든 가방을 방 한쪽에 딱 배치해 놨다. 카메라에는 이상하게도 아내가 힘없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라넷 소설방의 라스카라스님 소설 펌입니다

 동대표는 아까 얻어맞은 얼굴이 아프다는 듯이 한 손으로 쥐면서 내 맞은편에 앉았다. 잠시 표정을 크게 찡그리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켁켁... 저... 그 동영상은 잘 보셨나요... 켁켁..”

 “아주 잘 봤죠. 잘도 남의 아내를 겁탈하고 남편에게 그 영상을 보여주시네요..”

나는 흥분을 최대한 가라앉히며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직도 긴장감에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억제하며 말을 해야 했다.

“당신이 말한 그때 말했던 것을 생각하면 뭔가 더 있다고 했는데....

“무... 물론 더 있죠... 그렇지만... 처음 보신 것과는 달라요. 지혜씨와 제가... 저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지혜씨도 좋아하셨으니까....”

그는 잘도 미친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성범죄자 주제에 잘도 자신의 행위를 미화시키는 구나.

그러나 어쨌든 아내도 좋아했다는 그의 발언은 내 마음을 조금 동요하게 만들기는 했다.

“그럼, 이제 어쩔거죠?”

 “그... 일단... 남편분...께서 어떻게 나오실지 몰라서... 먼저 보여드린 거고요... 그.... 게...”

그 말을 흐리며 쭈뼛쭈뼛 나의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이 그거 보시고 이 자리까지 나오셨으니까.... 헤헤.... 어떻게 저와 통하는 구석이 있지 않을까하고.....”

그는 다시 침을 꿀꺽 삼키면서 주저했다.

“그 지혜씨를 그렇게 한건, 제가 생긴게 이 모양이라.... 하지만 지혜씨도 저와 한번 몸을 섞으면... 헤헤... 제 매력에 빠지다... 할까요? 헤헤...”

 “그러니까 당신이 하고 싶은게 뭡니까?”

이 미친놈의 자기어필을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또 이거.... 헤헤...”

그는 바지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또 하나의 USB를 나에게 건냈다.

“헤헤... 그 것에서도 보고 또 보실 만 하면 저와 동참을 해주시던... 눈을 감아주시던지 해달라구요..

헤헤... 그래도 지혜씨가 저를 싫어하지 않기 시작한 건 사실이니까.... 헤헤”

나는 그 놈이 넘겨준 USB를 천천히 손으로 집었다. 또 여기에는 아내와 이 놈의 정사씬이 담겨있을까? 

묘하게 어렸을 때, 친구가 보라고 준 빨간 테이프를 받아든 느낌이다. 다만, 이 여자배역이 나와 결혼한 아내라는 것인데, 

그런데 이 역겨운 놈을 보고 있어야할 구역질감보다는 오히려 이 내용물이 흥미가 더 들기 시작한건 내가 이상해 진 것 같다.

“내가 신고라도 하거나 그러면 어쩌려고 그러죠? 그럼 가지고 있던 걸 죄다 퍼트릴 생각이라도 할건가요?”

 “아뇨... 아뇨.... 헤헤... 지혜씨는 저한테도 소중하니까... 헤헤... 제가 그럴 리가 있나요.... 단지 이건 게임라고 할까... 헤헤....”

 “.....”

그는 두 손으로 손사래를 치면서 내가 말한 것에 부인했다. 게임? 나랑 지금 뭘 하자는 걸까? 

다만, 이 미친놈은 아내를 겁탈한 것을 몰래 찍은 것은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거나 해서 아내를 끝장내려는 목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내가 이걸 보고 또 당신을 방문하면 그땐?”

 “그건... 그때가서 생각해봐야죠... 헤헤... 남편분이 그땐 어떤 상태일진 모르겠제만... 

헤헤 남편 분께서도 어쩌면 지금은 흥미로운 것이 더 크지 않으신가요? 헤헤....”

이 놈은 내 마음을 어느 정도 추측한 것일까? 어떻게 보면, 아내를 겁탈한 놈과 이렇게 여유롭게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고 

 그 놈은 자신감을 얻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나갈 준비를 했다.

“헤헤... 그리고 지혜씨한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으셔야 되겠죠? 헤헤... 저도 고심 끝에 알려드린 건데 말이죠.. 헤헤... 저희 둘만의 비밀로 되었으면....”

나는 그 놈이 뒤에서 하는 소리를 무시하고, 그 놈이 준 USB를 주머니 안에 넣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도착하자 아내가 반겨주었지만, 내 앞에서 그런 일을 당하고 내색하지 않은 아내에게 그런 사실을 알지만 모른 척할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에 대한 모멸감에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아내를 향해 웃을 수 없었다.

서재에 USB를 넣고 아내와 두런두런 TV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 보통 친구나 뉴스거리같은 그런저런 이야기였지만, 

그러나 아내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빨리 USB에 있는 영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얼마 전까지 사무실에서 그 영상을 보고 그 놈을 죽이고 싶어서 뛰쳐나온 것과는 피해자로 마음가짐이 너무 달라져버렸다. 

처음 것과는 다를 거라는 그놈의 말이 더욱더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해야할까? 빨리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 서재에서 내 눈으로 보고 싶기에.

“나 서재에서 할 일이 있어. 당신 먼저 자.”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아. 너무 무리하지 말고, 빨리 자러와.”

아내를 그렇게 안방으로 보내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재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밤에 몰래 야한 걸 보는 듯한 어렸을 때의 기분으로 다시 USB를 켰다. 이번에는 두개의 영상이 있었다.

첫 번째 영상은 처음 봤던 것의 그 다음 날이었다. 화면의 그는 방문에서 나와 아내의 방에서 문을 두들겼다.

“지혜씨... 지혜씨... 이제 출발해야되요.... 헤헤...”

그 놈의 끈질긴 ‘헤헤’거림은 이번 따라 마치 이 것을 보고 있는 나를 조롱하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잠시 후 나왔다. 어제의 그 일 때문에, 표정은 어두워 있었지만, 

등산복으로 갈아입은 아내는 그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지나쳐서 나갔다. 그는 그런 아내를 카메라를 들고 촐랑촐랑 쫓아왔다. 

둘은 여관 키를 반납하고, 횟집을 지나쳐서 길가로 나왔다.

“헤헤... 지혜씨 택시라도 타고 가죠. 지금 너무 늦었네요. 지혜씨가 너무 잠꾸러기라.... 헤헤”

그 놈은 그렇게 말하고 지혜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스판팬츠를 입은 아내의 엉덩이는 손의 토닥거림에 출렁거렸다. 

아내는 잠깐 그를 노려보았지만,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잠시 뒤, 택시가 도착했고, 그 둘은 뒷자리에 앉았다. 

목적지를 말한 그 놈은 아내를 자신의 여자라도 된 듯이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려놓고, 슬그머니 만져댔다.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아내는 그 놈의 노리개가 된 듯이 그렇게 무방비 상태였다.

“최씨, 새댁! 여기야. 여기!”

그 노래방 아줌마와 통장들은 모두 목적지에서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내색하지 않고, 

그들을 향해 다가가면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그는 일부러 애써 태연한척하는 아내의 모습을 즐기듯이 

 아내의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며 아내의 뒷모습을 그 카메라에 담았다.

아줌마들의 재잘거림이 끝나고 일행들은 모두 모여, 월아산으로 향했다. 산을 올라가기 전에 축구장처럼 

 생긴 곳에서 형식적인 인원체크를 하고, 국사봉으로 올라간다는 말을 어떤 아줌마가 하고 그렇게 산을 오를 준비를 하는 풍경이었다. 

카메라의 시야에서 보면 알 수 있었지만, 그 놈은 아내의 뒤에 바로 붙어서 다녔다. 물론, 

그 카메라를 들고 아내를 찍기 위해서가 그 이유겠지만, 그렇게 등산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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