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 여름에 있었던 일들 2
1. 떠나자...
모꼬지 출발 날 아침 승훈은 정선과 나영에게 이끌려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대부분의 준비물은 전날 준비가 되었지만 고기와 몇몇 상하기 쉬운 재료들은 정선이 아침에 사서 학교로 가기로 했다며 아침 일찍 승훈을 깨운 것이다.
나영이는 정선과 같이 움직인다며 어제 정선의 방에서 같이 잤다.
늦게까지 수다를 떨며 화정의 옆에 붙어 있는 정선과 나영 때문에 승훈은 화정을 찾지도 못하고 방에서 뒹굴거리다 잠이 들어버렸다.
‘쩝 도움이 안된다 정말....’
학교 근처 마트로 차를 몰며 승훈 졸음 섞인 한숨을 토해냈다.
물건을 다 사고 미리 준비한 아이스박스에 채워 놓고 학교로 향했을 때는 출발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있었다.
학생회관 앞에 도착해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모여 있었다.
평소 자주 나오지 않던 예비역 선배도 몇 보였고 지수 외에도 2학년 여자선배 셋도 얼굴을 보였다.
간단히 이런 저런 준비물을 점검하고 준비된 차량에 분산해 타고는 출발을 했다.
1학년을 빼고는 다들 한번 이상 갔던 장소여서 줄지어 가기보다는 현장에서 만나는 것으로 했다.
승훈의 차에는 정선과 나영 그리고 2학년 김상한 선배 한명이 탔다.
평소에도 말이 많다고 생각했던 선배 였는데 말이 조금 많은 것을 빼면 능력도 있고 사람도 괜찮은 선배였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상한 선배와 정선 나영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승훈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아리내 사정을 여러 가지로 알 수 있었다.
“참 선배 아까 진수 선배 차에 같이 탄 남자 누구예요? 선배같던데?”
나영이 질문에 상한 선배의 인상이 구겨졌다.
“아...김규식 선배야....군대 갔다 와서 다음 학기에 복학하는 선배야”
승훈은 출발 전 잔뜩 찌푸린 인상으로 진수와 지수 옆에 서있던 덩치 좋은 남자를 떠올렸다.
보통 보다 조금 큰 덩치에 못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잔뜩 찌푸린 표정이 인상을 험하게 만들던 사람이었다.
“아... 모꼬지 분위기 살벌하겠네... 휴...”
한참 이야기를 이끌어 가던 상한선배가 갑작스런 이야기와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예?”
뜻 모를 그 말에 정선이 되물었다.
“아... 너희는 모르겠구나...”
정선의 물음에도 한참을 망설이던 상한선배가 규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게 어디부터 말을 해야 하나... 규식이 형 볼링 실력도 좋고 사람도 좋은 선배였어. 원래는 작년에 복학하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복학도 안하고 진수만 보면 아주 날을 세우더라고 그리고 그렇게 사이좋던 여자친구하고도 헤어지고.... 동아리 커플이었거든... 지금은 졸업했지만 정말 이쁜 선배였는데...”
‘또 그 커플이 말썽이군... 거참...’
상한 선배의 말을 듣고 있던 승훈은 겉보기와는 다른 진수와 지수를 떠올렸다.
대충의 상황이 그려졌다.
규식이 군대간 사이 지수와 진수에 의해 동아리 여 회원들이 몸을 팔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규식도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된 것 같았다.
뭐 정확한 사실은 모르는 듯 싶었다. 알았다면 날을 세우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니...
“아무튼 한동안 못 잊고 괴로워하고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사람이 싹 바뀌었어. 완전 투견이 다 되어서는... 아무튼 제발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그 후 이런 저런 대화로 쳐졌던 분위기는 다시 좋아졌다.
평소 동아리에서 말을 많이 할 일이 없었던 승훈은 간간히 짧게 이야기 하는 것 외에는 묵묵히 운전에 열중했다.
퍼펙트에서 매년 여름 찾는다는 민박집은 건물이 따로 있는 형태로 시설이 깔끔하고 공간도 넓었다.
방이 4개에 넓은 거실이 있었다. 말이 민박이지 거의 가정집 수준의 독채 건물이었다.
또 주변 가까운 거리에 호수도 있고 바로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있었다.
승훈이 제일 마지막으로 도착하자 물건을 정리하고 바로 점심 준비에 들어갔다.
2학년 여자 선배들이 솜씨를 발휘한다며 주방을 차지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누워서 쉬거나 주변을 둘러보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었다.
승훈도 정선, 나영과 함께 주변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호수도 보이고 주변을 둘러싼 나지막한 산과 깨끗한 공기가 한적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한동안 바쁜 시간을 보냈던 승훈의 심신을 씻어주는 듯 했다.
“좋다!”
승훈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한번 했다.
“정말... 나중에 이런데서 살고 싶다.”
정선이 주변 경관을 살피며 말했다.
“어휴 벌써 노후 걱정이셔....훗..”
승훈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정선을 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정말... 나중에 나이 많이 들면 도시를 떠나 이런데서 살면 좋겠다...”
나영은 그런 정선의 말에 동의를 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하기는 좋기는 정말 좋다.”
승훈도 웃음을 거두며 주변을 한번더 둘러보았다.
‘나중에 다 데리고 이런데서 사는 것도 좋을 지도... 일단 돌아가면 피서라도 다녀와야겠다.’
승훈은 치열한 고3을 보내고 있는 승미와 화정을 떠올리며 피서 계획을 세워보았다.
승훈 일행이 민박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거의 식사 준비가 끝나 있었다.
민박집 마당에 모두가 모여 간단한 반찬 몇 가지에 먹는 점심은 그 어느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훨 나았다.
퍼펙트의 모꼬지는 한가롭게 진행 되었다.
오후 나절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도 한 게임 하고 호수에 가서 멱도 감고하면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해질 무렵이 되자 예비역 선배 몇이 보물찾기 준비를 한다고 자리를 비웠고 나머지 사람들은 저녁과 보물찾기 후에 있을 술자리를 준비했다.
승훈도 다른 사람들과 장작을 챙기며 캠프파이어와 바비큐 준비를 했다.
이런 저런 준비를 마치고 7시가 넘어 해가 저물자 모두들 민박집 마당으로 모였다.
“자 모두 나왔죠. 늘 하던 대로 올해도 간단한 보물찾기를 합니다. 2인 1조로 정해진 지역안에서 한 시간 안에 보물을 찾으시면 됩니다. 지역은 저 뒤에 뒷산이고 정해진 지역 경계에는 미리 가 있는 예비역 선배님들이 계실 겁니다. 보물을 찾은 조에는 상품이 있으니 열심히 하세요. 질문.... 없으면 조는 추첨으로 뽑겠습니다.”
인원은 1학년 6명에 2학년 7명 그리고 3학년 5명이었다.
4학년들은 참석을 하지 않았고 예비역 선배 4명은 산에 미리 나가있었다.
총 18명중 진수와 지수는 민박집에 남아 뒷풀이 음식 준비를 하고 나머지 인원들이 8개 조로 나누기로 했다.
그중 여자가 5명이었으니 나머지 3개조는 남자끼리 움직여야 했다.
“자 여자회원의 수가 적으니 이 상자에 이름이 없는 백지를 뽑은 사람 6명은 다시 한번 추첨을 해서 3개조를 정하겠습니다.”
진수가 내민 작은 상자 안에는 11장의 종이쪽지가 접혀 있었다.
승훈은 쪽지들을 투시해 보았다.
진수의 말대로 거기에는 여자 이름이 적힌 쪽지 5개와 백지쪽지 6개가 있었다.
‘누구랑 할까?’
염력과 투시력이면 원하는 사람과 짝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승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누구와 짝이 될지를 가늠해보는 듯 대부분 여자 회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시선이 향했다.
‘ㅎㅎㅎ 하기는 나도 남자랑 하기는 싫은데...’
승훈은 슬며시 뒤로 빠지며 상자를 투시했다. 그리고는 나영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찾아서 염력으로 다른 사람이 집을 수 없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추첨은 선배들부터 시작했고 맨 마지막으로 승훈이 나영의 이름을 뽑고 마무리 되었다.
정선은 1학년 3총사 중 한명과 짝이 되었다.
“자 그럼 1분 간격으로 한 팀씩 출발합니다. 보물은 매년 그랬듯 찾기 쉽게 숨겨져 있어요. 그러니 찾는 다고 위험한 행동 하지 마시고 서로들 대화하는 시간도 많이 가지도록 하세요. 그리고 시간 내에 다들 돌아와 주십시요.”
진수선배가 다른 팀들을 출발 시키는 사이 나영이 승훈의 팔을 당겼다.
“승훈아... 나 무서워...”
“뭐야 아직 출발도 안했잖아.”
승훈은 나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큰 눈이 겁 많아 보였던 나영이 밤에 산을 오를 생각에 벌써 무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나만 믿어..”
승훈은 그런 나영의 두 눈을 마주보며 싱긋 웃어주었다.
한편 정선은 자신과 짝이 된 동기에게 꼭 보물을 찾아야 한다며 기합을 넣고 있었다.
정선의 조가 출발하고 뒤 이어 승훈과 나영도 민박집을 벗어나 뒷산으로 올랐다.
낮에 봤던 뒷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나무가 없는 능선도 보였었는데 밤이 되자 만만하지는 않았다.
승훈은 투시력을 사용하면 별빛 정도의 빛에도 지형을 다 파악할 수 있었지만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나영과 같이 가는 것이기에 승훈은 나영의 손을 꼭 쥐고는 조심스럽게 길을 걸었다.
민박집 뒤에서부터 시작된 좁은 산길로 10분 정도 올라가 나지막한 능선을 넘자 제법 넓은 개활지가 드러났다.
그리고 개활지 초입에 예비역 선배 한명이 손전등을 들고 서있었다.
“너희들이 마지막이지”
선배가 손전등으로 승훈과 나영을 비추며 물었다.
“네”
“그럼 잘 들어 보물은 여기 보이는 개활지를 중심으로 저기 저쪽 능선하고 저쪽 큰 나무 안쪽에 있으니 너무 멀리 벗어나지마라.. 그리고 중간중간에 움푹 패인 곳도 있고 무덤도 있고 하니 조심하고”
선배는 손전등으로 여기저기를 비춰주며 필드를 알려주었다.
넓은 개활지를 중심으로 좌우로 능선이 있고 능선 아래로 숲이 있는 지역이었다.
승훈은 좌우 능선에 손전등 빛이 보이는게 그 사이에 보물이 숨겨져 있고 예비역 선배들이 좌우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 같았다.
승훈은 나영의 손을 잡고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
달빛이 비추는 개활지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선배의 말처럼 중간 중간 무덤인지 풀숲인지 모를 것들이 있었다.
승훈은 자신의 손을 꼭 쥐어 오는 나영의 손을 마주 잡아주며 쓰러진 나무 옆으로 갔다.
“여기 앉아. 여기서 달빛 구경이나 하자”
승훈은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는 나무에 나영을 앉혔다.
덤불과 어둠에 가려 그곳은 승훈과 나영 두 사람의 공간이 되었다.
나영은 어두운 밤의 산에 공포를 느꼈는지 승훈의 팔에 매달리듯 하고 있었다.
나영을 앉히고 옆에 앉은 승훈은 떨고 있는 나영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따뜻한 온기가 승훈의 손에 전해졌다. 미세한 떨림도 함께...
“뭘 그렇게 무서워 해”
승훈은 평범하지 않은 나영의 반응에 의아함을 느꼈다.
아무리 겁이 많고 어두운 산이라고는 하지만 나영의 반응은 조금 심한 듯 했다.
“... 어.. 그게.... 어릴때 외가에 갔다 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어... 동네 뒷산이었는데... 밤새 산속에서 혼자 있다 아침에야 아버지가 날 찾았어... 그래서인지... 산.. 특히 밤산은 무서워...”
나영의 말에 승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영의 손을 잡은 손에 조금더 힘을 주었다.
나영은 승훈의 손을 잡고 산길을 오르며 어릴 적 공포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나무아래에 앉아 밤새 울며 보냈었다.
조금씩 공포가 퍼져가는 것을 느끼며 떨고 있을 때 승훈의 손이 힘차게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다.
승훈에게 호감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던 나영은 공포와 함께 승훈의 손을 잡고 단둘이 있다는 사실에 가벼운 떨림이 함께했다.
승훈과 길을 걸을수록 공포인지 설렘인지 모를 떨림은 나영의 손을 타고 승훈에게도 전해졌다.
나영은 자신의 마음을 승훈에게 들킬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어둠이 무섭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붉어진 얼굴을 들키지 않을 수 있어 한편 고맙기도 했다.
승훈은 맞잡은 나영의 손의 떨림이 멈추지를 않자 뭔가 그녀를 안심시킬 만한 것을 생각했다.
‘아...’
“나영아 내가 요즘 연습하는 건데 한번 볼래”
승훈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손위에 올려 놓았다.
“으...응.”
나영은 승훈이 일어나 핸드폰을 꺼내어 뭔가를 하려 하자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흐릿한 달빛이 승훈이 행동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잘 봐 요즘 내가 마술을 연습하는데... 오늘 특별히 너에게만 공개할게 흐흐”
승훈은 핸드폰을 손을 앞으로 뻗고 다른 손은 하늘로 뻗은 후 마술사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기를 모으는 시늉을 했다.
“헛.. 헛... 천지 사방 기를 모으고 마지막으로 나영의 콧기름을...”
승훈은 나영의 콧잔등에 손가락을 잠시 대었다 핸드폰에 콧기름을 바르고는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을 서서히 아래로 내렸다.
그러면서 염력으로 핸드폰을 공중에 잡아 두었다.
그러자 나영의 눈 앞에서 둥실 떠 있었다.
“어머... ”
나영은 승훈이 자신이 무서워하는 것을 보고 기분을 풀어 주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소 과묵까지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저렇게 쇼를 하는 승훈은 결코 아니었다.
나영은 그런 승훈의 모습에서 따뜻한 마음을 느끼며 행복한 감정에 잠겨 들었다.
그런데 순간 승훈의 손에 있던 핸드폰이 허공에 두둥실 떠오르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승훈아... 어떻게... 대단하다...”
나영은 TV에서 보았던 공중부양 마술을 떠올리며 감탄했다.
승훈은 나영의 얼굴에서 공포의 감정이 가시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자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보시라...”
승훈은 염력을 움직여서 핸드폰을 열고 액정에 불이 들어오게 한 후 허공에 둥실 떠올렸다.
물론 염력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나영이 보기에는 승훈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서 핸드폰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일 것이었다.
승훈의 핸드폰은 지면에서 2m정도 위 허공에서 승훈의 손짓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핸드폰 공중쇼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영은 허공에서 움직이는 핸드폰 액정의 빛의 잔상을 보며 감탄했다.
“너무 예쁘다... 와...”
나영의 얼굴에는 공포를 대신해 환한 미소만이 남아있었다.
승훈은 나영의 미소를 보며 핸드폰을 내려 손으로 잡았다.
“짜잔... ”
승훈은 마술사들이 하는 것처럼 다리를 꼬며 인사를 했다.
“짝짝짝짝.... 대단하다”
“괜찮았어..”
승훈은 이제는 환히 웃는 나영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응 정말 대단해.. 언제 그런 건 배운거야... 아니 어떻게 한거야?”
나영은 승훈에 손을 잡으며 물었다.
“응 그건 비밀... 근데 이렇게 멋진 쇼를 보여줬는데 상은 없어?”
승훈은 나영에게 싱긋 미소 지으며 물었다.
나영은 승훈이 자신을 배려해주는 마음에 감동했다.
그리고 이제는 과거의 기억으로 인한 공포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다.
승훈만 옆에 있으면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나영은 상은 없냐는 승훈의 말에 승훈의 팔에 매달려서는 승훈의 볼에 뽀뽀를 했다.
“쪽”
그러고는 바로 빨개진 얼굴을 숙였다.
‘어... 어떻게...’
밤이여서 였을까 아니면 공포와 그것을 벗어나게 해준 환상적인 승훈의 마술 때문이었을까?
나영은 자기도 모르게 승훈의 볼에 뽀뽀를 해버린 것이었다.
가벼운 접촉이었고 땀기에 젖은 볼이었지만 지금 나영은 자신의 입술에 남은 감촉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승훈도 갑작스러운 나영의 뽀뽀에 당황했다.
그러나 당황도 잠시 승훈의 눈에 비친 나영의 모습이 정말 예뻐보였다.
승훈도 나영과 정선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비록 이성적 사랑까지는 아닐지라도 호감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던 나영의 행동에 가슴 두근거림을 느꼈다.
승훈은 잡고 있던 나영의 손을 당겨 그녀를 자신에게 당겼다. 그리고는 고개 숙이고 있는 나영의 얼굴을 한손으로 잡아 마주보게 돌렸다.
어둠에 구애 받지 않는 승훈의 눈에 나영의 발개진 얼굴이 들어왔다.
정말 예쁘고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승훈은 나영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나영은 승훈이 자신을 당겨 고개를 돌리게 하자 승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 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승훈의 얼굴이 너무 듬직하고 또 가슴 설레게 했다.
나영은 콩닥거리는 가슴 두근거림에 고개를 다시 돌리려 했지만 갑작스레 다가온 승훈의 입술에 그대로 얼어붙은 듯 멈추어버렸다.
승훈은 입술에 느껴지는 나영의 입술을 느끼며 조금씩 조금씩 나영의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가벼운 접촉에서 조금 더 세게 잠깐 붙였다 떼었다. 그 다음은 조금더 길게...
승훈은 성적 욕망이 아닌 정말 나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러면서 나영을 당겨 품에 안았다.
나영은 가볍게 와 닿았던 승훈의 입술이 떨어지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승훈의 입술은 조금 전보다 강하고 길게 그녀의 입술에 와 닿았다.
나영은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두근거림에 입술에서 전해지는 짜릿한 감촉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승훈의 키스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평소 승훈을 향한 마음을 키워왔지만 늘 정선과 함께여서 표현하지 못했던 나영은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안고 서서히 승훈의 품에 안겼다.
승훈은 자신에게 안겨오는 나영의 입술에 진한 키스를 하며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혀를 집어 넣었다.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이 잠시 저항 하는 듯 하더니 그것도 잠시 승훈의 혀를 받아 들였다.
승훈은 나영의 혀를 찾아 끌어내었다.
낚시에 걸린 물고기가 걸려 올라오듯 나영의 혀는 승훈의 혀에 이끌려 나와 엉켜들었다.
“으음...”
나영은 나지막한 비음을 흘리며 승훈의 키스를 받아 들였다.
“꺄악~~~~~!!!”
그때 고요한 밤공기를 뒤흔드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참 서로의 감정에 충실하며 키스를 나누던 승훈과 나영도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승훈아....”
나영이 다시 공포를 느끼는지 승훈의 팔을 잡아왔다.
“무슨 일이지?”
“여기요 도와주세요!!! 선배님!! 여기요!! 도와주세요!!”
멀리서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승훈은 비명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투시를 해보았다.
잠시 둘러보는 승훈의 눈에 정선과 같은 조가 되었던 달수가 땅바닥을 보며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달수가 보는 곳에 땅이 꺼진 듯 구덩이가 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영아 꽉 잡아”
승훈은 정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하고 나영을 들어 올렸다.
“꺅”
나영을 안고는 승훈은 밤길을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어둡고 굴곡이 져 있었지만 투시력을 발동하면 별빛 정도의 빛에도 주위 100미터 까지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승훈에게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무슨일이야. 정선이는?”
순식간에 달수가 있는 곳에 도착한 승훈은 나영을 내려놓으며 달수에게 물었다.
“어... 승훈아... 아!. 정선이가 이리로 빠졌어..”
어둠을 뚫고 갑작스레 승훈이 나타나자 달수는 깜짝 놀란 듯 하다 곧 정신을 차리고는 승훈의 말에 대답을 했다.
달수가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곳에 폭 60센티미터 정도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승훈은 구멍으로 달려가 구멍 속을 살폈다.
구멍은 2미터 정도 수직으로 뻗어있었고 그 아래로는 조금 경사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푹 꺼지더니 빠져버렸어.. 근데 정선이가 보이지가 않아”
달수가 옆으로 와 같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승훈은 정신을 집중하고 땅 속을 투시해 보았다.
건물이나 이런 저런 구조물을 투시하는 것보다 땅속을 투시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100미터에 달하는 투시거리도 땅속을 투시하는 것은 불과 10미터 정도가 한계였다.
구조물은 일정 두께가 있고 그 부분을 투시하면 되는 것이지만 땅은 밑이 비어 있지 않으면 물질이 연속되어 있기 때문인 듯 했다. 투시되는 거리로 따지면 100미터 정도지만 물체를 투시하는 깊이로 따지면 10미터 폭의 벽을 투시하는 것인 셈이었다.
“달수야 여기서 선배들 불러 그리고 나영이 잘 지켜주고”
땅 속 10미터 까지 정선의 모습을 찾을 수 없자 승훈은 그대로 구덩이 아래로 뛰어들었다.
구멍은 승훈의 예상대로 2미터 다음부터는 50도 정도의 경사져 있었다.
승훈은 염력을 동원해 몸을 받치고는 구멍을 따라 내려갔다.
염력으로 몸을 받치자 승훈은 자연스럽게 낙하 하듯 경사진 구멍을 따라 내려갔다.
구멍은 깊었다. 한참을 내려가니 주변 공간이 넓어지며 3미터 정도 높이의 제법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아래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정선의 모습이 보였다.
염력의 도움으로 바닥에 안전하게 내려선 승훈은 급히 정선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땅속 깊은 곳 빛이 없는 곳에서는 승훈의 투시력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승훈은 핸드폰을 꺼내어 카메라에 달린 조명을 켰다.
그러자 조명과 투시력의 도움으로 주변 상황과 정선의 상태를 살필 수 있었다.
일단 정선은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였다. 호흡도 일정하게 쉬고 있었다.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보이기는 했지만 팔 다리도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휴... 일단 다행인가.. 그나저나 여기는 뭐야?”
승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도 평평하게 다듬어져 있고 벽에도 인공적인 흔적들이 보였다.
그리고 바닥에는 깨진 그릇과 천 조각 등이 보였다.
“뭐야 무슨 대피소라도 되나?”
승훈은 그 공간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는 했지만 정선의 상태가 더 걱정이 되어 애써 호기심을 지웠다.
승훈은 자신의 허리띠와 정선의 허리띠를 풀어 하나로 이었다.
그리고는 일단 염력을 동원해 자신의 몸을 들어 올려 떨어져 내렸던 구멍으로 올라갔다.
양쪽 벽에 다리를 붙이고 고정하고는 정선을 들어올렸다.
염력에 들어올려진 정선은 축 늘어진채 승훈의 등에 얹어졌다.
승훈은 하나로 이은 허리띠로 정선과 자신의 몸을 묶었다.
“올라가야겠지...”
승훈은 양쪽 벽을 짚은 손에 힘을 주고는 염력의 도움을 받으며 경사진 구멍을 기어올라갔다.
얼마를 올라갔을까?
염력의 도움을 받으며 올라가고는 있지만 온 몸이 땀에 젖고 손과 발이 후들거려왔다.
염력 또한 승훈의 정신력을 기반으로 하는 힘 정신적인 피로로 순간 순간 눈 앞이 흐려지기까지 했다.
내려 올 때 느꼈던 깊이보다 구멍은 더 깊었다.
“헉헉헉... 젠장... 뭐가 이렇게 깊어... 에익...”
다행이라면 구멍의 경사가 일정하지 않아 조금 덜 경사진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으음...”
“정선아.. 헉헉... 정신이 들어..”
“으... 어디... 아..”
정선은 정신이 들자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는 당황해 했다.
“으윽.. 움직이지마...”
승훈은 정선의 움직임에 순간 휘청하는 몸을 바로 잡으며 정선에게 말했다.
“아.. 승훈아... 나 빠졌는데... 구르다...”
“어 몸은 괜찮아... 어디 아픈곳은.. 헉헉...”
“아...팔이... 왼팔이...”
“그럼 오른팔로 내 목에 좀 둘러...”
승훈은 허리띠와 염력으로 고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축 늘어진 정선의 상태에 신경이 많이 쓰였었다. 다행이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린 정선에게 잘 잡으라고 하고는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헉헉헉...”
좁고 경사진 구멍 안에 승훈의 거친 숨소리가 퍼져갔다.
“으윽....”
승훈은 팔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비명을 삼켰다.
염력도 한계에 달한 듯 팔과 다리에 가해지는 무게가 점차 커져갔다.
“승훈이냐??”
승훈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시 기운을 내려 할때 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손전등의 빛이 비쳐왔다.
“여기요...어서..”
승훈은 미끌어지려는 팔 다리에 힘을 주어 버티며 도움을 청했다.
“잠시만 기다려”
위에서 목소리의 주인공이 로프을 타고 내려왔다.
로프는 승훈이 있는 곳 2미터 정도 위까지 늘어져 있었다.
“승훈아 조금만 더 올라와..”
“예.. 이익 헉헉헉”
승훈은 마지막 기운을 짜내어 올라갔다.
그리고 아래로 내리뻗은 손을 잡았다.
-턱
힘 있고 강한 손이 승훈과 정선을 끌어올렸다.
“승훈아 정선아.. 괜찮아...”
승훈을 끌어올린 사람은 규식이었다.
“예... 헉헉... 괜찮아요..”
승훈은 단단한 규식의 손을 잡고 버티며 말했다.
규식 선배는 묶여 있는 정선과 승훈의 몸에 로프를 묶고는 앞에서 끌기 시작했다.
공간이 좁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승훈도 힘을 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자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승훈과 정선은 동아리 사람들에 의해 민박집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정선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차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고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은 승훈은 씻지도 않은 채 민박집 방으로 들어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