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0)

늦은 밤, 로텐 남작의 저택에는 많은 아라반드 후작령의 가신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자하크의 개혁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이권에 손해가 가게 생기자 그에게 반발하여 모인 것이다. 이 모임을 주도한 아스카드 폰 로텐 남작은 상석에 앉아 자하크의 무도함을 성토했다. 

  "자하크는 너무도 많은 피를 흘렸소. 특히 비록 남편을 죽이는 패륜을 저질렀다고 하나 일레인은 과거에 너무도 잔인해서 폐지되었던 방법으로 처형하는 잔인함을 드러냈지. 또 그는 가신들의 이권을 빼앗아 자기 혼자 독차지하려고 하고 있소!" 

  사실 가신들에게서 빼앗은 이권은 자하크 개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 이권들은 모두 없는 자들이나 후작령의 발전을 위해 돌아갔다. 하지만 로텐 남작의 말을 들은 가신들은 이를 지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동조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텐 남작의 말이 옳소. 자하크는 가신들을 무시하고 있소. 이대로 가다가는 후작령의 미래가 암담하다는 것은 뻔한 일일 것이오." 

  "아라반드 후작령은 자하크 혼자만의 것이 아니요. 후작령은 후작과 가신과 백성들의 것. 이대로 간다면 후작령은 자하크의 독재체제 하에서 시름하게 될 것이오. 그 때에는 일레인과 그 일파의 만행보다도 더욱 힘든 시기가 찾아올 테지." 

  가신들은 각자 자신들의 의견을 꺼내며 자하크를 성토했다. 그들의 논리는 따지고 보면 다 우습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욕망에 눈이 먼 그들에게 지금 자신들이 펼치고 있는 논리는 세상에 있어서 절대적인 진리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이 모임을 소집하신 로텐 남작께서는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시오?" 

  "좋은 질문이오, 아젤 경." 

  자하크가 그들 사이에 심은 아젤 가문의 대표 칼릭스 폰 아젤이 로텐 남작에게 물었다. 칼릭스의 질문을 받은 로텐 남작은 자랑스럽게 그의 계획을 말했다. 

  "나는 자하크라는 존재가 후작령의 재앙이 되기 전에 그 싹을 자를 생각이오." 

  "그, 그렇다면!?" 

  예상보다 스케일이 큰 로텐 남작의 말에 몇몇 가신들이 놀랐다. 로텐 남작의 말은 자하크를 없애버리겠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아라반드 가문의 대가 끊기고 마오." 

  "샤리나 님과 아를린 님이 계시오. 그 분들이 비록 자하크에 의해 노예의 신분으로 격하되었지만 엄연히 살아계시지 않소이까? 자하크를 죽이고 전처럼 샤리나 님을 새로운 후작으로 세우면 될 것이오. 그 분께서도 자신을 노예로 만들고 어머니를 죽인 자하크에게 좋은 감정이 없을 터. 우리는 그 분에게 있어서 은인이 되고 아라반드 후작령을 구한 공신이 되는 것이오." 

  로텐 남작은 목이 마른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계획은 곧 있을 사냥제에서 벌일 작정이오. 그 곳에서 미리 우리 측의 사람들을 풀어놓은 뒤에 기회를 봐서 자하크를 해치우는 것이지." 

  "흐음……." 

  로텐 남작은 일일이 이번 계획의 성공 가능성과 성공할 시에 찾아올 엄청난 이익에 관해서 이 자리에 모인 가신들에게 설파했다. 결국 로텐 남작의 설득에 가신들은 일제히 그의 계획에 찬성했다. 

  "지금 자하크의 동태는 어떻소, 아젤 경?" 

  "여러분도 알다시피 내 아들인 디아카는 자하크의 옛 친구이고 그와 지금도 접촉하고 있소. 그 아이가 여러분들에게 설명할 것이오." 

  아버지의 말에 디아카는 앞으로 나섰다. 

  "디아카 폰 아젤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자하크의 동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자하크가 벌이고 있는 대표적인 일 중 하나라면 아라반드 후작령에서 노예시장을 여는 일입니다." 

  "노예시장을!? 아니, 그런 천박한 곳을 이 아라반드 후작령에서 차리겠다는 이야기요?" 

  "그렇습니다. 전대 후작님의 암살에 대한 사건으로 몇몇 가신들이 죽고 그 가족들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자하크는 저번에 타 영지로부터 공격을 받아 멸망한 카로네스 백작령의 노예시장에서 활약하던 조교사 같은 이들을 고용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귀족 혹은 가신들이 노예시장을 애용하지만 정작 그들은 노예시장이 자신들의 영지에 있는 것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천박한 장소가 자신들의 땅 위에 있다는 것이 불쾌하다는 이야기다. 허나 정작 그 곳을 이용하는 이들이 귀족 및 가신들이니 그들의 말은 어처구니없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슬슬 그 노예시장을 열 준비가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자하크는 저에게 새로 연 노예시장에 찾아오면 친구로서 특별히 노예 하나를 무료로 제공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 노예는 아마 일년 전만해도 우리와 함께 했던 가신의 아내나 딸과 같은 가족일터……." 

  "때문에 일단은 거절했습니다." 

  "역시 아젤 경의 아들답군." 

  곧 노예시장을 열게 될 것 같다는 디아카의 말에 가신들은 다시 한 번 자하크의 잔인함을 성토했다. 정작 노예시장이 열리면 누구보다도 먼저 이용할 당사자들이 바로 그들이면서 말이다. 

  이번 새로 연 노예시장에서 판매할 노예들은 일년 전에 그들과 같은 가신이었던 자들의 가족들이다. 즉 그들의 외모에 대해서 그들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 예전에 동료였던 자의 아내나 딸을 노예로 삼고 부린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꽤나 매력적인 일이었다. 

  모임은 끝이 났다. 그들은 각기 알아서 밤중의 어둠을 틈타 자신들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칼릭스 폰 아젤과 디아카 폰 아젤도 마찬가지였다. 칼릭스는 천천히 말을 탄 채로 아들에게 말했다. 

  "자하크 님께서 네게 그런 말을 한 것이 사실이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가 노예시장에 찾아오면 노예 하나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이야기 말이다." 

  "아,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아버지의 질문에 아들은 새삼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한 말씀을. 어찌 사내로서 그 제안을 거절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전에 눈독 들였던 귀부인이나 영애를 노예로서 부릴 수 있는 기회인데 말입니다. 아윽!" 

  칼릭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하는 아들의 머리를 검집으로 때렸다. 그는 눈에 불을 키며 아들을 질책했다. 

  "멍청한 녀석, 아젤 가문의 아이로서 검에 집중해도 모자란 판에 여색을 탐하는 것이냐!" 

  "그, 그것이……." 

  "누누이 얘기했지만 네 나이가 20세가 되기 전에는 절대 여색과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그 때까지는 오직 검만을 바라보아라." 

  "아버지, 이미 자하크 녀석은 아니, 자하크 후작님은 그 나이에 노예를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드네프 가문의 영애인 밀리나를 기억하시는지요? 그 아가씨가 지금 자하크의 노예입니다. 또 제 느낌에는 샤리나 님이나 아를린 님도……." 

  "그만하거라. 너와 자하크 님은 다르다. 그 분이 어떤 여자를 노예로 부리시건 이 후작령을 다스리는 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너는 다르다. 검으로서 대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에만 몰두해야하지." 

  지엄하신 아버지의 말씀이기에 디아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자하크가 준 그 절호의 기회는 그냥 두 눈 뜨고 놓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아들 녀석을 본 칼릭스는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풋, 이 녀석아. 뭘 그리 풀이 죽었느냐. 내가 언제 여자를 평생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더냐? 20세다. 20세까지만 검만 바라본 뒤에는 네가 얼마나 여자를 가까이해도 난 관여하지 않는다. 물론 기초적인 꾸준한 수련은 필요하지만 검만 바라볼 필요는 없단 말이다." 

  "그런가요?" 

  "가까운 예가 바로 네 눈앞에 있지 않으냐?" 

  디아카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나 그에게 검만을 바라보라고 하던 아버지는 아라반드 후작령에서 알아주는 바람둥이 중 하나였다. 물론 그가 정부인인 디아카의 어머니에게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하크 후작님에게 네가 원하는 노예를 좀 맡아달라고 부탁하도록 해라. 그리고 20세가 될 때에 찾아가거라." 

  "아, 알겠습니다. 아버지." 

  디아카는 칼릭스의 말에 기뻐했다. 비록 그 즉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에게 찾아온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아, 그리고 말이다." 

  "네, 말씀하세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자하크 후작님에게 리아난 남작부인도 좀 맡아달라고 부탁드려라. 내가 젊을 때에 그녀를 사모했지만 내가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그녀는 공략하지 못했다. 이렇게나마 그 때의 안타까움을 풀어야겠구나." 

  "……." 

  "뭘 그딴 시선으로 쳐다보느냐? 맞고 싶으냐?" 

  "아, 아닙니다. 다만 아버지도 역시 제 아버지란 생각이 들어서요." 

  "흥, 실없는 녀석." 

  칼릭스 폰 아젤과 디아카 폰 아젤. 아젤 가문의 두 호색부자는 그렇게 그들의 저택으로 향했다. 

  아스카드 폰 로텐 남작은 그가 애지중지 아끼는 딸인 유네아를 불렀다. 늦은 밤에 갑자기 아버지에게 불린 유네아는 잘 때 입는 파자마를 입은 채로 아버지의 앞에 나타났다. 

  "이 늦은 밤에 왜 부르셨어요? 막 잠들려던 참인데." 

  "그건 미안하구나. 하지만 급히 할 말이 있어서 그랬다." 

  "무슨 말씀이신데요?" 

  "예전에 수도로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지?" 

  아스카드 폰 로텐 남작은 거사가 있기 전에 그의 딸과 아내를 미리 영지 밖으로 보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거사가 실패해도 황제의 직할령인 제국의 수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어느 정도 뇌물을 쥐여주면 제아무리 자하크가 수도에 있는 모녀를 내놓으라고 해도 그는 닭 쫓는 개 신세처럼 되고 말 것이다. 

  "네, 제국의 유서 깊은 천년수도 아이레폴리스에 널린 유적들을 둘러보고 싶어요." 

  유네아는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귀족영애였다. 그녀는 예전부터 천년을 이어져온 제국의 수도 아이레폴리스에 방문하고 싶었지만 로텐 남작은 어지러운 제국 정세에 딸만을 내보내는 것이 걱정되어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유네아는 꽤나 유능한 소녀였다. 지금은 자하크에 의해 노예로 전락한 샤리나, 아를린 쌍둥이 자매의 친구이기도 한 그녀는 로텐 남작이 자랑하는 보물이었다. 

  "너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내일 짐을 싸고 어머니를 모시고 한 번 다녀오거라." 

  "네!? 정말요? 하지만 좀 갑작스러운걸요." 

  "너에게만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요즘 후작령의 사정이 어지럽다. 그러니 그 어지러운 사정을 피할 겸해서 갖다 오라고 하는 것이야." 

  "그런가요." 

  유네아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다. 친동생에 의해 노예가 되어버린 친구들을 생각한 것이다. 뭐 그녀가 아는 자하크는 언제나 누이들을 존중하는 소년이었기에 아마 친구들은 노예가 되었지만 그리 불편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것 같지만 그 이후로 연락이 없어 어느 정도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럼 그리 알도록 해라." 

  "네, 알겠어요." 

  유네아는 물러갔다. 로텐 남작은 딸이 물러난 뒤에 가만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는 계획의 성공의 의심하지 않았다. 자하크는 죽을 것이다. 많은 가신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었고 그 중에는 자하크의 심복이라고 알려진 아젤 가문도 있었다. 

  모든 것은 그의 편이리라 로텐 남작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은 물론이요, 가족 모두를 파멸로 몰아가는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는 그리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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