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9)

  황씨 아저씨의 가게 앞에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앙칼진 여자의 욕설이

들려왔다. 싸움이 벌어진 모양 이었다. 싸움이야 가끔 일어나는 일이니 별로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시비의 당사자가 누구인지 확인 한 인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경자와 장미가 서로 머리칼을 쥐어 잡고 서슬 등등하게 바닥을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대차게 서로 맞잡고 구르는지라 주변의 몇 티상들은 말릴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아니 말린다기보단 오히려 이런 자극적인 싸움 구경을 즐기는 듯 시쭉거리는 웃음이 

그네들의 얼굴에 가끔씩 흘러가고 있었다. 황씨 아저씨조차 그저 혀를 차며 가게 안에서 

지켜 볼 뿐 이었다.

"경자 언니! 장미 언니! 왜들 이러는거야!"

  앞 뒤 잴 것 없이 인혜는 바로 두 여자에게로 뛰어 들었다. 한데 엉켜 구르며, 드세게 

머리칼을 움켜 쥔 손을 간신히 떼어 내고 우선 경자를 일으켜 몸으로 감싸며 뒤로 밀어

냈다.

"왜 싸우는거야? 언니들 힘이 남아 돌아서 한바탕 해 보는거야?"

  경자는 인혜를 보자 숨이 턱에 받친 채 입을 열었으나 흥분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방울이 너 마침 잘 왔어. 

저...... 저..... 개같은 년이 말이야......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아유! 분해! 저 망할 년.........."

  빵빵한 체격으로보나 한창인 나이로 보나 장미에게 딸리는 경자인지라 싸움에서는 

밀리고 악으로 버티고 있던  참이라 인혜의 나섬은 큰 원군이 아닐 수 없었다. 장미는

살벌한 눈초리로 경자를 째려 볼 뿐 바로 입을 열지는 않았다.

  "왜? 왜 그래? 장미 언니가 뭘 어쨋단 말이야?"

  맞 닿은 가슴을 통해 경자의 심장 고동이 퉁퉁거리며 전달 되었다. 이 정도로 흥분한 

경자의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오랜만 이었다.

"저... 찢어 죽일 년이...... 말이야........

내가 잠시.... 없는 틈에........"

  아르바이트로 몸을 파는 장미가 588에 출근하는 날은 보통 단골들과의 약속이 되어서

따로 눈에 띄게 손님 찾으러 나갈 일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상하게도 장미의 단골이

하나도 찾아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작년만 해도 이 거리의 여왕처럼 군림하던 그녀가

체신 없게 거리로 나가 호객하기에는 조금 자존심도 팔리고하여 방 구석에서 시간이나

잡아 먹던 그녀에게 마침 경자를 찾아 온 단골 손님이 눈에 띄었다.

  하필 그 때 경자는 모처럼 짧은 손님을 하나 받고 있는 중이라 단골이 찾아 온 것을 

몰랐고, 그 단골은 원래 경자를 찾아 온 것이지만 588에선 꽤 늙은 축에 속하는 경자와는

색이 동한다기보다 그저 오랜동안 이어왔던 정으로 만나는 것인데 덜컥 빵빵한 몸매와 

빼어난 얼굴을 지닌 젊은 장미가 나서서 유혹을 하니 그냥 그녀가 이끄는대로 방으로 

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냥 그대로 관계를 맺고 조용히 들키지 않고 사라졌음 아무 탈 없었겠지만 그러기엔

장미의 적이 너무 많았다. 장미야 원래 주위의 창녀들보다 용모가 우수했고, 악착같이 

뛰어 588을 순전히 자기 힘만으로 벗어났기에 다른 티상들에게 부러움도 많이 샀지만,  

그만큼 주변의 사람들을 안하무인으로 내려보는 건방짐이 있어 욕을 먹던 터라, 평소

그녀를 고깝게 보던 곰티가 쪼르르 경자에게 달려가 단골 손님을 새치기 해간 것을 일러 

버렸다.

  그렇지않아도 손님 구경이 힘든 경자로서는 몇 년 동안 변치 않고 그녀를 찾은 단골을

새치기 당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 수 밖에 없었다. 대뜸 달려 왔지만 차마 손님 앞에서 

소란을 떨 수는 없어, 장미가 관계를 끝내고 손님 보낼 때 까지 기다렸다가 덥쳐 버렸다. 

처음엔 네 년이 이럴 수 있냐하는 말 다툼으로 시작 되었는데, 이런 일이 늘 그렇듯이

점차 감정이 격해져서 머리 쥐어 뜯는 싸움으로 발전 된 것 이었다. 더우기 장미로서는

오늘 기다렸던 자신의 단골이 하나도 안 와서 기껏 큰 맘 먹고 출근 해서 하루를 공 때린 

폭이 되어 기분이 꽤 불편하던 참에 경자가 욕으로 몰아 붙이자, 사과할 여지도 없이 

주위의 다른 티상들이 주욱 지켜 보는 가운데 고스란히 싸가지 없는 년으로 되어버려 

밸이 완전히 뒤틀려 종내에는 588 보지가 남자 가리냐, 먼저 찍는 것이 임자 아니냐는 

식으로 꼿꼿이 말 대꾸를 해 버리고 말았다.

  결국 이렇게 싸움은 터져 버렸고, 주변의 티상들은 재미있는 구경이 생긴지라 입으로만 

말리며둘의 싸움을 즐겁게 바라 보았다. 심정으로는 같이 생활하는 경자를 응원했지만 

싸움의 판도는 젊은 장미가 유리하게 이끌어가고 있었다. 경자와 장미 둘에게 다 관련이 

있는 돼지 엄마는 아예 이런 싸움에 끼어들어 귀찮은 일을 만들 생각이 없는지라 문을 

닫아 걸고 모른 척 하고 있는 와중에 인혜가 돌아 온 것 이었다.

"이런....? 장미 언니가 잘못 했네......."

  경자의 말을 다 듣고 인혜는 장미에게 단호하게 말 하였다. 꼭 인혜 자신이 이 싸움을

해결하고 싶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경자도 장미도 인혜는 먼 사이가 아니어서 그냥

싸움을 멈추고 화해를 시키고 싶을 뿐이라 명쾌하게 시시비비를 가려서 장미가 경자에게

사과하고 꽃 값 받은 것을 돌려 주면 경자가 그 사과를 받고 어쨋든 장미가 몸을 판 것

이니 액수의 반 정도를 장미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하면 해결이 나는 일이라 생각 했다. 

이런 식의 손님 새치기가 아주 없던 일은 아니라서 이렇게 화해 하는 것을 종종 보았던 

때문 이었다.

  그런데 장미의 기분의 비틀림이 예상보다 훨씬 더 컸다. 한창 죽네 사네 머리칼 쥐어

뜯으며 싸울 때는 몰랐지만 지금 가만히 분위기를 보니까 몽땅 다 경자의 편에 서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은 588과 거리를 조금 두고 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불과 얼마 전까지 뼈를 굵혀 온 동네 아닌가? 십 여면 늘어서 있는 사람 가운데 자기 편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그녀로서는 무척 서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일이 그녀가 잘못

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모두 하나로 자기만 비난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인혜의 눈짓으로 먼저 사과하고 돈을 돌려 주라는 것은 알았지만 장미는 뻗대었다. 

콧 날을 바짝 세우고 흘기는 표정으로 경자를 계속 노려 보았다. 까짓거 여기 다시 안

오면 될 것 아닌가라는 결심으로 이 악물고 세게 나갔다.

  장미가 사과를 해 오면 인혜는 적당히 경자를 달래서 풀어 줄텐데 외려 눈을 치 뜨고

표독스럽게 노려보니 인혜로서도 난처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장미의 그 모습에 경자는

더욱 화가 치 솟아 죽일 년, 살릴 년, 욕을 퍼 부으며 말리는 인혜를 마구 밀쳐서 제대로

잡고 있기가 힘들 지경 이었다.

  결국 인혜의 소리도 커지고 말았다.

"경자 언니! 좀 가만히 있어 봐."

  빽 소리를 지르나 경자가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일단 경자를 제지시켜 놓고 인혜는 

장미에게 또박 또박 말을 했다.

"언니가 잘못한 거 잖아?

그냥 사과하면 될텐데........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어!"

  혼자 몰리고 있다는 피해 의식을 받고 있던 장미는 인혜의 이 말에 화가 치 솟았다. 

그래도 인혜만은 자신과 아주 가깝다고 생각해서 적당히 이 상황을 끝나게 해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인혜의 또랑또랑한 말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비난하는 투로만

들렸다. 가슴 속에서 서러움 같은 것이 북받쳤다. 많은 사람이 둘러서서 자신을 비난한다

생각하니 열불이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눈물마저 글썽거리며 장미는 소리를 질렀다.

"방울이 니 년은 니 일도 아닌데 왜 끼어들어?

씨이발~ 보지 찾아 오는 놈들이 뭐 첨부터 임자가 정해진거야?

그렇게 중요하면 첨부터 잘 간수 할 것이지,

내 보지 좋다구 덤벼서 팔은건데 왜 다들 지랄이야? 지랄이........

그래! 니들 맘대로 해 봐! 

내가 여기 다신 안 오면 될 거 아냐?

여기 안오면 내가 못 살 줄 알아?

오죽이나 별 볼 일 없으면 단골이라는 놈이 한번 웃기만 했는데 대뜸 덤벼들까?"

  흥분한 탓이지만 장미의 말은 너무 심했다. 경자의 얼굴이 금새 타오르는 불처럼 뻘개

지더니 말리는 인혜를 확 밀치고 욕을 바락 내지르며 장미에게 덤벼 들었다. 인혜는 겨우

경자를 끌어 안아 멈추게 한 뒤, 두 팔을 허리 춤에 치키고 장미에게 바싹 다가갔다.

"언니. 지금 그렇게 싸가지없게 떠들어두 돼?

언니가 잘못한 일인데, 정말 똥 싸놓고 뭉갤거야?

씨발........... 방울이 완전히 열 받게 하네."

  평소에 누구에게나 사글사글하고 다정한 인혜가 눈을 부라리며 나서자 장미는 순간 

찔끔 했다. 그러나 내 갈긴 서슬을 주워 담기엔 이미 자신의 자존심도 크게 걸려 버린 일

이었다.

"이 씨양~ 새카만 년이 요즘 좀 뜬다구 어디서 눈 알 부라리면서 덤벼?

방울이 이 년아! 넌 위 아래도 없어?

씨발 년. 싸가지 없는 것들이 같이 산다구 떼로 덤비는 거지?

좋아! 그래........ 실컷 덤벼 봐. 내가 겁날 줄 알아."

"오호라~ 그래.... 넌 참 위 아래 있다.

나랑 너 서열 따지는 것 보다, 경자 언니랑 너랑 차이가 훨씬 더 나는거 아냐?

씨발 년. 경자 언닌 황으로 알면서 나한텐 찾아 먹을라구 그래?"

  기어코 인혜도 터져 버리고 말았다. 인혜 자신은 왜 이렇게 막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나가면 종내에는 파국인데 머리를 맞대고 싸우는 황소마냥 그냥 한 길로 흘러

버린 것이다. 마음 한 구석에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계속 경종처럼

울리고 있었으나 이상하게 분위기를 타버린 머리 속은 그런 이성적인 생각이 자리를 

잡게 놓아 두질 않았다.

  모여 선 티상들이 인혜를 둘러 쌌다. 경자마저 욕설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인혜의 이런

모습은 정말 보기 드문 것 이었다. 평소 잠잠하던 사람이 폭발할 땐 더 무서운 법이라 

이 쯤에서 싸움을 멈추게 하여야 할 것 같아 다들 인혜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말리는 방식이 또 장미의 부아를 돋게 하였다.

"방울아. 그만 둬. 왜 네가 흥분하냐?

똥은 드러워서 피하는 거야. 참아라."

  곰티의 결정적인 이 말에 장미는 소리를 빽 질렀다.

"이 씨양 년들. 주댕이를 찢어 놓을라!!!

째진 아가리라구 마구 놀릴거야?"

  이렇게까지 겉 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아도 될 일이었는데, 이쯤 되고보니

조용히 끝나긴 틀려 버렸다. 기세 등등하게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이 상황에서 약자는 

장미 였다. 다들 장미와는 반대 편에 서 있는지라 장미의 거친 욕에 전부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고, 그것은 결국 약자를 짓밟는다는 잔인한 쾌감을 이끌어 올려 장미에 대한 집단

린치의 형태로 금새 발전 되어 버릴 듯 했다.

  모두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장미에게 내리 꽂힐 때, 숨을 몇 번 몰아 쉰 인혜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 사태는 매우 심각했다. 더 생각 할 것 없이 인혜는 장미의 앞에 바싹

붙으며 욕을 퍼 부었다.

"꽃 값 다 꺼내 놓고, 당장 꺼져 버려! 

안 그러면 넌 이제 다신 여기 못 오게 할거야."

  카랑하게 높은 인혜의 목 소리에 비해 장미를 쳐다 보는 얼굴은 그리 험하지 않았고,

남들 눈치 못 채게 한껏 부드러운 눈길을 주었건만 흥분해 있는 장미는 인혜의 생각을 

조금도 못 알아채고 그저 자기가 그나마 마음을 터 놓고 사귀었던 방울이란 후배가 덤벼

든다는 것에 열 받아서 그냥 인혜를 확 밀쳐 버렸다. 인혜가 뒤로 벌렁 자빠지자 바로 

옆에 있던 유선이와 곰티가 욕을 하며 장미를 잡아 끌었다. 장미의 비명이 터지며 한떼의

무리에 그녀는 파 묻혀 버렸다.

  넘어졌다가 벌떡 일어난 인혜는 다짜고짜 그 무리로 뛰어 들며 장미의 멱살을 움켜쥐고

일으킨 뒤 마구 욕을 해 대며 벽 쪽으로 밀어 일단 사람들의 손에서 떼어냈다.

"이 씨양년이......

그래두 같이 먹은 밥이 있어... 참아 줬더니.......

이 년아. 너 진짜 죽을래?"

  인혜의 서슬에 밀려 다른 여자들의 린치에서 장미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미의

손 길에 인혜의 머리칼이 붙잡혀 버렸고 내치는 다른 손길에 따귀도 두 어대 맞았으며 

그 경황에 새로 산 그녀의 자랑스런 옷의 옆 단이 부욱 뜯어졌다. 

"이 씨발 년들아! 대체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순간 벼락치는 호통 소리가 들려 왔다. 모두들 깜짝 놀라 소리 난 쪽을 돌아 보자 당구

큐대를 치켜 든 세 명의 남자가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

"씹 팔아 먹구 사는 년들이 뭘 지들끼리 죽네 사네 싸우고 지랄이야?"

  왼 쪽 눈 아래로 비스듬히 칼 자욱이 나 있는 사내는 이 골목의 둥기 중에서 거의 대장

인 현철 이었다. 그는 청량리 역전을 중심으로 한 조직 폭력 집단인 봉림파에 속한 말단

보스 정도는 되는 주먹 이었다. 정통 건달은 아니므로 조폭에서 높은 위치에 오를 수는

없었지만 티상의 기둥 서방으로서는 대단한 관록을 지닌 자 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장미가 여기서 꽃 망울을 맺고 화려하게 피던 그 모든 시절에 장미와 고락을 같이 

했던 장미의 기둥 서방 이었다. 장미가 588의 화려한 꽃으로 독립을 이룬 것처럼 그도 

이젠 똘만이 시절과는 달리 둥기들 중에선 확실한 경륜을 쌓은 삼십 초반의 인물 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큐대를 들고 서 있는 두 명은 인혜의 둥기인 종도와 또 다른 둥기인

칼치 였다. 누군가 싸움이 커질 듯 하자 당구장에서 밤 새 놀고 있는 그들을 데려 온 모양

이었다. 이미 싸움의 원인은 다 듣고 온 듯 현철은 큰 소리로 티상들을 윽박 질러 일단 

싸움부터 멈추어 놓았다.

  장미로서는 참으로 난처하던 때인지라 현철의 등장은 구세주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현철은 그녀가 17 살 부터 5 년 동안이나 벌어 먹였던 둥기 였다. 지금의 인혜

처럼 하룻 밤에 대 여섯의 손님을 받던 장미의 수입은 상당히 큰 액수 였고, 그 수입의 20 

프로가 꼬박 꼬박 현철에게 갔던 것이니 그 옛날 정으로 봐서 현철이 자기를 야박하게 

대할 리가 없다고 믿었다. 그녀는 비로서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닌게 아니라 현철로서는 장미가 잘못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고, 지금 시비가 붙은

경자나 인혜가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 가족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장미에

대한 옛 정을 생각 안 할 수 없었다. 어쨋건 자신에게 5 년동안 봉사해 준 장미 였다. 지금

둥기와 티상의 관계는 정리 되었지만 과거의 생각을 해보면 장미를 심하게 몰아 붙일 순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일단 장미를 돌려 보내고, 적당히 경자를 달래는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고

생각했다. 그는 장미에게 눈을 부라리며 짐짓 소리를 질렀다.

"이 쓰발 년. 조용히 둔이나 챙기고 갈 것이지 왜 이렇게 시끄럽게 만들어.

나중에 경자랑 조용히 해결하구 넌 일단 집으로 가 버려."

  장미의 눈꼬리가 조금 치켜 올라갔다. 더 역성을 들어 주지 않아 원망의 빛이 감도는 것 

이었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현재를 모면하기에 불만이 없는 방법인지라 현철에게 무언가

보이려는 듯 눈 빛만 보낼 뿐 묵묵히 서 있었다.그 눈 빛을 받은 현철은 자기 나름대로는 

공평하게 한다고 헛기침을 하면서 경자에게도 욕을 퍼 부었다.

"이 망할 년들아. 그래도 전에 한 솥 밥 먹던 처지 아니냐?

똑같이 씹 팔아 살면서 뭘 그렇게 못 잡아 먹어서 아웅다웅이야?

장미한테 좀 잘 해주면 어디 덧나냐? 망할 년들........."

  그런데 이것이 누가 보아도 전혀 공평치않은 처사였다. 어쨋든 일의 잘못은 확실히 

장미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라, 싸움의 원인을 전혀 무시하고 당장 눈 앞의 앞가림만 하는

것은 더 큰 불씨를 지피는 것 이었다. 당장 경자의 눈꼬리가 홱 돌아가며 무엇인가 말하

려는 듯 붕어 새끼처럼 입만 뻐끔거리다 제 분에 겨워 씩씩거리며 숨만 몰아 쉬었고 둘러

선 모든 티상 들의 표정에 불만이 하나 가득 차기 시작했다.

"현철 오빠. 그렇게하면 안 되죠."

  당장 들고 일어선 것은 의외로 싸움을 말리려 했던 인혜였다. 장미의 손길에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뺨을 맞은 탓에 붉게 상기된 얼굴의 인혜는 눈물마저 글썽거리고 있었다. 그 

눈물의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옆 솔기가 터진 새로 산 옷 때문 이었다. 손으로는 찢어진 

솔기를 계속 매만지며 인혜는 확실하게 말했다.

"장미 언니가 잘못 한 거니까 확실히 사과하고 가야 돼요.

오빠가 장미 언니를 감싼다구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당돌한 인혜의 말에 이번엔 현철의 얼굴이 벌개졌다. 내심을 들켰기 때문에 모두의 앞

에서 쪽이 팔려 버린 것이다. 거기에 장미가 불을 질러 버렸다.

"참 잘 빠졌다. 

언제부터 방울이 네 년이 여기서 제일 높은 사람이 됐냐?

진짜 위 아래가 없구만....."

  현철이 벌개진 얼굴로 소리를 빽 질렀다.

"이 씨발! 내 말에 토 다는 년이 누구야?

장미 이 년아! 넌 떠들지 말고 빨리 꺼져 버려!"

  장미는 콧대를 세우며 백을 가지러 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나 인혜가 그녀의

앞을 막았다.

"정말 사과 안 하고 가면 언니는 오늘로 끝이야.

씨발~ 알아서 하라구."

  인혜의 눈에는 정말 범접하기 힘든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그 눈매에 장미는 찔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때,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인혜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런 씨발 년.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위 아래 없이 놀아.

날 어떻게 보구 지랄 떠는거야? 방울이 너 한번 죽어 볼래?"

  자신의 권위가 무시당한다고 생각한 현철이 인혜의 뺨을 갈긴 것 이었다. 너무 매서운

손 속이어서 인혜는 뒤로 쓰러졌다. 머리 전체가 울리며 뺨에 뜨거운 불이라도 닿은 듯 

화끈 거렸다. 입가를 훔치니 피가 배어 나왔다. 입술이 터진 듯 했다. 계속 현철이 씩씩

거리며 인혜에게 다가서 발길질을 하려 하는데 경자를 비롯한 티상들이 인혜를 둘러

감쌌고 칼치가 현철을 말렸다. 종도가 쩔쩔매며 인혜를 부축해 일으켰다. 아프기도 하고

너무 억울하고 서러워서 인혜의 눈에 고인 눈물이 주륵 흘러 내렸다.

"아유. 형. 참아요. 야 종도야 임마! 인순아! 방울이 데구 얼른 들어가라."

"이 씨발 년들이 좋다 좋다 하니까 마구 기어 올라!

전부 한 번 죽어 볼테야?"

  이 정도에서 끝내려고 말리는 칼치의 동작에 적당히 응하면서 현철은 소리만 드높였다.

집에 들어가려던 장미는 우뚝하고 멈추어서 인혜가 피 묻은 입술을 훔치며 우는 것을 

지켜 보았다. 이상하게 지금까지와의 격한 감정과는 달리 인혜의 모습이 너무 불쌍했다.

  종도가 인혜를 부축하고 끌었으나 인혜는 꼼짝도 안하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뚝 뚝

떨어트릴 뿐 이었다. 이 순간 모두 기분이 엿 같아져 버렸다. 인혜의 흐느끼는 모습은 

그들에게 생각하기 싫은 것들을 떠 오르게 하는 악몽과 유사한 것 이었다. 밑 바닥으로 

굴러 가는 모두의 생활이지만 그래두 조금 남아 있는 한 조각 여린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인혜에게는 있었기 때문이다. 황씨 아저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가게 문을 열고

나왔고, 현철 조차도 괜히 손찌검을 했구나 싶어 속이 상당히 불편했다.

  종도는 다시 한번 인혜를 끌었으나 순간 인혜가 고개를 번쩍 쳐 들면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그에게 욕을 퍼 부었다.

"야! 이 종도 개 새끼야!

넌 명색이 내 둥기라구 거머리처럼 맨날 피만 빨아 먹구......

이 씨발 놈아!

니 계집이 이렇게 억울해 죽겠는데...........

뒷 구석에 찌그러져 있냐?

이 새끼야! 도대체 왜 사니! 왜 살아!!!! 

아유!!!! 분해서.......... 분해서 죽겠어..........

엉엉.............."

  종도의 얼굴이 완전히 똥 빛이 되었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가슴을 마구 때리면서 인혜는 정말 서러워서 울었다. 지금 일에 대해 그녀는 정말 좋은

마음으로 할만큼 했다. 그리고 앞으로 경자와 장미의 감정의 앙금을 남기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생각해서 행동했건만 현철이나 장미나 모두 그녀를 너무 속 상하게 하였다.

  그 때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인혜의 주먹 질을 받으면서 그냥 뒤로 물러 서던 종도가 

벌겋다 못해 검은 빛이 감도는 얼굴을 불쑥 쳐 들고 현철에게 말했다.

"형! 이거 너무 한거 아니우? 형이 똑바로 해결을 해 주어야지.

나두 명색이 방울이 끼고 사는 둥긴데..... 

이렇게 내 쪽을 나가게 하면 난 방울이 앞에 서지도 못하게 하려는 거유?"

  대단한 용기를 내어 말하는 것이라 종도의 입술이 달삭거리며 떨고 있었다. 현철은

종도의 이런 도전에 기가 막혔다. 자신이 지금 잘못 해결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 놓고 자신의 행동을 비평 하는 것은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는 일 이었다. 그는 싸늘해진 표정으로 종도에게 다가섯다. 칼치가 종도를 막아

서며 당황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미쳤냐? 얼른 형님께 사과해!"

"비켜! 이 새끼야."  

  현철의 발이 치켜 올라가자 옆구리를 맞은 칼치는 신음 소리와 함께 옆으로 굴렀다. 

종도의 얼굴에 두려운 빛이 흘렀다. 현철은 주먹을 천천히 치켜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평상시 같으면 종도는 뒤로 물러섰겠지만 지금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인혜가 보고 있으므로 그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이를 악물었다.

  명치에서 뜨거운 통증이 일면서 종도는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가슴을 후비는 예리한

통증으로 숨이 막혔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할 말은 다 해야만 했다. 바닥을 비비적거리며

그는 계속 입을 열었다.

"이 씨발! 형이....... 형이 똑바로 해야........

우리도 따라 갈 것 아니우..........................."

  여전히 냉정한 현철이지만 사태가 점점 수습할 수 없는 지경으로 가고 있으므로 정말 

난처해졌다. 종도가 한 방에 제압도 안 될 뿐더러 자신을 쳐다보는 모두의 눈길이 정말로

부담 되었다. 쓰러진 종도를 몇 번 더 발로 짓 이겼지만 종도는 고통으로 뒹굴면서도 계속

꿍시렁거리면서 형 답게 행동하라고만 반복해서 떠들고 있었다. 현철로서는 지금이 588

에 들어 선 이래 가장 낯이 깎이는 순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칼치. 종도 새끼 데리구 방으로 와. 

오늘 이 새끼 버릇을 완전히 고쳐 주마.

그리고 이 씨발! 니 년들 일은 니들이 알아서 해결 해!

하지만 한번만 더 싸우면 모두 죽여 버릴거야!"

  결국 현철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들어 갔다. 시선이 부담이 

되어 도저히 거기에 계속 서 있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비척거리며 일어선 종도를 부축

하고 칼치는 현철의 뒤를 따랐다. 인혜의 옆을 스쳐가며 종도가 억지로 웃음을 지었지만

인혜는 짐짓 모른 체 하였다.

  남자들의 다툼으로 일을 비화시켜 버린지라 남은 여자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찢어진 옷 솔기를 매 만지는 인혜의 옆에 경자가 다가섰다. 하얗게 질린 채 문 앞에 서

있던 장미가 결국 처연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경자 언니. 미안 해. 내가 잘못 했수."

  장미가 주섬 주섬 주머니에서 그녀가 받은 꽃값을 꺼내더니 잠시 쭈삣거리다 경자에게 

건네 주었다. 경자는 눈을 흘겼다.

"이 년아. 니 씹 팔아서 번 거 잖아? 그걸 내가 왜 받아?"

  경자의 손에 쥐어 주고 장미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내 이제 다신 여기 안 올라우. 경자 언니. 그럼 됐지?

방울아. 미안하다. 왜 이렇게 됐는지 나두 잘 모르겠어.

네 옷은 내가 다 수선해 줄께. 

씨발~ 자꾸 이상하게 일이 꼬여 가는거야. 첨에 사과 할라구 했는데.........."

  답답한 심정때문에 장미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안 오긴 왜 안 와? 언니 찾는 놈씨들이 아직두 을마나 많은데.........

좋아. 언니 안 오면 내가 그 놈들 다 새치기 해 버릴께 아예 이 참에 다 양도하라구."

  아직 감정이 덜 삭은지라 인혜는 퉁명스럽게 내 뱉었다. 경자가 허탈하게 웃으며 뒤를

이었다.

"에라이~ 아까 같아서는 찢어 죽이고 싶더구만.........

이렇게 엿같이 끝나네.........

이 년아! 나랑 싸우고 니 년이 이 바닥 완전히 뜨면 결국은 내가 쫓아 낸 꼴이 되는 거 

잖아? 내가 그 욕을 왜 먹어? 

씨발!  미운 년이지만 그래두 밥 같이 먹은게 몇 년인데......

에라이....... 이 돈 쳐 넣구 술이나 한 잔 사라.

방울아 그냥 술에 몽땅 날려 버리자."

  장미에게 감정의 앙금이 아주 많은 티상 몇을 제외하고, 모두 황씨 아저씨 가게로 몰려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의 죽네 사네 하던 싸움을 순식간에 다 날려 버린 작게는 19 살,

많게는 30 이 넘은 청량리 588의 분 냄새 물씬 풍기는 노는 계집들은 소주 한 잔에 눈물과

, 그네들의 젊음을 함께 섞어 마시며 끝없이 재잘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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