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4)

바람난 아내에게 복수하기.

2.

난 곧바로 대전으로 갈 채비를 했다. 형님이 하는 흥신소가 대전에 있었기에 지체할 시간도 없이 곧바로 차를 몰았다. 놈이 보낸 택배 박스에 공씨디, 아내의 일기를 넣고 뒷좌석에 넣었다. 운전하며 뒷좌석에서 들썩들썩 거리는 작은 소음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여기서 이성을 잃으면 안 된다. 그럼 복수는커녕 혼자 자멸하는 꼴이 될 테니까. 미치는 건 복수를 한 뒤에 해도 늦지 않는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며 차의 창문을 열었다.

“후우.”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시간이었다. 저녁밥도 먹지 않고 곧장 왔는데 벌써 해가 진 것이다. 창문으로 쌀쌀한 바람이 들어오는 걸 보면 슬슬 계절이 바뀌긴 바뀔 것 같았다.

필터까지 타버린 담배를 창밖으로 튕기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 형님에게 전화를 걸자 이번엔 바로 전화가 연결되었다. 아무래도 내 전화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래, 성기야. 지금 어디까지 왔나?

“대전 거의 다 왔습니다. 형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아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거 왜 우리 자주 가던 술집 알지?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마.

“예.. 알겠습니다.”

나는 형님이 말한 술집까지 차를 몰았다. 유흥가라 그런지 주차할 곳을 쉽게 찾을 수 없었지만 좀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뒷좌석에서 박스를 꺼냈다.

박스를 들고 유흥가를 걸었다. 바닥에는 떨어진 광고지가 더럽게 붙어있었고, 어깨동무를 하며 큰소리치는 젊은 놈들이 보였다. 좋을 때였다. 무서울 게 없을 시절이니 그들의 행동은 눈살이 찌푸려지기 보단 귀엽게 보였다. 그런 거리 곳곳에는 누군가가 토사물을 쏟아내 거나, 이미 쏟아낸 흔적들이 보였다.

모두들 시름을 잊는 환락의 거리.

마치 나만이 회색분자마냥 그들의 색에 섞여들지 못하고 있었다.

형님이 말한 술집에 들어서자 곱게 꾸민 아가씨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몸을 쭉 훑어보는 게, 아무래도 손님의 질을 따지는 듯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가씨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예약 하셨나요?”

“아니오. 고두준이란 사람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렇군요. 저를 따라오세요.”

몸을 돌린 아가씨가 발걸음을 뗐다. 그녀가 신은 하이힐에서 들리는 또각또각 소리가 묘하게 귓가를 자극했다. 쭉 뻗은 그녀의 다리와 무릎까지 오는 타이트한 스커트는 옆이 조금 틀어져 각선미를 돋보이게 했다. 청초하지만 묘하게 색기를 풍기는 게 더욱 매력으로 보였다.

그녀는 나를 한 방으로 안내했다. 문에는 두 명의 건장한 사내가 서있었다. 한 명은 아는 얼굴이지만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러던 중 녀석이 나를 보더니 꾸벅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래.. 홍천이 너도 잘 지내고 있냐.”

“저야 뭐 여전하죠. 뭐해 임마, 인사드려.”

홍천이 녀석이 옆에 있는 놈을 어깨로 치며 눈치를 줬다. 그제야 멀뚱히 눈을 껌뻑이던 놈도 황급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정두라고 합니다!”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복도가 쩌렁쩌렁 울렸다. 옆에 있던 아가씨가 깜짝 놀라며 몸을 움찔했을 정도로 말이다. 결국 표정을 구긴 홍천이 녀석이 손바닥으로 정두의 뒷통수를 치고 나에게 사과했다.

“...신입이냐?”

“예.. 죄송합니다, 아직 교육이 덜 돼서 어리버리 하거든요.”

“뭐 됐다. 두준이 형님은 안에 계시냐?”

“예.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게 말하며 홍천이 녀석은 조용히 문을 열었다. 나는 벌벌 떨고 있는 정두를 보고 피식 웃으며 어깨를 툭 치고 들어갔다.

“수고해라.”

“예, 예!”

바짝 쫄았는지 숨을 크게 들이쉬는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웃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다시 조용히 문이 닫혔다.

넓은 방의 중앙에는 기다란 식탁이 있었다. 그 위로는 아름답게 꾸며진 음식들이 차려져 고급스런 멋을 풍겼다. 그런 사치스런 식탁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고급스런 정장에 중후한 얼굴을 가진 그가 바로 전국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는 해결사, 고두준이었다.

“왔나.”

“예.”

“앉아라. 밥은 먹었나?”

“아뇨 아직...”

형님의 맞은편에 앉으며 쟈켓을 벗어 옆에 있는 의자에 걸었다. 나를 잠시 물끄러미 보던 형님은 나에게 술병을 내밀며 중얼거렸다.

“많이 상했구나.”

“......”

술잔으로 술을 받으며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가.. 그제야 내 꼴이 어떤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후줄근한 와이셔츠에 턱을 슬쩍 만져보니 면도를 하지 않아 꺼칠꺼칠한 수염이 만져졌다. 영락없이 회사에서 짤린 실업자의 모습이었다.

“그렇군요... 후우.”

중얼거리며 나는 술잔의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값비싼 고급술이었지만 싸구려 소주처럼 마시는 나의 모습을 보면 애주가들이 입에 거품을 물겠지만, 뭐 어떤가. 술맛 따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빈 나의 잔에 다시 술을 따라주며 형님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

“...아내가, 바람이 난 듯합니다. 아니. 났습니다. 왠 개새끼랑 도망을 쳤더군요.”

“...!”

술을 따라주던 형님의 손이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내 술잔의 술은 가득 찼다. 이번엔 내가 술잔을 들어 형님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잠시 자신의 술잔을 보던 형님이 잔을 내밀자 나도 잔을 들어 술잔을 부딪쳤다.

“크으..”

잔을 쭉 들이 킨 형님의 입에서 쓴소리가 나왔다. 나도 잔을 비우고는 입 주위를 손으로 훔쳤다. 그런 나를 보던 형님은 한숨을 쉬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래..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눈치는 챘어?”

“아니요... 좀 무심한 반응은 있었지만 그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속상한 게 있냐고 물었지만 웃으며 그런 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저 뭔가 토라진 게 있거니 생각했는데.. 시발...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말을 하다말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이런 일을 차마 내 입으로 말한다는 게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형님의 말에 난 고개를 들었다. 내가 무슨 표정이라도 지었는지, 형님이 흠칫하는 느낌이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가져왔던 박스를 식탁 위에 올렸다.

“이건..?”

“하나는 아내가 쓴 일기고.. 하나는 놈이랑 아내가.. 떡치는 영상들이 담겨진 씨디입니다.”

박스를 열고 안에 있는 것을 형님에게 보여주었다. 형님은 침통한 표정으로 노트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박스에 노트를 집어넣었다.

“복수라도 할 생각인 거냐..?”

형님의 조심스런 물음에 나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키기 위한 라이터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불이 붙은 담배를 입에서 때며 한숨을 내쉬자 흰 연기가 길게 뿜어져 나왔다.

“....그래야죠. 이 홍성기, 지금까지 당하고 산 적 없습니다.”

“그래도 임마.. 네 아내인데..”

“아내라.. 좋은 어감이네요. 그런데 말이죠, 형님. 이런 일을 겪고 나니까, 아무도 믿지 못하겠습니다. 제 편인 줄 알았던 하늘은 알고 보니 뒷통수나 치는 좆같은 놈입니다. 저의 모든 것이었던 아내가 절 버렸습니다. 이런 제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복수는.. 결코 널 만족시켜주지 않을 거다. 아니 오히려 넌 후회할 거야.”

후회...

형님의 말에 난 담배를 깊게 흡입했다. 빠르게 타들어가며 필터를 남기고는 재가 되어버린 담배를 끄며 숨을 내쉬자 지독한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후회.. 하지 않는 게 좋죠.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몸을 지배해버린 복수심이 식어버린다면... 미칠 것만 같습니다. 아니 미칠 겁니다. 후회! 하지 않는 게 좋죠. 하지만 말입니다. 세상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란 게 있습니다...!”

낮게 으르렁 거리는 나의 말에 형님은 말없이 술잔을 들이켰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기던 형님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알아봐 줄게. 찾으면 바로 핸드폰에 연락 넣겠다.”

“....감사 합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이런 일을 맡겨서.. 보수는..”

“보수는 씨발, 지랄하지 말어라. 대신 나랑 약속하나 하자.”

“약속..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인 형님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복수를 하던, 말던 그건 네 선택이니 난 상관 않는다. 대신 말이다. 미치지만 말아라. 네가 걱정되서 하는 말이 아니여. 네가 미치면 송장 여럿 보니까 이런 말 하는 거다. 응? 너 때문에 죄 없는 사람 죽일 일은 없잖아. 알아 듣냐?”

“예..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형님은 다시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나도 술잔을 들며 그날 밤은 그렇게 술을 마시고 끝냈다.

***

형님에게서 연락은 생각보다 빠르게 왔다. 그만큼 날 우습게 본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놈은 생각보다 빈틈이 많았다.

“강형철..”

놈의 이름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놈의 모든 걸 안다. 놈의 가족, 친구, 성격, 직업, 주로 활동하는 거리까지 모두 나의 손에 들어왔다.

“최근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고.. 씨발 새끼가..”

분명 그 새로운 여자는 누구일지는 뻔했다. 나이를 보니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25살의 애송이였다. 집이 부유하지만 망나니로 자란 덕분에 여기저기서 사고를 친 문제아였다. 부모 중 엄마는 죽었고, 누이는 있다. 그리고 이혼한 아내가 있다고 한다...

“누이랑 이혼한 아내인가.. 뭐 그것으로 만족해야겠군.”

이혼한 아내도 정상적으로 결혼한 게 아니었다. 같은 대학을 다니다 술을 먹고 취한 강형철이 전 아내를 덮쳤다고 한다. 그리고 덜컥 임신을 해버린 것이다.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고 결국 둘은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해버렸다.

거기까진 부유한 집의 망나니라면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전 아내가 아이를 사산하면서 일은 틀어졌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결국 아이를 사산한 전 아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집안에선 돈을 쥐어주고 강제로 이혼을 하게 한다.

“웃기는 놈들이네. 그 애비에 그 자식이군.”

킥킥 웃으며 나는 사진 하나를 꺼냈다.

사진에는 차가운 인상의 여인이 있었다. 안경을 쓰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여자였는데 이 여인이 바로 강형철의 전 부인인 장혜주였다.

이혼한 지금은 회사에 다니며 생활한다고 되어있었다. 그리고 나에겐 이 여인이 필요했다.

놈에 대해서 더 자세한 걸 원했다. 놈의 집안의 그 깊숙이 숨겨진 치부까지 알고 있는 자가 필요했다.

장혜주.

우선 이 여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것부터 차근차근 복수의 기반을 다져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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