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나은과 함께 이 집에서 살고 있으며, 자신의 또 다른 주인의 남자의 이름은 안정수이다. 귀가한 안정수는 신발을 벗으려다 현관문에 놓인 신발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토끼 인형은 그가 저렇게 현관문에 선 채 신발을 바라보고 있자 그 의문에 대답해주듯 마음속으로 말을 건다.
‘손님이 와 있어요.’라고…….
안정수는 현관문에 놓인 신발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조심스레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선다. 마치 소리 나는 걸, 자신의 기척이 들리는 걸 극도로 조심하는 그의 기이한 행동에 토끼 인형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싶어진다.
안정수는 가장 먼저 작은 방을 확인하곤 긴장감이 묻어나는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거실에 들어선다. 거실에 들어선 안정수는 문득 무언가를 밟은 것인지, 발쪽에 위화감을 느껴 아래를 내려다보자 거실 바닥이 정체모를 액체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
무언가 공기도 끈적하면서도 후끈한 것을 눈치 챈 것인지 안정수는 마른침을 삼키곤 바닥에 떨어진 액체를 따라 안방과 부엌을 번갈아 바라본다. 무의식일까? 아니면 의도적인 것일까? 안정수의 발걸음은 안방을 피하듯 부엌으로 향하려는데 안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듯 들려온다.
부엌으로 향하려던 안정수의 발걸음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조심스럽게 안방을 향해 다가선다. 안방 문 앞에 선 그는 문고리에 조심스레 손을 뻗는데 그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움찔하며 문고리로 뻗던 손을 거둔다. 안방 문이 살짝 벌어져 틈이 있는 걸 깨달은 안정수는 잠시 그 자리에 선 채 망설이는 모습이다.
마치 마음을 다 잡을 시간을 가지는 것처럼 뜸을 들이는 안정수의 뒷모습을 토끼 인형은 그의 선택을 확인하려는 듯 눈을 떼지 않고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폭풍 전의 고요처럼 기분 나쁜 정적과 짙은 어둠이 깔린 거실에 점점 가빠져가는 안정수의 숨소리가 차갑게 식어가던 거실 공기에 두 사람이 만들어낸 열락과는 다른 여러 감정이 섞인 열기를 더해가며 그는 조심스레 벌어진 문틈 사이로 안방을 엿보기 시작했다.
김우영은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침대 위에 쓰러져 뜨거운 몸을 달래느라 헐떡이고 있는 알몸의 유부녀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능글맞은 미소가 입에 걸린다. 김우영은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아직은 낯선 남의 집 안방에서 빠져나와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벌써 해가 저물었군.’
분명 이 집에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아직 노을이 지고 있을 시간이었건만 오랜만에 회포를 푸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정나은이라는 절벽 위의 꽃을 꺾은 뒤 한동안 연락도 하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자신은 그동안 밀린 업무를 해결하느라 바빴고, 정나은에겐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줬다.
‘이미 잡은 물고기니깐.’
이미 잡아 언제든 요리 해먹을 수 있는 물고기인 만큼 천천히 음미하는 것만 남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간을 지낸 뒤 갑작스럽게 오늘 이렇게 그녀의 집으로 방문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갑작스레 방문하자 그녀는 움찔하며 놀란 모습이었지만 결국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 자신을 받아들인 것인지 순순히 집안에 들여보내줬다.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운 그녀의 자태에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갈증을 느껴 자리에서 껍질을 벗겨 달콤한 과실을 마음껏 맛봤다.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해결되지 않는 바닷물처럼 오히려 심해진 갈증에 그대로 그녀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서 한차례 더 관계를 나눴다. 쉬지 않고 연달아 두 차례를 격정적으로 관계를 나눴으니 정말로 목이 탈만도 하다.
“꿀꺽, 꿀꺽…….”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땀만큼 다시 물을 보충한 그의 눈에는 샛노란 계란말이가 보였다. 성욕을 해결하고, 갈증을 해결한 후이기에 먹음직스런 계란말이를 보자 식욕이 솟구쳐 김우영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입으로 쏙쏙 집어넣었다.
‘만든 지 얼마 안 됐나보네. 맛있는데?’
제대로 맛도 느끼지 않고, 그저 식욕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가 정성스레 준비한 계란말이를 전부 먹어치운 김우영은 거실에 걸린 시계를 바라본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됐는데 어쩔까…….’
본래 그는 잠시 들러 그녀와의 회포를 푼 후 재빨리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맛본 달콤한 유부녀의 과즙은 그의 이성을 간단히 날려버렸고, 식욕마저 해결하자 다시금 성욕이 끓어오르는 걸 느끼고 있다.
‘……에라 모르겠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 날 이후 그가 잠잠한 것이 영 신경에 거슬리지만 현재 김우영은 눈앞에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 들어서며 손을 대충 휘둘러 문을 닫은 그는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그녀 머리맡에 털썩 앉는다.
“…….”
침대 위에서 고른 숨을 내쉬고 있는 정나은의 모습을 조용히 내려다본다. 오랜만에 관계를 가진 탓일까? 아니면 그 날 이후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 탓일까? 관계를 가진 횟수는 평소보다 적은데 흐트러진 그녀의 모습에서 흘러나오는 만족스럽고 지친 분위기는 한층 깊어 보인다. 침대 시트 위에 관능적으로 흐트러져있는 정나은의 검은 머리칼을 매만지자 그녀가 고개를 든다. 반쯤 감긴 몽롱한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절로 실소가 나온다.
‘큰일 났네……한동안은 웬만한 여자는 눈에 차지도 않겠어.’
일 관련으로도 여자를 상대할 일이 많은 그로써는 너무 높아져버린 눈 때문에 한동안 다른 여자는 눈에도 안 들어올 것 같다. 그녀의 머리칼을 상냥하게 매만지자 그녀도 나쁜 기분은 아닌지 조심스레 자신의 손에 기대는 느낌이다.
‘확실히 많이 솔직해졌군.’
역시 자존심 강한 여자들은 이렇게 제대로 꺾이고 나면 순종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녀 같은 경우 자포자기한 느낌이 강하지만…….
“……읏!”
정나은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김우영이 갑작스레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자신의 가랑이 쪽으로 당기자 그녀는 살짝 괴로운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김우영의 가랑이 사이에 파묻는다. 김우영이 그저 아무 말도 않고 정나은을 내려다보자 정나은은 한 박자 늦게 그의 뜻을 알아채곤 더욱 깊이 자신의 고개를 김우영의 가랑이 사이로 파묻는다.
곧이어 자신의 가랑이에서 질척하면서도 그 어떤 것보다 부드러운 그녀의 입과 혀의 감각이 느껴지자 만족스런 기분을 느끼며 편안하게 몸을 눕힌다.
“흐음~좋군.”
김우영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봉사를 받으며 낯선 안방의 전경을 휙 둘러본다. 그녀의 깔끔한 성격이 묻어나는 깨끗하면서도 절제된 분위기가 지배적인 방. 필요 이상의 가구조차 없어 붙박이 옷장이나 속옷 같은 것을 넣을 작은 서랍, 화장대 역할을 같이 하는 커다란 거울이 놓인 책상이 끝이다.
‘응? 저건?’
전체적으로 방 안이 어두웠고, 지금까지는 그녀를 탐하느라 정신없어서 보지 못했던 한 가지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집안 어딘가에 하나쯤은 걸려있는 두 사람의 결혼사진.
벽 한 편에 자리 잡은 두 사람의 결혼사진에 김우영은 흥미가 솟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단연 순백의 신부다. 곱게 틀어 올린 머리, 검은 머리카락과 대비되는 아름다운 은색 티아라와 순백의 면사포, 그 어느 때보다 뽀얗고 빛나는 순백의 피부와 부끄러운 듯 홍조가 살짝 올라와 있는 뺨, 항상 매섭게 치켜 올라가 있던 눈매는 부드럽게 휘어있고, 검은 눈망울에선 행복의 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온통 새하얀 모습과 달리 붉디붉은 두툼한 입술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이란 감정이 걸려 부드럽게 휘어있고, 하늘하늘한 프릴이 많은 웨딩드레스 대신 그녀의 취향이 반영된 듯 심플하면서도 딱 달라붙어 몸매 라인이 아름답게 들어나는 순백의 상징은 그녀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려 한시라도 빨리 저 순백의 신부를 더럽히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끌끌끌 어떤 의미론 내가 여자라는 이름의 꽃을 만개시킨 셈 이구만.’
김우영은 풋풋하고 싱그러운 분위기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정나은의 모습과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두른 정나은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본다. 처음 그녀를 만날 때만 하더라도 풋풋하고, 싱그럽던 모습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여성으로써, 유부녀로써 활짝 만개해 수컷을 자극하는 향기마저 풍기고 있다.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과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쾌락에 의해 몽롱하게 풀린 얼굴을 비교하니 다시금 성욕이 들불 번지듯 들끓기 시작한다.
“……으음.”
정나은은 입안에 머금고 있던 것이 더욱 커지자 놀란 목소리를 낸다. 들끓는 성욕에 당장 그녀를 침대에 밀쳐 배아래 깔아뭉개려고 손을 뻗는데 김우영의 시야 한 편에 무언가 이상한 게 걸렸다.
‘응? 뭐지?’
어둑어둑하기만 해야 할 안방 문에 하얀 점 같은 것이 보인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없었던 하얀 점. 집중해서 바라보자 안방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고 살짝 벌어진 걸 알아차렸다.
‘거실에서 흘러나오는 빛인가?’
그렇다고 하면 계속 보였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위치가 바뀌는 인공적인 불빛인가? 그럴 리 없다. 한밤중에 위치가 바뀌는 불빛이라고 해봐야 달빛정도 밖에 더 있겠는가?
‘……그럼 저건 뭐지?’
김우영이 하얀 점의 정체를 생각하는 순간 하얀 점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김우영은 화들짝 놀랐지만 곧이어 그 하얀 점과 자신의 눈이 마주치자 그 하얀 점의 정체를 단번에 깨달았다.
저건 사람의 눈이라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김우영의 머릿속엔 저 눈의 주인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벽에 걸려있는 결혼사진의 두 주인공 중 한사람. 지금보다 훨씬 젊고, 행복에 겨운 분위기를 몸에 두른 결혼사진 속 남자. 이 침대의 두 주인공 중 한명.
자신이 꺾어버린 도도한 꽃의 주인이다.
김우영의 입가에는 그 어떤 때보다 비릿한 미소가 걸린다. 김우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정나은의 턱을 손으로 잡아 들어올린다. 김우영은 자신의 눈앞에 드리워진 그녀의 얼굴을 마치 물건 품평하듯이 이리저리 돌리며 장난친다. 하지만 문틈에선 절대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끔 한다.
‘속이 타겠지?’
김우영은 흥미로 개미를 눌러 죽이는 어린아이 같은 잔인한 미소를 짓곤 그녀의 두툼한 입술에 자신의 입을 겹친다. 그 어떤 때보다 질척하고 노골적인 키스 소리가 두 사람의 이어진 입에서 조금씩 흘러나온다. 그녀가 그 날 이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 덕에 지금까지 일방적이었던 키스는 일방적인 것이 아닌 서로를 탐하는 것으로 바뀌어 어떤 때보다 달콤하면서 뜨거운 키스가 이어진다.
“으음! 하으, 으읍! 하아, 읍!”
이어진 두 사람의 입과 그 사이에선 뱀처럼 유연한 혀가 서로의 입안을 오간다. 농밀한 키스인 만큼 부족한 숨을 채우기 위해 헐떡이기 시작하는 소리까지 더해져 고요한 안방에 질척거리는 헐떡임이 조금씩 차오른다.
김우영은 손을 뻗어 그녀를 꽉 껴안으며 더욱 자신의 품에 가두자 정나은은 벗어나지 못하는 사슬에 묶인 것처럼 그의 구속을 받아들이며 머리가 하얗게 변할 때까지 길고 긴 키스를 나누었다.
“……하아, 하아.”
두 사람의 입이 떨어지자 어둠 속에서 거친 숨소리만이 조용히 퍼진다. 김우영은 그녀를 껴안은 채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인다.
“두 번 연속 내가 힘썼으니 이번엔 우리 암고양이가 힘 좀 써봐.”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녀가 김우영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를 껴안은 팔을 풀고 침대에 벌러덩 눕자 잠시 숨을 고르던 정나은이 조심스레 허리를 들어 그의 배 위로 올라탄다.
“아, 천천히 해주겠어?”
김우영의 말에 정나은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정나은은 그의 배 위에서 다리를 크게 벌린 뒤 한 쪽 손을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내려 김우영의 육봉을 움켜쥐곤 그의 요청대로 천천히 허리를 내린다. 김우영은 벌러덩 누운 채로 그 콧대 높았던 유부녀가 스스로 자신의 배 위에서 춤추기 위해 준비하는 너무나도 흥분되는 장면을 능글맞은 미소로 지켜보고 있다.
“……으응.”
천천히 허리를 내리는 탓일까? 평소보다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는 욕망의 열기와 형태에 정나은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비음을 내고 말았다. 정나은이 비음을 냄과 동시에 두 사람의 하반신은 완전히 밀착하자 김우영은 즐거워하며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에 손을 뻗어 움켜쥔다. 김우영은 손안 가득 전해지는 그녀의 체온과 세상 그 어떤 마시멜로보다 부드러운 감각에 즐거워하며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던 자신의 손길을 느껴보라는 듯 천천히 손을 내려 그녀의 옆구리나 배 등을 매만진다.
마치 하나의 예술품을 매만지는 듯 조심스러우면서도 피부를 자극하는 외간 남자의 손길을 그녀의 몸에 새기듯 구석구석을 매만진다. 정나은도 그런 김우영의 손길이 나쁜 것만은 아닌지, 이따금 몸을 움찔리며 허리를 귀엽게 비트는 반응을 즐기며 그녀 뒤에 보이는 안방 문에 눈길을 살짝 돌린다.
‘우리 남편 씨에겐 아내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긴 너~무 미안하지?’
김우영은 안정수를 조롱하듯 몽롱하게 풀려 그녀가 여자가 된 얼굴만은 보여주지 않을 셈이다. 다만 그녀가 쾌락에 몸부림치며, 열기에 흐트러진 모습만은 적나라하게 보여줄 생각이다.
하나의 예술품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럽고 끈적거리는 손길로 매만지던 김우영은 정나은에게 시작하라는 신호라도 주듯 완전히 손을 떼곤 자신의 안방인양 편하게 눕는다. 김우영의 신호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정나은은 그의 배위에 양 손을 올려놓은 뒤 천천히 허리를 놀리기 시작한다.
딱 달라붙어있던 두 사람의 하반신이 서서히 떨어지고 맞붙기 시작한다. 정나은의 탄력적인 엉덩이와 김우영의 허벅지가 자아내는 작지만 찰진 타격음은 고요했던 안방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며, 금세 새어나오기 시작한 여인의 뜨겁고 달콤한 신음소리는 서서히 삐걱거리는 침대의 비명과 화음을 맞추며 살의 향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을 하나의 핏줄 선 눈동자가 모든 것을 눈에 새기듯 바라보고 있는 것을 쾌락에 헐떡이는 한 여인만이 모르고 있었다.
안정수는 두 사람이 연주하기 시작한 쾌락의 오케스트라를 한 장면이라도, 한 음색이라도 놓칠세라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울여 집중한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울여 봐도 자신의 가슴속 고동소리가 너무나 커서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다.
“후우……후우…….”
안정수는 억누르고 싶어도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주체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사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의 달뜬 숨소리와 안정수의 거친 숨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지며 마치 세 사람이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점점 세 사람의 숨결에 열기가 더해간다.
‘예상은 했지만…….’
계획이 끝나기 전까지 몇 번 정도는 더 이런 관계가 있을 거란 생각을 했지만 막상 눈앞에 현실이 들이밀어지니 견디기 힘들다. 부글부글 끓는 가슴 속 분노가 자신의 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고 믿지만 자신의 몸을 뜨겁게 달군 이 감정 속 또다시 피어나려는 배덕감 때문에 고역이다.
처음 아내가 그의 가랑이 사이에 고개를 묻고 있는 걸 봤을 땐 그저 머리가 하얗게 변할 뿐이었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머릿속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런 느낌. 만족스런 표정으로 안방을 둘러보던 김우영의 눈과 마주쳤을 땐 등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과 눈이 마주쳤음에도 오히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아내의 고개를 붙잡아 자신의 물건을 품평하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문을 박차고 들어가려는 걸 겨우 참았다. 그렇게 겨우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몸을 진정시켰더니 두 사람이 나누는 진한 키스 소리에 안정수는 오히려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하지만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히 뛰기 시작했고, 시들었던 배덕의 꽃은 또다시 싹을 틔우기 위해 떨리는 걸 느꼈을 땐 머리를 둔기로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그런 건가.’
처음에는 그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지금에 이르러서도 아내를 위해 그를 떨어트려놔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며 행동을 해왔다. 하지만 또다시 아내가 외간 남자의 품에 안겨 헐떡이는 모습을 보니 끝끝내 외면했던 자신의 감정이 자신을 봐달라고 고개를 들었다.
‘변한 건 아내만이 아닌 건가…….’
그녀가 벼랑 끝에 몰린 자기보호를 위해서일지도 모르고, 쾌락에 헐떡이는 자신을 솔직하게 받아들인 걸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아내가 그 날 이후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 자신은 그저 아내를 위해 고뇌만 할 뿐이라 생각했거늘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은 배덕감과 함께 그동안 외면했던 자신의 감정을 결국 깨달아 버렸다.
질투와 소유욕.
그동안 살아오면서 거리가 멀었던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저 감정들을 마주하자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뛰고 동시에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이런 상황을 통해서가 아니어도 충분히 마주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대리기사 때가 그랬고, 자존심 쎈 아내를 보며 그 콧대를 꺾어보고 싶다고도 생각하며 바람을 피웠을 때가 그랬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그렇다.
분노에 달아올랐던 자신의 몸은 어느새 다른 감정도 섞이며 더한 열기를 피워내기 시작한다. 아내가 그의 배 위에 올라타 스스로 허리를 놀리기 시작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안에 타는 갈증을 느낀다.
“으응, 흐읏! 하아! 하아악……!”
‘넌 그에 품에 안겨있을 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어?’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까? 타는 안정수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그의 배위에서 헐떡이며 흑단 같은 머리칼을 흩날리며 춤추고 있다. 매끄러운 라인을 자랑하는 뒷모습은 어둠속에서 봐도 땀으로 번들거릴 정도로 쾌락을 느끼고 있고, 허리를 놀릴 때마다 춤추는 탄력적인 엉덩이 사이로는 두 사람이 이어진 모습이 자신의 눈에 비춰지고 있다.
안방에 울려 퍼지는 둔탁하고 찰진 소리는 어느새 질척거리고 끈적한 소리가 더욱 강해지며 아내의 엉덩이가 그의 허벅지와 맞닿을 때마다 투명한 액체가 어둠속에서 반짝반짝 흩날리며 침대 시트를 적시고 있다.
“……!”
자신이 그 모습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걸 알고 있는 김우영이 자신을 놀리듯 아내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곤 두 사람이 이어진 모습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이게끔 한다. 아내는 자신이 이런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한층 강렬해진 쾌락을 발산하느라 더욱 힘겹게 헐떡인다.
“……손을……보자고.”
“……어요.”
둔탁한 타격음과 헐떡이는 아내의 신음소리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가 자세히 들리지 않는다. 시끄럽게 고동치는 자신의 가슴에 짜증이 나며, 힘이 잔뜩 들어간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어보지만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없다. 오히려 더욱 바쁘게 뛰며 온 몸에 피를 돌린다. 특히나 자신의 부풀어 오른 바지 앞섬에 집중적으로…….
안정수가 시끄러운 자신의 심장소리에 짜증을 느낄 무렵, 정나은과 김우영은 서로 손을 맞잡았다. 가느다란 그녀의 손가락과 두터운 그의 손가락이 서로 얽힌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맞잡은 손에 기대듯 정나은의 허리 놀림은 한층 강해진다. 아니, 그동안 그저 누워있기만 했던 김우영도 같이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하자 한층 거칠고 강한 소리가 울리며 안방의 공기를 순식간에 더욱 뜨겁게 달군다.
“하읏?! 크으응! 꺄으으으읏!”
한층 강해진 자극에 정나은은 쾌락에 버무려진 귀여운 목소리를 토해낸다. 몸을 부술 듯 쌓이기 시작한 쾌락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고개를 좌우로 격렬히 흔들며 앞으로 쓰러지려는 몸을 버티기 위해 맞잡은 김우영의 손에 힘을 꽉 준다.
“하아! 하아! 하아!”
안정수는 아내의 귀여운 신음소리와 환희에 몸부림치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숨을 죽여야 한다는 것도 잊고 거칠게 헐떡인다. 앞으로 몸이 쓰러지는 걸 막으려고 힘이 잔뜩 들어가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팔. 무엇보다 사랑하는 연인처럼 얽히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맞잡은 두 사람의 손에서 안정수의 시선이 떨어질 줄 모른다.
얽힌 두 사람의 손.
그녀의 왼손 약지에는 빛바랜 결혼반지가 그의 두터운 손에 짓눌려 부서질 것처럼 압박당하고 있고, 그와는 반대로 김우영의 왼손 약지에는 아무것도 끼워져 있지 않다. 결혼반지를 통해 이어진 붉은 실이 김우영이라는 벽에 의해 가로막힌 기분이다.
“……보고 싶다.”
아내가 지금 이 순간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다. 그리고 그런 안정수의 간절한 바람을 이뤄주려는 것일까? 격렬하게 그의 배 위에서 춤을 추던 아내와 그가 잠시 멈춘다.
침대 위에 누워있던 김우영이 상체를 일으키더니 그녀를 껴안으며 또다시 키스를 나눈다. 자연스레 키스를 받아들인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두 사람과 자신의 사이에는 커다란 절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흐음, 읏.”
키스를 나누던 두 사람이었지만 금세 떨어지곤 아내의 입술을 탐하던 김우영의 입이 서서히 내려간다. 김우영의 입이 아내의 몸을 맛보듯 천천히 타고 내려간다. 아내의 몸을 애무하던 그가 아내의 어깨 너머로 완전히 숨어버리기 전 자신과 눈이 마주친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었을까?
그의 품에 안긴 아내의 등이 간지럽다는 듯 움찔거린다. 김우영의 입이 도착한 곳은 보이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아내의 탐스러운 가슴에 머물고 욕정이 묻어나는 눈길과 혓바닥으로 아내의 가슴을 유린하기 시작했을 게 틀림없다.
“……아, 으아아앗?! 꺄으으으!”
아내의 가슴 언저리에서 노골적이고 게걸스럽기까지 한 빠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자 아내가 익숙하지 못한 감각에 헐떡이며 당황스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안정수는 안방에 퍼지는 그 노골적인 소리에 얼이 빠졌다. 마치 자신에게 들려주듯 아내의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퇴폐적이기까지 한 빠는 소리는 그의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같다.
자존심 강한 아내는 자신과의 잠자리에서 갈수록 우위를 선점하는 걸 좋아했다. 자존심이 높기에 자신이 부끄러운 짓은 잘 못하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저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가슴을 빨린 일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장담한다.
자신과는 다른 거칠고, 끈적한 욕정. 하물며 처음 겪는 당황스럽기까지 한 감각에 아내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의 품을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리지만 그의 두터운 팔이 그녀가 도망가는 걸 막고 있다.
“아, 아으으읏……하으응!”
아내의 팔, 다리가 뻣뻣하게 경직되는 게 보인다. 아기에게 모유를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감각과 행위에 아내는 몸을 뻣뻣하게 경직시키는 것도 힘든지 그의 품에 기대며 몸을 맡겨버린다. 아내의 뒷모습에서 한층 나른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헐떡임에 따라 높게 오르내리는 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리는 것을 수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내 눈동자는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해 볼까?”
아내의 어깨 너머로 숨었던 김우영이 즐거운 목소리로 아내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인다. 아내는 자신의 귓가에 김우영이 뭐라고 속삭이건 몸에 소용돌이치는 환희라는 감정을 주체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김우영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아내의 풀린 양 다리 밑에 자신의 팔을 집어넣는다.
“……을 잘 두르라고.”
김우영이 들릴 듯 말 듯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속삭이곤 아내를 번쩍 들어올린다. 그러자 사지가 나른하게 풀려있던 아내가 허공으로 떠오르는 부유감에 화들짝 놀라 그의 목에 자신의 팔을 두른다.
“자, 잠깐……이 자세는 너무……흐읏!”
아내의 입에서 부담어린 목소리가 다급하게 새어나오자 항의는 듣지 않겠다는 듯 김우영이 강하게 허리를 올려치자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억눌린 아내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며 의지할 곳이라곤 그의 품 속 뿐이라 더욱 그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몸을 꿰뚫는 쾌락을 견디기 위해 부들부들 떤다.
김우영도 그런 아내의 상태를 눈치 챈 것인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더니 아내의 다리를 들어 올리고 있던 자신의 팔에 힘을 살짝 빼자 아내의 몸이 더욱 아래로 처진다.
“꺄으으윽?!”
정나은은 안 그래도 익숙지 않은 곳까지 체위라 생소한 감각에 경련하듯 버티고 있었거늘 자신의 무게 때문에 더
욱 깊숙이 파고들며 꿰뚫려버리자 숨이 턱턱 막혀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귀여운 신음소리 이후에는 입을 뻐금거리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아주 단번에 갈 기세군.’
김우영은 입을 뻐금뻐금 거리며 헐떡이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정나은을 내려다보며 즐거워한다. 그 도도하던 년이 자신의 품에 안겨 신음조차 지르지 못하고 헐떡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없던 힘도 생겨난다.
김우영은 그런 정나은에게 정신 차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그 상태로 허리를 강하게 올려치기 시작한다. 허공에 들어 올려 진 채 강하게 힘을 받기 시작한 정나은은 침대라는 완충제가 사라져 김우영의 허리힘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자신의 무게라는 두 가지 올가미에 묶여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를 버티기 위해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덜덜 떨리는 자신의 다리를 조금이라도 그의 몸에 휘감아 보지만 이미 그녀의 몸에 퍼지기 시작한 쾌락은 그녀가 저항할 힘마저도 빼앗아 간다.
“아아앗?! 흐으으응! 크흑……하아! 하아! 하아악?!”
두 사람의 이어진 하반신에선 그 어떤 때보다 찰진 타격음이 터져 나온다. 하반신에서 생겨난 쾌락은 아내의 몸 구석구석 퍼지다 못해 온 몸 밖으로 터져 나오듯 그녀의 입을 통해 아찔한 신음소리가 비명처럼 안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다 못해 벌어진 문틈 사이로 적나라하게 거실로 울려 퍼진다.
안정수의 눈에는 주체 못할 쾌락으로 인해 아내가 버둥거리는 걸 멍한 상태로 바라보고 있다. 자신과 결혼했을 때에도 부끄러워서 자신의 감정을 숨겼고, 자기관리가 철저해지고 자존심이 높아진 이후에는 당연히 더욱 저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품에 안겨 행복에 겨워하긴 했지만……저렇게까지 쾌락에 버둥거리는 건 처음 본 것 같다.
서로 밤일이 불만족스러웠던 것도 아니다. 다만 자존심 강한 그녀가 우위를 선점하게 해줬고, 자신은 그에 맞춰주는 경우가 많았을 뿐이다.
‘…….’
지금 이 순간에도 주체 못할 쾌락에 버둥거리며 조금이라도 몸을 휘젓고 다니는 환희를 줄이기 위해서인지 그의 품에 쓰러지듯, 의지하듯 얽히는 아내의 뒷모습에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아내가 신음을 내지르며 고개를 도리질 칠 때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땀으로 푹 젖은 번들거리는 등은 관능적으로 꿈틀거리고, 그의 몸에 뱀처럼 얽힌 아내의 양 팔과 두 다리는 덜덜 떨리며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이 질투난다.
김우영이 허리를 강하게 올려 칠 때마다 파문이 이는 탄력적인 엉덩이와 아내의 엉덩이 사이를 김우영의 욕망이 끊임없이 드나들 때마다 어둠속에 흩날리는 투명한 액체는 야릇한 향기를 피워내며 아내의 쾌락의 눈물이 침대 시트에 뚝뚝 떨어진다. 안방 안을 가득 채운 뜨겁고 야릇한 공기는 자신을 휘감고 지나가며 자신이 마치 저 자리에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안정수를 참을 수 없게 하는 건 바로 김우영의 눈이다.
그는 자신의 품에서 헐떡이는 아내를 보지 않고, 오로지 이쪽을 향해 욕망어린 눈동자를 향한 채 점점 그 욕망이 해소되고 있는 걸 자신에게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품에 안겨 미칠 듯이 헐떡이는 아내따위 성욕을 해소하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사랑스런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저 자신의 욕망을 그녀에게 부딪히며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아악! 햐으으으윽! 흐으응, 크읏?! 자, 잠깐……하악! 하악! 아, 아아아! 꺄아아악!”
김우영의 욕망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던 아내가 가장 먼저 절정에 올라버렸다. 그의 몸을 으스러트릴 듯이 꽉 껴안는 아내의 팔과 다리. 그의 품에 동그랗게 안겨 헐떡이던 아내의 등은 튕겨져 나갈듯 활처럼 휘며 뒤로 확 재껴진다. 얼마나 격하게 등이 뒤로 재껴졌는지, 한순간 아내의 머리카락이 허공에 휘날리며 그녀의 체취가 진하게 안방 공기에 퍼지곤 아래로 늘어진 채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완전히 뒤로 재껴진 게 아닌지라 안정수의 눈에는 경련하듯 떨리는 아내의 얼굴이 아주 살짝 보일 뿐이다. 아내의 벌어진 입에선 억눌리지 않고 솔직하게 환희의 비명을 토해내고 있고, 김우영은 그런 아내를 내려다보며 자신도 절정에 오르기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하자 아내는 절정을 맞이한 상태로 온 몸에 터질 듯 밀려오는 쾌락에 사지가 점점 풀린다.
“아, 아아아……아흐으응, 하아악?!”
“후욱! 후욱! 후욱! 크, 크으으윽!”
아내의 사지가 풀려감에 따라 마치 고장난 것처럼 낮은 신음을 토해내던 아내의 목소리. 그리고 거기에 화음을 맞추듯 깊고, 뜨거운 김우영의 목소리가 일순 참았던 욕망을 토해내듯 가슴속 깊은 곳에서 담아둔 뜨거운 숨결을 토해냄과 동시에 강하게 허리를 한 번 올려치곤 서로를 으스러질 듯 껴안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다.
“…….”
침대 위에 선 채 이어져 있는 두 사람. 영원히 서로를 의지한 채 이어져 있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이었지만 정나은이 먼저 힘이 다했는지, 그의 몸에 얽혀있던 다리와 팔이 축 늘어진다.
“……아, 으응.”
그의 몸에서 팔과 다리가 떨어져나간 만큼 자신의 무게가 더욱 강하게 실리는지 한순간 달콤하면서도 숨이 턱 막히는 비음을 내며 크게 움찔했지만 또다시 그의 품에 안길 힘조차 없는지 아래로 고개가 뒤로 젖혀져 축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처럼 아내의 팔, 다리도 아래로 축 늘어져버린다.
“…….”
김우영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어깨 너머로 욕망을 터트린 만족스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몸이 느끼고 있는 절정을 감출 기색도 없이 고스란히 들어낸 그의 몸은 힘이 잔뜩 들어가 아내의 몸을 향해 하얗고 질척한 욕망을 쏟아 붓고 있는 걸 자신에게 보여주고 있다.
아내의 엉덩이 사이로 보이는 그의 욕망의 창이 울컥거리고 꿈틀거릴 때마다 아내의 몸은 자신의 몸에 밀려들어오기 시작한 사내의 욕망에 밀려난 것처럼 투명한 쾌락의 눈물을 침대 시트 위로 뚝뚝 떨어트리는 모습이 어두운 안방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선명하게 보인다.
‘하아, 하아, 하아…….’
안정수는 그 장면을 보며 헐떡인다. 지금 머릿속을 울리는 자신의 헐떡임이 입 밖으로 새어나온 것인지 속으로만 들려오는 것인지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모든 신경이 두 사람에게 쏠려있다.
김우영은 안정수의 눈이 어디에 머물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안정수는 두 사람의 이어진 하반신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아 김우영의 미소를 보지 못했다. 김우영은 그렇게 보고 싶다면 보여줘야지 라는 작은 혼잣말과 함께 아주 천천히 그녀를 꿰뚫고 있던 욕망의 창을 빼낸다.
곧이어 안정수의 눈에는 그의 욕망이 빠져나간 자리가 들어왔다. 아래로 축 처져 보이지 않는 아내의 비밀의 정원. 하지만 그녀가 흘리고 있는 쾌락의 눈물은 막고 있던 뚜껑이 빠져나가자 침대 시트에 야릇한 향기를 피워내며 후드득 빛나며 떨어진다.
깨끗하고 투명했던 아내의 눈물이 침대 시트 위에 쏟아지자 아내의 몸속에 때려 박은 김우영의 탁한 욕망이 뒤를 이어 울컥하며 쏟아지기 시작한다. 남자의 가슴을 방망이질 시키는 야릇한 향기는 비릿한 밤꽃 향기와 섞이며 형용할 수 없는 체취로 변한다.
안정수는 아내의 가랑이 사이에서 쏟아지는 김우영의 탁한 욕망을 수많은 감정이 묻어나는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 안정수에게 김우영은 마치 볼일 끝났다는 듯 자신의 품에 안겨 있던 아내를 침대 위에 떨어트린다.
“……?!”
아무리 침대 위여도 한 사람을 내동댕이치듯 떨어진 아내에 안정수는 깜짝 놀랐지만 곧이어 그의 머릿속은 그런 걱정은 싹 날아가 버렸다. 침대 위에 내동댕이치듯 떨어진 정나은은 놀랄 기운도 없는 것인지, 달아오른 몸을 주체 못하고 헐떡이고 있다. 하얀 침대 시트 위에 나른하게 널브러진 아내의 몸과 침대 아래로 거꾸로 늘어진 아내의 고개.
그리고 아내의 표정.
딱 부부가 잘 만큼의 아담한 침대 사이즈이기에 침대 중간쯤에서 선 채로 사랑을 나눴던 두 사람이기에 중간쯤에서 그녀를 떨어트리자 몸은 정확히 침대 위로 떨어졌지만 아내의 고개는 침대를 벗어나 아래로 거꾸로 늘어져 버렸다.
안정수가 바라보고 있는 정면으로.
열기가 느껴지는 나른한 분위기하며, 달아오른 몸을 식히기 위해 아내가 헐떡일 때마다 오르내리는 탐스런 가슴 능선이 눈을 어지럽히고, 아내의 가느다란 목에는 땀에 젖은 머리칼이 요염하게 달라붙어있다. 무엇보다 그렇게도 갈망하던 아내의 얼굴이 완전히 안정수의 면전에 드리워졌다.
“하아, 하아, 하아…….”
복숭아 빛으로 물든 두툼한 입술은 그녀가 흘린 침으로 번들거리고 앙증맞게 벌어진 입은 쉬지 않고 뜨거운 공기를 토해내고 차가운 공기를 마시느라 정신이 없다. 뽀얗던 양 뺨은 입술보다 붉게 달아올라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고, 무엇보다 쾌락에 절여져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는 이쪽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아내의 눈에는 그저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일 뿐, 눈에 비춰지고 있는 풍경보단 몸속을 휘젓는 열기를 느끼는데 정신이 없어 보인다. 항상 치켜 올라가 쎈 자존심을 어필하던 날카로운 눈매는 부드럽게 내려와 있고, 잔소리를 토해내던 장난기 어린 아내의 얼굴은 자신에게만 보여주던 여자의 얼굴이 되어있었다.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는 미동조차 않고는 나른하게 풀린 사지의 감각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은지 서서히 눈꺼풀이 닫히기 시작한다. 정나은은 그렇게 남편의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김우영에 의해 여자의 기쁨을 드러낸 얼굴을 그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눈꺼풀을 감았다.
김우영은 자신의 발치에 널브러진 도도했던 꽃의 자태를 비릿한 미소로 내려다보고 있다. 정복이 끝난 영토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듯 마음껏 자신의 탁하기 그지없는 욕망의 하얀색으로 물들인다.
쾌락으로 헐떡이는 꽃의 자태를 내려다보던 김우영은 침대에서 내려와 거꾸로 늘어진 정나은의 얼굴 곁에 선다. 그리곤 문틈 사이로 엿보이던 하얀 눈동자 하나를 곁눈질로 흘끔 보더니 더 이상 정나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듯 문 쪽으로 김우영이 돌아선다.
‘안 보여…….’
김우영의 몸에 가려 문틈 사이에선 더 이상 그녀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김우영은 그녀의 얼굴 쪽으로 허리를 천천히 허리를 내린다. 그러자 침대 위에 나른하게 퍼져있던 그녀의 몸에 힘이 들어가며 살짝 떨린다.
“……웁, 우읍.”
정나은이 무언가를 머금는 목소리가 그의 가랑이 사이에서 들려온다. 김우영이 마지막 욕망을 그녀 안에 토해내듯 허리를 몇 번 튕긴 후 그녀의 얼굴에 묻었던 몸을 일으킨다. 몸을 일으키자 이미 문틈 사이에 존재했던 하나의 눈동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
김우영은 자신의 모든 욕망을 토해낸 뒤이거늘 어쩐지 그의 표정에선 개운치 않는 맛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곧이어 흥미를 잃어버린 것처럼 또다시 침대 위로 올라선다. 아까보다 한층 타액으로 젖어 번들거리는 정나은의 입에서 또다시 달콤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하고, 텅 빈 거실을 향해 야릇한 체취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높다란 하늘이 청명함을 자랑하고 푸른 하늘을 유유히 흘러가는 한조각의 하얀 뭉게구름이 달콤한 솜사탕처럼 아름다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 도시를 스쳐지나가고, 파랗게 올라온 나뭇잎들은 부드러운 햇살이 기쁜 듯이 춤을 춘다.
도시 전반에 깔린 평화로운 분위기나 좋은 날씨 때문인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편안함이 떠올라 있고, 바쁜 발걸음도 잠시 멈추게 하는 1년에 몇 없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다.
얼마 전 안정수, 정나은 두 부부의 보금자리 휘몰아쳤던 퇴폐적인 욕망의 분위기는 집안 전체에 떠도는 평화로운 날씨 탓인지 그런 분위기는 일체 남아있지 않다. 살랑살랑 불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두터운 커튼 자락을 간질이며 집안을 휘젓고 다니고, 바람에 실린 따스한 햇빛의 온기가 공기를 따스하게 바꿔준다.
따스하고 고요한 집안에 시끄러운 현관문 소리가 갑작스레 끼어든다.
“다녀왔어.”
돌아온 것은 이 집의 두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안정수이다. 평일이기에 퇴근했다고 하기엔 너무나 이른 시각. 잠시 물건을 가지러 돌아왔다고 하기에도 그가 입고 있는 복장은 정장이 아닌 평상복이다.
집안을 둘러보던 안정수는 부엌으로 향해 두 개의 컵을 준비하곤 커피를 타기 시작한다. 금세 부엌에는 향긋한 커피 향이 퍼지며 커피를 타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길고 긴 마라톤을 뛴 것처럼 지쳤지만 드디어 끝났다는 달성감이 느껴진다.
커피를 넣은 두 개의 컵을 양 손에 들고 당연하다는 듯이 베란다로 걸음을 옮긴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을 재끼고 살짝 열린 베란다 창문을 열고 나서자 그곳에는 그의 아내 정나은이 커다란 의자에 앉아 햇빛을 받고 있었다.
“자. 커피.”
안정수가 커피를 건네자 정나은은 어쩐지 몸을 움찔 떨며 고개를 숙인 채 그 커피를 받아든다. 조심스럽게 커피를 받아든 정나은의 모습은 어쩐지 이상해 보였다. 마치 죄를 지은 사람 마냥 안정수를 바라보지 못하고 커피 잔을 움켜쥔 그녀의 모습은 위축되어 보인다.
아래로 내리깔고 있는 고개, 펑퍼짐한 일체형 원피를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커피 잔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아래 부분, 정확하게는 그녀의 배가 둥그렇게 부풀어 올라있다.
“의사 선생님이 하루 한 잔은 괜찮 댔지?”
안정수의 질문에도 정나은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안정수는 그런 그녀의 반응을 내버려 둔 채 베란다 난간에 몸을 기대며 스마트 폰을 꺼내 인터넷을 한다. 곧이어 원하는 인터넷 뉴스를 찾았는지 뉴스 링크를 클릭한 후 베란다 난간 위에 스마트 폰을 내려놓자 뉴스가 흘러나온다.
-다음 뉴스입니다. 영업 일을 하는 40대 중반의 김모씨가 치정 사건에 휘말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회사 내에선 부장이라는 직위를 가진 그는 평소 영업을 따내기 위해 난잡한 여성 관계를 가졌으며 때로는 강압적인 방법을 통해 여성을 취하는 등 수많은 여성을 손대온 것으로 밝혀졌으며, 과거 강제로 취한 한 여성 중 한명에게 어젯밤 흉기로 찔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김모씨가 그동안 강압적으로 이뤄진 난잡한 여성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처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경찰이 여죄를 추궁…….
스마트 폰에서 흘러나오는 리포터의 담담한 목소리를 듣고 있던 정나은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한다. 아래로 떨군 고개를 살짝 들어 아래로 늘어진 자신의 머리카락 사이로 남편의 옆모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
안정수는 그 뉴스를 들으며 커피를 홀짝일 뿐 아내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큰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편안할 뿐이다.
‘길었지…….’
벌써 몇 달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안정수는 자신의 집에서, 두 부부의 침실에서 김우영이 자신의 아내를 조롱하듯 품는 장면을 보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자신이 세운 계획은 아무리 빨라도 한 달, 늦어도 몇 달은 걸리는 일이기에 두 사람이 관계를 가지는 걸 각오하곤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드리워지니 견디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질투심과 소유욕이 강할 줄 몰랐지.’
가슴속 깊이 자리 잡은 배덕감 보단 마주하게 된 자신의 어두운 감정이 더욱 안정수를 부추겼고, 가슴속에 뜨겁게 들끓는 분노나 질투심이 커질수록 오히려 그는 더욱 냉정해져갔다. 그리고 한을 품었다.
남자가 한을 품는다면 어떻게 될까? 여자는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할 정도로 깊고 무섭다.
하지만 남자는? 남자의 한도 깊고 무섭지만 여자의 한보단 덜 한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간단하지. 여자가 한을 품게 하면 되니깐.’
안정수는 여자가 품는 한이 더 무섭다는 걸 알고 있기에 과거 김우영이 품었던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계획에 필요한 여인을 찾아냈다. 상냥함과 사랑을 갈구하는 불쌍한 여인을.
김우영과 안정수는 여자를 대하는 것도 다르지만 줄 수 있는 사랑의 형태도 완전히 달랐다. 김우영은 철저하게 벗어날 수 없는 육체적인 사랑을 준다면 안정수는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정신적인 사랑이 무기다.
김우영에 비해 보이지도 않고, 효과도 낮은 그의 무기가 과연 여자들에게 먹혀들까?
그의 무기도 김우영 못지않게 확실하게 여자를 사로잡는 다는 걸 알려주는 증거가 바로 자신의 아내 정나은이다.
‘아아, 정말 연애하기 힘들었지.’
안정수는 20대 그녀와 연애할 때를 떠올리곤 피식 웃는다. 20대 때 그의 성격은 젊음에서 오는 치기어린 도전정신이나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주위 사람이 부담스러울 정도의 상냥함이었다.
바보스러울 정도의 유한 성격. 주위에서 이용해 먹으려고 다가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소문난 집착이라고 할 정도로 이상한 성격이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는지는 몰라도 그의 주위에는 사람이 많았다.
도움을 받은 사람,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 진심으로 그의 곁에 붙어 그를 걱정해주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아내는 그 사람들 중 하나였다.
자존심은 강한 주제에 마음이 묘하게 여려 혼자 끙끙 앓는 걸 눈치 채고 그녀를 보듬어 줬다. 당연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매몰차게 밀어냈고, 거절했다.
‘하여간 지금 생각해도 귀엽다니깐…….’
안정수의 그 끝 모를 상냥함으로 거절당하고, 거절당해도 그녀의 곁에 머물렀다. 처음엔 그저 흥미였고, 호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흥미나 호의가 사랑으로 바뀌었고 그녀 역시 아무리 거절하고 밀어내도 다가오는 자신에게 서서히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지금처럼 철저한 자기 관리나 강한 자존심을 세워야 할 능력이 받쳐주지 못했기에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의 성격에 지쳐 떨어져 나가기 일쑤였기에 귀찮은 자신을 전부 받아주는 유일한 남자인 안정수에게 호의를 느꼈고, 결국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난공불락, 아니 어느 남자가 데려갈지 걱정할 정도로 뾰족한 가시덩굴에 감싸인 들꽃. 그런 그녀에게도 사랑을 얻어내는 상냥함. 돌이켜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서서히 파고드는 그의 사랑은 의외로 강력했다. 결혼한 이후에도 식지 않는 두 부부의 서로를 향한 이상할 정도로 강한 사랑은 이때 생겨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하고 나서 이놈의 성격 고친다고 얼마나 난리쳤는지.’
사회생활을 해나감에 따라 서툴렀던 20대의 모습을 벗어던진 아내는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기 시작했고, 강한 자존심을 뒷받침할 능력까지 손에 넣자 자신에게까지 손을 뻗쳐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녀가 손 댄 건 당연히 바보스러울 정도로 부드러운 상냥함이었다. 그녀의 고된 노력으로 안정수는 어른이 되었고, 모든 걸 포용하는 상냥함은 어느 정도 수그러들어 매사 덜렁거리고 좋은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로 바뀌었다.
‘……지금에 이르러선 다 소용없는 짓이 되어버렸지만.’
아내가 힘겹게 고쳐준 이 상냥함을 결국 다시 끄집어내 다른 여자를 함락시키는데 사용해 버렸다. 김우영에게 상처받고 버림받아 온기를 갈구하는, 사랑에 헐떡이는 여자에게 원하는 따스한 상냥함과 사랑을 주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이미 분노와 질투심, 소유욕으로 차갑게 식은 그는 필사적으로 20대의 끝 모를 상냥함을 끄집어내, 그녀에게 원하는 만큼 자신에게 벗어나지 못할 만큼 진하고 깊은 사랑을 주며 부드럽게 그녀를 잠식해갔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에 대한 사랑 없이 살수 없을 정도로 잠식한 순간 안정수는 매몰차게 그녀를 내버렸다. 20대의 상냥한 성격을 억지로 끄집어내고, 자기최면을 스스로에게 걸 정도로 필사적이었던 그는 다른 사람의 사정을 봐줄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았다. 김우영에게 상처받았던 그녀에게 똑같은 상처를 주는 것이 참을 수 없이 힘들었지만 안정수는 그녀가 한을 품도록 그녀에게 주었던 사랑을 빼앗아 버렸다.
“하아…….”
안정수는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아직도 그녀가 자신을 향해 퍼붓던 저주어린 독설과 상처받은 그녀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그런 상처받은 여인을 향해 자신은 냉정하게도 그녀가 품은 지독한 한을 살짝 비틀었다.
안정수는 그녀에게 그 분노를 한을 왜 자신에게 보내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네 자신을 망친 건 내가 아니라 김우영 그 남자 아니냐고 그녀의 등을 아주 살짝 밀었다.
잔인하게도 민 것이다.
우리는 서로 그에게서 받은 상처를 핥은 것뿐이라고…….
안정수는 타들어가는 갈증에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마신다. 향긋하고 뜨거운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어느 정도 진정되는 느낌이다.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내에게서 그를 결국 떼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정수는 곁에 앉아있는 아내의 부푼 배를 곁눈질로 바라본다. 산 너머 산이라고 했던가? 아내와 자신 사이에 큰 벽을 겨우 부쉈다고 생각했더니 또 다른 문제가 불쑥 튀어나왔다.
‘차라리 그의 아이라면 속 편할 텐데…….’
안정수는 떨리는 눈동자로 아내의 부푼 배를 바라보고 있다. 당연히 처음 아내의 임신 소식을 알았을 땐 머리가 하얗게 변했었다. 덜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 힘겹게 아내와 마주 앉았을 땐 더욱 충격적인 소릴 들었다.
‘하필이면 그 때 임신한 거라니…….’
아내도 생리가 오지 않는 다는 걸 알고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동안 멍하니 살았다고 한다. 자신도 그를 떼어낼 계획을 신경 쓰느라 그동안 아내를 외면하고 살았다.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아내의 임신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고, 그녀가 자신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사실을 말할 때까지 전혀 몰랐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사실. 그녀 역시 남편이 아닌 김우영의 아이일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힘겨웠던 한 달 간의 내기 때문에 컨디션이 무너져 생리가 안온 걸지도 모른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현실을 외면했다고 한다.
하지만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된 아내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임신테스트기도 정확하지만 2번 확인해볼 용기가 나지 않아 바로 병원으로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의사의 입에서 전해진 임신 사실.
아내는 의사의 축하어린 말도, 설명도 한귀로 흘려버리며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자신을 겨우겨우 추스르고 있을 때 의사의 말 중 하나가 그녀의 정신을 차리게 했다고 한다.
-임신 시기는 정확하진 않지만……이때군요.
의사가 알려준 임신 시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김우영과 내기를 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리고 잔뜩 취한 아내를 대리기사에게 희롱당하는 걸 보고 흥분한 자신이 집 주차장에서 아내와 격렬히 사랑을 나눴던 주. 그리고 같은 주 주말에 회사에서 간 부부동반 모임에서 돌아오며 수치스럽게 김우영의 배아래 깔려 그를 받아들인 일이 같은 주에 있었다고 털어놨다.
같은 주에 일주일이 안 되는 짧은 시간 사이에 그것도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두 사람의 씨앗을 받아들인 것이다. 아내는 그와 내기를 하면서 첫 번째 주에는 자신을 괴롭히는 데 열중했고, 반쯤 강제로 또 다른 처녀를 내줬기에 그의 씨앗이 자신의 몸에 흘러들어온 건 가임기간이 훨씬 지난 후라고 했다.
‘한마디로 50:50…….’
뱃속에 있는 아이가 누구의 아이일지 모르는 것이다. 장소도, 사랑을 나눈 횟수마저 똑같다. 다만 시기가 다를 뿐이다.
아내는 떨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모든 걸 털어놓으면서도 억눌렀던 심정을 고해성사하듯 토해냈다. 의사에게 임신시기를 들었을 땐 자기 스스로도 어이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기뻤다고 한다.
김우영의 품에 안겨 쾌락과 환희에 헐떡이는 자신을 받아들인 이후에는 자신을 향한 사랑에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 너무나도 미안하고, 동시에 미안할 자격도 없다고 여겨 자신을 차갑게 대했다고 한다. 자신을 내쳐주길 바라며…….
하지만 동시에 그래도 내 곁에 남아있고 싶은 마음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리고 끊어졌던 남편과의 사랑의 실이 힘겹게 이어진 것에 가슴이 미친 듯이 뛰며 기뻤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안정수의 아이일지도, 김우영의 아이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그 작은 희망이 너무나도 기뻐서 울음이 새어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고 한다.
모든 걸 토해낸 아내는 사라질 것 같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아내는 이렇게 자신만보면 위축된 모습으로 눈도 못 마주치고 묵묵히 배를 끌어안고 있다. 마치 마지막 구원의 동아줄을 품듯.
“……후우.”
안정수는 작은 한숨을 쉬며 그녀의 머리에 손을 턱하곤 올린다. 정나은은 그런 자신의 손길에 화들짝 놀랐지만 어떤 짓을 해도 받아들일 것처럼 몸을 위축할 뿐 그저 이어질 자신의 행동을 기다리고 있다.
슥, 슥…….
“……?”
안정수는 그저 아내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자 정나은은 아까보다 더욱 놀라곤 한 박자 늦게 고개를 살짝 든다.
‘정말이지. 20대 때 성격을 억지로 끌어냈더니 그런 건가.’
아내의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땐 솔직히 기쁘다는 마음보단 자신의 무능함에 치를 떨었고, 더욱 현실을 외면하듯 계획을 서둘렀다. 그리고 겨우 모든 걸 마무리 짓고 이제야 아내를 마주보자 가장 먼저 든 마음은 미안함이었다.
“다음부터는 혼자 끌어안지 마.”
안정수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정나은은 어깨를 크게 움찔거리곤 서서히 몸을 떨기 시작한다. 떨리기 시작하는 자신의 몸을 진정시키려는 듯 힘이 잔뜩 들어가는 아내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그녀의 물기어리고 푹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난……그의 품에 안겨 있을 때도 행복했고, 당신의 품에 안겨있을 때도, 지금 이 순간에도 행복을 느낀다면 어떻게 할 거야? 난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겠어.”
“…….”
모든 걸 쥐어짜는 애처로운 아내의 말에 안정수의 가슴이 크게 뛴다. 가슴속 깊이 자리 잡은 하나의 씨앗이 그녀의 말에 싹을 틔우려는 걸 깨닫곤 재빨리 짓눌러버린다. 하지만 한번 마주하고 고개를 든 질투심과 소유욕은 이때다 싶어 자신의 몸을 휘젓고 돌아다니려고 한다.
‘아무래도 망가진 건 아내만이 아닌가 보네.’
안정수는 텅 빈 눈동자로 아내를 내려다보며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와는 전혀 다른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 상냥한 말을 건넨다.
“……그래도 날 사랑하잖아?”
그리고 그런 아내를 사랑하는 자신. 자신의 말이 단단한 사슬처럼 그녀를 옭아매며 드리운다. 당장 눈앞에 드리워진 문제만 해도 산더미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잠시 외면하기로 했다.
부드럽게 아내를 위로한 자신의 손길을 거두곤 베란다 난감에 몸을 기댄다. 안정수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지친 몸을 잠시 쉬게 해주며 피식 헛웃음을 짓는다. 고개 숙인 정나은의 입가에는 옅디옅은 미소가 떠오를 것처럼 힘겹게 걸려있다.
‘아……길었어.’
안정수는 부드러운 햇살이 내려쬐는 이 공간을 조용히 느낀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날려버리듯 바람이 시원하게 둘 사이를 휘젓고 날아간다. 높디높은 청명한 하늘, 푸르른 하늘에 두둥실 흘러가는 작은 조각구름은 평화롭게 쉬엄쉬엄 하늘을 헤엄친다.
특별할 것 없는 오후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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