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4)

“……하읏!”

계속해서 이어질 것만 같았던 그 소리들은 정나은의 달콤하면서도 놀란 신음소리가 터져 나오며 정적을 깬다. 놀란 정나은이 크게 움직였는지 또 다시 보조등에 불이 들어왔고, 두 사람의 모습이 들어난다.

품이 넉넉하기에 아무리 끌어올려도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원피스는 어쩔 수 없지만 그녀의 무릎 쪽에는 흘러내린 하얀 팬티가 중간에 걸쳐져 있다. 그리고 그녀의 엉덩이 쪽에서 노닐던 김우영의 손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뜨거운 키스와 움찔움찔 떠는 그녀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휘감은 그의 팔은 그녀가 도망가는 걸 막고 있다.

곧이어 보조등에 불이 나가고 어둠에 휩싸인 현관문 쪽에선 질척거리는 물소리에 찌걱거리는 물소리가 더해진다. 상대적으로 높은 쪽에서 나는 질척거리고 빠는 소리와는 달리 무언가가 드나드는 것 같은 찌걱거림은 상대적으로 아래쪽에서 들려온다.

마루에서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따뜻한 빛은 어둠에 뒤덮인 현관에서 이뤄지는 뜨거운 행위를 곁눈질로 지켜보고 있다. 어둠속에 숨은 두 사람의 모습을 훔쳐보고 싶은 걸 알아채기라도 한 듯 보조등에 불빛이 들어오자 뜨거운 키스를 나누던 두 사람은 어느새 떨어져 있었다.

“하아, 하아…….”

연신 몰아쉬는 정나은의 뜨거운 숨소리가 들려오고, 그녀의 입을 막고 있던 김우영의 입은 서서히 내려와 그녀의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가슴에 가져다댄다. 그녀가 헐떡일 때마다 원피스 위로 보이는 탐스러운 능선이 부풀기를 반복한다. 그녀의 허리를 감쌌던 김우영의 팔이 등 뒤에서 원피스를 잡고 확 끌어내리자 김우영의 눈앞에 탐스런 젖가슴이 출렁이며 수줍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유리잔 깨지겠군.’

김우영은 유리잔을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줘서 쥐고 있는 정나은을 보며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에 남편이 깰까봐 두려운 것인지, 이 유리잔을 핑계로 자신을 밀치지 않는 것인지는 그녀만이 알 것이다.

‘아니면 그녀 스스로도 모르거나…….’

그녀가 혼란스러워 할지, 쾌락에 헐떡이는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을지 김우영은 눈동자만 위로 올려도 그녀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있지만 굳이 확인하지 않는다. 자존심 쎈 암고양이를 길들이는 건 이런 맛에 하는 거다. 그저 탐할 뿐이다.

“……햐으읏?!”

덥석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릴 정도로 김우영은 입을 쩍 벌려 눈앞에 흔들리고 있는 탐스런 하얀 과실을 게걸스럽게 베어 문다. 정나은은 김우영의 욕망이 절절이 묻어나는 게걸스러움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하, 하아악! 뭔가 다, 달라!’

정나은은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자 그녀의 긴 생머리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며 출렁인다. 이미 몇 번이나 빨려본 그녀지만 남편처럼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것도 아니고, 김우영의 배아래 깔려 쾌락에 절여져 정신이 없을 때 느낀 그 감각도 아니다. 하물며 아이가 없어 경험해보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부드러움조차 아닌 원초적인 욕망.

츄룹, 츄룹, 쩝쩝 마치 음식을 먹는 것 같은 게걸스러움이 느껴지는 소리가 자신의 가슴에서 울려 퍼지며 그녀의 아랫배를 더욱 달아오르게 한다. 환하게 불이 들어온 보조등을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밝은 불빛이 원망스럽다.

‘어, 어서 불이 꺼졌으면…….’

그녀의 소망을 이뤄주기라도 한 듯 곧이어 불이 나가며 시야에는 불빛 하나 안 보인다. 안 그래도 사람의 눈이란 건 어둠에 적응되기까지 좀 시간이 걸리는데,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보조등 때문에 두 사람의 눈은 어둠에 전혀 익숙해지질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촉감에 예민해지는 걸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흐읏.”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의 탐욕스러움과 껄끄러운 혓바닥이 자신의 젖가슴 위를 달리는 걸 정나은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새어나오려는 신음소리를 참아낸다.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서 터져 나온 애액은 허벅지를 타고 서서히 흘러내리는 걸 느꼈지만 그녀는 못 박힌 듯 애처롭게 떨 뿐이다.

김우영은 그녀의 젖가슴을 양껏 탐하다가 입을 떼자 그녀의 입에선 편안한 탄식이 터져 나오는 걸 들었다. 그 탄식에 김우영의 질척질척한 입은 호를 그리더니 혀를 길게 내빼 그녀의 부풀어 오른 능선을 맛보며 서서히 가슴골로 얼굴을 파묻어간다.

“……흐응.”

미약한 비음과 파르르 떨리는 정나은의 젖가슴을 느끼며 김우영은 그녀의 가슴골 사이에 혓바닥을 가져다 댄 뒤 모든 움직임을 멈춘다. 부드러운 가슴골 사이에서 혓바닥을 뗀 뒤 그녀의 체취를 양껏 들이마신다.

“…….”

정나은은 자신의 가슴골에서 느껴지는 김우영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며 파르르 떨고 있다. 어느새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괴롭히던 그의 손가락도 움직임을 멈춘 채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 고요함이 두 사람을 지배하고 파르르 떨렸던 자신의 몸이 서서히 진정을 찾아가는 걸 느낀 정나은은 의아함이라는 감정이 자신의 머리에 떠오르기 직전 자신의 가슴골에서 느껴진 감각에 허리가 풀려버린다.

핥짝!

“!!!”

어둠 속 폭풍같이 달아오르던 자신의 몸에 모든 감각이 끊기고, 서서히 진정을 찾아갈 무렵 찾아온 거칠기 그지없는 표면과 질척거리는 그의 혓바닥이 자신의 가슴골 사이를 길게 핥고 지나간다. 갑작스런 그 감각에 정나은은 소리도 못 지르고 허리가 풀려 주저앉으려는 순간 김우영은 알고 있었다는 듯 가랑이 사이에 그의 손가락은 가장 깊숙하고 예민한 곳을 자극하며 강제로 허리에 힘이 들어가게 한다.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원피스 속에 들어간 김우영의 손은 현란하게 움직이며,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한순간에 가슴에서 가랑이 사이로 모든 신경이 옮겨간 그녀는 어둠속에서도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걸 느끼며 후들거리는 허벅지에 남은 힘을 모조리 쏟아 붓는다.

‘가, 가! 간……!’

정나은은 하얗게 변해가는 의식 속 모든 신경이 가랑이 사이에 몰려 아랫배에서 터져 나오는 쾌락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 자신의 젖가슴에서 새로운 감각이 절정의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김우영은 그녀가 가려는 그 순간을 캐치하고 눈앞에 파르르 떨리는 탐스러운 과실의 꼭지를 살짝 깨문 것이다.

“꺄흐으읏!!!”

정나은이 냈다고 그녀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귀여운 목소리가 어둠속에서 터져 나온다. 두 사람의 부끄러운 모습을 어둠속에 숨겨주던 보조등도 털썩하는 무언가가 주저앉는 소리와 함께 불이 환하게 들어온다.

불이 들어온 현관 앞에는 정나은이 쓰러진 채 파들파들 경련하고 있다. 뒤로 젖혀진 고개며,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 어느새 떨어진 건지 정나은의 안경은 바닥을 구르고 있었고, 그녀의 연분홍빛 입술을 살짝 벌어져 터져 나오려는 신음소리를 무의식적으로 억누르고 있다. 반 이상 흘러내린 파스텔 톤의 원피스는 이미 옷으로서 기능을 못하고 탐스런 젖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고, 육덕진 허벅지 바로 위까지 말려 올라간 품이 넉넉한 원피스 아래에선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야릇한 향기가 솔솔 피어난다.

절정에 오른 유부녀의 여체는 힘이 풀려있고, 그녀의 손에 쥐어져있던 유리컵은 그녀의 손을 벗어나 데구르르 소리를 내며 마루로 굴러간다. 김우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허리 아래로 손을 내리자 철컥, 철컥하는 금속음이 난다. 현관문에 들여놓은 사람 허리높이까지 오는 신발장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벨트 푸는 소리임에 틀림없다. 

곧이어 사륵하는 옷이 벗겨지는 소리가 나더니 김우영이 허리높이까지 오는 신발장 아래로 모습을 감춰버린다. 절정의 여운에 빠져 있는 정나은의 허리를 김우영의 것으로 보이는 손이 붙잡더니 신발장 쪽으로 당긴다. 신발장 때문에 그녀의 하반신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자세를 잡는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던 그녀의 몸은 곧이어 움직임을 멈춘다. 몽롱하게 풀려있던 그녀의 눈에는 갑작스레 빛이 돌아오며 찢어질 듯 커진다.

그녀의 허리는 살짝 들리며 힘이 들어가고, 고개는 더욱 뒤로 젖혀져 마루 쪽을 향한다. 젖혀진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의 몸을 무언가를 꿰뚫고 들어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주며, 자신의 입이 점점 큼지막하게 벌어져 터져 나오려는 신음소리를 깨닫자, 그녀는 황급히 자신의 양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다.

“……크웁!”

그녀가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자마자 터져 나온 억눌린 신음소리가 그녀의 손안을 맴돌고, 신발장 너머로 들려온 자그마한 둔탁한 소리가 집안에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곧이어 신발장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그녀의 하반신에선 연신 둔탁하면서도 끈적한 물소리가 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집안을 휘젓고 다닌다. 은은한 보조등이 들어와 있는 마루에도, 굳게 닫힌 작은 방에도, 살짝 열린 안방과 화장실에도, 다행히 두꺼운 커튼이 쳐져있는 베란다까진 새어나가지 않았다.

“후우! 후우!”

신발장 너머로 김우영의 거칠고도 깊은 숨소리가 살과 살이 자아내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모니를 이룬다. 정나은은 그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려는 자신의 신음소리를 틀어막느라 필사적이다.

환하게 들어와 있는 현관문의 보조등은 움직임을 계속해서 감지하고 있지만, 에너지 절약이라는 고마운 기능이 달려 있어 곧이어 불이 훅하고 나가버린다. 불이 훅하고 나갔음에도 현관문 바닥에는 역동적으로 출렁이는 탐스런 과실의 윤곽과 온 집안을 은은하게 울리는 살과 살의 향연은 멈추지 않는다.

서서히 피어오르는 뜨거운 공기가 현관문에서 피어날 무렵 에너지 절약으로 잠시 나갔던 보조등에 불빛이 들어오며 정나은의 치태를 고스란히 비춘다. 환한 불빛 아래 출렁이는 젖가슴과 뒤로 젖혀져 보이지 않는 그녀의 얼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김우영은 야릇하게 피어나기 시작하는 그녀의 체취를 느끼며 보조등 아래 드러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은은하게 마루에서 새어나오는 보조등 불빛은 여기까지 닿지 않기에…….

김우영은 상체를 내려 그녀를 짓누르며 허리를 계속해서 놀린다. 살짝 들렸던 그녀의 허리는 김우영의 무게 때문에 내려가고 동시에 찾아온 중압감을 느낀다. 동시에 김우영의 팔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젖혀진 그녀의 고개를 되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 살짝 달아오른 양 뺨, 현관문 바닥에 흐트러진 긴 흑단 같은 머리카락, 틀어 막혀 묘하게 새어나오는 그녀의 신음소리가 김우영의 가슴을 방망이질 하게 한다. 오늘따라 묘하게 반항적이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김우영은 가학적인 마음이 떠오른다.

‘이대로 손을 치우게 한다면…….’

잠들어있는 그녀의 남편에게 들릴지도 모른다. 김우영은 가학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팔목을 잡아 틀어막은 입에서 떼어놓는다. 그러자 그녀의 눈이 점점 커지며 떨어지려는 자신의 손에 힘을 줘보지만 이미 깔아뭉개진 힘이 잔뜩 빠진 그녀로써는 저항 할 도리가 없다.

“크, 흐으……으읏.”

그녀의 머리위로 손을 올려 자신의 힘으로 짓누르자 정나은은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새어나오려는 신음을 필사적으로 참아낸다. 때마침 보조등의 절약기능 덕에 어둠이 순식간에 들이닥친다. 현관문 앞에는 아까보다 덜 역동적인 모습이 어둠속에서 보이고 있지만, 점점 강해지는 둔탁한 소음과 질척거리는 소리는 분명 현관문 밖으로도 들리고 있을 것이다.

“후욱! 후욱!”

“하, 하으윽! 햐응!”

한층 뜨거워진 두 사람의 숨결은 서로의 눈앞에서 섞이는 걸 어둠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정나은은 자신의 하반신에서 그가 허리를 내려찍을 때마다 그 충격으로 찌릿, 찌릿한 자신의 아랫배의 감각과 그 쾌락이 자신의 온 몸을 휘젓고 다니고 있는 걸 느끼면서도 필사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아, 안 돼! 이대로라면 드, 들켜! 절대로 들켜!’

두 사람의 하반신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와 자신의 달콤함이 묻어나는 신음소리가 분명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잠든 남편에게 들릴 것이고, 잘못한다면…….

그 순간 확하고 불이 들어오는 현관문 보조등과 자신의 위에 올라타 가학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김우영의 얼굴이 보였다. 어깨를 단단히 감싸고 있어 벗어날 수도, 자신의 손은 머리 위로 올려져 짓눌려져 발버둥 칠 수도 없다. 유일하게 흔들리고 있는 자신의 다리는 점점 그 쾌락에 어쩔 줄 모르며 부들부들 떨면서 점점 하늘 높이 쳐들리고 있을 뿐이다.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한 정나은의 얼굴에선 순간 무언가가 떠오른 듯이 몽롱하게 풀려있던 그녀의 눈동자에 빛이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그 한순간의 해결법은 더욱 많은 고민을 그녀에게 안겨줬는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대신 그녀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자 어쩔 거야? 이대로라면 들려버린다고?’

점점 커지는 두 사람이 내는 소음을 그녀는 어떻게 줄일지 김우영은 묵묵히 허리를 놀리며 지켜보고 있다. 훅하고 보조등의 불빛이 꺼지자 김우영의 시야에도 고민하는 정나은의 얼굴이 보이질 않는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짜릿한 쾌락을 탐하고 있던 그는 갑작스레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적인 무언가에 화들짝 놀랐다.

곧이어 들어온 보조등의 불빛에 그 물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바로 정나은 그녀의 얼굴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바로 그녀의 입술이었다.

‘……오, 오호~?’

터져 나오는 자신의 신음소리를 줄이기 위해서 자신의 입을 스스로 틀어막은 것이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입술일지라도…….

살짝 풀린 그녀의 눈동자와 더욱 달아오른 양 뺨, 입을 통해 전해지는 달콤하면서도 뜨거운 그녀의 숨결에 김우영은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그렇다. 그녀 스스로 자신에게 다가온 것.

‘그렇단 말이지?’

게다가 치욕적이고, 굴욕적으로 어쩔 수 없이 행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속눈썹이 그녀의 많은 속마음을 대변해준다. 김우영은 짓눌렀던 그녀의 팔을 풀어주곤 그녀의 뒷머리를 붙잡아 자신에게 더욱 밀어붙인다.

그리곤 더욱 강하게, 격렬하게 허리를 놀리며 그녀의 입안을 미친 듯이 유린한다. 서로의 입으로 입을 틀어막았음에도 새어나오는 그녀의 환희어린 신음소리는 두 사람의 입 안에서 맴돌며 조금씩 새어나간다.

현관문의 보조등이 꺼졌다, 켜지길 계속해서 반복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드문드문 비춰주며, 두 사람을 휘감은 뜨거운 공기는 훅훅 집안에 퍼져나간다. 비록 신발장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두 사람의 하반신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끈적함이 묻어나고 신발장 위로 살짝 튀어나온 정나은의 다리는 뻣뻣하게 굳어 파르르 떨고 있는 모습이 그녀가 느끼고 있는 쾌락을 짐작케 해준다.

두 사람의 관계가 절정을 향해 치달아 가고, 키스를 나누고 있는 두 남녀의 입에선 서로를 서로의 입으로 틀어막았어도 새어나오기 시작하는 신음소리는 두 사람의 입 안에서 맴도는 환희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케 해준다. 두 사람의 격렬한 사랑은 절정에 오르기 직전 김우영이 문득 정나은의 입에서 자신의 입을 뗀다.

“하아악! 하윽! 아으응!”

그러자 터져 나온 정나은의 달콤한 신음소리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입에서 울려 퍼진다. 자신이 내지른 신음소리에 정나은은 필사적으로 쾌락 속에 허우적거리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을 걸 찾는다. 평소의 그녀라면 이미 자유로워진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겠지만 절정에 오르기 직전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그녀는 그저 눈앞에,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김우영의 입술로 자신의 입술을 틀어막는다.

그럼에도 김우영은 짓궂게도 입술을 떼려하자 정나은은 도망가려는 그를 어떻게 붙잡아야 할지 모르고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양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

그 순간 두 사람의 격렬했던 사랑이 절정을 맞이했는지, 모든 움직임이 멈추고, 서로를 껴안은 채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김우영 아래 짓눌려 있는 그녀는 미동도 못한 채 그저 몸 안을 휘젓고 다니는 쾌락을 자신의 입을 통해 터트리고 있었고,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른 자신의 양 다리는 경련하며 신발장 위로 단편적으로 보여 지고 있다.

평소라면 하반신만 이어져 있어야 할 두 사람의 관계는 입술을 통해서도 이어져 서로가 느끼고 있는 쾌락을 상대방에게 쏟아 붓고 있다.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굳은 정나은은 자신이 팔로 김우영을 감싸 안고 그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찌릿, 찌릿한 아랫배의 감각을 감싸주듯 밀려들어오는 뜨거운 욕망과 입안을 유린하고 있는 그의 혓바닥을 느끼며 그의 얼굴 사이로 스며드는 강렬한 보조등 불빛을 올려다보고 있다. 영원히 하늘 높이 쳐들려 있을 줄 알았던 그녀의 다리는 신발장 아래로 모습을 감추며 털썩하는 소리를 자아냄과 동시에 현관문 보조등은 훅하고 나가버린다.

새벽 공기는 차다. 철로 이루어진 현관문은 당연히 그 차가운 공기에 온기를 뺏겨 차가워야 하는 게 당연한데도 어쩐지 은은한 온기를 품고 있는 현관문이 있다. 고요한 새벽 다들 잠자리에 들어있을 야심한 시각 그 은은한 온기를 품은 현관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열린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우영이다.

“후우~이거 부인 잘 먹었습니다.”

어쩐지 땀에 푹 젖은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김우영은 시원한 새벽공기를 느끼며, 잘 아는 동료의 집에서 저녁 한 끼 대접받고 나오는 그런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현관문을 연 채 뒤를 돌아본다.

살짝 벌어진 현관문틈 사이로 순식간에 차가운 새벽공기가 들이닥치며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야릇하고 퇴폐적인 공기를 밖으로 끄집어낸다.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기에 더욱 잘 느껴지는 정나은의 야릇한 살내음을 느끼며 김우영은 현관문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차가운 현관문 타일에는 연신 왈칵, 왈칵 토해져 나오는 비릿한 밤꽃 향기가 가득 피어나는 액체가 번지고 있었고, 칠칠맞게 벌어져 그 액체를 토해내고 있는 유부녀의 하반신이 현관문 틈 사이로 엿보인다. 이미 옷으로써의 기능을 못하고 있는 파스텔 톤 원피스는 그녀의 허리에 걸쳐져 있고, 탐스럽게 오르내리는 그녀의 젖가슴엔 뜨거운 땀방울이 시원한 새벽공기를 느끼며 또르르 흘러내린다.

“…….”

굳게 다물어진 두툼한 입술과 붉게 달아오른 양 뺨은 서서히 식어가고 있고, 얼굴을 보이기 싫은지 팔로 그녀의 눈가를 가리고 있어 표정을 알기 어렵지만 김우영은 아무래도 좋다.

‘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몸은 슬슬…….’

최음 효과가 들어간 젤을 사용해 쾌락에 절여져 실신한 것도 아니고, 치욕적으로 범해져 그 수치심에 물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부드러운 분위기에 휩싸여 기분 좋게 퍼진 유부녀의 몸은 만족해버렸다는 걸 온 몸으로써 표현하고 있다.

김우영은 그런 정나은의 몸을 내려다보며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몸만은 만족해버렸다는 걸. 그걸 알고 있기에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만족해버려 여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기에…….

김우영은 조용히 현관문을 닫고 차가운 새벽공기에 달아오른 몸을 달래며 집을 향해 돌아갔다.

“…….”

철컥하는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끝으로 집안은 소름끼치는 적막함이 흐른다. 마루에 켜져 있던 은은한 보조등 마저 없었으면 이 차가움이 감도는 집안을 어떻게 했을까?

잠시 열렸던 현관문을 타고 들어온 차갑고, 깨끗한 새벽공기가 자신의 몸에서 피어나는 야릇한 체취와 섞이며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마루며, 굳게 닫힌 작은 방과 안방, 화장실을 거쳐 베란다 커튼에 부딪힌다.

새로이 들어온 새벽공기가 온 집안을 휘젓고 현관문에 다시금 돌아와 그 아래 핀 야릇한 꽃향기와 완전히 똑같아질 때까지 현관문에 핀 그 꽃은 찌릿하는 그 아랫배의 감각과 기분 좋게 남은 그 쾌락을 외면하듯 눈을 꼭 감을 뿐이었다.

적막하고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안방에는 깊고, 일정한 숨소리뿐만이 들려오고 있다. 이따금 부스럭거리는 이불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누군가가 잠꼬대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으, 으흠.”

목이 타는 듯 괴로움이 섞인 목소리가 안방을 울린다. 이에 호응하듯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사람이 깨어나는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점점 잦아진다. 곧이어 짙은 어둠이 깔린 안방에는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부스럭거리며 침대 위에 사람의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앉는다.

“……물.”

갈라진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안방 침대의 주인 중 하나인 안정수다. 과음 때문일까? 아니면 격렬했던 불장난 때문일까?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갈증에 자의반 타의반 잠에서 깨어났다. 깨질 것 같은 두통 때문에 한동안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하던 안정수는 그제야 이곳이 자신의 집이란 걸 깨달았다.

‘몇 시지?’

어둠이 짙게 깔린 걸로 봐선 아직 한밤중이란 걸 알 수 있게 해주지만, 안정수는 곧이어 한 가지 사실에 지금 시간에 대한 확실을 잃어버렸다.

‘이 시간에 아내는?’

술에 취한 자신을 데려다 준 건 김우영 부장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이 침대까지 옮긴 건 필시 아내가 틀림없을 텐데 보이질 않는다.

‘……자정은 훨씬 넘은 시간이 확실한데?’

정확한 시간은 몰라도 날짜가 바뀌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렇게 시간에 대한 의문이 계속될 줄 알았던 그의 사고는 안방 문 밖에서 들려오는 털썩하는 무언가가 넘어지는 소리에 상념이 멈췄다.

‘무슨 소리지?’

어차피 물을 마시려면 마루로 나가야 하기에 안정수는 두통이 밀려오는 머리를 붙잡고, 힘겹게 안방 문고리에 손을 올린다. 누구나 의식하지 않고도 문을 열 때는 자신이 넘나들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열어 재끼지만 과음과 격렬한 불장난으로 몸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깨질 것 같은 두통에 안정수는 안방 문을 열다말고 문고리를 잡은 채 밀려오는 두통에 잠시 괴로워 하는 사이 퍽 하는 둔탁하고 찰진 소리가 살짝 벌어진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

잘못들은 건가 싶었지만 곧이어 그 둔탁한 타격음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자신의 귓가에 울린다. 안정수는 의아함을 느끼며 그 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문을 더욱 열려는 순간 그 소리가 묘하게 낯이 익다고 생각하고 벌어진 문틈 사이로 집안을 살펴본다. 마루에는 형광등 대신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보조등이 들어와 있고, 소리의 진원지는 마루보다 더욱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걸 확인하고 시선을 던진 순간 안정수는 얼어붙었다.

‘나, 나은이?’

현관문에 쓰러져있는 아내는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고 있고, 자신의 입을 필사적으로 틀어막아 새어나오려는 소리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순간 현관문에 달린 보조등이 훅 나가며 정적에 휩싸이자, 어둠 속에서 깊으면서도 쾌락이 절절이 묻어나는 남성의 거친 숨소리와 둔탁한 타격음이 안정수의 귀를 파고들고, 어둠에 적응되지 않는 안정수의 눈은 아내의 것으로 보이는 그림자가 출렁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도, 도둑?!’

지금은 어둠에 휩싸였지만 잠시 보였던 현관문의 모습을 되새겨 본다. 묘하게 신발장에 가려 보이지 않던 아내의 하반신과 이 거친 숨결의 주인공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 안정수가 패닉에 빠지려는 그 찰나 보조등의 불빛이 확 들어오며, 아내의 모습을 다시금 비춘다.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젖가슴은 아내의 하반신에서 전해지는 강한 힘에 아름답게 출렁이고 있었으며, 때때로 반짝이는 물방울이 젖가슴에서 튀어 오르는 것이 보조등 불빛 아래에서 빛난다. 미묘하게 새어나오는 달콤한 아내의 신음소리와 몽롱하게 풀린 아내의 눈빛. 점점 집안을 채우기 시작한 야릇하고 뜨거운 공기를 느끼며 안정수는 당황한다.

‘……어?’

지금 아내의 하반신에서 연신 강한 힘으로 허리를 놀리고 있을 상대가 흉기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기가 쎈 아내가 소리 한 번 못 지를 정도로? 게다가 묘하게 달아오른 아내의 표정을 본 안정수는 결국 패닉에 빠졌다. 안정수가 패닉에 빠지건 말건 현관문에서 연신 거친 숨결을 토해내던 남성이 신발장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아내를 짓누른다.

“헉?!”

안정수는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지만 두 사람에겐 들리지 않았나보다. 안정수는 아내 위에 올라타 짓누르며 연신 허리를 내려찍으며 그 둔탁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남자를 알고 있다. 바로 자신의 상사 김우영 부장이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김우영 부장이 여성편력이 심한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부하직원의 아내를 강제로 범할 줄은 몰랐다. 문을 확 열고 나가려는 안정수의 눈에는 김우영 부장이 아내가 스스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그녀의 팔을 억지로 떼어내는 모습을 보곤 멈칫했다.

‘스, 스스로?’

안정수는 자유로워진 아내의 입에서 앙칼진 비명이 터져 나올 줄 알았는데, 미묘하게 새어나오는 건 쾌락을 품은 억눌린 신음소리였다. 곧이어 불이 나가며 어둠에 휩싸인 현관문은 김우영 부장의 거친 숨소리와 자유로워진 아내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억눌린 달콤한 신음소리가 하모니를 이루기 시작했다.

‘대, 대체 언제? 아니 왜……?’

안정수는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움직임과 너무나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달콤한 신음을 들으며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설마 하던 의혹이 눈앞에 현실로 드러나자 안정수는 벌어진 문틈 사이로 굳은 채 전신의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곧이어 불이 들어오자 한층 쾌락에 달아오른 아내의 얼굴에는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고민어린 그녀의 표정에 안정수는 살짝 기대감을 품어본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을 산산이 부셔버리는 것이 안정수의 눈에 들어왔다.

김우영 부장이 아내를 짓누르기 위해 상체를 내리며 서로의 하체가 더욱 밀착했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신발장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아내의 다리가 뻣뻣하게 하늘로 쳐올려져 쾌락에 경련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절대로 억지로 범해지는 게 아니란 걸 깨닫게 해준다.

안정수를 놀리듯 또다시 어둠속에 숨은 두 사람의 모습. 미약하게나마 계속해서 터져 나오던 두 사람의 신음소리가 돌연 안 들린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둔탁한 소음만이 계속해서 어둠속에서 울려 퍼지자 초조해진 안정수였지만 그런 안정수에게 보조등은 현실을 들이민다.

‘……?!’

밝아진 현관문에는 입을 맞추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얼핏 봐도 놀란 김우영 부장의 표정과 고개를 내민 아내의 모습에서 추측하건데 아내가 스스로 키스를 한 것이다. 그러자 김우영 부장은 눈웃음치며 아내를 짓눌러버릴 듯 껴안더니 한층 강해진 허리 놀림으로 아내를 더욱 강하게 찍어 내리기 시작한다.

현관문에서 관계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격렬한 소음과 환희어린 억눌린 신음소리, 훅훅 뿜어져 나오는 뜨겁고 야릇한 공기는 이젠 안방 안까지 새어 들어오며 안정수를 휘감는다. 켜졌다, 꺼지길 반복하는 보조등 아래에서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니 안정수는 머리가 하얗게 변하며 한 가지 의문만을 계속해서 떠올린다.

‘왜?’

자신이 아내에게 준 사랑이 부족했을까? 왜 상대가 김우영 부장일까?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왜 자신에겐 그렇게 사랑스럽게 안 안길까? 같은 모든 의문이 드문드문 머릿속을 휘저으며 지나간다. 현관문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타격음에 맞춰 자신의 가슴도 격렬하게 뛰며 피를 돌게 한다. 불이 켜질 때마다 그 자존심 강하고 자기관리 철저해 남은커녕 남편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여인이 쾌락에 미쳐가며, 더럽혀져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잔뜩 술에 취한 아내를 골탕 먹이기 위해 대리기사에게 장난치게 한 그 때를…….

“응……?”

안정수는 빠르고, 뜨겁게 달아오른 자신의 몸을 느낀다. 더욱이 하반신 쪽으로 몰리는 피에 안정수는 의아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자, 부푼 자신의 팬티 앞섬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왜지?’

쿵쿵 뛰는 가슴과 미칠 듯이 자신의 몸을 휘젓고 다니는 뜨거운 기운은 정체가 무엇일까? 

분노일까? 아내에 대한 분노? 자신의 대한 분노? 김우영 부장에 대한 분노?

배덕감일까? 아내가 다른 이에게 더럽혀진다는 배덕감? 그것도 자신의 상사에게 짓눌려져 있는 저 모습에 대한?

점점 절정을 향해 치달아가는 두 사람의 관계를 계속해서 바라보던 안정수는 곧이어 이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질투다.

자신의 품에서 아끼고, 사랑하던 소중한 보물이 외간 놈에게 채여가 그 더러운 손아귀에서 이리저리 굴리면서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사소하지만 더 할 나위 없이 분한 감각.

안정수가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감각을 자각한 순간 두 사람은 절정에 오르며 상념에 빠진 안정수를 단번에 현실로 되돌릴 만큼 커다랗고 둔탁한 찰진 소리와 환희의 비명을 지르는 아내가 그런 쾌락을 준 상대의 머리를 껴안고 격렬하게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안정수의 눈에 새겨진다.

하늘높이 쳐들린 아내의 다리가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신발장 밑으로 숨는 걸 끝으로 보조등의 불빛이 나간다.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뜨거움이 절절이 전해지는 두 사람의 숨소리와 들려올 리 없는 제 3자인 안정수의 질투어린 숨소리가 하모니를 이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둠에 휩싸여있던 현관문에서 움직임이 포착되자 보조등의 불빛이 환하게 들어오며 또다시 두 사람을 비춘다. 아내의 몸에서 떨어진 김우영 부장은 만족스럽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불빛 아래 드러난 아내의 몸을 찬찬히 뜯어본다. 질척한 욕망이 뚝뚝 떨어지는 그의 시선은 아내의 몸을 끈적하게 탐닉한다. 곧이어 바지를 주섬주섬 입는 소리가 신발장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들려온다.

아내는 그런 시선과 보조등의 강렬한 불빛이 부끄럽기라도 한 것일까? 

얼굴을 팔로 가린 채 달아오르고 만족한 유부녀의 여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불빛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아내의 아름다운 몸은 김우영 부장이 흘린 땀과 그녀가 흘린 땀으로 번들거리며 타액으로 더럽혀진 모습이 안정수의 가슴을 옥죄면서도 크게 뛰게 한다. 아내가 이따금 경련하듯 크게 허리를 움찔거릴 때마다 김우영 부장의 시선은 신발장 때문에 보이지 않는 아내의 하체를 능글맞은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다.

‘…….’

안정수는 단번에 깨달았다. 지금 아내는 김우영 부장의 질척하고 끈적한 그 욕망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낸 게 틀림없다고. 그리고 지금 그 흘러넘친 욕망을 이따금 토해내는 그 치욕과 쾌락에 버무려진 아내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자신은 이상한 걸까?

곧이어 김우영 부장이 스마트폰을 꺼내 그런 아내의 모습을 이리저리 찍곤 현관문을 열곤 나가버린다. 환한 보조등 아래 얼굴을 가린 채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있는 그녀는 그저 묵묵히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다. 아내의 잔뜩 흐트러진 모습을 안정수도 아무런 질투의 불꽃이 일고 있는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다.

잠시 후 보조등의 불빛이 나가고, 소름끼치는 정적과 고요함이 집안에 들이닥치자 안정수는 조용히 안방 문을 닫으며 부푼 자신의 앞섬을 내버려둔 채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타들어가는 갈증과 미칠 듯이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한 가지 감정에 몸을 불태웠다.

‘그녀는 내꺼야!’

어둠속에서도 빛나는 안정수의 질투어린 안광은 그 기세가 남달랐다.

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온 몸을 두들겨 맞기라도 한 것처럼 엄청난 피로감을 느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안정수는 막 씻고 나온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화창한 아침햇살 속 자신과 눈이 맞은 아내는 사랑스런 미소를 보내온다.

“어제 왜 그렇게 과음했어. 몸은 괜찮아?”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닦으며, 목욕 수건으로 꽁꽁 감싼 아내의 몸에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어젯밤의 일은 자신의 꿈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수많은 감정과 하룻밤의 불장난의 감각이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게 느껴진다.

‘김우영 부장 설마 이것 때문에?’

묘하게 자신의 주위를 맴돌던 김우영 부장이었다. 물론 그의 꾐에 넘어가 불장난을 한 건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다. 그렇기에 자신을 보고 짐짓 아무 일 없었다는 아내의 태도에 안정수는 일단 미소를 지어보였다.

‘일단은 정보야.’

안정수는 속옷이 가득한 서랍을 열며 입을 속옷을 고민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질투심에 불타오르는 가슴을 짓누르고 자초지종부터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자신과 같이 하룻밤의 불장난이라고 하기엔 아내의 환희어린 모습이 너무나도 강렬했다.

‘만약……만약 아내가 원해서 그런 거라면…….’

안정수는 가슴 한 편이 서늘해지려는 걸 참고 아내의 매끄러운 등을 바라보고 있다. 서랍 가득히 들어찬 아내의 속옷.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정장만을 고집하는 그녀로써는 아무래도 순백의 속옷이나 색이 강렬하지 않은 속옷을 선호한다. 그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아내도 여자라고 주장하듯 같은 색깔의 속옷이라 하더라도 귀여운 프릴 달린 속옷이나 고급스런 자수가 들어간 속옷, 하얗지만 망사로 되어있어 묘하게 섹시한 속옷 등 굉장히 많은 속옷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렇기에 안정수는 아내가 손에 집어든 속옷에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어?”

하얗고, 색이 강하지 않은 속옷들로 가득하기에 더욱 눈에 띄는 속옷들이 있다. 자신과 연예하며 입었던 강렬하고 섹시한 계열의 검정이나 붉은색 계열의 속옷. 사회생활하며 입긴 힘들어도 귀엽다며 사 모은 그런 속옷들 중 하나가 아내의 손에 들려있었다.

오늘도 출근해야 할 아내가 절대 입을 리 없는 그런 속옷. 

팬티는 전체적으로 검은색 바탕의 망사로 되어있어 속살이 들여다보이며, 앞부분은 아내의 취향에 맞게 귀엽지만 강렬한 붉은 색 프릴이 달려있어 묘하게 앞부분을 가려 그 속을 궁금케 하고, 앞과는 전혀 반대로 엉덩이 부분은 완전히 망사로 되어 있어 그 탐스런 엉덩이와 그 골마저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디자인이다. 팬티와 세트라고 주장하는 브래지어는 가슴부분이 완전히 망사로 되어있고, 팬티와 같은 디자인의 붉은 프릴이 묘하게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탐스런 과실의 꼭지부분을 가려 이마저도 그 속을 궁금케 하는 디자인이다.

“…….”

손에 쥔 강렬하고 섹시한 속옷을 내려다보는 아내의 얼굴은 어쩐지 살짝 멍한 모습이다. 곧이어 무언가 화들짝 놀라며 그 속옷을 다시 서랍 안에 쑤셔 넣곤 평소와 같이 순백의 속옷을 입곤 아침을 차린다.

안정수는 평소 신경 쓰지도 않던 아내의 그런 작은 변화를 놓칠세라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리고 있다.

어영부영 화해한 것처럼 된 부부의 아침식사 시간은 어색하면서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평소라면 아내의 그런 어색해하면서도 노력하는 모습에 미소 지을 그였지만 어쩐지 아내가 애처로워 보이는 건 자신이 이상한 걸까?

‘바람피우는 게 미안한 걸까?’

김우영 부장의 품에 안겨 결국 절정에 달하면서도 여자로써 만족해버린 아내의 모습과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모습이 상반되자 안정수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이미 출근을 끝마친 안정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도는 아내에 대한 생각에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게다가 이 고민의 다른 주인공은 이미 도망갔고 말이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외근 나간다는 말을 끝으로 회사에서 모습을 감춰버린 김우영 부장. 당최 얼굴보기가 힘드니 그를 살펴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나도 바람을 피웠으니 할 말은 없군.’

하룻밤의 실수. 아내에 대한 소심한 복수로 시작된 불장난이 주는 죄책감에 안정수는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가슴에 품고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다른 부서와는 달리 부장이라는 작자가 매일같이 자리를 비우다보니 퇴근에 대한 눈치를 볼 리 없는 직원들은 퇴근시간이 1시간이나 남았음에도 벌써 퇴근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안정수는 심란한 마음이 몸에도 영향을 줬는지, 일처리 속도가 늦어 오늘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이 일을 끝내려면 조금 더 회사에 남아있어야 할 것 같다.

‘안 그래도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참 여러 가지로 도와주지 않는 세상살이다. 안정수는 초조함이 몸을 휘감는 걸 느끼며, 한숨을 푹 쉬곤 일에 전념하려는데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퇴근 준비하나보지?”

외근 나갔던 김우영 부장이 퇴근 하려는 직원들에게 끌끌 웃음을 날리며 회사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도 상사라고 퇴근 준비하던 직원들은 김우영 부장이 돌아오자 눈에 띄게 실망하는 분위기다. 그런 직원들을 둘러보던 김우영 부장은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손을 휙휙 젓는다.

“신경 쓰지 말고 퇴근들 해. 언제는 내 눈치보고 했나? 일만 잘하면 되지.”

그런 김우영 부장의 행동에 직원들은 하나, 둘 눈치 보며 퇴근시간이 되자 슬금슬금 퇴근을 시작한다. 김우영 부장은 퇴근하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신의 자리에 앉아 계속 일을 하는 것이 아무래도 더 회사에 남아있을 모양이다.

‘오늘은 아내를 안 만나나? 아니면 정말 그냥 하룻밤의 불장난?’

그 콧대 높은 아내는 의외로 몸이 민감하다. 잠자리에서 한 번 불붙으면 서로 격렬한 사랑을 나누지만 외간 남자와 하룻밤의 불장난을 하며 그 정도로 환희에 몸부림 칠 정도는 아니다. 분명 한, 두 번 배를 맞댄 게 아닌 것 같은 분위기였다.

‘잘됐군. 어차피 나도 남아서 일을 더 해야 하는데.’

안정수는 김우영 부장의 모습을 살피며 계속해서 일을 했다. 퇴근 시간이 지나고, 직원들이 거의 빠져나간 사무실에는 아까와 같은 활기는 없다. 김우영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향하려는 걸 곁눈질로 살핀다. 그런 자신과 눈이 마주친 김우영 부장은 퇴근 안하냐는 통상적인 물음에 자신도 일이 남았다고 통상적인 답변을 해준다.

“고생이 많아~저녁은? 오늘도 한 잔 꺾을 텐가?”

“말씀은 고맙지만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돼서요.”

“흠. 아쉽구만. 다음에 또 자리 가지자고.”

“네. 꼭.”

심지가 있는 안정수의 말을 깨닫지 못 한 건지, 김우영 부장은 그저 어젯밤의 불장난을 떠올리는 건지, 자신의 아내와의 불장난을 떠올리는 건지 모를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화장실로 향한다. 안정수는 화장실로 향하는 김우영 부장을 눈으로 쫓으며 그와 아내에 대한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선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걸 자신에게 세뇌하듯 타이른다.

‘당신에겐 못 줘.’

텅 빈 김우영 부장의 자리를 바라보는 안정수의 눈에는 기광이 스쳐지나간다. 사무실에 남아있던 몇 안 되던 직원들도 김우영 부장이 화장실로 가버리자 때는 이때다 하고 순식간에 퇴근해 버린다. 안정수도 이 틈을 타 얼른 일을 끝마치기 위해 서두른다.

조용한 사무실엔 안정수가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빨리 일을 끝마쳐야 한다는 일념 하에 굉장한 집중력을 보이던 안정수는 문득 시간이 꽤 지났다는 걸 깨달았다. 시계를 보니 약 30~40분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는 걸 깨달은 안정수는 의아함이 떠오른다.

‘오래 걸리네.’

물론 1시간이고 2시간이고 화장실에 앉아있는 사람도 있고, 평소라면 그가 몇 시간 화장실에 틀어박혀 있든 신경 쓸 일도 없었지만 지금은 모든 게 의심스럽다. 안정수는 자신도 화장실에 갈 겸 자리에서 일어선다. 직원들이 다 퇴근해 버린 조용한 복도를 천천히 걷는다. 곧이어 화장실에 눈에 들어오고 안정수는 화장실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들어선다.

“……없네?”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 화장실 안에는 김우영 부장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잠시 사람 만나러 나갔을 거란 생각에 안정수는 쓴 입맛을 다시며 볼일을 본다.

‘설마 아내를 만나러 나간건가?’

모든 게 아내로 귀결되는 자신의 의심어린 생각에 안정수는 한숨을 푹 쉬며 볼일을 끝내고 바지를 추켜올리는 순간 자신의 등 뒤에서 힘주는 남자의 억눌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고요했던 화장실이었는데 왜 이제 와서? 이 소리가 의미하는 것은 자신이 들어왔을 때부터 소리의 주인공이 이미 안에 있었다는 게 된다.

안정수는 소리 난 자신의 등 뒤에 보이는 굳게 닫힌 화장실 문들을 바라본다. 당연히 큰일을 보기 위해선 자연히 소리가 새어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마치 죽은 듯이 조용했던 화장실인데 이제 와서 소리가 나온 것에 안정수는 눈이 가늘어지며 잠시 기다린다.

“후우~”

시원함이 느껴지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사락거리는 옷이 스치는 소리와 철컥, 철컥하는 벨트 잠그는 소리가 들려온다. 곧이어 딸깍하는 잠금 쇠가 풀리는 소리가 나더니 안에서 불쑥 사람이 튀어나온다.

“응? 자네도 화장실인가?”

아니나 다를까? 안에서 나온 사람은 김우영 부장이었다. 평소처럼 그저 통상적인 안부나 묻는 자연스런 얼굴과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모습. 탁하고 닫히는 화장실의 문틈은 절묘하게 김우영 부장의 몸이 가리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예. 그러는 부장님은 꽤 오래 걸리셨네요.”

“하하하! 이 사람이. 그런 걸 묻는 건 실례네. 아무래도 슬슬 나이를 먹다보니 점점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말이야.”

자연스레 웃어재끼며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김우영 부장의 모습이 마치 화장실 안이 의심스러우면 확인해보라고 도발하는 것 같다.

‘신경과민인가?’

기껏해야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의 당당한 모습도 의심이라는 걸 지우고 바라보면 화장실에서 취하는 당연한 모습이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끝마쳤으면 당연히 손을 씻는 건 당연하고, 마주치면 멋쩍어서라도 통상적인 말을 건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 먼저 나가네.”

심지어 김우영 부장은 손을 다 씻곤 화장실을 나가버린다. 안정수는 그 자리에 잠시 서서 그가 나온 화장실 문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 문 앞으로 걸음을 옮긴 안정수는 화장실 문에 손을 댄 채 잠시 고민에 빠진다.

‘이대로 밀기만 해도 이런 의심은 쉽게 풀릴 텐데.’

자신이 품고 있는 의심은 이 문을 밀기만 해도 쉽게 풀릴 것이다. 문제는 그 안에 있는 게 문제다. 만약 안에 아내가 없다면 앞으로 계속 이런 의심암귀에 걸려 그와 아내의 사이를 알아보는 것도,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도 힘들지도 모른다. 

‘그냥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인가?’

안정수는 사실을 아는 것이 두려운 걸지도 모른다. 안에 아내가 있다면 그거야 말로 더욱 어떻게 해야 할이지 갈피가 안 잡힌다. 만약 아내가 정말 원해서 바람을 피우고 있는 거라면? 자신은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에 정리를 끝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안정수는 한 가지 사실을 더 떠올린다. 강제적으로 이뤄진 관계라면? 소용돌이치는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안정수는 화장실 문에 손을 댄 채 고민에 빠진다. 화장실 문 너머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안에 만약 아내가…….

“…….”

안정수는 가슴이 다시 한 번 크게 뛰는 걸 느끼며 눈을 꼭 감는다. 문 너머 자신의 사랑스런 아내가 그 도도하고 콧대 높은 자존심 덩어리의 여왕님이 여자라면 환장하는 중년 남자에게 깔려 더럽혀져 있을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질투심이 폭발할 것 같다.

“꿀꺽…….”

안정수는 얇디얇은 화장실 문에 손을 댄 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고요하기 그지없는 차가운 화장실에서 안정수는 타들어가는 목구멍에 마른 침을 삼킨 뒤 화장실 문에서 손을 뗀다.

‘확실하게 알아보자. 원해서 이뤄진 관계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다고 해도 자신이 상처 입는 게 두려울 뿐이다. 아직 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 안정수는 터질 것 같은 질투심을 가슴에 품고 그 안에서 작게 피어난 배덕감을 애써 외면한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아내를 상처 입혀도 더럽혀도 되는 건 오로지 나뿐이야.’

자신의 몸을 휘젓고 다니는 뜨거운 질투심과 대리기사에게 취한 아내를 희롱하게 했을 때의 묘하게 끓어오르는 가슴 속 배덕감을 또다시 느끼며 안정수는 화장실을 나섰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안정수의 모습에선 남자다운 기세가 뿜어져 나온다. 덜렁거리고 자존심 강한 아내를 배려하느라 유해진 그의 성격은 본래 젊었을 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자존심 강하고 도도한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때로…….

“흐음…….”

멀어져가는 안정수를 숨어서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곤란한 목소리를 낸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사람을 한눈에 볼 수 있지만 영업부 사무실과는 정 반대편에 숨어있던 김우영은 화장실을 나서는 안정수의 모습에서 그가 드디어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걸 깨달았다.

“이거 암고양이의 남편도 고양이인줄 알았더니…….”

김우영은 곤란한 듯 말하면서도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떠오른다. 김우영은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던 손에서 무언가를 움켜쥐곤 꺼내든다. 손에 쥔 무언가를 펼쳐들며 그 안에 잔뜩 배인 체취를 탐닉하듯 들이마신다.

“하지만 말이지……끌끌끌.”

김우영의 손에 움켜쥔 것은 여성용 팬티였다. 이미 누군가가 입었다는 걸 증명하듯 그 팬티에선 진한 여인의 체취가 배어들어 있었으며, 그녀 특유의 체취 속에 수컷의 본능을 자극하는 질척한 액체는 팬티에 잔뜩 스며들어 야릇한 향기를 풍기며 김우영의 손아귀에서 지금도 질척거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 바탕의 망사로 되어 있으며 귀여운 붉은 색 프릴이 달려 강렬하면서도 섹시한 팬티는 야릇한 향기까지 더해져 더 할 나위 없이 수컷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다.

두 남자가 떠난 화장실.

화장실 내에는 환기를 위해 작은 창문이 달려있다. 방금 김우영과 안정수가 사용한 회사 내 화장실에도 당연히 작은 창문이 달려있는데,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창문에서 새어 들어온 깨끗한 공기는 화장실 안의 찌든 냄새를 빼내자 그 사이를 채우듯 어떠한 향기가 솔솔 피어오른다. 그 어떠한 향기는 김우영이 나온 화장실 칸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큰일을 봤다는 김우영이 화장실에서 나오며 물을 내리는 소리가 나질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물을 내리지 않았다면 고약한 냄새가 나야 할 화장실 칸 안에선 전혀 다른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 향기는 남자 화장실에서 날 리 없는 수컷을 자극하는 야릇한 체취와 비릿한 밤꽃 냄새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야릇한 향기는 김우영이 손에 쥐고 있는 팬티와 똑같은 냄새를 품고 있었는데, 그가 나갔음에도 더욱 강렬하게 피어오르는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물줄기가 쏟아지는 소리와 자욱한 수증기가 가득 찬 화장실엔 그 물줄기를 머리부터 뒤집어쓰고 있는 한 여인이 있다. 어젯밤 딱 한 번이었지만 결국 그 한 번뿐인 정사에도 만족해버린 그녀는 정나은이다.

‘……피곤하다.’

머리부터 끼얹어지는 뜨거운 물줄기가 피곤한 몸을 노곤하게 풀어준다. 어젯밤 샤워를 하고 잠들었음에도 남편보다 빨리 일어나 또 다시 씻는 이유는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그의 체취를 떨어트리기 위해서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서서히 농익어가는 유부녀의 여체를 꼼꼼히 스쳐지나가며 혹시 남아있을 그의 체취를 깨끗하게 씻어낸다.

찌릿!

정나은은 아랫배에서 올라온 찌릿한 자극에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수중기로 자욱해 잘 보이진 않지만 물기를 머금은 자신의 몸이 어쩐지 점점 색기가 풍겨져 나오는 건 자신의 착각일까? 얼마 전 모텔에서 강제로 엉덩이를 개통당한 이후로 때때로 찌릿하고 올라오는 이 감각은 무엇일까?

피로감을 풀기 위해 평소보다 더욱 뜨거운 물로 샤워를 끝마친 정나은은 달아오른 몸을 닦아내며 자욱하게 흐려진 거울을 손으로 쓱 닦아낸다. 혹여라도 그가 자신의 몸에 남긴 흔적을 놓친 게 없을까? 꼼꼼히 살펴본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흑단같이 흘러내린 머리카락이나 탐스럽게 부푼 젖가슴, 매끄러운 복부 라인에 이어진 탄력적인 엉덩이, 돌아다니는 일이 많다보니 관리해도 육덕지지만 건강미가 느껴지는 다리를 꼼꼼히 살펴본 후 정나은은 혹시 몰라 온 몸을 수건으로 꽁꽁 싸매고 화장실을 나선다.

“일어났어?”

화장실을 나오자 안방 침대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 괴로워하는 남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다시 한 번 몸에 두른 수건을 꽉 움켜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속옷 서랍을 연다.

서랍 가득 하얗고 자극적이지 않은 색의 속옷들의 향연. 평소라면 별 생각없이 하나의 속옷을 집어들 그녀지만 어째서인지 서랍 한 편에 곱게 개어진 속옷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거……예전에 승부속옷으로 사놓았던 것들이네.’

20대에 남편과 연애 할 때도 종종 입었던 속옷들. 결혼하고선 잠자리의 작은 향신료로써 사둔 속옷들이지만, 사회 생활하다보니 점점 입을 일이 없어져 사놓고 입지도 못한 속옷도 있다. 그것들 중 슬슬 아이를 만들 때 남편의 눈을 호강시켜주기 위해 산 노출도가 높은 전체적으로 검은색 바탕의 망사재질이며 붉은 프릴이 잔뜩 들어가 자신의 취향인 속옷들 집어 든다.

‘…….’

정나은은 손에서 느껴지는 망사의 부드러우면서도 까슬까슬한 그 감각을 느끼며 이걸 입은 자신을 상상해본다. 최근 들어 어쩐지 더욱 유부녀로써 농염함이나 색기를 품게 된 자신의 몸과 이 강렬하면서도 섹시한 속옷을 입은 걸 멍하니 상상한다.

‘헉! 이, 이럴 때가 아니지.’

정나은은 화들짝 놀라며 등 뒤에서 전해지는 남편의 시선을 깨닫곤 손에 쥔 속옷을 서랍에 쑤셔 넣으며 평소처럼 하얀 속옷을 재빨리 입는다. 당황한 정나은은 이젠 익숙해진 아랫배가 찌릿하고 올라오는 감각을 외면하고 서둘러 남편을 출근시킨다.

“오늘따라 화장까지 잘 먹네…….”

남편을 출근 시키고,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을 한 정나은은 지난주와 달리 화장이 잘 먹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다. 지난주의 자신은 뭘 해도 눈을 찌푸리고 있었고, 욕구불만으로 화장도 붕 떴었는데 그게 해소된 탓일까? 지금 거울에 비춰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잘 나가는 도도한 커리어 우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꼴을 하고 또 그 남자를 만나러 가야하니…….”

내기를 시작한 지 2주차에 들어서는 그녀로썬 일주일이 1년 같다고 느끼며 창문너머로 스며드는 화사한 아침햇살을 보곤 한숨 쉰다.

“오늘은 날까지 화창하고…….”

햇살까지 화창하고, 솔솔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공기마저 청량하다. 욕구불만으로 찌푸려졌던 얼굴도 그 욕구가 해소되자 활짝 만개한 얼굴이나 화장까지 잘 먹어 완전 빛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남편이 아닌 그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한숨 쉬며 옷을 입기 위해 일어난다.

“……안 그래도 우울한데, 옷까지 검은색 정장은 좀 그런가?”

장롱 안에 가득 찬 정장을 바라보던 정나은은 안 그래도 가라앉은 기분을 업 시키기 위해 흰색 정장을 꺼내들었다. 흰색 정장과 대비되는 검은색 스타킹을 신은 그녀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복장을 살펴본다.

깔끔하게 틀어 올린 머리나, 반무테 안경이 지적인 이미지를 주고, 평소보다 단연 잘 먹은 화장이나 붉게 칠해진 두툼한 입술, 살짝 엿보이는 가느다란 목선과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순백의 하얀색 일색의 정장. 그 정장의 맵시를 살려주는 탐스러운 여체와 일 잘하게 생긴 도도한 커리어 우먼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묘하게 본능을 자극하는 농염함과 색기. 포인트를 주기 위해 스타킹은 검은색을 신었더니 화사한 아침햇살에 반사되며 그 반짝반짝한 스타킹의 질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오, 오랜만에 예쁘다.”

정나은도 여자다. 지난주의 우중충했던 자신과 저절로 비교되다보니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곧이어 이 모습도 잔뜩 흐트러지고 더럽혀질 거라 생각하면 쓴 웃음이 나온다.

“아무리 잘 꾸미면 뭐해…….”

푹하고 한숨 쉰 정나은은 속옷 서랍을 열어 예비 속옷을 챙긴다. 지난주와 같이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괴롭힌다면 속옷이 남아나질 않는다.

“흐음……그냥 하나 더 챙길까?”

정나은은 입고 있는 속옷 한 벌, 예비로 챙긴 속옷 한 벌로 끝낼까 했지만 만약에라도 또다시 자신을 모텔로 끌고 들어간다면 갈아입을 속옷이 또 필요하다.

“자, 잠깐 왜 스스로 그런 걱정을 하는 거야?”

모텔까지 갈지도 모른다는 걸 스스로 가정하고 그에 따른 대비를 하는 자신이 부끄럽다.

“……하지만 필요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네.”

지난번처럼 잔뜩 더럽혀진 자신의 속옷을 입고 새벽귀가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반쯤 자의반 타의반 속옷을 한 세트 더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준비한 예비속옷처럼 하얀색 일색의 속옷들로 손을 뻗던 그녀의 시야에 문득 아침에 본 망사재질의 섹시한 속옷이 그들 사이에 아무렇게나 쑤셔 박혀있는 걸 발견했다.

“……너희는 빛도 못보고 참 고달프겠다.”

정나은은 문득 이 강렬한 색깔의 속옷을 이 하얀 정장에 입은 걸 상상해본다. 와이셔츠마저 하얗고, 더위를 많이 타기에 와이셔츠 안에 티 하나정도 덧대 입을 만도 하건만 속옷만을 입은 그녀는 이 속옷을 입는다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어쩐지 입안이 바싹 마르는 걸 느끼며 이 속옷을 입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자신을 상상해본다. 옷맵시도, 화장도 더 할 나위 없이 깔끔하고 예쁜 직장인 여성이 뜬금없이 강렬한 색의 속옷이 비춰 보인다?

“내, 내가 미쳤나봐.”

붉게 달아오른 뺨을 인식 못하고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당황한 정나은은 손에 쥔 속옷을 무의식적으로 서랍이 아닌 미리 넣어둔 예비 속옷들이 들어있는 가방에 집어넣어버렸다. 정나은은 뒤늦게 확 달아오른 자신의 몸과 살포시 연분홍빛으로 달아오르는 뺨을 느끼곤 더욱 당황해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가방 속에 든 예비용 속옷이 2벌이나 들어갔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화사한 햇빛이 부드럽게 내리쬐고 있다. 청량한 바람이 시원하게 불며, 나무에 돋아난 파릇한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이곳은 공원이다. 도심에서 꽤나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이 공원은 유동 인구보다 주거 인구가 많은 지역이며, 평일 오전이라는 점까지 더해져서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요새 미시들은 참 먹음직스럽단 말이야.”

평화로운 분위기의 공원에서 터무니없는 소릴 내뱉는 그는 아니나 다를까 김우영 부장이다. 흡연이 가능한 구역의 벤치에 자리 잡은 그는 저 멀리서 유모차를 끌고 오가는 젊은 유부녀를 곁눈질로 훔쳐보며 한 아이의 엄마라곤 믿어지지 않는 여인들의 몸매를 감상하고 있다.

“후우~”

입에 문 담배에서 연기를 훅 뿜으며, 유모차를 끌고 산책 나왔음에도 끼리끼리 모여 조잘조잘 수다 삼매경에 빠진 젊은 유부녀들을 그윽한 눈으로 훔쳐보던 그는 곧이어 신경이 다른 곳으로 쏠린다.

‘흠. 한 명 들어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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