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4)

‘어제와 오늘 아침은 어색해하고 미안해하기만 했을 뿐인데…….’

이제야 전화 걸었다고 화난 아내의 목소리가 꽥하고 터져 나올 것 같아 귓가에 울리는 연결음이 무섭다. 계속해서 울리는 연결음은 끝내 연결되지 못하고 부재중으로 넘어간다. 안정수의 얼굴에는 더욱 걱정이라는 감정이 떠오른다. 걱정과 동시에 설마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이러는 게 아닐까란 의구심도 고개를 들었지만 일단 내리 누른다.

“…….”

안정수는 다시금 아내에게 전화를 걸며, 계속해서 울리는 연결음을 묵묵히 듣고 있다. 몇 번이나 계속된 전화에도 연결이 되질 않는다. 안정수는 걱정 어린 마음에 다시금 아내의 전화에 통화를 넣은 채 옷을 챙기려고 일어서려는데 띠링하는 문자 한 통이 도착한다.

“응? 뭐야?”

문자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였다. 안정수는 통화 연결은 안 되면서 왜 문자를 했는지 의구심이 떠오르지만 일단 문자의 내용 확인이 우선이다.

-미안해요. 회식이 있었는데 2,3차까지 가서 너무 경황이 없어 이제야 연락 넣어요. 통화하기엔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서 못 받았어요. 곧 들어가니 걱정하지 말아요.

“하아……정말이지.”

안정수는 어젯밤의 일도 그렇고, 아침에 일로 알 게 모르게 자신도 스트레스를 받았고, 조금 전까지는 아내를 걱정하며 전전긍긍한 게 괜히 열 받는다. 아내가 어제 이런 기분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아니, 그래도 평소에 내가 얼마나 양보를 많이 해주는데…….”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순한 건 아니었다. 그저 자존심 강한 마누라를 데리고 살다보니, 자연스레 아내에게 져주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자신이 한심하고 아내에 대한 걱정과 짜증어린 맘에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내서 꿀꺽, 꿀꺽 마신다.

“최소한 부부싸움 한 다음 날 정도는 조심할 수 있잖아.”

돌아오지 않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렇게 아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캔 맥주의 씁쓸함과 알딸딸하게 올라오기 시작하는 취기를 느끼며 아내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째깍, 째깍 시계의 초침 소리가 울릴 정도로 밤이 깊고, 깊어질 무렵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거실에 철컥하는 문 열리는 소리가 적막을 비집고 들어온다.

“…….”

정나은은 아직도 거실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곤 살짝 놀라더니 곧 다녀왔다고 작게 인사를 하며 거실로 들어온다. 거실에는 빈 캔 맥주가 굴러다니고, 취기가 오른 안정수의 곁에 정나은은 조용히 앉는다. 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어쩐지 너무나 처량하게 느껴진다.

“……어제와는 반대네.”

“……응.”

거실에는 어색하면서도 한층 무거운 적막이 조용히 흐른다. 째깍, 째깍 울리는 시계 초침 소리가 지겨워질 무렵 고개 숙이고 있던 정나은의 입에서 가라앉은 사과의 말이 흘러나온다.

“미안해……어제일도 그렇고, 오늘 일도 그렇고…….”

고개 숙인 정나은은 남편에게 다가가 그를 껴안으려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제자리에 조용히 앉는다.

“내가 다 잘못했어.”

“……피곤하지? 들어가 자.”

가라앉은 아내의 목소리에서 많은 감정이 묻어나는 걸 느끼며, 안정수는 밤도 깊었기에 들어가 자라며 아내를 살짝 안아준다. 정나은은 화들짝 놀라며 남편의 품을 벗어나려다가 그가 안아주는 걸 받아들인다.

“…….”

서로의 체온이 전해질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안정수가 포옹을 풀자 정나은은 그럼 먼저 들어가겠다고 하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안정수는 아내가 들어간 안방문을 지긋이 바라보곤 취기가 잔뜩 올라 더운 몸을 식히기 위해 베란다로 나간다. 베란다를 나서자 차가운 새벽공기가 단번에 그를 휘감고 취기가 오른 몸을 기분 좋게 감싼다. 안정수는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고 재빨리 불을 붙여 훅하고 연기를 뿜어낸다.

“후우~”

차가운 새벽공기에 쾌쾌한 담배 연기가 섞이지만 금세 저 멀리로 날아가 버린다. 안정수는 해뜨기 전 가장 어두운 새벽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가지 생각에 잠긴다.

아내를 껴안았을 때 풍겨온 미묘하게 남은 달콤한 술의 향기와 갓 샤워라도 한 것 같은 너무나도 청아한 향기를…….

“2,3차 회식이라…….”

안정수는 담배 하나를 다 피우고도 한동안 베란다에서 별 하나 반짝이지 않는 어두운 새벽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하기 때문일까? 오늘따라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다.

주말이 끈덕지면서도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내는 어쩐지 하루 종일 침울해하면서도 무언가 나사 하나 빠진 사람처럼 남편을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보인다. 자신은 자신대로 여러 가지 감정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며 여러 상념에 빠져,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서로가 자신의 상념에 빠져 바쁜 그 와중 한 가지 확실한 건 두 부부사이에 기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원! 어이! 안 사원!”

“……에?”

자신의 몸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자, 귓가에서 자신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다. 자신을 부른 사람에게 시선을 옮기자 그곳엔 김우영 부장이 서 있었다.

‘어, 어라? 언제 출근한 거지?’

시끌시끌해야 할 사무실이 조용하다. 당황한 안정수는 조용한 사무실을 의아한 눈으로 둘러보자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김우영 부장은 더욱 얼이 빠진 표정으로 물어온다.

“자네 오늘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있던데 무슨 일 있나? 퇴근은 해야지?”

“퇴근이요?”

당황한 안정수가 사무실에 걸려있는 시계로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는 이미 퇴근시간이 훌쩍 넘긴 시각이 떠올라 있었다.

‘월요일이라고?’

안정수는 자신이 출근했다는 것도 놀라운데, 벌써 퇴근시간까지 훌쩍 넘었다는 것에 놀랐다. 혼이 나간 사람마냥 멍하니 앉아있는 안정수를 내려다보던 김우영 부장은 다시 한 번 그를 흔들며 말한다.

“오호~안 사원 집에 들어가기 싫은가봐? 이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있는 거 보니…….”

“예? 아니, 그건…….”

“어떤가? 보아하니 저녁도 안 먹은 거 같은데 한 잔?”

김우영 부장은 능글맞은 몸짓으로 한 잔 꺾는 시늉을 한다. 안정수는 김우영 부장의 권유보단 집에 들어가기 싫은 거냐는 물음에 더 마음이 동한다.

‘……그리고 보니 밥도 안 먹었나보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것 하며, 저녁 이야기를 듣자 그제야 요동치기 시작한 식욕이라는 녀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깊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끄덕여 저녁을 먹기 위해 김우영 부장과 회사를 나섰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끌벅적한 식당 안은 취한 직장인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그들 속에 조촐하게 두 사람이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은 사뭇 눈에 띈다. 중년의 남성은 껄껄 웃으며 연신 주저리, 주저리 입을 놀리고 있는 것에 반해 맞은편에 앉은 남성은 술을 연거푸 들이키며 중년 남성의 수다에 어설프게 어울리고 있다.

‘이럴 땐 차라리 김우영 부장 같은 사람이 편하군.’

연신 여자 얘기만 주구장창 해대며 남자끼리 할 법한 서슴없는 음담패설이나 세상의 근심이라곤 하나 없어 보이는 그의 태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면 이상한 걸까?

시끌벅적한 식당의 소음이나 맛있는 안주. 연거푸 술을 들이키며 취기가 올라와도 가슴 속에 응어리 진 하나의 의심은 풀릴 기미가 없다. 그렇기에 안정수가 고민어린 모습을 지긋이 관찰하는 김우영의 눈빛을 몰랐다.

‘오호? 이거 무언가 있구만?’

김우영은 안정수가 껴안은 고민을 엿보았다. 분명 그의 아내인 정나은에 관한 고민이 필시 틀림없다고 단정 짓곤, 준비해둔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라 여겼다. 김우영은 잠시 화장실을 간다고 말하고 식당을 나와 최 사장에게 전화해 준비해달라고 연락을 넣었다.

“하하하 이거 미안하네. 그나저나……안 사원 오늘 회사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어째 고민이라도 있나 봐?”

“음……고민거리라 해야 할지. 설레발이라 해야 할지. 뭐 아무튼 좀 싱숭생숭 합니다.”

김우영이 갑자기 고민에 대한 걸 날카롭게 찔러오자 정말 찔린 것처럼 시선을 회피하며 화제를 피한다.

“뭐, 나 같은 경우 영~못미더운 상사긴 해도 인간관계에 대해선 꽤나 폭 넓은 편인데……고민정도는 들어줄 수 있네.”

“…….”

김우영 부장의 발 넓은 건 회사 내에서도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여자 한정이지만…….

‘그래도 찔러나 볼까? 지금 와서 남의 고민거리라고 하기엔 자신의 문제라고 태도에서 너무 티가 나서 창피한데…….’

그렇다고 어디 가서 이런 고민을 시원하게 털어놓자니, 그럴 상대도 없다. 게다가 자신의 아내이긴 해도 여자문제. 여자문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남자가 눈앞에 있다. 차라리 속 시원히 털어놓고 조언을 구해볼까란 달콤한 고민에 빠진다.

‘……아니. 이정도로 남에게 털어놓을 정도는 아냐.’

안정수는 기껏해야 의심이고, 만약 이야기를 한다 해도 맨 처음은 아내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도리에 맞다 생각하고 김우영 부장의 배려를 조심스레 거절한다. 김우영은 피식 웃으며 그럼 더 마시자고하며 술자리는 더욱 길게 이어지며 김우영 부장 특유의 음담패설을 계속해서 이어진다.

술자리가 길어지고, 취기가 잔뜩 오른 상태가 되자 안정수는 왜 자신이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해야 하는지 슬슬 열 받기 시작하며 김우영 부장의 여자 이야기에 호응하며 현실을 외면한다. 김우영은 술자리 분위기도 무르익고, 안정수가 자신의 이야기에도 어느 정도 호응을 해주는 걸 보며 넌지시 검은 속내를 드러냈다.

“흐흐……안 사원도 역시 남자는 남자구만. 그나저나 오늘 밤 어떤가? 스트레스도 잔뜩 쌓인 거 같은데 하룻밤 불장난하러 가지 않겠나?”

“불장난이라뇨?”

김우영 부장은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 폰을 조작해 수많은 여성의 알몸 사진 중 하나를 앞에 들이민다. 어스름한 달빛이 스며드는 침대 위에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고 하늘 높이 엉덩이를 쳐들고 있는 육감적인 몸매의 여인의 사진이다.

사진 속 여인은 막 절정에 달했는지, 움찔거리는 하체나 땀에 푹 젖은 모습이 퍽 관능적이다. 김우영이 다음 사진으로 넘겨주자 눈을 가로지르는 검은 모자이크 막대가 얼굴을 단편적으로 가렸지만, 전체적으로 수수해 보이는 외모지만 땀에 푹 젖어 웨이브 들어간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어 있는 모습에서 더욱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무엇보다 막 쏟아낸 듯 그녀의 얼굴에는 하얗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는 모습은 막 관계가 끝났다는 걸 시사해 지금 이 모습이 여자로써 가장 창피한 얼굴이며, 그 누구에게도 안 보여주는 그녀만의 모습이란 것에 가슴이 크게 뛴다.

“어떤가? 지금이라면 부를 수 있는데.”

“……어, 어흐흠! 그, 그게 말이죠.”

안정수도 남자다. 하물며, 지금 술도 잔뜩 들어갔고 한참을 여자 이야기로 꽃을 피워 성욕이 고개를 든 이런 순간에 저런 사진을 보면 누구라도 갈등한다.

“허허! 이사람 이거……역시 아내 때문인가?”

김우영 부장이 지나가는 말투로 툭하고 내뱉었지만, 툭하고 내뱉은 말이 안정수의 몸을 꽉 옥죈다.

“자네 참~아내에게 어지간히 잡혀 사는구만.”

김우영은 일부러 남자로써의 자존심을 콕하고 찌른다. 물론 시원하게 넘어가는 남자도 많겠지만 지금의 그는 아내에 대한 불만이 많다.

‘분명 주말 사이에 뭔가 있었어.’

김우영은 그 날을 되짚어 본다. 정나은은 그 날 만족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마 깨어나는 것도 상당히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깔려 만족해버렸다는 것이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새벽 귀가한다면?

‘아무리 금술 좋은 부부라도 한 마디는 툭 하겠지. 생각보다 파장이 커진 모양이지만.’

김우영은 그렇기에 안정수를 자극하면서도 달콤한 꿀을 던진다.

“뭐 아직 결혼 초기니 나쁜 건 아니지만……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떤가? 그녀 모르게 불장난을 하는 건?”

“그건 또 무슨…….”

김우영 부장이 아내에게 잡혀 산다는 이야기를 듣자, 안 그래도 아내 때문에 마음 고생하는 자신이 짜증났는데, 그 마저 그런 이야기를 하니 오기가 치솟는다. 그리고 이어진 이해 못 할 제의에 혹 한다.

“내가 먼저 가서 사진 속 여인과 관계를 가지고 있겠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에 몰래 들어와서 그녀를 안게나.”

“아니, 어떤 여자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후후후. 미리 정신을 좀 빼놓고 눈도 가리고 입에는 재갈 같은 걸 물려놓는 등 구속적인 방법을 쓰는 거지. 그러면 그녀는 남자가 바뀌어도 모를 테고. 안 사원 자네는 상대방의 얼굴도 모르고 그저 성욕만 풀고 끝이네. 그녀도 모르고, 자네도 모르고……비유하자면 자위나 마찬가지인 셈이지. 결코 바람이 아냐.”

김우영 부장의 권유에 안정수는 고민에 빠진다. 평소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고 거절한 권유지만 그 역시도 스트레스가 잔뜩 쌓였고, 특히나 아내에 대한 불만이 쌓일 때로 쌓여 이젠 의심암귀까지 걸릴 지경이다.

‘……나도 한 성깔 한다. 뭐!’

반쯤은 자포자기와 아내에 대한 소심한 복수심이 안정수의 등을 떠민다. 

하룻밤의 불장난. 

아내에게 보내는 소심한 복수.

“…….”

안정수는 한참을 고민하며, 눈앞에 채워진 술잔을 단번에 들이킨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뜨거운 술이 안정수에게 더욱 제대로 된 사고방식을 빼앗아 가며 그를 조용히 타오르는 밤의 불장난 속으로 초대한다.

안정수의 수긍에 김우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럼 먼저 가 있을 테니 전화 잘 받으라며 자리를 떴다. 그렇게 김우영 부장이 자리를 뜨자, 시끌벅적한 식당 안이지만 홀로 남겨진 느낌을 받으며 연신 술을 들이킨다.

‘……괜히 한 건가?’

분위기를 타 수긍해 버렸지만, 옆에서 달콤한 꿀을 집어넣어줄 악마가 없어지니 술기운을 빌어 묵묵히 버텨본다. 한잔, 두잔 연거푸 넘어가는 술잔과 그 씁쓸함이 몸이 퍼지는 걸 느끼며 갈등의 시간을 견딘다. 

1분이 1시간 같은 고뇌와 갈등의 시간이 흐르며, 술기운으로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질 무렵 귀신같은 타이밍에 안정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절대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될 너무나도 빠른 시간이란 걸 깨닫지 못한 안정수는 그저 고뇌에 휩싸인 채 핸드폰을 확인한다.

“……후우~만약 거절한다 해도 일단 가긴 가야겠지?”

안정수는 가슴속에 소용돌이치는 이성과 본능의 싸움을 느끼며, 일단 문자로 온 주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길게 뻗은 모텔의 복도를 안정수는 속이 타는지 마른 침을 삼키며 걷는다. 은은하게 깔린 복도 조명은 이성과 본능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안정수의 가슴에 묘한 불을 지피며 길게 이어진 방문들을 힐끔힐끔 쳐다보게 한다.

‘묘, 묘하게 공기도 다른 것 같네.’

어스름한 조명 탓일까? 아니면 문에서 새어나오는 퇴폐적인 분위기 탓일까? 들려올 리 없는 여인들의 달콤하게 헐떡이는 신음소리가 굳게 닫힌 문에서 새어나오는 것 같다.

“여기네.”

안정수는 혹시 몰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문 앞에서 핸드폰으로 온 주소와 방 번호를 확인하며 크게 숨을 들이쉰다. 그럼에도 고장 난 폭주 기관차 마냥 쾅쾅 몸 안을 뛰어다니는 심장은 진정될 기미가 안 보여 눈을 질끈 감고 문고리에 손을 얹는다. 무심코 새어나온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재빨리 주워 담고 문 안으로 들어선다.

‘나도 모르게 말문을 틀어막다니…….’

안정수는 무의식중에 이 일이 틀어질지 모르는 자신의 말을 재빨리 주워 담은 자신의 모습에서 살짝 씁쓸함이 묻어났지만 곧이어 귓가에 스며든 달콤한 신음소리에 순식간에 모든 신경이 쏠린다.

복도와는 농도가 다른 퇴폐적인 공기가 순식간에 안정수를 휘감고 자신의 귓가에 스며드는 헐떡이는 여인의 억눌린 숨소리와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는 안정수에게서 서서히 이성이라는 걸 빼앗아 간다.

김우영 부장의 것으로 보이는 검은 구두 옆에 놓인 자그마한 굽 낮은 하이힐이 눈을 끈다. 조심조심 소리 내지 않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한층 절절이 터져 나오는 여인의 신음소리와 김우영 부장의 거친 숨소리가 가장 먼저 반겨주고 떨리는 눈동자로 침대를 바라본다.

“하읍! 웁! 흐으윽!”

여인의 입에는 재갈을 물려놨는지 제대로 된 신음이 터져 나오지 못하지만 그녀가 느끼고 있을 쾌락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뜨거움이 묻어난다. 침대 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김우영 부장의 땀으로 젖은 뒷모습이다. 무릎 꿇고 연신 허리를 놀리고 있는 그의 앞에는 아까 봤던 사진 속 모습처럼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그가 여인의 가느다란 허리를 붙잡고 허리를 튕길 때마다 그 힘으로 인해 육감적인 몸매는 파문이 일며 출렁인다.

“꿀꺽…….”

자신의 아내와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선이 가느다랗지만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여인은 송골송골 땀이 맺힌 모습이 아내와는 다르게 농익은 매력을 자랑한다. 살짝 펌을 넣어 웨이브 들어간 머리카락은 뽀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에 달라붙어 있으며, 그녀의 양 팔은 머리 위로 모아져 장난감 수갑 같은 것에 묶여 침대에 고정되어 있다. 수갑이라 해도 약간 길이가 있는 것이 여러 체위를 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장난감이다.

“……?! 읍! 읍! 크읍!”

그렇게 넋이 나간 안정수를 아는지 모르는지 갑작스레 김우영이 거칠게 허리를 놀리자 그의 힘에 의해 여인이 튕겨져 나갈 듯 출렁이며 억눌린 신음을 토해내는 게 고혹적이다. 곧이어 여인의 고개가 미친 듯이 도리질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뻣뻣하게 온 몸을 굳히며 고개 역시 엉덩이처럼 하늘 높이 쳐들리곤 부들부들 떤다. 그러자 김우영 부장도 마지막으로 크게 허리를 내려찍은 후 두 남녀는 한참을 이어진 채 몸을 경련 시키는 것 외에는 그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는다.

“하으으음…….”

뻣뻣하게 온 몸을 굳히고 경련하던 여인은 깊은 탄식을 내쉬더니 침대 위로 허물어진다. 그러자 김우영 부장도 그녀 위로 허물어지더니 두 사람은 침대 위에 몸을 포갠 채 한참을 헐떡인다. 곧이어 김우영 부장이 그녀 위에서 일어서자 밑에 깔려 있던 여인은 살짝 움찔하는 모습이 보인다. 김우영 부장은 쓴 콘돔을 벗겨내더니 의아하게도 그녀의 머리맡으로 가 그녀의 다이아몬드 반지 위에 자신이 토해낸 욕망의 덩어리를 쏟아낸다.

그런 기묘한 김우영 부장의 행동에도 안정수의 눈은 침대 위에 쓰러져있는 농익은 여인의 몸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아내도 어젯밤 이랬을까?’

문득 새벽 귀가한 사랑스런 아내가 떠오른 건 왜 일까?

묘하게 남아있는 달콤한 술의 향기에 녹아든 갓 샤워를 끝마친 것 같은 청아함. 비록 자신의 의심일 뿐이지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잔뜩 흐트러진 아내의 모습이 뇌리에 각인되듯 새겨져 떨어지지 않는다. 머릿속에 각인된 상상은 깊고, 날카롭게 안정수의 가슴에 내리꽂히며 이성이란 걸 단번에 날려버린다. 

그렇게 넋이 나간 안정수의 곁에 김우영 부장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살짝 침대에서 떨어진다.

“어떤가?”

김우영 부장의 몸에서 훅하고 뜨거운 공기와 진한 수컷의 향기가 풍겨져 와 불쾌할 법도 하건만 안정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인다. 김우영은 그런 안정수를 보곤 진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등을 살짝 민다.

“그녀의 이름은 김수진이네. 이름 정도야 괜찮지 않은가?”

‘김수진…….’

안정수는 그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하듯 되뇌며, 침대에 다가가는 그의 손에 김우영 부장이 무언가를 쥐어준다.

“피임은 철저히 알지? 그리고 가능하면 신음소리도 내지 말 것. 들킬지도 몰라. 아……그리고 양쪽 다 가능하다네.”

‘양쪽?’

김우영은 안정수에게 콘돔을 쥐어주곤 방 안에 있는 소파에 앉아 땀을 식히며,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안정수는 그런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침대 위에 핀 농익은 꽃의 향기에 이끌리듯 천천히 다가간다. 

침대 맡에 서자 여인의 몸에서 뿜어져 한층 강렬하게 피어오르는 야릇한 향기에 안정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침대 위로 올라선다. 안정수의 무게로 출렁이는 침대 때문에 누군가가 침대에 올라선 걸 알 텐데도 여인은 미동도 않고 그저 잔뜩 달아오른 몸을 달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안정수는 떨리는 눈으로 김수진의 땀으로 흠뻑 젖은 농익은 육체를 내려다본다. 안대로 가려진 눈과 입에 물린 공 모양의 재갈 때문에 자세한 얼굴상은 안 보이지만, 붉게 달아오른 양 뺨이나 재갈 때문에 입가에 질질 침을 흘리는 칠칠치 못한 모습마저 본능을 자극한다. 이렇게 잔뜩 흐트러져 남자의 본능을 자극하는 그녀도 평소엔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란 그 괴리감이 참을 수 없다.

안정수는 여인의 곁에 앉으며 떨리는 손으로 탐스럽게 농익은 여인의 젖가슴을 움켜쥔다.

“하응…….”

옆으로 누워 달아오른 몸을 식히던 김수진은 가슴에서 전해져 오는 강한 손아귀 힘에 자신도 모르게 달콤한 비음을 내뱉었다. 안정수는 자신의 손아귀에 전해지는 한없이 부드러운 감각과 동시에 새어나온 여인의 비음에 자신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낀다.

‘아내와는 다르네.’

탄력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아내와 달리 꽉 움켜쥐자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오는 풍만함과 전체적으로 선이 가느다랗지만 육감적인 몸매에서 오는 그 이율배반적인 중량감이 터무니없다.

‘……아내도……내 아내도.’

분명 다르다. 분명 자신의 아내와는 다른 몸매를 가진 여인이다. 하지만 흐트러져 달아오른 김수진이라는 여인과 아내의 모습이 겹쳐보이자 안정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져 있는 김수진의 허리를 잡아 일으키며 엎드리게 한다.

길게 뻗은 땀으로 번들거리는 여인의 뒷모습과 육감적인 골반이 안정수의 눈앞에 펼쳐지자 안정수는 그녀를 위에서 내리 누르며 그녀의 양 가슴을 꽉 움켜쥔다. 손안 가득 퍼지는 부드러움과 확하고 퍼지는 김수진의 체취가 아찔하다.

“하으, 으응!”

다시금 시작된 애무에 김수진은 잘게 허리를 떨며, 자신의 가슴을 짓이겨버릴 듯 강렬한 남성의 힘을 느끼고 있다. 안정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가슴을 움켜쥔 채 그녀의 안에 삽입하려고 허리를 비틀며 용을 쓴다. 

그런 안정수의 발버둥을 김수진은 느낀 것일까?

장난하듯 약 올리듯 허리를 비틀며 교태를 부리는 것 같은 그녀의 몸짓은 안정수에겐 신선하다. 아내와의 잠자리에선 한 번도 보지 못한 여인의 교태. 마치 자신의 아내가 이런 교태를 누군가에게 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초조함이 극에 달해 가슴을 움켜쥐었던 한 손을 떼 그녀의 허리를 내리 누른다. 안정수가 허리를 고정시키자 더 이상 허리를 비틀 수 없게 된 김수진은 서서히 자신의 몸을 꿰뚫는 강렬함을 느끼며 몸을 경직시킨다.

“……크웁!”

두 사람이 완전히 이어지자 김수진의 재갈 물린 입에선 억눌린 신음이 튀어나온다. 안정수는 처음 느끼는 감각에 도취되어 있다. 끝없이 뻥 뚫린 구멍. 아내와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엉덩이 사이에 핀 국화꽃 모양의 구멍에 망설임 없이 허리를 내려찍은 것이다.

‘아, 크윽! 이, 이런 느낌이구나!’

김우영 부장이 양쪽 다 사용 가능하다는 말에 안정수는 혹했지만 점점 이 여인의 흐트러진 모습에서 아내를 겹쳐보다 보니 정말 자존심 강한 아내를 자신의 배아래 깔아뭉개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안정수는 당장이라도 풀릴 것 같은 허리와 다리에 힘을 주며 한손으로는 중량감 넘치는 젖가슴을 움켜쥐고, 한 손으론 잘 발달된 골반을 내리 누른 뒤 허리를 크게 움직여 내려찍는다. 찰지기 그지없는 소리가 두 사람의 하체에서 울려 퍼지며 김수진의 가느다란 등이 활처럼 휘는 걸 내려다본다. 동시에 뻣뻣하게 올라온 김수진의 고개는 잘게 떨리며, 긴 생머리인 아내와 달리 웨이브 들어간 젖은 머리카락에선 땀이 뚝뚝 침대 시트로 떨어진다.

‘어떤 인상일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안정수는 옆으로 보이는 김수진의 가느다란 턱 선을 보며, 사뭇 부드러운 느낌의 여인이라는 걸 짐작하게 할 수 있다. 자존심 강하고, 날카로운 아내와 달리 부드럽고 수수한 분위기의 천상여자 같은 그녀도 침대 위에선 이렇게나 흐트러진다는 것에 안정수는 그녀를 더럽혀보고 싶다는 충동에 강하게 허리를 놀리기 시작한다.

“하으! 크응! 흐으응!”

갑작스럽게 시작된 강렬한 관계에 김수진은 저항할 새도 없이 입에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두 사람의 하체가 부딪히는 찰진 소리와 부서질 듯 삐걱거리기 시작한 침대의 비명이 김수진이 받고 있는 강렬한 힘을 짐작케 해준다.

일그러지는 달덩이 같은 김수진의 엉덩이는 연신 파문을 일으키고, 엉덩이에서 시작된 파문은 가느다란 등을 통해 부드러운 젖가슴을 흔들리게 한다. 흩날리는 두 사람의 땀방울은 서로를 탐하듯 달라붙고, 살짝 식었던 공기는 또다시 뜨겁게 달아오르며 야릇한 체취를 품는다.

김우영은 한 발치 떨어진 곳에서 두 남녀의 격렬한 사랑을 지켜보고 있다. 이미 자신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은 안정수와 이미 쾌락에 잔뜩 버무려진 김수진은 그저 울부짖으며 그 쾌락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김우영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오른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군.’

김우영이 공략하고 있는 정나은의 남편에 대한 사랑은 의외로 견고하다. 그렇게 자신과 몸을 섞을 때마다 쾌락에 허우적대며 잔뜩 흐트러져도 이상하리만치 남편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는다.

‘그렇다면 서로를 의심하게 하는 수밖에.’

그래서 그는 안정수에게 다른 여자를 안겨줬다. 자의건 타의건, 사랑하는 남편이 자신 외에 다른 여자를 안았다는 것이 그녀에게 많은 충격을 줄 것이다.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이 안정수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 지 그녀 스스로도 모른 채.

‘묘한 곳에서 둔한 여자란 말이야. 그렇게 남편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맹목적일 거라 생각한 걸까?’

이렇게 살짝만 찔러줘도 남자란 생물은 유혹에 빠진다. 물론 그 배경에는 아내의 외도라는 의혹과 자존심 강한 아내의 비위를 맞추며, 안정수가 조금씩, 조금씩 모든 걸 양보하며 스트레스를 받던 것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덕분에 방아쇠는 쉽게 당겼어.’

김우영은 씩 웃으며,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그들이 관계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잘 찍는다. 처음 관계를 나누고 있음에도 마치 ‘몇 시간’이나 관계를 나눈 것 같이 쾌락에 허우적대는 김수진의 모습과 그 동안 억눌렸던 걸 단번에 토해내는 안정수의 모습은 격렬하고, 격정적이다.

그렇다. 마치 안정수가 김수진을 저렇게 쾌락에 미치도록 사랑해준 것처럼…….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이미 밤이 깊어 날짜가 바뀌었다. 하지만 모텔 방 안의 뜨거운 공기는 날짜가 바뀌어도 식지 않고, 여전히 달아올라 있다.

뜨거운 쇠를 두들기듯 둔탁하면서도 찰진 소리와 삐걱거리는 침대의 비명은 여전히 소리 높여 울고 있고, 재갈 물린 여인의 입에선 더 이상 환희의 비명을 지를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지 간헐적으로 억눌린 비음만이 새어나온다.

“으, 으응……하응…….”

“하아! 하아! 하아! 크윽!”

이미 안정수는 자신이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사실도 잊고 격하게 뜨거운 숨을 내쉬며 자신의 품 안에 안긴 육감적인 여인을 꽉 끌어안은 채 허리를 내려찍고 있다. 정말로 몇 시간이나 사랑을 나눈 두 사람의 주위에는 사용한 콘돔이 잔뜩 어질러져 있고, 두 사람이 내뿜은 타액은 침대 시트를 푹 적시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듯 김수진은 온 몸이 푹 퍼진 채 그저 힘없이 흔들리고 있고, 안정수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듯 후들거리는 허리에 힘을 주며, 눈앞의 여인을 내려다보고 있다.

여전히 얼굴은 큰 안대에 가려져 있고, 재갈이 물려 칠칠치 못하게 침을 흘리고 있음에도 잔뜩 물기 머금은 웨이브가 들어간 머리칼이나 붉게 달아오른 양 뺨은 그녀가 얼마나 만족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이 허리를 내려찍을 때마다 출렁이는 젖가슴은 그에게 한없는 욕정을 불러일으키고, 배꼽이 맞닿을 때마다, 자신의 허벅지와 가느다란 그녀의 허벅지가 부딪힐 때마다 속절없이 허공을 헤매는 것이 귀엽게만 보인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안정수가 모든 힘을 짜내듯 격렬하게 허리를 놀리자, 힘없이 처져있던 김수진의 입에선 마지막 환희가 튀어나오며 힘없이 허공을 헤매던 그녀의 다리에는 마지막 힘이 실리며 뻣뻣하게 굳는다. 그녀의 몸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낀 안정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토해내며 마지막으로 내려찍는 둔탁한 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거친 숨을 몰아 쉴 힘도 없는 두 남녀는 그저 몸을 포갠 채 침대 위에 쓰러져 있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김우영은 드디어 끝났다는 걸 기뻐하며, 힘없이 늘어진 두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안 사원 슬슬 가야지?”

김우영의 말에도 한참을 늘어져 있던 그는 잠시 뒤 힘겹게 일어선다. 김우영이 김수진이 있음에도 안 사원이라고 대놓고 부른 것에 의문을 품지 못 할 정도로 모든 힘을 소진한 그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침대에서 내려온다.

“일단 씻게나.”

안정수를 샤워실로 밀어 넣곤 침대 위에 미동도 않고 푹 퍼진 김수진을 보며 김우영은 머리를 긁적인다.

“너무 오래 했나? 그나저나 안 사원도 은근히 절륜하구만.”

두 사람은 몇 시간동안 정말로 쉬지 않고 관계를 나눴다. 억눌려 있던 스트레스가 폭발이라도 한 것처럼 격렬했던 흔적이 침대 곳곳에 잔뜩 흩어져 있다. 덕분에 처음 한 번 밖에 그것도 맛보기 식으로 밖에 못한 김우영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푹 퍼진 육감적인 김수진의 젖가슴을 살짝 움켜쥔다.

“……이건 오늘은 힘들겠구만.”

젖가슴을 움켜쥐어도 그녀는 살짝 움찔하기만 할 뿐이다.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딴 곳에 정력을 낭비할 정도로 그는 한가롭지 않다. 김우영은 자신도 샤워하고 갈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어차피 잠깐 몸을 섞은 것뿐이라 집에 가서 해도 될 거란 생각에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건 김우영은 이제 끝났다고 보고를 하곤 잠시 뒤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는다.

곧이어 샤워실에서 나온 안정수는 옷을 챙겨 입으며 침대 위에 푹 퍼져 미동도 않는 김수진을 바라보며 살짝 걱정한다.

“그냥 두고 가는 건가요?”

“응? 아아, 걱정 말게. 항상 그래왔어. 나갈 때 문만 잘 잠그면 되네.”

커다란 안대는 아직 벗기지 않았지만 입에 물린 공 모양의 재갈이나 손을 구속했던 건 풀은 모습이다. 걱정하는 안정수를 데리고 방을 나선 김우영은 문을 잠그는 시늉을 하며, 먼저 보낸 안정수의 뒤를 따라 모텔을 나선다.

곧이어 고요했던 모텔의 복도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작은 키지만 꽉 찬 근육을 자랑하며, 인자한 동네 아저씨 같은 외모의 중년 남성. 그는 고요한 복도를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옮겨 주위를 둘러본 뒤 굳게 닫혀 있는 어떤 방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다. 들어가기 전 언뜻 보인 그의 옆모습은 김우영의 협력자 최 사장이었다.

그가 들어선 곳은 당연히 김우영이 잠그는 척을 했던 김수진이 퍼져 있는 모텔 방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선 최 사장은 은은하게 남아있는 야릇한 공기에 씩 웃음을 지으며 침대에 죽은 듯 잠들어 있는 김수진을 내려다본다.

“허허~이것 참 난리네.”

잔뜩 더러워진 김수진의 모습이 아름답게만 보이는 건 이상한 것일까?

최 사장은 옷을 확 벗곤 실신한 그녀의 곁에 누워 그녀의 커다란 안대를 벗긴다. 그러자 더 할 나위 없이 만족한 여인의 사랑스런 잠든 얼굴이 최 사장의 눈앞에 드러난다. 두툼한 김수진의 입술에 최 사장은 자신의 입을 겹치며 그녀가 일어날 때까지 길고 긴 키스를 나눈다.

“……으음.”

곧이어 곱게 닫혀있던 김수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열린다. 살짝 풀린 김수진의 눈동자가 눈앞에 있는 남자를 인식할 때까지 잠시의 시간이 걸린다. 빛이 돌아온 김수진의 눈동자는 자신의 입술을 탐하고 있는 최 사장의 입술을 받아들이며 잠시 뜨거운 키스를 나눈다. 마치 진짜 부부처럼…….

“어땠어?”

곧이어 입술이 떨어진 최 사장은 그녀에게 의견을 묻는다. 그러자 김수진은 잠시 그때를 회상하듯 먼 곳을 응시하는 듯싶더니 헤픈 미소를 짓는다. 처음 펜션에서 보았던 수수하고 순수했던 그녀의 미소와는 차원이 다른 농염한 미소다.

“좋았어. 하룻밤에 세 남자를 동시에 겪는 것도 나름 신선했어.”

수수하고, 순수했던 천상여자는 요염하고 육감적인 포식자의 미소를 짓는다. 최 사장은 그런 김수진의 미소를 보며 참을 수 없어서 그녀를 덮쳐 짓누른다. 꺅 하는 귀여운 김수진의 목소리가 잠시 들려오더니 곧이어 방 안에는 삐걱거리는 침대 소리와 달콤함이 묻어나는 김수진의 신음소리가 살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굳게 닫힌 모텔 방문은 밤을 새하얗게 지새우고, 떠오른 아침 해가 드높이 떠오를 때까지 열리지 않았다.

날짜가 바뀌었어도 아직 길거리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귀갓길을 서두르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안정수는 차갑게 휘감는 밤공기에 달아올랐던 몸이 식는 걸 느끼며, 노도와 같았던 몇 시간을 되새기며 많은 감정이 그의 가슴에 떠오른다.

“가세나.”

“……예.”

안정수의 얼굴에는 수많은 감정이 묻어나는 걸 김우영은 눈치 채고 그가 딴 생각 못하게 발걸음을 재촉한다. 안정수는 그렇게 김우영의 뒤를 따라나서려다 문득 털썩 주저앉는다.

“응?”

김우영과 안정수의 얼굴에는 의문이 떠오른다. 안정수는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는 걸 느끼며 곤혹스러워 한다.

‘그리고 보니…….’

안정수는 모텔로 향하기 전 그 짧은 고뇌의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안 그래도 김우영 부장과 밥을 먹으며 상당한 술을 마셨는데, 안주도 마시지 않고 그렇게 미친 듯이 술을 마신 뒤 몇 시간이고, 몇 시간이고 여자를 탐했으니 건장한 장정이라도 허리와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게 정상이다.

하물며, 그는 주말 내내 아내가 외도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 때문에 고심의 시간을 보냈다. 그 때 쌓인 피로와 지금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이 툭하고 풀리자 모든 피로가 한순간에 몰려온 셈이다.

‘게다가 한순간이지만 아내와 김수진이라는 여인을 겹쳐봤으니…….’

정말이지. 그동안 아내에게 쌓였던 울분을 토해내듯 격렬하게 관계를 나눴다. 안정수는 한번에 들이닥친 피로감에 어쩔줄 모르며, 확하고 피어오르는 취기에 어쩔 줄 모른다. 여인을 안으며 온 몸을 휘감았던 아드레날린이 더 이상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이것 참……좋긴 좋았나보구만. 응?”

김우영 부장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안정수를 부축해준다. 안정수는 면목 없어 하면서도 순순히 그의 부축을 받아들일 정도로 온 몸을 휘감는 피로감과 취기에 정신이 없다.

“이거 죄송합니다.”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나. 종종 이런 자리 갖자고. 응?”

김우영의 조롱어린 말에 안정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런 안정수를 부축한 채 길거리를 천천히 나아가는 김우영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오른다.

“그나저나 이대로는 혼자 집에 가기 힘들겠군. 바래다주지.”

“예? 아니 그럴 필요까진…….”

“뭘. 사양하지 말게나. 여기서 집이 그리 멀지 않지? 게다가 자네는 내일 출근도 해야 하지 않나? 나야 뭐……외근 나간다 하고 사우나에서 한숨 자면 그만이니.”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주소는…….”

묘하게 설득력 있는 김우영 부장의 말에 혹한다. 무엇보다 서로 못 볼꼴 다 보여준 사이인 만큼 친밀감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거다. 김우영 부장이 책임지고 자신을 집까지 데려다 준다는 말에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안정수는 점점 축 처지며 한계에 다다른 몸은 수면을 요하며 의식이 드문드문 끊긴다.

그렇기에 그는 몰랐다. 김우영 부장이 어째서 자신의 집이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그의 입가에 떠오른 비릿한 미소와 살짝 부풀어 오른 바지 앞섬을…….

어스름한 해질녘의 황혼 빛이 베란다 커튼 사이로 스며들며, 마루에 앉아있는 나사가 빠진 것처럼 멍한 분위기의 한 여성을 비춘다. 세상여파에 지친 직장인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끝마쳤는지, 긴 생머리는 아직도 물기를 머금고 있고, 샤워 하느라 살짝 달아오른 뺨은 거실의 차분한 공기 속에 천천히 식고 있다.

코 위에 반쯤 걸쳐진 반무테 안경은 평소와 다르게 반쯤 흘러내려 그녀의 정신없는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고, 핑크빛이 감도는 두툼한 입술에선 연신 한숨이 터져 나오는 그녀의 이름은 정나은이다.

“이제는 좀 괜찮네.”

정나은은 눈망울을 데굴 굴려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부드러운 빛깔의 파스텔 톤이 돋보이는 품이 넉넉한 일체형 원피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주말 내내 자신의 몸에 새겨진 김우영의 욕망을 떨쳐내느라 고역이었다.

남편과의 부부싸움도 잊은 채 새벽 귀가한 그녀는 아직도 거실에 앉아있는 남편에게 솔직히 사과했다. 그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감정이 가슴속에서 넘쳐흘렀지만, 그저 묵묵히 고개 숙이고 사과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시무룩한 남편에게 먼저 다가서려는 그때 자신의 몸에 진하게 배어있던 그 야릇한 향기가 떠올라 멈칫했다. 꼼꼼하게 씻었지만 혹시 몰라 망설이는 그때 남편이 자신을 품속에 가둬줬다.

남편이 자신을 껴안아줬을 때 그의 체온에 안심하려는 순간 찌릿하고 엉덩이에서 올라온 감각이 그녀를 현실로 되돌려버렸다. 남편의 품에 안겨 있을 때마저 남편보단 김우영 그가 자신의 몸에 남긴 욕망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수치스럽고 굴욕적이었다.

잔뜩 체액으로 더럽혀져 침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때보다 더욱 수치심이 몰려와 몸이 떨리려는 걸 남편이 눈치 챌까봐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견뎠다. 남편의 품을 벗어나 안방으로 들어간 그녀는 침대에 쓰러져 생각했다. 아무리 욕구불만이었어도 술기운과 마사지에 몸이 푹 퍼졌어도 남편에게도 안 내준 엉덩이를 내줬다는 것에 당장이라도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오르는 걸 꾹 눌러 담았다. 자신이 숫처녀 때로 돌아간 것 마냥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그저 연약한 여자가 되어 헐떡였다.

그리고 그 기묘하고 생소한 감각 속에 절정에 오르고 또 올랐다……만족한 것이다.

덮고 있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몸을 움직이자, 엉덩이에서 찌릿하고 올라오는 그 감각이 정나은에게 잊지 말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덕분에 주말 내내…….”

정나은은 주말 내내 엉덩이에서 잊을 만하면 올라오는 찌릿한 감각에 하루 종일 수치심 속에서 그 밤을 되새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편에게는 미안함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선 하루 종일 그날 밤이 떠오르고 꽉 차서 아무것도 주위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렀다.

“그리고 보니 오늘은 안 불러냈네?”

주말이 지난 월요일임에도 그가 안 불러냈다는 것을 자각하자 의아함이 피어오른다. 베란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황혼을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자 그녀의 눈에는 당황이 깃든다.

‘내, 내가 왜 불러내는 지, 안 불러내는 지를 신경 쓰는 거지?’

그와 동시에 이제는 거의 진정된 찌릿한 감각이 온 몸을 타고 전류처럼 흐른다. 정나은은 아직도 진정이 안 된 건가란 생각에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자 점점 크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과 샤워를 끝마치고 달아오른 뺨이 거의 식었음에도 또 다시 열기를 띄기 시작하는 것에 눈동자가 흔들린다.

“……어?”

찌릿한 감각과 그 열기가 시작된 것은 묘하게 남아있는 통증이 아니었다. 자신의 아랫배에서 시작된 찌르르한 감각과 열기를 자각하자 정나은의 몸은 확 달아오른다.

“…….”

그녀는 현실에서 도피하듯 그저 하염없이 베란다 너머로 스며드는 해질녘의 햇빛과 어스름한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째깍, 째깍 울리는 시계소리와 희미하게 스며들고 있던 해질녘의 햇빛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어스름했던 밤하늘은 완전히 캄캄해졌다. 마루에 멍하니 앉아있는 정나은은 형광등의 강렬한 불빛이 싫은지, 따뜻한 느낌의 보조등을 켜둔 채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

정나은의 흐릿한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오고 째깍거리는 시계를 바라본다. 벌써 날짜지 오래됐다. 이미 다들 잠자리에 들어갈 시간임에도 정나은은 자리를 벗어날 생각은 없는지 고개를 다시금 베란다 너머로 돌리려는 그때 현관문에서 철컥, 철컥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왔다!”

정나은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부리나케 현관으로 남편을 마중 나간다. 자신 때문에 속상했을 남편이 술을 잔뜩 마시고 돌아올 건 자명지사, 그렇기에 그녀는 이런 늦은 시간까지 기다린 것이다. 철컥하고 열리는 현관문을 바라보던 정나은의 환한 미소는 순식간에 사그라진다.

“……당신이 어떻게 여길 온 거야?”

술에 잔뜩 취한 남편을 부축한 김우영이 그곳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한껏 치켜 올라간 눈매나 흉흉한 안광이 김우영에게 경계심을 표출한다. 김우영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 잔뜩 취해 실신하듯 잠든 남편을 그녀에게 건네준다.

“뭐 같은 회사 동료끼리 한 잔 할 수 있지. 더 있겠어?”

안정수가 확실히 취해 잠든 걸 확인한 그는 거리낌 없이 정나은에게 조롱을 던진다. 정나은은 그런 조롱을 들은 척도 안하고, 취한 남편을 거칠게 뺏어 자신의 품으로 안는다.

“알았어. 이제 가.”

“뭘, 안방으로 옮길 순 있겠어? 의식 없는 사람은 무거운 법이야.”

정나은은 그런 김우영의 말에 보란 듯이 남편을 부축해 안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버린다. 끌끌 웃는 김우영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안방으로 남편을 부축해 들어온 정나은은 남편을 침대에 눕히고 재빨리 남편을 살펴본다.

“다행이 뭔가 문제 있어 보이진 않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정나은은 남편의 옷을 벗기곤 조심스레 이불을 덮어준다. 확하고 피어나는 진한 술 냄새와 청아한 향기를 맡으며 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잠시 내려다보곤 조용히 안방에서 나온다. 갑작스런 김우영의 방문에 더 할 나위 없이 당황한 그녀는 평소와 달리 왜 남편의 몸에서 청아한 향기가 나는지 깨닫지 못한 채 안방 문을 확실히 닫은 뒤 현관에 서 있는 김우영에게 다가온다.

“왜 아직 안 갔어?”

“음? 아, 아아 사랑하는 남편을 여기까지 부축해 줬는데 물 한 잔 정도는 줘도 되지 않아?”

정나은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그의 모습을 살펴본다. 확실히 장정 하나를 옮기는 건 쉽지 않았는지, 살짝 땀이 배어나온 모습이다. 그가 지쳤건 아프건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그녀지만 그래도 남편을 데려다 줬다는 건 다르다.

“잠깐 기다려.”

정나은이 휙 하고 바람소리가 날정도로 냉철하게 뒤돌자 품이 넉넉한 원피스 자락이 사르르 흩날린다. 무릎까지 내려온 원피스 자락이 흩날리며 뽀얗고 육덕진 허벅지가 살짝 보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무엇보다 늦은 시간인 만큼 집안에는 따뜻한 느낌의 보조등 하나만이 켜져 있는 것이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현관문 정면 쪽으로 이어진 마루 겸 부엌, 그 왼쪽 편으론 작은 방이 하나 있고, 마루에서 오른편엔 살짝 안으로 들어가 잘 보이진 않는 안방과 화장실이 보인다.

신혼부부가 살기엔 적당한 집.

‘저 작은 방에서 정나은을 덮쳤다가 도망가는 그녀를 안방까지 쫓아가 결국 잡아서 잡아먹었던 게 떠오르는군.’

김우영은 그때를 회상하며 비릿한 미소가 입가에 떠오른다. 마루에 붙어있는 부엌으로 물을 가지러 간 그녀를 기다릴 겸 현관에 놓인 사람 허리높이까지 오는 신발장에 겉옷과 가방을 잠시 내려둔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 현관문에 설치된 보조등이 움직임을 인식 못하고 훅하고 꺼져버린다.

김우영이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보조등을 키자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며 돌아오는 정나은이 뭐하냐는 물음과 동시에 손에 쥔 차가운 물을 건네준다. 김우영은 별 것 아니란 몸짓으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곤 시원한 얼굴로 컵을 넘긴다.

“후우~마시니 좀 살겠군.”

“그럼 이제 사라져.”

이제야 살겠다는 표정으로 넥타이를 푸는 김우영에게 축객령을 내린다. 그러자 김우영이 의아한 얼굴을 지으며 말한다.

“응? 이제 메인디시를 먹을 차례인데?”

정나은이 그의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김우영은 비릿한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양 어깨를 움켜쥔다.

“어?”

정나은은 확하고 자신의 몸이 앞으로 쏠리는 걸 느끼며, 화들짝 놀라 몸을 경직시킨다. 손에 꼭 쥔 유리잔이 하마터면 손을 벗어나 바닥으로 떨어질 뻔 했지만 지금 이걸 떨어트린다면 잠든 남편에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순간적인 판단에 모든 신경이 손에 쥔 유리잔에 집중되자 김우영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웁?!”

그리곤 자신의 입술에 전해진 부드러우면서도 두툼한 입술의 감각에 정나은의 눈은 함박만 하게 커진다. 놀라 경직된 정나은이 혹여 자신의 품을 벗어날까 그녀의 허리와 뒷머리를 감싼 그는 그녀를 자신의 품에 가둔 채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다.

정나은은 손에 쥔 유리잔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고, 자신의 입술을 탐하고 있는 그의 입의 감촉을 깨닫곤 화들짝 놀라며 그의 품을 벗어나려 했지만 이미 단단하게 고정된 그의 팔은 그녀가 벗어나는 걸 내버려두지 않는다.

확하고 피어오르는 술 냄새와 남편을 옮기면서 흘린 땀 때문이라곤 믿어지질 않는 진한 수컷의 체취가 단번에 정나은을 휘감으며 아찔하게 자극한다. 그 강렬한 향기에 놀란 그녀가 입을 벌리자 김우영의 입속에서 뜨거운 뱀이 단번에 그녀의 안으로 침투한다.

“웁?! 하음, 하아! 아으읍!”

그녀의 입속으로 들어온 김우영의 뜨거운 혀는 뱀처럼 그녀의 입안을 휘젓고 다니자 정나은은 그 감각을 느끼며 새된 신음을 토해낸다.

김우영은 그녀를 자신의 품에 가둔 순간부터 향긋하게 피어오르는 그녀의 체취를 느끼며, 보드라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짓누른다. 꽉 껴안은 그녀의 허리가 살짝 떨리고, 도망가려는 듯 뒤로 빼는 그녀의 뒷머리를 강하게 고정시키자 그녀의 입이 벌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혀를 집어넣었다.

달콤한 과일주를 탐하는 것처럼 그녀의 입안을 휘저으며 자신의 색으로 물들인다. 그녀의 입안을 휘젓고 다니는 자신의 혀 때문인지 새된 신음이 새어나왔지만 그는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그녀의 까슬까슬한 혓바닥을 자신의 혓바닥으로 휘감는 것에 모든 정신을 쏟는다.

“……!!!”

현관문에 선 채 얼어붙은 듯 껴안고 있는 두 남녀지만, 그들의 입속에선 치열하기까지 한 술래잡기가 한참이다. 곧이어 정나은의 눈은 더욱 커지더니 눈을 꽉 감는다. 마치 자신의 몸을 옥죄고 있는 그의 팔처럼 입속에서 자신의 혀를 휘감기 시작한 그의 혀를 외면한 것이다.

얼어붙은 듯 움직임이 없는 두 남녀이기에 현관문에 부착된 보조등은 움직임을 감지 못하고 불이 확 나가버린다. 마루에 켜져 있는 따뜻한 느낌의 작은 보조등은 너무나 그 빛이 미약해 현관문까지 닿지 않아 현관에 선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둠속에 숨는다.

하지만 현관문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듯 쩝쩝 무언가를 강하게 빠는 소리나 이따금 들려오는 뜨거운 숨결을 참지 못하고 단번에 토해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질척한 물소리가 한참을 이어지는가 싶더니 새로운 소리가 더해진다. 사락사락하는 무언가 옷이 스치는 소리가 어둠속에서 들려오더니 움직임을 감지한 보조등에 불이 들어온다.

어둠을 몰아낸 보조등 아래에 들어난 두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어쩐지 힘이 빠져 보이는 정나은의 모습과 그녀를 받쳐주듯 강하게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과 그녀의 뒷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김우영의 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손은 어디로 갔을까?

품이 넓은 원피스를 입고 있는 정나은 때문에 그의 모습이 거의 보이진 않지만 사락사락하는 옷깃 스치는 소리는 틀림없이 그녀의 원피스에서 들려오고 있다. 곧이어 품이 넓은 원피스 하단이 살짝 들리는 가 싶더니 곧이어 그녀의 엉덩이부근의 원피스가 들썩거리며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역시 김수진과는 탄력이 다르군.’

김수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그녀답게 탄력이 남다르다. 원피스 안에 침투한 자신의 손이 정나은의 육덕진 허벅지를 지나 잘 발달된 골반을 살짝 쓰다듬더니, 곧이어 그녀의 풍만하게 부풀어 오른 엉덩이를 꽉 움켜쥔다.

그가 정나은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자 꼭 감고 있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이고, 살짝 풀린 그녀의 허리에 힘이 다시 돌아오는 게 느껴진다. 여전히 두 사람의 입은 겹쳐진 채로 정나은의 엉덩이를 꽉 움켜쥔 그의 손은 이따금 그녀의 가랑이 사이를 터치하듯 스쳐지나가며 허벅지를 매만지는 둥 조심스레, 그리고 격렬하게 키스를 나눈다.

‘왜 이, 이런 키스를……?’

그제 밤부터 그의 묘한 배려심 어린 행동이 당황스럽다. 평소의 그였다면 그저 이 자리에서 자신을 자빠뜨리고 배아래 짓눌렀을 것이다. 또한, 몇 번이나 그와 몸을 섞으면서도 이렇게 격정적이고 사랑이 담긴 키스는 단 한 번도 받아보질 못했다.

정나은은 자신의 입속을 뛰노는 그의 뱀 같은 혓바닥에 유린당하며 손에 꼭 쥔 유리잔의 차가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렇게나 차가웠던 유리잔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한 것은? 곧이어 자신의 원피스 안으로 들어온 그의 손길에 풀려가던 허리에 힘을 되찾아줬지만, 그녀의 몸을 탐하기 시작한 그의 입과 손은 힘이 돌아온 그녀의 몸을 더욱 빠르게 달아오르게 한다.

원피스 속으로 사라진 김우영의 팔의 움직임을 감지 못한 보조등은 다시금 나가며 어둠에 휩싸인다. 고요한 집안에 질척거리는 물소리와 더욱 뜨거워진 숨결을 토해내는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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