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4)

남성은 전화를 건 상대방을 확인하자 어처구니없게도 연신 허리를 놀리면서 전화통화를 시작한다. 남성의 대담한 모습에 여성은 자신의 입을 필사적으로 틀어막고 새어나오는 신음을 막기 위해 발악해보지만 남성은 아랑곳 않고 연신 허리를 놀리며 통화를 이어간다.

“응? 아아, 별 것 아냐. 잠시만 기다리게. 곧 끝날 것 같으니.”

“크으흡?! 으읍! 하으윽!”

남성은 전화통화를 연결 시켜놓은 채 여성의 머리맡에 내려두곤 더욱 강하고 거칠게 허리를 내려찍기 시작하자 여성은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고 쾌락을 견뎌보지만 터져 나오는 신음과 쾌락을 막을 순 없는지 가느다란 다리를 애처롭게 발버둥 친다.

지금까지보다 더욱 커진 질척거리는 찰진 소리와 달콤한 환희의 신음소리는 연결된 전화기를 타고 고스란히 넘어가고 있지만 남성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절정에 이르기 위해 마지막 힘을 쥐어짜낸다. 

1분이 채 흐르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화기 너머로 전해진 두 짐승의 퇴폐적인 울부짖음을 끝으로 서서히 조용해진다.

“후~이야~이거 미안하네. 그나저나 무슨 일인가?”

많은 걸 느껴지게 하는 깊은 한숨을 시작으로 남성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그러자 전화 통화를 건 상대방 남성은 전혀 거리낄 것 없다는 듯 씩 웃으며 입에 담배를 꼬나문 채 용건을 이야기한다.

“하하. 이거 제가 눈치 없이 안 좋을 때 전화 걸었군요. 다름이 아니고 최 사장님 도움이 필요해서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용건을 이야기하는 남자는 다름 아닌 김우영 부장이었다.

“응? 아냐. 아냐. 그나저나 도움이라? 우리 부장님 부탁이라면 들어줘야지.”

침대 맡에 앉아 땀을 줄줄 흘리며 전화 통화하고 있는 건 펜션을 운영하는 최 사장이었다. 최 사장도 잠시 쉬기 위해 담배에 불을 붙이며 김우영의 이야기를 경청하더니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 정말이지. 알았네. 마침 딱 좋은 여자가 있지.”

최 사장은 그 여자가 지금 침대에서 사지가 풀려 경련하고 있는 유부녀라고 주장하듯 그녀의 부드러운 젖가슴을 움켜쥐며 그 감촉을 즐긴다.

“하으…….”

절정에 올라 쾌락에 절여진 몸을 주체 못하고 덜덜 떨고 있는 유부녀는 갑작스런 자극에 달콤한 신음을 흘린다. 최 사장은 아랑곳 않고 농익은 유부녀의 젖가슴을 주무르며 통화를 이어가고 있다. 창문 너머로 스며들던 네온사인의 불빛이 화려하게 번쩍이며 방안을 이리저리 비추며 어둠을 몰아낸다.

그 덕에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던 침대 위에 핀 유부녀라는 이름의 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느다란 다리를 경련시키며 가랑이 사이에서 울컥울컥 비릿한 밤꽃 향기 토해내는 이름 모를 꽃의 얼굴이 네온사인의 불빛에 드러난다.

“하아……하아…….”

수수하지만 옷 아래에 육감적이기 그지없는 몸을 자랑하던 김수진이었다.

펜션에서부터 이어진 인연.

그 광란의 밤에서 이어진 최 사장과 김수진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직장인의 하루는 길다. 길다 못해 피곤에 절여질 만큼 긴 근무시간 뒤에는 달콤한 휴식대신 회식이 기다리고 있다. 여러 가지 명분으로 오늘도 회식자리에 불려가는 이들도 있고, 자진해서 즐기는 직장인들이 바글바글한 길거리.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오가는 술잔과 구워지는 안주거리의 맛있는 냄새가 가득한 한 가게에 의외의 조합이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고 있다.

‘아~정말이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안정수는 눈앞에 앉아 술을 붓고 있는 자신의 상사, 김우영 부장을 보며 지금 상황을 한탄하며 왜 이렇게 된 건지 스스로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술잔을 들이킨다. 영업팀 내 회식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만나 술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역시 괜히 왔나. 집에 들어가서 쉴걸.’

안정수는 근래 회사가 일찍 끝나도 집에 들어가기가 껄끄럽다. 아니 정확하게는 무섭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 원인은 바로 자신의 아내 정나은 때문이다.

‘대체 이놈의 한 달은 언제 가려나.’

아내가 한 달 동안 만나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그 진상 고객 때문인지, 하루가 다르게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히스테릭까지 부리는 아내의 모습에 자신은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아내의 입에서 툭하면 죽일 놈, 씹어 먹을 놈같이 험한 욕은 물론이거니와 가만히 앉아 진정된 것 같아도 금세 아내의 주위에 피어오르는 차가운 기운이 집안을 휘감고도 폭풍처럼 쓸고 다니니 그 심정을 이해 못할 리 없는 자신은 그저 눈에 안 띄게끔 찌그러져 있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슬슬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퇴근 준비를 하며 주위에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들어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의외의 인물이 자신에게 다가와 저녁 한 끼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아침이면 외근 나간다는 말을 끝으로 퇴근 시간까지 코빼기도 안 보이던 김우영 부장이 오늘따라 일찍 회사에 돌아온 것도 놀라웠지만 자신의 이런 처지를 아는지 먼저 건네 온 저녁 제안에 청승맞게 혼자 먹는 것보단 나을 거란 생각에 이 자리까지 나와 버렸다.

“어휴~그래서 이놈의 마누라는 집 나간 지 오래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 내미는…….”

평소 입만 열었다하면 음담패설이 줄줄이 튀어나와야 할 터인 그의 입에서 가족 이야기나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 등 평범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나저나 안 사원은 결혼한 지 꽤 된 것 같은데 좋은 소식 없나?”

김우영 부장은 자연스레 자신의 가족 이야기에서 안정수네 가족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다. 젊은 부부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해봐야 아이밖에 더 있겠는가?

“그야……저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바쁘다보니 힘드네요. 안 그래도 슬슬 아이를 가지고 싶은데 아내가 근래 굉장히 바쁘기도 하고 이런 건 서로 시기나 상의를 잘 조절해야 해서.”

아이를 갖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아이를 키우려면 시간과 노력, 돈 그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세상이 되어버리다 보니 30대의 안정수, 정나은 부부는 슬슬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자고로 젊어서 아이를 가져야 해.”

김우영 부장은 눈치도 없이 이래야 한다는 둥, 저래야 한다는 둥 남의 가정사까지 오지랖 넓게 참견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밥 간단하게 때우고 얼른 들어가 아내와 차가운 캔 맥주라도 마시며 분위기나 잡을 걸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흐흐흐~안 사원은 별 재미가 없나보군. 그러면 이건 어떤가?”

안정수는 자신의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살짝 뜨끔 한다. 김우영 부장은 자신의 태도도 개의치 않고 능구렁이처럼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품에서 예전에 본적 있는 핸드폰을 꺼내든다.

“자고로 여자 이야기라면 마다할 남자는 없지.”

김우영은 자랑스럽게 핸드폰에 찍혀있는 여러 여성의 알몸 사진을 보여준다. 안정수는 아닌 척 해도 자고로 남자라는 생물은 본능적으로 여자 이야기에 끌릴 수밖에 없는 슬픈 생물이다. 자꾸만 자신의 눈동자가 김우영 부장의 핸드폰으로 향하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

“헤에~더 늘어나셨네요?”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늘어난 사진 수하며 여성의 얼굴 형태조차 알 수 없게끔 몸매만 드러난 사진이 태반이었던 지난번과는 달리 아예 작정하고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인지 여성의 얼굴에는 검은 모자이크가 들어가 있다.

‘이거야 원……여자 밝히는 줄은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김우영 부장의 핸드폰 속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침대 위에 질펀하게 늘어진 모습이거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진 속 여성과 관계를 나눴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양이 방대했다. 그 중에 최근에 찍은 걸로 보이는 사진 속 여인은 어쩐지 눈에 익은 자태를 가지고 있다.

‘……하긴 일하는 여성들이 다 비슷비슷하지.’

사진 속 흐트러진 정장을 입고 김우영 부장의 것으로 보이는 육봉을 머금고 있는 여성의 사진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가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보니 주차장 차 안에서 한 뒤로는 못 했네.’

서로 사회생활이 바쁜 탓도 있지만 최근 아내의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면 사랑을 나눌 맘도 싹 사라진다. 그렇다고 쌓이는 성욕을 스스로 풀자니 멀쩡한 아내 놔두고 풀기엔 어쩐지 처량 맞다. 안정수가 무언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술잔을 들이키자 김우영 부장은 씩 웃으며 그 시커먼 속셈을 입 밖으로 꺼낸다.

“안 사원 어쩐지 아내와 잠자리가 시원찮은 가봐?”

“……예?”

안정수는 자신이 잘못들은 건가 싶어 순간 얼이 빠진다. 평소 덜렁거리는 면이 많은 자신과 달리 깐깐하고, 자존심 강한 아내 엉덩이 밑에 깔려 살다보니 절로 순해지긴 했어도 남에게 그런 말 들을 처지는 아니라는 생각에 기분이 상하려는 데 김우영 부장은 화내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떤가? 아내 말고 다른 여성을 한 번 안아보고 싶은 생각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별거 아닐세. 이래보여도 이 김우영 여성들에겐 상당히 인기가 많은 편일세. 우리 회사에선 날 상대해주는 건 그나마 안 사원정도 뿐이지 않나? 다~안 사원이 고마워서 그런 거야.”

김우영 부장의 말에 안정수는 살짝 코웃음 치며 고개를 살살 젓는다. 집에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뭐 하러 불화의 불씨를 만들겠는가? 

‘뭐……가끔은 그 콧대 높은 아내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걸 상상하지만.’

얼마 전 아내가 만취해 대리기사에게 희롱 당했을 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건 술기운을 빌린 치기어린 행동이었다. 안정수가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살살 젓자 김우영 부장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재차 제안을 한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쩝. 아쉽구먼. 그래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하게나.”

안정수는 직장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김우영 부장이 얼마나 자신에게 고마웠으면 저런 제안까지 하는 걸까란 생각에 안타까우면서도 어쩐지 더욱 친밀해진 기분을 느끼며 서로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달아오른 분위기 덕인지 한 번 물꼬가 터진 여자 이야기는 줄줄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으며 안정수 역시 평소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아내의 대한 음담패설까지 하며 서로 술잔을 기울였다.

김우영과 안정수가 하는 음담패설의 대상이 같은 여자인 것도 모자라 자신의 아내였을 줄은 안정수는 끝까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밤이 깊어갈수록 길거리에 넘쳐나는 사람들도 하나씩 귀가할 그 무렵 평소와 달리 진즉 귀가한 정나은은 가볍게 씻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TV앞에 앉아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개그 프로그램을 정나은은 보는 둥 마는 둥 곁눈질 하며 시큰둥한 모습이다. 그저 집안에 흐르는 정적이 짜증나서 틀어둔 것 뿐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즐길 여유도 남아있지 않다.

“꿀꺽, 꿀꺽, 푸하~”

시원한 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곤 구운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는 모습에서 많은 감정이 묻어난다.

“이놈의 남편은 아내가 오랜만에 일찍 들어왔는데 오지도 않고 말이지~”

하루 종일 김우영에게 시달리곤 오랜만에 일찍 귀가했더니 이놈의 남편은 연락조차도 없다. 애환이 묻어나는 한숨을 내쉬곤 다시금 캔 맥주를 마시는 그녀의 취한 모습은 평소와 달리 상당히 요염하다.

아직 채 마르지 않아 물기를 살짝 머금은 긴 생머리는 향기로운 샴푸 냄새가 솔솔 피어나고, 콧잔등 위에 대충 걸쳐진 반무테 안경은 반쯤 흘러내려 어쩐지 귀엽게 보인다. 무엇보다 취기가 잔뜩 올라왔는지 붉게 달아오른 양 뺨과 붉은 립스틱을 지워 선홍빛이 맴도는 입술은 평소 도도한 캐리어 우먼의 모습과는 정 반대로 싱그러운 매력을 발산하게 해준다. 가느다란 목선을 따라 내려가면 끈으로 된 하얀 민소매 티가 채 가리지 못한 풍만한 곡선을 그리는 젖가슴 윗부분이 무방비하게 보이고 있지만 그 누가 신경쓰랴? 소중한 두 부부의 보금자리인데.

“흐음~조금만 더 먹을까?”

캔 맥주 한 캔을 다 비워버리자 정나은은 눈앞에서 빈 캔을 흔들며 고민에 빠진다. 평소 9시 이후에는 회식이 아닌 한 절대 먹을 것을 먹지 않는 그녀로썬 이렇게 늦은 밤 맥주와 오징어를 뜯고 있는 건 어지간히 스트레스가 쌓였다는 반증이다.

“모르겠다. 먹을래.”

방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그녀는 취기가 잔뜩 올라 초점 맞지 않는 눈동자와 불안한 걸음걸이로 일어서서 냉장고로 걸어간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짧으면서도 편안한 면소재의 귀여운 핫팬츠는 불안한 걸음걸이를 옮길 때마다 실룩이는 엉덩이 라인을 살짝살짝 보여준다.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속이 꽉 차 건강미가 돋보이는 그녀의 다리는 걸어 다니는 일이 많은 그녀의 직업이 무색할 정도로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기어코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하나 더 꺼내 TV앞으로 돌아온 그녀는 칙-하는 캔 맥주의 시원한 소리를 들으며 입가로 옮기며 상념에 잠긴다.

‘큰일이네……가임 기간을 생각 못했어.’

취기 때문에 풀렸던 눈동자에 빛이 돌아오며 정나은은 고민에 빠진다. 예전에 남편과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 주차장 차 안에서 사랑을 나눈 게 생각난다. 남편과 사랑을 나눈 게 문제될 건 없다. 어차피 두 사람은 슬슬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문제는 같은 주에 그 일이 있었단 말이지.’

바로 남편 직장에서 부부 동반으로 펜션으로 놀러간 일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부 동반으로 놀러간 펜션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은 김우영에게 차 안에서 실컷 농락당했다.

그렇다. 남편과 사랑을 나눴을 때도, 김우영에게 실컷 범해졌을 때도 가임 기간이었다는 것. 처음 김우영에게 집에서 억지로 범해졌을 때는 피임약을 챙겨먹었지만 차에서 굴욕적으로 농락당했을 당시에는 피임약을 챙겨먹지 못했다.

“남편이 하루 종일 같이 붙어 있는데 어떻게 먹어…….”

일요일이라는 시간 내내 잔뜩 취한 남편을 간호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자신 스스로도 외출하기 힘들 정도로 힘겨웠다.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에 사먹으려고 마음먹었지만 김우영이 불러내 내기를 제안하고 제안한 그 당일 날부터 자신을 끌고 다니는 바람에 깜빡해 버렸다는 게 화근이다.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하려면 시일이 좀 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임신을 해도 문제다.

“누구 아이일지 어떻게 알아…….”

배속의 아이가 누구 아이일지 아는 건 무리다. 일주일도 아니고 2~3일의 기간 사이에 남편과 김우영의 씨가 자신의 안에 흘러들어온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임신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 문제는 하나가 더 남는다.

내기의 기간은 한 달.

이대로만 간다면 내기가 끝나가는 마지막 주에는 분명 가임기간이 돌아온다는 것.

“그리고 그 빌어먹을 놈은 만약 내가 마지막 주까지 버틴다면 발정난 개새끼마냥 달려들 거란거지.”

정나은은 그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 쳐지는지 마시던 맥주 캔이 손아귀 힘으로 으직하고 찌그러진다. 채 마시지 못한 맥주가 방바닥에 흐르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할 때마다 피임약을 먹어? 피임약이라는 게 그렇게 막 먹어도 되는 건가?”

가장 확실한 건 콘돔을 사용하는 거지만 그놈이 절대 자신의 편의를 봐줄 리 없다는 건 안 봐도 비디오다.

“아아악! 정말이지! 왜 이렇게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거야!”

쾅!

정나은은 씩씩 거리며 다리로 애꿎은 방바닥을 쾅쾅 내려쳐 보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가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인다. 

그로부터 벌써 며칠.

실컷 김우영의 손에 성욕 처리 장난감처럼 다뤄져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도 짜증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아랫배에서 소용돌이치는 이 질척질척한 욕구를 참아내느라 신경이 날카롭다.

성욕이라는 건 참 신기한 욕구다. 3대 욕구 중 식욕과 수면욕과 괴를 달리하는 성욕. 식욕과 수면욕이라는 녀석은 일정 이상을 채우면 끝이다. 배불러서 더 이상 먹질 못하고 자라고 해도 잘 수가 없다. 더 먹거나 수면을 취해봤자 몸을 망칠 뿐이다.

하지만 성욕은 다르다. 성욕이란 건 너무나 강한 쾌락으로 인해 사람이 실신하는 그 순간까지도 탐욕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성인이라는 건 성욕이라는 욕구를 배출하는 법을 알고 있으며 얼마든지 스스로 풀 수 있다.

그 달콤한 과실을 맛본 뒤 강제로 달콤한 과실을 빼앗겨 버린 현재의 정나은은 미칠 노릇이다. 물론 성인이라는 건 그런 욕구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걸 뜻하지만 정나은의 경우는 다르다.

김우영이라는 촉매가 끊임없이 그녀를 자극하고, 또 자극하면서 하루 종일 그녀의 몸을 달아오르게 하고 욕구를 잔뜩 쌓이게 해놓고는 절대 풀어주질 않으니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린 그녀는 그 달콤한 과실을 먹고 싶어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후~정말이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는데…….”

그 증거로 정나은이라는 여성의 매력이 한층 물 오른 게 그 증거다. 자신의 성적욕구를 풀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수컷을 유혹하는 페로몬 같은 달콤하면서도 성숙한 체취가 물씬 풍겨 나오고, 그녀를 휘감고 있는 나른한 분위기하며 자태 하나에서도 어쩐지 묘한 요염함이나 색기가 평소에도 묻어난다.

그녀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매력적이고 나른한 분위기와는 반대로 속마음은 점점 우울해져 갈 무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다녀왔어~”

해맑으면서도 취기가 잔뜩 묻어나는 남편의 목소리가 정나은의 복잡한 심정과 맞물리며 부딪혀 깨진다.

‘아주 아내는 심란해 죽겠는데 신나셨어?! 응?!’

정나은은 그런 남편의 모습이 아니꼬워 인사도 안 받아주고 TV에 시선을 고정한다. 안정수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 실실 웃으며 아내에게 다가가 곁에 털썩 앉는다.

“우리 아내는 뭐가 그렇게 기분이 안 좋을까? 오늘도 그 고객 때문에 힘들었어?”

“한 잔 제대로 걸쳤나봐? 전화 한 통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냐?”

“하하, 미안. 저녁만 간단히 먹고 오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술도 마시게 되고 술 들어가니 저녁 자리가 길어졌어.”

술이 들어가게 되면 저녁자리는 자연스레 길어지기도 한다. 그걸 이해 못 할 정나은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근래 스트레스가 최고조이고, 술까지 들어가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해버려 남편의 걱정 하나 없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나버렸다.

“아, 그러셔? 아내는 집에서 혼자 캔 맥주나 홀짝이며 궁상떨고 있을 때 남편은 소식 하나 없고!”

“……미안해. 전화 한 통 못한 건 잘못했어.”

“됐어!”

안정수는 아내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며 달래주려하자 정나은은 쌀쌀맞게 남편의 팔을 쳐낸다. TV에서 흘러나오는 개그프로그램의 깔깔 거리는 즐거운 웃음소리와는 반대로 두 부부가 앉아있는 거실에는 무거운 정막이 가라앉는다.

“요새 힘든 건 아는데, 이렇게 화 낼 것까진 없잖아. 대체 왜 그래?”

평소의 안정수라면 자신이 한 수 접고 들어가며 자존심 강한 정나은의 기분을 살살 맞춰줬겠지만 술만 들어가면 대담해지는 그의 성격 때문인지 아내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났다. 정나은은 그런 남편의 태도에 자신은 더 할 말 없다는 것을 온 몸으로 주장하며 시선조차 맞추질 않는다.

“후우~먼저 들어갈게.”

안정수는 그런 차가운 아내의 태도에 더 이상 따지고 들었다간 정말로 싸움 날 것 같아 씁쓸함을 느끼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정나은은 한참을 그렇게 고개 숙이고 주저앉아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도 사그라지고, 개그프로그램이 끝을 알리기 시작할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정나은은 숙였던 고개를 든다. 그녀의 눈동자는 살짝 물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자신의 눈동자에 맺힌 물방울보단 그녀의 가슴속에 소용돌이 치고 있는 감정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실수했다…….’

정나은은 남편에 대한 미안함에 가슴이 미어진다. 날카로워진 기분 때문에 평소라면 그저 웃고 넘어갈 일을 키워버렸다. 안 그래도 사랑하는 남편 얼굴을 보고 위안을 얻고 싶은 밤이었는데, 도리어 싸우기까지 했으니 더욱 가라앉는 기분을 더 이상 주체할 수가 없다.

동시에 이런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다.

괜히 그 드높은 자존심을 세워, 엮이지 않아도 될 일에 목을 들이민 것은 자신인데 그 분풀이를 남편에게 해버렸으니 그저 슬플 뿐이다.

“……하아. 한 잔 더 할까?”

정나은은 손에 든 찌그러진 맥주 캔을 내려놓고 냉장고에서 한 캔을 더 꺼내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들여 마신다. 남편이 잠들기 전에는 도저히 들어갈 자신이 없어 그렇게 밤이 깊어가길 바라고 또 바라며 맥주를 털어 넣는다.

‘내일은 사과해야지.’

사과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사과하는 것도 너무 자존심 상하니깐 저녁 먹으며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정나은이 그녀답다면 그녀다웠다. 어떻게 사과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정나은은 짙은 밤의 장막이 걷히기 몇 시간 전에 겨우 안방으로 들어가 잠든 남편 곁에 조심스레 그 지친 몸을 뉘었다.

짙게 내려앉은 밤의 장막이 올라가고, 상쾌하고 따스한 아침햇살이 깨끗하게 빛나는 창문 너머로 스며든다. 안정수와 정나은의 두 부부의 보금자리에 스며든 아침햇살은 거실에 어색하게 내려앉은 정막을 밀어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평소라면 두런두런 이야기가 오갈 아침식사 시간도 식기가 내는 소음만이 들리고, 먼저 출근하는 안정수의 간단한 인사에 정나은은 평생 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어색한 몸짓과 목소리로 배웅한다.

‘미안하긴 한가보네. 오늘은 일찍 들어와야지.’

아침 내내 숨 막히게 들어찬 어색한 공기 때문에 골머리를 썩을 뻔했던 안정수는 아내의 어색한 몸짓과 목소리에 그래도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닫고 오늘은 일찍 귀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으으……얼른 사과해야지.”

정나은은 아침을 먹으면서도 힐끔힐끔 남편을 곁눈질로 훔쳐보며 남편의 기분을 살폈다. 살아생전 처음 해보는 경험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겨우 참아냈다.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사과의 말이 튀어나가려는 자신의 입을 단속하느라 진을 뺐다. 아무리 그래도 싸운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바로 고개 숙이고 들어가는 건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 못한다. 

최소한 저녁!

정나은은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론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출근길에 올랐다.

하지만 고민을 거듭한 정나은의 사과의 말은 애석하게도 그 날 저녁 건네질 못했다…….

최악의 기분으로 시작한 자신과는 반대로 드넓은 하늘은 청량하고, 떠다니는 뭉게구름은 새하얀 와이셔츠처럼 산뜻함을 뽐내며 하늘을 유유자적 흘러가고 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오늘은 별로 손도 안 대고 있고.’

정나은은 오늘도 얼마나 김우영에게 괴롭힘을 당할지 걱정을 했건만 그는 평소와 달리 가끔 자신의 몸을 더듬는 것 외에는 말을 거는 것조차 드물다. 남편과 싸웠던 일만 아니면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함에 정나은은 기분이 좋다.

‘이대로라면 오늘도 일찍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안 그래도 오늘 일찍 들어가야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신경질 낸 것을 사과할 수가 있다. 다만 문제라면 이 남자는 자신의 편의 따위는 봐줄리 없다. 일찍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간 오히려 더 붙들어 놓을 것 같아 그저 묵묵히 그의 뒤를 평소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나름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쾌청한 날씨를 즐기려는 듯 공원등지를 산책하는 둥 오늘따라 기묘하리만치 평범한 행보에 정나은은 슬슬 의심이 피어오른다. 산책이 끝나자 근처 카페에 들어가선 디저트와 커피를 시켜놓고 시간을 죽이는 모습이 세상에 근심이라곤 없어 보이는 사람 같다.

“……할 말 있나?”

“……아냐.”

정나은의 의심어린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김우영은 그저 웃어넘길 뿐 별 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 달콤한 커피를 빨대를 통해 쪽 빨면서도 점점 치켜 올라가는 정나은의 눈매는 그의 속셈을 까발리기 위해 부지런히 두런거린다.

“그나저나 한결같은 정장이라니 지치지도 않나?”

“누구와는 달리 난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요즘엔 일을 거의 못했지만 곧 그 보상은 받을 수 있겠지. 그리고 누구 때문에 더러워진 정장 드라이하는 것도 고역이라고!”

안 그래도 몇 벌 없는 정장이 매일같이 더러워지니 드라이를 하는 것도 꽤나 힘들다. 그렇다고 정장 차림을 그만두자니 김우영에게 자신의 일상이 변한다고 여겨져 그건 또 싫다.

김우영은 커피를 쪽 빨면서 그녀의 정장 차림을 살펴본다. 부드러운 상아색과 깔끔한 흰색, 표준적인 검은색 정장만 입는 모습을 봐왔지만 그런 고역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렇군.’

자신은 더럽히는 입장이다 보니 거기까지 생각이 못 미쳤다. 평소와 똑같이 틀어 올린 머리와 살짝 보이는 가냘픈 목선이 아름답다. 한결같은 티 하나 없는 흰색 와이셔츠와 그 위에 옷맵시를 살린 검은 정장. 날씨가 좋아서인지 검은 스타킹 대신 티가 안 나는 살색 스타킹을 입고와 그녀의 뽀얀 다리가 고스란히 햇빛에 반사되며 빛난다.

“슬슬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

“……아직 늦은 오후인데?”

카페에서 한참을 죽치고 멍하니 시간을 때우던 두 사람이었지만, 김우영의 뜬금없는 제안에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을 시작한다.

“오늘은 고기나 먹으며 술 한 잔?”

“…….”

정나은은 찌푸려지려는 눈살을 억지로 되돌리며 평정을 가장한다. 여기서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면 이 남자는 저녁자리를 길게 끌게 틀림없다. 그저 무표정하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슬슬 그의 뒤를 따라 이른 저녁을 술과 함께 먹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러 어스름한 황혼이 서서히 도시 저편으로 기울기 시작할 무렵, 길거리에도 일찍 퇴근한 직장인들이 하나, 둘 끼리끼리 어울리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직장인들이 음식점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서서히 시끌벅적함이 식당 안을 가득 채운다.

“꿀꺽, 꿀꺽!”

정나은이 500cc 맥주잔을 호쾌한 기세로 들이키고 있다. 이른 시간부터 고기를 먹으며, 조금씩 술잔을 기울이던 김우영과 정나은이었지만 저녁자리가 길어짐에 따라 술을 적게 먹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상당한 양의 술병이 나뒹굴고 있다.

“……은근히 주당인데?”

김우영은 정나은의 주당에 살짝 놀랐다. 사회생활을 오래해서일까? 아니면 선천적으로 술을 잘 마시는 걸까? 고기를 안주삼아 마시기 시작한 그녀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당히 경계하며 술을 안 마셨지만 자신의 끈덕진 권유로 조금씩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게 웬 걸?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자 알아서 꿀꺽, 꿀꺽 마치 물 들이키듯 마셔대는 그녀의 모습에 살짝 얼이 빠져버렸다.

‘게다가 소주, 맥주 할 것 없이…….’

술이라는 게 속에 들어가 섞이면 상당히 괴롭다. 폭탄주라는 게 도수보단 그것들이 섞이면서 생기는 시너지 효과 때문에 취하는 것이다.

“신경 끄시지?”

살짝 혀가 꼬일 뻔 했지만, 아직 죽지 않은 흉흉한 눈매하며 살벌한 눈빛으로 김우영을 쏘아본 그녀는 다시금 고기를 먹으며 술을 들이킨다. 정나은은 그와 술을 마시더라도 취할 정도로 마실 생각은 없었다. 그저 고기나 왕창 먹고 김우영의 지갑을 가볍게 할 생각이었는데, 직장인의 나쁜 버릇 중 하나가 튀어나와버렸다. 

바로 술로써 현실을 잊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

‘으으, 남편 얼굴을 어떻게 보지.’

근래 들어 쌓일 때로 쌓인 그녀의 스트레스는 거의 한계에 달했다. 어제만 하더라도 술로써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다가 남편과 다투는 바람에 기분이 더욱 가라앉아 버렸다.

‘게다가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어……하여간 이놈의 자존심 때문에…….’

이미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몸이다. 

처음에 억지로 몸을 더럽혀지고, 떨어진 자존심을 회복하겠다고 여기까지 온 자신이 한심하다. 이미 내리기엔 너무 멀리까지 와 이젠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 밖에는 남지 않았다.

자신의 아니꼽고 높은 자존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남편과 다퉜다는 것이 방아쇠가 되어 자괴감에 빠져 부글부글 끓던 참이었는데 술이 들어가니 알딸딸하게 달아오르는 기분 좋은 감각에 취해 연거푸 들이키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직장인들이 술을 못 끊는 거야.’

사랑하는 남편을 보듯 그윽한 눈으로 술을 내려다보는 정나은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이 술기운을 빌어 스트레스를 풀고, 현실을 외면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녀의 경우는 같잖은 자존심 때문에 하게 된 김우영과의 내기와 쌓인 성욕이라는 것이 더해졌으니 오죽하겠는가?

“슬슬 일어날까?”

전투적으로 술과 고기를 먹어치우던 정나은과 적당히 술을 즐기며, 마치 에너지라도 비축하듯 고기를 먹어치우던 김우영은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식당에서 나왔다.

“후우~”

식당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밤공기가 술기운에 달아오른 정나은의 몸을 식혀준다. 김우영은 그런 정나은을 바라보다 걸음을 옮기자 정나은도 슬금슬금 뒤를 따르려는데, 발이 꼬인다.

“그렇게 들이붓고도 하이힐 신고 걷는 게 신기할 정도군.”

“이제 오늘은 해산이지?”

부축을 해준 모양으로 다가온 김우영의 팔을 쳐낸다. 죽어도 김우영의 부축을 받기 싫다는 것을 태도로 들어내듯 허리를 쫙 피곤 어설픈 걸음걸이로 걷기 시작한 정나은의 뒷모습을 보며 김우영은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정말이지 재미있다니깐…….”

김우영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취한 정나은을 근처 모텔로 억지로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굳게 닫힌 모텔 방 현관문 안쪽에는 검은 여성용 하이힐과 남성용 구두가 아무렇게나 내팽겨져 있고, 현관문부터 떨어져 있는 막 벗어놓은 옷가지는 구겨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어지럽게 흩어져 방 안쪽으로 이어져 있다.

방 안에 있어야 할 옷가지들의 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방 안에선 여전히 적막이 흐르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듯 더욱 안쪽에 비치된 샤워실로 이어지는 문은 살짝 열려있어 쏴아아-하는 시원한 물소리와 더불어 수중기가 은은하게 새어나오고 있다.

“……! 잠깐!”

벌어진 문틈 사이로 당황한 여성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곧이어 목조 안의 여성이 발버둥이라도 치는지 욕조 안을 가득 채운 물이 출렁이며 넘치는 소리가 샤워실 안을 울린다. 머리 위로 계속해서 쏟아지는 샤워기의 뜨거운 물이 욕조 안을 채우는 소리와 여성의 당황스러워하며 발버둥 치는 목소리가 계속 새어나오더니 곧이어 벌어진 문틈 사이로 불쑥 여성의 뽀얗지만 육덕진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욕조에 걸쳐진 여성의 다리는 힘이 잔뜩 들어가 뻣뻣하게 굳어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한참을 그렇게 실랑이 하는 목소리와 출렁이는 물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샤워실 안은 곧이어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만이 가득 찬다. 욕조에 걸쳐져 있던 여성의 다리도 뻣뻣하게 힘이 잔뜩 들어갔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여성의 다리는 나른하게 축 처진 채 풀려있고, 종아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이따금 경련하듯 살짝 떨리는 다리의 움직임에 맞춰 욕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아름다울 정도로 관능적이다.

“…….”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소리 말고도 이따금 물이 출렁이는 소리와 가냘프면서도 무언가 본능을 자극하는 여성의 비음이 살살 흘러나온다. 그렇게 한참을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뜨거운 물속에 들어가 있던 방 안의 주인은 곧이어 샤워실을 나선다.

샤워실의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알몸의 김우영과 정나은이었다.

“……으음.”

김우영은 축 처진 정나은을 부축한 채 샤워실을 나섰는데, 온 몸이 노근하게 퍼져 힘이 안 들어가는지 그녀의 입에선 나른한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김우영은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그녀를 부축한 채 침대 위에 휙 던지자 정나은은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진다.

“…….”

침대에 내동댕이쳐진 충격을 부드러운 침대가 고스란히 받아내는 것도 잊은 채 정나은은 노곤하게 퍼진 몸과 나른함을 느끼며 잠이 오려는 걸 억지로 참고 있다.

‘이 남자 정말이지……여자를 기쁘게 하는 건 뭐든 잘하는구나.’

욕조 안에서 한 그의 마사지는 묘하게 성감대를 자극시키는 것도 모자라 쌓인 피로감을 해소시키며 온 몸을 노곤하게 퍼지게 하는 그 섬세함에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다. 지금껏 난폭하게만 다뤄져 몰랐지만 의외로 섬세하기 그지없는 그의 손놀림에 저항할 새도 없이 들이닥치는 나른함에 정신이 몽롱하다.

‘이래서 술을 마신건가…….’

술기운도 있지만, 오랜 시간 뜨거운 물속에서 묘하게 성감대를 자극하면서도 피로감까지 날려주며, 섬세하게 이뤄진 그의 마사지에 기분 좋은 현기증마저 느끼며 지금 당장이라도 꿈의 나라로 날아가려는 의식을 억지로 붙들고 있다. 지금 잠들었다간 절대로 오늘 내로 집에 못 들어간다. 그걸 알고 있기에 버티고 있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푹 퍼져버린 자신의 몸은 휴식을 요한다.

김우영은 침대 위에 쓰러진 정나은을 내버려둔 채, 미리 준비해둔 콘돔과 최음 효과가 들어간 젤을 가지고 온 김우영은 콘돔을 하는 등 준비를 하며 찬찬히 푹 퍼진 유부녀의 여체를 내려다본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흑단 같은 머리칼은 뽀얀 피부에 달라붙어 있고, 반쯤 감긴 눈망울은 평소의 고양이 같은 날카로움은 남아있지 않고 몽롱하니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잠들 것처럼 흔들리고 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선홍빛 입술은 촉촉하게 젖어있고, 입에서 색-색-새어나오는 숨결은 달콤한 술의 향기가 풍겨온다. 닦지 않아 군데군데 맺혀있는 투명한 물방울이 그녀의 탐스런 몸매 라인을 따라 또르르 흘러내리며 침대 시트를 적시며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젖가슴과 풍만한 엉덩이는 푹 퍼진 몸의 영향을 받기라도 했는지 한결 부드러워 보인다.

‘슬슬 시작해 볼까?’

노곤한 몸을 주체 못하고, 나른함이 풀풀 풍겨져 나오는 유부녀의 여체를 감상하던 김우영은 능글맞은 미소로 그녀의 몸을 뒤집어 엎드리게 한다. 정나은은 노곤한 몸 때문인지 평소와 달리 그저 김우영의 손길에 저항감 없이 뒤집어 진 채 잠들 것처럼 고요한 숨결을 내뱉을 뿐이다.

“햐읏?!”

의식의 끈을 놓고 꿈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려는 정나은이었지만, 엉덩이 골 사이로 파고드는 차갑고, 질척한 감각에 자신이 낸 것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귀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김우영이 그녀의 엉덩이 골 사이로 최음 효과가 있는 젤을 듬뿍 흘려 넣었기 때문이다.

나른하게 퍼져있던 그녀의 몸이 새로운 자극에 살짝 힘이 돌아오는 걸 느끼고, 버둥거려봤지만 김우영은 그녀의 등을 내리 누르며 섬세한 손길로 젤을 꼼꼼하게 마사지 하듯 펴 바른다.

“…….”

살짝 빛이 돌아왔던 정나은의 눈동자는 계속해서 이어진 김우영의 섬세한 마사지와 젤에 함유된 최음 효과로 한층 몸이 푹 퍼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평소와 달리 김우영은 시간을 들여 정나은의 몸을 마사지하며 더욱 푹 퍼지게 해준다.

“……이제 다 된 것 같군.”

차가운 젤이 김우영의 손길에 따스해질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꼼꼼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마사지를 한 그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고 그녀의 몸 위에 자신의 몸을 겹쳐내리 누른다.

“……으음.”

거의 반쯤 잠이 든 정나은은 자신의 몸 위를 짓누르는 김우영의 무게에 다시금 의식이 돌아온다. 정나은은 그렇게 다시금 떠오르는 의식 속에서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중압감을 느끼며 자신의 양손 위로 그의 손이 겹쳐지는 걸 느낀다. 손가락 사이로 얽혀 들어온 그의 투박한 손가락이 자신의 손을 깍지 끼듯 얽히고 동시에 그가 자신의 몸 위에서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며 용쓰고 있는 감각에 더욱 의식이 떠오른다.

“……지금 뭘.”

나른함이 묻어나는 잠긴 정나은의 목소리는 그 답을 구하기 전에 점점 확실하게 느껴지는 이물감에 퍼뜩 정신이 든다. 자신의 엉덩이 위에서 느껴지던 딱딱한 감각이 서서히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자, 잠깐! 거……!”

다급함이 묻어나던 정나은의 목소리는 말을 끝맺기도 전에 울려 퍼지는 한층 찰진 소리와 침대의 출렁임에 흡수되어 사라져 버렸다. 지금까지 노곤하게 풀려있던 정나은의 몸이라곤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힘이 잔뜩 들어간 채 경련하듯 부들부들 떨리고 있고, 깍지 낀 정나은의 양 손은 침대 시트를 쥐어뜯을 듯이 붙잡고 하얗게 질릴 정도로 떨리고 있다.

“……!”

실 끊어진 인형마냥 침대에 묻고 있던 그녀의 고개는 뻣뻣하게 쳐들린 채 김우영의 눈앞에서 애처롭게 떨리고 있고, 반쯤 감겨 몽롱하게 풀렸던 눈동자는 찢어질 듯 커져 자신의 몸에 가해진 감각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허공을 헤맨다. 무엇보다 앙증맞게 다물어져 달콤한 술의 향기만 새어나오던 그녀의 입은 더 할 나위 없이 쩍 벌어져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촉촉한 입술이 소리조차 되지 못한 비명을 표현하며 그녀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각을 조금이라도 토해내려는 것 같다.

“……아! 으, 아……!”

조금씩 새어나오는 목소리는 단어가 되지 못하고, 김우영의 배아래 깔린 정나은은 마치 작살에 맞은 물고기 마냥 조금도 미동도 못하고 애처롭게 떨고 있을 뿐이다. 김우영이 허리를 내려치는 순간 튕겨져 나가듯 쫙 뻗은 그녀의 육덕진 다리는 힘이 잔뜩 들어갔고, 발가락마저 오므려진 모습이 의아함까지 자아낸다.

그 의아함의 원인은 역시나 김우영 때문이다.

김우영은 자존심 쎈 그녀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길 원했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엉덩이 골 사이에 핀 국화꽃 모양의 또 다른 구멍이다. 자존심 강한 그녀라면 사랑하는 남편이라도 절대 이런 사랑을 나눌 리 없다고 판단하고 강행한 것이다.

‘그리고……정답인가 보군.’

조금 전까지만 해도 푹 퍼져 나른함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없던 그녀가 이토록 큰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평소와 달리 오랜 시간을 들여 그녀의 몸을 풀어주고, 최음 효과가 들어간 젤까지 사용했다. 원래 이 젤은 이런 용도로 쓰기 위함이다. 자칫 잘못하면 아프기만 한 것을 여자도 쾌락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젤. 그런 젤을 처음 정나은을 취할 때 음부에 사용했으니, 아무리 지조 높은 여성이라도 쾌락에 푹 절여져 울부짖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즐기자고?”

자신의 배아래 깔려 애처롭게 떨고 있는 정나은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김우영은 평소와 달리 느긋하게 기다린다. 한참을 그렇게 뻣뻣하게 굳어있던 정나은의 몸이 서서히 풀리는 걸 느낀다. 정확하게는 더 이상 온 몸에 줄 힘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 경련하던 그녀는 처음 느끼는 그 이물감과 그럼에도 달아오르는 자신의 몸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어째서?’

처음 느끼는 감각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그녀는 서서히 힘이 빠지면서 아랫배에서 솟아나기 시작한 뜨거운 감각이 전신으로 퍼지는 걸 느끼고 있다. 단 한 번의 허리 튕김도 없었음에도 그녀의 몸은 서서히 달아올라 땀이 송골송골 솟아난다.

김우영은 서서히 정나은의 몸이 풀리는 걸 느끼며, 그녀의 가냘픈 뒷 목선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살짝 장난기가 샘솟아 그곳에 혀를 가져다 댄다.

“햐으항?!”

겨우 이물감에 적응되어 갈 무렵 갑작스레 까칠한 것이 자신의 민감해진 목덜미를 지나가는 감각에 화들짝 놀라며 튕겨져 나갈 뻔 한다. 하지만 김우영이 내리누르는 중압감에 미동도 못하고 그저 김우영이 놀리는 혓바닥의 감각을 고스란히 느끼며 한층 달아오르는 몸을 느낀다.

김우영은 서서히 그녀의 몸에서 샘솟기 시작한 땀 때문에 그녀 특유의 체취가 피어오르는 걸 코끝으로 느끼며 혀로는 가냘픈 목덜미를 시작해 흑단 같은 머리카락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귀를 살짝 깨물자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귀여운 비명에 스스로도 부끄러운지 침대 시트에 얼굴을 파묻어 버린다.

“그럼…….”

김우영은 드디어 허리를 조금씩 움직이며 새로운 자극을 자신과 그녀의 몸에 새긴다. 겨우 안정되었던 정나은은 새로운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쭉 뻗었던 다리를 반쯤 접어 허공에서 힘을 준 채 견디고 있다. 김우영은 그런 그녀의 사정도 모른 채 재차 허리를 강하게 내려찍자 찰진 소리와 침대의 삐걱거림이 하모니를 이루며 방 안을 울린다.

“하으윽! 흐으!”

정나은은 재차 느껴진 그 중압감과 이물감이 파고드는 감각에 반쯤 접었던 양 다리를 버둥거리며 침대 시트를 내려친다. 그녀가 양 다리를 버둥거리며 침대를 내려칠 때마다 그 출렁임이 침대 전체에 전해지는 걸 두 사람은 느끼고 있다.

‘이건 이거대로 좋군.’

김우영은 침대에서 전해지는 묘한 진동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정나은의 발악 아닌 발악이 끝나자 김우영은 재차 조심스럽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며 격렬하기만 했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섬세함을 보여주며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그녀의 몸에 쾌락을 새기듯이 오랜 시간을 들여 허리를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어스름한 조명이 모텔 방 안을 비추고, 샤워실 안을 가득 채웠던 수증기도 더 이상 새어나오지 않게 되었을 무렵.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했던 샤워실의 열기를 빼앗아 온 것처럼 방 안의 공기는 후끈 달아올라 있다. 후끈 달아오른 공기는 뜨거움만을 내포한 것이 아닌 야릇하면서도 비릿한 밤꽃 향기가 섞여있는 것이 남녀가 이 방 안에서 살을 섞고 있다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게 해준다.

“후욱! 후욱!”

그를 반증해주듯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연속해서 토해져 나오고, 그의 목소리와 호응하듯 평소보단 느리지만 그럼에도 힘이 느껴지는 둔탁하면서도 찰지기 그지없는 소리가 침대의 삐걱거림과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방바닥에 어지럽게 아무렇게나 내팽겨져 있는 옷가지들을 따라가면 출렁이는 침대 시트가 보이고, 상당한 힘을 받아내고 있는지 그 침대 시트는 어지럽게 흔들리며 침대 위에서 이뤄지고 있는 격렬한 행위를 연상케 해준다.

침대 위에 살을 섞고 있는 두 남녀는 상당히 오랜 시간 관계를 가졌는지, 두 사람의 몸은 푹 젖어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남자가 강하게 허리를 내려찍을 때마다 두 남녀가 뿜어내는 퇴폐적인 공기가 훅, 훅하며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새하얗기만 하던 침대 시트는 두 남녀가 흘린 체액으로 푹 젖었으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콘돔들이 이리저리 침대 시트 위에 떨어져 있다. 의아하게도 그 안의 있어야 할 욕망의 덩어리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새어나오지 않았음에도 강렬한 밤꽃 향기는 어디서 풍겨오는 것일까?

그 향기를 따라가 보니 김우영의 배아래 깔려 그 강한 허리힘을 고스란히 받아내면서도 미동도 않고 있는 정나은의 몸에서 솔솔 풍겨져 나오고 있다. 마치 다 흡수된 것처럼 그녀의 번들거리는 몸에서 그녀의 체취처럼 물씬 피어오르는 향기가 퇴폐적이기까지 하다.

“크윽! 마지막!”

연신 허리를 튕겨대던 김우영은 곧이어 강하게 허리를 내려찍더니 그녀의 몸을 자신의 체중으로 짓누르며 부들부들 떤다. 지금까지 미동도 않던 정나은도 무릎을 때리면 자신도 모르게 튀어 오르는 다리처럼 조건 반사라도 일어난 것 마냥 몸에 힘이 들어가는 모습이 절정이라도 온 것처럼 보인다.

짓눌러 터트릴 듯한 중압감으로 내리누르며, 절정을 맞고 있던 김우영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그녀의 엉덩이 속에 파묻었던 걸 끄집어내자, 정나은의 풍만한 엉덩이는 움찔하며 한차례 크게 경련한다.

“후우우~”

김우영은 만족스런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콘돔을 벗겨내곤 그 안에 잔뜩 싸지른 자신의 욕망의 덩어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한다.

‘등이나 머리카락에는 잔뜩 발라줬으니…….’

침대 시트에 사지가 풀려 엎드린 정나은의 번들거리는 매끄러운 등과 흑단 같지만 푹 젖은 머리카락을 내려다본다. 이미 몇 번이나 밤꽃 향기가 피어오르는 욕망을 마사지 하듯 펴 발라놨으니 꼼꼼하게 안 씻으면 냄새가 남을지도 모른다.

“역시 마지막은 이거겠지?”

김우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깔끔하면서도 심플한 디자인의 은색 반지 위에 걸쭉하고 탁한 자신의 욕망을 콘돔 속에서 쏟아내 반지를 더럽힌다. 정나은은 자신의 결혼반지가 더럽혀지는 것도 모른 채 미동조차 않고, 간헐적으로 몸에 쌓인 쾌락을 배출하듯 부들부들 경련할 뿐이다.

“잘 됐군.”

김우영은 결혼반지를 실컷 더럽힌 뒤 쓴 콘돔을 그녀의 등에 휙 던져버리곤 만족스럽게 웃는다. 

그렇다. 그도 그녀도 만족해 버렸다.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응? 콧대 높으신 고양이 양?”

엎드린 채 잠든 정나은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만족한 여자의 얼굴이다. 지금까지 본 쾌락에 푹 절여진 여자의 얼굴이 아닌 만족한 얼굴.

“이쪽 구멍도 잘~열렸고 말이지.”

탐스러운 엉덩이 골 사이에 핀 국화꽃은 상처하나 없이 깨끗하게 열렸다. 그 아래 촉촉하게 젖은 음부도 상당히 만족했는지, 애액이 울컥울컥 토해져 나와 침대 시트를 적시고 있는 게 보인다.

이를 위해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차분히 들여 그녀를 욕구불만으로 만든 거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안기지도 못하고, 혐오스런 남자의 손에 욕구불만으로 몸은 점점 달아오르고, 게다가 마지막엔 살아생전 처음 겪는 새로운 감각으로 인해 만족 시키는 것.

“뭐……덕분에 난 서비스하느라 별로 못 즐겼지만 됐나?”

의외로 천천히, 그리고 여자를 만족시켜줄 정도로 오랜 시간을 들여가며 관계를 하는 건 남자 입장에선 엄청난 심력소모가 뒤따른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다. 이 만족한 얼굴을 보고 있자면 첫 번째 고비는 잘 넘어간 셈이다.

김우영은 침대 위에 엎드린 채 미동조차 못하고 만족스런 얼굴로 잠든 그녀의 모습을 스마트 폰으로 열심히 찍어댄다. 

뽀얀 피부 위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 하며, 완전히 푹 퍼진 유부녀의 여체. 그 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향기와 분위기가 사진 너머로도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무엇보다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매는 사라지고, 곱게 닫힌 눈망울은 귀엽기까지 느껴진다. 만족한 여자의 얼굴이 된 정나은의 무방비한 얼굴도 잘 보존해준다.

“다음에 만날 때 보여줄 사나운 눈매나 날카로운 눈빛이 기대되는데?”

김우영이 샤워하고 나올 때까지 정나은은 침대에 쓰러진 채 미동도 않고 있다. 주섬주섬 떨어진 옷가지에서 자신의 옷을 주워 입은 김우영은 잠든 정나은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민다. 그녀의 색-색-거리는 숨소리와 아직 미묘하게 남아있는 달콤한 술의 향기를 느끼며 살짝 벌어진 선홍빛 입술에 자신의 입을 맞춘다.

“음…….”

혀가 오가는 농밀한 키스에 정나은은 잠결에 눈을 찌푸려 보지만 김우영은 아랑곳 않고 그녀의 말랑한 입술과 그 속에 남아있는 달콤한 향기를 마음껏 탐한다. 그녀의 입술을 타고 침이 흐를 정도로 농밀한 키스가 오가고 김우영이 입을 떼자 살짝 숨이 막힌 정나은은 눈을 찌푸린 채 모자란 숨을 몰아쉰다.

“어서 안 일어나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편의 머리에 뿔이 돋아날지 모른다고?”

김우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시간을 확인한다. 이른 시간 모텔에 들어왔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였음에도 이제 아슬아슬하게 날짜가 바뀌려는 시간이다.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정나은을 내버려 둔 채 모텔 방을 나섰다.

철컥하는 굳건한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방 안에는 지금까지의 격렬하고 뜨거웠던 폭풍이 거짓말처럼 정적이 들이닥친다. 고요한 정적 속 정나은이 내쉬는 숨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방 안을 채우며, 그녀의 몸에서 피어나는 야릇한 밤꽃 향기가 김우영의 욕망처럼 그녀의 육체를 침식해 들어가듯 잔뜩 배어들고 있었다.

주말의 밤을 하얗게 태우고, 집으로 귀갓길을 서두르는 사람들.

주말임에도 이미 집에 일찍 돌아와 궁상을 떨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어젯밤에 자신의 아내가 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잔뜩 취해 자신과 싸운 마루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그의 이름은 안정수다.

“……늦네.”

어젯밤도 그렇고 오늘 아침에도 아내와의 싸움 때문에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두 부부 사이에 감돌았다. 아내도 분에 못 이겨 버럭 소리 지른 걸 미안해하는 눈치였기에 오늘은 회사가 끝나자마자 잽싸게 귀가했거늘…….

밤이 깊어갈수록 아무래도 회식이라도 있나보다 했다. 연락 한 통 없는 건 어제에 대한 복수인가 싶어, 미안한 마음에 그저 묵묵히 기다렸다. 혼자 적막한 집안에 들어앉아 있으려니 심심해 TV도 보고, 캔 맥주도 입가심으로 한 캔 정도 비우고 있자니 벌써 시간이 자정이 다되어 날짜가 바뀌었다.

“흐음……무슨 일 있나?”

맞벌이 부부가 어떨지 몰라도 안정수, 정나은 부부는 서로의 사회생활에는 가급적 존중해주는 식이다. 그럼에도 전화 한 통 없는 건 어제에 대한 복수인가 싶어 잠자코 있었거늘 생각보다 늦어지는 시간에 걱정이 앞선다. 안정수는 한숨을 내쉬며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설마 전화해주길 기다린 건 아니겠지?’

자존심 강한 아내는 의외로 이런 걸 챙겨주길 바라며 삐질 때가 종종 있는데, 결혼한 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여자의 이런 심리는 아직도 파악하기 힘들다.

삐졌다는 알기 쉬운 신호라도 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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