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37)

“ 헉헉. 민아, 조금만 천천히 가.”

“ 엄마, 힘 들어? 내가 업어 줄까?”

“ 호호호, 이래 보여도 제법 무거워.너한텐 무릴 걸?”

“ 응? 에이. 그래 봐야 얼마나 나가려고?”

“ 에휴. 나도 처녀 적엔 한 몸매 했었는데.이제는 여기저기에 군살이 붙고.

이게 모두 너랑 네 아빠 때문이야.

두 남자가 내 속을 썩이니까 그 스트레스가 살로 다 가는 거야.흥.”

달빛에 비친 엄마의 하얀 이마 위로 늘어진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마흔 초반의 중년이라지만 살이 쪘다고 투덜거리는 엄마의 말과는 완전히 반대로

아직도 날씬해 보이는 하늘하늘한 몸매가 마치 가을 들녘의 코스모스처럼 상큼해 보이기만 했다.

“ 엥? 아버지는 몰라도 난 왜 거기에 포함되는데?”

“ 몰라, 남자들은 다 똑같아.너도 어른이 되면 네 아빠처럼 그러겠지.뭐.”

“ 엄마, 난 지금도 어른이라고.”

“ 흥. 내 눈엔 그냥 덩치 큰 어린애야.”

“ 에이.씨.아버진 괜히 아는 사람들을 만나서는.나까지 욕을 먹게 만들고.”

바닷가로 여름 휴가를 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하필이면 아버지의 회사 사람들을 만난 게 화근이었다.

얼결에 아버지의 부하 직원들이라는 남자들에게 이끌려 

모래 사장에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서 술판이 벌어지자, 

그때부터 민과 엄마에게는 지겹기만 한 자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직원들의 애인이라는 젊은 여자들이 한 노출이 심한 옷차림에 

아버지가 희희낙락해서는 여기저기서 권하는 술을 마시고 취해서 

눈치를 주는 엄마에게 귀찮다는 듯이 먼저 가라는 손짓을 하자 엄마는 화가 나고 말았었다.

“ 너도 지금이야 대학에 갓 입학해서 아직 정신이 없어 그렇지.

여자 친구만 생겨봐라, 아주. 가관일거다.

남자는 그저 늙으나 젊으나 어린 여자만 보면 눈이 뒤집혀서는.흥.”

“ 아이참. 난 이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예쁜 걸?”

“ 됐네요. 옆구리를 찔러서 절 받을 마음은 없어요.”

“ .정말인데.”

민이 마지막에 중얼거린 건 진심이었다.

아버지는 예전부터 술만 취하시면 민을 붙들고 자랑처럼 대학생이던 엄마가 얼마나 예뻤는지를, 

그리고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비장의 수로 던진 게 민이었다는 말로 엄마가 얼굴을 붉히게 만들곤 했다.

어릴 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었지만 

가끔 이모가 말한 워낙 머리가 좋았던 엄마가 제대로 공부만 했더라면 

최소한 박사는 됐을 거라는 이야기와 연결이 되자 나중에야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다.

무슨 수를 썼었는지는 당사자들이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복학생이자 선배였던 아버지가 당시 신입생이던 엄마를 임신시키는 바람에 

결국 엄마는 대학 생활 1년 만에 자퇴를 하고서 결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한탄을 하는 게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민의 기억에 엄마가 자신을 원망하는 듯한 어떤 기미도 보인 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남편 없이는 살아도 아들 없이는 못살 거라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을 정도였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몸이 약했던 민은 자신이 기억할 때부터는 언제나 엄마의 품 속에서 잠을 잤었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친구들 중에 엄마와 같이 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서 

어느 날 밤 화를 내며 혼자 자겠다고 소리를 질러 엄마를 눈물짓게 만든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것은 사춘기가 되면서는 더더욱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친구나 책 그리고 동영상 같은 걸 통해서 남녀의 관계에 대해 조금씩 배워나가자 

그때서야 엄마만큼 아름다운 여자가 드물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에 고정되어 버린 자신의 시선.

그제서야 자신이 스스로 거부했던 낙원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한때의 방황으로 표면적으로는 학교나 부모님에게 모범생으로 보이게 행동했지만 

뒤로는 몇몇 친구들과 어울려 술과 담배를 배우고 여자까지 알아버렸었다. 

하지만 그 끝에 결국 느낀 것은 허무함과 자기 비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엄마 외의 다른 여자에게서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민에게는 도저히 꺾을 수 없는 벼랑 위에 핀 꽃, 그것이 엄마였다.

그렇기에 더욱 욕심이 나고 간절한 걸까? 

바캉스를 가자는 친구들에게 부모님과 같이 여행을 간다는 대답을 해서 

놀림을 받으면서까지 순순히 여름휴가를 따라온 건 오로지 엄마 때문이었다.

“ 업힐 거야.말 거야.”

“ 정말 자신은 있어?.”

“ 어릴 때의 골골하던 내가 아니라고.열심히 운동을 한 게 몇 년인데.자, 봐.”

다영은 팔을 걷고 보여주는 굵은 근육에 그 작고 보드랍게 품 속으로 안겨 들던 아이가 아니라 

이젠 아들이 정말로 당당한 성인의 한 남자가 되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언젠가부터 자신의 뒷모습을 늘 따라붙는 눈길과 함께 

침대 밑에 둘둘 말아 쳐 박아둔 딱딱하게 굳은 아들의 팬티를 발견할 때부터

남자가 되어간다는 걸 조금씩 의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영에게는 내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왠지 낯선 느낌으로 다가오는 아들 때문에 

자기 자신만의 소중한 뭔가를 뺏겨버린 억울한 기분과 함께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허전함이 밀려드는 걸 견디기가 힘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다영은 일부러 그런 감정을 감추려는 듯이 더욱 쾌활하게 말했다.

“ 어쭈. 그런 스펀지 덩어리로 우쭐댄다 말이지?.

좋아. 네가 자초한 일이니까 나중에 우는 소리를 해도 나는 모른다.”

“ 손님, 승차 안 하시면 그냥 차 떠납니다.”

“ 오라이.”

“ 아이쿠. 엄마.!!!”

등을 돌리고 주저앉은 아들의 등판으로 다영이 다이빙을 하듯이 뛰어들자 

비명소리와 함께 아들은 모래사장에다가 코를 박으며 앞으로 엎어졌다.

“ 깔깔깔.”

“ 쳇. 정말 무겁긴 하네? 아휴. 이 숨은 지방들 좀 봐?”

“ 꺅. 그만, 그만. 킥킥. 간지러워.”

다시 엄마를 업어 한 손으로 엉덩이를 받치고서 다른 손으로 옆구리 살을 잡자 

엄마가 웃음소리와 함께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민도 덩달아 비틀거려야만 했다.

“ 우리 아들의 등이 이렇게나 넓을 줄은 몰랐네?.”

“ 좋아? 엄마.”

“ 응, 따뜻하고 편안해.잠이 올 것만 같아.”

“ 그러면 한숨 자.텐트에 도착하면 깨울게.”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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