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구조요청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도 그 말에는 찬성하듯 고개를 끄떡였지만 다른 뭔가는 동의 할 수 없는지 이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건 저도 찬성이에요. 아무튼 그건 그렇게 결정이 났고, 한 가지 제가 동의 할 수 없는 것은 저만 우리가 타고 온 우주선을 타고 멀리 떨어져 있으라는 것에는 절대 동의 못해요. 전 항상 준수씨와 1키로 이내에 있을 테니까 준수씨가 사이어돈이나 카이론 군에 의해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공간 이동으로 바로 우주선으로 돌아오라는 거예요.”
그녀의 말에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저으며 나 또한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그건 지아씨가 너무 위험합니다. 나는 사이어돈과 가까이 붙어 있을텐데 그런 놈과 1키로 정도 거리라면 바로 지척입니다. 더군다나 내가 사이어돈을 놈들에게 유인해서 카이론 군들도 사이어돈과 전투를 벌일 텐데 그런 곳에서 1키로 안에 있는다는 것은 카이론 군과 뒤섞여 있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준수씨가 동의 못한다면 저도 우주선에 타고 있지 않고 준수씨와 같이 싸울 거예요. 그리고 준수시는 제 조정 실력 못 믿으세요? 사이어돈이 공격을 해 와도 우주선을 타고 있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어요. 그리고 카이론 군이 우주선을 공격한다 해도 내가 놈들을 공격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는 거라면 놈들은 맨몸으로 속도 면에서 우주선을 따라오지 못해요. 또한 카이론 군들은 사이어돈을 상대하느라고 나를 공격할 여유도 없을 거예요.”
“그건 지아씨가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카이론 군은 자신들의 전함이 폭발했기 때문에 우주 미아가 됐는데 만약 지아씨 우주선을 보게 된다면 죽자살자하고 탈취하려 할게 뻔합니다. 그래서 지아씨 생각에는 더욱 찬성을 할 수 없는 겁니다. 흠..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어떻게요..?”
“우선 지아씨는 제 말대로 우주선을 타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암흑 물질을 전부 흡수하고 연락을 하면 제가 있는 곳에서 최대한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지점 1키로 안에 들어오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우주선 안으로 공간이동하면 준비하고 있다가 워프로 바로 빠져나가는 겁니다.”
내 제안이 그럴 듯 했는지 지아가 이내 고개를 끄떡였다.
“준수씨 혼자 사이어돈과 카이론 군 사이에 놓아두는 것이 정말 내키지는 않지만 준수씨가 암흑 물질을 꼭 흡수해야 한다니 어쩔 수 없죠.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9대의 함선은 자동 항법으로 전환해 놈들의 전함이 있는 좌표를 찍고 워프도 예약을 해 놓게 한 후 조종사들까지 모두 사령선에 태워 보내겠어요. 만약 이 일이 실패해도 지금 사이어돈이 출현하고 놈들의 전력이 저렇게 막강한 이상 랭커들은 여기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요.”
“9대의 함선이 무사히 전함을 파괴해야 모든 작전이 제대로 맞물릴 텐데.. 아무튼 꼭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놈들은 우리가 설마 전함을 버리면서까지 자신들을 공격하려 한다고는 생각도 못할 거예요. 지금도 저렇게 꼼짝 않고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놈들이 우리 작전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우리함선 9대는 전함과 부딪치기 바로 직전일 거예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아는 다른 것은 몰라도 워프로 이동해 상대 전함과 부딪치게 하는 작전만큼은 장담을 하고 있었고 그만큼 이번 작전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작전이었다.
곧바로 명령에 따라 사령선을 제외한 9대 함선은 좌표를 적 전함에 찍고 워프도 자동 항법으로 예약 전환한 후 각 함선의 조종사들이 모두 사령선으로 탑승했다.
“...... 그러니 이제 여러분은 그만 돌아가서 그곳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십시오. 이곳 일은 이제 우리가 처리하고 지원군까지 데리고 오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테니 돌아가서 최대한 버텨주기 바랍니다.”
샤령선에 900여 명의 랭커들이 늘어선 가운데 내가 작전을 설명하고 돌려보내려 하자, 나를 대신해 지휘를 맡았던 다이아 랭커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과 부 사령관님만을 여기 남겨두고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저도 여기에 남아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사령관님과 부 사령관님이 비우시아 은하 출신이 아닌데도 이렇게 목숨을 걸려하시는데 저희만 돌아간다면 그건 살아도 정말 면목 없는 일입니다. 저는 여기에 남아 끝까지 사령관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다이아의 말에 다른 다이아들도 이구동성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소리쳤고 연쇄 반응으로 플레티넘과 골드 랭커들도 모두 같은 소리를 했다.
이제 당신들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당신들 실력으로 남아 있어봐야 싸움 한번 못해보고 개죽음만 당할 뿐이다. 또한 당신들이 남아 있는다면 더 신경 쓰이고 방해만 될 뿐이다,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겉으로만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방금 말했다시피 이제 이곳에서의 일은 작전대로 우리 둘이 해 나가면 됩니다. 이곳보다 이제 비우시아 은하를 카이론의 본대로부터 지켜내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들도 알겠지만 지금 그곳은 한명의 랭커들 손이 절실히 필요할 겁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알겠지만 내 뜻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건 사령관으로서의 명령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지원군을 꼭 데리고 갈테니 여러분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만 남으십시오.”
내가 작전을 이미 밝혔으니 이들도 자신들이 이곳에서는 짐만 될 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내가 암흑 물질을 흡수하는 것은 당연히 말하지 않았지만, 사이어돈이 출현하면 놈을 카이론 군이 있는 곳으로 유인한 후 나는 지아의 우주선으로 도망친다는 것을 알고 있어, 만약 자신들이 남아 있는다면 나도 도망을 칠 수 없다는 것쯤은 이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이아는 그것을 알면서도 표정을 굳힌 채 각오를 다진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사이어돈을 유인할 때 사령관님 혼자보다는 아무래도 여럿이 함께라면 더 쉬울 겁니다. 그리고 사이어돈을 카이론 군이 있는 곳으로 유인한 후에도 사령관님이 카이론 군에 발목이 잡혀 그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그때 저희가 놈들을 막겠습니다.”
다이아의 말은 한마디로 내가 더 수월하게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죽겠다는 뜻이었다. 사이어돈을 유인하고 나면 이들의 실력으로는 사이어돈은 물론 2천여 명의 카이론 군들 손에 순식간에 전멸을 당할 것은 뻔한 노릇이다.
다이아의 말도 일리는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들을 남겨두고 혼자 피한다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아 내가 완강하게 명령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말하자 이들도 마침내는 내 말에 따랐다.
곧바로 모든 랭커들을 사령선에 남겨두고 나와 지아는 선착장에 있는 우리 우주선으로 탑승한 후 사령선을 빠져 나왔다.
“사령관님 꼭 살아서 만나길 고대하겠습니다.”
“얼겠소, 당신을 비롯해 나머지 랭커들도 꼭 살아남아 있으시오.”
다이아 랭커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사령선은 곧바로 시란타 행성을 향해 워프를 사용해 빛살처럼 떠나갔다.
이제 9대의 함대가 자동 항법으로 워프가 작동할 시간이 다가왔다.
사령선이 워프를 사용해 떠나갔지만 놈들은 사령선이 비우시아 외곽이 아닌 안쪽으로 들어가서인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하긴 놈들의 임무는 누구도 이 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안으로 가는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터다.
잠시 후 드디어 함선 9대 모두 워프가 작동되자 저 멀리 있던 2천여 명의 카이론 군들이 술렁이는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순식간에 9척의 함선들이 빛살처럼 자신들이 전함이 있는 외곽으로 사라지자 더욱 크게 술렁이고 있었다.
함선이 워프를 사용해 날아가면 적 전함은 그 궤적을 분석하는 시간이 아무래도 약간은 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약간의 시간 안에 겨우 백여키로 밖에 머물러 있는 적 전함이 있는 곳에 위프를 사용한 9척의 함선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쿠쿠쿠쿵.. 꽈꽈꽝.. 콰아아앙..!
잠시 후 우주공간 한쪽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9번 연속해서 터지며 나와 지아는 서로를 마주 본채 1단계 작전이 성공한 것에 대한 자축으로 서로를 향해 씨익 웃었다.
이제 이단계로 나는 우주선에서 내려 사이어돈이 출연하면 놈을 카이론 군이 있는 곳으로 유인하면 된다.
내가 입구로 다가서자 지아가 다가와 내 품에 꼭 안기며 한마디 했다.
“정말 조심해야 해요.”
“알았어요, 과부 만들지 않을 테니 걱정 말아요.”
“정말이에요, 정말 저 혼자 남겨두면 안돼요.”
“알았어요, 내가 암흑 물질을 모두 흡수하면 바로 연락 할게요.”
“화면으로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연락 오면 바로 준수씨 있은 곳 1키로 반경으로 들어갈게요.”
다시한번 그녀를 꼭 안아준 후 나는 곧바로 우주공간으로 나왔고 우주선은 카이론 군이 있는 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암흑 물질의 가운데가 서서히 열리며 행성 크기의 거대한 사이어돈 머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헌데 2천여 명의 카이론 군들은 전함이 파괴된 것을 알고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이제 이 우주공간에 남겨진 우주선이라고는 지아가 타고 있는 자그만 우주선 한 대 뿐이었다.
놈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사이어돈은 이제 모두 나와 더 가까이 있던 나는 그 크기에 완전히 압도당해 있었다.
놈의 모습은 정말 특이하게 생겼다.
두 귀가 뾰족하고 등에는 거대한 날개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두 개의 발은 이족보행으로 서있는 듯 했고 팔이라고 생각되는 두 발에는 엄청난 길이의 날카로운 발톱이 솟아나와 있었다.
한마디로 양 이빨 두 개가 밖으로 삐죽 솟아나와 있는 박쥐의 모습과도 같았고 또 어떻게 보면 미디어에서 흔히 보았던 악마의 형상과도 같아 보였다.
놈은 B급답게 정말 지구의 크기와도 맞먹는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나와 놈과의 거리가 5키로에 불과해 정말 코앞에 있는 느낌이었다.
놈은 나오자마자 내 존재를 느꼈는지 나를 쳐다보다 한순간 주줌거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괴성을 지르는 듯 입을 크게 벌리며 날개를 퍼득이고 있었다.
대기가 없어 날개짓을 한다고 바람이 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 저 펄럭이는 거대한 날개에 스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온몸이 박살 날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모든 사이어돈이 그렇듯 놈 또한 가죽은 무척 두껍고 단단해 보여 한번의 공격으로는 상처를 입힐 수 없을 것 같았다.
특히 내가 1시간 정도 쉬며 도력을 약간 회복했다고 하지만 아직 사신수를 소환할 만큼의 도력은 되지 못하고 있어 녀석들의 도움도 받지 못할 형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