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카이론 출몰
“어차피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행성 우주선으로 침입해서 카이론을 박살내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으니 지금은 방금 제가 말한 놈들의 포위망을 뚫고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전에 실패했다고 또다시 실패할 것이 두려워 이대로 그냥 개죽음을 당하잔 말입니까?”
“...........?”
“만약 누군가 포위망을 뚫고 나가 지금 이 비우시아 은하에 놈들이 있다는 것만 알려준다면 이 기회에 놈들을 뿌리 뽑고자 엄청난 지원군이 몰려올 겁니다. 그럼 그 기회에 최고의 랭커들로 행성 우주선에 침입하든 쳐들어가든지 해서 카이론이라는 놈을 박살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계속 각개격파만을 당하게 된다면 결국 이 우주에는 생명체 씨가 마를 겁니다.”
길고긴 내 거창한 열변에 지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내 말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준수씨 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하네요. 지금까지 카이론은 남쪽 은하계에서 북쪽 은하계로 이동한다는 것만 알았지 이 드넓은 우주 공간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거든요. 놈들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이렇게 한 은하나 행성이 박살나고 난 후에 놈들이 모두 떠난 다음에나 알 수 있어 항상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어요. 그만큼 놈은 자신이 있는 위치를 우리가 알지 못하게 했어요. 하지만 만약 준수씨 말대로 누군가 이 포위망을 뚫고 나갈 수만 있다면 아빠에게 연락을 해 전 우주의 챌린저들에게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을 거예요.”
“맞습니다, 카이론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지만 전 우주에서 계속 모여드는 챌린저들이나 마스터 그리고 수억조도 넘는 랭커들을 한번에 맞아 싸울 수는 없을 겁니다.”
“바로 그거예요, 놈이 기계군단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한계는 있을 거에요. 그렇게 되면 둘 중 하나겠죠. 놈이 소멸되거나 도망치는 경우요. 하지만 한번 위치를 발각당하면 아무리 과학력이 발전했다고 해도 거대한 행성 우주선으로는 속도에 한계가 있어 도망치기 어려울 거예요.”
“그럼 이 작전을 당장 챌린저님에게 말해서 실행하도록 해봅시다.”
“그래요,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밑져야 본전이니 조금이라도 가망성 있는 일을 시도라도 해보는게 낫겠죠.”
숙소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챌린저의 사무실을 찾아가자 마침 차르멜 마스터도 같이 있어 지아와 나누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러자 챌린저가 그놈의 한숨을 또 푹 내쉬며 못마땅한 듯 말했다.
“그것은 이미 다른 은하에서 시도를 했던 것이네, 하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지.”
챌린저 역시도 처음 지아가 보였던 반응을 똑같이 보였지만 그것은 예상하고 있던 터라 나는 또다시 열변을 토해냈다.
“다른 곳에서 실패했다고 우리도 꼭 실패하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카이론과 싸워 이길 확률이 0이라면 전투는 전투대로 하고 지금 제가 말씀드린 대로 시도라도 한번 해보는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답답한 챌린저의 반응에 내가 언성을 높이자 그가 고심하듯 잠시 생각했다.
챌린저에게 내가 조금 무례한 것 같자 지아가 눈치를 주었지만 열불이 터져서 나도 모르게 가슴을 두어번 팡팡 쳤다.
잠시 후 생각할 것도 없는 것을 굳이 생각하고 난 챌린저가 차르멜에게 조언을 구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제 생각은 솔직히 최 준수씨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최 준수씨 말대로 카이론과 싸워서 이길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되든 안되든 시도는 해보는게 좋을 것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원요청을 보내는 랭커는 다이아 이하 랭커들로 보내면 이곳의 전력에는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도 지금 한명의 랭커가 아쉬운 판인데..?”
또다시 잠시 고민하던 챌린저가 드디어 결정을 내린 듯 나를 쳐다보았다.
“좋네, 그럼 자네 말대로 한번 해보세, 랭커들 몇천명 빠져나간다고 해서 전투에 지장은 없겠지. 아니, 어차피 가망성이 없는 전투이니 상관은 없네. 헌데 지휘관이 있어야 하는데 누구를 보내면 좋겠나?”
챌린저가 차르멜을 보며 말하자 나는 퍼뜩 스치는 것이 있어 곧바로 챌린저를 향해 말했다.
“이곳 상황이 있어 다이아급 이상을 보내면 안될 것 같으니 제가 맡겠습니다.”
“자네가..?”
내가 지원을 하자 지아가 깜짝 놀랐다.
“준수씨 그건..., 우리는 여기서 그냥 도와주는게 낫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제가 낸 의견이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어차피 실패하면 죽겠지만 만약 실패하면 죽음으로 책임지겠습니다.”
말이 어째 앞뒤가 안맞고 이상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의견을 낸 사람이 그 위험한 작전에 지원한다고 하니 챌린저로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결정이 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원래 마스터인 지아가 지휘관이 되어야 했지만 지아는 내가 낸 의견이니 그 권한을 나에게 넘겼다.
함대는 비우시아 은하 내에서 가장 발전한 행성의 함선으로 10척을 이끌고 가기로 했다. 함선의 크기는 직경이 2키로 정도 되는 우주선으로 그리 큰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크면 아무래도 기동력이 떨어져 가장 빨리 날 수 있는 중급 함선으로 선정했다.
인원은 다이아가 100명, 플레티넘이 500명, 골드가 조종사 100명과 전투 랭커 1000명으로 모두 1700명이었다.
방향은 우리은하가 있는 북쪽 은하계를 택했다.
이유는 카이론이 지금 향하는 방향이 북쪽이라 지원을 요청하면 아무래도 다음 목표가 자신들이니 가장 빨리 나서서 지원군을 보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비우시아 은하 내에서 과학이 가장 발전한 케스란 행성에서 함선 10대가 도착했다.
나와 지아가 타고 왔던 우주선은 곧바로 내가 탑승할 사령선 선착장에 실리고, 지아가 지구의 아빠에게 통신을 보내보았지만 역시 카이론의 방해 전파로 인해 통신은 두절되어 있는 상태였다.
뜸들일 것 없이 바로 출발하기 위해 골드 조종사 백 명이 각각 10명씩 나뉘어 함선의 조종을 맡았다. 그리고 내 권한으로 지아가 부 사령관으로 임명되고 나머지 함선에는 레벨 순위에 따라 다이아 9명을 각 함선의 함장으로 임명해 1호부터 9호기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했다.
출발하기 전 챌린저와 차르멜이 마중을 나와 나는 그 두 사람에게 한마디 당부를 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계십시오. 꼭 지원군을 데리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주면야 고맙기는 하지만 이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걸세, 자네 손에 우리 시란타 행성은 물론 비우시아 은하의 운명도 달려 있다는 것을 부디 명심해주게. 그리고 만약 이 일이 성공해서 우리 비우시아 은아가 건재하기만 하다면 자네의 고향별인 지구 행성에서 고가로 취급돼는 금덩어리를 우리 361개 행성에서 모아 보상금으로 넉넉히 챙겨주겠네. 그리고 내 이름은 피발다라네.”
챌린저가 금품으로 날 유혹하려 하고 자신의 이름까지도 말해 주었다.
아마 그는 속으로 내가 실패하고 자신들 또한 모두 전멸 할 것을 염두에 두고, 그래도 다른 은하에서 와서 자신들을 도와주는 것이 고마워 이름까지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챌린저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이리 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믿을 구석은 나밖에 없었기에 내 손을 꼭 쥐어주었다. 그래서 나도 그의 손을 맞잡고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피바다.. 아니 피발다 챌린저님 그리고 차르멜 마스터님 어떻게든 살아남아 버티십시오, 저도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 지원군을 반드시 데리고 오도록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말이라도 고맙네. 아무튼 다시한번 말하지만 지원군을 데리고 와 우리 비우시아 은하를 구해만 준다면 금덩어리는 넉넉하게 챙겨줄 테니 부디 성공하기를 바라겠네.”
피발다 챌린저는 아직까지 반신반의한 말투였지만 마지막 희망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지 끝까지 금품으로 날 유혹했다.
“그럼 주시는 것은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꼭 돌아오겠습니다.”
피발다와 유치한 인사말이 오간 후 나와 지아는 곧 사령선으로 탑승해서 각 함선의 함장들에게 보고를 받았다.
[1함선, 출격 준비 마쳤습니다.]
[2함선, 출격준비 마쳤습니다.]
*
*
[9함선, 출력 준비 마쳤습니다.]
9함선까지 조종석과 전투 랭커들이 모두 탑승하고 준비가 끝나자 드디어 이륙을 했다.
조종은 부사령관인 지아에게 맡기고 나는 막상 할 일이 없자 멍하니 그들이 하는 꼴만 지켜보고 있었다.
우주선 조종에 관해 지아는 일가견이 있는지 각 함장들에게 일사분란하게 명령을 내렸다.
“부 사령관입니다! 각 함선의 함장님들은 모두 들으세요. 비우시아 은하의 외곽 전인 좌표 2937-56380까지 위프로 이동합니다. 사령선이 먼저 출발할 테니 2함선부터 차례대로 출발해 사령선 뒤를 바로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지아의 명령에 사령선의 조종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여 곧바로 워프가 작동됐다.
이제 함선은 조종사들이 알아서 할 것이고 지금부터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상황을 판단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
헌데 그때 지아가 내게 다가와 예상했던 질문을 했다.
“준수씨, 왜 이런 위험한 일에 자진해서 지원을 하신 거예요?”
그녀의 말에 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거기 남아서 카이론 본대와 싸우는 것보다는 이렇게 외곽을 지키고 있는 놈들과 싸우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고 판단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겁니다. 그리고 만약 외곽의 포위망을 뚫어 우리가 지원군을 데리고만 올 수 있다면 거기서 활약하는 것보다 이것이 백배 천배 더 값어치가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남들 보기에도 그렇고요.”
내 깊은 뜻이 담긴 말에 지아가 감탄하며 나를 다시 본 듯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준수씨, 생각하는걸 나는 쫒아가지 못하겠네요. 준수씨 정말 다시 봤어요.”
지아가 속으로는 잔대가리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것이 더 실속 있는 일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카이론의 거대 행성 우주선인 본대에는 정말 엄청난 능력과 파워를 지닌 기계군단이 존재해 있을 것은 당연해, 아직 내 능력으로 그들과 붙는다는 것은 위험천만하다고도 생각했었다.
놈들이 아무리 강한 전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한 은하 전체를 상대하려면, 아무래도 강력한 전력은 본대에 남겨두고 외곽을 지키는 전력은 본대보다는 능력 면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질 것이라는게 내 얕은 소견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참이 지난 후에 증명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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