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앞으로 해야할 일들
“그때 일은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아요, 꿈속에서 무엇인가 만지고 있었던 것 같기는 했는데 그게 그거인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제 지아씨가 제 여친이니 그 정도야 봐줘도 될..
"아얏!”
말을 하는 중에 옆구리가 따끔해서 내가 소리 지르자 그녀가 나를 얄미운 표정으로 흘겨보았다.
“그렇게 세게 꼬집지 않았으니 엄살 좀 부리지 마세요. 그리고 봐주긴 뭘 봐줘요. 그러고 보니 이제 아주 말을 대 놓고 하시네요.”
이런 말을 정말 대놓고 할 수 있을 날이 올 줄은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헌데 지금은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이렇게 같이 한 침대에 누워 이런 농담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지아가 흘겨보며 핀잔을 주었지만 술이 들어가서인지 나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남친이 됐는데 그 정도는 지아씨한테 말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또 꼬집히고 싶으세요?”
그녀가 또 노려보았지만 그건 결코 밉거나 얄미워서 노려보는 것이 아닌 눈가에 은근히 웃음기가 담긴 다분히 지금의 시간이 즐거워서 장난을 치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런 그녀가 귀여워 내가 팔베개를 해주던 팔을 내 쪽으로 오므리자 그녀의 머리와 몸이 내게로 더욱 가까이 붙어왔다.
다가온 얼굴로 내가 다시 키스를 하고 싶다는 듯 얼굴을 다가가자 그녀가 곱게 나를 흘겨보면서도 이내 두 눈을 살며시 감아주었다.
다시 그녀의 입속에 혀가 들어가며 짜릿하고 황홀한 키스가 이어지자 그녀의 두 팔이 내 목을 감아오며 이제는 숨을 내쉴 때마다 달뜬 소리가 가끔 들여왔다.
“하아아.. 하읏.. 츄르릅.. 하아..”
잠시 후 키스가 끝나자 이제 자기 위해 불을 끄고 지아와 나는 침대에 바로 누웠다.
키스는 했지만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끌어안고 자기에는 아직 어색해 그녀와 나는 그렇게 천장만 바라보고 자려했다.
헌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아가 잠이 오지 않는지 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자나요?”
“아뇨.”
“그럼 팔 좀 주세요, 팔베개 좀 하게요.”
그녀의 당찬 말에 내가 왼팔을 그녀의 머리 밑으로 집어넣고 끌어당겨 몸을 그녀 쪽으로 돌린 후 오른 팔로는 그녀를 감싸 안았다. 그러자 그녀가 내 품에 안겨오며 킥킥 대며 웃었다.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이렇게 있으려니 어색하기는 하네요.”
“조금 그렇죠? 하지만 이제 이것저것 모두 적응해야죠.”
“이것저것이라뇨?”
“그냥 이것저것이요.”
품에 안겨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내가 조금은 음침한 미소를 짓자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손가락을 내 옆구리로 옮겨와 꼬집으려 했다.
“아, 알았습니다, 그만.. 그만.”
내가 장난스레 말하자 그녀도 빙그레 웃으며 옆구리를 꼬집으려던 손가락을 펴고 그대로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있더니 마치 정말 친구에게 말하듯 자연스럽게 내게 물었다.
“준수씨는 여자 가슴이 그렇게 좋으세요? 두 번씩 저와 자면서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만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여자 가슴 싫어하는 남자도 있습니까? 더군다나 요새 시대는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머니라는 분이 안계시니 더욱 그 품이 그리워서 본능적으로 그런건지도 모르죠.”
“하긴 그렇기도 하겠어요.”
그녀를 품에 안고 있으니 머리에서 상큼한 냄새가 나며 술기운 때문에 그런지 그녀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얼마 있지 않아 그녀의 등을 안고 있던 오른손이 슬며시 앞쪽으로 이동해오며 어깨를 어루만지자 그녀가 조금 움찔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길을 피하지 안고 나도 마주보며 마치 무언으로 허락해 달라는 듯 어깨를 살살 쓰다듬자 그녀가 피식 웃더니 살며시 고개를 끄떡이며 두 눈을 사르르 내리 감았다.
그녀가 허락한 것이 어디까지인지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어 나는 어깨를 쓰다듬던 손을 앞쪽으로 서서히 옮겨갔다.
잠시 후 그녀의 볼록 솟아오른 가슴을 만지자 그녀의 몸이 다시한번 움찔했지만 이미 마음을 먹었는지 그녀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조물락.. 조물락
비록 옷 위였지만 집에서 입는 간편한 옷이라 가슴의 탄력이 손끝에 그대로 전해져왔다.
지아의 가슴을 이렇게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만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았지만 이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렇게 가슴을 만지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니 날은 이미 훤히 밝아 있었다.
‘지아가 이렇게 귀여운지 몰랐는걸.’
자는 모습이 마치 아기 같아 팔베개를 해주던 손을 빼내며 그녀의 볼을 한번 쓰다듬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주방으로 가 붙박이 냉장고를 여니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음식재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얼큰하게 생선찌개나 끓여봐야겠군.’
마침 생선이 있길래 속이 풀리도록 국물을 넉넉히 넣어서 찌개를 끊이기 시작했다.
아침은 이미 지났고 지금 먹으면 아침 겸 점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찌개가 중간쯤 끓을 때 문득 뒤쪽에서 지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머, 벌써 일어났네요. 정말 해장할 음식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럼요, 약속했으니까 끓여줘야죠. 그리고 꼭 약속이 아니더라도 우리 지아씨 속 쓰릴 텐데 이제는 내가 챙겨줘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 지아씨라고 하니까 무척 든든한데요, 그럼 오늘도 우리 준수씨가 발휘한 음식 한번 먹게 생겼네요.”
하룻밤 같이 자며 조금이나마 썸씽을 가졌다고 예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러고 보니 하룻밤 사이에 정말 연인이 된 기분이었다.
헌데 요리를 하고 있는 사이 그녀가 어느새 다가왔는지 뒤에서 내 허리를 아주 자연스럽게 두 팔로 감싸 안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친숙하게 굴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나는 조금 놀랐다.
키스를 하고 잠잘 때 가슴을 만진 것으로 지아는 이제 나를 완전히 자기 남자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이러니까 이상하죠?”
어제와는 반대로 내가 움찔하자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사실 지아가 이런다는게 이상하기는 했지만 기분이 무척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조금 적응이 안돼서 어색하기는 한데 이제부터 적응 해야죠.”
말을 하며 고개를 뒤로 돌려 그녀의 입에 쪽하고 모닝 키스를 해주자 그녀의 표정이 환해졌다.
“이러고 있으니 마치 오래전부터 준수씨와 저 사이가 이랬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실 저도 갑자기 이러는게 어색하지만 빨리 그걸 털어내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요. 그러니 준수씨 저 이상하게 보지 말아야 해요?”
“이상하게보긴요, 아침에 일어나서 솔직히 지아씨 보기 어색할 것 같았는데 지아씨가 이러니 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러라고 이러는 거예요. 사실 그 동안 다른 연인들 보면 부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거든요. 저도 이제 이렇게 어엿한 남친이 생겼으니 이제는 남들이 절 부러워하게 만들거예요.”
말을 끝내고 그녀가 옆으로 와서 도우려는 것을 주방 밖으로 쫒아내 식탁에 앉자있게 했다.
얼마 후 식사를 마치고 그녀는 아빠의 비서라는 직함을 지니고 있어 기관에 나가봐야 해서 나는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
집으로 가는 중에 혹시나 몰라 차는 자동 주행으로 해 놓고 은지에게 전화를 해보니 역시 신호가 가다가 끊기고 있어 혹시 은지가 이상한 마음을 먹을까봐 무척 걱정이 됐다.
헌데 그때 마침 아레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준수야 내가 계속 전화를 해봤는데 처음에는 신호가 바로 끊기더니 지금은 가끔 오래 갈 때도 있어. 아무래도 은지가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 것 같아.]
“알았어, 내가 한번 해볼게.”
전화가 오자 바로 끊지 않고 조금 기다린다는 것은 아레스의 말대로 망설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은지가 혹시라도 이상한 마음을 먹을 수도 있어 나중은 어떻게 되든 우선은 그녀를 찾아내 마음을 안정 시켜 놓을 필요가 있었다.
지아와도 이제 이런 관계가 되어 은지에게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런 것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
헌데 처음에는 계속 바로 끊기다가 줄기차게 걸어대자 아레스의 말대로 얼마 후에는 신호가 조금 더 오래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도 망설이는 것일 수 있었다.
생각다 못해나는 모험을 걸어 보기로 했다.
그 모험이란 다름 아닌 아레스와의 관계를 사실대로 문자로 날리고 만약 응답이 있다면 그때는 그 상황에 따라 대처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은지가 아레스와 나 사이를 모를 수도 있어 그것만은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다.
곧바로 홀로그램에 문자 송신을 누른 후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은지야, 네가 무엇인가를 목격했다는 전제하에 이 문자를 보내는 거야. 아레스 교관님과 난 얼마 전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어. 너를 처음 내 여친으로 만들려 했는데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그렇게 됐지만 조만간 너에게 사실대로 말하려고 했어. 이제 널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데 그렇게 사라지면 어떻게 하니.]
피치 못할 사정이라고 해봐야 스님이 고기 맛을 본 뒤 내가 아레스의 미모에 혹해 꼬드긴 것이었지만 그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무슨 말을 써야 은지의 마음이 돌아설까 생각하며 문자를 한번 보내고 다시 쓸 문자를 정리한 후 자판을 또 두드렸다.
[네가 무척 화날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어.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너와 난 어렸을 때부터 같이 커온 사이라 솔직히 네가 여자로 생각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망설인 면도 있었지만 이젠 확실히 널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어. 물론 이제 아레스 교관님도 내 여자가 되어 버릴 수는 없지만 바람이 있다면 너와 아레스 교관님이 계속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것이야. 교관님도 널 무척 걱정하시고 네가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계셔. 염치는 없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난 너와 아레스 교관님을 같이 내 여자로 생각하고 싶어. 이 문자를 보내고 내가 기를 보낼테니 받아줬으면 좋겠다. 만나서 너에게 용서를 구하고 이제 널 내 여자로 받아들이고 싶어. 모든건 내 잘못이니까 아무튼 우선 만나서 얘기하자. 지금 네가 무척 힘들다는거 잘 알고 있어, 네가 용서를 하든 하지 않든 우선은 만나서 얘기하자. 네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네가 나를 피하니. 그럼 지금 기를 보낼 테니까 꼭 받아들이길 바래.]
잘못하면 은지가 더 열 받을 수 있어 최대한 생각해서 썼는데 그건 모르는 일이었다.
문자를 접고 곧바로 기를 보낸 후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는데 그 잠깐의 시간이 왜 이렇게 긴장되고 길게 느껴지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