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1화 〉앞으로 해야할 일들 (181/207)



〈 181화 〉앞으로 해야할 일들

그녀가 말을 하면서 창피스러웠는지 고개를 다시 살짝 숙였다.
평소 그녀답지 않게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는 웃음이 나오면서도 이제야 여자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마음먹은 생각은 철회할 마음이 없었다.
그녀는 내가 자신에게 다가와 뽀뽀하기를 원했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못들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옆으로 정 오지 않겠다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모두 무효로  겁니다. 사실 지아씨도 이제는 저와 많이 가까워지고 편해져서 이런 장난까지 친 모양인데, 조금 지나치기는 했지만 술김이라 생각하고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못을 박듯 말하자 그녀가 다시 고개를 반짝 들었다.

“아까 분명 장난 아니라고 했잖아요. 제가 이런 걸로 장난 칠 사람으로 보였나요?”

“장난이 아니라면 내 옆으로 와야 될 것 아닙니까. 전 지아씨 마음이 확고한지 아닌지를 보고 싶은 겁니다.”

내 말에 그녀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잠시 주춤거린 후 내 옆자리에 와서 인상을 살짝 찡그린  나를 한번 쏘아본 후 자리에 앉았다.
마치 이렇게까지 사람 자존심을 깔아뭉개야 하겠냐는 듯한 눈빛과 표정을 지은 채.

그녀가 자리에 앉자 내가 카이스주를 한잔 들킨 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눈 감으세요.”

마치 명령하듯 하는 말에 그녀가 나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준수씨 오늘 왜 그러세요? 다른 날하고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뭐라 그럴까..? 전에는 내게 무척 부드러웠는데 지금은 조금...,”

당연히 다를 수밖에.
이 자리가 있기 전까지 내게 있어 지아는 그냥 미모의 한 마스터로서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생각해 그녀에게 조금 끌려 다닌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이제 더는 그녀에게 끌려 다닐 이유가 없어 조금은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은 때문이다.

“달라진 것 없습니다, 전 지아씨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진심인지 그리고 확고한지 알아보려는 것뿐입니다. 진심이라면 이제 눈을 감으십시오.”

말을 하는 동안 나를 쳐다보던 그녀가 내 말이 끝나자 고개를 돌리더니 기어이 두 눈을 살며시 내리감았다.

이로서 그녀의 마음이 확고부동하다하다는 것을 알고 나는 내 얼굴을 그녀의 볼이 아닌 앞쪽으로 가져가 갑자기 입술에  하고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녀는 볼이 아닌 입술에 기습 키스를 당하자 놀란 듯 표정이 움찔했지만 이내 두 볼을 붉히더니 눈을 뜨고 나를 귀엽게 쏘아보았다.

“그런 법이 어딨어요, 난 볼에 뽀뽀를 하라고 한 것인데..”

“이제 술친구가 아닌 진정한 친구가 됐는데 볼이면 어떻고 입술이면 어떻습니까.”

“..................,”

자신이 먼저 대시해서 술친구가 아닌 이제 연인이 되자고 했으니 지아로서도  말이 없었다.
헌데 술을  잔 더 마시고 나자 내가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다시  감아보세요.”

내 말에 그녀가 마시던 술을 멈추고 술이 목구멍에 막혔는지 콜록거리며 헛기침을 몇 차례 내뱉더니 다시 나를 쏘아보았다.

“왜요?”

알면서 물어보는 그녀를 보며 내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알면서..”

능글거리는 내 말에 그녀의 눈빛이 더욱 가늘어졌다.

“준수씨, 다시 변한 것 같아요.”

“어떻게요?”

“아까는 말투가 조금 딱딱했었는데 이제는 능글거려요, 그것도 아주 많이요.”

“딱딱한 것 보다는 이게 낮지 않나요?”

그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했다.

“하긴 딱딱한 말투보다는 그 능글거리는 말투가 그나마 분위기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기는 하네요.”

“그럼 눈  감아주시겠습니까?”

조금은 장난끼 섞인 말에 그녀가 다시 나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먹던 카이스주를 단숨에 마시더니 이내 눈을 살며시 감는 지아였다.

지아가 내 말에 따라 눈을 감자 나는 오늘 갑자기 변한 이런 상황에 대해 속으로는 무척 기뻤고 한편으로는 믿어지지 않았다.

처음 지아를 봤을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고 성격도 마음에 들었었다. 하지만 역시 그녀는 마스터라는 고귀한 신분으로 인해 여자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지도 못했었다.

더군다나 나중에 챌린저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더더욱 여자로 보아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이 더욱 자리 잡게 됐다.

하지만 웬걸.
챌린저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 그때부터 지아는 웬일인지 나에게 더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점점 더 강해지고 암흑 물질의 에너지를 흡수해 앞으로 더더욱 강해질 것이라 생각해서인지는 몰랐지만, 어찌됐든 그녀는 그때부터 내게 더 관심을 가진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기어이 오늘 이런 상황까지 발전된 것이다.

그녀에 대한 마음의 벽을 허무니 그때부터 나도 지아가 여자로 보였다.
물론 그 전에도 미모의 마스터인 지아가 아름답고 성격도 괜찮은 여자라고는 생각했지만, 여자로는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술친구 이상은 보지 않았다.
헌데 그녀의 대시로 비로소 오늘 정말 여자로서 간단한 스킨십인 입맞춤까지 하게 됐다.

그녀가 눈을 감자 나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얼굴을 그녀의 앞쪽으로 가져갔다.
그녀도 볼이 아닌 입술에 입맞춤을  줄 알았는지  눈을 꼭 감은 상태에서 눈썹을 꿈틀거렸다.

곧바로 두 입술이 맞닿자 나는 두 팔을 벌려 그녀의 등을 살며시 안아갔다. 그러자 그녀가 조금 움찔거리기는 했지만 그대로 내 행동을 받아주었다.
헌데 잠시 입을 맞추고 등을 안은 상태에서 내 혀가 그녀의 입술을 슬며시 파고 들어가 이빨을 노크하자 그녀가 놀란 듯 살며시 두 눈을 떴다.

살짝 떠진 그녀의 눈과 내 눈이 아주 가까운 허공중에 잠시 얽히고  눈빛이 무엇을 요구하듯 조금은 강렬한 빛을 내뿜자 그녀가 잠시 후 다시 두 눈을 스르르 내리감았다. 그리고 그때를 기해 굳게 닫혀있던 이빨이 아주 살짝 벌어졌다.

비록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도 되지 않았지만 내 혀는 그 작은 틈을 마치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스르르 잘도 파고 들어갔다.

츄르르릅.. 츠으으흡..

곧바로  혀가 그녀의 입안에 감추어진 혀를 찾아내 감아가자 그녀의 몸이 조금은 굳은  했다. 하지만 감은 혀를 이리저리 희롱하자 잠시  그녀도 황홀한 느낌이 찾아온 듯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목을 두 팔로 감아왔다.

키스의 달콤함은 비록 처음 겪어보는 지아마저도 어쩔 수 없었는지 그녀는 목을 감은 팔을 힘주어 꼭 안은 채 이제는 입안에 들어 있는 내 혀를 빨아먹기까지 했다.

한동안 정열적인 키스를 나누던 입술이 떨어지고 나자 지아는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키스라는 것은 다른 신체 접촉과는 달리 영혼과 영혼의 만남과 같아 키스가 끝나고 나자  사람은 더욱 가까워진 듯 그녀는 전에 비해 훨씬 다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밤새 술을 마시기로 했지만 새벽 2시가 넘어가자 술도 이제 남아있지 않았다. 나와 지아는 이때쯤 완전히 취해 지아는 모르겠지만 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육체는 취했을지언정 웬일인지 정신은 어느 정도 멀쩡한 상태였다.

보통 술 취한 사람이 나는 취하지 않았다.. 멀쩡하다 라고 하는 말은 이런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아무리 정신이 있다해도 다른 사람 눈에 취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이제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내가 비칠거리며 일어나자 지아는 자신이 취한 중에도 나를 만류했다.

“밤새 마시기로 했잖아요.”

“술도 떨어지고 이제 그만 마셔야겠어요.”

“그럼 자고가요, 이렇게 취해서야 집에 제대로 갈수나 있겠어요?”

“집이야 차가 알아서 데려다줄 것이고 가다가 차안에서 잠들면 그냥 자면 되겠죠.”

“고집 부리지 말고 그냥 자고 가요. 그리고 예전 오메리안 행성에서 지구로 왔을 때 술 많이 먹은 다음날 저에게 시원한 해장국 끊여주기로 했잖아요.”

지아는 별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약속을 했던게 떠올랐고 또 지금 집에 간다는 것도 사실 내키지 않았다.

“아, 그랬었죠. 그럼 하루 신세  지고 아침에 제가 해장국 맛있게 끊여드리겠습니다.”

나는 일어서 가려던 몸을 눈에 보이는 침대로 가서 그냥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손을 벌리며 꼬부라진 혀로 마치 제집인양 말했다.

“이리 와요, 이제 내 여친 됐는데 내가 재워줘야 도리 아니겠어요?”

지아의 집은 방이 따로 없는, 거실과 침대 그리고 한쪽에는 주방이 겸비된 최신식 오피스텔이었다. 내가 침대를 차지하고 누웠으니 그녀도 바닥이 아니면 잘 곳이 없었다.
내가 두 팔을 벌리며 말하자 그녀가 잠시 망설이더니 곧바로 빙그레 웃으며 역시 꼬리라진 소리로 대꾸했다.

“좋아요, 뭐 남친이 아니었을 때도 두 번씩이나 같이 잤는데 이제 내 남친이 됐으니 상관없겠죠.”

역시 술이라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정신력을 헤이하게 해준다는 것이 제일 큰 장점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만약 지아가 술이 취하지 않고 맨정신이었다면 아무리 내가 남친이 됐지만 이렇게 쉽게 나와 같이 자려 했을까?

물론 남친이 되어 같이 잔다고 해서 육체적 관계를 맺자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생각했고, 지아 또한 나와 같은 생각에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오늘은 술이 취한 두 친구가 같이 잔다는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냥 단순한 잠자는 행위에 불과했다.
그래서 지아도 아무 거리낌 없이 같이 잔다는 것이었고.

술상은 자연스럽게 내일 치우게 됐고 지아는 곧 누워있는 내게로 다가로 폴싹 내 품에 안겼다.
키스를 하며 서로 포옹을 한 덕분인지 나도 그랬고 지아 또한 그렇게 어색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 또한 술이 주는 장점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맨 정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신이 있을  지아씨를 안고 누운게 처음이네요.”

내 말에 그녀가 내 팔베개를 베고 누운 채 귀엽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준수씨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준수씨가 제 옆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란 줄 아세요.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예요. 특히 한 손이 제...,”

말을 하다 멈추고 그녀가 갑자기 쏘아보자 나는 뜨끔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가슴을 만진 것 때문에 그러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제 남친이 됐고  술도 마셔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능청스러운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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