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0화 〉앞으로 해야할 일들 (180/207)



〈 180화 〉앞으로 해야할 일들

“살아남은 순서대로 순위가 정해지면 다이아 티어까지와는 달리 51등부터 100등까지는 랭킹 포인트가 차감되거나 올라가지 않고 제자리에요. 물론 능력치 스텟도 그대로겠죠. 그리고 1등부터 50등까지만 랭킹 포인트와 능력치 스텟이 주어지죠.”

“그렇게 되면 마스터에서 다이아로 다시 내려가는 랭커는 소수겠군요.”

지아는 목이 마른지 카이스주를 시원하게 한잔 전부 들이마시더니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기존 다이아 티어 때까지는 경험치 삭감이 있어 하위 그룹에서 많이 바뀌었는데 마스터부터는 다이아로 다시 내려가는 숫자가 많이 줄어들겠죠. 하지만 50등 안에 계속 들지 못하고 랭킹 포인트가 연속해서 제자리라면 다이아에서 계속 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이아로 떨어지는 마스터들도 제법 많아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여튼 어떻게 해서든 50등 안에는 들어야 하겠군요. 헌데 랭킹 포인트나 능력치 스텟이 1등부터 50등까지 모두 동일하게 주어지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물론이죠. 능력치 스텟은 1등에게만 3레벨 주어지고 나머지 2등부터 30등까지가 2레벨 그리고 31등부터 50등까지 1레벨이 주어져요.”

“그럼 랭킹 포인트는..?”

“랭킹 포인트로 전체 랭킹이 정해지는데 백명 중 1등은 무조건 1,000 포인트가 주어져요, 그리고 2등부터 50등까지 순서대로 2등이 500포인트 3등이 490포인트 4등이 480 포인트 그런 식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어요.”

“그건 조금 복잡한 산술이네요.”

“우리 랭커들이야 상태창을 확인만 하면 되니 복잡할 것은 없죠.”

“하긴 그건 알아서 계산돼 상태창에 표시되니 신 머리만 아프겠군요.”

“후훗, 그런 셈이죠.”

“헌데 마스터로 처음 승급되면 랭킹 포인트가 0부터 시작된다니 100만등이 엄청 많겠어요.”

“당연히 그렇겠죠, 마스터라도 최하위 그룹은 매주 바뀌니 100만등만 해도 최소 천여명 이상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마스터 얘기를 하다 보니 문득 국장이 생각났다. 지아가 40만등에서 놀고 있는데 그녀와 국장의 등수는 과연 얼마나 차이 나는지 갑자기 그것이 무척 궁금해졌다.
궁금증은 참지 못하는 성격인 나는 곧바로 국장의 등수에 대해 물어보았다.

“국장님은 그럼 몇 위나 되는지 아십니까?”

“당연히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건 사생활이라 제가 말하기가 곤란한데...,”

“좀 가르쳐 주십시오, 지아씨가 40만등에 있는데 국장님은 어느 정도인지 정말 궁금해서 그럽니다. 국장님 등수를 안다고 해서 제가 국장님에게 그걸 말하겠습니까?”

“그럼 혼자만 알고계세요. 국장님은 70만등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안정권이라고  수 있죠.”

“가끔 한번씩 50등 안에만 들면 다이아로 떨어지지는 않겠군요.”

이제 다다음 게임에서 마스터 맵에 참가해야 하는 것이 거의 확정적이라 지아는 마스터 맵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알려주었다.

술을 마시며 마스터 맵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을 듣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사이 어느새 사온 술도  박스를 모두 마셔버렸다.

시간도 이제 11시가 넘어서고 술도 알딸딸해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지아가 그런 나를 보며 뽀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밤새 마시자고 두 박스를 사왔으니 다른 생각 말고 저랑 오늘 끝까지 달려야 해요.”

“더 마셔도 괜찮겠습니까? 그러다가 저번처럼  실수 할까봐 겁납니다.”

비록 지아가 실수를 해서 같은 침대에 잔 것이기는 했지만 누가 실수를 했건 어쨌든 나는 함께 잤다는 것만을 생각해서 말한 것인데, 그녀는 내가 자신의 가슴을 만지고 잔 것을 얘기하는 줄 알았는지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의 양 볼이 더욱 붉어지며 나를 귀엽게 흘겨보았다.

“벌써 두번이나 그랬는데 또 그러면 그건 실수가 아니죠. 하긴 두 번 모두 내가 먼저 준수씨가 자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쓰러져 옆에 잤으니  실수라고 봐야겠죠. 하지만 오늘은 정말 잠 안자고 밤새 마실 거니까 오늘은 서로 실수 할 일 없겠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그 말은  또 서로 실수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들리네요.”

“아.. 그건 절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긴 두 번을 그랬는데  번째도 못하란 법은 없겠죠.”

그녀의 아리송한 말은 가득이나 술을 먹고 취해 있는 내게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더군다나 최고의 미모를 지니고 있는 고귀한 마스터이자 챌린저의 딸이 그러니 더욱 마음이 싱숭생숭 했다.
헌데 그때 그녀가 아까 내가 농담으로 했던 말을 다시 꺼내는 것이 아닌가.

“아까 준수씨가 한 말 있잖아요?”

“제가 아까 한 말요?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요?”

“제가 정말 여자 친구가 될 마음이 있다면 뽀뽀라도 해줘야 농담이 아니라는 걸 믿어줄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 그거요, 그건 농담이었습니다. 지아씨가 농담을 하길래 저도 농담한번 해본 겁니다.”

내 말에 그녀가 갑자기 인상을 살짝 쓰며 나를 쏘아보았다.

“준수씨 눈에는 제가 그런 걸로 실없이 농담할 여자로 보였나요? 저 그러게 실없는 여자 아니거든요.”

“그럼 진담이었습니까?”

지아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하더니 갑자기 뭔가 결심한 듯 취한 중에도 두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눈 감아 봐요.”

“눈..을..요..?”

“그래요, 어서 눈감아보세요.”

이건 어딘가 뒤바뀐 분위기였다. 일반적으로 이런 말은 남자가 해야 정상이 아니던가.
지금까지 오간 말이 있었고 내게 눈을 감으라고 말하면  뒷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태어난 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5살 먹은 어린애도 알  있는 일이었다.

‘은지를 찾아야 하는데 여기서 또 일이 벌어지려나.’

솔직히 은지 일로 인해 신경이 쓰였는데 지아가 이렇게 나오자 조금 부담이 됐기는 했다.
하지만 지아는 솔직히 지금까지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 뿐이지, 그녀와는 어쩌면 이런 날이  수도 있겠다고 언젠가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그녀에게 다른 남친 한번 알아보라고 말은 했지만 그건 그녀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당당하게 말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헌데 이렇게 빨리 그녀가 내게 마음을 열 줄은 방금 전까지도 정말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지아가 정말 내게 뽀뽀하기를 원하는 것이라면 지금까지의 대화로 미루어봤을 때 그녀는 내게 확실히 마음을 연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터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아와 내가 그새 이렇게 친해진 건가?’

그러고 보니 그녀를 만난지도 어느새  달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국장과 한 통속으로 나를 회유시키려는 여자로만 생각해 거부감이 들었었다.
하지만 지아는 그렇게 끈질기거나 귀찮게 하지 않았고 그저 술친구나 하자고 했다.

아무리 목석이나 고자라도 지아같은 여자가 술친구를 하자는데 거절할 남자는 없다.
물론 교육원시절이나  졸업했을 때 나는 목석이었지만 지아가 술친구를 하자고  그 당시에는 목석을 탈피하려던 시기였고 고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지아같은 특급 여자와 술친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당시에는 조금 우쭐해지기도 했었다.
헌데 그 당시에 내가 감히 이런 생각을 품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여자가 이제는 나에게 눈을 감아보라고 한다.
은지도 은지지만 지아가 정말 내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라면 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 은지를 찾는다면 그녀는 그녀대로 사랑해 주면 될 것이 아닌가.

지아의 말에 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녀가 얼굴을 더욱 붉힌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저 창피하게 만들 거예요? 준수씨가 증명하라고 했을 때는 준수씨도  싫어하지 않아서 그런 말 했던 것 아니었나요?”

그녀의 눈빛은 무척 도도해 보였지만 조금은 애절한 빛도 담고 있었다.
마치 빨리  눈을 감아달라는 듯이 말이다.

스르르..

그녀의 눈빛을 접하자 나는 잠시 후 결심을 굳히고  눈을 스르르 내리 감았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 뻔한 예상대로 볼에 무엇인가가 살짝 닿았다.

쪽!

비록 아주 살짝 그리고 1초도 훨씬 안되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닿았지만, 마치 파리가 날아가는 소리만한 ‘쪽’ 소리는  귓가에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려왔다.
곧바로 눈을 뜨니 지아가 마치 새색시처럼 얼굴은 물론 귓불까지 새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남들이 처음 봤을 때는 무척 도도하고 까탈스러울 것 같은 지아가 내게는 그래도 처음부터 어느 정도 부드러운 여자로 다가왔고, 이제는 그런 그녀가 내 볼에 뽀뽀를 하며 내 여친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자 조금은 황당하고 믿기지 않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사실이고 현실이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이 어울리지 않고 적응이 되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지아가 내게 장난을 하거나 거짓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한편으로는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쁜 것은 당연했고 귀엽기까지 했다.
처음 나로서는 지아가 오르지 못할 나무로 생각되었는데 그녀가 먼저 이렇게 대시를 하자 나는 용기를 내어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그녀에게 넌즈시 말했다.

“지아씨가 날 남친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뽀뽀를 했으니 나도 지아씨를 내 여친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똑같이 해야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내 옆으로 오십시오.”

이런 얘기를 하는 상황치고는 조금 사무적이고 너무 정중해 어울리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버릇이 돼서 그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헌데 그녀가 내말에 얼굴만 붉힌 채 움직일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하긴 이런 상황에서 덥석 뽀뽀 좀 해주세요 하고 내 옆으로 다가오기도 이상했을 것이고 그녀로서는 자존심 또한 상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어차피 그녀가 내 여친이 될 마음이 확실하다면 그런 자존심 따위는 버리라는 뜻으로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지는 않기로 했다.

“오지 않는 것을 보니 아까 했던 말과 행동은 역시 장난이었군요.”

조금은 유치한 자존심 싸움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녀가 자신의 확고한 뜻으로 인해 이리 된 것이라는 것을 인식 시켜주고 싶어 한마디를 더했다.
헌데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반짝 들며 나를 한번 흘겨본 후 말했다.

“남자에게 그런 말을 하고 볼에 뽀뽀까지 했는데 그걸 장난으로 생각하는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준수씨가 다가와서 하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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