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다이아 티어가 되다
새벽에 그렇게 말했는데도 말귀를 못알아 듣고 이런 소리를 하자 내가 조금은 큰 소리로 다그치듯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그런 말을 해? 그렇게 따지면 교관님보다 은지가 더 손해인거 잘 알잖아. 이제 다이아 티어 두 명 정도는 나 혼자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니까 아무 소리하지 하지 말고 은지 안되면 무조건 교관님이 같이 참가해. 그리고 이번이 아니더라도 은지는 다음 기회가 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내가 언성을 조금 높이며 말하자 그녀가 마지못해 대답을 하기는 했다.
[후우.. 알았어. 아무튼 은지에게 끝까지 기는 보내봐.]
“당연하지, 그럼 교관님도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만약 내 기가 안 느껴지면 은지하고 기가 연결된 걸로 알고 있어.”
[그래 알았어, 근데 미안하다 준수야, 나 때문에 일이 이렇게 돼서.]
“교관님하고 상관없다고 했잖아, 솔직히 말하면 지금 교관님은 내 여자고 은지는 나와 아무 관계없는 단순한 동기일 뿐이야, 지금 내 입장에서는 은지보다 교관님이 더 가까운 사이거든. 그러니 죄책감 느낄 필요도 없고 미안해 하지도 마. 그리고 이번에 은지와 연락이 안되면 게임 끝나고 찾아서 다음 맵에 참가하면 돼.”
[그렇게 말하지마, 은지가 오래전부터 널 좋아하고 있었다고 나와 술 먹으면서도 말했단 말야.]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얘기지. 아무튼 끊고 계속 기를 보내볼게.”
[그래, 은지가 제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도태자가 되지 않게 확실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지.]
아레스와 통화가 끝나고 나는 계속해서 은지에게 끊임없이 기를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내 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12시가 가까워져 오고 몸이 정지되기 직전 할 수 없이 나는 은지에게 보내던 기를 끝내는 아레스에게 보냈다.
곧바로 흰 구멍을 통해 시작의 섬에 도착하고 얼마 후 아레스도 내 옆에 있던 육체에 도착했다.
어쩔 수 없이 오긴 왔지만 아레스의 표정은 무척 착찹해 보였다.
“은지가 끝내 네 기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이를 어쩌니? 은지가 분명 우리 사이를 눈치챈게 틀림없어.”
나도 이제는 아레스의 생각이 백프로 맞다고 생각했다.
그것 말고는 은지가 그렇게 갑자기 불쑥 사라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레스는 어젯밤에 자신이 처신을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지 자기 자신을 책망하는 표정과 눈빛이었다.
“그런 표정 짓지마, 솔직히 교관님과 내가 죄지은 것도 아니잖아, 게임 끝나고 가서 다시한번 찾아보자.”
그녀의 손을 꼭 쥐어주고 주위를 한번 슬쩍 둘러보니 다이아 티어들이라서 그런지 긴장감은 전혀 없고 우리처럼 저희들끼리 대화를 니누고 있는 랭커들이 대다수였다.
확실히 다이아 티어는 플레티넘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콕 꼬집어 말한다면 표정과 몸짓에서 한층 더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여유로움이라는 것이었다.
하긴 처음 다이아 맵에 출전하는 나마저도 이럴진데 다이아 티어에 상주하고 있는 랭커들이야 오죽할까.
헌데 아레스는 처음에 은지 일로 주위에 신경을 쓰지 않다가 이제야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고 얼굴에 긴장한 빛을 홀로 띠고 있었다.
하긴 몇 년동안 골드에서 머물다가 플레티넘으로 승급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다이아 맵에 오니 그럴만도 했을 것이다.
내가 그녀의 손을 꼭 쥔 채 빙긋 웃으며 말했다.
“겁낼것 없어 나만 믿고 있으면 돼, 내가 전부 알아서 할테니까 교관님은 그냥 내 뒤에만 있어, 알았지?”
내가 안심시켜주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그제서야 그녀의 얼굴에서 긴장의 빛이 조금 사라지며 마주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끄떡였다.
그 모습을 보고 이왕 온 것이니 그녀의 레벨을 한층 더 승급시켜주고 싶은 마음에 다시 입을 열었다.
“하드맵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교관님 레벨을 최대한 올릴 수 있지.”
“난 됐고 은지를 꼭 찾아서 은지와 참가하게 되면 그때나 하드 맵이었으면 좋겠어.”
“둘 다 하드맵이면 더 좋겠지.”
아레스가 이렇게 은지를 생각하는데 그녀를 찾지 못하고 이대로 끝난다면 아레스는 평생 은지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 것이라 생각해 돌아가면 그녀를 꼭 찾아야겠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
지금 내 심정대로 이번에도 하드맵이었으면 좋겠고 정말 은지를 찾아 참가 했을 때에도 하드맵이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모든 플레이어들이 도착해 다시 흰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우리는 곧바로 굴곡이 심하고 잡풀이 3-40여 센티 정도 자라나 있는 끝없는 대평야에 떨어졌다.
굴곡진 땅 중 가장 높은 위쪽으로 올라가 사방을 살펴보니 뒤쪽은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안전지대로 향하는 방향 저 멀리에는 거대한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평야의 굴곡은 너무 심해 얕은 곳으로 내려오면 아주 작은 언덕과 같아 전방은 아예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울퉁불퉁한 지역이었다.
한마디로 이 맵은 초원이면서도 평야지대로 이루어진 거대한 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맵을 열어 확인하니 안전지대까지의 거리는 326키였고 뒤쪽의 자기장은 4키에 위치해 있었다.
헌데 누군가 정말 내 바램을 들어준 것일까,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니 풀벌레 소리가 사방에서 은은하게 들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준수야, 하드맵이야!”
아레스도 눈치를 챘는지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환한 표정으로 소리치듯 말했다.
“그래, 하드맵이야. 우리 교관님 좋겠네, 저번 나와 듀오 게임에 참가하고 33레벨까지 승급했었지?”
“그 사이 한 레벨 더 승급해 이제 34 레벨이야.”
아레스가 조금은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이내 표정을 굳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맵에 내가 아니라 은지가 왔었으면 좋았을 텐데.”
계속해서 은지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나는 눈을 치켜뜨고 조금은 화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렇게 됐으니 이제 이 게임이 끝날 때까지 은지 얘기는 하지 말자, 가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내 다음 맵에 꼭 데리고 올 테니까, 알았지?”
“후우.. 그래 알았어. 앞으로 이곳에서 은지 얘기는 꺼내지 않을게.”
내 말과 표정이 심상치 않았음을 감지한 것인지 그녀가 쓴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아레스의 이런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속으로는 미소가 절로 나왔다.
누가 지금 그녀를 예전에 알고 있던 여장부와 같은 그 아레스라고 할 수 있을까.
162-3센티의 조금은 아담한 체구였지만 그녀는 코레일 교관 시절 생도들에 여신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당찬 여걸과도 같았었다.
그래서 남생도들이 그녀의 그 당찬 성격을 알고 이상한 장난을 치지 못했던 것이었고.
하지만 지금 그녀는 내 앞에서만은 한 마리 순한 양과 같이 내 말에 순종적이었다.
나 순진이라는 싸가지와는 전혀 다르게 말이다.
헌데 갑자기 나 순진을 생각하자 생일날 그녀의 집을 나올 때와 얼마 전 지아가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할 때 내가 거절하고 뒤돌아서자, 조금은 슬픈 눈동자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젠장 왜 갑자기 그 모습이 떠오르는 거야. 재수 없게시리!’
곧바로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내고 나는 아레스와 함께 안전지대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나는 굴곡진 평야를 가로 질러가며 주작을 소환해 냈다.
생각해 보니 지금 내 능력치 스텟은 마스터급인 52레벨이라 주작 하나만 해도 그 힘은 다이아 48-49레벨의 랭커와 맞먹을 터였다.
청룡까지 소환해 양쪽으로 날려 보내도 되었지만 내 몸이 하나이니 양쪽에서 한꺼번에 발견해 봐야 소용없었기에 우선은 주작으로 하여금 내 주위를 정찰하게 만들었다.
주작의 크기는 원래 날개를 편 상태라면 자그마치 200여 미터에 달한다.
하지만 이곳은 우주 공간이 아니었고 또 다크 사이어돈과 전투를 치루는게 목적이 아니었기에 지금은 오로지 정찰을 목적으로 그 크기를 10여 미터로 축소한 후 소환해 냈다.
주작이 날아가고 한참을 나아가고 있는데 드디어 녀석에게서 공명이 왔다.
하늘에 떠있는 주작의 눈을 통해 지상을 내려다보니 두 놈이 언덕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제 드디어 다이아 티어를 사냥할 시간이었다.
너무 멀리 있어 놈들의 레벨을 알 수는 없었지만 만약 놈들이 46레벨 이하라면 주작 혼자서도 놈들을 상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청룡까지 소환해 두 놈을 상대하게 할까? 아니면 사신수 모두 소환해 융합을 이룬 후 상대하게 할까?
만약 사신수가 융합을 하게 된다면 나와 엇비슷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놈들을 요리할 방법은 여러 가지 있었지만 나는 더욱 강화된 내 능력을 한번 시험해 보기로 하고 우선은 놈들 근처로 가기로 했다.
곧바로 백호를 소환해 내자 아레스가 깜짝 놀라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백호의 덩치는 예전에 비해 엄청난 크기로 자라나 있어 아레스가 놀랄만도 했다.
녀석의 덩치도 원래는 100여 미터에 달했지만 지금은 50여 미터로 축소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것도 이 맵에서는 너무 커 곧바로 백호에게 공명을 보내 몸을 더 축소시키라 명령했다.
츠츠츠츠츠
곧바로 흰 빛이 백호의 몸을 감싸더니 이내 몸체가 더욱 작게 축소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녀석의 몸이 10여 미터로 축소되자 그제서야 아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와 함께 백호의 등에 올라탔다.
예전 바다 속에서는 현무의 등에 타고 이동했는데 이번에는 백호의 등에 올라타자 그녀가 무척 신기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네 도사란 능력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 것 같아.”
“다른 직업에 비해 괜찮은건 나도 인정해, 도사라는 능력은 솔직히 무척 다양한 무언가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직업이라 능력치가 상승할수록 새로운 능력이 계속 생겨나거든.”
내가 방금 말한대로 레벨이 승급되고 능력치가 상승할수록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다른 능력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물론 기존의 능력도 능력치 스텟이 상승할수록 더욱 강화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 작품 후기 ================
추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