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다이아 티어가 되다
챌린저의 말을 듣는 중에 그가 내게 무척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말을 하면서도 흐뭇한 표정이 눈에 띄게 엿보이기도 했다.
그 후로 그와 나누는 대화는 내일 챌린저들의 대 회합에 관한 일과 그곳에서 나에 대한 얘기가 나올 것이라는 것, 그리고 얘기가 잘 되면 그때부터 전 우주에 사이어돈이 나타나면 내가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들이었다.
또한 챌린저의 말대로라면 지금 다이아 티어인 내가 마스터급 능력치 스텟이니 다이아도 별 무리 없이 통과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그것은 나 또한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바였다.
헌데 얼마 후 대화가 거의 끝나갈 쯤에 챌린저가 나에게 한마디 하는 소리를 듣고 나는 속으로 갸웃둥했다.
“같이 다니면서 우리 지아 좀 잘 부탁하겠네, 물론 때에 따라서 전투에 참가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것 말고도 자네만 믿겠네. 그리고 말야..,”
챌린저가 말을 하다 멈추고 갑자기 나와 지아를 한번씩 쳐다보고는 왠지 모르겠지만 씨익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남녀가 붙어 다니면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것은 내가 모르지 않네, 하지만 나중에 입 싹 씻으면 그때는 내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는데요..?”
물론 그 말에 심오한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만약 내가 ‘예’ 라고 대답해 버리면 상황이 이상해질 것 같아 그냥 모른 척했다.
헌데 그때 지아가 빽하고 소리쳤다.
“아빠!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아빠에게 말씀드렸듯이 우린 그냥 술친구일 뿐이라고요.”
“허헛, 네 엄마하고 나하고도 처음에는 술친구였었지.”
“아빠, 우리 정말 그런 사이 아니예요! 그렇죠 준수씨?”
“지아씨 말이 맞습니다, 우린 정말 아무 사이 아닙니다. 가끔 술을 먹고 떡이 돼서 한 침대.. 아니 그게 아니고.. 아무튼 우린 정말 아무 사이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헛소리가 나올뻔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두 사람 모두 흥분해 있어서인지 내 말은 주의 깊게 들은 것 같지 않았다.
곧바로 지아가 내 말에 장단을 맞추었다.
“들었죠, 준수씨도 저리 말하잖아요.”
“알았다 알았어, 그렇게 과민반응을 보이니까 더 이상하잖니. 아무튼 난 자네만 믿겠네.”
“안전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아씨는 절대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고 그것은 이미 저와 다시한번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래, 물론 안전이 제일 중요하지, 하지만 난 자네가 내 말을 알아들었으리라 믿겠네.”
“.................,”
두 부녀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챌린저가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리고 지아도 펄쩍 뛰고는 있었지만 실상은 입이 한쪽으로 약간 치우치는 것이, 어찌보면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 표정과 같아 며칠 전 그녀가 술자리에서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챌린저의 사무실에서 나오자 지아가 배웅을 해주었는데 그녀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욱 환해져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나는 모른 척하고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만약 내일 대회합에서 챌린저님 말씀대로 일이 잘 풀린다면 저와 지아씨는 이제부터 무척 바빠지겠군요.”
“글쎄요..? 하지만 전 우주라고 해도 그렇게 자주 출몰할지는 모르겠네요. 우리 은하계만을 기준으로 봤을 때 예전에는 일년도 넘게 나타나지 않을때도 있었는데 전 우주라고 해도 설마 하루에 한번 나타날라고요? 만약 그렇다면 정말 가고 오는 중에 우주선에서 랭크게임에 참가하거나 또는 사이어돈과 전투 중에 참가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겠죠.”
“놈이 자주 나타나도 골치 아프겠군요, 헌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만약 지구에서 너무 먼 우주에 놈이 나타나면 가는 시간에 놈이 이미 용병들에게 죽거나 아니면 놈에 의해 주위 행성이 벌써 파괴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그건 걱정 마세요, 만약 챌린저님들이 모두 동의 한다면 전 우주에서 가장 발전한 행성의 우주선을 아빠가 구해오실 거예요. 그러면 아무리 먼 우주라도 웜홀을 열고 워프를 같이 사용하면 그렇게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아요. 그리고 사이어돈이 나타나려면 암흑 물질이 우주공간에 생성되는데 그 에너지파가 너무 강해서 처음 생성될 때부터 그 은하에 속한 행성들이 알아낼 수 있어요. 그리고 암흑물질이 완성되고 사이어돈이 그곳에서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지아는 마치 만능박사처럼 물어보는 것에 대해 모르는 것 빼고는 전부 알고 있었다.
헌데 사무실을 나와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한쪽에서 아는 얼굴이 건물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얼굴은 바로 나 순진으로 나는 그녀를 보자 인상이 저절로 살짝 찌푸려졌다.
“순진씨 오랜만이에요.”
고개를 약간 숙이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몰히 하는지 순진이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려가다, 지아가 말을 건네자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쳐다보더니 나를 발견하자 약간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내 입가에 쓴 웃음을 머금은 채 지아의 인사말에 답변을 했다.
“안녕하세요.”
“국장님 뵈러 가시나 봐요?”
“네,”
그녀의 목소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그리고 나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의식하듯 일부러 내 눈길을 피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어깨가 축 쳐져있고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을 지아도 발견했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순진씨 왜 그렇게 힘이 하나도 없어 보여요?”
“아니에요, 그냥 일이 좀 있어서요.”
“아무리 일이 있다고 해도 그렇지 순진씨가 이렇게 힘이 없는 것은 처음 봐요. 이거 안되겠어요, 국장님 뵙고 우리 같이 한잔해요. 술친구가 이럴 때 필요한 것 아니겠어요? 준수씨도 괜찮죠?”
지아가 갑자기 술 약속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같이 있는 것이 껄끄럽고 싫어 고개를 저으며 없는 약속을 만들어냈다.
“전 안되겠습니다, 두 분이서 드십시오. 전 이미 선약이 있어서요.”
“갑자기 없던 선약이 생겼다고요? 그러지 말고 같이 마셔요.”
“아닙니다, 아까 화장실 갔을 때 약속이 잡혔어요.”
“뭐 그렇담 할 수 없죠. 그럼 준수씨는 가신다고 하니 전 순진씨와 함께 국장님 뵙고 한잔 할게요. 그런데 우리 셋이 술친구 하기로 했는데 이럴 때 같이 한잔 마셔주면 좋잖아요.
“다음에 마시겠습니다, 그럼 전 먼저 가보록 하겠습니다.”
순진이가 또다시 예전 생일 때 내가 그녀의 집을 나설 때처럼 조금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눈빛으로 쳐다본다고 네 개떡 같은 성격을 내가 모를 것 같냐.’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반중력 전철이 있는 정거장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전철을 타고 얼마 후 우주선을 타기 위해 지점 기관에 주차시켜놓은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중에 은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은지에게 전화가 오고 이틀 후 게임에 참가하는 날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이것으로 보아 우주시간보다 지구의 시간이 약간은 더 빨리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지에게 전화가 온 이유는 물론 한잔 하자는 거였다.
순진이를 보고나니 기분도 찜찜하고 은지도 요새 자주 보지 못해 한잔하기로 했다.
얼마 후 약속장소로 나가니 은지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준수 너 다이아로 승급했다며? 아레스 교관님에게 들었어, 정말 대단하다, 축하해.”
“축하는 무슨..”
은지가 마치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모습에 고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런 그녀가 몇 레벨인지 궁금해 내가 물었다.
“너는 지금 몇 레벨인데?”
내 말에 그녀가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너하고 비교 할 수는 없지만 나도 승급했어. 지금 3레벨이거든.”
몇 개월 만에 3레벨이라면 일반 랭커들에 비해 높은 편이긴 했다.
세 번째 게임에서 2레벨로 승급했다고 하더니 그 사이 1레벨이 더 승급한 모양이다.
10년 안에 실버를 벗어나면 도태자가 되지 않으니 그녀는 거의 도태자가 되지 않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래도 내 절친이고 나를 좋아하는 여자인데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것을 생각하자 얼마 전 플레티넘으로 솔로 게임에 참가한게 조금 후회가 되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오메리안 행성에 있었고 은지의 고유 기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카이스 주를 한잔 마신 내가 그녀에게 갑자기 탁자위로 손을 내밀자 그녀가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은지야 내 손 한번 잡아봐.”
빙긋 웃으며 하는 내 말에 은지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아무 말 없이 내손을 잡으며 같이 미소 지었다.
“우리 준수가 내 손 잡고 싶었어? 웬일이래, 네가 나한테 손을 잡아보자고도 하고?”
“그게 아니고 네 기를 나한테 보내고 내가 보내는 기는 네 머릿속에 기억해.”
내 말에 은지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통 서로의 기를 나눈다는 것은 아주 절친한 랭커끼리 듀오게임에 참가하자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에는 아주 중요한 사항이 필수 조건으로 전제되어야 했다.
그녀가 내 말에 무척 기뻐하더니 이내 조금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준수야, 너 혹시..? 만약 그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너도 알다시피 난 브론즈 3레벨이야, 넌 다이아 티어인 42레벨이고, 그건 말이 안되잖아.”
“알아, 넌 그냥 가만히만 있어.”
지금 난 능력 스텟이 52레벨로 마스터급이었다.
얼마 전 플레티넘 맵에서 전체 레벨 34 그리고 능력치 스텟 38레벨로 처음 전투에 참가하고 한명의 랭커는 솔직히 눈감고도 처치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비록 다이아 맵이라고는 하지만 내 능력치가 마스터급이니 다이아 랭커 두 명이라도 혼자서 충분히 처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더군다나 다이에 맵에서 몇 명만 죽여도 지금 은지의 레벨은 몰라보게 승급된다.
거기에 1등을 차지하게 된다면 은지는 단숨에 실버까지도 초월해 어쩌면 골드까지 승급할 수도 있었다.
만약 운좋게 하드맵에라도 떨어지게 되는 날에는 은지는 그야말로 복이 한꺼번에 굴러오는 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마스터 스텟으로 다이아 솔로게임에 참가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너무 재미없고 한마디로 수련도 되지 않는 무척 지루하고 단순한 게임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이미 그것을 얼마 전 플레티넘 맵에서 겪어 보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