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다이아 티어가 되다
“헌데 예전 저희 집에서의 일은 솔직히 저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는데 그때에도 제가 오늘처럼 그랬단 말입니까?”
“그래요, 그때에도 그 손모가지가 문제였어요.”
지아가 장난 식으로 말하며 또 장난끼 담은 눈빛으로 내 손을 쏘아보았다.
헌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화가 난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아는 지아라면 분명 남자 친구는 지금껏 한번도 없어 가슴은 내가 처음 잡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니, 그녀의 말대로라면 이번이 두 번째겠지만.
아무튼 그녀는 자신이 내 침대에 자발적으로 들어와 잔 것도 실수라 생각했는지 이번 가슴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아 무척 다행이라 생각했다.
처음에 눈을 뜨고 가슴에서 손을 떼려고 했을 때 그녀가 눈을 반짝 떠서 얼마나 놀랐는지.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과 함께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정말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머릿속이 텅 비워버렸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사히 지난 것은 그러고 보면 신이 내 기도를 들어준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듯 한마디 했다.
“이렇게 술을 많이 먹은 날은 준수씨가 끓여주는 해장국이 제격인데 여기에는 아시아의 양념이 없으니 아쉽네요.”
그녀가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나는 고맙게 생각되어 웃으며 대꾸했다.
“지구에 돌아가면 꼭 끓여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슬며시 돌리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 약속 꼭 지키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이 손모가지를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내가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하자 그녀가 내 오버스런 말에 킥하고 웃었다.
*
하루를 더 이곳저곳 구경을 다니고 우리가 다음날 드디어 지구로 돌아가겠다고 마스터에게 연락하자 챌린저가 우리를 잠깐 보고자 했다.
나와 지아도 뵙고 인사를 드리고 떠나야 할 것 같아 마스터의 안내로 다시 챌린저가 머무는 사무실을 찾아갔다.
“왜 벌써 가려고 하시오. 우리 행성에 내가 다스리는 지역 말고도 다른 대륙에 가면 구경할 것도 많은데 조금 더 머물며 다른 지역도 구경하고 가면 좋을텐데 말이오.”
우리를 보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챌린저가 말하자 지아가 빙그레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아닙니다, 다른 곳은 다음에 시간되면 구경하도록 하겠습니다. 며칠동안 환대해 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하긴 고향 행성이 그립기도 할 것이오, 여기 자유 행성이니 그럼 다음에 시간 날때 아무 때나 들러 구경하시오.”
“신경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아의 인사말에 빙그레 웃던 챌린저가 고개를 내게로 돌려 나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보며 다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지구의 아시아지역 챌린저님에게 연락은 받았소. 이름이 최 준수라고?”
“그렇습니다.”
“최 준수씨의 능력에 대해서는 당분간 우리 챌린저들만 알고 있을 것이오. 그리고 내일 전 우주 챌린저들의 모임이 있소. 사이어돈이 요즘 더욱 자주 출몰하기도 하고 카이론도 남쪽 은하에서 우리 북쪽 은하로 이동하고 있다고 해서 시급하게 잡은 회합이오. 아마 그 회합에서 지구 챌린저들에 의해 최준수씨에 대한 말이 오갈 것이오. 사이어돈은 물론 카이론까지도 최 준수씨가 해결책이 됐으면 좋으련만.”
챌린저가 뒷말은 흐렸지만 내가 암흑 물질을 흡수할 수 있고 카이론이 암흑물질은 분석할 수 없다는 것을 지아 아빠에게 듣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지아 아빠는 내일 회합때 내 얘기를 꺼내기 위해 지구의 챌린저 네 명에게 나에 대해 벌써 상의한 것이 분명했다.
하긴 혼자 만 명의 챌린저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한명이라도 같은 편에서 말을 하면 나을 것은 당연했다.
그럴 일은 희박하겠지만 만약 내가 사이어돈 완전체라고 어떤 챌린저가 분위기를 그렇게 몰아 우기게 되어 다른 챌린저들도 거기에 동조하게 된다면, 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나를 옹호해주는 챌린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었다.
물론 지금 앞에 서있는 작달막하고 파란 달비온이라는 외계 챌린저는 하는 행동으로 보아 내편을 들어줄 것은 틀림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잠시 후 사무실을 나오기 전 챌린저가 나를 보며 빙그레 미소 지은 채 말했다.
“사이어돈과 카이론에 대한 아무런 대안이 없으니 모든 챌린저들이 대부분 지구의 챌린저들 말에 동조할 것이오. 나는 직접 최 준수씨를 봤고 또 우리 마스터에게 최준수씨가 활약한 부분에 대해 직접 자세히 보고 받았으니 나도 물론 지구의 챌린저들 편에 설 것이오.”
“고맙습니다.”
챌린저와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나와 마스터와도 작별을 고하고 우주선을 출발 시켰다.
이륙한 후 자동 항법으로 바꾸어 놓고 지아와 탁자에 마주앉아 내가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이거 잘못된다면 내가 사이어돈 완전체로 몰려 소멸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히 사이어돈 사냥을 한다고 그랬나봅니다. 그리고 다크 사이어돈뿐 아니라 잘못하면 카이론까지 내가 덤탱이를 써야할지 모르는 상황이 됐습니다. 갑자기 일이 왜 이렇게 커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아빠가 이미 지구의 네 분 챌린저님들에게 준수씨에 대한 얘기를 했고 모두 동조를 한 모양이에요. 다른 모든 챌린저님들도 아까 오메리안 행성의 달비온 챌린저님 말씀처럼 다른 대안이 없으니 아빠 말에 모두 동조 할게 틀림없어요. 그리고 카이론 또한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놈이 암흑 물질만은 분석할 수 없으니 그 놈에 대해서도 준수씨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나만 그렇게 죽을지도 모르는 일에 뛰어들어 얻을게 무엇입니까. 그건 나만 손해잖아요. 확 잠수나 타버릴까보다.”
내가 인상을 쓰며 말하자 그녀가 그런 나를 흘겨보았다.
“이 세상에 도사란 능력은 준수씨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요. 그리고 준수씨가 얻는게 왜 없어요? 우선 다크 사이어돈이나 카이론을 처치하면 생명수당이라는 어마어마한 현금이 들어오잖아요. 그리고 사이어돈으로 인해 암흑 물질을 흡수해 남들보다 더욱 빨리 강해질 수도 있고요. 또 혹시 알아요? 사상 최초로 준수씨가 챌린저 1등을 100년 동안 연속으로 먹고 모든 게임을 클리어 한 후 알수 없는 존재가 전해주는 특별한 보너스를 얻을 수 있을지요.”
“크큭.. 100년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연속해서 1등 먹는다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건 지금껏 나온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장담하지 마세요, 암흑 물질을 계속 흡수할 수 있다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니까요.”
“지아씨는 저를 너무 믿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네요. 100년 동안 챌린저 1등을 먹고 이 지긋지긋한 랭크게임을 클리어 할 수 있다라..? 헌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알 수 없는 존재.. 즉 신이 어떤 것을 보너스 선물로 줄까요? 알려진 바로는 무슨 우주의 법칙을 어길 수 있는 특권이라고 했는데..?.”
“그거야 알 수 없죠, 거기까지 도달한 랭커들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짐작하건데 챌린저 100년 동안 1등을 먹었다는 것은 거의 신과 맞먹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고, 그 능력 자체만으로도 이미 우주의 물리적 법칙을 어길 수 있는 능력은 주어진 것이니 아무래도..?”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것을 지아도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이심전심이라고 우리는 그걸 생각하고 말도 안된다는 듯 서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만약 우리 생각이 맞고 준수씨가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그 이후로는 만날 수도 없겠네요. 그리고 제가 감히 준수씨를 쳐다볼 수도 없게 될 것이고요.”
“그럴 일 없으니 걱정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지아씨가 설사 절 못본다고 해서 서운할 것은 없지 않습니까?”
내 말에 그녀가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흘겨봤다.
“준수씨는 절 너무 배척하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전 그런적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술친구가 됐겠습니까.”
“그게 아니고...,”
지아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이내 뒷말을 흐렸다.
잠깐 더 얘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워프는 작동을 멈추고 우리 은하에 위치한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 도착했다.
저 멀리 이제는 오래전에 지구인이 이주해 제 2의 지구로 불리는 화성이 보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 별인 지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행성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역시 지구는 내 고향별이라 지구에 가까이 다가오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지구에 도착해 지아가 아빠인 챌린저를 같이 보자고 해서 나도 그냥 집으로 간다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녀를 따라 챌린저의 사무실로 갔다.
“오서오게, 이번에 다이아 티어인 42레벨까지 승급했다는 것은 국장에게 들어서 알고 있네.”
“덕분에 그렇게 됐습니다.”
챌린저가 소파에 앉을 것을 권하며 밝은 표정으로 환대해주었다.
“헌데 능력치는 얼마나 올랐나? 이번에 다크 사이어돈을 어떻게 처치했는지는 알고 있네.”
“52벨이 됐습니다.”
“정말 대단하네, 능력치만으로는 이미 마스터가 된 것이네. 아니 마스터부터는 전체 레벨과 경험치가 없어지고 순수하게 능력치 스텟만으로 실력이 결정되니 지금 자네의 능력은 마스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챌린저의 말에 지아가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듯 입을 샐죽이며 말했다.
“제가 준수씨를 처음 본게 브론즈일 때인데 그 몇 달 사이에 벌써 저와 같은 마스터가 됐어요. 아빠가 제 자질이 무척 우수해서 누구도 저를 추월할 수 없다고 했는데 여기 버젓이 있잖아요.”
“준수는 특이한 경우라 그런거지 준수 외에는 이제 없다는 것을 내 장담하마. 그래서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겠지?”
“그럴리 있겠어요? 준수씨 덕분에 저도 이제 우주여행을 실컷 하게 생겼는데 저야 대 환영이죠.”
“다크 사이어돈을 처치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니 조심해야 한다. 준수가 챌린저만 되도 안심을 하겠는데 아직은 많이 위험할 것이야.”
지아처럼 그녀의 아빠도 내가 챌린저가 될수 있다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 눈치였다.
하긴 능력치가 이미 마스터 티어로 접어들었으니 다음 단계인 챌린저로 승급되는 것이 지금 같아서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헌데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챌린저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능력치만으로는 마스터라 해도 챌린저까지 승급하려면 무척 힘든 여정이 될 것이네. 마스터 100만 명중에 1등을 먹는다는 것도 어렵지만 1등이 됐다고 해도 챌린저 꼴찌인 10,000등을 제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또한 정말 어려운 일이라네. 하지만 지금까지 자네가 이룬 성과를 보면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네, 아무튼 모든 걸 감안하면 자네가 빨리 성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