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다크 사이어돈 사냥
시작의 섬에 도착하고 주위를 언뜻 둘러보니 플레이어들은 이제 모두 먼 하늘만 바라본 채 다른 자들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이제 산전수전 모두 겪었다는 뜻이겠지.’
모든 플레이어들에게서 골드와는 또 다른 여유로움이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얼마 후 모든 플레이어들이 도착하자 다시 흰빛의 커다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니 눈앞에 거대한 산림이 펼쳐져 있었다.
맵부터 열어보니 안전지대까지는 300여 키로가 넘어 있었고 자기장은 4키로 뒤에 있었다.
골드부터는 며칠을 맵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동 수단 아이템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나무가 무성한 숲에서 이제 덩치가 100여 미터에 달하는 백호를 타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다.
구렁이도 이제 한 마리가 거대한 나무 굵기만해져 눈에 금방 띄어 척후병으로도 보낼 수 없다.
곧바로 도력을 끌어 올려 주위를 경계한 채 안전지대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비록 처음 참가하는 플레티넘 맵이었지만 능력치만은 다이아 레벨이기 때문에 긴장되거나 겁나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누구를 만나도 자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설사 이 맵의 최고 강자라 할 수 있는 40레벨의 플레이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기가 느껴져 살그머니 다가가 살펴보니 36-7레벨 정도 되는 플레이어가 제법 자신만만하게 안전지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능력치가 높다보니 나보다 전체 레벨이 상위인 플레이어의 기도 느낄 수 있고 어느 정도 능력도 가늠할 수 있었다.
‘저 정도 레벨이면 자신감을 가질만하지.’
플레티넘 중에서는 중상위 레벨이니 그럴만은 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그는 상대를 잘못 만났다.
주위를 살피며 걸어가는 놈 앞에 내가 불쑥 나타나자 놈은 내 기를 느끼지 못했는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곧바로 놈이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내게 물었다.
“몇 레벨이지?”
아마 내가 자신보다 상위 레벨이라 생각해 묻는 것일거다.
“34레벨.”
내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자 놈이 찡그렸던 인상을 그제서야 펴며 가소롭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34레벨로 지금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당당히 나타난 건가?”
“그렇다고 봐야겠지.”
전체 레벨이 34라면 능력치가 아무리 높아도 일반적으로는 37레벨을 넘을 수 없다.
게다가 모든 티어를 넘어서며 3번 모두 1등을 먹을 수는 없는 일.
놈은 자신도 한번 1등을 먹고 올라온 경력이 있어 지금 전체 레벨이 37에 능력치가 38레벨이라 눈앞에 나타난 애송이가 34레벨이라고 하자 코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플레티넘까지 올라온 것을 보면 그래도 애송이는 아닐 것인데 저렇게 당당하게 34레벨이라고 말하며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운 좋게 여기까지 올라온 애송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왜 자신이 애송이의 기를 느끼지 못하느냐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애송이가 기를 숨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튼 34레벨이라면 자신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나자 첫 번부터 운이 무척 좋다고 생각했다.
애송이가 검을 오른 손에 생성시키자 거의 3미터에 가까운 푸른빛이 검 끝에서 쭉 뻗어나며 일렁이는 것을 보고 순간 깜짝 놀랐다.
그것이 오러라고 생각되어 소드 마스터 급을 넘어선 검사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플레티넘 레벨에서 저런 오러를 내뿜을 수는 없었기에 그것은 오러가 아닌 검에 장치된 특수한 빛이라 생각했다.
‘만약 저 푸른빛이 정말 오러라면 최소 플레니넘 티어는 넘어선 놈이겠지. 그런 놈이 이 맵에 있을리도 없고 자신의 입으로 34레벨이라고 했으니 그것이 거짓말일리도 없을테고.’
잠깐 오러라고 생각한 자신이 우스워 피식 웃어버렸다.
놈의 검 길이가 무척 길었지만 그것은 개의치 않고 놈을 공격하기 위해 양손을 들어 올렸다.
헌데 바로 그 순간.
번쩍!
눈앞에 놈의 검이 다가와 훌쩍 피했는데 그 끝이 마치 채찍처럼 휘어지며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럼 그렇지.’
눈앞에 보이는 빛은 역시 오러가 아니라 채찍이라는 특수한 무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채찍 끝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는데도 왠지 모르게 떨쳐낼 수가 없었다.
헌데 빠르지 않다고 생각한 채찍을 최대한 재빠르게 몇 번 피하고 반격을 하려다가 실수를 해 우측 어깨에 기어이 채찍 끝이 살짝 스치듯 지나쳐갔다.
헌데 그 결과는 생각지도 못하게 치명적이었다.
[체력이 75%로 떨어졌습니다.]
어깨에 살짝 스친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덩이가 뭉텅이로 베어지며 체력이 한순간 25%나 떨어지고 팔을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찾아왔다.
순간 그것이 채찍이라는 무기에서 나오는 특수한 빛이 아니라 정말 오러라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오러는 보통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지만 저렇게 휘어질 수 없는 강력한 기의 에너지인데 애송이의 오러는 휘어지기까지 하며 자유자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오러를 뿜어내는 소드 마스터를 몇 차례 만난적이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었다.
하긴 이렇게 3미터 이상 뻗어 나온 오러도 처음 경험한 것이기는 했지만.
한쪽 어깨가 베어지며 고통에 잠시 정신이 흐려진 사이 이번에는 오러끝이 다시 오른쪽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휘청.
살짝 베인 것 같은데 오른쪽 다리가 순식간에 잘려져 나갔다.
[체력이 50%로 떨어졌습니다.]
애송이가 뿜어내는 강렬한 푸른빛은 확실히 오러가 맞았다.
*
나는 놈의 한쪽 다리가 떨어져 나가자 다시 오러의 기를 조절해 반대로 휘어지게 해 놈의 왼쪽 다리마저 베어버렸다.
쿵!
놈의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지며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주저 없이 놈의 목을 베어버린 후 몸통과 분리된 머리를 발로 으깨버리자 그제서야 놈의 몸통을 비롯해 머리와 내 발에 묻어 있던 피까지도 모조리 반짝 하며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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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이름 : 최준수
종족 : 인간 (인간)
직업 : 도사
티어 : 플레티넘
레벨 : 34
경험 : 430/3400
능력 (도력) : Lv 43
특수능력(도술) : Lv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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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은 역시 37레벨이었다.
놈은 나에게 공격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그대로 자기 행성으로 귀환했다.
이로서 37레벨은 나와의 능력 차이가 심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긴 지금의 내 능력은 다이아 티어 수준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터다.
예전 실버티어에서 나를 지구로 귀환 시켰던 소드 마스터를 한번 만나 복수를 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의 내 페이스로 봤을 때 놈은 아마도 골드 티어에 머물러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다시 안전지대로 향하며 걷는 사이 듀오게임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경험치도 경험치지만 무엇보다 아쉬운건 허전함이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말상대가 그리웠다.
이럴줄 알았다면 아레스나 티르얀에게 고유 기를 보내 듀오게임에 참가하자고 의중이나 떠볼걸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레스는 먼젓번 게임에서 나와 같이 플레티넘 티어로 승급해 괜찮았지만 티르얀은 아직 골드일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녀와 듀오게임에 참가한다고 해도 방금 전 37레벨을 나 혼자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처치한 것을 생각하자, 그녀는 싸우지 않고 나 혼자 두 명을 상대해도 1등은 충분히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설사 마지막에 40레벨자 두 명과 마주친다 해도 내게는 사신수가 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내 도력이 43레벨이니 사신수 각각이 모두 40-41 레벨의 플레이어와 맞먹는다. 더군다나 사신수가 융합을 하게 된다면 이제 나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니 설사 티르얀이 골드가 아니라 실버나 브론즈라 해도 상관은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나아가는 사이 35레벨과 38레벨을 저 죽이고 밤을 맞이했다.
하드게임이라면 더욱 많은 경험치를 획득해 전체 레벨을 빨리 올릴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곳은 노멀 맵이었다.
이래저래 아쉬운 마음을 품은 채 다음 날도 몇 명의 플레이어를 죽이고 삼일째 되는 날 안전 지대로 들어가기 바로 전에 내 레벨은 39가 되고 경험치는 2460/3900까지 올라와 있었다.
남아 있는 생존자수는 이제 13명뿐.
얼마 후 안전지대로 들어선 후 세 놈을 더 죽이고 나자 이제 경험치는 3580/3900이 되었다.
‘확실히 긴장감이 없어.. 스릴도 없고.’
전과 다르게 긴장감이 들지 않자 한편으로는 이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이아티어로 승급한다면 그때부터는 이런 여유로움도 없을 것 같아 이번 맵에서 최대한 이 여유로움을 한껏 즐기기로 했다. 아니 삼일동안 이미 충분히 즐긴 셈이었다.
얼마 후 생존자수는 2명이 남아 천천히 안전지대 중앙으로 이동해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중에 한 놈의 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저 멀리 누군가 나타나 내 앞으로 다가오는데 자세히 보니 무척 뚱뚱한 인간 여자였다.
지구인인가 했지만 더 가까이 다가와 보니 눈동자가 파란색에 귀밑이 약간 처져 있는 것이 순수한 인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외계인 여자였다.
레벨은 40-41레벨 정도 될까?
헌데 그녀도 다른 놈들처럼 내 기를 느낄 수 없자 인상을 찡그리며 똑같은 질문을 해왔다.
“몇 레벨이지? 난 41레벨인데.”
지금까지 만난 놈들과 같은 표정 그리고 같은 질문.
하지만 나는 성심껏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39레벨.”
내 대답에 역시 그녀도 지금까지 내가 거쳐온 다른 상위 레벨자들과 똑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똑같은 표정이란 내 기를 느낄수 없어 긴장하고 굳었던 인상이 펴지며 나를 깔보는 듯한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39레벨로 여기까지 왔다는게 믿어지지 않는군. 안전지대까지 어떻게 운 좋게 들어와서 기를 숨길 수 있는 능력으로 지금까지 어디 숨어 있다가 이제야 기어 나온 모양이지?”
처음 이 맵에 떨어져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처치했을 텐데도 마지막 2명이 남아 있을 때까지 39레벨이라면 비교적 낮은 레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비웃음 섞인 표정을 보며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듯 나는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자 그녀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뚱뚱한 몸을 더 가까이 이동시킨 후 두 팔을 들어 올린 채 손바닥을 활짝 폈다.
몸에 지닌 것은 아무것도 없이 두 손바닥만 나를 향하자 그녀도 아레스와 같은 염력술사인가 했다.
나도 곧바로 오러검을 만들어 도력은 조금만 주입해 오러의 길이를 39레벨에 맞게 조금은 짧게 생성한 후 그녀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