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챌린저와의 만남 그리고 지아의 정체
빼는 듯한 내 말에 그녀가 조금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나는 더 마시고 싶었는데 조금 아쉽긴 하네요. 어쩔 수 없죠 뭐.”
그녀의 말에 내가 빙긋 웃으며 달래듯 말했다.
“오늘은 지아씨도 그만 드시고 푹 주무십시오. 전 어제 많이 마셔서 오늘은 조금 쉬어줘야겠습니다.”
“갑자기 술을 마다하니 조금 이상하네요. 아무튼 마시기 싫다니 그럼 그만 일어나죠. 저도 그냥 집에서 잠이나 푹 자야겠어요.”
아쉬워하는 그녀를 보내고 나는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
그렇게 어영부영 이틀이 지나가고 이른 아침에 지아에게서 연락이 와 받아보니 그녀의 굳은 표정이 홀로그램에 나타났다.
[다크 사이어돈이 또 출현했어요. 이번에는 우리 은하가 아닌 우리 은하 근방에 있는 티뮤란 은하에 나타났어요. 헌데 이번에는 B급이라 상당히 위험한데 그래도 가시겠어요.]
“당연한거 아닙니까. 이것저것 가리다가 언제 강해집니까? 어디로 가면 되나요?”
[아니에요, 가시겠다면 제가 그리로 갈게요, 준수씨 지역에 있는 기관 옥상으로 오시면 돼요. 그곳에 제가 우주선을 대기시켜 놓을게요.]
지점 기관이라면 내가 도태자 권한증을 부여받은 건물이다.
각 지점 기관 건물 옥상에는 모두 중소형 우주선이 이착륙할 수 있는 선착장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나는 재빨리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자동차를 몰아 기관 옥상으로 향했다.
15분쯤 걸려 도착했는데 옥상에는 벌써 집채만한 은빛이 번쩍이는 중소형 우주선이 한 대 도착해 있었다.
확실히 지구 우주선보다는 날렵하고 더 세련되어 보였다.
우주선 앞으로 가니 입구가 열려 안으로 들어가니 지아가 조종석에 앉아 나를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바로 출발합니다.”
그녀가 말하자 우주선은 바로 이륙해 어느새 대기권 밖을 빠져 나갔다.
창밖에 나타난 파란색의 지구 행성을 보며 다른 어떤 행성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때 지아가 조종석에서 일어나며 내게 다가오더니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구 시간으로 30분 정도면 도착할 거예요.”
“무척 빠르네요.”
“그럼요, 이 우주선은 그래도 과학력이 꽤 발달한 행성의 우주선이거든요.”
그녀가 좌표를 입력한 후 자동조종으로 돌려놓고 워프까지 작동시켰는지 금방 수많은 빛들이 창밖에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흔들림이 없고 마치 제자리에 서있는 듯한 느낌에 확실히 지구의 우주선보다는 모든 면에서 안정감이 있는 듯 했다.
“겁나지 않으세요? 다른 플레이어들은 모두 용병으로 차출될까봐 근심걱정인데 준수씨는 어떻게 된게 마치 놀이를 나온 사람마냥 그렇게 태평할 수 있죠?”
“이건 어차피 저를 위해서 제가 지원한 것이니 마음을 편하게 먹은 것뿐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 지금 속으로는 무척 긴장하고 떨고 있습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아참, 저 스캔에 칩 갖다 대세요. 우주복은 혹시나 몰라서 충분하게 열벌 준비했으니까 파손돼도 10번까지 갈아입을 수 있어요.”
“저번 용병 차출 때 받은 우주복도 그대로 칩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것도 저장해 놓으세요. 돈 안받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요.”
조금이나마 내 긴장감을 풀어주려는지 그녀가 농담을 했다.
하긴 그녀 말대로 우주복을 저장해 놓으면 나중에 어디서건 쓸 데가 있을지 몰라 그녀 말대로 공짜인데 그냥 칩에 저장해 놓기로 했다.
티뮤란 은하는 지구에서 약 2만 3천광년 떨어져 있었는데 30분도 걸리지 않는다면 이 우주선의 성능은 무척 우수한 셈이다.
이런 것을 제공해준 챌린저가 나로서는 당연히 무척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한쪽에 있는 바닥과 붙어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지아가 커피 두 잔을 타오는 것을 보고, 내가 아니라 그녀가 마치 소풍을 나온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커피잔을 내 앞에 놓으며 그녀가 어깨를 으슥하며 입을 열었다.
“이제 이 우주선은 저와 준수씨 전용이에요. 아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챌린저님께 고맙다고 전해주십시오.”
“고맙긴요, 아빠도 사이어돈 완전체에 대한 해결책으로 그러는 것이니까 굳이 고마워 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도 이건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이잖습니까. 사실 사이어돈이 우리 은하에 나타나 지구 용병이 차출될 때만 지원하려 했는데 챌린저님 덕분에 우주 어디에서 출현해도 이렇게 갈수가 있으니 저로서는 무척 고마운 일입니다.”
“준수씨는 참 긍정적이네요.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하러가면서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걸 보면요.”
“속으로는 지금 무척 떨고 있습니다. 겉모습만 그렇지 지금 무서워죽겠다고요.”
내가 엄살을 떨 듯 말하자 그녀가 나를 흘겨보며 믿지 않는 듯 고개를 살며시 가로저었다.
“아무튼 대단하세요, 다크 사이어돈을 처치한다고 이렇게 먼저 나서는 사람이 있다니. 그리고 정말 조심해야 돼요, 갈 때 나 혼자 돌아가게 하지 말고요.”
“알겠습니다. 저도 무턱대고 싸우지는 않을 겁니다. 상황을 지켜보다가 최대한 안전하다고 생각될 때 나서려고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헌데 한 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암흑 물질을 흡수하려면 꼭 눈만 찔러야 흡수할 수 있는 건가요?”
“그건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저번에는 눈을 찔러서 흡수 했는데 다른 곳을 찔러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한번 시도해 봐야죠.”
“눈뿐만 아니라 다른 곳을 찔러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저번에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다가 정말 운좋게 그렇게 된 것이었지만, 정말 눈뿐이라면 준수씨가 놈에게 완전히 노출되어 위험성이 더욱 높아지잖아요.”
“기회가 되면 다른 곳을 한번 시도해 봐야죠. 만약 다른 곳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면 저로서는 한결 다행인 셈이죠. 아 참, 그리고 지아씨는 저를 근처에 내려주고 우주선을 타고 멀리 떨어져 계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제가 준수씨 우주복에 주파수를 맞춰놓았으니까 저와 항상 대화는 가능해요. 혹시 안되겠다 싶으면 곧바로 뒤로 물러나세요. 안되면 그냥 포기하고 떠나면 그만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지아씨 혼자 돌아가지 않도록 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거리가 더 가까워질수록 지아는 조금씩 긴장이 되는지 얼굴빛에 걱정스런 표정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나 또한 긴장이 무척 됐지만 겉으로는 그런 표정을 감추고자 애써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 그런 표정을 보고 지아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준수씨 지금 표정이 어떤지 아세요?”
“글쎄요..?”
“썩소에요. 억지로 긴장감 감추려고 짓는 웃음이 썩소란 말이에요. 제가 걱정할까봐 긴장된 표정 감추려는 거죠?”
“알면 짭니다.”
“억지로 그럴 필요 없어요, 긴장되면 맘껏 긴장된 표정 지으세요. 그게 오히려 더 긴장감이 풀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고마워요.”
“뭐가요?”
“내가 걱정할까봐 썩소를 지어주어서요.”
“말이 어딘가 어폐가 있는 것 같지만 아무튼 지아씨 말대로 그냥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편하게 표정관리도 해야겠네요.”
“그래요, 이제 우린 한배를 탔으니까 저에게는 억지로 숨길 필요 없어요.”
“한배라고 말씀하시니 전보다 더 가까워진 느낌이네요.”
그녀와 긴장감을 풀기 위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좌표와 가까워졌는지 워프가 멈춰지고 창밖으로 멀리 여러 별들과 크고 작은 운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와가요.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선장님!”
“선장님이라..? 그 호칭 맘에 드네요. 헌데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자신 있습니다.”
지아의 얼굴빛을 보니 진심으로 날 걱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고맙다고는 생각됐다.
하긴 아시아의 큰 자산이 잘못되면 막대한 손해이니 당연히 걱정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잠시 후 드디어 도착했는지 지아가 조정석으로 가서 앉고 수동으로 우주선을 조종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기를 얼마 후 저 멀리 우주 공간에 정말 엄청난 크기의 푸른빛 전류막이 생성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와 내 표정이 나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전에 봤던 크기보다 몇배는 거대한 암흑 물질이다.
저 속에서 이제 B급 다크 사이어돈이 출현하는 것이다.
놈의 몸체는 암흑 물질의 크기에 비례한 것이니 적어도 지구 크기만할 것이었다.
그때 지아가 조종석에서 뒤를 돌아보며 여전히 걱정스런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준수씨, 그냥 돌아가면 안될까요? 아무래도 너무 위험할 것 같아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포기할거였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후우.. 알았어요.”
지아는 우주선을 전진시켜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한 후 내키지 않은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생명체 반응을 보니 약 23만 5천명 정도예요. 티뮤란 은하에 위치한 각 행성들에서 차출된 용병들이에요.”
“참 많이도 몰려왔네요.”
“하지만 B급이라 저 정도 전력으로도 모자랄지 몰라요, 모자라면 다시 차출되겠지만요.”
“근방 행성의 챌린저 한분만, 아니 두 분만 나서면 B급 사이어돈을 처치할 수 있을텐데 괜한 생명만 희생시키는군요.”
내 말에 지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야 인구가 넘쳐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만약 챌린저가 나섰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지역 시민들은 다른 지역에 먹혀 노예로 살아갈 수도 있으니까 챌린저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나서지 않아요.”
“하긴 평생을 사는데 이렇게라도 인구수를 줄이지 않으면 우주 전체가 난장판이 될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전 나가볼 테니 입구나 열어주십시오.”
“정말 조심하셔야 되요. 정말요!”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지아가 근심스런 표정으로 거듭 당부하자 어깨를 으슥하며 나도 재차 대답했다.
곧바로 우주복을 착용하고 우주선 밖으로 나서자 챌린저와 약속한대로 그녀는 우주선을 뒤로 멀리 이동시켰다.
[준수씨, 잘 들리나요?]
“네, 잘 들립니다.”
[저도 화면을 확대해서 그곳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만약 준수씨가 위급하다고 판단되면 우주선을 가까이 접근시킬 테니 미련 갖지 말고 바로 돌아오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저도 이런 곳에서 개죽음당하기는 싫습니다.”
[당연하죠, 이런 곳에서 놈에게 소멸되면 안돼죠.]
혼자 외떨어져 있는데 지아와 통신이라도 할 수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기는 했다.
도력을 끌어올려 앞으로 날아가니 암흑 물질 근처에 새까맣게 몰려 있는 무수한 플레이어들이 눈에 들에 들어왔다.
암흑 물질 근처라고 하지만 실은 그 거리가 수키로는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만큼 암흑 물질의 거대함은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지지지.. 지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