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챌린저와의 만남 그리고 지아의 정체
아레스는 그런 나와 은지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담한 몸에 보조개가 살짝 들어간 영락없는 귀여운 서양 아가씨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레스의 눈가 밑에 살짝 죽은 깨가 있고 머리는 짧은 금발로 무척 동안이라 은지보다 어려보이기까지 했다.
은지만 없다면 한번 볼이라도 꼬집어주고 뽀뽀라도 해 주고 싶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헌데 얼마 후 은지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화장실을 가는 것이 아닌가.
“교관님 빨리 볼 이리 가까이 대봐.”
내 말에 아레스가 반색했다.
“왜 그래..?”
“귀여워서 뽀뽀한번 해주려고.”
“미쳤어, 그러다 은지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니까 은지 나오기 전에 빨리, 안그럼 은지 볼 때 할지도 몰라.”
내 협박에 아레스가 싫지 않은 듯 귀엽게 흘겨보며 볼을 갖다 대자 내가 재빨리 입술을 쪽 맞춰주었다.
“정말 못 말려. 그나저나 준수야, 은지가 너 많이 좋아하고 있는데 은지 마음 상하게 하지 말어. 은지 얼굴도 예쁘고 착하잖아.”
“알아, 그런데 동기에 친구이다 보니 여자로 느껴지지 않아서 그래. 아기 때부터 같이 교육받으면서 자라왔는데 연인이 된다는게 쉽지 않지.”
“네 맘 알아, 하지만 은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걸. 널 한 남자로 보고 있잖아.”
“그 문제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거 같아. 아무튼 교관님은 마음도 넓어, 자기 남친에게 다른 여자 사귀라고 밀어주니 말야.”
“넌 내 비밀 애인이고, 은지는 아니잖아.”
“몰라, 나중에 교관님도 내 애인이라고 밝힐 수도 있어.”
“그건 안돼, 그럼 내가 우스워지잖아.”
“뭐가 우스워지는데. 어차피 나이는 상관이 없는거고 다른 연인들 보면 백년 이상 차이 나는 남녀도 잘 사귀고 있던데.”
“우린 그래도 스승과 제자 사이잖아. 아무튼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교관님은 생긴 것 답지 않게 무척 고지식하단 말야, 나이도 31살인가 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아무튼 내가 빨리 마스터급으로 승급해야겠어. 그래야 다른 여자와 상관없이 교관님도 내 여자라고 밝힐 수 있지.”
지금 시대에는 마스터급 이상 되는 플레이어들은 여자를 몇 명 거느리는 자들도 많았다.
물론 마스터급의 여자 플레이어들도 가끔은 그런 경우가 있었지만 역시 여자는 무척 드문 경우였고, 남자란 예나 지금이나 본능적으로 씨를 뿌리려는 족속들이라 그런지 능력있는 플레이어들은 자신보다 낮은 여자 플레이어들을 여러명 거느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내 말이 끝나자 그때 은지가 화장실에서 나오며 우리 두 사람을 보고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두 분이 뭘 그렇게 다정하게 속삭이실까? 혹시 내 욕한 거 아냐?”
“네가 아니라 교관님이 내 욕했다. 교관님께서 너 참 예쁘고 착하니까 마음 상하게 하지 말라고 날 막 야단 치셨거든.”
“그럼 그렇지, 아무튼 우리 교관님 밖에 없다니까.”
은지가 아레스에게 가더니 애교를 부리듯 두 팔로 아레스를 꼭 끌어안았다.
한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은지의 레벨에 대한 얘기가 나와 들어보니 그녀는 어느새 5레벨이 되어 있었다.
그 짧은 기간에 5레벨이라면 도태자가 될 확률은 거의 없어 나나 아레스는 안심을 하며 그녀를 축하해 주었다.
“넌 벌써 플레티넘이라며? 정말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하지만 네가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난 널 친구로 생각할 테니까 신분 얘기는 꺼내지도 마.”
“당연한거 아냐, 너와나 사이에 신분은 무슨 신분이야.”
은지가 눈을 찡긋하며 귀여운 표정을 지은 채 내 말을 받았다.
“역시 준수는 마음이 넓어서 좋아.”
은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다.
순진이에게는 복수한답시고 앞구멍 뒷구멍을 모두 뚫으려고 했던 나다. 헌데 여기서는 마음이 넓다고 하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마시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은지만 아니라면 여기서 자고가도 됐을텐데 지금은 괜한 의심을 살 필요가 없어 나는 은지와 함께 얼마 후 자리에서 일어나 아레스의 집을 나왔다.
집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 나는 은지와 함께 걸어서 그녀의 집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아레스에게 가볼까 하다가 이미 12시가 한참 넘어 있어 그냥 집으로 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진동이 울려 받아보니 국장이었다.
[오늘 챌린저님께서 자네를 보고자 하시는데 시간 괜찮겠나?]
국장의 말에 나는 다소 놀랐다.
아직 마스터도 아니고 다이아도 아닌 기껏 플레티넘을 한 대륙을 지배하는 챌린저가 보자고 하다니.
이게 어디 말이나 될법한 소리인가.
어제 국장과 지아가 언질을 주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정말 몰랐다.
챌린저가 내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니 언젠가 보긴 봐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최소 다이아, 아니 마스터는 되어야 할 줄 알았다.
내가 속해 있는 아시아 대륙의 챌린저가 누구인지 궁금하기는 했다.
그리고 챌린저의 능력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또한 궁금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챌린저를 만난다고 그의 능력을 내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포스는 무척 대단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내 자질이 우수해 한번 보자고 하는데 굳이 피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챌린저를 내가 볼 수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무척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기관으로 가면 되는 겁니까?”
[그래야겠네. 그리고 챌린저님께서 저녁에 보자고 하시며 간단하게 식사라도 한끼 하시자고 하셨네. 우선 기관에서 나와 만나서 약속장소로 같이 가세.]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5시까지 내 사무실에서 보세.”
“알겠습니다.”
국장과 전화를 끊고 나니 웬일인지 가슴이 약간은 두근거렸다.
챌린저와의 만남이라.
당연히 긴장되고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침과 점심을 먹은 후 3시가 되자 차를 몰고 중앙기관으로 출발했다.
가는 내내 챌린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어떤 사람일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챌린저가 꼭 남자일 수는 없다.
아메리카 지역의 챌린저가 여자라는 말이 돌기도 해서 우리 아시아 지역의 챌린저도 여자가 아니란 법은 없다.
모든 챌린저들의 정체는 항상 비밀에 싸여있다.
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온 불문율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마디로 어둠속에서 대륙을 지배해오는 존재라고나 할까.
어느덧 기관에 도착해 국장실로 올라가니 국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제 봤는데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았지만 그건 국장의 성격 같았다.
“오서 오게, 챌린저님께서 이번에 자네가 플레티넘으로 승급한 것에 대해 축하라도 해주실 모양일세.”
“플레티넘이야 저뿐 아니라 우리 아시아 지역에만도 수만명이 있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축하씩이나요.”
“자네는 그들과는 다른 경우잖은가. 자 아무튼 빨리 가세, 아무래도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게 예의이니.”
국장을 따라 나서니 예전에 지아를 만났던 식당이었다.
아마도 이 식당이 중앙 기관에서 중요 손님을 만날 때 식사를 하기 위해 주로 이용하는 식당 같았다.
물론 나는 내 자신을 중요손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단촐하지만 무척 깔끔한 방으로 안내되어 국장과 기다리고 있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국장에게 물어 보았다.
“국장님, 지아씨는 오늘 오시지 않는 겁니까?”
“왜? 지아님이 보고 싶은겐가.”
“그게 아니고, 어제 말씀하시기로 챌린저님이 지아씨를 마음에 들어 하셔서 항상 옆에 두려 한다고 하시길래 하는 말입니다.”
내 말에 국장이 의미모를 미소를 빙그레 지었다.
그 미소를 보니 분명 지아와 챌린저 사이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잠시만 기다리면 지아님도 이곳으로 오실 것이네, 챌린저님께서 자네를 보시자고 했으니 지아님에 대한 자네의 궁금증도 곧 풀 수 있을 걸세.”
사실 지아가 중앙 기관과 관계가 없는데도 어째서 그녀는 중앙 기관에서만 알 수 있는 일들을 알고 또 국장이 일반 상위 마스터를 대하는 것보다도 더 깎듯이 마치 직속상관을 대하듯 행동하는 것인지 자못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런 것에 대해 은근히 돌려서 물어보면 항상 대답을 회피하곤 했는데 오늘 그 의문을 풀 수 있다니 기대가 되기는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려오자 나도 모르게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도 덩달아 따라 일어나자 곧바로 방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들어온 사람을 보고 나는 다소 놀란 표정과 함께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아씨, 머리는 왜 그렇고 옷은 또 왜 그렇습니까?”
그랬다.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지아였다.
헌데 그녀는 어제까지 지니고 있던 찰랑거리는 검은 긴 생머리를 짧은 단발로 자르고 머리 색깔 또한 새빨간색으로 물들여 놓았다.
입고 있는 옷은 또 어떤가.
단정한 바지 정장은 벗어버리고 타이트한 검은 가죽옷에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 진 바지를 입고 있어 전과는 다르게 무척 활동적으로 보였다.
정장을 입었을 때와는 확실히 많이 변해있어 만약 이미지 변신을 꾀한 거라면 무척 성공적이라 할만 했다.
그리고 정장을 입었을 때의 모습이 무척 정숙하고 요조숙녀 같은 이미지였다면, 빨강 머리에 가죽 재킷 그리고 타이트한 진 바지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뭐랄까.. 무척 발랄하고 전투적이며 조금은 섹시해 보이기까지 했다.
“왜 웃으시죠? 제 모습이 이상한가요? 계속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려니 조금 지겨워서 이미지 변신 좀 해보려고 이런 건데,.”
“아닙니다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모습보다 지금 이 모습이 더 잘 어울리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고마워요. 그럼 제 이미지 변신은 성공한 셈이네요.”
“제가 보기에는 확실히 그래 보입니다, 헌데 챌린저님은..”
내가 묻자마자 밖에서 한 사람이 뒷짐을 진 채 무척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서서히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이 사람이 챌린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사람에게서는 남다른 포스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에게서 어떤 기를 느낀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형의 자연스러운 어떤 알 수 없는 포스가 전해져온 것뿐이다.
모습은 물론 25살의 무척 젊은 얼굴이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경륜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아빠, 이분이 최 준수씨에요.”
‘아빠..!? 아빠..라..?’
지아가 젊은 챌린저에게 아빠라는 소리를 하는 순간 나는 뒤통수에 망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어 잠시 머리가 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예전 아레스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