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나순진 공략
하긴 국장이라고 항상 고위급과 놀라는 법은 없으니까.
한편으로는 지아도 국장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보다 더 높은 순위의 마스터니 그녀도 고위급은 고위급인거다.
헌데 지아는 왜 안지 얼마 되지도 않은 순진이를 그렇게 챙겨주려는 것인지 의문이다.
저번에 보니 그때 처음 본 사이 같았는데 그 사이 몇번 더 만나 급속도로 친해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갈지 말지 대답은 해줘야 했기에 아주 잠깐 고민하고 있는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어 갑자기 머리털이 삐쭉 섰다.
‘그래, 그 일을 깜박 잊고 있었군.’
한순간 예전에 나 순진이 나를 길바닥에 내팽개쳐 150여 키로가 넘는 거리를 달려온 걸 생각하니 갑자기 열불이 올라와 머리까지 쭈삣 서는 느낌이었다.
‘가야지, 가서 어떻게 되든 되갚아줘야지.’
그때의 일을 어떻게 복수해 줄지는 가서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어찌됐든 만나는 봐야 복수를 해도 할 것이 아닌가.
“당연히 가봐야죠, 그 여자 성격도 이상해서 친구가 없을 것 같은데 우리라도 챙겨줘야죠.”
[그 말은 너무 심했고 아무튼 주소 찍어드릴게요, 그럼 이따 봐요.]
전화를 끊고 주소를 확인하니 여기서 1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였다.
시계를 보니 지금 3시30분이라 가려면 바로 출발해야할 것 같았다.
지아는 순진이가 날 도로에 팽개친 걸 몰라서 내가 심하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나순진의 행동은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것이 틀림없었다.
‘은혜는 될수 있으면 안갚지만 복수는 되도록 십만배로 갚아주는게 내 철칙이다.’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잠깐 생각하고 있는데 아레스가 실망한 듯 입을 열었다.
“친구 생일인가보네, 그럼 가봐야지 뭐. 그런데 국장이란 말을 하는 것 보니까 기관쪽 사람들 인가 봐?”
“그래, 처음에 날 스카웃 하려하는 사람들인데 난 그런데 관심 없다고 이미 내 의사를 밝혔어. 그런데 어쩌다보니 가끔 만나게 돼서 지금은 그게 인연이 돼 그냥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들이야.”
“그래..? 그럼 어서 가봐, 5시면 지금 출발해야 할 거 같은데.”
홀로그램이 반대쪽에 있고 스피커 통화를 했기 때문에 아레스도 여자인걸 알았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면에서 보면 아레스가 무척 이해심이 많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우리는 다음에 마시자.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
“그래 알았어, 어차피 약속을 했으니까 늦기전에 빨리가봐.”
“알았어.”
아레스 집에서 나와 차를 끌고 순진이의 집으로 향하며 여러 가지 작전을 세웠지만 역시 우선은 상황을 봐가며 행동하기로 했다
잠시 후 5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그녀의 집에 도착해 벨을 누르니 웬일인지 그녀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얼음조각상답게 냉기를 풀풀 날리며 의외의 말을 했다.
“네가 우리집엔 웬일이지?”
이게 뭔 말인가? 우리 집에 웬일이라니..?
그럼 이 얼음 조각이 내가 생일 축하하러 온다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그녀의 말에 내가 무척 뻘쭘해 졌다.
‘젠장, 순진이가 날 초대한게 아니라 지아가 멋대로 날 부른 것이었군.’
그냥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이렇게 원수를 만났는데 맨손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녀의 냉막하고 얼음장 같은 행동을 보니 그때의 일이 새삼 다시 떠올라 머릿속에서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겉으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치 사랑하는 연인에게 말하듯 나긋나긋하게 입을 열었다.
“몰랐나보네, 지아씨에게 연락이 왔는데 네 생일이라고 해서 나도 축하해 주러 온거지. 우린 그래도 맵에서도 만났고 인연이 됐는지 이곳에서도 다시 재회했잖아. 게임에서 만나고 다시 현실에서 만난다는게 그게 어디 보통 인연이야.”
내 말에 그녀의 얼굴이 이상야릇하게 변하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치켜뜬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손님이 왔는데 이렇게 밖에 세워둘 거야? 그것도 너 생일 축하하러 온 손님인데.”
“어쨌든 왔으니 들어는 와.”
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하며 몸을 옆으로 비켜주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이미 모두 차려져 있었다.
헌데 한상 가득 차려진 것을 보고 내가 소파에 앉으며 무심코 한마디 하자 그녀가 나를 무섭게 쏘아보았다.
“이거 네가 만든거야? 생긴 것 답지 않게 음식 솜씨는 조금 있나보네. 아니면 출장뷔페를 불렀나..?”
내가 생각해도 조금 깐족댄 면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쏘아볼 필요까지야.
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면 나는 벌써 완전 소멸했을 것 같았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자리에 앉기나 해.”
그래도 손님이라고 그녀는 주방으로 가더니 유기농 커피 한잔을 타와 내게 건네주었다.
커피를 거의 마셔갈 때쯤 밸이 울려 순진이가 문을 여니 국장과 지아가 같이 들어왔다.
“여어, 벌써 와있었군. 정말 오랜만일세. 이제 자네 어엿한 플레티넘이 됐더군.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아. 이러다가는 이제 머지않아 마스터까지 승급될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한 일이야. 아 참, 그리고 늦었지만 자네 때문에 저번 다크 사이어돈을 쉽게 처치한 것에 대해 챌린저님을 대신해 감사의 말을 전하겠네.”
국장이 나를 보더니 반색을 하며 내 손을 잡아왔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국장은 나를 보니 무척 반가운 모양이다.
“플레티넘이 되신 것 정말 축하드려요. 무려 34레벨이시라고요, 정말 대단하세요.”
지아가 레벨까지 말하자 순진이가 무척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부럽다는 빛도 조금은 내포되어 있었다.
헌데 그때 국장이 자리에 앉으며 기어이 핵심을 물어왔다.
“헌데 자네 전체 레벨이 34인데 능력치와 특수 능력은 어떻게 되나? 그건 슈퍼 컴퓨터에도 표시가 되지 않아서 말야.”
암흑 물질에서 에너지를 흡수했다고 하면 별의 별 추측이 난무하고 그것이 계속 주제로 올라와 무척 귀찮아질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랭크게임에서 1등한 횟수만을 말했다.
“36레벨입니다.”
“세 번의 티어로 승급하며 2번씩이나 1등을 먹었다니 정말 부러워, 나는 한번도 1등을 먹고 올라온 적이 없는데 말야. 지아님도 자질이 무척 우수하시고 또 첼.. 아니 아무튼 지아님께서도 한번 밖에 하신 적이 없는데 플레티넘까지 올라오며 1등을 두 번 먹었다는 것은 역시 자네의 자질과 능력을 다른 플레이어들은 따를 수 없다는 뜻이네.”
“너무 추켜세우지 마십시오. 운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아무리 운이 좋았다고 해도 실력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그 운도 소용없었을 것이네.”
국장이 한껏 치켜세우자 지아도 옆에서 거들었다.
“국장님 말씀이 맞아요, 그 운이라는 것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 결국 운도 실력이라는 뜻이에요.”
“그 얘기는 그만 하시고 오늘은 순진이 생일이니까 우선 축하부터 해 주자고요.”
“아 참, 그렇지. 나 순진씨 생일 축하해.”
“순진씨 생일 축하합니다.
내가 주제를 바꾸자 국장과 지아가 곧 순진의 생일을 축하해 주어 나도 그녀를 힐끔 보며 축하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순진, 생일 축하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순진이라는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순진이라는 이름은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교육원으로 보내졌기 때문에 교육원에서 작명을 짓는 전문가가 지어줬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 작명가는 아무래도 순진이가 순진하게 자라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한마디씩 축하를 해주고 곧 간단하게 식사가 시작되고 역시 이런 날에 술이 빠질 수는 없는 일.
식사는 먹는둥 마는둥 하고 술자리가 벌어지자 역시 오늘 모두 랭크게임에서 귀환한 날이라 그런지 무섭게 술들을 입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며칠 전투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은 나 역시 그랬지만 이들도 마찬가지로 술이 최고인 모양이다.
한동안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다크 사이어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국장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쳐다보며 다짐받듯 말했다.
“준수 자네 혹시라도 다음에 또 용병에 차출 된다면 앞으로는 그런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고 뒤로 빠져있게. 이건 챌린저님께서도 자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네.”
“맞아요, 앞으로는 절대 그런 행동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그러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우리 아시아지역 뿐만 아니라 지구로서도 큰 손실이니까요.”
지아까지 거들자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제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아시아 지역은 물론 지구까지 들먹입니까?”
내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국장이 반색하며 대꾸했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말게, 자네같은 인재는 정말 지금까지 한번도 나온 적이 없었네. 자네가 플레티넘에 승급되기까지 기간이 어느 정도 걸렸는지 자네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챌린저님의 자네에 대한 관심은 무척 지대하시다네. 조만간 아마도 챌린저님께서 자네를 만나보시려 하는 것 같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는게 좋을 걸세.”
“챌린저님을 만나는 일에 무슨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까? 그것도 단단히 씩이나요. 그렇게 부담을 주신다면 전 굳이 그 분을 만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뭐라고 하신다면 전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면 그만이고요.”
내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국장이 이내 깜짝 놀라며 펄쩍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