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3화 〉나순진 (123/207)



〈 123화 〉나순진

“그건 그냥 하는 말일 겁니까. 여자인 제가 봐도 순진씨 정말 괜찮은 여자거든요. 그러니 남자는 오죽하겠어요. 어찌됐든간에 지원 나왔으니 성질 좀 죽이고 한번 준수씨를  다독여봐 주세요. 그리고 꼭 오늘 말하라는게 아니라 오늘은 우선 친해진 후 언제고 다시 만날 수 있을 정도로는 만들어 놓고 가끔 눈치를 봐가며 꼬드길 수도 있게는 해 놔야죠.”

“후우, 알겠습니다. 그럼 성질 좀 죽여 볼게요.”


역시 국장 새끼가 순진이를 보낸 것이었다.
헌데 나 순진이 과연 성질을 죽일 수 있을까?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화장실 밖으로 다시 나가 자리에 앉으며 음흉한 미소를 입가에 은근히 짓고 있었다.

이제 두 시간이 흘러가자 나는 물론 지아나 순진이도 은근히 술이 올라와 있었다.
내가 화장실에서 들은 말을 생각하며 문득 순진이를 보고 의미없이 빙긋 웃자 그녀가 인상을 팍 구긴  고개를 획 돌려 버렸다.
그러자 지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순진에게 눈짓을 하자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쉰 채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소가 아니었다.
얼굴 전체는 무정한데 입꼬리만 올라간 이른바 썩소.


하지만 나는 그런 썩소를 보면서도 자못 친한 척하려 다시 방긋 웃어주었다.
내 미소에 지아가 이제 됐다 싶었는지 은근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내가 순진이의 미인계에 넘어가기라도  듯.

‘미인계라면 차라리 지아가 낫지, 나 순진 저것은 미인계가 아니라 얼음계다.’


두 여자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미인인은 것은 맞지만 성격면에서 지아가 훨씬 내가 원하는 성향의 여자였다.
지아의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녀를 만나면 마음이 조금 포근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만인을 끌어안을 수 있는 부드럽고 넓은, 마치 대지의 품과 같은 느낌.

그에 반해 얼마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나 순진은 이름만 순진하다뿐이지 성격이나 표정이 마치 조각품 같이 인간미도 없고 어딘가 뾰족한 느낌이 들어 언제 깨져버릴지 언제 찔릴지 모를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튼 순진이는 나를 포섭하라는 밀명을 받았으니 지금은 내가 갑의 입장이다.
때문에 나는 그 갑의 입장을 톡톡히 이용해 먹기로 했다.

“자 순진아, 한잔 건배 하자, 사실 랭크게임에서 있었던 일로 여기까지 감정을 끌고 오는 것도 이상하잖아. 지나간 일은 이제 잊고 앞으로 잘해보자.”


 말에 지아가 이제 됐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중재를 나섰다.


“그래요, 게임에서 있었던 일은 이제 그만 잊고 잘 지내봐요. 앞으로 또 맵에서 만날 수도 있잖아요.”

내가 말한 부분도 지아가 말한 것과 일맥상통했다.
사실 게임에서 있었던 일을 현실에서까지 감정을 대입할 필요는 없었는데 순진이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 것뿐이었다.


헌데 지아의 말을 들어보니 순진이 또한 골드티어인 것 같아 내가 그녀를 보며 물었다.

“너도 골드 티어야? 내가 너와 싸웠을 때가 7레벨인가 8레벨이었고 그때 넌 10레벨이었던거 같았는데 벌써 골드티어란 말야?”


내 말에 그녀가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나를 힐끔 흘겨봤다.
마치 자존심이 조금 상한 듯한 표정으로.

“그때 난 11레벨이었어. 그리고 여기 오기전에 국장님에게 들었는데 너는 지금 28레벨이라고..? 난 지금 23레벨인데 나를 비웃는 것 같아 기분은 좋지 않네.”

“아, 비웃은거 아냐, 나와는 상관없이 너도 무척 빨리 승급을 한 것 같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그 표정을 보니 네 말은 믿을 수가 없어, 나를 비웃는게 틀림없어.”

“성격 참 삐뚤어져도 한참 삐뚤어졌네. 진심을 말해도 믿질 않니.”

“네 표정이 지금 날 비웃는 표정이잖아!”

“아니라고 했잖아!”

다시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제법 화가 났는지 그녀답지 않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그만 좀 싸워요! 둘이  그래요? 분위기 좋게  한잔 하려고 부른 거지 싸우라고 부른거 아니잖아요. 제발 전에 지녔던 앙금은 털어버리고  친하게 지내봐요.”

지아가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 봤다.
점잖고 화를 낼 것 같지 않은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다.

‘지아씨도  성깔하네.’


하긴 이런 상황에서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할 터다.
나를 꼬드기기 위해 지원을 나왔는데 꼬드기기는커녕 더 틀어져 버리려고 하니 그럴만도 할 터다.

지아가 소리치자 나나 순진이는 깨깽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그림자 어쎄신인 나 순진을 한번 길들여보기로.
그녀가 아무리 자존심을 세우며 나와 꼬박꼬박 상충은 해도 결국 그녀는 국장의 밀명을 받고 나를 포섭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그녀보다 갑의 입장이었기에 그것을 이용해서라도 그녀를 한번 무릎 꿇려 보기로 했다.

저렇게 성격이 차갑고 자존심이 센 여자를 한번 꺾어보는 것도 남자로서 성취감이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재미도 있을 것 같았고.


“이제 싸우지 않을 테니 진정하십시오. 순진아 우리 악수하자, 이제 나도 말조심할 테니 너도 괜히 시비 걸지 말고 친하게 지내보자.”

내 말에 순진이 웬일이냐는  나를 쳐다봤다.
내가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자 그녀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거절을 할  없어 마지못해 손을 내밀고 나와 악수를 했다.


“그래요, 그러니 얼마나 보기 좋아요.”


그제서야 지아의 표정도 풀어지며 우리는 다시 술자리를 이어가게 됐다.
얼마 지나고 순진이와 나의 신경전이 잠잠해지자 나는 문득 여기 오기전에 생각했던 지아의 정체를 한번 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궁금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궁금한 점이 있다면  알아야하는  성격상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였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쳐보려고도 했지만 지아를 자주 만나다보니 사실 그녀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아무것도 없어 점점 정체가 궁금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지아씨는 국장님과 어떻게 아는 사이가 됐죠?”

내가 술을 한잔 마시고 뜬금없이 묻자 순진이도 지아의 정체가 궁금한 듯 지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냥 뭐랄까? 제가 마스터다보니 연줄이 있어서 알게 된 거예요.”

“아무리 마스터라 해도 기관 사람이 아니면 친분을 맺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더군다나 기관의 상위층인 국장님 정도를 마치 부하 다루듯 하는 것을 보니 그 연줄이 엄청 대단한 연줄인가 봅니다?”

내말에 그녀가 또 어물정 넘어가려고 했다.


“대단한 연줄은요, 그냥 어떻게 하다 보니 알게  거죠?”

국장 또한 마스터다.
아무리 지아가 더 높은 레벨의 미스터라 해도 국장을 그렇게 부하 다루듯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예전 점심 식사에 초대 받아 셋이 만났을 때를 보더라도 국장은 마치 지아를 상전 대하듯 꼼짝 못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지아가 웬만한 직책이 아니라면 중앙 기관의 국장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 취할  있는 행동이 결코 아니었다.

순진이도 국장에게는 그런 말을 들은 바가 없었는지 몹시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지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순진이가 마치 정체를 밝히라고 시위하듯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지아가 다시 이 상황을 무마하려는 듯 술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자 자, 그런 것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오늘 이 자리는 두 분이 친해지라고 마련한 자리이니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술이나 진하게 먹고 마음껏 취해보자고요.”

국장이 지아에게 하는 행동이나 지아가 국장에게 마치 아랫사람에게 명령을 내리듯 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분명 뭔가 있긴 있었다.


잠시 그런 것을 회상해보고 나는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나는 지금 그녀가 마스터인줄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짐작뿐이었고 그녀도 자신이 마스터라고 했지만 그것은 그녀의 말뿐 확실한 것은 아니다.


‘혹시.. 지아가 그 사람..? 에이, 그건 내가 너무 갔다.’

나는 혹시 그녀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아닌가 했지만 역시 그것은 내가 너무 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국장이 그 정도로 숙이고 들어갈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 사람밖에 없을 텐데..?’


아무리 국장보다 상위 마스터나 더 높은 고위직이라 해도 국장의 행동은 지아에게 너무 깍듯했다.
허나 역시 지아가 그 사람일리는 없다고 거듭 또 거듭 단정 지었다.
갑자기 이런 것을 깊이 파고들려니 머리가 아파왔다.

역시 그런 대단한 사람이 나 같은 사람과 이렇게 술친구를 할리 없을테고, 더구나 수시로 내가 사는 지역까지 찾아와 밤새 술을 마셔줄 리는 더더욱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그도 음식을 먹고 술을 먹는 인간은 인간일 터.

나는 혹시나 해서 지아를 여전히 쳐다보며 말도 안되는 황당한 소리를 기어이 내뱉고 말았다.


“혹시.. 챌린저..?”

내 말에 지아가 갑자기 두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러더니 또 갑자기 살짝 놀란 표정까지 지었다.


순진이 역시 조용히 내뱉은 내말에 놀란 듯 두 눈이 왕방울만해 졌다.
하지만 순진이가 이내 놀란 표정을 지우더니 나를 쳐다보며 피식 웃고는 기어이 쌍소리를 뱉어냈다.

“미친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받아주지, 저런 미친 소리만 하니 내가 화가 안나겠어.”


난 순진이의 말은 그대로 걸러내고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지아의 표정만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순진이 말대로 내가 한 말이 미친 소리는 맞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지아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와도, 설사 그 말이 거짓이라 해도 표정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래도 난 제법 눈치가 빠르고 잔머리가 돌아가는 편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순진이가 거친 말을 했지만 지아 역시도 순진이의 말은 신경 쓰지 않고 내 말에 조금 더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아의 표정 하나하나는 내 두 눈에 똑똑히 새겨지고 있었는데, 지금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는 무척 복잡하고도 이상야릇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처음 1레벨일 때 게임에 참가해 주인공이 모든 플레이어들 중에서 제일 늦게 지구로 귀환한 것이 아닙니다.
교육원을 졸업하고 처음 게임에 참가한 지구의 모든 졸업생 중에서만 제일 나중에 귀환한 것입니다.
그리고 졸업생중 처음 3레벨을 승급하고 귀환한 것이구요.


두 번째 게임에서도 모든 플레이어 중에 제일 나중에 귀환한 것이 아니고 같은 레벨


추신: 추천과 쿠폰은 작가에게  힘이 된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