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드디어 골드 맵이다.
짧은 금발 머리의 대단한 미모를 지녔고, 얇지만 마치 스티로폴처럼 딱딱할 것 같은 검은 전투복을 입은 여자.
하지만 전투복은 보기와 달리 무척 부드러운지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그랬다.
저 여자는 처음 내가 브론즈 랭크게임에 참가했을 때 모욕스런 말로 내 자존심을 한없이 깎아내리고 나를 한껏 비웃으며 죽인 여자였다.
헌데 그때 그녀는 분명 10레벨이라고 했었다.
내가 지금 24레벨로 무척 빠른 레벨업을 해 비상식적이란 생각을 항상 하고 있는데 그녀가 지금 골드 티어에 있다는 것은 그녀 또한 상당히 빠르게 레벨업을 했다는 뜻이다.
‘하긴 나만 그러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녀에게 죽임을 당할 당시 나는 3레벨이었고 그 후 지금 4번째 게임에 참가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이번 게임 전인 3번의 게임에 참가해 실버티어를 벗어나 지금 골드 티어까지 승급했다는 뜻이다.
만약 그때 나를 죽이고 난 후에도 충분한 경험치를 더 획득해 실버 티어로 승급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스토리였다.
그렇지 않더라도 나에 비하면 그리 빠른 승급도 아니었지만.
내가 그녀에게 죽을 당시 3레벨이었고 그녀가 10레벨이었으니 그녀가 실버 티어를 3게임 만에 통과했다는 것이 의외였지만 그 이유는 알 길이 없었다.
아니지, 궁금한 것은 알아야 속이 시원한 나는 그 이유는 그녀를 통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3게임에 만에 실버티어를 벗어났다는 것은 저 여자도 대단한 자질을 타고 났다는 건가?’
아무튼 그녀와는 확률상 다시는 보지 못하거나 혹시 보더라도 더 상위 맵에서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게 되니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복수를 해줄까 생각해보게 됐다.
‘그래, 역시 남자가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복수라는게 그거밖에 없겠지. 넌 죽었다고 복창해야 될 거다.’
딴에는 은밀하게 움직이는 그녀를 조심스레 따라가며 그녀가 나보다 하위 레벨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복수라는 단어도 입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었고.
처음 게임에 참가해 10레벨인 그녀를 만났을 때는 그녀가 마치 거대한 산과 같이 느껴졌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내가 거대한 산이 되어 작은 산을 내려다보는 심정이었다.
그만큼 지금 그녀는 내게 더 이상 거대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따라가는 줄도 모른 채 몸을 최대한 낮추어 딴에는 최상 아이템 하나라도 획득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지금 그녀의 레벨이 잘해야 21-2레벨인데 그런 최하위 레벨로 아이템을 획득하기는 무척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그녀 딴에는 지금 레벨로 누구를 만나도 패할 것은 당연했기에 최상위 아이템이라도 획득하는 것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상대를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아, 죽자 사자 아이템을 획득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그녀가 움직임을 멈추고 잎이 무성한 나무 위로 폴짝 뛰어올라 은신해 들어간 곳은 보급품이 지급될 장소와는 6-70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조금 멀다고 느껴지는 장소였다.
아마도 이곳에서 눈치를 봐가며 어떻게든 해볼 심산인 모양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보기에는 그녀가 아이템을 한 가지라도 획득하기에는 하늘위에 떠있는 별을 따는 것과 같이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어 그곳에서 기회를 엿보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고 또 더 이상 접근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발각을 당한다면 한주먹거리도 안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녀가 21레벨이고 지금 죽기라도 하는 날에는 경험치 삭감으로 인해 어쩌면 실버티어로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나무 위로 은신하자 나는 그녀를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나무 뒤에서 나와 은근히 그녀가 있는 나무 아래로 접근해갔다.
잠시 후 그녀가 있는 나무 아래 도착하자 나는 괜히 발로 나무를 한번 걷어차며 신경질적으로 이를 부드득 갈며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브론즈 티어에서 날 모욕하고 죽인 년은 언제쯤 만나려나? 내 이 년을 보기만 하면 아주 작살을 내 주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만날 가능성은 희박하겠지? 하지만 혹시라도 내 눈에 띄기만 하면 내 기필코 가만두지 않겠어.”
내가 말하는 순간 나뭇가지가 살짝 흔들렸지만 나는 모른 척 했다.
그녀는 분명 나를 발견했을 것이고 내가 자신보다 레벨이 높다는 것 또한 이제는 알고 있어 내 앞에는 될 수 있으면 나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헌데 나는 그녀가 듣기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말을 한마디 더 뱉어냈다.
“분명 상위 플레이어들이 모여들 텐데 이쯤에서 은신을 하고 기회를 엿보아야 하나? 가만 어디 은신할 장소가..? 옳지, 그냥 이 나무 위에 은신해 있으면 좋겠네.”
내가 나무 위를 올려다보며 뛰어오르려고 하는데 나무가 다시 살짝 흔들렸다.
아마 그녀는 지금쯤 어쩔 줄 몰라 하며 무척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뛰어오르려던 동작을 멈추고 다시 혼자 조용히 지껄였다.
“아니지, 이곳은 지급품이 떨어질 장소와는 너무 멀어, 역시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해 봐야겠어.”
말을 하고 나는 나무 위를 슬쩍 한번 쳐다본 후 나무 사이를 지나 앞으로 전진해갔다.
50여 미터 거리를 남겨두고 나 또한 멈추고 나무 뒤에서 우선은 동태를 살펴보기로 했다.
그녀는 아마도 내가 있는 한 쉽게 나무에서 내려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모든 기를 죽이고 있었지만 가까이 갔을 때 그녀의 기를 기억하고 그 기를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아직 나무 위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넌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 내가 다시 돌아올 테니.’
그녀의 레벨로 아이템을 획득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보물과 같은 상위 아이템을 그대로 포기하고 이 자리를 떠난다는 것도 그녀로서는 쉽지 않을 터다.
그것은 모든 플레이어의 목적이 안전지대까지 도착하는 것이 아닌 경험치를 올리는 것이 최종 목적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모를 떡고물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한편으로는 지금 당장 그녀를 죽여 경험치를 올릴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만으로 그때 당시 내가 받았던 마음의 상처를 대신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부분이 있었고, 또 지금 여기서 전투를 벌인다면 다른 플레이어의 눈에 띠일 가능성이 높아 우선은 살려두기로 했다.
이제 잠시 그녀의 일은 접어두고 나는 아이템도 아이템이지만 여기까지 오며 생각해둔 계획을 진행하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하늘에 거대한 우주선이 날아가고 곧바로 3개의 크고 작은 물체가 지상으로 낙하해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헌데 두 개는 보물 상자였고 나머지 한 가지는 소형 우주선으로 좌우 너비가 2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초소형 우주선이었다.
앞쪽에 뭔가를 발사할 수 있는 마치 기관포 같은 길쭉한 것이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보니 분명 공격용 우주선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런 아이템은 아무리 상위 아이템이라 해도 최상위 플레이어들에게는 거추장스럽기만 할뿐 이런 종류는 중하위 플레이어들이나 선호하는 아이템이었다.
그 이유는 우주선이 안전지대까지 무사히 도착하기도 쉽고 또 일반 레이저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성능 레이저를 장작 했지만, 골드 티어의 최상위 레벨이라면 레이저보다 더 강한 공격력을 소유하고 있고 또 안전지대까지 날아서 한번에 가는 것 보다는 사냥을 하면서 나아가는게 경험치 쌓기는 더 나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두 개는 보물 상자 안에 들어있어서 열어봐야 알 수 있어 이제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플레이어들이 슬슬 움직일 것이라 생각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사방에 은신해 있던 상위 플레이어들이 한 두명씩 기어 나와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고, 얼마 뒤 중위 플레이어들도 눈치를 보며 아이템 쪽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여기 오는 플레이어들 중에는 아이템도 아이템이지만 플레이어들을 죽여 경험치를 획득할 목적으로 오는 자들도 있을 터였다.
이런 곳에는 물반 고기반이라 굳이 플레이어들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으니까.
최하급 플레이어들은 역시 나서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 전면에 나선 자들은 거의가 없이 여전히 숨어있으면서 혹시나 모를 떡고물만 바라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위 플레이어들이 바라는 떡고물은 꼭 아이템뿐만이 아니라 다 죽어가는 플레이어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일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 것일 수도 있을 터다.
혹시라도 자신보다 상위 플레이어들이 싸우다가 양패구상하여 서로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지면 재빨리 나서서 죽일 수 있는 그런 기회 말이다.
한번만이라도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위 플레이어들로서는 당장 죽어도 커다란 이득을 보는 셈이었다.
나는 이때 여기로 오며 계획하고 있던 다른 작전을 구사하기로 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나는 이십여 명이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 아이템이 떨어진 장소와는 조금 떨어진 외곽으로 나무 사이를 오가며 은밀히 이동해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과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무 수풀 사이로 고개만 삐죽 내밀고 아이템과 중상위 플레이어들의 전투를 엿보고 있는 하위 플레이어 한명이 눈에 띄었다.
‘첫번째 사냥감이군.’
그렇다.
나는 아이템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은 경험치부터 획득하기로 마음먹었다.
중상위 플레이어들은 아이템을 차지하기 위해 나가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하위 플레이어들은 그 주변에 은신해 있으면서 기회만 엿보고 있다는 것을 역 이용한 작전이었다.
지금 은신해 있는 자들은 지금 내 레벨을 결코 넘지 않을 것이기에 사냥하기는 무척 쉬울 터다.
곧바로 부적을 하나 꺼내든 나는 현무를 소환해 낸 후 10여 마리의 구렁이 중 3마리만을 현무의 몸에서 떨어지게 한 후 현무는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쓰쓰쓰.. 스스슷..
구렁이들도 나와 공명을 하며 내 뜻을 알고 있었기에 플레이어를 삼면에서 포위한 채 나무 위나 지상으로 놈에게 접근해가기 시작했다.
은밀함에 있어서 구렁이만한 생물은 없을 터다
더군다나 놈은 한곳에만 정신이 팔려있어 구렁이의 접근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3미터나 되는 구렁이와 함께 나도 놈에게 서서히 접근하던 어느 순간 나무위에 있던 구렁이 한 마리가 그 큰 입을 쫙 벌린 채 놈의 머리 위로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우우욱!”
머리가 통째로 구렁이 입으로 들어간 놈이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한 채 숨 막히는 신음소리만 흘려내고 있었다.
헌데 잠시 후 놈의 몸체가 입속에 사라진 머리부터 점점 아래로 시커멓게 변해가는 것이 안가.
‘대단한 독성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