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7화 〉정사 (97/207)



〈 97화 〉정사

아레스 교관과 통화를 마치고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그렇게 인기가 있었나..? 아레스 교관님이 저러시는 것도 적응이 안되는데 교육장님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니..?’


하긴 지구의 수천여개 교육원에서는 자신들 출신의 교육생에게서 출중한 티어가 나올수록 교육원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따라서 만약 내가 마스터 급으로만 성장해줘도 교육원의 명성이 올라감은 물론 그 교육원의 장인 교육장까지 위상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있었다.

‘이거 내게 너무 기대들을 걸고 있으니 부담스럽기는 하네.’

기관에서도 모자라 이번에는 교육원에서까지 내게 부담을 안겨주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봐도 난 너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니 그들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아무튼 교관님과 만나 그녀가 경험한 골드 맵에 대해서 듣게 된다면 나로서는 굉장한 이득이라 그녀와 만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코레일 교육원의 여신인 아레스 교관님과 단둘이 술이라..?”

내가 알기로 아레스도 술을 무척 좋아하긴 했다.
저번 동기 모임 때는 동기들이 불편해 할까봐 그냥 자리를 피해준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암흑 물질과 다크 사이어돈이라는 존재 그리고 용병 차출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물어보아야 겠어. 교관님의 말대로라면 나도 언제 차출 될지 모르니.”


대충 말로만 들었지 암흑 물질과 다크 사이어돈 그리고 용병 차출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몰랐다.
그토록 침착한 아레스의 표정과 말투로 볼  용병으로 차출된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눈치 챌  있었다.


사실 오늘 저녁에는 지아나 은지를 만나 요 며칠 동안 마시지 못했던 카이스 주를 한잔 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레스 교관이 이리 전화를 주니 그녀와 마시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짝사랑 했던 교관과 단둘이 술을 마신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설레는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한편으로는 나도 자격증을 따서 교관으로 취직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중앙 기관에서 지급되는 월급 2만 셀링에 교관으로 일하는 월급이 또 따로 지급되니 평생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역시 교관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투철한 사명감과 열의 그리고 인내가 없으면  되는 직업이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나는 아레스와 같은 투철한 사명감과 열의가 없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인내도 없었다.
그 인내란 다름 아닌 만약 어떤 교육생이 말을  안 듣는다면 우선 주먹부터 날릴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내가 다닐 때에도 조금 껄렁대는 교육생들이 있었으니 지금이라고 없으란 법은 없었다.

약속이 정해지자 나는 천천히 준비를 하고 집에 있어봐야 할일이 없어 조금 이른 시간에 밖으로 나왔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그래도 날 가르친 교관님을 만나는데 먼저 가서 기다리는게 예의일  같아, 6시가 안되어 술집에 먼저 도착해서 아레스가 오면 시키려고 아무것도 시켜 놓지 않았고 기다렸다.

얼마 있지 않아 아레스가 들어와 날 발견하고 탁자로 다가왔다.


“먼저 와 있었구나. 오래 기다렸니?”

“아니요, 저도 방금 왔어요.”


역시 활동적이라 아레스는 치마가 아닌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치마가 없는지 지금껏 치마를 입은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아레스에게 우선 안주를 고르게 했다.

“저녁 아직 안드셨을 텐데 안주 겸 드시고 싶은  시키시죠.”

“배고프지 않으니까 네가 먹고 싶은 거로 시켜.”

“아닙니다. 오늘은 제가 대접할 테니 교관님 드시고 싶으신 것 맘껏 드십시오.”


“어쭈, 이제 골드 티어가 됐다고 제법 어른 티가 나네.”


지구인은 가장 왕성할 나이인 25살에 생체 나이가 멈춰지니 아레스 또한 실질적으로는 나와 동갑인 25살이다.
얼굴은 나보다 2-3살 어리게 보이는 무척 동안인 그녀가 그런 말을 하자 조금 우스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러자 그녀가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곱게 눈을 흘겼다.
하지만 그녀는 모른 척 다시 메뉴판으로 눈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준수가 골드 티어로 승급된 기념으로 쏜다고 하니 오늘 마음껏 먹어봐야겠네.”

“드시고 싶은 만큼 마음껏 드십시오. 교관님 말씀대로 골드 티어로 승급된 기념이니까요.”

“좋아, 그럼 너 후회하지 말어.”


“까딱없습니다.”


도태자를 처치한 후 지금 통장에는 4만 8천 셀링이 들어 있었다.
사실 얼마 전 실버 티어의 월급인 8천 셀링까지 들어와 있어 이제 돈 때문에 생활고를 겪을 일은 없었다.

아레스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내가 걱정 됐는지 보통 안주 하나에 카이스주 만을 시켰다.
아레스가 그거면 됐다고 했지만 내가 다시 배를 채울 수 있는 안주를 두 가지 더 시키자 그녀가 빙긋 웃었다.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레스의 모습은 평소 교육원에서 보던 딱딱한 말투와 행동은 사라지고 보통 여자 같이 부드러운 말투와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교관님, 교육원에서와 이미지가 너무 다른데요?”


“교육원에서는 교관으로서 그런 것이고 이제 너도 졸업을 했으니 성인이잖니. 그리고 밖에서까지 내가 교관이다 하고 티내고 다닐 필요는 없잖니.”

“그건 그래요. 교육원에서 매일 딱딱한 말투와 행동을 보아서 그런지 지금 이 모습이 더 보기 좋은  같아요.”


“난 언제나 밖에서는 부드러운 여자였다, 오해 하지 말어.”

“알았어요, 오해 안 할게요”


그녀가 내 말에 다시한번 눈을 곱게 흘기며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나 은지가 동양적인 모습이라면 아레스는 서구적인 모습이었다.
물론 지금 시대에는 서구니 동양이니 하는 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됐지만.

짧은 황금빛 머리칼의 아레스는 역시 내가 짝사랑 했었던 교관답게 다시 봐도 매력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나와 다른 외모를 지니고 있어서 더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동안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지자 그녀는 이제 나에게 골드 맵에서 자신이 겪었던 조금은 기억에 남은 일과 주의 할 점 그리고 자신과 겨누었던 플레이어들의 장단점을 아는 대로 모두 말해 주었다.


사실 이렇게 자신만의 노하우를 남에게 알려주고 레벨업에 도움을 주려하는 것은 아무리 교관이라 해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그녀와 같은 골드 티어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자신만의 노하우와, 혹시나 내가 마주칠지 모르는 자신이 지금껏 상대했던 강자들이라고 생각했던 플레이어들의 장단점을 하나하나 자세히 일러주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녀가 27레벨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그녀가 플레티넘으로 승급돼도 교관 노릇을 계속 하고 싶다면 할 수가 있었다.

“이 상태라면 얼마 있지 않아 네가 나를 넘어설 것은 당연하겠어. 그때는 잘 봐줘야 해 알았지?”


“알겠습니다, 고통 없이 단번에 죽여드리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지.”


맵에서 만약 아레스와 만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예전 티르얀과 했던 대로 티밍을 하다가 상대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끝까지 가서 1-2등을 다투게 된다면 서로 겨루다가 지는 쪽을 최대한 고통 없이 재빨리 죽여주는 게 상대를 위한 최선책이었다.

카이스주는 오랜만에 마셔봐서 그런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끊임없이 들어갔다.
아레스 또한 술을 좋아해서 내게 질 수 없다는 듯 내가 마시는 양에 못지않게 마시고 있었다.

그녀의 골드 티어에 대한 얘기가 어느 정도 끝나자 나는 궁금했던 다크 사이어돈에 대해 물어 보았다.

“기본적으로 다크 사이어돈이 우주 곳곳에 있는 암흑 물질에서 생성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네, 헌데 놈이 어느 정도 강하길래 모두들 그놈 얘기만 나오면 얼굴색이 변하는 겁니까?”

내가 묻자 그녀가 잠시 어떻게 설명하야 할지 생각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나를 바라보며 인상을 살짝  채 입을 열기 시작했다.


“놈이 어느 정도 강한지는 정해지지 않았어. 생성된 암흑 물질의 농도와 크기에 따라서 놈의 강함도 달라지니까. 하지만 지금껏 출현한 놈들 중에 제일 약한 놈이 달의  정도 크기였어. 그리고 약하다는 그 놈을 처치하기 위해 각 행성에서 용병으로 차출된 골드와 플레티넘 플레이어 수천 명이 죽었다고 하면 놈이 어느 정도 강한지 짐작할 수 있겠지?”

“뭔 놈의 크기가 달의 반이나 되는 겁니까?”


“말했잖아, 그 정도 놈이 지금껏 출현한 놈 중에 가장 약한 놈이라고. 헌데 이번에 나타난 놈은 그보다 족히 두 배는 되는 놈이야. 그래서 이번에는 골드와 플레티넘은 물론 다이아까지 랜덤으로 차출됐어. 물론 우리 은하계에 출몰했으니 인원은 당연히 우리 은하계에 속한 행성에 한해서 각 행성당 일천 명씩 차출 됐다고 들었어.”

“각 행성당 1천 명이면 수십만 명이나 되는  아닙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최소 5분의 2 이상은 죽음을 각오해야 될 거야.”


아레스의 말에 나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그렇게 강한 놈들이라면 이쪽도 강한 플레이어들이 나가서 싸우면 될 것 아닙니까. 첼린저님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스터급이 나가면 될 것 아닙니까?”


“넌 전쟁을 치룰  장수부터 나가는 것 봤어? 우선 졸따구들부터 나가서 싸워서 상대를 처치하는게 기본이지. 장수는 마지막까지 남아서 졸다구를 지휘해야 하잖아.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유는 적절한 비율을 맞추려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봐야겠지.”

“적절한 비율이요?”

“그래, 브론즈와 실버는 도태자로 인해 끊임없이 줄어드는 반면 골드부터는 소멸될 일이 없어 영원토록 살아가잖아. 그래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골드부터 플레티넘 플레이어 순의 배율로 차출이 되는 거야. 만약 그 두 티어들로도 안된다면 그때는 다이아나 마스터까지도 차출이 되겠지. 그리고 그들로도 안된다면 그때는 차출이 아닌 각 행성의 챌린저님들이 모여 상의를 해서 당신들끼리 어떤 방법을 취하실 것이고.”

하긴 아레스 말대로 도태자를 벗어난 골드티어부터는 소멸될 일이 거의 없어 나중에 가서는 그들로 넘쳐날 것이었다.

아레스의 말을 정리해보자면 다크 사이어돈이 출현하게 된다면 브론즈와 실버는 빠지고 골드부터 용병이란 미명하에 랜덤으로 차출이 되는 것이다.
물론 티어 중에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골드가 가장 많고  다음이 플레티넘의 배율로.

이런 것을 생각해보니 골드로 승급했다고 해서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실버에 머무를 수도 없으니 이것은 정말 티어의 비율을 적절히 조절하는 데에는 알맞은 것 같았다.


헌데  다음 들려온 아레스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면서도 우주에서 일어나는 거대함은 그 끝을 알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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