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실버티어 맵 (93/207)



〈 93화 〉실버티어 맵

놈은 이렇게까지 곤욕을 치를지 몰랐는지 무척 화가  표정을 지은  상처의 아픔도 잊은 듯, 베고 땅에 떨어진 내게 곧바로 그 긴 오러검을 힘차게 휘둘러왔다.

“이크!”

기다란 저 검에 어디를 베든 절단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놈의 검이 허리를 베어오자 나는 점프할 시간이 없어 급히 몸을 숙여 바닥을 한번 굴러 놈의 영역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한번 구르는 것으로 완전히 놈의 영역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는 일.
곧바로 다시한번 구르려는 내게 곧이어 내리쳐진 검에 의해 어깨에  웅큼 베이며 피가 뭉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크윽!”


[체력이 45%로 떨어졌습니다.]


구르는 것을 여기서 멈춘다면 나는 바로 지구로 귀환해야 했기에 상처를 만질 사이도 없이 연이어 마치 공이 굴러가듯, 재빨리 세 번을  구른 후에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래도 다행이다.’

놈의 마나가 세 신수의 희생으로 많이 약해져 있어 그나마 오러 길이가 줄어 있어 어깨를 베이는데 그칠 수 있었다.


놈도 이제 많은 체력과 기를 소모한게 틀림없었다.
아니, 검 끝에 뻗어있는 오러의 길이를 감안하면 그것이 확실했다.


놈은 지금껏 나에게도 몇  부상을 입었지만 세 신수의 공격에 더 많은 부상을 당했었다.

‘모험을 하지 않는다면 놈을 이길  없겠군.’


놈이 아무리 체력과 도력이 저하됐다고 하지만 일대 일로 싸워 이길 수 없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놈이 어느새 다시 내게로 다가오며 인상을 일그러뜨린 채 차가운 표정으로 다시 공격해 들어왔다.


이때 나는  이상 물러서지 않고 나 또한 이제 오러가 검신에서만 일렁이는 검을 치켜들고 놈에게 맞서나갔다.

채채채채챙..!

“큭!”


[체력이 40%로 떨어졌습니다.]

연이어진 다섯 번의 공격을 방어했지만 놈의 검술은 아직까지 유연하고 빨라 그사이 회복된 어깨에 다시 일검을 베이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결코 물러섬 없이 어깨의 상처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더욱 놈에게 달라붙어 거리를 좁혀 놈 가까이 다가가려 애쓰고 있었다.


부상을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이리 악착같이 달겨들자 놈이 차가운 표정 중에도 마치 ‘이 미친놈이 더 빨리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나?’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씹새야, 빨리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처음 놈의 비웃음과 그리고 내가 결심했던 투지를 불태우며 더욱 악착같이 놈의 검에 맞서갔다.

어느 순간 머리를 내리쳐오는 놈의 검을 옆으로 피하자, 다시 기이한 각도로 허공에서 바로 90도 꺾여 옆으로 쓸어오는 검을 향해 나는 오러 검을 세로로 세워 막은 후 몸을 빙글 돌려 놈의 품속으로 안겨들 듯 다가갔다.


뻗은 검이 내게 막히고 내 몸이 품속을 파고들자 놈이 잠시 당황한 듯 했다.
하지만 이내 두 눈에 살기를 머금고 뒤로 살짝 물러난 놈이 검을 다시 회수해 재빨리 내 배를 향해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순간 내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놈의 검을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고 놈 또한 내가 이 정도는 피할 것이라 생각하며, 내가 피할 장소로 먼저 눈이 돌아가 재차 공격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놈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고 찔러오는 검을 향해 몸을 던지듯 그대로 배를 찔리우며 더욱 힘을 주어 놈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채력이 30%로 떨어졌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성과에 한순간 놈의  눈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내가 몸에 더욱 힘을 주고 앞으로 더 다가가자 그때서야 놈의 얼굴에 잠시 의아한 빛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감수하며 검이  뒤로 삐죽 삐져나오게 한 채 한발 더 다가가  또한 기어이 놈의 가슴에 일검을 찔러 넣는데 성공했다.


“크억!”

놈의 심장에 찔러 넣으려던 검은 그 와중에도 놈이 심장을 피하려는 듯 좌측으로 몸을 기울이는 바람에 우측 가슴을 찔러 넣는데 그쳤다.


‘이대로는 내가 먼저 죽는다.’


엇비슷하게 체력이 남아 있다면  높은 레벨을 지니고 있는 놈이 나중에 죽는 것은 당여지사.
하지만 나는 이때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혹시나 몰라 필살기로 사용할 전 현무와 공명을 해 급히 명령을 내렸다.


바로 그 순간.

푸아아악!


마치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놈의 바로 등  바닥에서 모래가 솟구쳐 오르며 현무가 튀어나와 곧바로  위의 구렁이 몇 마리가 놈의 몸에 달라붙었다.

팔뚝만한 굵기의 3미터나 되는 구렁이가 목을 비롯해 온 몸을 조이는 것도 모자라, 10여 마리의 전갈 독보다도 강력한 맹독을 지닌 뱀들이 온 몸을 물자, 한순간 놈의 몸이 푸르게 변하더니 이내 검은 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현무의 삐죽 튀어나온 이빨이 놈의 허리를 덥석 물자 놈의 온 몸이 한순간 부르르 떨려오기 시작했다.
현무의 이빨에는 구렁이보다 더 강력한 맹독이 흐르고 있던 탓이었다.

‘이제 마지막이닷!’

놈의 떨려오는 몸을 보며 내가 그런 생각을 했지만  역시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알림음이 전해져왔다.

[체력이 28%로 떨어졌습니다.]


[체력이 24%로 떨어졌습니다.]

[체력이 20%로 떨어졌습니다.]

 순간 내 몸도 놈과 같이 나도 모르게 부르르 떨려왔다.
헌데 놈이 그 와중에도 내게 찔러 넣은 검을 잡은 오른손 말고 왼손이 급히 품속으로 들어가더니, 무척 날카로운 단도를 꺼내 오러를 입힌 후 옆구리를 물고 있는 현무의 목을 한순간에 내리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나도 놀랐지만 현무도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허망하게 목이 잘리우고 말았다.

순간 현무의 몸이 반짝하고 사라지자 놈의 온몸을 감고 있던 구렁이들도 이내 반짝하며 사라져 버렸다.

[체력이 5%로 떨어졌습니다.]

“이런 젠장!”

하지만 놈의 온몸은 벌써 검게 변한 채였고 이제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는지 마치 경련을 일으키듯 전보다 더욱 떨리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체력이 1% 남았습니다.]


이제 나도 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마지막 순간에 놈의 가슴에 찔러 넣었던 검을 힘차게 한쪽으로 비틀어 회전 시켰다.
그리고 놈과 내가 동시에 다리부터 마치 유리가 깨지듯 갈라져 나가는 것을 보며 죽는 와중에도 과연 누가 먼저 죽을 것인지 너무나 긴장된 마음으로, 의식이 잠시 끊기는 순간까지 나와 놈의  상태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놈 또한 마찬가지로 한순간 놈과 나의 두 눈빛이 마주치는 것으로 우리 둘은 동시에 온몸이 반짝하며 사라져 버렸다.


내가 보기로는 정말 100미터 달리기 선수가 0.00001초의 차이로 결승선을 끊는 것처럼 도저히 누가 먼저 죽었다고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깐 정신이 끊어졌다가 영혼이 몸을 빠져나오자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사라져가는 놈의 흰빛 덩어리의 영혼을 보며 계속 누가 먼저 죽었을까에 대한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잠시 후 지구로 귀환해서 상태창을 확인해 보면  수 있을 터인데도  사이를 참지 못한 것이었다.


1등과 2등과의 차이는 경험치도 문제였지만 능력치인 도력과 특수 능력인 도술의 부가 보너스 때문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브론즈 티어에서 내가 1등을 먹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26레벨의 플레이어에게서 이렇게까지 버티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1등과 2등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자 예전 교육원에서 한 교육생이 아레스 교관에게 질문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교관님, 능력치와 특수 능력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실버티어인 11레벨까지 승급된 후 자기장이나 아니면 상대 플레이어에게 일부러 져준 후, 경험치 삭감을 당해 다시 브론즈 10레벨로 돌아가 1등을 차지하는 것을 반복해 능력치와 특수 능력만을 무제한 올려도 무적이   있는  아닙니까?]

교육생의 말에 아레스 교관은 가상한 생각을 했다는  빙긋 웃었지만 이내 조금은 단호한 음성으로 입으로 열었다.


[자살 한다면 페널티로 한 티어가 그대로 떨어진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그것이 비록 브론즈 1레벨이라도 앞으로 승급될 레벨에서 그만큼 계속 차감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테고.]

[물론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의 도태자가 될 것은 뻔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 맞다. 확실히 말해두지만 자살이라는 것이 꼭 자기 손으로 죽는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자기장에 뛰어들거나 맵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일부러 죽는다면 그것도 자살이나 마찬가지로 취급당한다.]


[그런가요..?]

[만약 네 말대로 그렇게 능력치와 능수 능력을 브론즈와 골드를 오가며 반복해서 레벨업을 할  있다면 도태가가 되는 플레이어들은 단 한명도 없겠지. 그리고 도태자를 벗어나 플레티넘인 31레벨에서 다시 그렇게 골드로 일부러 떨어져 수천 수만년 동안 그것을 계속 반복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챌린저가 되기도 아주 쉽겠지.]


잠시 아레스 교관의 말을 생각하며  수 없는 존재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녀의 말대로가 아니라면 레벨의 승급은 무의미해질 것이고, 모든 플레이어들은 티어와 티어사이의 레벨에서만 머물며 능력치와 특수 능력만을 계속 올리려 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 같아도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당장 맵에 참가하자마자 곧바로 일부러 죽어, 다시 실버 티어 20레벨이 될 때까지 계속 경험치 삭감만 당해 도력과 도술만을 끊임없이 레벨업 했을 터다.


전체 레벨을 승급한다는 것은 결국 능력치와 특수 능력을 레벨업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큰 흰빛의 커다란 구멍과 작은 구멍을 빠져나오자 저 아래 깊은 숲속의 통나무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흐음.”


잠시 후 눈을 뜨니 탁자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서인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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