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실버티어 맵
안전지대에 도착하는 동안 어떤 존재도 만나지 않아 조금은 심심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눈앞에 흰빛의 안전지대가 보여 생존자수를 확인해 보니 이제 19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21레벨이라면 아무리 안전지대 안이라지만 황금머리만 조심하면 될 터다.
한마디로 이 맵에서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생각하면 될 터였다.
‘이왕이면 만인지상이 되고 싶었는데 그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군.’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황금머리는 현재 26이나 27레벨로 보면 될 것 같았다.
때문에 이제 21레벨인 내가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온 이상 놈을 따라잡기는 힘들거라 생각했다.
혹시 모르지.
안전지대 안에서도 플레이어 외에 다른 존재들이 또 나타날지.
하지만 브론즈 티어의 하드 맵을 생각해 보면 안전지대 안에서는 플레이어 외에 다른 생명체는 나타나지 않았었다.
때문에 이곳에서도 그럴 확률은 무척 높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안전지대로 발을 들여 놓고 이제는 제법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가진 자의 여유랄 수 있어 황금머리가 내게 보여줬던 비웃음이나 여유로운 표정, 행동 등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부적 하나를 꺼내 현무를 소환해 냈다.
그리고 녀석에게 공명으로 뭔가를 명령하자 현무의 등껍질에 달라붙어 있던 10여 마리의 뱀들이 모두 등껍질 안으로 들어가고, 현무는 이내 날카롭지만 넓적한 앞발로 모래를 파고 들어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현무가 사라지고 굴곡진 사막을 걸어가며 도력을 끌어 올려 주위를 살피기를 얼마 후.
마침내 저 멀리 점 하나가 보여 그쪽으로 걸어가자 점도 내게 다가오고 있다.
이런 사막이 상위 레벨자에게 유리한 점은 누구를 발견하면 놓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었다.
숲이라면 나무에 은신해 있다가 나보다 강한 상대라면 달아날 가망성이라도 있었지만, 이렇게 황량한 사막에서는 서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상대를 발견하면 은신할 곳이 없으니 무조건 서로에게 우선 다가가 상대가 강한지 약한지 가늠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로가 이미 가까워진 상태에서 하위 플레이어가 도망한다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했다.
그 이유는 상위 플레이어라면 거의가 하위 레벨자보다 속도나 빠르기 또는 민첩성이 뛰어 났기 때문이었다.
거리가 약 40여 미터 가까워지자 기로서 짐작해 보건데 놈은 18 레벨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헌데 놈이 갑자기 손을 허공에 들어 올리더니 인벤토리에 손을 넣으려 하는게 포착됐다.
‘달아나려고..?’
놈이 이동 수단을 꺼낸다는 것을 눈치 채고 내가 재빨리 부적을 날려 보내 이제는 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불의 창을 쏘아 보냈다.
놈이 계속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는다면 내 공격을 맞아야 했기에, 놈은 인상을 잔뜩 일그러지며 손을 다시 빼내며 몸을 점프해 간신히 내 공격을 피해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불의 창을 쏘아 보내는 동시에 내 몸 또한 화살과 같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놈이 피하는 사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10여 미터 앞까지 접근했다.
이제 놈은 도망칠래야 도망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또한 18 레벨이라면 결코 내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놈 정도라면 사실 사신수 중 한 녀석만을 내보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놈도 내가 자신보다 상위 플레이어라는 걸 눈치 채고 별 의미 없는 선재 공격을 가해왔지만, 몇 분 버티지 못하고 내 오러 검에 수많은 부상을 입은 채 끝내는 목이 모래 바닥에 떨어지며 자신의 고향별로 귀환했다.
이제 경험치는 540/2100 이 되어 있었다.
경험치를 확인하고 나자 내 입에서 절로 한숨이 지어졌다.
‘확실히 플레이어들만을 죽이는 것으로 놈을 따라잡기는 힘들 것 같군.’
다른 플레이어들이 내가 이런 것으로 한숨을 쉬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 패죽이고 싶도록 미웠을지 모를 일이다.
아니, 능력만 된다면 아마 패 죽였을 터다.
처음 실버 맵에 참가해 15레벨에서 골드 티어인 21레벨까지 승급을 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얼마나 더 승급할지 모르는 상태다.
욕심도 그런 욕심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남들 사정이고 지금 내 처지에서 1등에 대한 욕심을 부리는 것은 당연했다.
사실 실버티어에서 21레벨까지 승급했는데 1등을 먹지 못한다면 이유야 어찌됐든 솔직히 많이 아쉬운 것은 사실 아닌가.
정상적으로는 21 레벨이 26-7레벨과 싸워 이긴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사신수가 있지.’
내가 21레벨.. 그리고 사신수 각자가 18-9레벨 수준이다.
문제는 역시 각자의 체력으로 싸우는 것이 아닌 내 체력과 도력 하나로 버텨야 한다는 점이었다.
‘부딪쳐 보면 알겠지.’
사실 겉으로는 절망하는 말만 내뱉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사신수를 믿고 조금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생존자수를 확인해보니 이제 11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10위 안에 드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었고 사실상 1-2위 다툼이었다.
한동안 안전지대를 돌아다니다가 19레벨 한 놈을 더 처치하고 나자 경험치는 730/2100이 되었고 어느덧 생존자수도 3명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놈이 나머지 한 명마저 죽였는지 기어이 2명뿐이었다.
2명이 남아 있을 때는 어느 맵이든지 중간지점에 모이는 것이 상식이다.
‘마침내 놈과 겨루게 되는군.’
놈의 레벨을 뻔히 짐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긴장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1-2레벨 차이라면 무척 긴장했을 것이나 너무나 많은 레벨이 차이나니 오히려 긴장된 와중에도 마음은 그나마 조금 편하기는 했다.
그것은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 싸움이었기에 그러한 것이라 생각됐다.
곧바로 맵을 열어 내 위치를 확인하고 안전지대의 중간 부분이 되는 지점으로 다가가자 놈이 이미 그곳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망다니지 않고 그래도 찾아와 주었군.’
“훗!”
이곳에서 도망 다녀서 시간을 끌기만 해봐야 안전지대 안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기에 경험치를 획득할 수도 없었다.
아마 이러한 것 때문에 하드 맵의 안전지대 안에 다른 생명체가 없는 것인 줄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놈의 말에 내가 코웃음 치자 놈이 다시 비웃음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 사이 경험치는 많이 획득했나?”
“그건 싸워보면 알겠지.”
내가 무표정하게 대답하자 놈이 어쩐 일인지 빙긋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나와 겨룰 수 있는 녀석이 없을 줄 알고 조금 실망했었지. 사실 그렇다면 그건 너무 심심하지 않겠나?”
조금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놈이 심심풀이 땅콩으로 나를 먼저 제거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자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면서도 쓴웃음이 나왔다.
“좋아, 그럼 심심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주지.”
“네 능력으로 최선을 다 해봐야 별볼 일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고는 해야겠군.”
내가 어금니를 한번 깨물고 결연한 표정으로 그래도 예의를 차려 말했지만, 놈이 그런 나를 놀리듯 한쪽 입 꼬리를 귀밑까지 말아 올리며 한껏 비웃음을 흘린 채 차갑게 대꾸했다.
놈의 그런 표정에 당장이라도 죽탱이를 한 대 날려주고 싶었지만 그건 역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놈의 그런 표정을 보니 어쩐지 전에 없던 투지가 더욱 끊어 올랐다.
사실 실버티어에서 21레벨이라면 1등을 먹어도 이상할게 없는 레벨이다.
놈의 그런 말투와 나를 놀리듯 비웃는 그런 표정은 내가 포기했던 1등에 대한 마음, 아니 1등은 차지하더라도 놈에게는 지고 싶지 않은 그럼 마음을 부추키고 있었다.
‘좋아, 넌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준다!’
마음속에 활활 불타는 투쟁심을 불러일으켜준 놈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정도로 놈의 말투와 표정은 얄밉기 그지없었다.
서로 할 말은 이제 끝났다.
전초전 겪인 신경전과도 같은 대화가 끝나 내가 오러 검을 생성시키자 놈이 등 뒤에서 은빛의 화려한 장검을 빼들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놈의 검은 날카롭고 단련이 잘된 명검으로 보였다.
전갈과 싸울 때 보니 놈의 능력은 다른 무엇도 없이 오로지 검사의 능력뿐인 것 같았지만, 그 능력은 다른 어떤 능력보다도 막강해 보였었다.
곧바로 푸른 오러가 장검 끝을 타고 내려오며 검의 두 배 길이가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일렁이는 오러의 푸른빛이나 길이가 얼마 전 봤던 그대로인 채 더 이상의 승급은 없는 듯 보인다는 점이었다.
나도 곧바로 도력을 주입하자 이제는 검 끝 넘어 푸른 오러가 10센티 정도 늘어나 있었다.
경험이나 능력 등 모든 면에서 내가 터무니없이 모자란 것이 사실이었지만, 나는 투지를 더욱 불태우기 위해 입술을 피가 나도록 한번 질끈 깨물었다.
놈이 공격을 시작하면 아무래도 방어부터 해야 하기에 하수인 내가 먼저 선수를 취하는게 아무래도 이득이라 곧바로 놈에게 나는 듯 달려가며 연속으로 삼검을 뻗어냈다.
챙챙.. 챙!
놈이 그 자리에서 한손은 뒷짐을 진 채 여유롭게 내 삼검을 모두 막아냈다.
한차례 놈과 검을 부딪치니 역시 놈의 마나는 엄청나 내 검을 튕겨내며 나도 모르게 뒤로 떠밀리듯 튕겨져 나가야 했다.
놈의 입가에 다시한번 비웃음이 흘러나오자 내 눈빛이 차가워지며 이번에는 허공으로 튀어 올라 검에 도력을 최대한 주입에 마치 도끼로 내리찍듯 정수리를 내리쳤다.
채챙!
위에서 내리 찍으면 아무래도 나으려나 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내 몸이 멀찍이 튕겨져 나가자, 나는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고 다시 바람처럼 다가가 이번에는 전후좌우로 이동하며 놈에게 연속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헌데 놈은 웬일인지 한동안 내 공격을 하나하나 막아내기만 할 뿐 공격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한동안 내 공격을 막아가던 놈이 이제 더 이상 볼게 없다는 듯 나를 공격하려 하자 나는 곧바로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역시 검술 대결로는 도저히 놈의 상대가 되지 않자 물러나자마자 나는 곧바로 품속에서 부적 세 장을 꺼내 허공으로 날려 주작 백호 청룡을 소환해 냈다.
삼신수가 나타나자 놈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전갈들과 싸울 때 보니 제법 잘 싸우던데, 그럼 어디 저 녀석들의 실력 좀 볼까?”
전갈과 싸울 때는 내가 18레벨인가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레벨이 오른 만큼 사신수도 더욱 강해져 있었다.
나는 놈이 혹시라도 갑자기 삼신수를 공격할까봐 주작과 청룡은 자기장과 최대한 가까이 날아오르게 하고 백호는 내 뒤로 오게 했다.
이제 놈과 본격적으로 붙어보기 위해 역시 이번에도 내가 먼저 선제공격으로 날듯이 놈에게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