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실버티어 맵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주둥아리를 계속 나불대는 놈을 향해 내가 인상을 쓰며 검을 치켜들자 놈이 그런 나를 보며 또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좋아, 정 그렇게 빨리 죽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주지, 그런데 말야 너무 빨리 끝나버리면 싱거우니까 내가 몇 수 양보하고 싶은데 네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군.”
“..........,”
“너! 벙어리인가..? 왜 말을 하지 않는 거지? 감히 내가 묻는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을 셈인가? 입이 달렸으면 말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놈의 말을 계속 듣고 있자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
더 이상 듣고 있다가는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아 치켜든 검을 앞세워 몸을 날리려하자 놈이 그런 나를 급히 제지시켰다.
“잠깐! 잠깐만..!”
“.........?
뭔가 급히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움직이려던 몸을 세우자 놈이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은 해야 할거 아닌가. 벙어리인가를 내가 물었잖아.”
놈의 말에 내가 마침내 뚜껑이 열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마디 외치고는 곧바로 다시 몸을 날려갔다.
“벙어리 아니다, 이 개새꺄!”
외침과 함께 몸을 번개처럼 날리며 쏘아가자 놈이 한마디 하고는 나를 맞아왔다.
“벙어리는 아니었군.”
헌데 놈의 능력이 궁금하기도 했던 차에 몸을 날린 네게 놈이 대응하는 것을 보고 그 희한한 능력에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허공에 쏘아져가는 내게 두 손을 뻗자 갑자기 손끝의 다섯 개 손톱이 길게 자라나며 팔이 마치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나 네게 뻗어오는 것이 아닌가.
손톱에는 마치 오러가 입혀진 듯 곧바로 내 검과 한차례 부딪쳤는데도 놈의 손톱은 멀쩡했다.
헌데 내 검과 한번 부딪치고 뒤로 물러난 팔이 다시 번갈아가며 공격해오자 나는 허공에서 빙글 재주를 두 번 부리며 땅으로 내려섰다.
말이 많은 것과는 달리 그래도 15레벨이라고 제법 실력은 뛰어났다.
놈의 팔은 길데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 고무줄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각도로 휘어지고 꺾여지며 공격을 해와 잠시 나를 곤욕에 빠뜨렸다.
하지만 부적을 사용해 술법을 검과 같이 쓰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놈이 당황하며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화라라락.. 화르르릇
사막의 열기로 인해 불 공격이 제일 도력이 적게 소모되어 연속 불 공격을 가하자 놈이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하지만 놈이 물러난 곳이 하필이면 백호가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다시금 재빨리 놈에게 연속해서 불의 창과 화살 그리고 화염구를 날려 보내며 놈을 압박 한 채 검을 치켜들고 다시 놈에게로 달려 들려했다.
이때 놈은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뒤쪽에 백호가 있는 것도 모른 채 녀석의 앞까지 후퇴하게 됐다.
평상시 같았으면 등 뒤 10여 미터 거리에 누가 있었다면 바로 알아차렸겠지만, 지금은 내 공격을 연속으로 받아치며 방어를 하고 있어 정신이 온통 내게로만 쏠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놈이 눈앞에서 알짱거리자 한순간 백호의 두 눈빛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내가 부적 공격이 끝남과 동시에 바로 몸을 날려가자 놈이 다시 팔을 뻗어내 나를 제지하려했다.
헌데 바로 그 순간.
크아앙!
돌연 놈의 뒤쪽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백호가 느닷없이 앉아있던 자세 그대로 뒷다리를 펴 발돋움을 한 채 10여 미터를 단번에 점프를 하며 놈에로 날아올라,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머리를 통째로 입속에 낼름 삼키더니 주저 없이 목을 그 날카로운 이빨로 아작 물어버렸다.
우드득!
순간 목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백호가 입속에 머리통을 통째로 삼긴 채 머리를 한번 휘둘리자, 놈의 머리가 백호의 머릿속에 잠긴 채 몸에서 분리되어 버렸다.
아그작!
퉁.. 투퉁..!
백호가 입속에 있는 머리통을 한번 씹더니 맛이 없었는지 그대로 뱉어내자 놈의 머리통이 완전히 함몰되어 모래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놈의 체력은 아직 남아 있었는지 머리가 떨어져 나간 몸체는 아직 서 있었지만 앞을 볼 수 없으니 휘청거리고만 있었다.
이미 놈에게로 달려 나가던 나는 그대로 계속 나아가며 검으로 놈의 허리를 훑듯 지나가자, 이번에는 허리가 잘려나가며 상체가 다시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그제서야 놈의 머리며 분리된 몸체가 유리처럼 바스라지지더니 허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너도 놈이 하는 말이 짜증났나보구나.”
크아앙!
놈이 사라지고 백호에게 다가가 묻니 녀석도 그렇다고 대답을 하고 있었다.
놈이 15레벨이라며 분명 레벨업이 되어 있을 터다.
한순간 체력이 다시 100%로 상승했다는 알림음이 전해져오며 몸 상태가 전보다 더욱 좋아진 것을 느낀 채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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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이름 : 최준수
종족 : 인간 (인간)
직업 : 도사
티어 : 실버
레벨 : 16
경험 : 55/1600
능력 (도력) : Lv 17
특수능력(도술) : Lv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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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을 확인하며 16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뭐 별거 없네.’
문득 실버 맵라고 해서 브론즈 맵과 그렇게 다른 점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 플레이어들의 레벨이 높아졌고 하드맵이라 다른 생명체가 강해진 것 뿐 큰 차이는 느낄 수 없었다.
헌데 놈이 죽은 자리를 문득 돌아보니 보물 상자 하나가 나타나 있어 가서 열어보니 내가 획득한 것과 똑같은 가죽주머니 하나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처음 도착한 플레이어들에게 아쿠아 탄산수는 기본으로 주어지는 모양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챙긴 후 다시 백호의 등에 올라탔다.
자기장은 어느새 1키로로 다가와 있어 백호에게 명령해 속도를 더 높여 가기를 30분 정도 흐르자, 이제 자기장과의 거리가 5키로로 떨어져 속도를 다시 줄여 걷게 했다.
그렇게 30여분을 더 가는 사이 저 멀리 무엇인가가 반짝하며 빛나는 것이 눈에 띄어 그것이 무엇인가 궁금했지만 너무 멀어 알아 볼 수가 없었다.
헌데 자세히 보니 반짝이는 무언가와 검은 점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이었다.
‘화살표 방향이니 가까이 가보면 알겠지.’
반짝이는 무언가는 안전지대로 가는 방향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계속 주시하며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태양빛은 너무 뜨겁고 모래에서 올라오는 열기까지 합쳐져 이렇게 백호의 등에 올라타고 있었지만 그래도 더위에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럴 지경인데 이동 수단 아이템을 얻지 못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떨지 상상하자 그들이 조금 안쓰럽기는 했다.
백호가 아무리 신수라도 이런 환경에서는 목이 마를 것 같아 얼마 전 획득한 가죽 주머니를 뒤에서 입에 대고 부어주니, 벌컥벌컥 마시고 나서 해갈이 되는지 고맙다는 듯 한번 크르릉 거렸다.
얼마 후 반짝이는 장소에 어느 정도 다가가 눈에 도력을 집중해 살피고 난 나는, 나도 모르게 입에서 환호성을 내지를 뻔 했다.
“오아시스다!”
그랬다.
반짝였던 것은 물이었고 그 주위의 검은 점들은 나무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곳에서 오아시스를 만난다는 것은 대박 중에 대박이라 할 수 있었다.
당장에라도 물속에 뛰어 들어가고 푼 마음에 백호에게 명령해 빨리 달리도록 하자 녀석도 물속에 몸을 담그고 싶었는지 곧바로 전 속력으로 그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오아시스가 펼쳐져 있자 혹시나 몰라 주위를 살펴보니 다행히 다른 플레이어나 생명체는 발견 할 수 없어, 재빨리 등위에서 뛰어 내려와 그대로 작은 호수같은 물속에 첨벙 뛰어 들었다.
백호도 내가 뛰어들자 곧바로 나를 따라 물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사실 백호는 신수라 이 세계의 환경에는 그렇게 구애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주인이 저리 즐거워하니 그것에 맞춰주고 있었던 것이다.
헤엄을 치기도 하고 백호에게 물을 뿌리며 물장난도 치고 있었지만 주위 경계를 하는 것은 결코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한동안 물속에서 노닐며 해갈이 완전히 풀리자 물 밖으로 나와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이곳이 안전지대로 가는 방향이니 분명 다른 플레이어들도 이 오아시스를 발견하겠지?’
지금 이곳에 아무도 없는 것은 내가 백호라는 이동 수단으로 다른 자들보다 무척 빨리 도착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잠시 생각한 끝에 나는 이곳에서 은신해 있다가 하위 플레이어들만을 사냥해 보기로 결정했다.
안전지대로 들어간다면 상위 플레이어들이 수두룩할 것은 당연해 차라리 하위 플레이어들이 사냥 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사냥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혹시 상위 플레이어들이 먼저 도착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차피 복불복으로 안전지대보다는 이곳이 상위 플레이어들과 마주칠 확률이 훨씬 적을 것은 당연했다.
은신할 곳을 찾다가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히 주위의 나무들이었다.
나무들의 크기는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커서 둘레도 둘레지만 높이가 무려 3-40미터는 족히 될 것 같았다.
거기다가 야자수 같은 잎사귀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어 은신하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 정도 높이라면 나보다 상위 플레이어들이 온다 해도 내 기를 느끼기는 쉽지 않겠는걸.’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있으면 나는 이곳의 광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고 상대방은 나를 보거나 느낄 수가 없으니 그보다 더 좋은 은신처는 없을 터였다.
결정을 내리자 나는 지체 없이 백호를 소멸시키고 곧바로 나무를 타고 가장 꼭대기로 올라가 비교적 널찍하고 편안한 가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를 잡고 곧바로 사방을 둘러보니 오아시스의 광경은 물론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사막지대까지 한눈에 훤히 들어오자 이런 대 장관에 절로 경외감이 들기까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저 멀리 누군가가 먼지를 일으키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여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 나보다 낮은 레벨이라면 굳이 내려갈 필요도 없이 사신수만을 소환해 놈을 처치해도 된다.
이제 16레벨이 되어 이 정도 거리는 내 공격권 안에 충분히 들어와, 만약 사신수가 밀리게 된다면 내가 부적 공격으로 지원을 해주면 될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놈이 몸체는 낙타와 비슷했지만 머리는 도룡농 같이 생긴 괴상한 생물을 타고 오는 것을 보고, 과연 얼마 전 죽인 수다쟁이 놈이 백호를 탐냈던 것처럼 살아있는 생물도 아이템으로 지급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놈은 이곳에 도착하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주위를 경계하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이내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놈과의 거리가 있어 놈의 기를 전혀 느낄 수가 없게 되자 나는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