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4화 〉실버티어 맵 (84/207)



〈 84화 〉실버티어 맵

얼마  드디어 12시가 되자 시간이 정지되며  영혼이 커다란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깐 동안 서인이 옆에 있었지만 커다란 수많은 다른 구멍으로 급격히 사라져가는 그녀를 보며 비록 흰빛의 연기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딴에는 잘 갖다오라고 손짓을 해주었다.

큰 구멍을 지나 다시 작은 구멍을 빠져나오니 저 아래에 그리 크지 않은 시작의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흐으음.’

곧바로 대기하고 있던 육체에 들어가 눈을 뜨니 갖가지 모습으로 플레이어들이 앉아 있었는데, 브론즈 티어와는 달리 실버티어의 플레이어들은 누가 상위 레벨자들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영혼들이 반수 이상 되었고 움직이는 플레이어들 중에 기가 느껴지는 자들도 있었지만, 중상위 플레이어와 뒤섞여 있어 누가 하위 플레이어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브론즈 티어로서 이미 산전수전을 모두 겪고 실버 티어 맵으로 온 자들이었기 때문에, 표정만으로는 나보다 하위 레벨자들을 알아낼  없다는 뜻이었다.


‘아쉽군.’


어차피 맵에 각각 흩어져 떨어지고 난 후 누군가 만나게 된다면 대충은 나보다 강자인지 약자인지 알 수 있겠지만, 그래도 시작의 맵에서 얼추 가늠하고 가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확실히 눈빛이나 행동거지가 브론즈 티어들과는 달라.’


여유로움이나 눈빛이 최하급 티어인 브론즈 티어와는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하긴 나만 경력이 미천했지 다른 플레이어들은 최소 1년에서 많게는 8-9년까지 브론즈 티어로 굴러먹고 온 자들이 수두룩할 터다.


문득 내가 저들에게 약자로 보일까봐 강자와 약자를 찾으려 두리번거리는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만 바라봤다.


‘괜히 약자로 보일 필요는 없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 명의 플레이어들이 모두 눈을 뜨자 한쪽에 흰빛의 구멍이 다시 생성됐다.
이제 저 구멍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실버티어 맵이다.
구멍으로 들어가기 전에 처음 실버티어 맵에 떨어진다는 긴장감이 아예 들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긴장감과 함께 이제 한 단계 업된 플레이어들의 능력을 볼  있다는 기대감과 호기심 또한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곧바로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정신을 차리고 나자 나는 생각지도 못한 환경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지며 눈을 가늘게 떠야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고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외치듯 중얼거렸다.


“사막 맵인가!”

그랬다.
이곳은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고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모래뿐인 사막이었다.


‘씨발! 고생 좀 하겠군.’


이글거리는 태양에 아지랑이가 끝없이 허공으로 흩날리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둘러보며 나도 모르게 쌍욕이 튀어나왔다.


도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글거리는 태양과 모래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혀왔다.

우선 맵을 열어보니 안전지대와는 103키로였고 자기장과의 거리는 4키로라는 숫자가 떴다.


‘멀기도 하군.’


이런 사막에서는 안전지대와의 거리를 조금 가깝게 설정해도 되련만 보통의 다른 맵과 거리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어쩔 수없이 우선은 보물 상자를 찾아 이 뜨거운 열기로부터 조금이라도 보호받을 수 있는 아이템을 획득해야 했다.
교육원에서 알려준 대로라면 사막 맵의 보물 상자에는 그에 걸맞는 아이템이 들어 있다고 했었다.

누구에게 호소할 수도 없어 어쩔  없이 곧바로 화살표가 가리키는 안전지대로 이동해 가기 시작했다.

한 굽이를 넘어가면 혹시나 잠시나마 이 뜨거운 햇빛을 피할  있는 나무가 있을까 기대하며 굴곡진 등성을 넘어가면 역시나 끝없이 펼쳐진 사막뿐이었다.
2시간을 걷고 나자 이제 다른 플레이어와 싸우다 죽는게 아니라 이글거리는 태양에 말라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시급한건 물이었다.
그늘하나 없는 모래사막을 2시간 이상 걷다보니 입술은 물론 입안까지 바싹 말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헌데 그 와중에도 주변을 열심히 살피며 걷고 있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모래색깔과 다른 약간은 검은 빛을 띤 무엇인가가 눈에 띄었다.

‘보물 상자다!’

순간 모래 속에 파묻혀 일부만 나와 있는 물체가 보물 상자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급히 그곳으로 달려가 보았다.


역시 모래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은 다른 때보다도 더욱 간절히 바라던 보물 상자가 맞았다.


상자 위에 있는 모래를 급히 털어낸 후 뚜껑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사람 머리통만한 가죽 주머니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무척 빵빵했다.

순간적으로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한 나는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빵빵한 가죽주머니를 집어 들자 곧바로 알림음이 전해져왔다.


[갈증해소용 아쿠아 탄산수 2리터를 획득했습니다.]

역시 생각한 것이 맞았다.
항상 보면 어떤 맵이든 그 맵의 환경에 알맞게 아이템이 나타났다.
지금 내게 가장 절실한건 금덩이도 아니요 수천 셀링의 돈도 아닌 단 한방울 물이 필요했다.

급히 뚜껑을 열어 재빨리 몇 모금 들이마시니 약간 톡 쏘는 맛이 일반 물과는 약간 달랐지만 웬일인지 그 동안 그토록 나를 괴롭혔던 갈증이 단번에 해소됐다.


‘이건 분명 갈증 해소용 포션을 첨가한게 틀림없어.’


일반 물을 마셨을 때보다 확실히 해갈이 빠르고, 기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목이 마르지도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긴 일반  2리터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당연해 이것은 사막에  알맞는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죽 주머니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이제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화살표 따라가기를 얼마 후, 문득 눈앞에 모래와는 다른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다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바로 눈앞에서 모래와 비슷한 색깔이었지만 모래는 아닌 것들이 일렬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는데, 자세히 들려다보니 그것들은 은빛의 아주 작은 수많은 개미떼들이었다.


‘이곳은 하드맵이다.’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하드맵이 틀림없었다.
15레벨로 실버 맵에 처음 참가해서 하드맵에 떨어진 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수 없었지만, 한번 겪어본 바에 의하면 일반 맵보다는 하드 맵이 내게는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4-5번 사이에 한번씩 하드맵에 떨어지는 것이 평균적이라고 했으니 나도 그리 자주 하드맵에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드맵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앞으로 더욱 경계를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사막에서는 과연 어떤 존재들이 나타날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주위를 경계하며 1시간 이상을 걸어갔는데도 이상하게 끝없는 사막만 보일뿐, 괴물이나 몬스터는 물론 플레이어들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이대로 안전지대까지 가라는 뜻은 아닐 텐데..?’

 맵에 떨어지고 벌써 3시간 이상이 흘렀는데도 내가 본 것은 은색 개미떼가 전부였다.
다시한번 맵을 열어보니 자기장은 내가 걷는 속도와 비슷하게 좁혀져와 계속 4키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기장이 빠르게 좁혀져 오니 않아 그것만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끝없는 사막을 걷기를 얼마 후.
문득 저 앞에서 모래가 잠깐 꿈틀거린 것 같아 다시 자세히 보니 내가 착각한 것인지 모래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이놈의 아지랑이 때문에 내가 착각한 모양이군.’

뜨거운 열기 때문에 눈앞에는 온통 아지랑이로 가득해 조금 멀리 바라보면 모래가 꿈틀거리는 듯 보이기도 했다.


헌데 방금 전 착각은 잊고 다시 걷기 시작한지 채 1분도 되지 않은 그때였다.


쏴아아아.. 쓰쓰쓰쓰!


내가 걷던 곳에서 20여 미터쯤 옆쪽.
얼마  내가 모래가 움직인  같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 곳에서, 모래더미가 마치 고래가 물을 내뿜듯 갑자기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드디어 하드맵에서  번째 생명체를 맞닥뜨린다는 생각에 급히 부적을 꺼내 오러검을 생성시킨 후 그곳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곧바로 모래가 솟구쳐 오르며 무엇인가가 나타났는데 그 물체, 아니 생명체를 보고 나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려야 했다.

츠아아아아! 쓰와와악!


모래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놈은 반들거리는 검붉은 생명체였다.
헌데 생긴 것 답지 않게 뒷다리로는 바닥을 짚고 앞다리는 허공에 쳐든 채 이족 보행으로 괴성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놈의 뒤에는 긴 꼬리가 길게 늘어져 허공으로 솟아 있었는데, 치켜 든 두 발은 마치 가위와도 같은 집개발을 연신 오무렸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상체는 가재와 비슷했고 하체는 전갈의 모습을 닮은 이족보행을 하고 있는 희한하게 생긴 생물이었다.


헌데 내가 입을  벌린 이유는 놈의 몸체 때문이었다.
모래 속에서 기어 나온 놈의 덩치는 적어도 5미터는 넘어 보였고, 반들거리며 빛나는 한쪽 집개발의 길이만도 무려 2미터는 되어 보였다.


한마디로 괴물이라고 불릴만한 존재였고 덩치만큼이나 무척 강하게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온몸이 마치 가재의 껍질처럼 번들거리는 것이, 껍질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단단해 보여 웬만한 무기로는 상처하나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브론즈 티어 하드맵에서 나타난 놈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놈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실버 맵에 나타난 이놈은 모든 면에서 전에 겪어봤던 놈들과는  강함에 있어서 차원이 다른 듯 보였다.

‘하긴 나도 강해졌으니까.’

내가 강해져서 실버티어로 왔듯 이 맵에 나타나는 존재들 또한 더 강한 놈들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강하면 강한 만큼 경험치가 높을 것은 당연한 이치.
곧바로 놈을 사냥하기 위해 검을 치켜든 채 우선은 한번 부딪쳐 보려 나는 듯 놈을 향해 달려 나갔다.

헌데 놈 또한 그 거대한 덩치에 집게발을 찌꺽거리며 달려오는데 무시모할 것이,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모래 위를 마치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질주해 온다는 것이었다.
놈의 움직임이 그렇게 빠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놈의 달려오는 속도를 보고 인상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덩치에 저런 속도가 나온다면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닌 것이 확실했다.
더군다나 마치 갑옷과 같은 껍질에 둘러싸여 있으니 더더욱 상대하기가 힘들  같았다.


‘내 레벨에 맞는 상대이길 빌 수밖에 없겠군.’

오러검이 놈의 껍질을 작살낼  있기만을 고대하며 곧바로 달려가던 기세 그대로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튀어 올라 놈이 휘둘러오는 거대한 집게발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까강!


혹시나 했지만 역시 15레벨이 되어 이제 한층 강력해진 오러검에도 놈의 집게발은 흠집하나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덩치답게 힘도 어마 무시해 한번 부딪치고 나자  몸이 밀리며 허공에서 재주를 부린 후에야 땅에 다시 착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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