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재회
아무리 도태자라 해도 14와 15레벨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질기디 질긴 옷을 저렇게 간단하게 잘라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서인이 약간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자 늑대 인간이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크르릉! 겁도 없이 혼자 찾아오다니, 그것도 먹음직스러운 계집이..!”
놈 또한 서은의 온 몸을 훑어 내리자 그녀의 쌍심지가 순간 위로 치켜 올라갔다.
만약 패한다면 두 놈에게 능욕을 당한 뒤 소멸되는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문득 달아나 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숲에서 라이칸 스로프를 따돌릴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방법은 오직 하나.
무조건 싸워서 두 놈을 죽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곧바로 입술을 살짝 깨물고 놈과 싸울 자세를 취하자 놈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그때 뒤에서 이제 말라버린 옆구리 상처를 한 손으로 쥐고 있던 눈이 가는 놈이 한마디 지껄였다.
“저 년을 바로 죽이면 안됩니다.”
“크르르.. 당연한거 아닌가, 얼마 만에 보는 계집인데.”
“역시 형님과는 마음이 맞아서 좋다니까.”
두 놈의 희롱에 순간 서인의 눈빛이 살기로 물들어갔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선공을 택한 그녀는 곧바로 양쪽 옷자락을 한꺼번에 늑대인간에게 쏘아 보냈다.
“크르르릉, 귀엽게 노는군.”
놈이 비웃음을 흘리며 몸을 날려와 양 발톱을 날아오는 옷자락과 부딪쳐갔다.
촤르르릇.. 차차창!
혹시라도 또 찢어질까봐 이번에는 옷자락을 돌돌 말아 두껍게 한 후 끝 부분만 뾰족하게 변형시키자 다행히 놈의 발톱에 찢겨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번 부딪칠 때마다 돌돌말린 창과 같은 옷자락이 휘어져 역시 레벨이 높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헌데 놈과 한창 싸우는 중에 눈매가 가는 놈이 자리에서 사라진 것을 본 서인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가득이나 레벨이 낮은 상태에서 늑대인간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데 한 놈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자 신경이 쓰여 놈과의 싸움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정신이 흐트러지자 곧바로 늑대 인간이 옷자락 공격을 비집고 순식간에 서인의 몸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부터 아랫배까지 날카로운 발톱이 확 훑고 지나갔다.
찌이익.
“아흑!”
옷이 길게 찢겨져 흰 살결이 내비치며 발톱에 긁힌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헌데 바로 그때 등 뒤가 다시 화끈거리며 서인의 몸이 휘청거렸다.
비틀거리는 중에도 몸을 옆으로 피하며 돌아보니 사라졌던 놈이 어느새등 뒤로 다가와 단검으로 서인을 공격한 후 재빨리 뒤로 물러나 있었다.
“크큭, 이제 네년의 운도 다한 모양이군.”
서인은 늑대인간 한 놈만을 상대하기에도 벅찼는데 이제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앞뒤로 협공을 받자 암울한 현실에 입술을 질끈 깨물어야 했다.
*
주작은 이제 완전한 불새가 되어 울창한 숲 위를 날아다니며 도태자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불꽃이 온몸을 완전히 감쌌다고 해서 성장이 멈춘 것은 아니다.
온 몸을 감싼 불꽃이 새빨간 것은 인간으로 치면 아기를 막 벗어나 이제 10여 살을 넘긴 것으로, 더욱 강렬한 색으로 변모해야 완전체인 주작으로 거듭 탄생하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숲을 헤매도 도태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제 날도 저물어가자 산을 내려가 내일 다시 찾아볼까도 생각해봤지만, 이미 깊은 산속까지 들어온 마당에 다시 올라오려면 귀찮아 오늘밤은 숲에서 노숙을 각오하고 찾는데 까지 찾아보기로 했다.
헌데 날이 거의 저물어갈 즈음 드디어 주작에게서 신호가 왔다.
급히 나는 듯 달려가 보니 내 몸집만하게 자라난 주작이 이미 지상으로 내려와 온몸에 생성된 불을 소멸시킨 채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꾸워워웍.. 꾸르르르
“알았다.. 알았어, 나도 반가워. 그리고 수고했다.”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급히 발등에 이식시켜준 칩을 터치하고 난 나는 깜짝 놀라야 헸다.
“두 놈이잖아!.. 그것도 14레벨과 15레벨.”
두 놈이 50미터 이내에 함께 있다는 것은 한집에서 같이 생활한다는 뜻이다.
이건 맵이 아니라 한번 죽어버리면 바로 소멸이라 모험은 절대 금물이었다.
포기를 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다가 나중에 레벨이 더 승급되면 다시 찾아올 생각에, 놈들이 사는 집이나 확실히 알아두려 홀로그램에 표시된 지점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 갔다.
헌데 얼마가지 않아 아련히 싸우는 소리가 바람에 스치듯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두 놈이 같이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집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건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을 그것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두 도태자가 있는 곳에서 들려오는 이 소리에 대해 달리 해석할 것이 없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잘된 일이지.’
두 놈이 싸우다가 한 놈이 죽어버린다면 그거야 말로 내가 바라던 바다.
아니지, 다시 생각해보니 두 놈이 서로 싸우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두 놈 모두 내 손으로 처치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었다.
더군다나 그 작전은 내 특기중 하나이기도 하니 속으로 좋아라 하며 더욱 조심스럽게 놈들이 있는 곳으로 전진해 나갔다.
‘두 놈 모두 잡으면 29,000셀링. 지금 통장에 일만 셀링이 있으니 당분간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
4만 셀링이면 골드 티어 두 명이 가상 게임으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시청하고도 한참 남는 금액이다.
더군다나 이제 실버티어로 승급했으니 월급도 오를 터라 묵직한 통장 잔고를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러자면 두 놈을 잡는게 우선이었다.
김칫국부터 마시다가 일이 잘못되는 경우에는 큰일이라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낙엽마저 피하며 서서히 접근해 가기를 얼마 후.
‘뭐야! 세 명이잖아..?’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본 눈앞의 광경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었다.
‘저 여자는 맵에서 나를 죽였던 그 싸가지.’
눈앞의 광경은 실로 처참했다.
여자는 두 남자에게 앞뒤로 협공을 받고 있었는데 온몸이 피투성이에 부상이 무척 심했는지 연신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예전 저 여자가 나를 죽일 때 10레벨이었는데 지금 14와 15레벨 두 도태자에게 협공을 받고 있으니 그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봐야 했다.
헌데 여자가 왜 저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싸가지도 권한증을 받은 모양인데 어째서 확인을 하지 않은 거지..?’
권한증을 받았다면 기관에서 칩에 어플도 깔아 주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처럼 두 도태자의 정보가 떴을 텐데, 그것을 확인도 하지 않은 것처럼 눈앞의 사태를 보니 여자가 두 도태자를 이길 확률은 1도 없어 보였다.
10레벨에서 1등을 먹었다고 해도 15레벨 이상 승급되기는 힘들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가 돈에 눈이 멀어 두 놈을 한꺼번에 잡으려고 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당해도 싸지, 앞뒤 가려서 나섰어야지 무작정 나댄 모양이군.’
우선은 상황을 지켜본 후 나서든 아니면 그냥 포기하든 결정하기로 했다.
헌데 여자도 부상이 심했지만 한 놈도 부상을 입었는지 옆구리를 잡은 한손에서 연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싸가지가 그래도 최소 14레벨은 되는 모양이군.’
부상당한 놈이 14레벨인 것은 당연할 터.
그렇다면 싸가지 역시 최소 14레벨은 된다는 뜻이다.
촤아악.
“아아흑!”
기어이 다시한번 늑대인간에게 앞가슴이 긁히며 또다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싸가지가 비명을 토해내는 순간 뒤에 있던 눈매가 가늘고 음침한 미소를 짓고 있던 놈 또한 한순간 사라지며 그녀의 등 뒤로 접근해 단검으로 어깨에 일검을 그어댔다.
한눈에 보기에도 놈은 여자를 찔러 죽일 수 있었는데도 상처만을 내자 이상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제 여자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듯 비칠거리자 늑대 인간이 이번에는 보기에도 무척 날카로워 보이는 기다란 손톱으로 그녀의 양 허벅지에 무식하게 손톱을 각각 한번씩 찔러 넣었다.
“흐윽!”
여자는 기어이 그 일격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듯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후우.. 정말 끈질기게 년이군, 이제 네년은 우리를 위해 봉사를 해주는 일만 남았어. 대신 그 보답으로 고통 없이 죽여줄 테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말라고, 크큭..
놈들이 그녀를 죽이지 않고 저렇게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부상을 입혀놓은 이유를 그제서야 알게 됐다.
하긴 이런 곳에 숨어 지낸지가 100여일 정도에 한 미모하는 싸가지가 나타났으니 두 남자 놈이 그냥 죽인다면 그것 또한 이상하기는 했다.
싸가지는 곧 죽을 것처럼 정말 손끝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곧바로 두 놈이 그녀의 앞뒤로 다가오더니 옆구리에 부상을 입은 놈이 돌연 들고 있던 단도로 그녀의 양 팔뚝에 일검씩을 찔러 넣었다.
놈의 이러한 행동은 그녀가 반항을 할까봐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임이 분명했다.
이미 걸레처럼 찢어진 마법옷은 어느새 원상태로 돌아왔지만 온몸은 물론 이제 양다리와 팔마저 깊은 상처를 입어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는 두 눈만 애처롭게 껌벅이며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고만 있었다.
“네년이 하기에 따라 한동안 죽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게 좋을 거야. 하긴 지금은 움직일 수도 없겠지만 말야.”
그녀의 옷은 찢을수가 없어 곧바로 두 놈 모두 쓰러져 있는 싸가지 앞에 주저앉더니 옷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하늘거리던 옷은 이제 기력이 다한 그녀가 제어할 수 없어 서서히 두 놈의 손에 의해 벗겨지더니 이내 브래지어로 가슴을 가린 상체가 드러났다.
뒤이어 바지마저 벗겨내자 그녀는 움직이려고 몸을 꿈틀댔지만 끝내 몸만 퍼득거리며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보아도 그녀의 상처는 정말 심각해보였다.
양 허벅지와 팔뚝에 구멍이 뚫려 피가 계속 흘러내리는 것은 물론 브래지어가 찢겨진 가슴에서도 뭉쿨뭉쿨 계속해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배며 등에도 무수한 상처가 나 있어 저대로 놔둔다면 피를 너무 흘려 죽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상처 때문에 좀 그렇지만 몸매는 정말 일품이군.”
늑대 인간이 어느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한마디 했다.
그사이 옆구리에 부상을 입은 놈이 단도로 브래지어를 뜯어내자 늑대 인간의 손톱에 상처를 입어 피가 흘러내리는 양쪽 가슴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그녀는 눈물이라도 흘릴 듯 애처로운 눈빛을 빛낸 채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헌데 젠장!
그녀가 눈을 돌린 곳이 하필이면 내가 나무 뒤에서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는 곳이었다.
아직 날은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 눈이 그녀의 눈빛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순간 나는 재빨리 머리를 다시 나무 뒤로 숨겼지만 이미 그녀와는 눈빛이 마주친 뒤였다.
‘씨발! 하필이면 이곳을 쳐다볼게 뭐람!’
잠시 후 다시 고개를 살짝 내밀어보니 그녀는 두 놈이 팬티를 벗기려 하는 중에도 이곳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좀 구해달라는 듯이 말이다.
어차피 한 놈은 부상으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상황이고 늑대인간 또한 싸가지와 싸울 때 보니 내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같은 15레벨이라도 도태자가 된 이유는 더 이상 발전이 없기 때문이겠지.’
그랬다.
같은 레벨이라도 놈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두 놈을 모두 처치해 29,000셀링을 벌어보려 했으니 지금 두 놈의 정신이 한창 그녀에게 쏠려 있는 지금이 기습을 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