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재회
놈의 직업이 무엇이든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었다.
서인은 통나무집으로 다가가면서 일상복으로 변해 있는 마법옷을 예전 흰색에서 이번에는 검은 전투복으로 변형시켰다.
츠츠츠츠츠
순간 몸에 알맞게 달라붙어 있던 상의가 풍만하게 늘어지더니 이내 허공으로 나폴거리며 흩날리기 시작했다.
마법옷은 레벨이 승급되며 더욱 자연스럽게 조정할 수 있게 되었고 예전에 비해 한층 강력해져 있었다.
놈과의 거리는 이제 20여 미터.
나무들 사이로 놈이 지어놓은 통나무가 보이자 서인은 더욱 조심스럽게 다가가 우선은 안을 엿보기로 했다.
헌데 그녀가 10여 미터로 가까이 접근 했을 때 돌연 통나무집의 문이 열리더니, 눈매가 가늘고 입술이 비교적 얇은 얍삽한 체구의 한 사내가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저 놈이 김 영민이겠군.’
헌데 서인이 놈의 기를 아주 희미하게 느끼듯이 놈 또한 서인을 느끼고 있는 듯 이내 그녀가 있는 곳을 가는 눈매로 주시하고 있었다.
같은 레벨이니만치 기력을 집중시키면 아주 희미하게나마 서로의 기를 느낄 수 있었다.
놈이 도태자의 신분이니 온몸이 긴장돼 있고 항상 촉각이 곤두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는 것은 당연했다.
때문에 서인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의 기를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놈이 밖으로 나왔다는 것은 밖에서 싸우자는 뜻이다.
하긴 놈도 기로서 같은 레벨이라는 것은 눈치 챘으니 이길 자신이 있어 저렇게 도망가지 않고 싸우려는 것일 터다.
한마디로 집안 살림을 보존하고 싶은 것이다.
놈이 자신만만하게 나오자 서인도 굳이 몸을 숨길 이유가 없어 나무 사이에서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헌데 그녀의 모습이 나타나자 놈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지며 입가에는 음침한 미소가 흐릿하게 흘러나왔다.
처벅.. 처벅
서인이 다가가자 놈의 입고리가 한쪽으로 말려 올라가며 혼자 말하듯 중얼거렸다.
“나와 같은 레벨이니 키르맨은 아니고.. 돈에 눈이 먼 플레이어군. 여자라니, 정말 고마운 일이야.”
놈이 말하며 서인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 내리자 그녀의 인상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도태자들 중에도 못된 놈들은 수두룩했다.
특히 자신이 여자라는 이유로, 그리고 장소가 이런 외진 곳이라는 것 때문에 몸을 탐하려는 자들이 거의 전부였다.
그래서 혹시나 몰라 상위 도태자는 물론 같은 레벨의 도태자도 그냥 지나쳤고 그 조심성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서있는 같은 레벨의 김영민을 바라보면서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헌데 마치 개미가 온 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저 눈빛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통 이런 곳에서 장기간 생활한 놈들이 여자 맛을 봤을 턱이 없었다.
하여 이런 곳에 서인 자신이 나타났다는 것은 패하면 곧 놈의 먹잇감이 된다는 뜻과도 같았다.
놈의 눈빛도 다른 도태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저 놈의 눈빛과 입술은 다른 도태자들에 비해 더욱 음침하고 음흉스러워 보였다.
‘패하는 날에는 소멸되기도 전에 큰일 나겠군.’
싸움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잠시 놈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놈이 독사 같은 눈빛을 빛낸 채 한쪽으로 말아 올린 입을 슬며시 열었다.
“후훗, 여자가 궁했던 것을 어떻게 알고 찾아 왔을까? 네년이 돈에 눈이 멀어 날 찾아냈지만 그것이 네년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불행이라는 것을 곧 알게 해주지.”
“미친놈, 자신이 없었다면 찾아오지도 않았다.”
“꽤 자신만만하군. 하지만 네 년은 어차피 내게 패하게 돼있어.”
서인은 놈의 계속되는 음흉한 눈길에 더 이상 말씨름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곧바로 옷자락을 더욱 펄럭이며 당장이라도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이 그 어떤 방어나 공격 태세를 취하지 않아 의아했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고 곧바로 좌측 옷자락을 길게 늘여 놈을 향해 쏘아 보냈다.
쐐에엑!
옷자락은 한순간 얇은 면도칼과 같은 날카로움을 지닌 채 단숨에 놈의 몸을 절단하려는 듯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나갔다.
헌데 옷자락이 날아가는 사이에도 놈은 살짝 비웃음만을 머금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한 순간 옷자락이 몸 근처에 거의 도착할 즈음 놈의 몸이 잠깐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
‘뭐지..?’
한순간 놈의 몸이 사라지자 놀라 주위를 경계했다.
공격했던 옷자락을 회수한 서은이 곧바로 주위를 경계하니 문득 뒤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뒤돌아볼 필요도 없이 재빨리 쇄도해오는 바람소리를 따라 옷자락을 날리며 몸을 옆으로 멀찍이 피해 돌아서자, 과연 놈이 양손에 단도 두 개를 들고 나를 향해 날아오른 모습이 보였다.
헌데 날아오른 놈의 몸에 옷자락이 쏘아져 나가자 이번에도 놈이 허공에서 갑자기 꺼지듯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음 순간 놈의 몸은 어느새 땅에 내려서 있었다.
순간 서은은 놈의 능력이 어떻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몸을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지녔군.’
헌데 저런 굉장한 능력을 지니고도 왜 도태자가 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몇번 더 공격을 시도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지.’
서은은 그 후 몇 차례 공격을 해보고 놈이 왜 도태자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됐다.
빠르기만 할 뿐이었다.
놈의 능력은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기에는 아주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공격력을 그야말도 일반 하위 플레이어의 공격 능력밖에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한 가지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한번 빠르게 피하고 난 뒤에는 아주 잠깐 동안 그 빠른 능력을 사용할 수가 없는 듯 했다.
비록 그것이 2-3초간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그것 역시 놈의 결정적인 단점중 하나로 여겨졌다.
물론 레벨이 더욱 승급될수록 그 단점이 보완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은 하위 레벨자들에게는 모르겠지만 같은 레벨인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한순간 놈이 갑자기 그 자리에서 사라지자 네게 공격해 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급히 몸을 한쪽으로 빙그르르 돌며, 양쪽 옷자락에 기를 주입해 몸을 감싸고돌며 방어하자 놈이 급히 다시 뒤로 물러나며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서인은 처음 놈이 말한 ‘네년은 어차피 내게 패할 수밖에 없다’ 라는 말을 생각하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저 능력으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약점을 파악한 서은이 더 두고볼 필요도 없이 끝장내려고 놈을 향해 다시 좌측 옷자락을 날려 보내자 역시 놈의 몸이 흔들 하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혹시 놈이 달겨들지 몰라 청력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며 경계를 하니, 놈이 원래 있던 장소에서 옆으로 5미터가량 떨어진 곳에서 미세하게 바람 소리가 울려왔다.
순간 그녀는 우측 옷자락을 재빨리 놈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그 자리로 쏘아 보냈다.
파라라랏!
“크윽..!”
놈의 몸이 나타나는 순간 손가락 굵기로 말아올린 회전하는 옷자락에 어느새 옆구리 끝이 살짝 꿰뚫려 있었다.
파팟
푸아악!
송곳같은 옷자락이 빠지자 뚫렸던 옆구리에서 피분수가 비산했다.
이제 놈의 움직임이 한층 둔화될 것은 분명했다.
더군다나 피를 흘리고 있어 놈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핏방울이 떨어져 움직이는 방향이 눈에 띠일 것 또한 당연했다.
이곳은 맵이 아니기 때문에 상처를 치료하기 전까지는 아물지 않아 이제 놈은 끝이라고 봐야했다.
헌데도 놈은 웬일인지 포기나 두려운 기색이 아닌 서인을 똑바로 바라본 채 비웃고만 있었다.
같지 않아서 다시 옷자락을 날려 공격하는데 놈이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끈질기게 공격을 피하기만 하며 간신히나마 버티고 있었다.
그때 서인은 놈을 공격하는 도중에 손등에서 전화와는 다른 진동이 전해져 왔지만 한창 전투중이라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한동안 놈을 몰아붙이던 그녀가 이제 끝장내려 마지막 공격을 시도하려 했다.
놈은 이제 몸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눈빛만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끝이다!”
그녀가 한마디하고 이번에는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가며 놈의 양옆으로 동시에 종잇장같이 얇은 옷자락을 쭉 뻗어 날려 보냈다.
쏴아아앗.. 쐐에에엑
양 옆 세로로 쏘아져 가는 옷자락을 놈은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지만, 그녀 역시 앞으로 쏜살같이 다가서고 있는 상태라 놈이 빠져나갈 구멍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순간 놈이 물러나는 만큼 다가서며 우측 옷자락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 놈의 상체를 휘감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다음순간 종잇장같이 얇아진 나머지 옷자락이 놈의 목에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쏜살같이 쏘아져 나갔다.
‘후우, 이제 끝났군.’
서인은 놈이 끝장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번 싸움을 통해 얻어낸 성과라면 같은 레벨이라도 뭔가 약점이 있어 도태자가 된 것이라 생각하고, 다음부터는 같은 레벨의 도태자라도 사냥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었다.
헌데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옷자락이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놈의 목으로 날아가고 있는 순간 어디선가 쿵쿵 소리가 들려오더니, 갑자기 허공에서 바람소리와 함께 무언가 떨어져 내리며 공격해 가던 옷자락이 길게 찢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찌이이익.
쿠쿵!
쿵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을 감싸고 있던 옷마저 찢겨지며 눈앞에 괴상하게 생긴 인영 한명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양 서 있었다.
사실 눈앞에 나타난 놈이 점프를 해서 이곳으로 떨어져 내린 것은 사실이었지만.
생긴 것은 영락없는 늑대의 모습이었다.
입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양 이빨과 무척이나 날카로워 보이는 기다란 손톱.
헌데 놈은 2미터는 됨직한 덩치에 이족보행을 하고 있었다.
‘라이칸 스로프..!’
분명 늑대인간이었다.
이제는 더욱 강화되어 마치 강철과도 같이 질겨진 옷감을 자른 것은 저 날카로워 보이는 발톱이 분명할 터.
싸우는 동안 손등에서 진동이 울려온 것을 보면 나타난 놈 또한 도태자가 분명할 터다.
그리고 눈치를 보니 두 놈이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을 느끼고 이곳에서 함께 숨어 지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득 그런 옷감을 자를 정도라면 심상치 않은 능력이라 생각하고 급히 손등을 터치해 보았다.
======================
도태자
이름 : 양 학봉
LV 15 (실버티어)
도태자 경과 날짜 : 98일
========================
‘15레벨이라니..!’
김 영민이라는 놈이 비록 부상을 당했다고는 하나 아직 움직일 수는 있었다.
14레벨 하나 저렇게 만드는 데도 꽤나 시간을 소비해야했다.
헌데 이제 15레벨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