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티르얀과의 듀오게임
이번에는 부적이 불타오른 바닥에 있던 풀들과 그 밑의 흙들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놈에게로 쏘아져나갔다.
그 속도는 마치 총알과 같아 허공에 잠시 떠있던 놈이 피하고 자시고 할 사이도 없었다.
놈은 흙들이 무더기로 쏘아져오자 허공에서 몸을 마치 팽이처럼 빠르게 돌려 두 다리의 검으로 방어를 하려했다.
하지만 비가 오는 중에 우산을 쓴다고 해서 비를 한 방울도 맞지 않을 수는 법.
비록 몸 중앙은 놈의 팽이처럼 돌아가는 검날에 의해 비산하던 흙들이 튕겨져 나갔지만, 그래도 몸 곳곳에 면도날같이 날카롭기 그지없는 흙들의 파편이 스쳐 지나가 다시한번 전신이 난도질 당해야했다.
다행인 것은 급소를 피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무수한 흙들이 살갗에 틀어박히고 훑고 지나가 놈이 고통으로 일상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놈이 체공시간이 다해 땅으로 떨어지려 할 때 내가 그 타이밍을 맞춰 검을 앞세운 채 놈에게로 빛살처럼 솟아올랐다.
“우훗!”
자신은 떨어져 내리려는데 내가 튀어 오르자 놈이 한순간 깜짝 놀라며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토해냈다.
쏴아아.. 쉬리리릭
떨어지면서도 놈은 내가 내뻗은 검을 향해 몸을 비틀며 두 발의 검으로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이때 나는 검으로는 놈을 공격하며 다시 왼손에는 부적 하나를 꺼내들어, 검은 검대로 놈의 두 검과 부딪치며 부적은 가슴을 향해 날려 보냈다.
슈류류류륙!
이번에는 바람을 최대한 얇게 압축해 회전을 머금게 하자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마치 드릴과 같이 회전하며 놈의 가슴을 뚫고 지나났다.
“커흑!”
쿠쿵!
놈이 한손으로 가슴을 움켜쥔 채 그대로 등짝부터 땅에 내리 꽂히듯 떨어져 내렸다.
놈이 고통 중에도 떨어지자마자 급히 일어섰지만 나는 허공에 재주를 한번 부려 머리가 땅으로 향하게 한 후 검을 아래로 뻗어내 놈의 정수리를 향해 쏜살같이 떨어져 내렸다.
푸욱!
끄르르륵.
1미터가 넘는 장검이 한순간 정수리부터 몸속을 파고들자 놈의 온몸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체력이 다했다는 것을 알고 나는 땅으로 착지를 하며 머리에 꽂힌 장검을 그대로 잡아 내렸다.
촤아악.
순간 놈의 몸체가 머리부터 장검 끝인 허리까지 반으로 쪼개지며, 뇌수와 창자 그리고 핏물이 한쪽으로 쏟아져 내려와 역겨운 피비린내가 주위를 진동했다.
더 이상 체력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놈의 몸체가 바스라지며 순식간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놈이 죽자 티르얀과 대치하고 있던 놈이 깜짝 놀라며 도망치려했다.
여기서 도망쳐봐야 갈 데도 없을 텐데 놈은 우선 이 자리를 피해 목숨부터 살고자 했다.
하지만 티르얀이 제어하고 있는 풀잎이나 나뭇가지들이 놈을 놔주지 않고 계속 공격하는 바람에 달아날 수는 없었다.
곧바로 내가 합세해 놈에게 다가가 부적 공격을 몇 번 가하자 놈의 손발이 어지러워지며 이내 굵은 줄기에 가슴이 꿰뚫려 허공으로 들려지게 됐다.
하앗!
순간 나는 가지에 뚫려 허공에 떠있는 놈을 향해 힘차게 뛰어 오르며 목을 향해 그대로 일검을 내리 그었다.
툭.. 데구르르르..!
목이 떨어지니 이제 체력이 남아 있다고 해도 힘을 쓸 수 없을 터다.
역시 아직 체력이 남아 있었는지 놈의 몸은 바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몸체는 아직 가지에 의해 허공에 들린 채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머리에 붙어 있는 눈알만이 요리조리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내가 분리된 머리로 다가가자 놈의 눈알이 불안한 듯 더욱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머리로 다가간 나는 다리를 한쪽 들어 올려 머리를 밟은 후 도력을 다리로 흘려보내 주저 없이 힘껏 밟아버렸다.
우지직.
해골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뇌수가 사방으로 튀어 놈의 몸체와 부서진 머리가 그제서야 반짝 빛나며 허공중에 사라졌다.
두 놈이 모두 죽자 티르얀이 온몸에 두르고 있던 줄기며 풀잎들을 모두 제자리로 원위치 시킨 후, 마치 10년 동안 헤어져 있다가 오랜만에 다시 해후한 연인을 보듯 달려와 나를 꼭 끌어안았다.
“드디어 우리가 1등 먹었어! 이게 꿈은 아니겠지?”
“꿈 아니니까 좀 떨어져봐, 상태창부터 확인해보게.”
“알았어, 너무 좋아서 그렇지, 무슨 남자가 이렇게 멋대가리가 없을까.”
“알았으니까 상태창부터 확인하고 그 다음에는 네가 껴안고 싶은 만큼 껴안어,”
“알았어, 그럼 나도 상태창부터 확인해봐야겠다.”
티르얀이 떨어지자 곧바로 긴장된 마음으로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과연 1위를 먹으면 보상 경험치가 어느 정도 주어지고 레벨은 얼마나 올랐는지 무척 궁금했다.
전에 10등을 했을 때는 1000점이라는 보상 경험치가 주어졌었다
=========================
상태창
이름 : 최준수
종족 : 인간 (인간)
직업 : 도사
티어 : 브론즈
레벨 : 15
경험 : 805/1500
능력치 P: 도력 : Lv 16
특수능력 P : 도술 : Lv 16
==========================
완전 초대박이었다.
단숨에 4레벨이 승급된 15레벨이다.
한순간에 실버티어의 중급 레벨이 된 것이다.
게다가 능력치와 특수 능력인 도력과 도술까지 덤으로 한 레벨씩 더 올라있었다.
계산을 해보니 10등이 1000점에 순위가 올라갈수록 500점이 추가되어 모두 5500점의 보너스 경험치가 주어진 것이다.
이제 나는 물론 티르얀도 도태자와는 거리가 멀어진 셈이다.
아니 이대로라면 나는 얼마 있지 않아 골드 티어까지 승급할 자신이 있었다.
이래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너무 빠른 승급이 되자 어쩐지 조금은 불안하기까지 했다.
“쥴스야, 나 15레벨이 됐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어쩌면 좋니? 꿈이 아니라고 말해줘 봐. 어서!”
“꿈 아냐.”
“아홋! 내가.. 아니 우리 둘이 드디어 1등을 먹었어. 태어나서 이렇게 기분이 좋은 적은 처음이야.”
당연히 플레이어의 숙명인 브론즈를 벗어나 실버티어로 승급했으니 최고로 기분이 좋을 수밖에.
더군다나 1등을 먹고 보상 경험치에 능력치와 특수 능력까지 한 레벨 더 오르기까지 했지 않은가.
티르얀이 옆에서 두 손을 번쩍 치켜들더니 폴짝폴짝 뛰다가 이내 다시 내 목을 끌어안은 채 여전히 기쁨을 참지 못하고 방방 뜨고 있었다.
나 또한 그녀 못지않게 기분이 너무 좋아 그녀가 하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헌데 방방 뛰던 그녀가 난데없이 내 볼에 쪽하고 입맞춤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건 너한테 고맙다는 감사의 입맞춤이야. 솔직히 네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1등은 하지 못했을 거야.”
“같이 한 일이잖아. 그런데 정말 고맙다고 생각한다면 조금 약한거 아냐?”
“뭘 더 바라는데? 쥴수 너 가만 보면 무척 응큼하단 말야.”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런거야. 아무튼 15레벨까지 승급되고 나니 실버티어 맵에서는 조금 덜 고생해도 되겠다.”
“그럼 우리 다음에도 듀오게임에 참가할까?”
“글쎄..? 듀오게임에 플레이어들이 많아 경험치를 획득하기는 빠른데 오늘 보니 하위 레벨자는 거의 참가하지 않는 것 같단 말이지. 그렇다면 실버티어에서 15레벨로 참가한다면 맵에 떨어지자마자 바로 귀환할 확률이 높지 않겠어?”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럼 레벨이 조금 더 오른 후에 참가하자, 나중에라도 네가 마음이 있으면 내게 기를 보내, 난 그 동안 최대한 레벨을 올리고 있을게.”
“그래, 그러는게 좋겠어.”
1등을 먹은 후에 지구로 귀환하려면 지구에 있는 본체를 한동안 생각하고 있으면 귀환한다는 것을 교육원에서 알려준 바가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감정도 추스렸으니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됐다.
헌데 막상 헤어질 생각을 하니 티르얀이 조금 서운한 모양이다.
“우리 행성은 다른 행성보다 많이 발전되어 있어 워프 우주선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걸 타고 지구를 한번 놀러갈까? 네가 사는 지구가 어떤 곳인지 구경도 해볼 겸 말야.”
“워프 우주선은 지구에도 있어.”
“그래..? 헌데 지구 우주선하고는 빠르기에서 많은 차이가 날 걸, 우리 행성에서 지구까지 거리가 2453광년 떨어져 있지만 우리 우주선을 타고가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거든.”
“그럼 한번 놀러오든지, 그런데 내가 사는 곳을 어떻게 찾으려고?”
“네 기로 찾을 수 있어, 내가 너에게 기를 보내 네가 받아들이면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 강한 기를 느낄 수 있거든.”
“그건 처음 듣는 얘기네. 아무튼 여행 온다는 셈치고 놀러올 수 있음 와봐.”
“알았어, 내가 나중에 지구에 도착해서 기를 보내면 받아주기나 해.”
“알았어.”
티르얀의 말이 일리가 있는게 우주에는 지구보다 몇 만년 이상 과학이 발전한 행성이 수두룩하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러니 지구보다 훨씬 기술력이 뛰어난 워프 우주선이 존재한다는 말이 결코 거짓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것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플레이어들이 생겨나고부터는 과학력으로 힘의 잣대를 정하는 시대는 끝난지 오래 됐고, 현 시대에는 오로지 각 행성에 얼마나 많은 강한 플레이어들을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행성의 강함이 정해졌다.
물론 그 중 챌린저들을 몇 명 보유하고 있는가가 행성의 힘을 측정하는 제일 중요한 요소인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지구에는 5명의 챌린저들이 존재하는 반면 티르얀의 고향별인 플러니아 행성에는 7명의 챌린저들이 존재한다고 그녀는 말했었다.
한마디로 두 행성간 전쟁이 붙는다면 챌린저의 수도 적고 과학력도 많이 떨어지는 지구가 깨진다는 뜻이었다.
이제 이 맵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자 얼마 후 그녀는 나중에 꼭 한번 지구를 방문하겠다고 말한 후 먼저 고향별로 귀환했다.
그녀가 귀환하고 혼자 남아 있으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싸한 이유가 왜 그런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잠시 그녀가 사라진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도 곧바로 지구에 있는 본체를 한동안 생각하자, 온몸이 유리처럼 부서져 버리며 영혼이 흰빛의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으음..!”
본체로 돌아와 다시한번 상태창을 열어 15레벨이라는 숫자를 확인하며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하루 종일 상태창을 열어 두고 계속 확인해도 질리지가 않을 것 같았다.
헌데 귀환하자마자 승급에 대한 기분을 만끽하려는데 손등에서 갑자기 진동이 울려와 나도 모르게 기분이 잡쳐버렸다.
‘그렇게 전화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여전하시네. 정말 끈질기다니까’
1등을 먹었으니 내가 지구의 브론즈 티어 중 가장 늦게 귀환한 것은 당연했을 것이고, 또 귀환하고 나니 내 레벨이 슈퍼컴퓨터에 자동 저장된 것 또한 당연했을 터다.
그리고 국장은 그것을 확인하고 날 꼬드기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또다시 전화를 한 것일 테고.
받지 않는다면 계속 전화가 올 것 같아 곧바로 손등을 터치해 확인하니 다행히 국장은 아니었다.
헌데 국장과 한패라고 할 수 있는 지아라는 이름을 확인하자 그나마 국장 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국장이 이제는 그 임무를 지아에게 완전히 일임한 것인가. 아니면 지아의 신분이 더 높다고 했으니 그녀가 자처한 것일까?’
어차피 국장에게 전화가 올 바에야 차라리 한 미모하는 지아와 통화하는게 백번 낫다고는 생각했다.
상태창을 닫고 홀로그램을 열어 영상통화를 터치하자 지아의 밝게 웃는 모습이 화면 가득 떠올랐다.
‘정말 예쁘긴 예쁘단 말야.’
남자라면 당연히 한번 품어보고 싶을 만큼 지아는 괜찮은 여자였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특급 중에 특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장이 예전에 허튼 생각을 하면 골로 갈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었고, 이제 실버 티어로 승급은 했지만 그녀는 짐작컨대 마스터 티어가 분명할 것이라 생각해 언감생신 국장의 말대로 허튼 생각은 곧바로 접어야 했다.
홀로그램을 통해 그녀의 화사한 얼굴을 보며 잠깐 생각하는 사이 그녀가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